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2 Alla Hornpipe
No3 Minuet
No.5 Bourree
Water Music Suite, HWV348
Handel, Georg Fridrich (1684-1759 E.)
Philharmonia Baroquee Orchestra
Nicohlas McGegan : director
Handel, Georg Fridrich (1684-1759 E.)
의 수상음악
Water Music Suite, HWV348
오라트리오 '메시아'로 널리 알려진 헨델은 바하와 같은 시대에 나서 그 때까지의 음악의 모든 요소를 기반으로 하여 하나의 새로운 음악 세계로 비약시켰습니다.
바하의 음악이 이지적이며 대위법적이고 교회와 궁정을 중심한 경건한 음악이라 한다면 헨델의 음악은 감정적이며 멜로디를 바탕으로 하여 세속과 대중을 상대로 웅장하고 상쾌한 음악을 창조했습니다.
헨델은 참으로 백절불굴의 투지와 정력적이고 활동적이며 강하나 인정미가 넘치는 인간이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대중을 상대로 썼으며 극적이고, 웅대하고, 활달하여 따뜻한 인간미가 흐르는 것은 그 인격의 반영이라 할
것입니다.
그는 21세 때 이탈리아 음악을 꿈꾸면서 새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대망을 품고 로마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 신진 작곡가로 활약 하면서 건반악기의 연주자로서도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하노버 궁정 악장의 자리를 차지했고 1710년, 영국을 방문한 이래 영국에 머무르면서 앤 여왕의 비호를
받아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도가 그의 평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탈리아 악파인 보논치니 (1670-1747)와는 음악상의 적수였습니다.
이들의 경쟁과 헨델을 질투하는 음모 때문에 수차의 파산과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당했습니다.
아무튼 그는 죽을 때까지 영국에 살면서 오페라, 오라토리오 등 많은 작품을 썼으며 1726년에는 영국에 귀화했습니다.
한때 비운에 빠지기도 했던 그는 아일랜드 총독의 더블린 연주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곳에서 .필생의 대작인 '메시아'가 24일이란 단기간에 탈고되어 1742년 4월 12일, 더불린에서 초연하여 절찬을
받았습니다.
메시아의 초연 후 8년째인 그가 63세 되던 해에는 완전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생존시의 '메시아' 공연만 해도 34회나 되었다고 합니다.
헨델은 영국의 국가적인 음악가로서 존경을 받아 사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습니다.
그의 작품은 46곡의 오페라와 우수한 오라토리오를 비롯하여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쳄발로, 오르간 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음악은 명쾌하고 호탕하고 신선하여 생생한 리듬에 성악적입니다.
그는 가난한 음악가 구제회에 1000파운드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베토벤의 말과 같이 그는 공전의 대음악가였습니다.
Water Music Suite, HWV348
영국의 수도 런던의 테임스江은 옛날부터 런던 시민들에게 큰 혜택을 주어왔던 강입니다. 한때는 강물이 몹시 오염되어 물고기도 살지 않게 되었으나 전시민이 정화 운동을 편 결과 다시 옛날의 환경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테임스江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있는 광경을 보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헨델의 "수상음악"입니다.
이 "수상음악"은 지금부터 280여년 전 영국 왕실의 뱃놀이연회가 이 테임스강에서 개최되었을 때 연주되었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헨델은 바하와 동갑인 독일의 작곡가로 1710년 6월부터 하노버의 게오르그 선제후 (Georg, the Elector of Hanover) 의 악장의 지위를 맡고 있었는데 하노버에서는 장기(長技)인 오페라의 솜씨를 마음껏 발휘할 수가 없었으므로 취임하고
얼마 안되어 1년의 휴가를 얻어 영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대성공을 한 후 일단은 하노버로 돌아왔으나 15개월 후 다시 휴가를 얻어 재차 영국의 땅을 밟았습니다. 그때도 전번과 같이 대호평을 받아 국왕인 앤여왕(Queen Anne)의 총애를 받고 완전히 런던이 마음에 든 그는 휴가가
끝난 후에도 하노버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1714년 49세의 앤여왕이 급서하고 그가 이제까지 의리를 저버리는 일을 거듭해 왔던 하노버의 게오르그 선제후가 영국의 왕위를 물려받아 조지 1세가 되었습니다.
헨델은 신국왕의 노여움을 두려워하며 근신하고 있었는데 1717년 여름 테임스강에서 국왕의 뱃놀이 연회가 열려 그 때
친구인 킬만세기 남작(the Baron Kielmansegge)의 권고에 따라 신곡을 만들어 이것을 국왕이 탄 배 가까이에서
연주했습니다. 50명의 연주자들이 탄 배가 국왕의 유람선을 따라가며 테임스강변의 람베드(Lambeth)에서 첼시
(Chelsea)까지 왕복하는동안 약 한시간이 걸리는 전곡 연주를 세번이나 - 갈 때 두 번과 돌아올 때 한 번 - 반복해서
연주했다고 합니다.
국왕은 이 음악이 마음에 들었고 그 작곡자가 헨델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를 흔쾌히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앤여왕 이상으로 우대했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조지 1세가 하노버 선제후 시절 자기가 영국 왕위를 계승하게 될 것을 알고 헨델을 미리 런던으로 장기간 휴가를 보냈으며 헨델이 휴가기간이 지난 후에도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헨델이 어차피 독일에서나 영국에서나 자신을 위해 봉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와 같이 작곡의 유래 그 자체에는 약간 의아스러운 곳도 있으나, 영국 왕실의 뱃놀이는 1715년과 1717년, 1736년의
3회에 걸쳐서 개최되었으며 그 때 헨델이 작곡한 음악을 모은 것이 오늘날 "수상음악"으로 전해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곡은 전부 20곡 남짓의 소곡(小曲)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실외음악다운 낭랑한 울림의 음악으로 현악합주 이외에
혼이나 트럼펫같은 금관악기와 플루트, 오보에 등의 목관악기가 각각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있고 남성적인 강함과 차분한
여성적 정서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곡이 최초로 만들어졌을 때 헨델이 국왕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훌륭한 음악을 듣고서는 왕도 헨델을 용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곡은, 이전 영국의 지휘자인 하티(Harty)가 근대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한 악보에 의해서 친숙해져 왔으나 현재에는
3회의 뱃놀이에 작곡되었다고 되어 있는 3개의 모음곡으로 나누어 연주하는 것이 보통으로 되어 있습니다.
1. Allegro
2. Alla Honpipe
3. Minuet
4. Lentement
5. Bouree
헨델 // 수상음악 전곡모음 (Water Music Suite for orchestra)
' CLASSIC ' 카테고리의 다른 글
Beethoven Piano Trio No. 7 대공 (0) | 2013.06.21 |
---|---|
Brahms - piano Concerto No.1 in D major Op. 15" (0) | 2013.06.21 |
Grieg/ String Quartet No.2 in F major, EG.117 (0) | 2013.06.21 |
Haydn -Cello Concerto No 2 D major op 101 (0) | 2013.06.20 |
Beethoven -Violin Sonata No.5 in F Major Op.24 'Spring Sonata' 2nd Adagio (0) | 2013.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