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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Beethoven, Piano Sonata No.32 in C minor

Beethoven, Piano Sonata No.32 in C minor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Claudio Arrau, piano

Beethovenfest Bonn 1977

 

Claudio Arrau - Beethoven, Piano Sonata No.32 Op.111

 

피아노 소나타 32번 C단조 Op.111이 출판된 1822년은 베토벤에게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당시 그는 조카 카를의 양육 문제와 관련하여 법정 분쟁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내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카를의 아버지는 임종이 가까워오자, 성미 급하고 무심하며 외골수인데다 심한 청각장애를 가진 천재 작곡가인 형에게 아들의 양육을 맡기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당시 40대 중반이었던 베토벤은 아이를 돌본 경험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닥친 일을 극복해 나가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조카 카를은 계속해서 방탕한 생활을 일삼고 흥청망청 문제아가 되어갔다. 늘 현금이 부족해 변호사 비용도 부담할 여유가 없었던 베토벤은 조카를 돌보는 것을 힘들어했다. 게다가 카를이 자살까지 시도한 탓에, 그를 사랑했던 베토벤은 더욱 더 깊은 슬픔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당시 베토벤은 건강 또한 심하게 악화되어 친구들과 후견인들이 만들어준 보청기도 더 이상 소용이 없게 된 상태였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종이에 적어야만 했을 정도다. 베토벤은 악화되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점점 무심해졌다. 이런저런 일로 몸을 혹사시켰던 베토벤은 만성 질병과 감염 증세에 시달린 끝에 1827년 세상을 뜨고 만다.

빈과 온천도시 바데에서 가까운 헬레넨탈. 만년의 베토벤은 이곳 언덕길 산책을 좋아했다. 이곳에서 조카 카를이 자살을 시도하여 베토벤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심오한 창작의 꽃을 피운 베토벤의 만년

육체적ㆍ정신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은 만년에 접어들며 더욱 심오한 창작기를 맞이했다. 특히 1821년부터 그는 후기 현악 4중주를 비롯하여 <장엄 미사>와 교향곡 9번, 마지막 세 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다. 개인적인 가정사에서 비롯한 심적 고통과 점진적인 청력 및 체력의 악화가 그의 작품세계를 보다 내면적이고 초월적이며 형식 파괴적인 대범함으로 이끈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베토벤은 자신의 응축된 사고를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 그의 이러한 엄청난 창작열은 아마도 슈베르트 생의 마지막 해인 1828년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작인 두 개의 소나타 Op.101과 Op.106 ‘하머클라비어’와 더불어 마지막 세 개의 소나타인 Op.109, Op.110, Op.111은 피아노 소나타 역사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마지막 다섯 개의 소나타들은 이전까지 베토벤이 작곡했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음악으로, 음악적으로나 기교적으로나 극단적인 난해함을 담고 있다. 청력과 체력의 고갈을 통해 베토벤은 무대에 서는 것을 자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직 자신의 세계에서만 비롯할 수 있는 상상력으로 현실적ㆍ정신적 한계를 극복했고, 악기와 표현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는 초월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베토벤의 초월 의지는 지금까지도 연주자와 감상자로 하여금 최종적으로 베토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하게끔 한다. 1822년 1월에 작곡을 시작하여 자신의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한 피아노 소나타 32번은 그 신비로운 중요성으로 인해 피아노 음악뿐만 아니라 낭만주의 예술사조의 목적 자체를 한 차원 더 발전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벤체 사블로치는 베토벤의 이 경이로운 작품에 대해 가장 잘 이해했던 헝가리 음악학자였는데,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남겼다.

“마지막 다섯 개의 소나타들은 각각 미증유의 길이를 자랑하는 동시에 구원과 승천과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중세 시대의 미스터리에 비견할 만한 드라마틱한 플롯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가운데 세 작품(Op.101, 106, 110)은 푸가토나 푸가와 같은 종결부로 하여금 클라이맥스와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낸다. 반면 다른 두 개의 작품(Op.109, 111)은 하늘로 팽창해 나가는 듯한 확장된 변주곡 형식으로서 찬송가적 절정의 순간을 내포하고 있다. 모든 요소들은 그 자체로 투쟁하고 번민하며 꿈꾸는 한편, 위기를 맞는 과정을 겪으며 이러한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Daniel Barenboim - Beethoven, Piano Sonata No.32 Op.111

Daniel Barenboim, piano

Staatsoper Berlin, 2005

1악장: 마에스토소 - 알레그로 콘 브리오 에드 아파시오나토

C단조 소나타의 1악장 마에스토소의 느린 도입부는 초기작인 ‘비창 소나타’에 비견할 만하지만, 주제만큼은 명백한 푸가 주제로서 대위법적 발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첫 번째 주제와 이어지는 몇몇 중요한 요소들은 고전주의 스타일의 화성 가운데 가장 고도의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감7도로 구성되어 있다.

베토벤의 C단조에서도 이 화성이 먼저 제시되지만, 이 작품의 가장 독창적인 모습은 끝까지 집중력의 강도를 유지한 채 그 가능성을 결코 반감시키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두 번째 주제의 사색적인 분위기는 A플랫으로 이 폭풍과도 같은 격정적인 악장에서는 단지 에피소드로만 남는다. 짧은 코다는 비르투오소적인 패턴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하다 사라지다가 다음에 이어지는 아리에타 악장을 준비하는 듯 피아니시모로 끝을 맺는다.

2악장: 아리에타. 아다지오 몰토, 셈플리체 에 칸타빌레

베토벤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초기 낭만주의의 향기를 머금고 있는 푸가와 자신의 작곡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변주 형식을 후기 피아노 소나타 양식에 적극 도입하여 독창적인 방식으로 변형시켜 나갔다. 2악장 아리에타는 C장조의 주제와 장대한 다섯 개의 변주로 구성된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1944개에 달하는 32분음표의 연속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트릴의 향연은 작곡 당시로서는 연주가 불가능한 작품으로 인식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그 어려운 테크닉과 천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해야만 하는 난해함으로 해석가들의 머리를 끊임없이 아프게 하고 있다. 특히 이 변주 악장에서 논리적 정연함과 유연한 멜로디, 광채로 쌓여 있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l'istesso tempo(똑같은 템포)로 표현되는 모습은 존경스러움을 뛰어넘어 일면 공포스러운 요소가 엿보일 정도로 집요하다.

천상의 아름다움 속으로 날아오르는 마지막 악장

1822년 이 작품이 출판되었을 때 악보를 구입했던 사람들 가운데 이 곡을 조금이나마 이해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 확실하다. 애초에 출판업자인 슐레징거는 작곡가가 3악장을 보내줄 때까지 조판에 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하여 베토벤을 몹시 화나게 했다. 결국 베토벤이 3악장을 덧붙일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악보 인쇄에 들어가긴 했지만, 처음 완성되어 나온 악보는 오기투성이에 곳곳에 임시표를 너무 많이 빼먹어서 작곡가를 재차 격분케 했다. 베토벤은 자신의 제자이자 조수인 안톤 쉰들러를 시켜 오스트리아 빈에서 판매되고 있는 이 악보의 모든 사본을 수거했고 손수 오자 표기 리스트를 만들어 붙였다고 한다. 피아노 소나타 32번 초간본 표지. 가운데에 루돌프 대공의 이름이 보인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출판된 지 30여 년 이상이나 연주 불가능이라는 딱지를 붙인 채 방치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독일의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한스 폰 뷜로와 러시아의 대 피아니스트인 안톤 루빈스타인에 의해 처음으로 청중 앞에서 연주되기 시작한 이후, 작곡된 지 100여 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이 피아노 소나타 32번은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숭고한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추천음반

빌헬름 박하우스의 후기 소나타 연주는 항상 리스트적인 초절기교와 사색적이면서 상상력 풍부한 해석이 돋보인다. 그의 여러 32번 소나타 연주 가운데 196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Orfeo)이 연주의 긴장감과 테크닉의 안정성, 심오한 분위기를 잘 살려낸 명연으로 평가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99세까지 연주를 했던 세기의 피아니스트 미에치슬라프 호르초프스키가 1951년에 녹음한 레코딩(VOX)은 악보에 충실하면서도 촉촉하면서도 자유로운 감성의 날개를 활짝 핀 역사적인 연주로서 타의 모범이 된다.

아마도 완벽주의자 루돌프 제르킨이 보여준 날카로운 긴장감과 음악에 대한 진솔한 사명감을 능가하기란 앞으로도 불가능해 보인다. 음악에 있어서 더욱 완벽한 1967년 녹음에 비해 병마와 싸우느라 쇠약해진 나머지 오로지 정신성 하나로 무대를 지배한 1987년의 빈 실황 녹음(DG)이 한결 인간적인 감동을 준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피아노 음향의 절경을 보여준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1985년 디지털 레코딩(Philips)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1.06.22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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