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Mephisto Waltz for piano No. 1, S. 514 (11:05)
Sviatoslav Richter, Piano (1915~1997, Russia)
Mephisto Waltz for piano No. 1, S. 514 in A major
Daniil Trifonov, Piano
이 작품은 "시골 선술집에서의 춤 (Der Tanz in der Dorfschenke)"이라는 명칭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작품으로 본래는 오케스트라용의 악곡으로서 1860년에 쓴 레나우의 파우스트에 의한 2개의 삽화 중에서 자신이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한 것이다.
메피스토가 켜는 바이올린 음에 이끌려 그 곳에서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져버렸다고 하는 이야기를 음악으로 나타냈다.
리스트가 1883년에 작곡한 메피스토 왈츠는 본래 오케스트라용의 악곡으로서 1860년에 쓴 레나우의
파우스트에 의한 2개의 삽화 중에서 제 2곡을 리스트 자신이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한 작품이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 펠레스의 안내를 받아 마을 술집에 들어가자 거기에 모인 농민들이 소박하고
흥겨운 춤을 추고 즐기는데 파우스트도 참여하고 싶지만 참고 있을 때 메피스토 펠레스가 마을 사람의 손에서
바이올린을 빼앗아 악마적인 춤곡을 강렬한 트릴로 연주한다.
통상적으로 연주되는 첫 번째 형태에서는 댄스 음악이
나오며 짧고 격렬한 클라이막스로 나아가는데 다소 음울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에서 급반전하는 두 번째 형태가
극적인 요소에서는 더욱 효과적이다.
Mephisto Waltz for Piano No.2, S.111 (S515)
리스트 / 메피스토 왈츠 2번
Franz Liszt 1811∼1886
Kurt Masur, Cond / Gewandhausorchester Leipzig
Mephisto Waltz for Piano No.2, S.515
Leslie Howard, Piano
메피스토 왈츠(Mephisto Waltz)는 같은 제목으로 된 4곡이 있으며 '메피스토펠레스'를 줄여서 따왔다.
제1곡은 〈레나우의 파우스트에서 발췌한 2개의 에피소드〉(1800~01)의 2번째 곡으로 관현악 편성으로 되어 있고, 제2곡은 앞의 곡을 피아노 독주와 피아노 듀엣으로 편곡한 것으로 제 2곡이 마을술집의 춤이다.
제3곡은 피아노 곡으로 작곡되었고(1883), 이것을 뒤에 리제나우어가 관현악곡으로 편곡했다. 제4곡은 피아노 곡으로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다.
1860년 작품. 괴테의 Faust에서 소재를 얻은 것이 아니고, 시인 <니콜라스 레나우>의 중에서 <마을에서의 춤>에서 힌트를 얻은 곡이다.
리스트의 작품 중에는 피아노곡으로 된 2개의 “메리스토 왈츠”와 2곡의 관현악곡으로 된 “메스스토 왈츠”가 있는데
그만큼 리스트는 “메리스토 펠레스”에 큰 흥미를 느낀 것이다.
메피스토라는 이름의 유래는 독일의 파우스트 전설과 이 전설에 등장하는 악마의 이름인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 악마는 주로 인간 '파우스트'에 의해 많이 알려졌는데 그 유례는 이렇다.
인간계의 유능한 박사이자 의사로 활동하는 인간 '파우스트'가 어느 날 죽음의 세계를 정복하고자 신의 영역인 '부활'에 손을 댔다.
악마이다.그는 부활에 대한 모든 지식과 물품들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영혼계약 [어느 기간동안 도와줄 것을 명하고 그 기간이 끝나면 그 육체와 영혼을 가져가는 것]을 맺는다.
파우스트는 결국 부활 실험에 실패하였고 계약기간이 끝나감을 느끼자 죽음에 대한 공포심으로 가득 찬 눈빛을 하고
메피스토펠레스를 바라본다.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를 불쌍히 여겼으나 계약을 어길 수 없어 끝내 그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고 그의 영혼을 끄집어내어 결국 지옥의 세계로 돌아간다.
[숨겨진 이야기로는 그가 지옥으로 돌아가던 중 천사들에게 걸려 메피스토의 영혼을 뺏기는 어리숙한 면을 가진 악마였다고도 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유쾌한 악마로 하늘전쟁에서 얼떨결에 떨어진 약간 바보같지만 순수한 악마이며 그는 천사들과 장난을 치고 또한 놀이와 내기도 하여 천사들과도 다정함을 잃지 않는 친근한 악마이기도 하다.
또한 천사들과 이야기 도중 시치미를 뚝 떼고 정해진 내기에서 이겨 천사들에게 구박도 받지만 끝내 그의 악동같은 표정으로 넘겨버리고는 신과도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는 등 상당히 귀여운(?)
헝가리 피아니스트·작곡가. 라이딩 출생. 남독일 출신인 부친 A. 리스트는 헝가리 명문귀족인
에스테르하지가(家)의 토지관리인으로서 첼로·피아노를 연주하고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던 음악애호가였다.
7세 때 부친에게 피아노를 배웠는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8세 때부터 공개연주회를 가져 신동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1820년 프레스부르크(브라티슬라바)에서 가진 연주회는 큰 성공을 거두어 몇 명의 귀족들로부터
6년간 연 600굴덴의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다음해에는 가족과 함께 빈으로 옮겨 K. 체르니에게 피아노를, A. 살리에리에게 작곡과 음악이론을 배웠다.
그의 재능을 간파한 체르니는 무보수로 가르쳤을 뿐 아니라 악보를 주고 생활도 원조했다.
22년 빈 음악계에 데뷔하여 주목을 받았으며 다음해 4월의 연주회에서는 베토벤의 축복을 받았다.
9월 빈을 떠나 뮌헨 등지에서 연주회를 가지면서 파리에 도착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지 못하고 F. 파에르에게 작곡을, A. 라이하에게 음악이론을 배웠다.
24년 파리·런던 등지에서 독주회를 가져 대성공을 거두었고 《사랑의 성(Don Sanche,
1824∼25)》으로 작곡가로서도 인정받았다.
16세 되던 해 부친을 잃고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으므로 연주회 외에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그 중 피아노 제자인 프랑스 고관(高官)의 딸 카롤린과 깊은 사랑에 빠졌지만, 카롤린의 부친으로
인하여 헤어진 뒤 실의에 빠져 연주활동도 중단하고 문학·종교서적에 심취하였다.
이것이 뒤에 작곡한 교향시의 원천이 된 것으로 보인다.
30년의 7월혁명과 작곡가 베를리오즈·쇼팽, 시인 V. 위고·하이네·A.M.L. 라마르틴을 비롯한
문인·화가들과의 교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31년에는 바이올린의 명인 파가니니의 뛰어난 연주에
충격을 받고 <파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기로 결심했다.
리스트가 새롭게 인기를 회복하여 파리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을 때 작가 G. 상드의 소개로 다구백작부인 마리를 알
게 되었다.
35년 백작부인과 제네바에서 도피생활에 들어갔다. 리스트는 제네바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피아노곡집 《여행자의 앨범(1835∼36)》 《반음계적 대갈롭(1838)》
《파가니니에 의한 초절기교(超絶技巧) 연습곡(1838)》 등을 작곡했다.
39년까지 계속된 백작부인과의 생활에서 3명의 자녀를 얻었는데 둘째 딸 코지마는 뒤에 바그너의 아내가 되었다.
39년 빈에서의 연주여행이 대성공을 거두어 부다페스트에서는 개선장군과 같은 환영을 받았으며,
이후 유럽 각지를 돌며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떨쳤다.
유명한 《헝가리 광시곡(1846∼85)》은 이 시기에 작곡을 시작했다. 47년 키예프에서 가진 자선연주회를
계기로 비트겐슈타인후작부인과 연애에 빠져 바이마르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연주보다 창작에 힘을 쏟으라는 후작부인의 권유에 따라
작곡 및 궁정악단 지휘자로서의 <바이마르시대>가 열렸다.
피아노곡집 《순례의 해-제 1 ·제 2 년(1837∼54)》 《초절기교연습곡집(1851)》,
교향시 《전주곡(Les Pr ludes, 1848)》 《타소, 비탄과 승리(1849)》 《죽음의 무도(1849)》
《피아노협주곡 제 2 번 A장조(1839)》 《피아노협주곡 제 1 번 E 장조(1849)》 《단테교향곡(1855∼56)》
《파우스트교향곡(1854∼57)》 등 대표작이 이 시기에 완성되었고,
지휘자로서 자신의 작품은 물론 바그너의 초기 오페라와 슈베르트·슈만 등의 작품을 과감히 무대에 올려 연주했다.
또 H.G.F. 뷜로·C. 타우지히를 비롯한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곤경에 빠진 바그너와 베를리오즈를 지원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바이마르는 독일 예술 중심지의 하나가 되었다. 61년 후작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로마로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후작부인과 이별하였다.
그 후 리스트는 종교음악에 열중하여 오라토리오 《성 엘리자베스의 전설(1857∼62)》 《그리스도(1862∼67)》,
피아노곡 《2개의 전설(1863)》 등을 작곡했다. 한때 수도원에 들어가 생활했으나 69년 바이마르로 돌아가
로마·부다페스트 등지에서 피아노곡 《먹구름(1881)》 《무조소곡(無調小曲, 1885)》 등을 작곡했다.
86년 딸 코지마를 만나고 또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듣기 위해 바이로이트로 갔다가 급성폐렴으로 세상
을 떠났다.
리스트는 피아니스트로서 피아노연주의 기교를 확대시켰고 많은 선배 작곡가들과 같은 시대인들의 작품을
피아노연주용으로 편곡했다. 작곡가로서는 수많은 피아노곡 외에 표제음악(標題音樂)으로서 교향시를 완성시켰고,
만년에는 20세기 음악을 예고하는 무조의 작품을 썼다. 형식·화성·관현악법 등에서도 대담한 수법을 도입해
문학성과 낭만주의 및 웅대한 환상으로 음악의 여러 분야를 혁신했다고 평가된다.
지휘자·교육자로서도 정력적인 활동을 전개, 많은 신작과 묻혀 있던 작품을 발굴하고 젊은 음악가를 배출했다.
음악적 재능을 가졌던 아버지에게서 6살 때부터 피아노 지도를 받음.
빠른 학습진도로 이미 8살 때부터 연주회를 가짐. 바이마르의 훔멜에게서 피아노지도를 받으려 했으나
실패(비싼 교습비 요구 때문). 1822년 비엔나에서 체르니의 제자가 됨. 동시에 살리에리로부터 이론수업을 받음.
비엔나와 부다페스트에서의 성공적인 피아노연주회. 1823년 파리로 이주.
음악원에 입학하고자 했으나 케루비니에 의해 거절(어린 천재들에 대한 케루비니의 반감 때문).
파에르(Paer)와 라이카에게서 개인적으로 화성학 수업 받음.
프랑스의 여러 지방과 런던에서의 성공적인 연주회. 롯시니, 벨리니, 마이어베어, 쇼팽, 베를리오즈, 파가니니 등에
매료됨. 특히 베를리오즈와 파가니니의 작품들을 피아노로 옮기면서 그는 화려한 양식에서 장인적 양식으로 넘어감.
다굴 백작부인과 만남(그녀를 통해 3명의 자녀를 얻음, 그 중 둘째는 뷜로와 바그너의 부인이었던 코지마,
1838/39년에 부분적으로, 1866년에 완전히 관계 단절).
1838년부터 유럽 전역에서 연주회 (헝가리 1840, 베를린 1841/42, 쾨닉스부르크 1842).
1847년 키에프에서 영주부인인 카롤리느 폰 자인 비트겐슈타인을 만나 연주가 생활 청산.
1848-59년 바이마르에서 궁정악장 역임. 이 시기에 그의 교향시들과 중요한 피아노 작품들이 작곡됨.
또한 동시대인들(슈만, 베를리오즈, 바그너)의 작품들이 그에 의해 무대에 올려짐. 1841년 처음 만난
바그너와는 지속적으로 우정을 지속(1859-72년에는 바그너가 코지마와 결혼함으로 인해 관계가 멀어짐).
바이마르 시기에 수많은 제자들과 추종자들에 의해 신독일악파가 형성되었고, 전독일 음악협회가 구성되었으며,
브렌들 주도하에 신음악잡지(NZfM)가 발행됨. 반면에 힐러, 슈만 부부, 요아힘, 브람스 등과는 사이가 멀어짐.
카롤리느와의 정식 결혼을 위해 그녀를 뒤따라 1861년에 로마로 이주(교황 피우스 9세의 반대로 결혼 무산).
1865년에 저급 사제직을 받음. 그 후 치칠리아주의와 그레고리오성가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은 종교적,
예전적 작품들을 다수 작곡(Missa choralis 1865). 1875년 부다페스트 음악아카데미의 학장. 그는 생애 말년에 바이마르, 로마, 부다페스트를 옮겨다니며 생활. 1886년 바이로이트에서 축제기간 중 사망.
작곡가로서의 위치와 다르게, 리스트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위치는 역사에서 한번도 부인되거나 교정되지 않았다.
그의 피아노 선생으로서의 위치 또한 확고하여 약 400명 이상의 제자들을 길러냈으며,
형식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교습법으로 유명했다. 그의 피아노 작곡기법 역시 연주기술의 난이도 등에서
당시의 다른 작곡가들(예, 쇼팽, 탈베르크)을 능가하였다.
그는 선율성을 위해서 테너음역을 선호하였고, 그만의 독특한 연주음형, 장식, 카덴짜 등을 작품에 이용하였다.
또한 그는 당시의 변주기술에서 출발하여, 고전적 소나타기법을 많이 활용하였고 바그너의 지도동기기법과도
유사한, 그러면서도 매우 독특한 '테마변형기법'을 발전시켰다.
이 기법은 바이마르 시기의 작품들에서 집중적으로 쓰여진다.
몇개를 제외하고 그의 오케스트라작품들은 모두 프로그램음악이다.
여기에서 음악과 프로그램의 관계는 매우 다양하다. 즉, 「프렐류드」에서처럼 매우 느슨하기도 하고,
「이상들」에서처럼 프로그램과 음악을 단락별로 일치시킬 수 있을 정도로 밀접하기도 하다.
프로그램이 두 부분으로 나뉠 경우 음악은 대조와 긴장고조의 일반적인 형식원리를 따른다.
곡의 마지막에는 리스트 특유의 절정이 이루어진다.
리스트에 의해 주로 쓰여진 장르는 피아노음악과 교향시이다.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파우스트심포니」와 「헝가리 라프소디」를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교회음악과 오르간음악, 그리고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가곡들이 있다.
' CLASSIC ' 카테고리의 다른 글
Mahler: Symphony No. 8 / Bernstein ·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0) | 2013.07.10 |
---|---|
Mahler -Symphony No.10 in F# major - Unfinished (0) | 2013.07.10 |
Liszt Consolation No.3 in D Flat major (0) | 2013.07.10 |
Rossini - Overture to Guillaume Tell (0) | 2013.07.10 |
Rossini- Overture from the "Barber of Seville외 (0) | 2013.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