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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zt, Mephisto Waltz No.1
리스트 메피스토 왈츠 1번
Franz Liszt
1811-1886
Boris Berezovsky, piano
29th International Piano Festival
La Roque d'Anthéron 2009
파우스트는 서유럽에서 가장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전설 가운데 하나로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판 독일의 마법사 혹은 점성술사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틸 오이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에 등장하는 오이렌슈피겔처럼 파우스트 또한 실제로 존재했던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추측되며, 이 사람은 악마와 의형제 혹은 친구 관계를 맺고 마술과 연금술, 점성술과 예언, 신학적 연구와 악마 연구, 남색과 엽기적인 기행을 남기고 1540년경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587년에 출판된 <파우스트편>이 발간되어 유럽 전역에 널리 읽히며 파우스트는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비록 고급스러운 문학적 완성도를 띠지는 않았지만 파우스트라는 독창적인 캐릭터는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사랑을 그린 작품
이후 많은 예술가들은 파우스트라는 인물에 동경을 보내는 한편 그의 지적 추구를 높이 평가하며 시대에 맞는 상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특히 계몽주의자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인간과 악마, 신을 둘러싼 진중한 대 서사극을 창조해냈다. 괴테가 23세 때 쓰기 시작하여 83세로 죽기 1년 전인 1831년에야 완성을 본 <파우스트>는 한 문필가의 문학적인 업적으로만 평가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벅차다. 여기에는 거인 괴테의 전 생애가 투과되어 있으며, 인생과 우주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을 품고 살았던 그의 장엄한 정신세계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전 2부로 나뉘어 1만2000행에 이르는 대하 희곡을 형성하고 있는 <파우스트>는 파우스트 박사,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그레트헨을 대비시키며 극을 이끌어 간다.
희곡 <파우스트>는 파우스트 박사,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그레트헨을 통해 신과 인간, 사랑, 구원에 대한 철학적인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괴테가 세상을 떠난 바이마르의 궁정 음악가로 임명된 리스트는 괴테의 정신적 유산을 계승하기 위해 1844년부터 스케치를 시작하여 1854년에 완성, 1857년 9월 5일 바이마르에서 자신의 지휘로 초연한 <파우스트 교향곡>을 작곡했다. 이후로도 리스트는 파우스트를 주제로 한 음악을 다수 작곡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악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메피스토 왈츠>다. 네 개의 왈츠로 구성된 <메피스토 왈츠>는 1859년부터 1962년(1번과 2번), 1880년부터 1881년(3번), 1883년부터 1885년(4번) 사이에 불연속적으로 작곡한 작품들을 모은 것으로, 파우스트가 아니라 메피스토펠레스에 초점이 맞추어진 1836년에 출판된 니콜라우스 레나우의 <시로 쓴 파우스트>(Faust: Ein Gedicht)>를 토대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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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우스 레나우(Nikolaus Lenau, 1802-1850)는 헝가리 태생의 오스트리아 시인으로, 마자르인 특유의 격정과 독일적인 취향을 함께 지녔던 인물이다. ‘세계고(世界苦)의 시인’이라고 불릴 만큼 괴팍한 성격에 기구한 인생 체험이 곁들여져 특이한 작풍을 가진 그는 만년에는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바이올린을 잘 켰고 베토벤을 숭배했던 그가 바라본 파우스트는 동시대 작곡가들인 슈만이나 베를리오즈, 리스트나 바그너가 바라보았던 파우스트의 세계와 많은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인간과 신의 관계까지를 포함하는 너무나 큰 초월적인 세계를 그린 괴테에 비해 레나우는 삶의 부조리함과 성격적 대비에 대한 은유적 표현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니콜라우스 레나우의 초상화, 1839
이 가운데 ‘마을 선술집에서의 무도’(Der Tanz in der Dorfschenke)>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메피스토 왈츠> 1번은 2번과 더불어 ‘레나우의 파우스트에 의한 두 개의 에피소드’(Zwei Episoden aus Lenau “Faust”)라는 제목으로 작곡된 오케스트라용 작품(S.110/2) 가운데 첫 번째 곡이다. 출판 당시부터 유명세를 탔던 이 곡은 이후 피아노 솔로(S.514)와 듀엣(S.599/2) 버전으로 편곡되기도 했다(3번과 4번은 원래부터 피아노 솔로를 위해 작곡되었다). 오케스트라 버전을 고스란히 편곡한 듀엣 버전에 비해 솔로 버전은 비교적 독립적인 악상과 전개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후일 리스트의 제자인 카를 타우지히에게 헌정되었다.
Sviatoslav Richter - Liszt, Mephisto Waltz No.1 (1958)
글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