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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저자(市場)에 가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수야 , 엄마가 올 때까지
빈 항아리와 뚜껑을 깨끗이 씻어서 뒤집어 놓은 후에 놀아라."
"응 , 엄마 .."
그렇게 일러놓고 엄마는 나갔다.
그런데 그만
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엄마가 저자에서 돌아와 보니
햇볕이 잘 드는 마루 한 켠에
반들반들 윤이 나도록 잘 씻은 항아리와 뚜껑이
뒤집어진 채 놓여 있었다.
"아니 .. 이거 왜 이렇게 했냐?"
"엄마가 뒤집어 놓으라고 해놓고 .."
"에그 , 내가 못살아 너 땜에 ..!"
"시키는대로 했는데 ..?"
마루에 놓인 항아리와 뚜껑이 하나같이
버선을 뒤집어 놓듯 ,
겉과 속이 반대가 되도록
거꾸로 뒤집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항아리 속의 물이 잘 빠지도록
엎어 놓으란 말을
속을 뒤집어 놓으라는 것으로 알고
아무 생각없이 그대로 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본성(本性)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동심(童心)의 세계는
생각도 무한(無限)히 자유롭고
무엇이 가능한 지 불가능한 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 아이처럼 무심하고 순진하게 행하면
그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무심(無心)의
어떤 힘을 깨우치게 하는 모습이다.
동심의 세계란 그처럼
순진무구(純眞無垢)한 것이다.
어릴 때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호기심 덩어리다.
위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50 여년 전에 있었던
나의 어렸을 때 모습이다.
믿거나 말거나 ..
"에이 .. 엄마는 늘
나만 갖고 그래 , 미오!"
대문 밖으로 나가며 훌쩍훌쩍 ..
그날밤 늦도록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깊어가는 가을밤 ,
아이의 눈에는
달빛이 내리는 언덕마다
반짝이는 별처럼 하얀 구절초가 피어 있었다.
꽃 향기에 달은 더 푸지게 밝았고
뒷산에서는 부엉이가 울었다.
부엉 ,
부엉 ..
그 후로는 한 번도
항아리를 뒤집어 놓지를 못했다.
무엇이 가능한 지 불가능한 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꾸준히
뒤집기를 해 보겠다고 끙끙거리다가
항아리 뿐 아니라
옹가지와 버지기를 수도 없이 많이 깼다.
지금도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가끔 독을 굴리며 씨름을 하다가는
퍽썩 , 퍽썩 ..
깨진 독을 치우느라
마누라 눈치 본 적이 여러 번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하고 말 것이다.
뒤집어 놓고 말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파트단지에서는
"독 깨는 늙은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쩌다가 정신이 돌아오면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
내가 정말 어바리(바보)인가 .." 하고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나는 독을 우그러뜨려서
고무신 뒤집듯이
반드시 거꾸로 뒤집어 놓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독을 굴리고 있다.
뒤집어 놓기 위해서다.
끙끙 ,
끄응 끙 ..
베란다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본다.
가을 강에 비가 온다.
지난 봄 ,
보슬보슬 내리던 4월의 보슬비가
오늘은
가랑가랑 내리는 11월의 가랑비가 되어
강변에 내리고 있다.
하얀 해오라기가
물안개 속으로 날고 있다.
구절초가 비에 젖는 길을
누군가 걸어오고 있는게 보인다.
아 ,
저기 ..
항아리를 뒤집던 그 아이가
빗속을 걸어온다.
나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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