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dagio cantabile - Vivace assai (08:35)
2. Andante (05:54)
3. Minuett e Trio. Allegro molto (04:08)
4. Fiinale: Allegro di molto (03:49)
1790년에 일어난 한 가지 사건으로 하이든은 교향곡 작곡가로서 마지막 대작들을 완성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1761년 이래 에스테르하지 궁정악장으로서 단원들을 이끌며 귀족들을 위한 음악을 끊임없이 작곡해왔던 하이든은
궁정악사 생활을 한 지 30년이 되어가던 1790년에 그가 오랫동안 모시던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갑작스런
죽음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이든과 가장 가까이 지냈으며 음악을 지극히 사랑했던 니콜라우스의 죽음은 하이든에게 슬픔을 안겨 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에게 뜻밖의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니콜라우스의 뒤를 이은 파울 안톤은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하이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하이든의
지위와 연금도 그대로 두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자유의 몸이 된 하이든은 때마침 자신을 찾아온 런던의 공연 기획자이자 바이올린 주자인 요한 페터 잘로몬
(Johann Peter Salolmon)의 새로운 제안에 솔깃했다. 잘로몬은 런던의 청중을 위해 새로운 교향곡을 작곡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이는 작곡가 하이든의 야망을 자극할 만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평생 소수의 귀족들의 취향에 얽매여 소수의 궁정악단이 연주하는 음악만을 작곡해왔던 하이든에게 대규모 청중을 위한 대작을 작곡할 기회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으리라.
이미 60세가 넘은 하이든에게, 더구나 평생의 대부분을에스테르하지 궁정에서 보냈던 하이든에게 런던으로의 긴 여정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지만, 하이든은 그를 기다리고 있을 런던의 청중을 위해 머나먼 런던 땅으로 향했다.
하이든은 12곡의 ‘런던 교향곡’ 발표를 위해 런던을 두 차례 방문해 12곡의 교향곡을 발표했는데, 그 중 교향곡 제94번 ‘놀람’ 은 1791년 1월부터 1792년 6~7월까지 계속된 하이든의 첫 번째 런던 체류기간 중 작곡된 작품이다.‘놀람’이라는 별명의 원인이 된 2악장의 큰 소리 덕분에 교향곡 제94번은 오늘날까지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정작
이 교향곡의 놀라움은 다른 악장에서 더 많이 발견되며, 연주 인원의 증가와 독특한 관현악법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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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이 평생의 대부분을 보냈던 에스테르하지 궁. 에스테르하지 가문은
예술 후원자를 많이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에스테르하지 궁정 시절 하이든이 이끌었던 오케스트라의 일반적인 연주 인원은 13~16명에 불과했지만, 1792년에
런던의 음악회에서 ‘놀람’ 교향곡을 비롯한 하이든의 런던 교향곡들이 첫 선을 보였을 때 오케스트라의 연주 인원은
40명으로 늘어났고, 1795년 공연의 연주 인원은 거의 60명에 육박해 오늘날 오케스트라 규모에 근접하고 있다.
작은 살롱에서 연주되는 소규모 실내악의 작은 소리에 익숙했던 당시 청중들이 60여 명의 음악가들이 만들어내는 웅장한 교향곡을 듣고 얼마나 열광했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놀람’ 교향곡에는 비록 타악기가 많이 편성되지는 않았지만, 보통의 18세기 고전주의 교향곡의 팀파니 섹션이 두 대의 ‘팀파노’(timpano, 팀파니의 단수형)로 구성된 것과는 달리 음 높이가 다른 세 대가 편성되어 있어 다른 교향곡에 비해 팀파니스트의 활약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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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로라우 출생.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며 18세기 후반의 빈 고전파를 대표 합니다.
100곡 이상의 교향곡, 70곡에 가까운 현악4중주곡 등으로 고전파 기악곡의 전형을 만들었으며 특히 제1악장에서
소나타형식을 완성한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만년에는 미사곡과 《천지창조(天地創造):Sch쉚fung》(1798) 《사계(四季):Die Jahreszeiten》
(1801) 등 오라토리오풍의 교회음악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오스트리아 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수레를 만드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5세 때 친척인 초등학교 교장이자 교회음악가인 프랑크라는 사람의 집에 가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740년 빈의 성 스테파노대성당의 소년합창대에 들어간 그는 당시의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총애를 받았으나 49년 변성기에 들어가자 합창대를 나와 그때부터 빈에서 자유롭기는 하였지만 불안정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활이 59년 까지 10년간이나 계속되고 그 동안의 자세한 경위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하는 한편, 어느 시기에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인 N.포르포라에게 작곡을 배우기도 하고 음악 애호가인 귀족 툰백작부인의 하프시코드 교사가 되기도 하였으며, 오스트리아의 귀족 퓌른베르크남작 집안의 실내음악가로 고용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또 스테파노대성당 등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가수로서 예배주악에 참가하기도 하였으며 밤에는 세레나데악단에
참여하여 빈거리로 나와 돈을 버는 일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고생을 하면서 음악과 더불어 살아간 그는 10년 후인 59년 마침내 보헤미아의 모르친백작 집안 궁정악장
(宮廷樂長)에 취임하였습니다.
보헤미아에 부임한 하이든은 그 곳에서 초기의 교향악과 관악합주인 디베르티멘토를 작곡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백작의 집안 재정상태가 핍박하여 악단이 해산되는 바람에 다시 실업자가 되어 빈으로 돌아왔고, 60년 11월
가발업자의 딸 마리아 안나 켈라와 결혼하였다.
61년 5월 1일 하이든은 헝가리의 귀족 에스테르하지후작 집안의 부악장(副樂長)에 취임하였습니다.
당시의 악장은 G.베르나였으나 그가 사망한 66년부터는 하이든이 명실상부한 그 곳 악장으로 승진하였습니다.
에스테르하지후작의 집에서는 하이든이 90년까지 거의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충실한 악장으로 근무 하였습니다.
그 동안에 많은 교향곡·현악4중주곡·오페라 등을 작곡하였는데 특히 교향곡과 현악4 중주곡 등 실내악·클라비어소나타 등 기악곡에 있어서는 고전파의 규범이 되는 형식을 창조하고, 81년에는 소나타형식의 전형으로 간주되는 6곡으로
된 《러시아4중주곡》을 완성하였습니다.
이것은 모차르트에게도 영향을 준 작품입니다.
그리고 80년대에는 파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6곡의 《파리교향곡》을 비롯하여 《토스토교향곡》(2곡)
《도니교향곡》(3곡) 등 명작을 잇달아 작곡하였습니다.
90년 9월 그가 오랜 세월을 모시던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후작이 사망하자 그는 명예악장이라는 칭호를 받음과 함께 그 직을 물러나 빈에서 살았습니다.
이 무렵 독일의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런던에서 오케스트라를 거느리고 성공을 거둔 J.D.잘로몬의 권유로 그는 영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91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런던에서 오케스트라시즌에 출연하였는데 그는 《잘로몬교향곡》(제1기, 6곡)을
작곡하여 크게 성공하고, 옥스퍼드대학에서 명예음악박사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런 성과에 크게 자극을 받은 하이든은 94년에서 이듬해에 걸쳐 다시 영국을 방문, 《잘로몬교향곡》(제2기, 6곡)을
작곡하였습니다.
만년의 하이든은 다시 에스테르하지 집안의 악장으로 되돌아갔으며 뛰어난 미사곡 6곡을 작곡하고 또 두 개의
오라토리오의 대작 《천지창조》와 《사계》를 작곡하였습니다.
하이든은 젊은 모차르트와 친교가 있었는데 첫번째 영국 체류 중이던 91년에 모차르트는 3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런던에서 독일로 돌아가던 92년, 본에 들렀던 하이든은 거기서 처음으로 젊은 베토벤을 만났으며 그 후 잠시 빈에서
그에게 음악을 가르쳤고 베토벤이 왕성한 작곡활동을 하게 될 무렵에는 은퇴하여 여생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 의 제2회 빈 공략의 포성을 들으면서 77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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