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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Gabriel Urbain Fauré (포레) Sicilienne op. 78 (시칠리엔느 op. 78)

 

Sicilienne op. 78 (시칠리엔느 op. 78)

 

 

포레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시칠리안'은 본래 몰리에르의 극음악 '평민귀족'의 일부로 1893년에 작곡된 것이다.

그리고 후에 작곡된 극음악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op. 80)에서도 다시 이 곡이 사용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시칠리안'의 독특한 부점리듬이 효과적으로 씌여지고 있으며, 선법적인 선율의 움직임을 통해서 섬세한

변화가 그려진다.

 

이 곡은 포레의 곡중에서 가장 애호 받는 곡의 하나로서 여러 가지 악기로 편곡되어 연주되고 있다. 17~18세기경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에서 생겨난 무곡.

대개 중간 속도의 8분의 12, 8분의 6박자로 되어 있으며 펼친화음[分散和音]으로 반주된다.

선율은 거의가 점리듬으로 연주되는 서정적인 선율이고 성격은 다르지만 파스토랄과 비슷하다.

 

코렐리·바흐 등의 소나타에도 느린 악장으로 쓰이고, 또 오페라나 칸타타 등에서도 아름다운 전원풍경 같은 데서 연주되고 있다. 알라 시칠리아나(alla ciciliana)라는 말은 ‘시칠리아노 양식’이라는 뜻이다.

 

 


Theodora Geraets, Violin

Erika Waardenburg, Harp

 

장한나, Cello

 

김상진, Viola

 

플룻 버젼

 

 

 

 

 

 

 

 

 

 

 

 

 

 

 

 

"포레"는 프랑스의 작곡가로 노틀담사원을 비롯한 여러 교회에서 오르간 주자로 일하였고 말년에는 파리음악원 교수를 거쳐 음악원장으로 재임한 작곡가다.
그의 작품은 우아하고 독창적인 아름다움이 넘쳐 그의 후배인 드뷔시, 라벨 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시칠리엔느"는 극의 무대음악으로 작곡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 들어있는 곡인데 4곡으로 된 교향적 모음곡 가운데 세 번째 곡이다.

시칠리엔느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민요 가락의 목가적 형태를 딴 이름으로 시칠리아나와 같은 이름이다. 이 곡에서 포레는 목가적 내음을 이용하여 전아하고도 차원 높은 여운을 표현하는데 성공하여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나가와 또다른 독창성을 가진 포레의 시칠리아나로 승화시키고 있다.

 

어려서부터 음악재능을 인정받아 9세 때 파리 니데르메이에르 음악학교에 입학한 포레는 여기서 중세 르네상스 종교음악과 J.S.바흐. F.J.하이든의 작품을 공부하고, 생상의 제자가 되어 베를리오즈, 리스트, 바그너 등의 음악을 배웠다.

재학 중이던 1863년 첫 작품인 피아노를 위한 《3개의 무언가》를 발표하였으며, 졸업 후 파리 마들렌교회의 오르가니스트, 파리음악원 작곡법 교수로 활동하였다. 1870~71년 프랑스, 프로이센전쟁에 종군한 뒤 1871년 당시 창립된 프랑스 국민음악협회에 참가하였다.

1905년부터 청력상실과 건강쇠약으로 퇴직할 때까지 파리음악원 원장을 지냈으며, 1909년 아카데미회원이 되었다. 라벨, G.에네스코 등을 가르쳤으며 퇴직 후에도 창작활동을 계속하였다. 근대 프랑스 서정파의 거장이며 나아가서는 근대 프랑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적인 천품이 나타났다. 우아한 기품을 지닌 그는 고전의 전통적인 형식과 거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의 기교는 최고의 프랑스 음악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자유롭고 신선한 음의 취급과 섬세한 시적 감정에 차있다고 하겠다.

세련되고 심오하며 감수성 넘치는 작풍으로 성악, 피아노곡, 실내악곡, 관현악곡 등 거의 모든 장르를 포괄하였는데, 전통적인 음악형식을 바탕으로 대담하고 창의적인 표현양식을 더하였다. 드뷔시, 라벨로 이어지는 근대프랑스음악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한 대표적 음악가였다. 그의 내성적인 기질은 실내악, 피아노, 그리고 특히 오페라를 그의 예술의 기본 바탕으로 하였는데 오페라는 프랑스 말과 떠날 수 없으리만큼 되어 있다. 그는 전통을 존중하였으며 그의 주의 깊은 대담성은 드뷔시처럼 혁명적은 아니라 해도, 초기의 로맨티시즘을 제외하고는 그 수법을 순화하고 스타일을 세련시킨 그의 독창성과 노력은 놀랄 만gk다.

낭만파의 시대로부터 근대의 길을 개척한 중요한 인물이며, 근대 프람스 음악계의 대 작곡가이며 교육가인 포레가 차지한 비중은 크다고 하겠다. 그는 드뷔시보다 20년 먼저 나서 근대 프람스 음악의 기초를 세운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그의 세련된 미는 순수한 프랑스 향취를 발하고 있으며 대담하고 화성적인 감각에는 지금까지 맛볼 수 없던 새로운 세계를 그렸다. 그는 저명한 오르가니스트였으며 교육자로서 마스네의 뒤를 이어 파리 음악원의 교수가 되었다. 그의 문하생에는 라벨, 에네스코, 슈미트, 블랑제 등 저명한 작곡가들이 있다. 그를 가리켜 대기 만성의 작곡가라고 하며 걸작으로 알려진 실내악 작품들은 70세 이후의 소산이라고 한다.

대표작품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자장가》,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발라드》, 관현악 모음곡 《마스크와 베르가마스크》, 오페라 《프로메테우스》, 《페넬로페》, 《꿈꾼 뒤에》, 《이스파한의 장미》와 100곡이 넘는 작품이 있으며 성악곡《진혼곡》과 야상곡, 즉흥곡 등 다양한 작품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의 실내악과 오페라은 브람스 이후 그만한 공적을 남긴 작곡가가 드물다. 그는 독자적인 선율과 화성적인 감각으로 자신의 개성적인 스타일에 알맞은 작품을 써 낸 작곡가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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