Mitsuko Uchida - Debussy, 12 Études
근대적 의미에서의 피아노 연습곡 장르는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악기의 발전과 더불어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들 연습곡은 음계, 아르페지오, 트릴, 3도 음정, 옥타브, 병행 화음 등을 중점적으로 연습하기 위한 것으로, 테크닉의 관점에서는 보다 복잡하고 난해해졌지만 형식의 관점에서는 역설적으로 간결해지고 단순해졌다는 것이 특징이다. 손가락들의 전무후무한 훈련을 통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고도의 테크닉이 발전해 나간 반면, 음악의 구조는 대개의 경우 2부 형식과 단순한 멜로디라인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연습곡은 이를 연주하는 계층에 따라 애호가나 초보자를 위한 일반적인 작품과 전 세계에서 대여섯 명 정도밖에 연주할 수 없을 정도의 테크닉과 음향효과를 염두에 둔 작품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전자의 경우는 체르니와 훔멜, 슈타이벨트, 클레멘티, 하농 같은 경우가 속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리스트와 쇼팽으로 이어지는 비르투오소 작곡가들의 경우가 속한다.
20세기 초반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에 이르러 연습곡은 절정에 이룬다. 그는 형식과 구조에 있어서는 전통을 훌륭하게 계승하여 발전시키는 동시에, 목적에 있어서는 프로 연주자들과 초보자 사이의 격차를 없애면서 누구에게나 피아노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연습하도록 의도했다. 더 나아가 낭만주의 시대의 양식과 정서에 마침표를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20세기 작곡가들에게 연습곡의 현대음악적 가능성을 열어준 창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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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과 신세기를 위한 연습곡의 탄생
1915년 9월 29일 프랑스의 디에프 인근의 푸르빌이라는 곳에서 완성된 연습곡은 6곡씩 2권, 총 12곡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쇼팽에게 헌정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 잠시의 시간을 보낸 뒤부터 드뷔시는 다시금 창작 에너지에 휩싸일 수 있었는데, 연습곡을 포함하여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흑건과 백건 및 세 개의 소나타를 남길 수 있었다. 당시 드뷔시는 무엇인가 더 새로운 어떤 것, 즉 표현 양식의 혁신적인 전환을 의도했다. 다시 말하자면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 즉 소리 자체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찾아내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엄청난 감수성의 깊이를 탐구하고자 한 것이다. 1915년 초반의 수개월을 쇼팽의 연습곡을 탐구한 끝에, 자신의 생각을 쇼팽에 투영시킨 연습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현대음악의 가능성을 탐구한 인상파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
1915년 8월 드뷔시는 출판업자에게 자신의 연습곡을 “하모니의 꽃다발 밑에 준엄한 테크닉을 숨기고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하며, 핑거링을 제시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우리의 오래된 하프시코드의 거장 역시 동시대인들의 현명함을 고려하여 핑거링을 지시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이 하프시코드의 거장은 바로 프랑수아 쿠프랭을 뜻하는 것으로 드뷔시는 연습곡을 원래 쇼팽이 아니라 쿠프랭에게 작품을 헌정하고자 했다. 두 권의 연습곡은 1916년 출판되었고 그가 지시해 놓은 연습 대상, 즉 3도, 4도, 6도, 옥타브, 아르페지오 등과 결부되어 있는 화성과 음색의 관계는 피아노 테크닉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1916년 12월 14일 미국 피아니스트인 월터 럼멜에 의해 초연되었는데, 작품의 현대적인 성향과 난해한 기법 덕분에 콘서트 피아니스트들에게 곧바로 사랑받지는 못했다. 1930년대 위대한 프랑스 피아니스트이자 교수인 알프레트 코르토에 의해 비로소 이 작품이 단순한 피아노 연습을 위한 곡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단 두 곡만을 분석한 탓에 드뷔시의 혁신적인 작곡 기법이 완벽하게 이해되지는 못했다. 이후 올리비에 메시앙이 파리 음악원에서 행한 전설적인 작품 분석 클래스를 통해 이 작품이 드뷔시 피아노 예술의 절정을 이룬 말년의 걸작임이 밝혀졌다.
이 작품 속에는 음향과 색채에 대한 드뷔시의 관심이 잘 반영되어 있다.
현대적인 아름다움과 급진적인 폭발력에 대한 은유적 묘사
기존의 연습곡들은 테크닉 그 자체 혹은 연주효과의 극대화를 위하여 작곡되었지만, 드뷔시의 경우는 테크닉은 물론이려니와 음색과 음향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연습’하기 위한 작품이라는 것이 특징적이다. 특히 메시앙이 언급한 “색채에 대한 특이한 사랑”을 이 연습곡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건반을 지배하는 엄청난 기교 뒤편에 숨겨져 있는 신비로운 추상성의 영역에서 비롯한다.
조성적인 논리에서 떨어져 나온 새로운 화성법과 낯선 느낌을 주는 새로운 선율, 운율적이며 유연한 프레이징, 무한한 음향을 새롭게 조합하고자 한 진취적인 착상, 형식면에서의 새로운 자유로움 등을 통해, 드뷔시는 신비스러운 것에 대한 선호와 세련된 박취(剝取), 지속적인 암시와 불연속적인 유동성, 반어적인 표현 등을 그려내고자 했다. 소우주적인 수준에서 대우주적인 수준에 이르기까지, 세포의 수준에서 구조나 형식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드뷔시의 연습곡은 단순히 연습곡의 차원을 뛰어넘어 피아노라는 악기에 대한 인식 자체를 새로이 변화시킨 혁신적인 작품이다. 드뷔시의 이러한 급진적인 개념은 피에르 불레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당하게 평가될 수 있었다.
Jörg Demus - Debussy, Études I~VI (Livre I)
Jörg Demus, piano
1970
추천음반
드뷔시 연습곡은 작품 자체의 현대성 때문에 이전 시대의 연주가들보다는 현대 연주가들에게 그 가치가 뒤늦게 발견되어 녹음이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테크닉상의 난해함이 더해져 이를 녹음하는 연주자들은 극히 드문 편이다.
이 가운데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DG)가 가장 정석적인 해석과 모던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시대를 초월한 명연으로 손꼽을 만하고, 그 다음으로 미츠코 우치다의 연주(Philips) 또한 음색과 구조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보여준 훌륭한 연주로 평가할 만하다.
여기에 장-이브 티보데의 연주(DECCA)는 낭만적인 색채감과 환상적인 볼륨감이, 피에르-로랑 아이마르의 연주(Warner)는 새로운 음향 구축력과 신선한 표현력을 보여준다.
글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