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는 반드시 극복될 수 있다 <월간 '건강과 생명' 칼럼>
살아가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쌓여져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염려일 것이다. 걱정 안 하고 살 수는 없을까. 건강 걱정, 돈 걱정, 자식 걱정, 인간관계 및 노후 걱정 그리고 이젠 실직, 자연재해, 핵문제까지 더 추가되었다. 염려(念慮)의 사전적 의미는 ‘목을 조르다’, ‘숨이 막히다’, ‘분열되다’라는 뜻으로 가장 은밀하게 침략해 오는 인생의 복병으로 삶을 질식시키고 파괴시키는 무서운 재앙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들 때, 처음 사람은 옷도 입지 않고 직장도 없지만 염려라는 것을 할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불순종하여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남으로서 이 모든 원래의 질서들이 바뀌게 된 것이다. 식물이나 짐승들은 걱정을 모르고 살아가는데, 왜 사람만은 사는 날에 비례하여 염려가 가중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염려에 대해 교훈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태복음 6:25-31절) 이 말씀은 염려 많은 세상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분명하고도 확실한 복음이다. 위클리프(John Wycliffe)는 이 염려하지 말라는 것을 “사는 것에 대하여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해석했다. 사실 사람들은 하루를 살아가는데 너무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염려하지 않으면서 하루를 평안하게 지내는 법은 없는가? 세상의 이치는 하나님의 질서와 자연의 순리를 따라 운행되어 지도록 되어 있다. 자연생태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지상에 존재하는 생물들은 각기 적응능력과 조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외딴 섬에 사슴을 방목하면서 맹수도 없어 너무 번식되면 어떻게 하나 하고 염려했더니 번식되다가 일정한 밀도 이상 증식되면 먹을 것이 넉넉한데도 질병에 걸려 죽거나 불임증에 걸리는 사슴이 많아져서 사슴집단의 크기가 자연적으로 조절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외딴 섬에 사슴이 너무 많아져서 섬이 바닷속으로 꺼질까 또 먹이쟁탈 문제로 사슴들의 전쟁을 염려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그렇게 염려되던 많은 일들이 실제로 닥치고 보면 별 것 아닌 일들이 너무나 많이 경험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일들에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염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문제들인 것이다. 노만 빈센트 필(Norman Vicent Peale)박사는 염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걱정하는 일들 중에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40%,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22%,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이 4%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염려, 걱정하는 96%는 실제로 안 일어난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불과 4%밖에 안 되는데 이는 염려, 걱정한다고 조금도 변화시킬 수가 없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개 우리가 염려, 걱정하는 것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무방한 것이다. 병의 70%가 심인성(心因性)에서 오듯이, 염려는 몸의 저항력과 항상성을 떨어뜨리고 모든 질병을 불러들인다. 대다수의 질병이 외부의 육체적 자극 때문이 아니라 무기력감, 좌절감, 불안, 염려, 공포, 패배감, 절망 등의 내적, 정서적 이유로 발생하는 것이다. 심리적으로는 더 큰 피해를 준다. 시야를 좁게 만들고 소심하고 무능력한 사람이 되게 한다. 결국 염려는 과거도 나쁜 추억으로 만들고 현재도 생각의 노예가 되어 아무 일도 못하게 만들어 미래도 전혀 기대할 것이 없도록 한다. 이렇듯 염려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한 평생 행복과 불행한 인생을 결정지을 운명의 여신인데도 사람들은 오늘도 습관적으로 걱정과 염려 속에서 기쁨과 감사가 있는 행복한 삶을 포기하고 있다. 세상에는 염려에 예외인 사람은 없다. 다만 사람마다 나름대로 지혜를 갖고 극복하고 있을 뿐이다. 인생은 선택이다. 걱정과 두려움 속에 인생을 소진할 것인지 비전을 갖고 개척할 것인지를 날마다 선택해야만 한다. 인생은 B(birth/태어남)로 시작해서 D(death/죽음)로 끝난다는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의 말대로, 모든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한 시도 멈추지 않고 죽음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B와 D사이에 C(choice/선택)가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그 선택에 따라 자신의 삶과 미래가 결정된다.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택들, 일상 속에서 선과 악의 선택, 또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선택 등은 평생 자신의 행불행의 조건들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첫째로 염려 대신에 일을 선택해야 한다. 톱밥에다 톱질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과거와 같이 이미 잘려져 나간 부분을 붙잡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과거에 묶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현재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염려는 옛 연인처럼 자동으로 찾아온다. 설령 지금 걱정되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해도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행동하면 염려는 자연히 사라질텐데, 환경을 탓하고 핑계만 대는 염려중독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염려의 쓴 열매를 따먹으면서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반면에 삶의 수고 자체가 행복인줄 알고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에게는 염려는 사라지고 웃음이 찾아온다. 행복한 사람은 이렇듯 염려 대신에 열심히 일 하는 사람이다. 사단은 미세한 틈만 있어도 이쑤시개로 그 틈을 끼워놓고 들어온다. 그들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오늘도 땀이 나도록 일하고 운동하고 봉사할 때 염려는 사라지고 행복은 미소 지으며 들어오는 법이다. 둘째는 내일보다는 오늘을 선택하여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유랑할 때, 매일 아침마다 하늘로부터 하루 분량의 만나를 받았다. 문자 그대로 일용할 약식만 제공 받았다. 남이 모르게 숨겨 놓아도 그 하루가 지나면 그냥 썩어버린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오늘 하루 이상 염려할 능력도 또 대처할 능력도 없는 존재이기에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내일 일을 미리 가불해서 염려하지 말아야할 이유는, 현재 우리의 염려는 미래에 가서도 대부분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비가 오기 전까지는 우산을 펴지 말라는 격언처럼 미리 염려하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므로,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참으로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하루라는 분량이 있다. 행복의 약은 하루에 한 알만 복용해야 한다. 내일 것까지 미리 먹으면 그것은 독이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과거에 묶여있거나 또 미래를 너무 강조하다보니 오늘을 희생시키는 경우가 많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Now and Here" “오늘 이 순간 여기에”를 늘 강조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한 시간은 오직 이 순간뿐이다. 내일과 어제는 우리의 특권도 아니고 허락한 영역도 아니다. 셋째는 염려 대신에 기도를 선택해야 한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잘 되도 걱정이요 안 되어도 걱정을 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염려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기에 모든 염려를 그에게 맡겨 버리라고 말한다. 맡긴다는 것은 그 염려를 더 이상 내 속에서 떨쳐 버리고, 내 마음에서 없어지게 하라는 의미다. 그것은 자식이 염려하지 않아도 부모가 대신하여 문제를 해결하듯이 성령께서 대신 권고하기에 그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염려는 환상일 뿐이다. 짙게 깔려 있는 안개라도 실제 압력기로 측정해보면 그 거대한 안개는 몇 잔의 물 밖에 안 된다는 말처럼 염려는 실상 아무 일도 아니지만 확장하면 이렇게 큰 문제가 야기되기에 더 이상 확장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분토와 같아서 아무리 고상한 사람일지라도 고작 생각한다는 것이 근심과 걱정이기에 기도하므로 염려가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신앙이 아무리 탁월한 사람일지라도 질병을 만나고 생의 큰 위기 앞에서 흔들릴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야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것은 척추병, 폐병, 직장암 등 온갖 질병으로 숱한 고통의 세월을 겪었던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 말처럼, 병들지 않고는 드릴 수 없는 기도가 있고, 들을 수 없는 말씀이 있고, 가까이 갈 수 없는 성소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 고통이 없이는 아마도 자신이 진정한 인간이 될 수조차 없었다는 그 이야기 속에서 많은 교훈을 얻게 된다. 그렇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바로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섭리이고 신호이다. 미래를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기에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염려하지 말고 자신과 미래를 맡겨야 한다.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는 것이다.
Magic Night / Mikis Theodora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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