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표적인 국민악파 작곡가인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서양음악사에서 가장 뛰어난 관현악법의 대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관현악법’ 즉 ‘오케스트레이션’이란 특정 선율에 오케스트라의 악기를 편성하는 방법인데,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오케스트라는 더욱 생기 넘치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그의 작품 속에서 매우 독특하고 화려한 관현악법을 구사했을 뿐 아니라 관현악법의 원리에 대한 유명한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그의 저서는 오늘날에도 작곡과 학생들의 참고문헌으로 널리 읽히며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이토록 영향력 있는 음악가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처음에는 아마추어 음악가로 그의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본래 해군이었고 처음부터 음악을 직업으로 삼지는 않았다. 물론 그는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일찍이 서유럽의 작곡가인 베토벤과 모차르트, 베르디의 음악을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소년 시절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해군사관학교에서 보내고 18세 때 학교를 졸업한 후 사관후보생으로 세계를 항해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그런 가운데서도 독학으로 틈틈이 음악공부를 해오다가 작곡가 발라키레프의 권유에 따라 21세가 되던 1865년에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했다. 이 교향곡이 성공을 거두자 그는 본격적으로 전문 음악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고, 1871년에는 마침내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작곡과 관현악법 교수로 임명되어 작곡과 지휘, 그리고 음악교육에 힘썼다.
호화로운 악기 편성, 현란한 음의 색채
<스페인 기상곡>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1887년 여름에 작곡한 관현악곡이다. 1862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대양을 항행하면서 여러 나라에 들른 경험이 있는데 이때 그는 스페인의 이국적인 색채와 강한 음악에 이끌렸다. 처음에는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기교적인 환상곡을 작곡하려고 의도했으나 다양한 악기들을 동원함으로써 주제를 보다 생동감 있게 살릴 수 있는 관현악곡으로 바꾸어 작곡하였다.▶해군사관학교 생도 시절의 림스키코르사코프.
‘근대 오케스트레이션의 원조’라 일컬어지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이 작품은 악기 편성이 호화롭고 음의 색채 또한 현란하다. 이 곡을 들은 차이콥스키는 “이 곡이야말로 장대하다는 표현에 합당한 걸작입니다. 당신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임을 자부해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고 그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나 림스키코르사코프 자신은 이 작품의 다른 면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장대 일색으로 추켜세우는 일반적인 평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이렇게 자서전에 썼다.
“카프리치오(스페인 기상곡)가 장대한 관현악 작품이라고 하는데, 아니다. 카프리치오는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된 명증한 작품이다. 음색의 변화, 의도적인 선율과 수식적인 양식의 절묘한 선택, 여러 종류 악기의 정확한 조화, 독주악기를 위한 간결하고도 기교 넘치는 카덴차, 타악기의 리듬 등, 이 모든 것이 이 작품에서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외형이 아니라 작곡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곡은 내용적으로는 ‘아침의 노래’, ‘변주’, ‘아침의 노래’, ‘정경과 집시의 노래’, ‘아스투리아스의 판당고’의 다섯 악장 모음곡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나, 각 악장이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쉼 없이 연속으로 연주를 하기 때문에 단일 악장과 같은 인상을 준다. 이 곡은 1887년 10월 31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궁정 오페라극장에서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스페인 기상곡>은 <세헤라자데>(1888), <러시아 부활제>(1888)와 함께 림스키코르사코프 원숙기의 3대 관현악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여러 관현악곡들은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휘황찬란하고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지를 음악 자체로 증명하고 있다. 그의 특별한 관현악법은 스트라빈스키를 비롯한 후대의 러시아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그의 찬란한 관현악곡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영감과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음향에 취하고 싶다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음악이 단연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Adrian Leaper/RPO - Rimsky-Korsakov, Capriccio espagnol
Adrian Leaper, conductor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1991.01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의 연주가 끝난 뒤, 에이드리언 리퍼 지휘의 연주가 이어집니다.
제1부: 알보라다(아침의 노래)Alborada
‘알보라다’(아침의 노래)는 흥겨운 춤곡으로 일출(日出)을 축하하는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지방의 전통적인 축제 음악이다. 먼저 전합주로 강렬한 스페인 풍 주제가 울려 퍼지고, 그 주제는 클라리넷으로 옮겨가서 발전하다가 이윽고 팀파니의 음을 타고 조용히 마친다.
제2부: 변주Variazioni
주제와 다섯 개의 변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호른의 4중주가 밝고 느긋한 주제를 제시하면 제1변주는 첼로가, 제2변주는 목관과 금관이, 제3변주는 금관이 그 주제를 이어간다. 뒤이은 제4변주는 플루트, 오보에, 첼로가, 그리고 마지막 제5변주는 바이올린이 이어받았다가 꺼지듯이 사라진다. 차례로 바뀌어 가는 화려한 변신과 교묘한 악기 사용법이 놀랍다.
제3부: 알보라다(아침의 노래)Alborada
제1부의 되풀이다. 그러나 조성은 반음 높게 하프를 곁들이고 있어서 한층 더 화려하다. 마지막 부분은 제1부와 마찬가지로 팀파니로 끝난다.
제4부: 정경과 집시의 노래Scena e Canto gitano
갑자기 작은 북이 울리고 뒤이어 금관의 팡파르가 터져 나온다. 여기서는 각 악기의 카덴차가 특기할 만하다. 먼저 바이올린, 이어 클라리넷, 플루트, 오보에, 하프 순으로 기교적인 카덴차를 전개하다가 끝에 이르면 열광적인 ‘집시의 노래’를 투티로 힘차게 연주한다.
제5부: 아스투리아스의 판당고Fandango asturiano
곡의 중심 선율은 알보라다와 마찬가지이지만 리듬은 용솟음치는 듯한 판당고이며 3박자이다. 판당고는 3박자의 빠른 스페인 춤곡을 말한다. 결말 부분에 알맞은 화려한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