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zt, Piano Sonata in B minor S.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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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Franz Liszt
1811-1886
Yuja Wang, piano
Friedrich-Ebert-Halle, Hamburg
2008.11
1847년 2월 러시아의 키예프에서 카롤린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을 만나게 된 리스트는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결별을 선언한 뒤 그 해 7월에 바이마르 근교에 있는 이르텐부르크 별장에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과 함께 안착하게 되었다.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은 리스트에게 피아노 연주보다 작곡에 전념하도록 설득했던 장본인으로, 바이마르 시기에 리스트는 상당수의 걸작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 시기에 리스트는 바이마르 궁정악단의 악장으로서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비롯한 많은 작곡가들의 오페라를 초연, 연주하는 한편 한스 폰 뷜로나 페터 코르넬리우스와 같은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독일 내에서 새로운 음악세계를 쌓아나갔다. 어떤 의미에서 당시의 바이마르는 전위 음악가들을 위한 성지와도 같았다.
1861년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의 공식적인 이혼을 교황청에 부탁하기 위해 로마로 떠나기 전까지 바이마르에서 보낸 15년간은 리스트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험난하고 고된 연주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과 창작 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를 찾아오는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과의 담론은 그의 사고와 악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시기에 작곡한 대작들을 꼽는다면 <단테 교향곡>과 <파우스트 교향곡>을 비롯하여 12개의 교향시와 2곡의 피아노 협주곡, <초절기교 연습곡집>,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 <그란의 성당 헌당을 위한 미사 솔렘니스> 등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피아노 소나타 B단조야말로 이 시기를 대표하는, 더 나아가 리스트의 모든 피아노 작품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아니, 베토벤 이후의 낭만주의 시대를 통틀어 가장 독창적이고도 위대한 소나타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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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피스토펠레스적인 소나타의 등장
바이마르 시기 리스트는 소나타 양식으로 <단테 교향곡>과 <파우스트 교향곡>을 작곡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소나타 양식을 갖추고 있는 것은 1852년부터 53년 사이에 완성된 이 피아노 소나타가 유일하다. 1857년 브라이트코프 & 하르텔 출판사에서 출판되었고 그 해 1월 27일 한스 폰 뷜로의 연주로 초연된 이 단악장의 소나타는 고전주의 음악 양식의 대표격인 소나타 양식을 혁신적인 낭만주의자인 리스트가 다루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로서는 대단히 큰 물의를 일으켰다. 특히 당시 리스트는 바그너와 함께 브람스로 대변되는 신고전주의자들과 대립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들의 수장격인 빈의 음악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는 이 작품에 대해 혹평을 퍼부었다. ▶1858년 ‘B단조 소나타’가 초연되던 해의 리스트의 모습.
1881년 이 작품을 들은 한슬리크는 <신자유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고문을 썼다. “아직까지도 이렇게 지리멸렬한 요소들이 엉큼하게도, 그리고 대담무쌍하게 나열된 음악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바그너는 이 작품에 대해 “모든 개념을 초월해서 아름답고 거대하며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심오하고 고상한 작품”이라고 격찬을 하며 한슬리크와 정반대되는 대립각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작품은 브람스의 선배이자 정신적인 지주였던 슈만이 리스트에게 헌정한 <환상곡 C장조> Op.17에 대한 답례로 슈만에게 헌정되었다.
‘B단조 소나타’는 30여 분 이상의 연주시간을 요구하는 대작으로 당시 리스트의 마음을 빼앗았던 형식적 질문들에 대한 극한적인 접근법을 보여준다. 이렇듯 단악장에 복잡한 형식을 구성하는 방식은 바그너가 자신의 오페라에서 발전된 형태로 사용했는가 하면, 아르놀트 쇤베르크와 같은 후대의 작곡가들에 의해 다시 한 번 도전을 받기도 한다. <순례의 해> 두 번째 해인 이탈리아편의 마지막에 수록된 ‘단테 소나타’도 궁극적으로는 단악장 작품(초기 버전은 두 개의 악장이다)이다. ‘B단조 소나타’ 역시 단악장이지만 이 경우 그 내적 관계가 더욱 복잡하다.
다섯 개의 다른 주제들이 음악적 논쟁의 무게를 유발시키는 동시에 만화경과도 같은 화려함을 머금으며 서로 재생산하고 통합하여 결과적으로 760마디에 달하는 엄청난 길이를 거치며 단일한 구조적 통일성을 획득해낸다. 중단되지 않는 음악적 진행은 ‘집시 스케일’이라고 불리는 하강 모티브에 의해 빛을 발한다. 여기에는 그 모습을 반복하여 나타내는 단3도의 주제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두고 위대한 리스트 스페셜리스트인 클라우디오 아라우는 진정으로 ‘메피스토펠레스적인 대목’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레고리안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는 ‘Grandioso 부분’에서 주제는 결국 노래와 같은 안단테 주제로 변화한다. 작곡가들은 이 작품을 거대한 구조와 전통적인 4악장 소나타 형식 사이에 놓고 오랜 논란을 벌여왔다. 예를 들자면 작품의 중간 부분쯤에서 등장하는 느린 부분은 다악장 작품에서의 느린악장, 혹은 대규모 소나타 악장에서 등장하는 서정적인 두 번째 주제로 간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바로 이 모호함이야말로 작품을 지탱하고 있는 형식적인 개념을 이루는 필수적인 부분인 것이다. 반대로 리스트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음악적 성격들을 담고 있는 모든 범위와 하나의 궁형 구조를 갖추고 있는 악장의 형식 양쪽 모두를 성공적으로 연결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럼으로써 청자로 하여금, 이를테면 셰익스피어 연극무대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끔 부추긴다.
Vladimir Horowitz plays Liszt's Piano Sonata in B minor (RCA 1977)
추천음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남긴 1930년대 모노럴 레코딩(EMI)은 현대적인 피아니즘의 출발점으로서 역사적인 의미가 높지만, 1970년대 라이브 레코딩(RCA)이야말로 악마적이면서도 최면술적인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명연이다. 이보다 기교적으로 완벽한 녹음은 더 많겠지만 이보다 더 극적이고 낭만적인 연주는 찾아보기 힘들다.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연주(Philips)는 리스트의 직계로서 가장 찬연한 아름다움을 머금은 리스트의 진정한 서정을 보여주고, 조르주 볼레의 연주(DECCA)는 낭만주의 피아니즘의 위대한 전통을 계승한 훌륭한 해석을 담고 있다. 에밀 길렐스의 연주(RCA) 또한 엄격한 구조와 풍부한 내용을 특유의 냉철함으로 파악한 아날로그 시대의 명연으로 그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