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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읽는 명상록

서양철학개론

서양철학 개론

 

방통통신대교재. 철학개론(서울대학교출판부), 1983.


 

원저자: 서울대 교수진.


 

*****서울대출판부의 이 책은 오래전에 출판된 것으로 지금은 절판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간추린 내용은 현대철학 부분이 빠져있다는 점, 유럽철학적 시각에서 볼 때 보다 치밀하지 않은 점이

 

 단점이긴 하지만 개론서로 가치가 인정되므로 교재로 쓰기 위해 워드작업을 하였음을 밝힙니다.*****

 

철학의 정의: Philos(사랑한다) +  Sophia(지혜) = 지혜사랑, 진리사랑

Socrates: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그는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보다 기존 견해를 의심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이자 책임이라고 함.

 

철학의 세 분야: 인식론, 존재론, 가치론

진리의 세 가지 기준: 일치설, 정합설, 실용주의

 

문제: 철학의 정의는 간략히 하면 진리사랑이다. 여기서 진리라는 말과 바꾸어 쓰기에 적합하지 않은 말은?1)

원리

운명

이론

규칙

법칙

 

문제: 철학이 진리사랑 곧 지혜사랑이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음 중 지적인 사람이 아닌 경우는?2)

미영: 한국의 묘지가 부족하지만 내가 혼자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닐 것 같아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전통 풍습대로 양지바른 곳에 묻어드렸다.

철이: 한국과 일본의 청소년들 사이에 왕따(이지메)가 사라지지 않는 원인을 탐구해 보고 사회풍토가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영길: 철이의 생각을 이어서, 민주적인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 시민과 학생이 주인이 되는 것을

 

 민주적이라고 판단했다.

 

즉 평범한 시민과 학생의 생각이 자유롭게 표현되어 보다 나은 견해가 채택되어 정책으로 이어지는 것을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영민: 왕따는 다양한 개성과 사고방식이 허용되는 곳에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숙희: 한국에서 콩나물에 농약을 치는 악습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법적인 처벌이 약한 점, 돈이면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 과외비 등 사교육비가 비싼 데 그것을 벌어야 한다는 이기적 자녀사랑, 내가 선한 일을 하여도 주변에서

 

농약을 치는데 안칠 수 없다는 체념 등에서 비롯되었다고 느꼈다.

 

종교는 신앙, 헌신, 믿음이지만 철학은 의심하는 것.

철학의 도구는 의심하는 것으로, 그것은 다시 분석, 비교 및 가치평가를 하는 것.

 

문제: 철학은 왜?냐고 물어가면서 현재의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아가는 지적 모험이며 탐색이다.

 

지적인 사람은 아폴론적인 인물이라고 한다.

 

 아폴로(Apollo: 태양신, 그외에도 빛 의학, 음악, 시, 젊음, 남성미를 상징하는 그리이스‐로마의 신)는 빛,

 

즉 태양이 무지의 어둠을 물리친다는 것이다. 디오니소스(Dionysus. 그리이스의 술의 신, 로마의 Bacchus에 해당함)적인

 

 인물은 술 즉, 긴장을 풀고 정열에 몰두하는 정서적인 인간이다.

 

 다음 중 지적인 인물이라고 보기 어려운 사람은?3)

  아인슈타인

  뉴우튼

  노벨

  백남준, 조수미, 대중가요 가수 H.O.T

  이퇴계 (이황), 이율곡(이이)

 

문제: 철학이 원인탐구를 통해, 즉 원인을 알아내어 우리의 지적인 호기심을 채우는 진리사랑이라면 그것을 왜 하는가?

 

 현실적인 이유는 무엇일까?4)

주어진 운명을 순응하기 위해

문제의 명확한 인식, 이해하여 실수와 잘못을 피하고, 보다 교양있는 삶을 위해

철학을 하면 물질적으로 부유해지므로

철학은 특정의 사람들만 하게 되어 있는데, 그 특별한 사람의 부류에 나도 들어가려고

시간이 많이 남아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왜 철학을 하는가?

보다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문제를 명확히 하고, 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하여.

우리의 삶에 새로운 의미나 방향을 구하기 위하여.

 

문제: 철학은 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철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왜 철학이 필요할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진술은?5)

편견에서 자유로와져서 보다 잘못을 줄이기 위해.

문제를 명확히 하고, 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하여.

종교에 의지한 결과 한계가 있으므로.

철학하는 것이 그 자체로 고상한 취미일 뿐만 아니라 나의 삶에 새로운 의미나 방향을 주므로.

문제의 원인을 좀더 철저히 이해하기 위해

 

문제: 다음 중 철학의 특징은 무엇인가?6)

신도들을 거느리는 것이다.

회의 즉 의심함으로써 모순을 제거하여 참다운 진리에 접근하는 것이다.

종교적 신념을 전파하는 것이다.

무조건 믿는 것이다.

종교적 신념간의 차이를 규명하는 것이다.

 

문제:철학이 회의를 중요한 방법으로 채택한다. 회의에 대해 가장 바르게 설명한 것은?7)

일단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친구니까.

일가친척, 식구가 하는 이야기를 조건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반성없이 받아들여온 현실에 대한 지식을 철저히 자기반성을 통해 부정하여 진리에 도달하는 것.

권위있는 사람 즉, 부모님, 시장, 국회의원, 대통령 등의 이야기는 권력있으니까 무조건 믿는다.

 

Ⅰ. 고대 및 중세철학

철학개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79, p.11

서양철학의 발생: 그리이스‐철학이 애지(愛知) 자체를 본성으로 하는 학으로서, 인습이나 전통의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의 정신이 그 바탕을 요구되는 바, 그리이스가 그 배경으로 갖추어져 있었다.

 

초기의 자연관: 물활론(物活論)‐ 살아있는 다양한 존재로서의 관점에서 자연을 보았다.

 

원자론(原子論)과 대비되는 것.

 

아테네의 인간관: 자연은 철학의 관심주제 밖으로 밀려나, 인간을 그 주제로 삼았다.

 

인간은 폴리스의 일원으로 간주되어으며 이 폴리스를 떠날 수 없는 운명을 지녔다고 봄.

 

헬레니즘 시대의 인간관: 폴리스의 붕괴에 따라 절대자를 그리는 종교적 갈망이 팽배해짐.

 

중세의 인간관: 하나님의 품으로 인간이 옮겨졌다. 즉 그리이스 시대의 폴리스의 품에서, 헬레니즘 및 로마시대에 절대자의 품으로 옮긴 후의 일이다.

 

르네상스의 인간관: 하나님의 품에서 벗어나 비로소 서양인이 말하는 하나의 成人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아테네 시대 이전의 哲學思想

생성문제의 대두

이오니아 학파의 철학사상

탈레스(Thales, B.C. 624‐548)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적인 방식에서 세계 생성의 근원을 찾으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났다.

생성의 영원한 실체를 찾고자 하여 근본원질은 [물]에서 찾았다.

물‐영양공급, 변화성, 유동성 등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

그러나 탈레스는 아직 물활론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함

‐변화, 생성의 운동원인이 그렇게 따로 있다고 보지 않고, 만물이 생명과 영혼을 가지고 스스로 운동, 생성한다고 봄.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B.C.610‐545)

처음으로 만물의 근원이 되는 실체를 원질(archē)이라는 말로 부름.

무한정자: 만물의 원천은 양이나 질적으로 어떤 한정된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하여, 무한정자(to aperion)이라고 함.

 

 그도 역시 물활론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여기에 더운 것과 찬 것으로 분리됨으로써 만물이 생성한다고 봄.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B.C.585‐528)

스승인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정자가 양적, 질적 한정이 없는 어떤 공간적인 것이었다.

 

 아낙시메네스는 그 원질에다 직관성을 부여하여 [공기]를 원질로 삼음.

 

이 역시 원질에다 영원한 운동을 인정함으로써 물활론적 입장을 취했다.

이 세사람을 보통 밀레토스 학파라고도 부름.

 

헤라클레이토스(Herakletos, B.C.544‐484)

만물의 생성변화를 강조하였다.

 

 [만물은 흐른다]라는 의미를 그는 단적으로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말로 표현한다.

 

 즉 만물유전설(萬物流轉說)이 그것이다.

 

그가 말하는 원질: 불

 

피타고라스의 철학사상

Pythagoras, B.C. 582‐500

그의 종교적 교단의 내용: 영혼의 윤회전생(輪廻轉生)이었다.

 

 인간의 영혼은 죄를 범한 벌로서 육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고, 육체가 죽으면 영혼은 다시 아무 육체에나

 

 전생한다고 믿음.

 

그래서 영혼정화(Catharsis)에 대한 종교적 관심을 가짐.

 

그는 운동경기장을 예로 들면서 영혼을 셋으로 나누는 데, 운동선수는 명예를, 오징어장수는 이익을, 관객은 보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했다.

 

운동경기장을 사회로 확대하면 명예를 추구하는 영혼, 이익(물질)을 추구하는 영혼, 지적인 즐거움 즉 학문하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영혼들(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플라톤의 영혼3분설의 연원이 됨. 그에 의하면 운동장의 관객이 곧 애지자(愛知者)이며 학문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 애지자만이 가장 효과적으로 윤회의 괴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조화 및 형상의 원리로서의 수/

‐영혼정화의 수단으로서 학문을 중요시 함

‐학문적 탐구는 음악에서 출발하여 수학 및 논리적 철학으로 진전.

‐음악에서의 조화의 원리가 악기의 현의 길이의 수적 비례관계(比例關係)에 있음에 착안하여 수에 관심을 갖게 됨.

 

삼각형수, 정방형수, 장방형수 등.

 

근본원질로서의 수

‐원질로서의 수: 수를 만물의 요소로 보고 우주를 수로 된 조화있는 통일체로 보게 됨.

‐수로 된 우주는, 무한정자와 한정자에 의하여 생성되었다고 보았다.

 

 즉 최초에는 한정없는 공허가 있었으며 한정자인 一者가 생겨서 주위의 무한정자를 한정함으로써

 

하나하나의 점으로 수가 생기고, 이 실체적인 수가 모여서 우주를 형성하였다고 봄.

 

The elements of number, and thus of the world, were the even, representing the unlimited,

 

 and the odd, representing limit.

 

 A table of ten pairs of basic opposites within the world was drawn up, in which odd, male, straight,

 

 good, at rest, etc., came under “limit’, their contraries under “unlimited”….

 

The Pythagorean cosmogony may have developed a little later: an initial unit “drew in” the unlimited,

 

 in the form of the void, and somehow divided into other units separated by the unlimited.

 

These unit‐point‐atoms then grew into lines, planes and solids. At the center of the universe lies fire:

 

 the stars, of which the earth is one, each produce a sound according to the speed of their revolution,

 

and these make up a “harmony of the spheres” inaudible by men.

 

(J.O.Urmson & Jonathan Ree ed., Western Philosophy and Philosophers, 1995, p.269)


 

 

존재문제의 대두

1.2.1. 크세노파네스의 철학사상(p.18)

우국철인으로서 그는 25세에 조국 이오니아가 페르시아에게 정복당하자 유랑하면서 시를 읊음.

‐도덕적 퇴폐와 의인적 다신관을 비판하면서 유일신관을 제시함.

‐다신관은 신의 묘사가 인간과 같이 이뤄지면서(대표적으로 Homeros, Hesiodos) 타락한 모습을 상징으로 그리게 됨.

‐그는 [신은 전체로서 보고, 전체로서 생각하고, 전체로서 들으며, 움직이지 않고 항상 동일한 장소에 머물러 있다.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완전한 존재이므로, 애쓰지 않고서도 다만 그의 마음의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하였다.

‐그의 유일신(唯一神)은 세계전체다.

 

즉 세계를 신자체로 본 것으로,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신을 이 세상을 초월하는

 

조냊로 본 것과 대조적이다.

 

그가 엘레아에 정착하였다는 점도 감안하여 그는 엘레아 학파의 선구로 보아도 무방.

 

1.2.2. 엘레아 학파의 철학사상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540‐470)

전통적으로 파르메니데스는 생성(生成)과 변화(變化)의 사실을 강조한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 것으로 유명하다.

 

파르메니데스는 진정한 실재(實在)는 불변성(不變性)과 항구성(恒久性)을 강조하였다. 잡다한 유전(流轉)의 세계, 우리 앞에서 전개되는 이 세계는 허망한 세계요 범상한 이익을 추구하는 비실제인 세계라고 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표명하는 모든 의견들이 대부분 모순에 차 있고 또 이 모순을 면할 길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재에 관하여 내릴 수 있는 정당한 정의는 오직 한 가지 즉 불변, 부동의 일자(一者)라고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S.P. Lamprecht 서양철학사, 32쪽).

 

따라서 그에 의하면,

있는 것은 불생 불멸이다.

있는 것은 유일 불가분적이다.

있는 것은 불변 부동이다.

있는 것은 유한한 구형(球形)을 이룬다.

 

속견과 진리: 파르메니데스의 [자연에 관하여]라는 저술에서, 참된 신념이 들어있지 않은 속견(俗見)에만 머물지 말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완전한 진리에 따르는 신념에 관해서도 배워서 눈, 귀, 혀의 유혹을 벗어나 이성(logos)에 따라서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함.

 

‐이오니아 학파가 다분히 직관적으로 세계의 원리를 밝히려 한 반면, 엘레아 학파를 창설한 파르메니데스는 논리적인 태도를 취하여 보다 분석적으로 접근한다.

 

‐무세계론(無世界論) : 그는 철저한 논리적 사유로써 존재의 불변성을 강조하고, 세계의 생성변화를 허구적인 속견이라고 부정함. 이 사상은 제논(Zenon, B.C. 490‐430), 멜리소스(Melissos)등과 같은 제자들에게 전승. 플라톤이 진정한 존재는 불변의 것이라는 이 사상을 계승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 밀레토스 학파의 세 사람을 든다면?8)

  헤라이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탈레스

  탈레스, 헤라이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 아낙시메네스,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아낙사고라스, 탈레스

 

문제: ‘만물은 유전한다’. 즉 ‘만물은 흐른다, 만물은 변한다’라고 한 그리이스의 철학자는?9)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아낙시메네스

  파르메니데스

  탈레스

 

문제: 이 세계의 본질적 특성이 생성인가 아니면 존재인가? 즉 변하는 것인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것인가? 움직임 혹은 정지 어떤 것일까? 이 세상의 근본적 존재, 즉 이 세상을 움직이는 본래의 궁극적인 것은 움직이는 것일까 아니면 가만히 있으면서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다음 중 움직이지 않는 일자(一者)가 세계의 원질이라고 한 자연철학자는?10)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문제: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세상의 원질을 무엇이라고 했나?11)

  물

  흙

  공기

  원자

  불

 

생성과 존재문제의 해결

다원론자들의 철학사상

다원론자들은 생성하고 변화하는 세계를 긍정하 위해서는 [있는 것]을 일자로 보는 생각을 버려야 했다. 따라서 원질로서의 [있는 것]을 즉 원질을 다원적으로 봄.

 

엠페도클레스(B.C.495‐435)(p.23‐24)

‐4가지 원소를 제시함. 즉 흙, 물, 공기, 불.

‐예: 흙, 물, 불이 각각 2:2:4의 비례로 혼합되면 [흰 뼈]가 생기며, 4원소가 균등하게 혼합되면 [피]와 [살]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처럼 숫적인 비례를 착상하게 된 것은 피타고라스의 사상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종래의 물활론에서 벗어나 4원소의 결합과 분리의 원리를 각각 [사랑]과 [미움]이라고 함.

‐유기체의 발생에 있어서 원소들의 결합이 이뤄지고 인면우체(人面牛體)‐사람의 얼굴에 소의 몸‐ 등이 생겼으나 자연도태 및 적자생존에 의해 지금과 같이 되었다고.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B.C.500‐428)

무한히 다양한 물질과 현상의 성질차를 4원소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하여, 무수한 원소를 [종자(種子)(spermata)]로 제시함.

이것이 혼합과 분리를 거듭하며, 운동인은 [정신(nous)]이라고 함.

 

류키포스(Leukippos, B.C. 420활약)

류키포스는 무수한 동일성질의 원소를 원자(atoma)라고 불렀다. 아톰이란 나눌 수 없는 것이라는 뜻.

‐진정으로 있는 것은 원자와 공간뿐이라고.

‐기계론적 세계관: 원자들이 크기와 형상이 같은 것끼리 기계적으로 결합하여 세계를 형성한다고 보았음.

이에 따라 물활론적 세계관은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대치됨. 이에 따라 자연은 점차 인간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분리되기 시작함.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B.C. 460‐370)

인식설, 논리설의 단계를 넘어 인간의 정신까지도 물질적인 원자로 되어 있다고 봄으로써, 유물론적 원자론의 체계를 세움.

 

‐감각적 지식: 물체의 원자가 방출되어 우리의 정신의 원자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사물의 모상(模相)이 감각기관에 도달하는 중간에 공기와 같은 갖가지 영향 때문에 사물자체의 진상을 인식할 수가 없다고 함. 따라서 감각적 지식의 객관성을 부정함.

 

‐이성적 지식:이에 반해 이성적 인식은 사물의 원자와 정신의 원자가 아무런 매개물도 없이 직접 접촉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사물의 진정한 인식일 수 있다고 하여 데모크리토스는 이성적 지식을 높이 존중하였다.

 

‐윤리관(p.28):마음의 조화(harmonia)와 균형(symmetria)에서 오는 정신적 쾌락을 중시, 선과 쾌의 가치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강조.

[의사는 육체의 병을 고치고, 지혜는 마음을 번뇌로부터 해방시켜 준다]는 말을 남기기도 함.(여기까지 아테네 이전의 철학사상임.p.28) *

 

문제: 지금까지 아테네 이전의 철학사상을 알아보았다. 인간과 세계의 원천이 정신의 움직임에서 비롯될까? 아니면 물질의 아주 작은 원자에 의해 움직이는 걸까? 유물론적 원자론을 제시하여 처음으로 유물론적 사고를 보여준 철학자는? 후에 마르크스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누구인가?12)

  데모크리토스

  아낙사고라스

  류키포스

  탈레스

  피타고라스

 

문제: 이 세상은 수의 비례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았다. 처음에는 종교에 대한 관심(인간영혼의 정화)으로부터 시작하여 음악을 거쳐 수에 이르는 관심을 보였다. 누구인가?13)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피타고라스

  아낙시메네스

  데모크리토스

 

문제: 아테네 이전의 철학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14)

  물활론적 사고를 언제나 보였다.

  초기에 물활론적 사고를 보이다가 점차 후기에 이르러 기계론적 사고를 보인다.

  일관성있게 처음부터 기계론적 사고를 보인다.

  신(神)에 의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기계론적 사고를 보이다가 점차 물활론적 사고를 보였다.

 

문제: [의사는 육체의 병을 고치고, 지혜는 마음을 번뇌로부터 해방시켜 준다]는 말을 남기기도 함. 이는 이성적 지식을 갈고 닦아 지혜와 교양을 쌓을 것을 말해준다. 누가 말했나?15)

  피타고라스

  아낙사고라스

  탈레스

  데모크리토스

  헤라클레이토스

 

문제: 운동경기장에서 발견되는 사람은 흔히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운동선수다. 이들은 명예를 쫓는다. 둘째, 오징어나 쥐포를 파는 상인이다. 이들은 물질을 쫓는다. 셋째, 관객이다. 이들은 보는 즐거움, 사고하는 즐거움,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 등을 동시에 느낀다. 가장 높은 즐거움은 관객이 느낀다고 했다. 누가 이렇게 사람들을 분류하였는가? 이는 다시 나중에 플라톤의 영혼삼분설에 영향을 주었다.16)

  아낙사고라스

  데모크리토스

  탈레스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문제: 피타고라스는 이 세상이 무엇에 의해 움직여진다고 보았나?17)

  수(number, 數)

  흙

  물

공기

원자

 

문제: 아테네 이전의 철학사상의 특성은 어떤 것일까?18)

절대자의 세계를 문제 삼았다.

종교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자연과 세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인간의 내면세계와 이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아테나이 시대의 철학사상(P.29)

소피스트의 등장과 상대주의

 

B.C. 5세기 중엽 페르시아 전쟁에서 이긴 아테네에 경제적 풍요가 찾아왔다. 전쟁에 공을 세운 수부(水夫)들과 같은 천민의 계급을 다른 계급과 동등하게 대우함으로써 민주제 발달이 이뤄졌다.

각기 능력이 있으면 입신할 수 있었고, 학자들과 청년들이 아테네로 모여 법률, 제도 등 사람의 힘으로 제정된 노모스(nomos: 사람이 제정한 것이라는 뜻이며, 좁게는 법률을 의미한다.)에 관심이 고조되었다.

이 노모스에 통달하여 정치무대나 법정에서 이를 잘 구사하는 변론술이 환영받았다.

 

이 변론술에 능한 학자군이 바로 소피스트(Sophists)들이다. 그리고 밑바탕에는 상대주의가 깔려있었다. 어떤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면 인간의 각기 다른 주장이 소용이 없는 것! 따라서 이들 소피스트들은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게 됨.

 

그러나 상대주의가 지나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즉 인간 각자가 모두 옳다고 주장하면 누군가의 주장에 더 모순이 많게 마련이며, 그러면 충돌이 불가피하다. 그러면 역시 어떤 공통되고 보편적인 주장이 제기되어 옳고 그른 것을 가려내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사의 갈등이 대부분 또 이러하다. 이렇게 상대주의를 배격하고 절대적 진리의 탐구를 자신의 철학적 사명으로 삼은 철인이 바로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플라톤에게로 그리고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 계승되어 나가며 그리이스 철학의 전성기가 구가되었다.

 

문제: 소피스트의 철학적 근거는 어떤 것인가?19)

보편주의

절대주의

상대주의

종교철학

기독교 사상

 

문제: 소피스트들이 관심가진 분야는?20)

연극

종교

자연

변론술

제사

 

문제: 소피스트들이 각자가 옳다고 주장할 수 있는 풍토와 그 기술을 가르쳤다. 이들이 이뤄낸 업적이라면 어떤 것일까?21)

절대주의, 전체주의, 독재정치 풍토

신(God)에 의해 다스려지는 신정정치

왕에 의해 다스려지는 정치

귀족정치

민주정치

 

문제: 노모스란 무엇인가?22)

법률, 인간이 만든 제도

인간

하늘

신(God)

자연과 자연의 운행 법칙

 

문제: 아테네에 들어오면서 철학의 주제는 어떻게 옮겨졌나?23)

인간에서 자연으로

신에게서 자연으로

자연에서 인간으로

종교에서 자연으로

법률에서 종교로

 

2.1.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

2.1.1. 소피스트들의 철학사상

 

전기 소피스트의 사상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인물은 Abdera출신의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B.C. 481‐411).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한다. 이는 그의 철저한 주관주의 및 상대주의를 말해준다.

이는 갑과 을의 주장이 같은 대상에 대해 달리 나타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면 누가 자기의 주장을 보다 기술적으로 강조하여 대중을 설복시키느냐로 주장의 타당성이 판가름날 것이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변론술(rhetorike)의 연원을 이룬다.

또 어떤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논쟁술과 문답화법이 발달하게 된 기원을 이룬다.

그는 지식에 대해 진위의 구별은 없을지라도 판단사이의 실효적 가치에 의해 우열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관주의가 고르기아스(Gorgias)에 와서는 모든 지식자체를 부정하는 회의주의로 나간다.

 

후기 소피스트 사상

Thrasymachos, Kallikles, Antiphon 등과 같은 후기 소피스트들은 보편적인 구속력을 지닌 인위적 노모스 보다는 자연상태 그대로의 퓨시스(physis)를 존중하여 도덕이 파괴적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2.1.2. 소크라테스의 철학사상(p.31)

지는 곧 덕이다.

Socrates, B.C. 469‐399.

그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경험과 감각, 습관이 사람마다 각기 다르므로 진리는 상대적이라는 소피스트들의 견해에 반대한다.

 

대신 사람들이 저마다 경험하고 근거없이 주장하는 억측, 편견을 제거하고 가능한 누구나 인정하는 진정한 지식(知識)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그는 경건, 절제, 정의, 극기, 용기, 혹은 국가, 정치가 등 실천생활과 직결된 윤리, 도덕문제들에 관하여 [그 자체가 무엇인가?]라고 하는 정의(definition) 본질적, 보편적, 객관적 타당성을 지는 지(知)를 탐구하였다. 정의 자체를 물은 최초의 인물은 소크라테스였다.

 

플라톤의 저작에 등장하는 한 구절로, [나(소크라테스)는 그대에게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경건한 행위들을 주워섬기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건한 행위를 경건하게끔 하는 경건이라는 것 자체의 본질을 말하여 보도록 하는 것이네](램프레히트, 서양철학사, 8쪽)가 있다.

 

정의 그 자체를 찾기 위한 대화가 바로 유명한 산파술이며 변증법, 곧 대화법이다. 상대의 무지를 깨치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소크라테스를 적으로 인식하는가 하면 그의 고결한 인격과 지적 정열을 높이 사서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제자와 친구들도 많았다.

 

각자 그 고유한 기능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능숙성을 그리스말로는 아레테(Arete)라고 하며, 이것은 곧 덕이라는 말로 옮길 수 있는데, 소크라테스에 있어서 이성이 그 고유한 기능을 발휘하여 지혜(편견이 없는 정의 그 자체)를 얻는 것이 곧 덕이 되는 것이다.

 

그는 참다운 지를 알고도 행하지는 않을 수 없다고 본다. 우리의 모든 과오와 죄악은 결국 참다운 지를 갖지 못한 데서 오는 결과라고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와 행과 행복이 하나가 된다고 한다.

 

문제: 소피스트들 중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했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24)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다. 따라서 신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의미

신이나 자연의 절대자와 달리 인간이 옳고 그른 판단의 주역이다. 또는 내가 다른 사람과 달리 판단의 주인이다.

하늘에 빌고 빌어서 우리의 운명을 점치고 예언을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

옳고 그른 판단은 내가 하기보다는 관습이 하는 것이라는 의미

주변을 보라! 내가 판단해서 되는 일이 어디 있는가? 내 행동의 옳고 그른 판단은 전통, 풍습, 제도가 하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

 

2.2. 플라톤의 철학사상

플라톤과 대화술: 글로 쓰여진 말은 다만 구술된 말을 모방한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쓰여지지 않은 가르침(unwritten teaching)이 이들 사제간에 같이 마시면서(symposium) 같이 철학하는 가운데 전수됨.

 

2.2.1. 이데아 사상(p.33)

정의자체, 용기자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플라톤에 이르러서는 그 자체가 이데아(idea, eidos, 혹은 형상의 뜻)의 사상으로 발전. 대화술로서 찾아가는 변증법이 모든 학문보다 우위에 있다고 함.

이데아는 감각적인 속견(doxa)의 대상이 아니라, 이성적 지식(episteme)의 대상으로서, 감각적 사물과는 떨어져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요, 감각적 사물들은 오히려 [그 자체의 것]으로서의 이데아를 분유(分有) 혹은 모사(模寫)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됨.

 

이데아와 수학적 대상 : 플라톤에 의하면 이데아의 모습에 가까운 것은 수학의 대상이라고 함. 손으로 그리는 삼각형은 감각의 대상이 아니라 불변의 존재영역에 속하는 것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수학적 대상은 이데아와 감각적 사물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으로 봄.

그의 학원 Akademeia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는 말이 있는 바, 이는 감성을 매개로 하여 그 배후에 있는 불변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자만이 철학을 탐구할 자격이 있음을 암시함.

 

善의 이데아: 이것은 사유주체를 초월하여 스스로 존재하는 진정한 실재요 영원한 실재로서 현상계의 허망을 떠나 초연히 빛나는 진리의 세계이며 모든 지상의 감각적인 것은 이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궁극에 선의 이데아(윤리적 의미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의미)가 있으며 마치 태양이 현상의 세계를 눈에 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는 생성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현상계의 사물에다 영양을 주는 것과 같다고.

 

문제: 플라톤의 이데아는 어떤 성격을 띠나?25)

눈에 보이지 않는 완전한 존재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격이다.

손을 만질 수 있는 실체다.

관찰과 실험이 가능한 과학적 존재다.

완전자의 그림자를 이데아라고 한다.

 

2.2.2. 인식설 및 윤리관

영혼의 불멸성: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본질을 이성으로서의 영혼에서 보았다. 영혼을 보살피는 것이 인간이 해야 할 최고의 과제라고.

피타고라스의 영향에 의해 플라톤도 영혼의 윤회전생 사상을 받아들여 이것을 철학적으로 증명함으로써 영혼의 불멸성, 영원성을 믿게 됨.

 

특기할 것은 존재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과 보이는 가변적인 것과의 이종으로 구별하고 영혼은 전자에, 육체는 후자에 속한다고 한 이원론(二元論)적 증명이다.

영혼과 육체는 일시적으로 결합된 상태라고.

 

영혼 삼분설: 불사적인 이성, 가사적인 기개 및 욕정의 세부분으로 나누었는 바, 이것이 그의 유명한 영혼삼분설임.

기개와 욕정은 이성이 몰고가는 두 필의 말과 같은 것.기개는 가슴에 위치하는 중간자로서 이성의 명령에 복종하여 정의를 사랑하고 욕정의 비열을 억제하여 명예를 희구하는 부분이라고.

 

영혼은 불사적이며 육체와 결합하기 전에 이미 영원한 세계를 알고 있었으나, 육체와 결합하면서 감각의 제약을 받고 이데의 세계를 망각하게 되었다고. 따라서 이데아의 인식은 다름아닌 감각의 제약을 벗어나서 이데아를 상기(想起)하는 것이라고 봄.

 

피타고라스의 영향이 보이는 [Gorgias]편에서 악은 지성이 결핍된 잘못이라기 보다는 영혼의 병이고, 이는 의술에 해당하는 철학에 의해 고쳐야 한다고.

 

피타고라스의 영향이 극명하게 보이는 [Phaidon]편에 와서는, 육체를 영혼의 무덤으로 보는 바 이성 이외의 것에 의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해탈은 지상에 사는 동안에는 정신적 노력에 의해, 마침내는 지상의 동거에서 영혼을 해방시키는 죽음에서 성취된다고. 따라서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요, 죽음을 위한 노력이라고 한다.

 

국가[Politeia]편에서는 체육과 음악을 중시함으로써 신체를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균형잡히게 할 것을 강조함. 그리고 지적 훈련을 할 것을 주장함.

 

행복과 정의의 덕: 플라톤의 궁극목표도 역시 행복이거니와 이는 선을 행하는 데 있다고. 이성은 애지(愛知) 즉 지혜, 기개는 용기, 욕정은 절제의 덕을 지켜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바르게 실현됨을 말함. 이 때 비로소 영혼은 조화를 얻게 되고 이 조화된 상태가 정의(justice)라고 함. 지혜, 용기, 절제, 정의가 이른바 플라톤의 4주덕(4主德)임. 희랍인들이 폴리스가 존재하는 한, 개인의 윤리생활과 정의도 국가안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문제: 플라톤의 영혼관은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나?26)

헤라클레이토스

탈레스

피타고라스

아낙시메네스

데모크리토스

 

2.2.3. 국가관 및 교육설

플라톤의 나이 28세때 스승 소크라테스의 처형이 있었음. 이에 충격을 받음.

 

종래의 국가형태 Sparta식 정치는 평화보다 전쟁과 술수에 능한 인물을 양성한다고. 과두정치(寡頭政治)는 금전욕이 지배하여 부만을 중시한 나머지 덕을 무시하게 되고 재산을 표준으로 지도자를 등용한다고.

 

빈민의 저항과 혁명에 의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제는 외견상 자유가 존중되어 아름다워 보이나 마침내는 법률을 무시하는 자유과잉에 빠져 방종과 혼란을 초래한다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하는 참주정치(僭主政治)는 죄악을 자행하는 폭군이 지배함으로써 최악의 정치형태라고 함.

 

한편, [정치가]편에서는 지배자의 수가 1인, 소수, 다수에 따라 구분된다. 일인정치는 법으로 통치하고 국민이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군주정치와 법없이 통치하고 국민이 강제에 의해 복종하는 폭군정치 있다.

 

소수가 다스리는 정치형태는 전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귀족정치과두정치로 구분된다. 다수인 민주정치도 법이 있는 경우와 법없이 통치되는 것이 있다고 함.

 

이상적 국가  플라톤은 국가의 구조가 영혼의 구조와 같은 것으로 간주. 지적으로 최선의 사람 즉 철인(哲人)이 통치자 계급을 이뤄야 한다고.

 

이상국가는 지혜에 있어서 최선의 사람이 통치하는 일종의 지적인 귀족정치와 철인정치(哲人政治)였다. 실로 그에게 있어서 정치적 권리의 절대적 평등주의보다 거짓된 것은 없다.

 

권력분배의 원리는 산술적 평등이 아니라 능력과 소질에 따르는 실질적 평등이어야 한다고 봄. 플라톤은 통치자에게는 금이, 수호계급에게는 은이, 그리고 농상계급에는 철(동)이 혼입되어 있다고 표현.

 

교육사상 각기 지닌 소질에 따라 교육을 해야 하는 바, 국가의 주요한 관심사로 간주.

능력있는 자가 매장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10세 이상되면 먼 지방으로 보내 소정을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유년기‐음악과 체육으로 건강과 영혼의 도야.

20세‐우수한 자는 선택되어 학문을 종합해서 교육을 계속하고 나머지는 영양계급으로. 30세‐우수한 자는 5년간 이데아를 탐구하는 변증론 즉 애지의 학을 배움. 나머지는 수호자 계급으로.

35세까지 5년간 변증론을 공부한 사람은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 15년간 군사나 기타 직무에 종사하면서 인생의 경험을 쌓음.

50세‐모든 학문 및 인생에 탁월한 자가 비로소 지배자 계급이 됨.

선택된 지배자는 어떤 직업상의 활동도 재산의 소유도 금지되며 나아가 가정의 형성도 허용되지 않아 부녀와 자식의 공유가 허용된다.

건전한 국민을 갖기 위해 남자‐25~45세만, 여자‐24~40세 사이에서만 어린이를 생산케 함. 근친결혼 금지.

전쟁은 바다를 통해서 하므로 이상국가는 바다에 면하지 않는 곳이 좋다고.

 

문제: 가장 이상적인 국가형태로 우리는 흔히 민주제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플라톤은 어떤 정치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했나?27)

참주제

민주제

왕정

귀족제

과두제

 

2.2.4. 자연철학

노년기에 이르러 현상계에도 관심을 좀더 기울여 생성의 문제를 주제로 삼기도 함.

현상계의 질료: 이를 코오라(chora, 공간)라고 함.

이 코오라를 재료로 해서 이 현실세계가 생성된다고. 이데아의 세계에 없는 연장성(延長性)을 지니게 되어 이데아의 모습을 불완전하게 나타내고 있다고.

 

창조자 이 코오라를 소재로 하여 현실세계가 형성되었는 바, 그 형성하는 자가 있어야 한다고. 이것을 플라톤은 창조자(Demiourgos)라고 하였다.

이 창조자가 이데아를 본받아 질서를 줌으로써 불완전하나마 선하고 아름다움 코스모스 즉 질서있는 세계를 이룩한다고.

 

세계영혼 및 시간 세계를 창조함에 있어 창조자는 먼저 세계영혼을, 다음에 세계신체를 창조. 현상계로 하여금 더 한층 [영원]의 모습을 닮게 하려고 창조자가 창조한 것이 시간(chronos)이다. 영원의 그림자로서 시간을 창조한 것.

영원‐현재, 시간‐계량가능, 이 때문에 현실세계는 주, 야, 월, 일, 년과 같은 질서가 생긴다고.

 

문제: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여 합리적인 방안을 이끌어내서 그것을 정책으로 끌어올리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구성원의 판단력이 못미치는 상태라면 민주제는 다수의 논리(다수결의 원칙)를 따르면서 잘못된 정책이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고 또 플라톤의 견해에 비추어 가장 타당한 견해는?28)

가장 좋은 정치형태는 귀족제(소수의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자들의 정치)다.

가장 이상적인 정치형태는 민주제다.

훌륭한 군주제 즉 왕정이 가장 바람직하다.

가장 이상적인 정치형태는 민주제와 귀족제가 결합된 형태일 것이다.

참주정치가 민주제의 약점을 보완하는 좋은 형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사상(P.41)

Aristotle(B.C.384‐322): 마케도니아의 Stageira에서 마케도니아 왕의 시의(侍醫)의 아들로 태어남. 18세에 아테나이로 와서 플라톤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년간 플라톤에게 사사(師事)받았다.

그의 저서: 400권 혹은 1000권이라고 전함. 플라톤:시적인 상상력, 사변력의 소유자로서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받아 신비주의 경향을 보인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자 가정에서 태어나서 경험과 관찰을 존중. (라파엘로의 그림 참조)

 

플라톤과의 차이 플라톤: 영원한 실재/생멸하는 현상=이상계/현실계가 확연히 구분됨. 전자의 세계에만 가치가 인정됨.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이원론을 극복함. 그래서 경험적, 현실적인 세계를 그대로 실재의 세계로 인정하고 철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음.

 

그에게 있어서 개념적(槪念的)인 사유(思惟)도 감각적인 지각과 마찬가지로 현실세계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음.

 

스승으로부터 형상(形相‐eidos)이라는 개념을 계승하되 전혀 다르게 사용하여 형상이란 감각을 초월한 세계가 아니라, 개개의 사물에 내재(內在)하여 그 사물로 하여금 형상(形狀)을 갖게하는 원인(原因)으로 여겼다.

 

스승에서 볼 수 있는 예술적 문학적 풍취는 없어도 과학적인 엄밀성, 정확성, 표현의 간결성과 명확성,철학적 용어의 풍부함, 선행 철학자들의 업적에 대한 지식의 해박함 등에 있어서 플라톤에게서 볼 수 없는 뛰어난 천재성을 발견할 수 있음.

 

논리사상

논리학의 위치: 그는 학문을 논리적인 것, 실천적인 것, 창작적인 것으로 분류. 논리적이 것‐수학, 물리학, 제1철학(형이상학). 논리학은 어디에도 넣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누구나 탐구할 교양이기 때문이다.

 

학문적 인식: 학문함에 있어 개별적 현상에 대해 특수적 판단을 일반명제로부터 도출하는 논증적 추리가 그의 논리학의 중심. 이것이 그의 분석론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이 삼단논법(syllogism).

논증적 추리의 전제는 경험적 특수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함. 특수를 토대로 보편을 추론하는 것을 귀납(歸納)이라고 불렀다.

귀납추리에 의해서 도출된 근본전제의 진리성, 즉 보편필연성은 이미 그 이상 논증은 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 오직 우리의 이성(理性‐nous)에 의해서 알 수 밖에 없다고.

 

논리학과 형이상학: 실재 그 자체에는 정연한 논리적 관계가 있음을 형이상학적으로 전제함. 우리의 인식은 다만 그것을 경험적으로 탐구하고 논증할 수 밖에 없다고.

 

이리하여 형이상학과 논리학은 밀접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으로, 논리학은 형이상학을 예상하고, 형이상학은 논리학을 수단으로 하여 경험적 사실의 기초를 해명하는 것이라고 생각.

 

형이상학

지식의 종류:

 

학적 지식(원인에 대한 순수한 지식)

기술적 지식

경험적 지식

기억에 의한 지식

감각에 의한 지식

 

제일철학 그러나 우리는 가장 보편적인 원리,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로는 제1원인에 대한 지식을 갈구한다.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혜(Sophia)라고 함.

이 제일원인(第一原因)에 대한 지혜를 얻고자 하는 것이 그의 이른바 제일철학(prote philosophia) 즉 형이상학의 목적이라고.

 

그런데 모든 존재의 가장 으뜸가는 원인은 그에 의하면 신이라고도 할 수 있으므로 형이상학은 때로는 신학이라고도 불리워지고 있다.

 

그의 형이상학의 탐구(논구)는 해박하고 예리하기 이를데 없거니와 논구된 문제들은, 특수와 보편, 형상과 질료, 동자(動者)와 피동자(被動者) 등 세 문제로 대별할 수 있다.

 

특수와 보편 : 소크라테스는 그의 독특한 개념적 정의에 의하여, 개별적인 특수로부터 본질로서의 보편을 찾는 것을 철학의 중심과제로 여김.

 

플라톤에 의하면, 이데아의 세계는 특수로부터 독립해서 스스로 존재하는 영원한 초월적 실재계(實在界)가 된다. 반면에 개별적인 특수의 세계는 이데아를 모사(模寫)내지 분유(分有)하고 있는 불완전하고 허망한 세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학문의 목표는 [그 자체에 있어서 자명한 것]을 찾는데 있다고 보았다. 결국 본질이 학적 인식의 대상인데, 이 본질이 곧 보편이다. 이 보편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도 그의 스승들과 같다.

 

그러나 플라톤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하여, 실재하는 실체(ousia)는 결코 특수적인 현상계를 초월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어떤 것](tode ti)속에 있다고 했다. 즉 보편으로서의 본질은 결코 특수를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들의 공통적 성질로서 개별적인 사물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이 실체를 영원 불변의 것으로 본 데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생성 발전하는 동적인 것으로 보았다. (왜? 본질인 실체는 가시적 사물과 현상 그 자체 속에 들어와 있으므로)

 

형상과 질료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생성 발전을 질료인, 형상인, 운동인, 목적인의 4원인으로 설명.

 

예) 하나의 동상을 만들 때, 그 재료인 동은 질료인이다. 조각가의 머리 속에 그려진 초상은 형상인이다. 재료를 다듬는 조각가는 운동인이다. 동상의 실현은 목적인이다. 결국, 4원인은 질료인과 형상인의 두 원인으로 환원가능하다. 이리하여 그에 있어서 질료와 형상이라는 두 개념이 형이상학적 사상의 중추를 이룬다.

 

만년의 플라톤의 사상인 이데아와 코오라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전승된 것이 질료인과 형상인이겠는 바, 역시 정통적인 제자라 할 수 있다. 즉 질료는 일정한 존재로 나타날 가능성을 지닌 가능태(dynamis)이며, 이 가능태가 형상을 실현하면 현실태(energeia)가 되는 것. 이렇게 하여 현실화된 존재는 하나의 완전태(entelecheia)가 됨. 하지만 질료와 형상이 결코 고정된 관계는 아니다. 예)삼림은 원목에 대해서는 형상이다. 그러나 완성될 가옥에 대해서는 질료다. 따라서 일련의 연쇄관계를 이룸. 최하위의 순수질료가, 최상위의 순수형상이 있다고.

 

원동자와 피동자 순수형상인 원동자(prime mover)야말로 일체 만물이 실현하고자 지향하여 움직여 가는 궁극목표, 모든 생성의 궁극원인이기 때문에 완전자인 것이요, 더구나 질료가 없는 무형적, 비물질적인 것으로서, 곧 순수정신 내지 순수이성(nous)이요, 신(神)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

신의 사유는 [사유의 사유], 사유와 그 대상, 주관과 객관이 완전히 하나로 일치해 있는 것. 신은 영원한 정지 속에서 자기를 관조하는 가운데 자신의 행복을 즐기고 있다고 간주함.

 

자연학

자연의 발전 그의 형이상학은 부동의 원동자(原動者)를 다루었지만 자연학은 형태를 띤 모든 유형적(有形的)인 것, 즉 온갖 자연이 그 대상이었음. 형상의 단계적인 실현을 목적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간주. 언제나 최선의 것을 지향하며 모든 것을 될 수 있는대로 아름답게 만든다고.

 

이 지상의 자연의 목적은 실현된 형상으로서의 인간이며, 더구나 남성이라고. 모든 다른 자연의 대상들은 남성의 인간을 나으려는 시도가 실패한 것이며, 그래서 불완전한 것이라고 간주함.

 

영혼의 단계 그는 일반 생물에서도 영혼의 존재를 인정함. 이 영혼이 생물체를 발전시키는 원인으로서, 곧 유기체의 완전태(entelecheia)를 이루는 힘이라고 봄.

 

인간에게 있어 두 가지 이성이 있다고 한 바, 하나는 잠시동안 개인에게 속했다가 개인과 생사를 같이하는 유한(有限)한 수동적 이성이 있다고. 또 하나는 육체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영원한 것으로서 신의 순수이성과 동일한 능동적 이성이라고. 따라서 능동적 이성이야말로 전자연 발전의 최고의 목적이요, 순수한 형상이요, 현실태라고.

 

실천철학

자연적인 덕과 참된 덕 참된 덕이란 그 이데아를 인식해야 한다는 플라톤과 달리, 그는 우리의 행동을 일으키는 자연적인 욕구 내지 충동을 모든 덕의 바탕이 되는 [자연적인 덕]이라고 함. 이것이 식견(phronesis)에 인도되어 올바른 욕구로 될 때 우리는 바른 행위를 하게 된다고. 그래서 자연적인 덕이 바르게 반복됨으로써 참된 덕으로 순화, 고양된다고.

 

실천적인 덕의 본령은 이성을 발휘하여 중용(mesontēs)의 덕을 지키는데 있다고. 우리는 인간특유의 이성을 발휘하여 이 중용의 덕을 실천할 때 행복을 얻는다고. 신의 행복이 자기관조이듯이, 인간도 아무런 외적 장애 없이 순수한 관조활동을 하는데 최고의 행복이 있다고.

 

국가의 목표 그는 국가의 목표를 시민의 교육, 지적생활의 뒷바침, 정책결정이나 법률제정에 있다고 봄. 권력은 여러 개의 집단으로 균형있게 분배하고 시민에게는 비판의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하였음.

 

오랜 세월을 두고 다듬어진 법률은 유한(有限)한 인간이 갖지 못한 풍부한 지혜를 가지고 있으므로 상하의 구별없이 모두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함. 그 전까지는 사회적 관습이 생활의 기준(규준)이 되어야 한다고. 그는 알렉산더의 스승!‐제자가 영토의 통일을 이뤘다면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상의 통일을 이룩한 셈임.

 

문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결국 무엇을 찾아가기 위한 것일까?29)

원리로부터 파생된 구체적 사실

구체적 사실과 함께 구체적 개념

상대주의적 진리를 펴기 위한 지속적인 탐구과정이었다.

갖가지 편견을 모으는 작업이다.

편견을 없애가는 가운데 정의(定義)에 도달하여 결국 정의(正義)로 가는 것.

 

문제: 소피스트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개고기 잘 먹는 것도 식생활 문화의 상대주의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러면 개고기 먹는다고 탓할 수 없다. 정말 그럴까? 보편주의적 입장은 무엇인가?30)

개고기는 한국의 전통음식이다. 따라서 우리만의 독특한 풍습이다.

개고기 먹는 것은 애완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공통의 관심과 배치된다. 따라서 가능한 안 먹는 것이 좋다.

개고기는 고단백질이므로 몸에 좋다.

개고기가 처음에는 먹을 것이 없을 때, 또는 맛이 좋아서, 힘을 낼 수 있는 등의 이유로 먹기 시작했다. 인간은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다.

인간의 식성은 놀랍다. 동식물을 안가리고 먹을 수 있으므로 개도 먹을 수 있다.

 

문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은 어떤 것인가?31)

이 세상의 만물은 질료에서 형상을 향하여 끊임없이 생성 발전한다.

영원한 완전자가 추상적 세계에 떠 있다.

이 세상의 만물은 이데아를 모방, 본 뜬 것이다.

여기 한 그루의 목련 꽃은 완전한 실체로서의 목련의 모방작이다.

목련은 시간이 지면 진다. 따라서 역시 완전한 실체가 아니다.

 

문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에 대해 진술했다. 맞는 것은?32)

형상은 완성된 형태다. 예컨대 나무 한그루가 형상이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아니다. 나무가 형상이긴 하지만 그것은 다시 집을 짓는 하나의 질료(일종의 재료)가 된다.

형상은 플라톤의 입장과 같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하늘 어딘가 혹은 추상적 세계에 있다.

질료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일종의 추상적 세계에서만 발견된다.

질료는 형상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문제: 소피스트는 상대주의요, 소크라테스는 보편주의(절대주의)를 취했다. 이들의 입장에 대해 가장 타당한 진술은?33)

인간의 판단에 있어 상대적인 입장의 차이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따라서 소피스트들이 상대주의를 주장하여 다양한 견해가 주장될 수 있도록 풍토를 만든 점에서 이들이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데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소피스트는 다만 궤변을 늘어 놓음으로써 사람들의 허세와 거짓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거기서 자기합리화가 생기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켰으며 결국 독재를 부른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소피스트들 중 최대의 인물로 알려진 프로타고라스(Protagoras)가 말한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말은 신에 대한 하나의 모독이며, 절대자인 신들에게 도전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다양한 인간사고를 허용하지 않고 획일적인 진리를 주장했다. 그가 진리의 세계에 남긴 것은 거의 없다. 문답법도 혼란만을 가중시켰다. 그래서 그가 민주제하에서 사형이 결정된 것이다.

소피스트의 상대주의는 거짓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변증술을 익히게 했다. 그것은 출세를 향하여 자기를 과대포장하는 정치인들을 배출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래서 소피스트가 철학사에 기여한 바는 거의 없다.

 

문제: 소크라테스에 대한 진술이다. 틀리는 것은?34)

소크라테스는 진리의 보편성을 주장함으로써 상대주의적 갈등을 극복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우리 친구들끼리 의견차가 있을 때, 전문적 식견이 견해차를 보일 때, 극한까지 갈 것이 아니라 일정한 단계에서 보편적인 잣대로 판단하여 의견을 통합하거나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소크라테스의 보편주의적 진리관 덕분이다.

한국사람이 개고기를 잘 먹는 것에 대해 상대주의에 서면, 문화적 차이를 인정해야 하므로 개고기 먹는 것을 탓할 수 없다. 그러나 올림픽이 열렸을 때 모두 개고기집 간판을 내렸다. 그것은 애완동물을 잡아먹는 것이 보편적인 입장에서 볼 때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도 한번쯤 소크라테스적 보편주의를 참작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전쟁터에서 추운데도 따뜻한 신발을 동료에게 벗어주면서 인간애를 보이기도 했으며, 문답법을 통해 진리를 찾아가는 데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가 주장한 상대주의적 진리관은 다양한 사고가 표현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었다. 그것은 보다 합리적인 견해가 채택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헬레니즘‐로마시대의 철학사상(P.51)

이 시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B.C. 322) 이후 고(古)로마(Rome)제국의 멸망(A.D.476)까지 약 800년 동안임.

이 때는 그리스 철학과 같은 순수한 이론적 탐구활동이 쇠퇴했다. 대신 개인의 심리적 안정과 처신을 둘러싼 실천적 문제가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작은 정치공동체로서 Polis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헬레니즘 시대에는 철학적 관심이 공동체중심, 보편성과 객관성을 중심으로 한 이상적 진리추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개인주의적 경향으로 흘렀다. 따라서 철학사에서 볼 때 이 시기는 일종의 철학의 쇠퇴기다.

 

하지만 헬레니즘이란 말이 그리이스인이 사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듯( Hellas는 Greece의 별칭), 그리이스가 로마의 통치하에 들어갔어도 그 사상의 뿌리는 여전히 그리이스였음. 따라서 사상면에서는 그리이스가 로마를 지배한 것이라 할 수 있음.

 

이 시대의 철학은 실천생활에 관심을 기울인 윤리적 시대(B.C.322‐A.D.1세기)와 인간의 유한성의 자각 및 동양의 밀의적(密儀的) 종교(宗敎)의 영향으로 나타난 종교적 시대(B.C.1세기‐A.D.5세기)로 나눈다.

 

3.1. 윤리시대의 철학사상

3.1.1. 스토아 학파의 사상

키프로스 섬 출신의 제논(Zenon, B.C. 336‐264)에 의해 아테네에 창설된 학파. 그 가르침을 실천한 Kleanthes, 방대한 저서를 통해 그 교설을 체계화한 Chrysippos 등이 있음.

 

로마에서는 Seneca, Epiktetos, Marcus Aurelius 등에 의해 계승. 이들은 당시의 일반적인 분류방식에 따라 철학을 인식론, 자연학, 윤리학으로 나누었고 윤리학에 중점을 두었다.

 

감각주의적 인식설 감각주의적 경험론의 입장을 취함. 우리의 정신은 백지와 같은 것이라고, 감각에 의해 표상(表象)이 생기고, 이 표상의 결합에 의해 경험이 성립, 경험을 바탕으로 이성(logos)이 개념을 형성하게 된다고 하여 지식의 원천을 감각적인 인상에 둠(p.53).

 

유물론적 범신론(Materialistic pantheism) 단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를 계승. 질료로서의 세계는 신의 신체라고. 형상으로서의 신은 세계의 혼.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보편적 이성(logos). 따라서 신과 세계가 별개가 아니라 동일한 실체의 양면이라고 봄‐이것이 범신론(汎神論) 임.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을 계승하여 신을 물리적인 형태인 [불]로 되어 있다고 봄으로써 유물론적 입장을 취함.

 

윤리학설 로고스 즉 신은 세계를 지배하는 만큼, 이성도 이 로고스를 분유(分有)하고 있으므로 로고스에 따르는 것이 곧 우리자신의 이성에 따르는 것이라고.

 

최고의 선은 이성에 따르는 것, 이는 곧 자연에 따르는 것이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위적 가치(부귀, 명예, 쾌(快), 고(苦), 생(生), 사(死)에 대한 정념과 집착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사실 이 인위적 가치는 [선도 악도 아닌 것](adiaphora)라고.

 

하지만 이러한 것들에 대해 집착하면서 불행해지므로 여기서 해방되어 이른바 무감동(apatheia)의 상태에 이를 때 우리는 비로소 정신적 자유를 얻는다고 함.

 

이때 비로소 우리는 로고스에 따라 최고선을 실현할 수 있다고. 그리고 이러한 상태에 도달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현자(sophos)요, 이에 반하여 정념(情念)의 노예가 된 사람은 어리석은 자(phaulos)다.

 

문제: 헬라스란 무슨 뜻인가?35)

동양인

야만인

서양인

그리스인

로마인

 

문제: 인간의 행복에 대해 스토아적 관점은?36)

정념을 최대한 실현한다.

인위적 욕망을 종교로 이긴다.

인위적 욕망을 물질적 성취로 이룬다.

욕망집착에서 벗어나 무감동에 이른다.

감각적 쾌락에 몰두한다.

 

문제: 유물론적 범신론이란?37)

이 세상 밖에 신이 있고 신은 물질이다.

이 세상의 안과 밖 모두에 신이 있고 신은 영혼이다.

이 세상 안에, 이 세상 자체가 신이고 신은 물질이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신은 정신으로서의 신이며 하늘에 존재한다.

신은 죽은 후의 세계에 존재한다. 영혼의 세계에 있으며 신은 혼령이다.

 

3.1.2. 에피쿠로스 학파의 사상(p.54)

Epikouros(B.C. 341‐270)에 의해 아테네에 창설된 학파, 로마에 이르러서는 Lucretius, B.C.95‐55)에 의해 계승, 전파. 이들도 철학은 인식론, 자연학, 윤리학으로 구분.

 

감각주의적 인식설 스토아 학파와 마찬가지. 우리의 지식의 원천은 감각(感覺)과 지각(知覺). 관념(觀念)이라는 것은 이 감각, 지각이 반복되어 기억 속에 축적된 것에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하다고.따라서 우리는 모든 진리의 기준을 이 감각과 지각에 두어야 한다고 함.

 

유물론적 원자설 역시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적 원자설 계승. 영혼도 미세한 불의 원자로 구성되었다고. 진정한 존재는 오직 원자와 공간뿐이라고. 따라서 세계의 생성은 기계론적으로 이뤄진다고 함으로써 신에 의한 창조설을 부인. 일체의 신비적인 요소를 배제함.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그가 완전하기 때문에 구태어 세계를 창조할 필요도 없다고. 또한 이 세상은 그렇게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고. 도리어 그들에게 있어서 신이니, 사후의 영생이니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마음의 평온을 교란시키는 것이라고.

 

윤리설 철학의 목표는 윤리학에 있다고. 이들의 주된 관심은 현실생활에 있어서의 부동의 확신과 내면적인 정신의 평온을 얻는데 있다고 함.

 

그런데 스토아가 인간을 보편적인 세계이성(logos)의 관계에서 파악한 데 비해, 에피쿠로스는 아무런 보편자와도 관계가 없는 고립적, 자연적 존재로 보았음.

따라서 인식설에 있어서 진리의 기준을 감각에 둔 것 처럼, 실천적인 면에서도 선악의 기준을 감각, 지각에 둘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감각에 좋은 것, 즉 쾌락은 선이요, 감각에 나쁜 것 즉 고통은 악이라고 보았음. 쾌락이 인생의 목적이라 하여 쾌락설을 주장.

 

그러나 적극적, 순간적인 쾌락이 실제로 고통을 수반하기도 한다. 또 고통이라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쾌락을 가져오는 것도 있다. 여기서 진정한 쾌락을 얻기 위해서는 쾌락과 고통을 올바르게 구별하는 식견(識見‐discernment)이 필요하다고. 이 식견을 바탕으로 소극적이기는 하되 영속적이고 정신적 쾌락이 좋다고 함. 이것을 마음의 평온(ataraxia)라고 함. 이 상태에 도달한 사람이 현자(賢者)라고.

 

문제: 에피쿠로스의 인간관을 설명한 내용은?38)

인간을 동물적 존재를 뛰어 넘는 신적인 모사(模寫) 즉 본뜬 존재로 보았다.

세계이성이 있다고 보고 인간도 보편적인 세계이성을 따라야 한다고 보았다.

아파테이아 즉 무감동의 상태로 가는 이성적 극기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을 아무런 보편자와 관계가 없는 고립적, 자연적 존재로 보았다.

진리의 기준은 인간의 감각과 경험이 아니라 신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고 보았다.

 

3.1.3. 회의학파의 사상

대표적인 인물은 퓌론(Pyrrhon, B.C. 365‐275)

 

사물의 진상은 불가지 퓌론에 의하면, 우리가 외계의 사물에 의해 동요되어 마음의 자유를 얻지 못하는 것은 불확실한 지식을 맹목적으로 신봉하기 때문이라고.

 

즉 외계의 사물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사물의 진상이 아니라 다만 우리의 감각이나 사유 속에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라고.

 

판단중지 그러므로 사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그렇게 불확실한 지식밖에 가져오지 못하는 일체의 판단을 중지하자고 함. 그래서 판단중지(epoche, suspension of judgment)에 의해 우리는 마음의 평온(ataraxia)와 무감동(apatheia)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이리하여 회의학파의 철학자들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단정적인 언사를 피하고 [~일 것이다]라는 불확실한 말투를 사용하였다고 함.

 

3.2. 종교시대의 철학사상

윤리시대의 철학이 무감동이니 평온이니 하는 것을 표방한 것은 어디까지나 정념을 억제하고 외계의 구속에서 벗어남으로써 확고부동한 인간의 정신적 안정을 확립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이것은 한낱 형식론에 불과한 것이요, 유한한 능력을 가진 인간으로서는 실천할 수 없는 요구였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자력에 의해 정신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을 포기한다.

 

한편, 로마의 세계통일에 따라 동양의 종교에 영향을 받기도 하는 가운데, 점차로 내면적 요구의 충족을 인간의 이성에서가 아니라 초자연적 권위에다 기대하기에 이름.

 

이리하여 철학이 윤리적 시대를 넘어서 독특한 종교적 색채를 띠게 된다. 그 대표적 인물이 Alexandria 학파의 필론(Philon)과 신플라톤 학파의 플로티노스(Plotinos).

 

3.2.1. 필론(Philon)의 사상

필론(B.C.20‐A.D.40)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 철학과 유태교 신학을 결합시킴. 그의 철학의 중심개념은 신(God).

 

God 신은 어떤 완전한 존재보다 완전하고, 어떤 선보다 선하다고. 그것에는 어떤 이름도 규정도 불가능하다고. 다만 존재(Jehovah)라고 할 수 밖에 없다고. 이는 절대적인 초월자로서 무한한 절대적인 활동을 하며, 일체의 근원이라고 봄.

 

신(God)은 절대적이며 세계를 초월해 있으므로 세계와 직접적인 교접을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은 필론의 이른바 [신의 대표자, 신의 사자, 제2의 신, 신의 장남]인 로고스(logos)를 통해 물질적인 혼돈으로부터 세계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이리하여 세계는 유시무종(有始無終)한 피조물로서, 신의 힘에 의해 끝없이 유지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에 추악(醜惡)함이 있음은 바로 물질 때문이라고.

 

인간도 역시 영혼이 타락하여 악의 근원인 육체의 무덤 속에 갇힌 존재다. 그러므로 인간은 육체의 구속으로부터 해발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신의 힘만으로 가능하다고. 따라서 신앙을 통해서만 된다고 함.

 

신앙에 의해 어떤 매개도 통하지 않고 신과 하나되는 상태가 바로 황홀(ekstasis‐ecstasy)의 경지로서 이것이 인간의 궁극목표라고 함.

 

3.2.2. 플로티노스의 사상(p. 57)

플로티노스는 고대철학의 말기를 장식하는 철학자. 그는 우주의 근원적 존재를 신이라고. 이 신은 어떤 대립도 초월한 절대자인 동시에 일체만물의 근원이라고. 이것을 그는 [일자(一者)] 혹은 [제일자(第一者)]라고. 그것이 인간생활의 궁극목표인 만큼 그것은 선(善) 혹은 최선(最善)이라고 보았다.

 

누스의 유출 마치 샘으로부터 물이 솟아 넘치고 태양으로부터 광선이 방사되듯이, 이 일자인 신으로부터 만물이 유출한다고.‐유출설(流出說).

 

즉, 모든 유기체가 완전히 발육하면 자기와 닮은 것을 생산하는 것과 같이, 가장 완전한 존재인 신으로부터는 완전자 자신의 모상(模像)이 유출된다. 이것이 곧 신 다음으로 완전한 누스(nous, 예지(叡智))이거니와, 그 속에는 사유주관(思惟主觀)과 이데아(idea)가 함께 들어있다고 봄.

 

영혼과 물질의 유출 완전자인 신으로부터는 누스, 영혼, 물질계가 순차적으로 유출된다고. 이것이 근원적인 신으로부터 멀어짐에 따라 완전성의 정도가 약해진다고 봄.

 

완전자인 유출물들의 이상은 일자인 신에게로 돌아가는 것. 따라서 영혼도 그 고향인 신에게로 돌아감을 이상으로 삼는다.

 

인간의 이상 그러나 영혼은 육체와 결합되고 감성의 방해를 받고 있으므로 신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금욕에 의해 영혼을 육체의 구속으로부터 해탈시켜야 함. 이 해탈에 의해 영혼이 신과 합일함으로써 체득하는 환희의 경지가 플로티노스는 황홀(ecstasy).

 

문제: 플로티노스에 대해 설명한 내용 중 틀린 것은?39)

고대철학의 말기를 장식하는 위대한 철학자로서 우주의 근원적 존재를 신이라고 했다.

이 신은 어떤 대립도 초월한 절대자인 동시에 일체만물의 근원인데, 이것을 그는 [일자(一者)] 혹은 [제일자(第一者)]라고 했다.

플라톤 사상을 그대로 계승하여 유출된 누스(예지)에는 이데아는 없고 단지 이데아를 본뜬 사유주관이 있을 뿐이다.

완전자인 신으로부터는 누스(nous), 영혼, 물질계가 순차적으로 유출된다고. 이것이 근원적인 신으로부터 멀어짐에 따라 완전성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함.

인간은 금욕에 의해 영혼을 육체의 구속으로부터 해탈시켜야 한다고 했다.이 해탈에 의해 영혼이 신과 합일함으로써 체득하는 환희의 경지가 그에 의하면 황홀(ecstasy)이다.

 

중세의 철학사상 (p.59)

헬레니즘시대의 철학적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

중세철학은 헬레니즘 세계의 종교적인 철학을 그대로 연장한 것도 또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발전한 것도 아니다. 동시에 중세철학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종교시대의 철학자인 필론(Philon)이나 Plotinos, 신피타고라스학파와 신플라톤학파에 속하는 철학자들의 사고 속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윤리시대의 실천적 사상에서 싹이 텄다고 할 수 있다.

 

윤리시대의 번뇌로부터의 해탈에 대한 욕구, 마음의 평정에 대한 갈망이 이어지면서 절대적인 존재, 초월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으리라 판단된다. 즉 영원하며 절대적인 자에 대한 갈망이 그것이다.

 

기독교의 특징 원래 기독교는 유태교에 대한 반발로서 등장했다. 즉 유대 나라 베들레헴에서 출생한 예수가 율법위주의 유태교가 완전히 의례화, 형식화되어 신앙의 참된 정신에서 벗어나 있다고 판단하고 이에 반발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는, 여호와 신은 율법적인 [노(怒)한 하느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느님]임을 역설하였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가 곧 하나님이라는 믿음에 바탕하고 있다. 예수는 계시된 하느님, 그 가르침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예수는 계시된 하느님의 진리이며 로고스(logos)의 육신화(肉身化)이다.

 

그리스 철학의 신,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신은 순수형상이요 부동의 원동자이며 최고의 선이다. 그리스의 철학에 등장하는 신은 한갓 논리적이고 관념적인 신이었다.

 

반면, 기독교의 신은 우리 인간의 내면생활에 직결되어 우리로 하여금 새롭게 태어나 본래의 자기자신이 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죄 가운데서 건져주는 그러한 인격신이었다.

 

신앙과 이성의 문제 (p. 60) 신인(神人 God‐Mensch)으로서의 예수가 철학에 대해 부여한 의의는 인간의 말로 초월자의 진리를 듣게 된 데 있다. 즉 현실세계 속에 그 존재근거가 되는 초월자의 세계가 계시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중세에 이르러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는 바, 그것은 신앙과 이성의 문제다. 신앙은 인간으로하여금 본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포함하여 영원 속에서의 생(生)을 보장해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성도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신앙은 믿음을 그러나 이성은 의심을 의미한다. 무릇 생각한다 함은 의심(doubt)함을 뜻한다고도 할 수 있다.

 

신앙이 지향하는 것은 초월적인 세계이다. 이에 비해 내재적인 이성이 관여하는 것은 볼 수 있는 차안(此岸)의 세계이다. 따라서 초월적인 것과 차안적인 것, 초자연과 자연의 문제로 나눠지기도 한다.

 

중세철학자들의 성격 중세철학을 특징지워 주는 것은 중세의 철학자들이 교회의 성직자들이거나 수도사들이라는 점. 따라서 이들 사상의 정당성 여부는 학문적이고 논리적인 타당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회에 의해 재가(裁可)되었다는 점이다.

 

중세철학의 구분: 시기적으로 교리의 조직화와 때를 같이하여 나타난 교부철학(敎父哲學)의 시대와, 게르만(German)족의 대이동이 끝나고 유럽에 안정이 찾아온 이후의 스콜라(Scholar)철학의 두 시기로 나뉜다.

 

문제: 기독교에서의 신과 그리이스의 신은 어떤 차이가 있나?40)

그리스 신과 기독교 신은 동일하다.

예수는 계시된 하느님의 진리이며 로고스(logos)의 육신화(肉身化)인데, 그리스 철학의 신은 논리적이고 관념적인 신이었다.

그리스 철학의 신은 절대자이며, 기독교의 신은 명목상의 신이다.

그리스 시대의 신은 오로지 하느님이며 기독교의 신은 관념상에만 존재하는 신이다.

그리스의 신은 유일신이며 기독교의 신은 다신교이다.

 

4.1. 교부철학 (p.62)

4.1.1. 니케아회의 이전

초기 기독교 마태, 마가, 누가복음 등 복음서에는 예수의 (아버지) 즉 하나님은 로고스(logos)와 동일시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벌써 그리스 사상을 원용(援用)한 신학적 해석을 찾아볼 수 있다.

 

♣ 사도 바울(Paul)은, 지혜를 찾는 그리스인에게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전도가 어렵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기독교적 신앙(religion)과 그리스적인 이성주의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운명적인 불협화음(不協和音)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이 불협화는 그대로 방치될 것이 아니라, 바울은 그리스적인 이성주의를 극복하고 이를 지배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기독교 철학의 전개를 최초로 본격적으로 시도한 것은 그노시스(Gnosis) 학파였다.

 

그노시스파의 지식우위 사상 그노시스(gnosis)란 영적인 인식이란 뜻. 처음 이 말은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신과의 합일에서 오는 신비적인 체험의 결과로서 얻은 직관을 의미했다.

 

그리스도 이전에 있었던 이 그노시스를 내세운 사상이 기독교와 결합됨으로써 기독교 그노시스파가 형성되었거니와, 나중에는 교회적 그노시스파에 의해 먼저의 그노시스파들은 이단으로 공격받았다.

 

교회와 신앙을 보호하고자 나선 대표적인 사람이 클레멘스(Clemens)와 오리게네스(Origenes)이었음. 이들은 그들의 사상이 보편적인 교회의 신앙과 완전히 일치되도록 노력함. 그러나 이들은 신앙에 대해 지식(知識)의 우위(優位)를 주장한 점에서 다함께 이성주의의 편에 선 사람들이다.

 

클레멘스  그에 의하면 인식이 최고의 것. 지자(知者)와 신자(信者)와의 관계는 어른과 어린이의 관계와 같다고. 참된 인식은 반드시 신앙과 일치하며, 그것은 철학, 변증법 및 자연관찰에 의해 얻어진다고.

 

오리게네스 그는 신의 계시는 믿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해도 하여야 한다고 생각. 성서의 표현 뒤에 숨어있는 신비한 뜻을 해득함으로써 종교의 극치인 [지자(知者)]로 나가야 한다고 함.

 

그가 얻게 된 사상, 즉 신은 그의 의지에 의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한 세계의 초월적이며 절대적인 원인이라고. 자유의지의 악용에 의해 타락한 인간은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게 된다는 것, 세계역사는 인류의 구원이라는 궁극목표를 향해서 진행되고 있다고 봄. 이러한 것이 기독교 신학의 주요부분으로 남게된 것임.

 

호교파41)의 신앙우위 사상 (p.64) 초기 기독교 철학은 이성주의였다. 그러나 이 이성우위 사상은 신앙이 전부인 교회 안에서 반대에 부딪혔다. 그 가운데 테르툴리아(Tertullianus)가 있음.

 

그에 의하면 철학은 이교도의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이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은 죽었다. 이것은 불합리한 일이지만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는 죽은 후에 부활하였다. 이 역시 불가능한 일이지만 믿는다”고 함.

 

4.1.2. 니케아 회의 이후

교부시대의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에 있어서 그 정점에 도달하였다. 방종한 생활을 접고 독실한 기독교인 어머니의 영향 하에 사교직(司敎職)을 맡아 일을 하고, 22권으로 된 주저 [신국(神國)]을 저술함.

 

회의의 극복 아우구스티누스는 철학적인 사유의 기초를 회의주의의 극복을 통하여 마련한다. 즉 일체의 것이 의심스럽다 해도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의식(意識)의 사실은 확실하며 따라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의심하며 생각한다는 내적 경험의 확실성, 그리고 나의 존재의 확실성이 그에게 있어서 철학적 사유의 기초가 됨.

 

여기서 데카르트가 보여주는 방법적 회의의 선구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데카르는 종교와 결별하고 인간 삶과 진리탐구의 확실성을 기했다는 점이 다르다.

 

신의 존재의 확실성 우리의 영혼에는 감각적인 속견에 미혹(현혹)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게 하는 이성이 있다. 우리는 이 이성의 빛을 통해서 영원한 진리를 파악한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설령 불멸이라 해도 시간 속에 갇혀있고 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성에 의하여 인식되는 진리의 존재근거는 영원불멸하며 자존적이며 정신적인 신일 수 밖에 없다.

 

Augustine에 의하면 진리는 신의 정신 속에 있는 원형으로서의 이데아가 우리의 이성에 비친 영상인 것이다. 이성은 우리에게 신의 존재를 가르쳐준다. 따라서 철학은 그에 있어서는 바로 믿지 않는 자를 하느님에게로 인도하는 전도자이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일치한다.

 

이성의 한계 그러나 우리 이성적인 인식에는 한계가 있다. 이성이 하느님의 존재를 알려준다 해도, 하느님의 본질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못한다. 오로지 신앙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비의(秘義)라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었을 때 신플라톤학파 철학자들의 저서에 친숙했다. 따라서 그의 사고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것 역시 플라톤적 사상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현상계의 사물은 각기 이데아의 모상(模像)이다.

 

그러나 현상계의 사물은 존재 그 자체인 이데아가 아니라는 점에서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존재이기도 하고 또 비존재이기도 하다]고 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질료는 먼저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신이 그것에다 형상(形相)을 부여했다. 따라서 질료는 창조 이전에 재료로 이미 있는 것이요, 그것마저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만물은 어떤 질료로부터 창조된 것이 아니라, 무(無)로부터 창조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성서에게 유래한 교회의 정통적 신조가 된 것이다.  

 

이로써 그의 사상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되며, 이 신앙을 통해서 그는 플라톤의 세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神國)]에서 서양 최초의 역사철학을 전개. 세계창조 이래 하느님의 나라와 악마의 나라, 천국과 지옥의 나라가 상쟁(相爭)한다고. 세계사는 신국과 이에 대항하는 지상의 나라의 투쟁의 역사라고 한다.

 

신(God)의 사랑으로 형성된 하느님의 나라는 지금은 이 세상의 저쪽에 있으며, 하느님은 이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는 그의 백성을 교회를 통해 불러 들이고 있다고 함. 이 세상의 종말에 이르러 참되고 하느님에 충성된 자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정복(淨福)을 누릴 것이나 그렇지 못한 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4.2. 스콜라 철학

Scholar철학은 에리우게나(Eriugena 810‐877)에서 발단한다. 그의 학문정신이 전 스콜라 철학을 일관한다. 즉 [진정한 종교는 진정한 철학이요, 진정한 철학은 진정한 종교다]라고 한다.

 

계시된 진리는 그저 믿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이해되어야 할 것이며, 교의는 받아 들여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치에 맞도록 해석될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합리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여기서 신앙과 지식 곧 이성이 등장하는 바, 합리적인 교리의 조직화에 힘쓴 사람은 안셀무스(Anselmus 1033‐1109)이다. 이는 스콜라 철학의 시조라 간주해도 좋을 것임.

 

교부시대(敎父時代)의 이성은 이단사상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거나 사람들을 신앙으로 인도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스콜라철학에서 이성은 교의의 해석 혹은 합리화에 기여한다. 그 결과 스콜라철학에서는 기독교사상이 이성의 기초 위에 그 종교적 체계를 형성해 간다.

 

4.2.1. 토마스 아퀴나스 이전

안셀무스의 보편실재론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안셀무스는 교리를 조직하고 그것을 철학적으로 논증하려고 한 사람이다.

 

그는 플라톤적인 입장에 서서 교회에 대해 신학적인 해석을 내렸다. 보편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Catholic으로서의 종교관을 벗어나 교회와 신도의 관계는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와 개물(個物)과의 관계와 같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교회에 속함으로써 비로소 참된 인간일 수 있으며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

 

교회의 절대적 권위는 [보편은 개물에 선행하는 실재(實在)]라는 플라톤적인 보편의 실재설(實在說)에 의해 보증된다. 하지만 이를 인식하는 것도 역시 인간의 이성이다.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인 삼위일체(三位一體‐trinitarianism), 원죄설,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도 철학적인 보편의 실재론에 의해 뒷바침된다.

 

로스켈리누스의 명목론 안셀무스는 [알기 위해 믿는다]는 이성주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지식이 교회의 신조를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스콜라 철학이 로스켈리누스(Roscellinus, 1050‐1120_에 와서는 논증적 이성주의가 극단화되어 교회의 신조에 어긋나는 주장도 했다.

 

그에 의하면, 부분(the parts)으로부터 이루어지는 전체(the wholes)는 다만 이름에 불과한 것이요, 따라서 실재성은 단지 부분에만 있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삼위일체론은 부정(否定)된다. 따라서 그의 관점은 곧 교회에 의해 이단사상(異端思想)으로 규정되었다. 안셀무스의 실재론적 견해와 대조적으로, 로스켈리누스는 보편은 한갖 이름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취했는데, 이를 명목론(Nominalism) 혹은 유명론(唯名論)이라고 한다.

 

아벨라르두스의 절충론 우리는 극단적인 논리적 이성주의가 결과적으로 교리와 양립될 수 없는 사상을 품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편논쟁이 곧 교의해석의 여러 갈래를 초래하는 근본소지가 됨도 알았다.

 

이에 대해 베르나르(Bernard)와 그로부터 비롯된 신비주의사상이 맞서 종교적 진리는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체험과 명상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말하자면 신앙의 초이성적인 성격이 강조된 것이다.

 

이에 대해 Abelardus(1079‐1142)는 플라톤적인 입장이 아닌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개념론을 들고 나옴으로써 이 보편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에 의하면 보편은 개물(個物)에 선행하는 것도 후행하는 것도 아니다. 반면 바로 개물속에 내재한다. 예컨대, 보편은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라고 하는 명제에서 [사람]같은 것인데, 이 보편개념은 우리가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개개의 사물에 내재하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4.2.2. 토마스 아퀴나스와 스콜라 철학의 말기

이성적 지식  Thomas Aquinas(1225‐1274)는 생전에 [천사와 같은 학자]로 칭송되었으며 사후 50년 후에 성도(聖徒)의 반열에 올랐던 그에 이르러 카톨릭의 정통 철학사상이 확립되었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얻는 지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 속에 있는 [자연의 빛]인 이성을 통해서 사물의 본성을 밝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말씀 속에서] 즉 [신앙의 빛]에 의하여 사물의 본원적인 존재에 관해 알게되는 것이다. 철학의 지식은 전자(前者)에 속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이 세계의 질서를 목적적인 운동의 계열로 보았다. 자연의 목적적인 질서계열에는 본원적인 존재원인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구태어 계시에 의하지 않고서라도 우리의 이성만으로 알 수 있는 진리다. 철학은 비록 삼위일체나 신의 육화(肉化)와 같은 신앙의 비의(秘義)를 밝혀줄 수는 없어도, 사물들의 본원적인 존재원인으로서의 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확실하게 알려준다는 것이다.

 

계시와 신앙 (p.70)자연은 그 자신을 위하여 그것을 넘어선 초자연을 필요로 한다. 이 초자연의 진리에 대응하여 우리의 내재적(內在的)인 이성을 초월한 계시(啓示)에 입각한 신앙이 있게 된다. 이성은 그 본성에 있어서 궁극적인 진리의 소유를 원한다.

 

이성은 진리의 존재를 지시해 줄 뿐이요, 충족되지 못한 이 소망을 만족시켜 주는 것은 바로 신앙이라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서는 이성과 신앙, 자연과 초자연이 그것들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조화를 이룬다. 그는 “은총은 자연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완성시킨다”고 한다.

 

이제 기독교 전도의 초기부터 교회가 봉착하였고 중세철학을 일관하여 끊임없는 논쟁과 이단시비를 빚어냈던 신앙과 이성, 계시와 철학적인 지혜의 문제는 일단 해결을 보게 된 것이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 토마스 아퀴나스는, 국가는 교회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함으로써 양자의 조화를 시도함.

 

스콜라 철학의 쇠퇴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 교회의 정통사상(正統思想)은 정립되었으나 그의 사후 얼마 안되어 그의 사상에 반대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였다.

 

첫째 인물이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1274‐1308)였다.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지설(主知說)에 반대하여 주의설(主意說)을 주장하였고, 신앙과 이성, 신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그와 상반된 주장을 했다. 즉 신학과 철학은 일치(一致)하거나 상보적(相補的)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자신이 유명론(唯名論)에 반대하였지만 자신의 사상 속에는 유명론적 색채가 농후했다. 이 경향이 윌리엄 오캄(Willam Occam, 1280‐1349)에 이르러 유명론의 부흥으로 표면화되었다.

 

그래서 신앙과 이성이 결별(訣別)하기 시작하였고, 이와 더불어 스콜라 철학은 붕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즉 그에 의하면 존재는 오직 개체뿐이요, 보편이란 개체를 가르키는 기호(記號)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개체에 대한 지각만이 인식의 원천이라고 주장하고, 보편적인 개념에 입각한 신(神)의 존재의 증명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와 같은 초월적인 문제는 철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신앙의 문제라고 하였다.

 

이것은 곧 철학적인 진리와 종교적인 진리를 갈라놓는 것으로서, 스콜라 철학의 처음의 기도, 즉 신앙을 철학적으로 정초(定礎)하려고 한 기도가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드러낸 셈이다. 따라서 스콜라 철학은 붕괴가 불가피했다.

 

한편 이와 때를 맞추어 마이스터 에카르트(Meister Eckart, 1260경‐1372)에 의해 대표되는 신비주의, 즉 교회의 가르침을 체험과 상상을 통해서 내면적으로 심화시키려는 신비주의 사상이 민중 속에 널리 전파되었다. 이리하여 신앙과 이성의 괴리(乖離)는 더욱 더 결정적인 것으로 되어 갔으며, 이에 따라 스콜라 철학의 몰락은 더욱 촉진되었다.

 

문제:보편논쟁이란 무엇인가?42)

신이 산에 있는가 아니면 하늘에 있는가 하는 논쟁

신이 하나인가 아니면 둘인가 하는 논쟁

신이 둘인가 아니면 더 많은가 하는 논쟁

신이 하늘에 있는가 아니면 바다에 있는가 하는 논쟁

신이 실재 즉 진정으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인가 혹은 명목상의 이름뿐인가 하는 논쟁

 

문제: 중세말기에 이르러 종교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43)

일신교에서 다신교로 전환되었다.

신(神)의 영역에 이성의 영역이 예속되었다.

신(종교)의 영역과 이성(철학)의 영역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철학은 신학의 우위에 설 수 있었다.

중세말기에도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그대로였고 철학은 여전히 신학에 봉사했다.

 

Ⅱ. 근세철학 (p.73)

철학과 종교, 지식과 신앙을 하나로 통일하려던 중세기 전반에 걸친 과제는 성과가 컸다. 그러나 중세 말엽에 와서 지성보다는 의지를, 보편성 보다는 개체성을 소중히 여기는 유명론(唯名論)과 교회권력에 대한 인간정신의 속박을 반대하는 신비주의(神秘主義)가 일어남에 따라 스콜라 철학은 쇠퇴일로를 걷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당시 동서양의 교통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십자군시대 이래 지중해의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다. 특히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 함락되자 수많은 희랍의 학자들이 이탈리아로 망명해 왔다. 그리하여 이탈리아에서는 이역(異域)의 문화를 섭취할 가능성이 싹텄는 바, 이것이 개화한 것이 다름아닌 르네상스(Renaissance, 문예부흥(文藝復興))이다.

 

이 때의 시대정신은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정치이론을 낳게 되었고, 한편 자연과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자연철학(自然哲學)과 신비주의를 낳게 되었다.

 

근세철학의 방법론적 의식은 베이컨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합리론에 있어서는 데카르트에서 싹트기 시작하였다. 이 방법론은 회의(懷疑)의 방법이었다.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실체는 정신, 신(神), 그리고 물체였다. 그러나 실체는 스피노자에 있어서는 신뿐이다. 왜냐하면 실체란 자존(自存)하는 것이며, 무한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쯔에 이르러 실체의 개념은 철저해지면서 활동할 수 있는 존재자, 즉 정신적인 단자(monad)單子)로 발전한다.

 

한편, 경험론에 있어서의 방법론적 의식은 베이컨의 우상설(偶像說)과 귀납법(歸納法)을 낳았고, 로크에 이르러 경험론은 본유관념을 부정하는 백지설(白紙說)을 주장하게 되었고 사물을 제1, 제2의 성질로 나누었다.

 

록크에서 애써 구분된 제1, 제2의 성질은 버클리에 있어서는 주관적 성질로 통합되어, 물체는 관념이며 [존재는 지각이다]라는 관념적 색책가 농후하게 되었다. 휴움에 이르러서는 존재는 드디어 주관적(主觀的) 신념(信念)으로 변하여, 자연과학의 원리인 인과율(因果律)까지도 주관적 신념으로 환원하여 회의론(懷疑論)에 빠지고 말았다.

 

휴움의 비판으로 말미암아 독단론의 잠에서 깨어난 칸트는 경험론과 합리론을 종합, 통일했다. [인간은 자연에서 법칙을 따오는 것이 아니라, 오성이 자연에다 법칙을 규정한다]는 그의 말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를 의미하거니와, 대상(對象)위주의 인식론이 칸트에서 주관위주의 인식론으로 역전되었다.

 

그러나 칸트가 남겨둔 물자체(物自體)의 세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물자체와 현상,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의 이원론(二元論)을 일원론(一元論)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한 것이 피히테에서 시작되는 독일 관념론이다.

 

피히테는 절대적(絶對的) 자아(自我)로써, 셸링은 절대자(絶對者)로써, 그리고 헤겔은 이성, 이념, 세계정신, 그리고 절대정신으로서의 절대자(絶對者)로써 독일 관념론을 완성시켰다.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哲學)

스콜라 철학의 쇠퇴와 더불어 교회의 교권으로부터 독립된 어떤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정신이 당시의 학문계에 싹텄으니, 이 정신은 우선 문예부흥(文藝復興)으로 나타났다.

 

문예부흥은 단순히 고대의 문학과 예술의 부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로 그리스적 정신의 부활이며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새로운 문화의 발흥(勃興)을 의미한다.

 

부흥은 그 무대를 우선 이탈리아에서 열었고, 다음에는 독일로 옮아가 종교개혁(宗敎改革)을 일으켰다. 한편 근세의 발랄한 자기주장의 욕구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적 권력과 사회적 성취에 기대를 걸게 했다. 이로써 정치사상과 법률사상이 발전했다.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이 발달하고, 면면이 이어오던 신비주의(神秘主義)가 종교개혁에 깊은 영향을 주고 뵈메에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5.1문예부흥(文藝復興)과 종교개혁(宗敎改革)‐(p.75)

 

르네상스의 의미 르네상스는 보통 문예부흥이라고 번역된다. 대체로 르네상스라는 말은 르네상스 말기의 미술사가 바자아리가 사용한 말이라고 전해진다. 그에 의하면 예술은 콘스탄틴 대제(大帝) 이후에 중세에서 쇠퇴하였다가 13세기 말엽에 플로렌스 화가에 의해서 신생(新生‐renascita)하였다고 한다. 이 신생 또는 갱생(更生)을 의미하는 renascita가 Renaissance라는 말의 기원이라고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르네상스와 더불어 연상되는 것은 우선 다빈치(Leonardo da Vinci), Raphael, Michelangelo 등의 미술가들이며, 문학에 있어서는 A. Dante, F. Petrarca, G. Boccaccio 들이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문예부흥으로만 본다는 것은 다소 그 뜻이 좁으며, 어떤 오해까지도 자아낼 우려가 있다. 바자아리에 앞서서 마키아벨리는 재생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문예부흥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탈리아의 민족부흥, 정치부흥을, 나아가서는 윤리부흥, 종교부흥의 뜻까지도 포함한 광범한 부흥운동, 말하자면 어떤 새로운 생명이 되살아나는 사태를 의미하는 말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14세기 구라파에는 특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벌써 낡은 중세의 카톨릭적 세계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는 충동이 있었다. 십자군의 영향, 동로마제국과의 관계, 그리고 봉건제도 자체의 붕괴 등 여러가지 사정을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함.

 

그러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14세기의 구라파가 지니고 있었던 새로운 생명에의 요구가 결정체를 이룬 것이 르네상스였으며, 이것을 통해서 중세는 근세로 이행한다는 것이다.

 

인문주의자 근세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세의 세계관은 신중심의 세계관이며, 신과 피조물 사이에는 절대적인 비약과 간극과 대립이 있었고, 세계는 계층적 구조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즉 중세적 세계관의 특징은 신의 초월성(超越性), 신과 세계와의 대립성(對立性), 세계의 계층성(階層性) 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것은 중세의 상징인 고딕건축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예술에는 초월과 대립과 계층 대신에 신적인 것의 내재, 모든 것의 조화, 그리고 무한에의 연속적인 전망이 엿보인다. 부르크하르트의 말대로 르네상스는 세계와 인간의 발견시대다.

 

신과 대립하는 세계도 아니며, 신과 모순되는 자연도 아니며, 죄에 젖어있는 인간도 아니다. 신은 세계를 초월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내재하며, 자연은 생산하는 자연이다.

 

후에 언급하겠지만 르네상스 철학의 특색을 이루고 있는 대우주(Macrocosmos)와 소우주(Microcosmos)의 사상, 신비주의, 현실적인 인문주의 등은 다같이 동일한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벌써 중세사상 속에서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르네상스는 결코 중세와의 비연속이 아니며, 돌발적인 현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새로운 현상의 계기를 우리들은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콘스탄틴노플에서 온 학자와의 접촉, 신비주의, 그리고 아라비아의 자연과학자들이 이러한 근세적인 현상의 중요 계기들이 된다.

 

Humanist(인문주의자)라는 말은 원래 신적인 것에 관한 서적을 의미하는 divina에 대하여, 인간적인 것에 관한 서적을 의미하는 humaniora에서 유래된 말이며,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humanist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humaniora라 불리워지는 것은 중세 스콜라적인 서적이 아니라, 희랍·로마의 고전이기 때문에 humanist는 결국 그리이스 고전을 연구하는 사람을 의미하게 된다. 그리하여 14세기에 이탈리아에 있어서 그리이스 고전에 대한 동경이 소생하였다.

 

플라톤주의자 1430년에 동로마제국의 황제가 동서 양교회의 융합을 위해 사절단을 로마에 보냈다. 그 사절단 중에 두 사람이 유명한 플라톤주의자였으니 그들은 플레톤(G.G. Plethon)과 벳사리온(B. Bessarion)이었다.

 

플레톤은 플로렌스에서 플라톤 철학을 강의하였는데 그 반응이 대단하였으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플라톤 아카데미아까지 창설했으며, M. Fichino에 의한 플라톤과 플로티노스의 번역이 나왔으며, G. Pico della Mirandolla도 유명한 플라톤주의자였다.

 

그는 세계를 세개의 층으로 생각한다. 최하층은 물체의 세계, 그 위에 천체의 세계, 그리고 최상의 세계가 순수이성의 세계라고 한다. 그는 모든 것을 신적인 것의 유출로 보았다.

 

여기서 세 개의 층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중세적 색채이지만 그것을 신적인 것의 유출로 보는 신플라톤적 사고에 근거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또한 인간예찬의 사상도 아울러 생각할 중요한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도 종래의 스콜라의 해석에서 벗어나서 자연철학의 새로운 기초로서 발견되었거니와, 이와 같은 새로운 해석은 토마스·아퀴나스적 해석이 아니라, 알렉산드로스파의 대표자인 폰포나찌와 아베로에스파의 베르니아스에 의한 새로운 해석들이 나왔다.

 

종교개혁 p. 78 르네상스는, 중세의 교회적 권위에서 탈피하여, 인간중심의 입장을 문화일반의 영역에서 추진하였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또한 종교적 영역에 있어서도 발발하였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이다.

 

이것은 1517년 10월 31일 로마교황청의 면죄부(免罪符) 발매(發賣)에 대한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95개조의 항의문에서 발단되었다.

 

종교개혁은 일반적으로 카톨릭 교회의 전통으로부터 탈피하여 법왕(法王) 및 교권제도와 의식을 배척하고, 복음주의(福音主義‐biblicism)에 입각하여 크리스트 교회를 회복하자는 것이 그 목적이다.

 

과연 면죄부로 말미암아 죄(罪)를 면할 수 있는가? 과연 그것에 의하여 기독교들은 의(義)로워지겠는가? 이러한 물음은 드디어 기독교의 근본문제에로 심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루터 자신은 철저하게 죄의식으로 인한 부단한 회개(悔改)를 설복하였다.

 

기독교의 의란, 법왕의 권력의 매개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크리스트에게 계시된 신의 말씀을 믿는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때 인간의 영혼은 비로소 법률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속화된 카톨릭 교회의 전통을 배척함으로써 기독교의 외면적 형식성은 내면적으로 내용화되었으며, 그곳에 성립하는 신앙의 주체성은 성서 그 자체에 근거하는 원시 기독교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5.2. 정치사상과 법률사상 (p.79)

마키아벨리 정치에 대한 근대적인 고찰은 N. Machiavelli(1469‐1527)의 군주론(君主論principe)에서 시작된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연구에서 그의 조국 이탈리아를 위해 독립된 국민적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국민적 국가에 대한 최대의 장애를 로마교회에서 찾았다. 그래서 국가와 교회와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부단한 탐욕 때문에 악으로 기우는 경향이 많다. 그러므로 통치는 도덕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권력에 의해 성취되어야 한다고.

 

정치이상을 위해서, 국가의 운명이 위기에 처할 때면 더욱더 [무엇이 올바르며, 무엇이 악한 것인가?]를 묻지 말고 [무엇이 유효하며 무엇이 유해한가?]를 물어야 한다고 본다.

 

도덕에서 탈피할 수 없는 사람은 오직 사인(私人)으로서 생활할지어다. 인간이란 강제에 의해서만 선을 행하는 것이다. 기근과 가난이 비로소 인간을 근면하게 하며, 법의 강제가 인간에게 선을 가져다 준다.

 

따라서 군주는 [여우에게 배워 모함에 속지 않는 교지(狡智)를 가질 것이며, 사자에게 배워 이리떼를 위압하는 용맹을 떨쳐야 한다].

 

이렇게 군주의 행위규준은 정권을 획득하고 이를 위해 반도덕적 행위도 선(善)으로 시인하여 독재적 색채가 농후하다. 이를 우리는 Machiavellism이라 부른다.

 

모아(T. Moore, 1480‐1535)

그의 저작 [유토피아Utopia]는 플라톤 이래 처음으로 나타낸 이상국의 묘사다. 오늘날 사회사상가들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유재산제의 폐지, 노동조직, 부인문제, 인구과잉의 문제, 전쟁에 대한 혐오 등이 제기되고 있다.

 

보댕(J. Bodin 1530‐1596)

그는 권모술수로 세상을 제압하는 권력정치에도, 이상국가의 정치이론에도 반대하여 제2의 국가이론을 대표.

 

그는 협동체가 실현하고자 하는 정의(正義)는 원래 선량한 인간이 가지는 자연적 광명(光明)에서 나온다는 것. 따라서 그는 마키아벨리에 정면으로 대립한 사람. 동시에 절대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는 주권개념을 수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배자는 신(God) 또는 자연법칙에 따라 통치할 것을 주장함.

 

그로티우스(H. Grotius, 1583‐1645)

국가주권을 절대시한 보댕에 대해 국민주권을 옹호한 J. Althusius, 법을 자연의 영원한 법칙, 특히 인간성에 정초시키려 한 A. Gentili의 뒤를 이어 국민주권 사상을 확립한 이가 그로티우스.

 

그에 의하면 이성에 바탕한 법률과 계시에 바탕한 신적인 법률은 구별되어야 한다. 자연법의 종국적인 창조자가 신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변경할 수는 없다.

 

이것은 오직 인간의 내적원리, 인간본래의 자연적 사교본능에서 나온 것. 왜냐하면 협동생활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 따라서 개인의 권리는 사회와 대립하더라도 소실되지 않는다. 실제로 그에게 있어서 법질서 전체는 그 본질상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

 

자연철학(p.82)

 

부르노(G. Bruno, 1548‐1600)는 15세에 나폴리의 수도원에 들어가 고대, 중세철학을 연구함. 그는 텔레쇼(B. Telesio, 1508‐1588)와 코페르니쿠스의 영향을 받음.

 

그는 자연적, 인간적인 성격 즉 진리사색의 본성과 수도생활이 서로 병립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종교와 철학은 구별되어야 하며, 학문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결국 수도원을 떠났다.

 

그는 우주가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극소(極小)한 미분자(微分子)로 형성되어 있다고. 이 미분자야말로 개체이며, 개체는 물질적이면서도 정신적인 것이라고 함. 이것을 그는 단자(monade), 라고 부른다. 이것이 라이프니쯔의 단자론에 영향을 주었다.

 

그에 의하면 신은 이 단자가 곧 신이라고 했다. 신은 최대자이면서도 최소자이다. 각 단자는 하나의 신적인 무한한 존재의 유한한 표현형식이다. 이 사상은 스피노자의 범신론에 영향을 주었다.

 

대륙의 합리론(合理論)‐89쪽

르네상스가 발견한 인간의 자기정신은 인간의 힘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힘으로써 안 것만을 진리로 믿게 되었다. 이러한 인간의 자기힘은 감각을 통한 경험의 힘이요, 순수한 사유의 힘인 이성의 힘이다. 이 이성의 힘이 데카르트에서 비롯되는 대륙의 합리론임.

 

6.1. 데카르트

근세철학에 있어서 방법론적 의식은 베어컨에 의해 경험론적 방향에로 타개되었다. 한편 이것을 이성론적 방향에서 확립한 사람은 베이컨과 더불어 근세철학의 창시자로 불리워지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

 

그는 일체의 불확실한 것을 제거하고, 확실한 학문의 새로운 근거를 얻기 위해서는 전승된 학문뿐만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까지도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는 일체의 것을 의심했는데, 의심속에서 의심되지 않는 것이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의심된다는 것, 의심한다는 사실은 확실히 남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 내가 있다는 것도 또한 확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철학의 확고부동한 근본원리에 도달하였으니 그것이 곧 나는 사유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원리를 이끌어냈다.

 

소크라테스가 진지(眞知)를 얻기 위해 무지(無知)를 고백한 것 처럼, 그의 회의(doubt)는 확실한 지식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서 수행된다. 따라서 위 진술은 모든 추리의 근거가 되는 자명한 원리이며, 모든 이론의 출발점으로서의 제1원리로 간주된다.

 

정신: 그는 사유하는 것(res cogitans)으로서의 [나]의 존재를 내적(內的) 명증성(明證性)에 의해 확인함으로써 정신의 존재를 확립함.

 

신(神): 정신이 존재한다면 신의 존재가 증명되어야 하는데, 그에 의하면 우리의 의식에는 무한하고도 완전한 신의 관념이 있는데 이 관념은 상상에 의해 만들어지는 허구관념도 아니요, 감각에 의한 외래관념(外來觀念)도 아닌 생득관념(生得觀念)으로서의 본유관념(本有觀念‐innate idea)

 

물체: 우리의 이성에 의하여 파악된 외계 즉 물체는, 우리가 신의 성실성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상, 우리가 파악한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실체: 데카르트에 의하면 정신, 신, 물체의 3자를 실체(substantia)라고 하였다. 신을 무한실체라고 한다면 정신과 물체는 유한실체가 된다. 정신의 속성은 사유(cogitatio)이며 감정, 욕구, 의지 등은 정신의 이차적 성질로서 양태(modus)라고 함.

 

그는 사유실체와 연장실체로서 정신과 물체를 실재적으로 구별함으로써 정신과 물체의 이원론적 대립을 낳게 한 장본인이다.

 

6.2. 스피노자 ‐92쪽

데카르트의 철학이 프랑스 뿐만 아니라 그가 학문연구차 20년을 보냈던 화란 즉 네덜란드에서 많은 지지자를 얻었다. 스피노자의 철학체계는 실체, 속성 그리고 양태의 3개념에 근거하고 있다.

 

데카르트의 사상을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측면에서 진전시킨 스피노자는 모든 사물과 사건이 신의 본질의 영원한 필연적 결과라고 한다.

 

스피노자는 하나의 실체, 하나의 절대적으로 무한으로서의 실체만이 가능하며, 이 실체를 신이라고 했다. 그는 이 신이 기독교의 인격신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 따라서 신이 오성(悟性)과 의지(意志)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가령 삼각형의 본질에서 ‘내각의 합이 2직각’이 나오는 것 처럼, 신의 무한한 본질에서 만물 및 그것의 법칙이 영원히 나온다. 따라서 만물도 신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고 본다. 신은 세계 즉 만물의 초월적 원인이 아니라 내재적 원인(內在的 原因)causa immanens)이다.

 

신이 만물의 내재적 원인이라는 스피노자의 사상에서, 신은 만물이요 이 만물은 자연이며, 따라서 신은 자연이라는 귀결이 나온다. 이와 같이 신을 곧 자연으로 보는 그의 신관은 내재신관(內在神觀) 또는 범신론(汎神論)‐pantheism이며, 자연의 삼라만상은 모두 신성의 표현이다.

 

속성과 양태: 데카르트는 신, 정신, 물체를 실체라고 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신만이 실체이다. 그리고 정신으로서의 사유와 물체로서의 연장은 오히려 실체의 속성이 된다.

 

그런데 물체는 정신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정신은 물체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이와 같이 스피노자도 데카르트 처럼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분리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 두 세계 즉 정신과 물체는 결국 같은 것이며, 동일한 실체의 서로 다른 두 개의 존재양식에 불과한 것이다.

 

[원의 관념과 현실의 원은 동일한 것이며, 동일한 것이 전자의 경우에는 사유라는 속성에 있어서, 후자의 경우에는 연장이라는 속성에 있어서 보이는 데 불과하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그래서 데카르트의 고심하였던 심신관계(心身關係)에 관한 설명도 해결된다.

 

양태란 실체라는 보편적 존재가 특수화하는 개별적인 존재양식이다. 양태는 부단히 변화하며 소멸하는 것이며, 실체에 대한 양태의 관계는 마치 바닷물에 대한 파도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정신적 현상은 사유라는 속성의 양태이며 물질적인 현상은 연장이라는 속성의 양태이다.

 

라이프니쯔(Gotti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96쪽

그는 자연과학적 정신과 종교적 요구의 조화를 이루고자 했다. 그리고 수학적 방법에 깊은 관심을 갖고 수에 대한 엄밀한 논리적 방법을 법학이나 윤리학 방면에 적용하고자 했다.

 

단자론: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실체개념을 철저화함으로써 절대적 무한자로서 신만이 실체라고 함.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이 무한한 실체로부터 어떻게 유한한 사물이 생겨나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라이프니쯔는 오히려 유한한 사물 자체 속에서 실체를 생각하려고 했다. 사물이 진정 존재한다는 것은 활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활동하지 않는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체란 활동할 수 있는 존재자이다].

 

라이프니쯔에 의하면 첫째로 실체는 개물(個物) 즉 단자(monade)라는 것, 둘째로 많은 단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원자는 양적 차이는 있으나 질적 차이가 없다. 단자는 서로 질적 차이를 갖는다. 원자는 공간적 크기를 갖지만 단자는 불가분의 [형이상학적 점]이다. 단자는 공간적인 규정을 넘어선 비물질적인 실체다.

 

영국의 경험론(經驗論)‐102쪽

중세 기독교 체제에서의 우주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원적인 자연관을 토대로 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하늘에서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원운동이 이뤄지는 데 비해 지상에서는 원소들이 제각기 자기 자리를 찾아서 우왕좌왕한다고 했다.

 

여기에 종교적인 견해가 덧붙여져 지상은 죄악의 온상이라 했다. 범신론에 이르러 신이 자연속에 스며있다고 하여 자연을 격상시켰으나 자연을 그만 신비화시켜 놓았다.  근세 자연과학은 자연에서 이 종교적, 신비적인 베일을 베끼는 데서 성립하였다.

 

경험론(empiricism)이란 인간의 지식이 감각적 경험에서 비롯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고대부터 있었는 바 프로타고라스로 대표되는 고대 소피스트나 또는 중세 말기의 유명론자(唯名論者)들은 모두 경험론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근세의 이 경험론은 여기에 터하여 더욱 철학적으로 진전시켜 나갔다.

 

7.1. 베이컨(F. Bacon 1561‐1626)‐103쪽

꿀벌의 방법: 근세 경험론의 선구자. 그것은 그가 자연연구의 방법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 2,500년 동안 학문의 진전이 없었던 것은 지식을 습득하는 올바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였다.

 

이리하여 종전의 학문의 방법의 종주(宗主)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르가농(organon)‐논리학(論理學書)]에 반대하여 [신 오르가눔(Novum Oragnum, 1620)을 저술하였다.

 

그는 책 속에서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은 실험을 일삼거나 아니면 독단을 휘두른다. 실험을 하는 사람들은 개미와 같다. 그들은 오직 수집하고 사용한다. 독단적 추리가들은 자신 속에 있는 것을 풀어서 집을 짓는 거미와 같다. 그러나 꿀벌은 제3의 중간을 택한다. 벌들은 들에 핀 꽃으로부터 재료를 모아들이나 그것을 그들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키고 소화시킨다. 이 꿀벌의 태도와 비슷한 것이 철학의 길이다. 왜냐하면 철학은 오로지 이성의 힘에 의지하지도 않고 박물학이나 실험을 통해서 수집한 것을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기억 속에 저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변화시켜서 오성(悟性) 속에 저축하는 것이 참된 철학이다.…”라고 한다.

 

베이컨이 내세우는 꿀벌의 방법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을 소극적인 측면과 적극적인 측면의 두 부분으로 나눈다. 이것은 각각 우상론(偶像論), 귀납법(歸納法)으로 명명되어 설명된다.

 

우상론: 우상(idol)이란 과학적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는 여러 편견 또는 선입견을 말한다. 우상을 그는 네 종류로 나눈다.

종족의 우상(idola tribus)‐인간이라는 종족, 즉 인류의 본성에 유래하는 편견이다. 인간이 감각은 착각이나 환상을 면할 도리가 없고 또 인간의 오성은 감정의 개입 등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수가 많다. 가령, 인간은 자기들의 목적적 행동을 한다고 해서 자연도 마찬가지로 마치 일정한 목적을 향해서 변화(발전)해 가는 것 같이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바로 이렇게 자연을 해석했다. 이 방식은 스콜라철학에 의해 계승된다. 이런 의인법(擬人法)이나 이에 따른 자연의 목적론적 해석은 중대한 편견이요, 베이컨에 따르면 자연은 어디까지나 인과관계(因果關係)에 따라 기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동굴의 우상(idola specus)‐이는 각 개인의 특수성에 따라서 가지게 되는 편견. 인간은 누구나 특유의 동굴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이 동굴 속에 틀어박힐 때 이 속으로 자연의 빛이 들어와도 그것은 변색하기 마련이다. 가령, 각자는 성벽(性癖)이 다르고 자라는 환경이 다르고, 또 받은 교육, 읽은 책, 교제하는 사람, 속하는 단체가 다르다. 이런 데서 각자의 편견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잘 관찰하고 검토해야 한다.

 

시장의 우상(idola fori)‐ 시장에는 언어를 매개로 상행위가 이뤄진다. 이는 언어사용에 의한 편견이다. 가령, 우리는 운명이니 부동의 원동자니, 또는 불의 원소 등 언어만 잇으면 이에 대응하는 사물이 실재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것을 안다고 간주한다. 그리하여 이런 것에 관한 쓸 데 없는 공론(空論)을 펴며 또 공허한 논쟁을 일삼기도 한다. 그러나 언어는 한갓 기호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기호에 사로잡히지 말고 경험에 나타나는 사물 자체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일반적으로 승인되고 있는 고대 및 현대의 학설과 주장은 모두 작가자신이 꾸며내어 무대에서 공연하는 연극각본에 불과하다. 그것은 사실보다 더 정연하여 사람들은 믿기 일쑤다. 이것은 사람들이 전통이나 권위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은 데서 알 수 있다. 가령, 플라톤의 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으려고 한다. 우리는 이런 무대장치에 현혹되지 말고 스스로 경험하고 관찰하는 바에 충실히 따름으로써 이 우상을 타파해야 한다.

 

이렇게 모든 우상, 모든 편견을 버리고 베이컨은 사실의 세계, 경험의 세계에 들어갈 것을 권유한다. 여기에 그의 학문연구의 새로운 방법의 적극적 측면이 등장하게 된다. 귀납법: 참된 학문연구는 먼저 관찰과 실험에 의해서 사실을 수집하고 다음에 이 사실들의 원인과 법칙(형식)을 발견하는 데 있다. 이것이 귀납법(induction)이다.

 

앎은 힘이다‐106쪽: 베이컨은 귀납법이 자연연구의 참된 방법임을 역설한다. 종전의 연역법(演繹法)은 무용한 것이다. 삼단논법(三段論法)은 이미 아는 진리를 새로이 배열하는 그치며 따라서 그것은 설명의 논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귀납법은 경험에 호소하며 지식의 자료를 감각적 경험에서 얻어 가진다. 따라서 그것은 자연에 관한 법칙을 발견해 낼 수 있다. 자연의 인식이란 자연의 법칙을 알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

 

Knowledge is power 라는 그의 유명한 명제에서 앎이란 자연에 관한 앎이요 힘이란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힘, 즉 그럼으로써 인류문화를 발전시킬 힘을 말한다. 그러나 베이컨은 수학이 맡아보는 역할을 깨닫지 못했다. 이것은 그의 커다란 결함의 하나다. 그는 자연과학을 사물의 질적 기술이라는 관점에서만 이해하고 양적 측정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지 못했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

He thought, like Bacon, that knowledge meant power, and hoped to cure the ills of a society on the verge of civil by sketching a rational reconstruction of society like a geometer’s figure.

 

For Hobbes used the social contract theory to demonstrate the necessity of an absolute sovereign –by consent, not by Divine Right. So his doctrine could be used to justify any government, provided that it governed – first of all that of Cromwell and later that of Charles Ⅱ.

 

7.2. 록크(J. Rocke, 1632‐1704) 107쪽

근세 경험론을 확실한 토대위에 세운 사람이 로크이다. 그는 데카르트의 표상의 기원에 관한 반대입장을 취하고 베이컨의 경험론을 심리학적 인식론에 의해 보충했다. 그는 이론철학의 대표적 저술은 [인간오성론(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690)]이다.

 

인간오성론: 인간오성론의 저술목적은 ‘인간의 지식의 기원, 확실성 및 범위’를 연구하는 데 있다. 이렇게 인식능력에 대한 비판을 조직적 체계적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로크는 인식론(theory of knowledge)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백지설(白紙說): 지식의 기원에 대해 로크는 합리론의 본유관념설을 정면으로 반대한다. 가령, 도덕법칙을 합리론자들은 선천적인 본유관념이라고 하지만 그 중 어떤 것은 사람에 따라서, 국가나 사회에 따라서 그리고 시대에 따라서 다르다. 또 동일률이나 모순률 같은 논리학의 원리도 선천적이라면 아이들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흑은 백이 아니라든가 단 것은 쓰지않다는 것을 알 뿐, 저런 원리를 나중에 알게 된다. 최초의 인식은 보편적 명제나 추상개념이 아니라 감각적인 개개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혹시 아이들이나 문맹자가 저런 원리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으나 단지 이것을 명확하게 자각하고 있지 않을 뿐이라고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식 속에 가지고 있으면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따라서 그는 인간의 마음은 [백지(tabula rasa, 공판(空板))]라고 표현한다.

 

지식의 기원: 우리가 현실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식의 기원은 어디인가? 경험이다. 로크는 이 경험을 둘로 나눈다. 하나는 외관(소위 오관(五官))이 외계에 관해서 얻는 감각(sensation)이고 또 하나는 내관이 마음 속에서 여러 현상에 관해서 얻는 반성(reflection)이다.

 

감각은 외계로 열린 창구로서 이것을 통해 외적 사물의 성질에 관한 지식이 공급되고, 반성은 정신현상에 열린 창구로서 내적 현상에 관한 지식을 공급한다.

 

버클리(110쪽)

G. Berkeley(1685‐1753)와 더불어 우리는 18세기 경험론에 들어간다. 버클리는 그의 [신시각론(An Essay towards a new Theory of Vision, 1709)]에서 로크의 문제를 이어받고 그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로크에 의하면 사물의 크기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객관적(제1성질)이지만 그 색깔에 관한 지식(제2성질)은 주관적이다. 그러나 버클리는 우리가 가진 지식은 모두 주관적이라고 한다.

 

113쪽‐ 버클리에 의하면 사과의 경우, 빨갛다, 둥글다, 딴딴하다 등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우리 주관 밖에 실재하는 사과의 존재는 부정된다. 우리는 단지 그 관념들만을 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관념이 바깥의 사과 자체와 일치하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아니 그런 사과 자체의 존재를 아예 부정하여 버린다. 그러면 사과란 무엇인가? 그것은 빨갛고, 둥글고, 딴딴하고 하는 여러 관념들의 집합 또는 묶음(bundle of ideas)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묶음에 우리는 사과라고 이름 붙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주관은 지각에 있어 결코 주관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선언했다. 이것을 우리는 관념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관념론의 전형적인 예를 버클리에서 볼 수 있다. 이로써 오직 관념들과 이것을 가지고 있는 정신 즉 주관뿐이다. 그래서 그의 관념론을 주관적 관념론(subjective idealism) 또는 유심론(spiritualism)이라고 한다.

 

휴움

영국의 경험론은 휴움(D. Hume, 1711‐1776)에 와서 절정에 이른다.

인상(印象)과 관념(觀念): 그는 인간의 지각내용을 인상(impression)과 관념(idea)로 나눈다. 인상이란 [우리가 듣거나 보거나 만져 보거나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또는 의욕할 때에 보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모든 지각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내면적 감정이나 외적인 감각에 최초로 나타난 표상을 말한다.

 

관념은 이 인상들을 마음 속에 재현시킬 때 의식되는 [덜 생생한 지각]을 말한다. 즉 모든 관념은 그에 선행하는 인상의 모사(模寫)이며 언제나 그 의미와 타당성을 인상으로부터 얻는다. 따라서 인간 지식의 궁극적인 근원은 인상이다.

 

인상은 경험의 최종적인 소여(所與)요, 우리는 이것을 넘어서 보다 더 궁극적인 어떤 것에로 나아갈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인상들과 이것을 모사하는 관념들 이외의 어떤 것도 정당하게 인정할 수 없다. 이 점 휴움은 곧 존재란 곧 지각되어짐을 말한다는 버클리의 기본 이론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관념 연합의 법칙:  관념들의 결합이 로크에 있어서는 인간의 오성(悟性)이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휴움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관념들 상호간에 서로 인력(引力)과 같은 힘이 작용함으로써 이뤄진다.

 

일정한 규칙이 있는 바, 관념연합의 법칙(laws of association of ideas)으로서 유사(resemblance), 시공(時空)에서의 접근(contiguity in time and space) 및 인과(cause and effect)의 법칙들이다. 결국 우리의 지식과 학문은 이러한 연합의 법칙에 따라서 형성된 관념들의 연합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불이 붙고 연기가 난다]와 [불이 붙으면 연기가 난다]라는 진술이 있다. 휴움은 경험론자이고 지각되는 것을 중시하므로 두번째 진술은 중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현상에 있어서 인과관계가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휴움은 필연성으로서의 인과성 대신에 개연성(probability)을 제시한다. 즉 자연적 사실에 관한 인과적 지식은 휴움에 의하면 필연적이며 보편타당한 지식이 아니다. 즉 女기에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식은 있을 수 없다. 그리하여 휴움은 회의론자(懷疑論者)라고 불린다.

 

휴움에 의하면 자아니 마음이니 하는 것도 사실은 내적 상태(인상)의 총화에 불과하다. 따라서 경험론적 입장에 서는 한, 필연적 절대적 진리를 얻을 수가 없게 된다. 자연과학적 지식의 절대적 진리성을 믿는 칸트로서는 이러한 휴움의 결론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칸트와 독일관념론‐119쪽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은 다같이 르네상스와 더불어 싹튼 근세정신의 자각에서 나온 산물로서 각기 독자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이 두 입장은 서로 합칠 줄 모르는 평행선을 달리며 인식의 완전한 해명을 보여주지 못했다.

 

우선 합리론은 인간의 이성을 지식의 유일한 원천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선천적 체계를 세웠으나 인간지식의 또 다른 원천인 경험을 외면하는 독단에 빠졌다.

 

한편 경험론은 인간의 모든 지식을 주관적 경험에 정초시켜 지식의 객관적이며, 보편적 필연성을 인정할 수 없게 되었다. 드디어 휴움에 이르러서는 인과율에 근거하고 있는 자연과학적 지식을 주관적 신념으로 보는 회의주의에 빠지고 말았다.

 

이 양자의 대립은 또한 인간의 지성으로 극복되어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 거대한 과업을 수행한 인물이 바로 칸트였다. 칸트는 이성능력의  비판에서 출발하여 경험에다 보편 타당성과 필연성을 부여하는 선험철학(先驗哲學)을 건립하였다. 하지만 현상과 물자체의 세계를 대립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칸트의 이원적인 입장을 일원화하고자 피히테는 절대자아(絶對自我)를 내세웠다.

 

유한자적 입장에 선 피히테의 견해를 넘어 셸링은 절대자(絶對者)를 주장했는데 이 절대자는 자아(自我)와 비아(非我)를 넘어선 것이다. 그러면 유한자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를 더욱 철저화시킨 사람이 헤겔이다. 그의 절대자는 그것이 이성이며 절대정신이다. 이러한 절대정신의 전개과정이 다름 아닌 변증법(辨證法)이다.

 

(2001‐05‐02입력)8.1. 칸트    120쪽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자연과학의 연구에 종사하여 특히 뉴톤의 물리학을 연구한 결과, 그 기본원리의 확실성과 타당성을 인정함으로써 자연과학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가졌다.

 

인식론(認識論): 칸트는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의 서문에서 당시의 형이상학이 갖는 과도한 권위와 독단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인간이성에 대해 검토하여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여기서 ‘비판’이라는 말은 모든 경험에서 독립해 있는 인식능력으로서의 이성능력을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칸트에 의하면 우리의 인식은 형식(Form)과 질료(Stoff)로써 성립된다. 형식이란 우리의 심성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경험으로부터 독립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선험적(혹은 선천적 a prior)이다. 그리고 인식내용으로서의 질료(質料)는 감각적인 경험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으로서 그것은 후천적(a posteriori)인 것이다.

 

그러나 감각에 있어서 주어지는 것은 다양하고 잡다한 것이다. 따라서 인식의 내용은 될지언정 그것이 바로 그대로 인식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식이란 감각적 경험에서 얻어지는 다양한 것을 통일하는 형식(形式, Form)이 구비되어야 하며, 우리의 심성 즉 이성이 형식을 주어서 통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 칸트가 말하는 형식이란 무엇인가? 3

자연세계에 존재하는 사물

인식의 대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틀, 범주

사물이 우리의 정신, 관념에 주는 재료

사물 그 자체

 

다시 말하면 감각적 경험에서 얻어진 것에다 보편타당성(普遍妥當性)과 필연성(必然性)을 부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식이란 나 개인을 넘어서 모든 때와 장소의 제약을 초월하여 누구에게나 용인되어야 하며 이것이 비로소 우리가 바라는 진리인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인식이란 형식과 질료로써 성립된다고 하였거니와, 이것은 달리 표현하면, 인식은 대상(對象)주관(主觀)과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 우리의 주관은 대상에 의해 촉발됨으로써 표상(Vorstellung)을 얻게 되는데, 그 표상을 얻는 우리의 능력을 감성(Sinnlichkeit)라고 한다.

                                

감각적인 것이 주어질 때 거기에는 벌써 주어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형식이 우리 자신도 모르게 작용하고 있으니 이 형식을 칸트는 공간과 시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물체가 가지고 있는 성질은 아니다. 즉 시간과 공간은 나를 떠나서 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주관이 대상에 의하여 촉발되어서 감각을 얻을 때, 이 다양한 감각적 내용을 수용하는 형식으로서 직관형식(直觀形式)인 것이다. 그러면 공간과 시간은 어떤 의미에서 직관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선 공간과 시간은 경험에서 추상하여 얻은 후천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경험에 의하여 아는 현상계의 모든 공간적 시간적 규정(공존, 이처(理處), 동시(同時), 전후(前後), 계기(契機)) 등은 이미 공간과 시간이 개입됨으로써 의미를 갖게 된다. 한 예로, 계기라는 것은 시간 안에서만 가능한 것.

 

(철학개론, 122쪽) 시간과 공간이 있으므로써 비로소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할 때 필연적으로 가지는 표상(表象)이다. 즉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현상에서 분리시켜 생각할 수는 있어도 현상을 시간과 공간에서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시간 공간은 현상 즉 경험할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따라야 하는 제약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시간 공간의 직관형식을 우리가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양자(兩者)를 의식하게  된 것은 오랜 경험과 교육의 결과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즉 우리가 사물을 직관할 때는 부지불식간에 일정한 법칙에 따르고 있다.

 

감관에 의하여 지각할 때, 감각으로서 주어지는 내용은 그것이 아무리 천차만별한 것이라고 해도 반드시 [어느 때] [어느 곳]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에 있어서 그 내용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 때에 그 작용하는 일정한 법칙을 우리는 다름아닌 시간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법칙 자체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성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며, 우리가 대상을 직관할 때 필연적으로 따라야 하는 법칙(法則)이며 형식(形式)이다.

 

그러나 이 직관이 그대로 인식일 수는 없다. 직관은 감각적인 다양일 뿐이다. 즉 인식의 재료는 될 지라도 완성된 인식이 아니다. 그 인식의 내용은 또 다시 사유하는 능력 즉 오성(悟性, Verstand)의 자발적인 작용에 의하여 종합통일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칸트는 [감성이 없이는 어떠한 대상도 주어지지 않으며, 오성이 없이는 어떤 대상도 사유되지 못한다]고 한다. 이어서 그는 [내용없는 사상은 공허하고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이다]라고 한다.

 

문제: [내용없는 사상은 공허하고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이다]의 말 중 틀리는 것은?44)

내용은 경험대상을 의미한다. 또는 경험을 통해서 얻은 것이다.

[내용없는 사상은 공허하다]라는 말은 경험론을 중시한 진술이다.

개념은 합리론에서 중시되는 것이다.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이다]라는 말은 합리론을 중시한 진술이다.

위 말은 결국 경험론의 입장에서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진술이다.

 

(123쪽): 예컨대 [흰 구름]이라는 것은 감각적인 다양을 연결, 통일한 것이다. 즉 [구름]이라는 실체와 [희다]라는 속성으로 통일한 것이다. 또 [날씨가 따뜻하다]와 [온도계가 상승했다]를 인과관계로 통일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실체나 속성, 원인과 결과는 직관에서 얻은 감각적인 내용을 종합통일하는 오성형식(悟性形式)이다. 이러한 형식을 칸트는 순수오성개념(純粹悟性槪念)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를 빌어 범주(Kategorie)라고 불렀다.

 

모사설(模寫說)에 있어서는 이미 주어진 것으로서의 대상(對象)이 일차적인 것이며, 우리의 주관(主觀)은 좋은 거울로서 그것을 반영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칸트에 있어서는 인식의 내용만 주어질 뿐이요, 인식의 대상은 주관의 형식에 의한 종합통일로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인식은 어디까지나 주관형식(主觀形式)이 관여하는 현상의 인식이요, 그 형식이 관여하지 않는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는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현상(現象)은 감각에 주어진 소재가 주관의 직관형식에 의하여 질서지워진 것을 말한다.

 

우리가 실제로 보는 외계(外界)나 현상은 인식주관이 주어진 감각내용을 종합구성한 것이기 때문에 물자체(物自體)는 아니다. 물자체는 말하자면 현상의 기원이 되는 것으로 그 자신은 나타나지 않으며, 따라서 인식되지 않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진정한 인식은 우리의 주관이 대상을 구성하는 인식이며, 칸트는 이것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 Kopernikanische Wendung]라고 불렀다. 그때까지 모든 인식은 대상에 의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되었으나, 이제는 오히려 대상이 우리의 주관에 의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칸트에 이르러 주관위주의 인식론으로 즉 주관의 구성작용(構成作用)을 위주로 하는 학설로 바뀌게 되었다. 여기서 구성한다는 것이라고 하여 우리가 전혀 무(無)의 상태에서 대상의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주관은 대상을 만들 수 없다. 대신우리의 주관이 존재로 하여금 인식의 대상이 되게끔 대상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124쪽) 칸트의 범주론에 대해서 의의를 찾는다면, 그가 사유의 선천적 형식, 또는 법칙을 구명함으로써 자연과학의 기초를 확립하려고 한 데 있다. 범주는 순수오성개념으로서 전연 경험으로부터 독립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대상 즉 현실계에 남김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의 인식이 경험과 더불어 시작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여기서 [경험과 더불어 시작한다]는 것이 [경험으로부터 생긴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대상을 대상으로서 받아들이는 데는 우선 시간 공간의 주관적 형식(主觀的 形式)이 작용하여야 하며, 이 형식에 의하여 주어진 잡다한 감각내용은 또다시 순수오성개념으로서의 범주에 의하여 종합통일되어야 한다. (125쪽) 경험이란 주어진 것을 그저 수용하는 것을 의미함이요,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생기는 것을 [경험적]이라고 하는데 비해, 오히려 논리적으로는 경험에 선행(先行)하는 것을 선천적(先天的)이라고 한다. 그리고 선천적인 것이면서 경험으로 하여금 보편타당한 것이 되도록 하는 것을 칸트는 선험적(先驗的, traszendental)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논리적으로 경험을 초월하면서 동시에 경험의 가능근거가 되는 것이 선험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칸트는 지식에 있어서 보편타당성을 얻게 하는 이러한 선험적인 것을 자기의 철학에서 핵심적으로 다루었다 하여 자기의 철학을 선험철학(先驗哲學)이라고 불렀다.

 

문제: 칸트를 특징짓는 진술이 아닌 것은?45)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일으켰다. 즉 사상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칸트는 경험론과 합리론의 종합을 이루며 관념론을 시작했다.

선험철학을 일궈냈다.

우리의 인식이 철저히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함으로써 경험론의 전통을 이어간다.

인간의 인식에 있어 의식, 정신, 관념 즉 [자연]의 대상에 대하여 [인간]의 능동적 역할을 부각시켰다.

 

8.2. 피히테와 쉘링

칸트에 의한 합리론과 경험론의 종합통일은 철학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지만 비판과 반론을 면치 못했다. 그것은 세계를 현상의 세계와 물자체의 세계로 대립시켜 두 개의 세계를 만들었고, 그러면서도 이것들을 근원적으로 통일하는 원리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칸트의 뒤를 잇는 독일관념론에서는 이 이원론을 극복하는 일이 과제였다. 즉 현상계와 물 자체의 세계, 또는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의 이원론(二元論)적 분열을 하나의 원리로서 일원화하여 체계화하는 일이었다. 이 과제는 우선 피히테와 쉘링 그리고 헤겔에 이르러 그 실현을 보게 된다.

 

피히테(Johan Gottlieb Fichte,1762‐1814) (126쪽)

그는 [절대적 원리로서의 자아]의 개념을 탐구한다. 그의 주저는 [전지식학(全知識學)의 기초]다. 이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철저한 주관적 관념론이다. 자기의식 즉 자아(自我) 밑에 일체를 통일하며 체계화한다. 그래서 법칙화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자아를 원리로 삼아 모든 것을 자아로부터 도출해 내는 것이 바로 철학이 택하여야 할 길이며, 피히테는 이것을 지식학(知識學)이라고 하였다. 즉 그에 있어서 철학은 자아의 근원적 무제약성을 원리로 하는 철학, 자아 이외의 어떠한 독립적 원리도 인정하지 않는 관념론으로서의 철학인 셈이다. 이 자아는 개인이 아니라 보편자아이며, 경험자아가 아니라 순수자아 또는 절대자아이다.

 

그러면 그의 지식학의 제1원칙은 무엇인가? 피히테의 자아는 무한히 능동적인 자아로부터 출발하였고, 이 자아는 자신을 정립하는 자유로운 창조였던 것이다. 즉 [근원적으로 자기자신의 존재를 정립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절대적 자아]의 무한한 활동은 직접적으로 의식되지 않는다. 그것이 의식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립되는 제한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제2원칙으로서, [자아(自我)에 대해서는 비아(非我)가 단적으로 반대정립된다]는 것이다.

 

비아를 극복하여 절대적 자아를 정립하려는 무한한 노력은 결국 자아와 비아와의 상호한정으로 구체화된다. 이것이 제3원칙이다. 이론철학과 실천철학 중에서 피히테는 실천철학을 중시한다. 자아의 절대성은 오직 후자에서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피히테의 자아는 근원적으로 실천적 자아이다. 그리하여 피히테는 칸트의 물자체를 부정하고, 지식은 외적 내용과 주관형식의 통일이 아니라, 근원적이며 절대적 자아의 자각활동이라고 한다.

 

쉘링(Friedrich Wilhelm Joseph Schelling, 1775‐1854) (128쪽)

그는 절대자(絶對者 das Absolute)의 철학으로 나갔다. 그의 절대자는 정신과 자연, 주관과 객관의 구별을 가지지 않는 완전한 무차별(Indifferenz)이다. 또한 그것은 이 양자를 동일적인 것으로 융합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 동일성(absolute Identität)이며 이성(Vernunft)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그의 철학을 [동일철학(同一哲學)]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절대적 동일성에 기인한다. 이와 같이 절대자가 무차별이며 동일성이라면 어떻게 하여 차별있는 유한자가 생겨날 수 있는가? 즉 상호 차별을 가지고 대립하는 정신과 자연이 생겨나는가? 절대자는 자연 및 정신으로서 발현한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자연철학과 정신철학으로 나뉘어진다.

 

(129쪽) 자연철학: 그에 있어서 자연은 정신의 존재에 대한 제약이다. 따라서 그것 자체도 정신적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은 무의식적이지만 그래도 그것은 역시 정신이며, 형성되어 가는 정신이다. 자연은 하나의 생명, 하나의 활력으로써 관통되어 있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이다. 자연에 사물(死物)은 없다. 죽어있는 것 같이 보이는 물질도 그것은 잠자는 정신이며, 일정한 목적을 향해서 활동하는 활력을 가지고 있다.

 

앞서 살폈듯이, 쉘링의 절대자는 정신과 자연,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없는 무차별이다. 자연계에서는 객관이, 정신계에서는 주관이 우세하다고 한다. 이것을 부호로 표시하면, 주관은 A로, 객관은 B로 표시하여 절대자는 A=B로 표시된다. 자연은 A=+B (+는 우세를 나타냄)이다. 정신은 +A=B이다.

 

자연계는 이러한 세력의 우열에 따라 세 단계로 구분된다. A가 가장 약세로써 전개되는 양상은 중력(重力)이다. 이것은 물질로서 발현된다. 다음은 A가 중세(中勢)로 전개되는 양상으로서 광(光)이 해당된다. 이것은 전기의 일종으로서 발현한다. 끝으로 A가 상세(上勢)로 나타나는 것으로서 생활(生活)이 해당된다. 이 생활은 곧 유기적 현상으로 발현된다.

 

쉘링은 그의 정신철학에 있어서 정신의 전개상을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이론적 활동, 실천적 활동 그리고 미적 활동이 그것이다. 이론적 활동과 실천적 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은 각각 인식론과 실천철학이다. 이는 피히테의 철학을 계승한 것이다. 그리고 미적 활동을 연구하는 예술철학을 높이 평가했다.

 

예술철학: 예술을 창작하는 예술가의 활동에는 의식적(정신적)인 면과 무의식적(자연적)인 면과의 양극(兩極)이 가장 밀접하게 융합되어 있다. 그런데 절대자란 이 양극의 무차별태(無差別態)였다. 그렇다면 예술가란 우주의 비밀을 가장 명료하게 나타냄으로서 그 자체가 소형(小形)의 절대자가 아닐 수 없다. 철학과 예술만큼 밀접한 것도 없다. 이 양자는 그 대상에 있어서나, 우주의 최고진리를 천명하는 방식에 있어서나 동일하다. 이 방식을 그는 지적직관(知的直觀)이라고 한다. 철학은 진리를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예술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제작해 낸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쉘링은 확실히 낭만주의 철학자로 할 수 있다.

 

헤겔 (130쪽)

칸트철학의 지반에서 자각적 발전을 시작한 독일 관념론은 피히테에서 [절대적 자아]를 낳았고, 쉘링에 이르러서 주관과 객관, 정신과 자연을 초월하는 무차별태인 [절대자]의 개념에까지 도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절대자는 유한자를 초월해 있고, 유한자와 절대자 사이에 절대적 단절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자로부터 유한자가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가는 설명하지 못한다.

 

쉘링 철학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절대자와 유한자 사이의 절대적 단절을 제거하며, 유한자를 무한자 자체 속에 함유(含有)시키는 방향으로 밀고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것이 독일 관념론의 최후를 장식하는 방대한 철학체계를 수립한 헤에겔(Georg Willelm Friedrich 1770‐1831)이다. 그는 쉘링의 절대자가 [모든 소를 검게 보이게 하는 암야(暗夜)]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절대자: 진정한 절대자란 일체의 실재성을 자기 속에 함유하는 것이며, 유한자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유전자를 자기자신 속에서 포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헤겔은 이러한 것을 악무한(schlechte Unendlichkeit)과 진무한(wahrhafte Unendlichkei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악무한이란 유한자에 대립하는 무한자이며, 진무한이란 유한자를 자기자신 속에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 무한자이다.

 

변증법: 헤겔철학의 전체는 변증법에 의해 관통되고 있다.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그의 철학 전반에 걸쳐 도처에서 이를 전개하고 있다. [엔치클로페디(Enzyklopädie der philosophischen Wissenschaften im Grundrisse)]에서, 헤겔은 논리적인 것은 형식상 세가지 측면을 갖는다고 한다.

 

1. 추상적 또는 오성적 측면, 2. 변증법적 또는 부정적 이성적 측면, 3. 사변적 또는 긍정적 이성적 측면이다. 첫째의 추상적 오성적 측면은 어떤 하나의 규정에 고집하는 상태다. 이 규정에 의해서만 사물을 고찰하는 상태다. 둘째의 부정적 이성적 측면은 오성적 규정이 그 반대의 규정과 만나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오성적 측면에만 머무르면 회의론(懷疑論)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번째 사변적이고 긍정적 이성적 측면에서는 서로 대립하는 것을 통일한 상태다. 즉 해소와 이행 속에서 쌓여있는 긍정적인 것을 파악한다. 여기서 그 자신 속에 대립을 지양(止揚)한 구체적 통일이다. 이러한 세 가지 측면을 포함하는 논리적 발전과정을 변증법이라 한다.

 

헤겔의 변증법은 결국 인식의 3단계 전개과정을 의미한다. 이 3단계는 각기 즉자(卽自, an sich), 대자(對自, für  sich) 그리고 즉대자(an und für sich)의 과정으로 불리워진다. 긍정, 부정, 부정의 부정(Negation der Negation)의 과정이다. 세번째 단계는 제1, 제 2 단계를 종합통일한 것으로 고차적인 긍정이다. 변증법은 헤겔에 있어서 추상적인 사유가 구체적 사변적인 사유에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며, 우리의 인식이 추상에서 구체적인 상태로 고양되어 가는 가운데 모순(矛盾)이 제거되어 가는 과정이다.

 

헤겔은 유(有), 본질(本質), 개념(槪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본질은 유의 제 1의 부정이다. 그것에 의하여 有는 가상(假象‐Schein)이 된다. 개념은 제2의 부정, 즉 부정의 부정이며 따라서 또다시 회복된 有이다]라고. 개념이란 유와 본질의 통일이다. 유와 본질은 서로 모순 대립하지만 이 양자는 개념에 있어서 하나로 된다. 개념에 있어서 이 양자는 단순히 끌어 모아져서 통일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양자는 개념 안에서 전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헤겔은 변증법 제3단계의 종합통일을 지양(止揚)한다‐aufheben라고 부른다. 이 지양한다는 말에는 고양한다, 포기한다, 보존하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의 절대자는 이성이며, 세계정신이며 절대적 정신이며 또한 이념(Idee)이다. 절대자는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스스로 전개하여 현실적 세계의 생성으로 나타나는 현실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요,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다]. 그리고 절대자로서 이념의 전개는 일정한 논리적 법칙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며, 이 논리적 법칙이 다름아닌 변증법이다.

 

문제: 헤겔철학을 설명한 것은?46)

물자체에서 비롯되는 표상을 감성형식인 공간과 시간규정에 의해 인식한다.

정, 반, 합 즉 모순을 제거해 가면서 절대정신이 구현되는 논리적 과정을 제시한다.

철학은 진리를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예술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제작해 낸다고 한다.

기존의 무제한적 권위를 누린 형이상학을 비판하였다.

경험론과 합리론을 종합하였다.

 

문제: 헤겔이 말하는 절대정신이란 무엇일까?47)

신(God)만이 아는 우주창조의 원리

베이컨 등의 경험론에서 제시하는 것으로 인간의 경험 후에 마음에 남는 인상(印象)

모순이 거의 제거되어 있는 현상과 세계의 이성적 구성원리

데카르트 등의 합리론에서 강조하는 우리 머리 즉 이성에 있는 구성능력, 형식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Ⅲ. 현대철학

일반적 특징과 생철학  136쪽

9.1. 현대철학의 일반적 특징

현대는 아직 현대를 이끌어갈 사상을 모색중이다. 과거의 이념들이 그 빛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절대적 진리라고 여겨졌던 것이 그렇지 않은 것임이 밝혀졌으며 이러한 양상은 철학이 아닌 특수과학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고전물리학에 대한 비판: 19세기 대부분의 과학자와 철학자는 뉴톤의 수학적 자연관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었다. 이에 따르면 모든 자연현상은 원자들의 인과적 기계적인 운동으로 환원된다. 따라서 원자의 현재의 위치와 속도를 알면 이것을 기초로 세계의 과거와 미래의 모든 상태를 정확하게 게산할 수 있다(라플라스의 결정론).

 

그런데 이런 절대적 기계론적 자연관은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의 출현으로 일대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상대성이론은 뉴톤물리학이 가정하는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을 인정하지 않는다. 가령, 광속(光速)과 같은 속도로 달리는 운동계에서는 시간의 흐름은 정지하고 공간적 길이도 소멸한다. 그러면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 기준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운동계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 되고 만다.

 

양자론에 의하면 전자와 같은 미세한 입자는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존재다. 따라서 물질은  종전같이 원자론적 구성체로만 볼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불확정성원리(不確定性原理)는 인과적 필연적인 자연관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것은 미시현상(微視現象)에서는 미립자의 위치와 속도는 동시에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운동량이 많은) 광선을 비추면 위치파악이 쉽다. 대신 광선의 양이 많으면 속도가 빨라져 속도측정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광선을 적게 쪼이면 속도는 느려져서 속도측정이 쉬워지지만 이번에는 위치파악이 어려워진다. 그러면 개연성(蓋然性) 내지 확률(確率)적인 결론만 나올 뿐이지 필연적 결론은 얻지 못한다.

 

새로운 수학:  수학에서는 이미 19세게 말부터 종전의 수학을 전복시키는 기도가 있었다. 그것은 非유클리드 기하학(幾何學)과 칸토르(G. Cantor 1845‐1918)에 의한 집합론의 발견이다. 유클리드와 달리,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가령 두 점간의 최단거리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든가 또는 한 점을 통해서 한 직선에 평행한 직선은 하나뿐이 아니라 무수히 많다 또는 하나도 없다는 명제를 공리(公理)로 해서 훌륭하게  기하학이 세워진 것이다. 이로써 이제까지 의심해 본 적도 없는 확고한 수학의 기초들이 기실은 전혀 확실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심리학의 새로운 전개: 형태심리학(形態心理學)과 정신분석학(精神分析學)의 성과를 들 수 있다. 가령 휴움의 연상심리학(聯想心理學)에서는 정신현상을 관념의 연합으로 설명한다. 즉 독립적인 요소 내지 부분의 총합이 그대로 전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요소관을 토대로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먼저 주어지는 것은 어떤 체제나 구조를 갖춘 전체 즉 형태(Gestalt)라는 것이 주장된다. 이것이 형태심리학이다. 요소는 전체 속에서만 그 의미를 갖는다. 전체에서 떨어진 팔은 이미 팔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점은 요소에부터 전체가 아니라 전체에서부터 요소로 쏠려야 한다. 이것은 물리학에서 장(場, field)의 이론과도 상통한다.

 

정신분석학은 종래의 심리학이 인간의 심리현상을 의식형태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이들에 의하면 의식은 심리현상의 일부에 해당할 뿐이다. 심리현상 나아가 행동은 하의식(下意識)의 제요소들의 역학적 작용의 결과에 해당한다고 한다. 가령 프로이드(J. Freud 1856‐1939)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생활의 궁극적 동력은 리비도(libido)이다. 모든 정신활동은 결국엔 리비도의 에로스적 충동의 승화(昇華)이다. 이렇게 정신분석은 의식의 표면에 나타난 것을 의식의 심층까지 파고들어 간다.

 

비합리주의: 다아윈(C. Darwin 1809‐1882)은 인간을 아메바로부터 진화된 존재로 파악함으로써 인간생활의 모든 고위(高位)의 것을 가장 저위(低位)의 것으로부터 설명할 수 있다는 근본원리를 세웠다. 이것은 쇼펜하우어나 키에르케고르 등의 19세기 비합리주의자들과 만나 20세기로 이어진다.

 

칸트도 초경험적 세계가 합리적으로 인식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경험계는 합리적이며 계량가능한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가령 물리학의 위기는 이것이 타당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성의 가치, 이성의 권위에 대한 회의(懷疑)가 일반화되었다.

 

현대철학의 특징: 독일 관념론에서 볼 수 있듯이 근세의 주류가 Idealism이라고 한다면 여기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현대사조의 주류는 realism이다.  아이디얼리즘은 가령 헤겔에서와 같이 ideal한 것에서 real한 것까지 연역하고자 한다. 그러나 현대의 비합리주의적 경향에 의하면 real한 것에 의해서 ideal한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면 real한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인간의 보다 근원적인 것으로 生, 실존(實存), 물질(物質), 의지(意志), 충동(衝動) 등이다. 아이디얼리즘이 우리말로 관념론과 이상주의의 2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두 계기를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반동(反動)으로 나타난 리얼리즘도 2 가지 경향을 보인다. 즉 관념론을 부정하는 데서 실용주의(實用主義)나 신실재론(新實在論)이 나왔다. 또 이상주의(理想主義)를 부정하는 데서 실존주의(實存主義)가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문제: 현대철학의 일반적 경향은 어떤 것인가?48)

리얼리즘의 경향이 강하여 생과 물질, 의지, 욕망 등이 이성보다 더 중시된다.

한 가지로 세계를 설명하려는 경향이 강하며, 그 중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이 지배적이다.

합리주의적 경향이 비합리주의적 경향보다 우세하다.

절대정신 등 어느 하나의 실체로 본질을 규명하고자 한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이 전면 부활된다.

 

(140쪽) 9.2. 생철학(生哲學)의 일반적 특징과 그 발단

생철학의 일반적 특징: 생철학이란 생(Leben)에 의해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철학이다. 생이라는 개념은 생명, 살아 있는 것, 생생한 것, 유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철학자에 있어서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운동, 생성, 생명 뿐이다. 베르그송은 [존재보다는 생성 속에 더 많은 것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생성속에 [더 많은 것이 있다]를 넘어서 생성, 즉 변화 자체가 참된 존재라고 한다. 그리하여 설사 존재니 물질이니 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운동의 찌꺼기에 불과하다.

 

2. 따라서 보편타당성을 띤 합리적인 것, 이성적인 것을 그들은 부정하고 그 대신 비합리적인 것, 충동적인 것을 동경하고 신뢰한다. 그러므로 생철학은 고전적인 비합리주의 사상이다. 개념, 선천적 법칙, 논리적 연역, 이런 것은 전혀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대상의 생명을 빼앗아 버리는 방법이다. 따라서 이들은 직관(直觀), 체험(體驗), 이해(理解)‐이런 것만이 대상파악의 올바른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3. 이들은 자연과학에서 처럼 현상을 인과적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반대한다. 현실, 세계는 오직 유기적(有機的) 생물학적(生物學的)으로만 올바르게 분석되고 파악될 수 있다. 생철학 역시 칸트를 비판한 헤르더(J.G. von Herder, 1744‐1803)나 하만(J.G. Haman, 1730‐1788)이 있었다. 또 헤겔에 반대한 포이에르바하(L.A. Feuerbach, 1804‐1872) 등이 있다.

 

가장 두드러진 생철학자는 쇼펜하우어(Schopenhauer)와 니이체(F.W. Nietzsche)이다. 이 두 사람은 이성보다 더 깊은 데에 의지가 있음을 지적한다. 인간과 우주를 이 근원적인 의지로 설명하고자 한다. 전자는 생은 부정적으로 후자는 생을 긍정적으로 파악하는 차이가 있다.

 

19세기의 이러한 형이상학적 생철학보다 20세기의 생철학은 보다 객관적이고 학문적 성격을 띤다. 여기에 속하는 대표적 인물이 독일의 딜타이(W. Dilthey)와 형이상학적 색채도 더불어 띠는 프랑스의 베르그송(H. Bergson)이다.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1788‐1860)는 스스로 칸트에만 의존한다고 하면서 칸트와는 사상을 달리 전개시켰다. 그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8)에서 칸트가 물자체(物自體)와 현상(現象)을 구별한 것과 같이 의지로서의 세계표상으로서의 세계로 나눈다.

 

표상으로서의 세계: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표상으로서의 세계다. 이것은 칸트의 현상계(現象界)에 해당한다. 칸트는 물자체로부터 촉발된 질료(質料)를 감성형식(感性形式)인 시간과 공간에 의해서 정리하고 이것을 다시 오성형식(悟性形式)인 범주(範疇)가 정리함으로써 현상의 세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서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범주 가운데서 인과성만을 인정하고 이 세계는 시간, 공간, 인과성의 주관형식을 통해서 성립되는 표상(表象)이라고 한다.

 

의지로서의 세계: 그러나 우리가 인식하는 표상 또는 표상 상호간의 관계뿐이 아니다. 표상으로서의 세계 뒤에 세계의 본질로서의 실재가 있는 것이다. 이 실재는 그러나 칸트의 물자체와 같이 주관의 형식이 적용될 수 없는 것이므로 우리에게 인식될 수 없다. 그것은 천재적 직관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고 본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자는 예술가와 같이 천재임을 주장한다.

 

의지로서의 세계: 그 이 천재적 직관에 의해 파악되는 세계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는 먼저 인간의 전생활과 의식(意識)의 근저(根底)가 의지(意志)임을 통찰하였다. 이 의지란 맹목적인 생의 의지(Wille zum Leben)이다. 그것은 칸트가 파악한 것과 같은 도덕적인 의지가 아니라 자기 아닌 것,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로 지향하는 끝없는 분투의 노력이다. 따라서 그는 맹목적인 생의 의지가 오히려 이성 뒤에서 이성을 지배하는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하여 이성 또는 지성은 의지에 봉사할 뿐더러 의지의 산물이다.

 

가령 우리의 두뇌는 알고자 하는 의지가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위는 먹고자 하는 의지가, 손과 다리는 여러 가지 일과 목적을 수행하려는 의지가 나타난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에 관한 통찰을 세계전체에 확장시킨다. 그는 세계를 대형의 인간으로 비유하면서 세계의 본질을 생의지(生意志)라고 한다. 이것을 특별히 우주의지(宇宙意志) 또는 세계의지라고 한다. 이제 인간 뿐만 아니라 세계 만물이 의지의 발현이 된다. 여기서 그는 범의론(汎意論)에 이른다. 현상들을 다루는 과학자에 대해 세계는 표상이고 세계자체 사물자체로 파고 들어가는 철학자에 대해서는 의지인 것이다.

 

염세관(厭世觀): 그런데 의지란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원하는 것이다. 즉 의지는 결여(缺如)의 상태를 그 본질로 한다. 그러므로 의지있는 곳에는 고통(苦痛)이 있기 마련이다. 만족은 또 새로운 결핍을 만든다. 세계는 모두 의지의 나타남이 아닌 것이 없다. 의지있는 곳에 고통이 있다면 이 세계는 바로 고해(苦海)다. 그렇다면 이 세계는 없는 것보다 좋을 것은 없는 세계다. 그래서 세계는 최악의 세계다. 이것이 그의 염세관이다.

 

해탈: 철학은 사명은 이 고뇌로부터의 해탈에 있다. 어떻게 하면 이 고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자살이 가장 빠르지만 그것은 근원적 의지, 우주의지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자살은 어리석다. 그가 제시하는 해탈의 두 가지 방법으로 첫째, 영원한 관념(idea)들의 세계에 명상으로 몰두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그는 예술작품의 미에 전념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근본적인 해탈은 인도의 승려들이 고행을 통해서 얻는 해탈이다. 이 고행은 의지가 모든 불행과 악의 원천임을 깨닫는 것이다. 여기서 의지는 완전히 부정되어 열반(涅槃)의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문제:쇼펜하우어에 대한 진술 중 맞는 것은? 3

인간의 본질이 이성적 사유능력, 합리성에서 찾았다.

인간의 행위는 신(God)과의 관련성에서 보았다.

인간의 본질을 이성이 아닌 맹목적인 생의 의지라고 보았다.

인간은 동물과 다를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은 성에 대한 원초적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았다.

 

딜타이  (144쪽)

구체적인 생: 독일의 생철학자 딜타이(W.Dithey, 1833‐1911)는 좀더 구체적인 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그가 생을 단순히 그저 흐르는 생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흐름으로 본다. 그가 베를린에서 공부하던 1850년대는 역사주의가 바로 그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창일 때였다. 사실 17세기에 많은 학자들이 협력해서 수학적 자연과학을 수립했듯이 19세기는 역사학이 탄생한 때였다. 이런 바탕에서 자라난 딜타이는 자기의 학문적 방법의 독자성을 [인간의 연구를 역사와 결부시키는 데서 발견]했다고 술회한다.

 

역사학파는 역사를 자연과학적 방법이나 다른 어떠한 합리적 방법으로도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딜타이도 인간정신을 원자적 요소의 결합으로 분석하는 연상심리학에 반대한다. 단순관념 단순인상 등등은 설명을 위한 단순한 가설이요, 따라서 이런 것으로 정신현상을 파헤치는 것은 산 生을 조각내는 어리석은 시도이다.

 

생의 일반적 구조:

구조연관: 생은 본래부터 언제나 포괄하는 통일체다. 그리하여 정신생활은 아무리 분석해도 결코 단순요소로 환원될 수 없는 산 구조(Struktur)를 가진다. 생이란 이른바 구조연관(Strukturzusammenhang)이다.

발전연관: 생은 또 종단면(縱斷面)이라고 할 수 있는 발전연관(Entwicklung)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딜타이가 인간을 우선 [충동의 체계]로 파악한 데 기인한다. [생은 불꽃이지 존재가 아니다. 생은 에네르기이지 실체가 아니다.]

획득연관: 생은 또 역사적이다. 과거의 체험이 현재도 살아서 작용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체험이 단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올해의 꽃 잎이 지난 해의 꽃잎과 같은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생은 획득된 연관(Erworner Zusammenhang)을 갖는다.

 

생은 개인적 생이 아니라 종으로는 역사를 뚫고 흘고 횡으로는 사회적 연관을 갖는 역사적 사회적 실재다. 이 생은 知보다 더 근원적이며 이성으로는 도저히 파악될 수 없는 비합리적 특징을 갖는다.

 

생과 체험: 그러면 역사적 생은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딜타이는 [나의 철학적 사색에 있어서의 지배적 충동은 생을 생 자체로부터 이해(das Leben aus ihm selber verstehen)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 말은 우리의 생을 요소로 쪼개는 것도 안되지만 동시에 생의 배후로 돌아가서 가령 물질이니 의지와 같은 것으로 생을 연역하는 것도 배격하는 것이다.

 

생은 오로지 체험(Erlebnis)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체험이란 생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활동이다. 직접적이라는 말은 체험에서는 아는 작용과 알려지는 내용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근원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이다. 체험은 그 자신 생의 흐름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이해와 해석: 체험은 역사적으로 발전해가는 구조연관의 내적 파악을 의미한다. 그것은 유동(流動)하는 생의 내성적 파악에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저렇게 객관화된 표현의 파악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 표현의 파악을 딜타이는 이해(Verstehen)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우리는 일상에서 웃음이나 손짓, 울음이나 걸음걸이 등 신체적 표현에서 그 사람의 내면적인 움직임을 이해한다. 이와 같이 [외부로부터 감성적으로 주어져 있는 기호를 토대로 하여 내면적인 것을 인식하는 과정]을 이해라고 한다. 그러나 체험의 표현에는 저런 신체적 표현 같이 순간적이며 유동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술작품이나 법률같이 지속적이며 고정적인 표현도 가지고 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좀더 기술적으로 그리고 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고정된 표현의 기술적인 이해]를 딜타이는 해석(Auslegung 또는 Interpretation)이라고 부른다.

 

딜타이에서 생은 체험, 표현, 이해 내지 해석의 원환운동(圓環運動)으로 그 내용을 더욱 더 풍부하게 해간다. 정신과학은 역사적 사회적 현실로서의 생을 그 연구대상으로 한다. 이 역사적 생을 그 객관적 외적 표현을 통해서 이해하려는 것이 해석학(Hermeneutik)이다. 그러므로 해석학은 정신과학의 기초이며 정신과학의 인식론이다.

 

세계관학: 칸트가 순수이성을 비판함으로써 자연과학의 성립근거를 명백히 한 것처럼 딜타이도 역사적 세계를 구성하는 이른바 [역사적 이성]을 비판함으로써 정신과학의 성립에 확고한 기반을 다지고자 한다. 그런데 이 이성은 칸트에서 초역사적이지만 딜타이에서는 역사적인 이성이다.

 

세계관이란 개개의 체험의 단순한 집적이나 단순한 사유의 논리적 소산이 아니다. 그것은 지적인 현실인식, 감정을 중심으로 한 가치경험, 의지적인 이상설정의 세 요소가 통일된 하나의 연관이며 법칙성이다. 이런 세계관은 각 개인의 개성, 생활경험의 차이, 또는 풍토, 민족성, 시대 등의 차이에 따라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여러 세계관의 형태를 비교적 역사적 방법에 의해 연구함으로써 역사적으로 제약된 개별성을 관통하는 어떤 유형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그는 종교적, 예술적 및 철학적인 세 세계관을 든다.

 

문제: 딜타이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내용의 요점은 무엇일까? 5

생을 신앙으로 파악하고 믿음을 갖는다.

생을 자연상태에서 파악함으로써 본능으로 환원시킨다.

이성, 오성 등의 정신구조와 형식을 중심으로 생의 경험내용을 인식해 들어 간다.

생을 절대정신의 발현으로 파악한다.

생을 충동, 욕망 등의 구체적 경험을 토대로 역사 및 사회적인 사실로 이해, 해석한다.베르그송 ( 148쪽)

이성과 개념의 그물을 뚫고 그 속에 흐르는 생동하는 것 자체에 육박하려는 생철학은 독일의 딜타이에서 객관적 타당성을 띤 학적 철학이고자 하는 노력을 엿보이고 있지만 프랑스의 베르그송(H. Bergson, 1859‐1941)에서는 면모를 달리한다. 그는 프랑스의 전통인 정신주의를 대성한 철학자로서 합리주의적 방법으로는 도저히 궁지할 수 없는 생의 깊은 진상을 드러내준다. 딜타이는 생의 외적인 표현을 해석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생을 체험하고자 했다. 하지만 베르그송은 직접 생에 육박함으로써 생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자 한다. 따라서 그의 방법은 직관(直觀)이다.

 

직관적 방법: 그는 종전의 철학자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을 [사물의 주위를 빙빙도는 방식]이라 하여 자기의 [사물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과 대립시키고 있다. 종전의 것은 밖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분석적(分析的‐anlytic) 방법인데 비해서 자기의 것은 사물을 내부로부터 그것 자체로서 파악하는 직관적(直觀的‐intuitive) 방법이라고 한다.

 

분석이란 대상을 기지(旣知)의 요소로, 즉 그 대상과 다른 대상들과의 공통적인 요소로 환원하는 조작(操作)이다. 이 공통적인 요소를 개념에 의해서 파악하는 능력이 오성(悟性, intellect)이다. 따라서 오성은 대상의 어떤 보편적인 면, 이를테면 몰개성적(沒個性的)인 면을 기호를 통해서 파악할 따름이다.

 

그러나 직관(直觀, intuition)이란 베르그송에 의하면 [어떤 대상의 내부에 들어가서 그 대상 특유의 것(unique한 것), 따라서 다른 것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것과 하나가 되는 지적 공감(sympathie)을 말한다. 모든 사물은 그것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파동을 가지고 있다.

 

오성은 Homo faber(공작인(工作人)의 기관이다. 오성은 대상을 고정된 부동의 것, 개념(槪念‐concept)으로 파악한다. 이것은 행동에 유리할 지 모른다. 그러나 기성복은 우선은 편리하고 실용적이지만 몸에 아주 꼭 맞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개념을 통한 오성적 파악은 대상의 독특한 생명, 개성에는 닿지 못한다. 직관은 대상의 이 특유한 개성을 포착하고자 한다.

 

Homosapiens(叡知人)의 기관으로서의 직관은 그러므로 대상의 개념적인 표피 속에 흐르는 생명에 몰아적으로 잠입하여 그것과 합일함으로써 그 생명자체를 흐르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직관은 오성적인 일상적 관심의 방향을 역전시킴으로써만 가능하다.

 

문제: 다음 중 직관의 방법에 가장 접근하고 있는 것은 어느 것인가?49)

고고학자가 한국의 세계적인 고인돌 문화에 대해 조사, 발굴하여 펴낸 책들을 비교하고 분석한다.

한국의 농어촌의 실태와 부채상황(빚을 지고 있는 상황)을 공무원의 입을 통해 듣는다.

학생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학생들과 함께 수업하고 과제도 수행하고 축제를 위해 연극에도 참여한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대해 일본 사람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한국쪽의 이야기만 듣는다.

밤 하늘의 별자리를 직접 바라본다.

 

순수지속(純粹持續)‐149쪽: 의식은 원래 유동(流動)이며 과정(過程)이요 시간(時間)이다. 과학적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사람들은 의식을 측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 분석적 방법에서 파악되는 것은 [공간화된 시간]이다. 즉 질을 양화(量化)해 놓고 파악하는 것이다. 가령, 우리는 보통 이(tooth)를 빼는 아픔은 머리카락을 뽑는 아픔의 100배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직접적 느낌으로서는 두 아픔이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이것이 서로 비교되는 것은 이(tooth)와 머리카락의 공간적 크기를 아픔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공간화가 시간에 적용되면 시간은 일직선으로 표상되고 이것을 어떤 단위의 길이 또는 순간의 집합으로 분석한다. 이것은 흐르는 시간을 정지시켜 놓는 결과가 된다. 오성이란 이렇게 고정시켜서만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연주되고 있는 음악을 감상할 때, 아무도 악보가 공간을 난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의 음악은 공간에 병치된 악보가 아니다. 거기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융합되어 있다. 순수한 유동과 상호침투가 있을 뿐, 공간적 병치나 대립은 없다. 이것의 우리의 의식의 산 모습으로서의 순수지속(durée pure)이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순수지속이란 질적인 변화의 계속일 따름이다.

 

창조적 진화(創造的 進化): 순수지속의 사상을 베르그송은 그의 저서 [창조적 진화](1907)에서 우주전체에 확대한다. 그리하여 우주발전의 근원을 끊임없이 창조적인 생이라고 한다. 이 생의 활동의 모습을 그는 특별히 찬조적 진화(evolution créatrice)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창조란 언젠가 한 번 있다가 지금은 없어진 창조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와지는 창조다. 그리고 진화란 내적 조건이 외적 조건에 적응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생이 어떤 내적 요구에 따라서 외적 조건들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진화란 생의 영원히 창조적인 과정이다. 미리 작성된 어떤 목표도 없다. 우주는 베르그송에 의하면 이런 생의 불가예측적(不可豫測的)인 창조활동에 의해서 발전해 오고 있는 것이다.

 

가령, 막대한 양의 쇠부스러기가 있고 이것을 뚫고 힘차게 뻗는 보이지 않는 팔이 있다고 하자. 기계론자들은 이 현상에 대해 쇠부스러기의 운동을 지배하는 법칙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구식의 창조론자들은 쇠부스러기를 움직이는 어떤 전반적인 계획을 가지고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들은 보이지 않는 팔과 무진장한 힘을 고려에 넣지 않고 있다.

 

이 팔은 근원적 생의 창조적 충동을 상징하고 있다. 생은 논리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고 또 막다른 골목에 부딪치거나 후퇴할 때도 있다. 그러나 생의 충동은 어디까지나 존속한다. 생의 이런 충동적 활동을 베르그송은 특별히 생의 약진(élan vital)이라고도 표현한다.

 

실존철학(實存哲學) 153쪽

실존철학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 그리고 2차 대전 후에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그 주류를 이루었다. 전쟁의 뼈저린 갖가지 체험은 인간에게 생에 대한 유한한 성격과 더불어 일대 반성을 촉발시켰다. 인간을 이성으로만 환원한 이성철학에 반대하게 되어 생철학이 나왔고 거기서 한걸음 더 나가 정의적(情意的) 심층(深層)에서 인간을 들여다 보려는 사상이 나타났으니 이것이 이른바 실존주의다.

 

실존(Existenz)이라는 말은 중세에 있어서 사물의 존재를 의미하는 existentia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것에 대응하는 개념은 essentia(본질)이다. 그런데 essentia는 본질로서 플라톤의 이데아 같은 것이다. 이것이 항상 existentia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인간의 진실한 그리고 현실적 존재방식 즉 실존으로서의 existenz는 객관적 진리보다는 극한상황, 한계상황에 놓인 인간을 일깨워주는 힘, 그 힘을 가진 주체적 진리가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위장(僞裝)과 허위(虛僞)의 폭로, 無와 심연(深淵), 죽음과 신(神)의 문제와 대결하게 된다. 실존사상에는 유신론적 실존주의(키에르케고르, 야스퍼스, 마르셀 등)와 무신론적 실존주의(니이체, 하이데거, 싸르트르 등)으로 나뉘어진다.

 

10.1. 키에르케고르(Sren KierKegaard, 1813‐1855)는 유신론적 실존철학의 선구로 불리워진다. 그의 실존은 죄의식이나 원죄(原罪)의 관념을 통하여 인간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인간내부의 모순역설을 진리로서 받아들여 절대타자인 神에 직면하는 실존이다.

 

그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미카엘 키에르케고르의 8남매 중 막대로 태어남. 아버지 미카엘은 열 두 살 때 신을 저주한 개인적 기억을 지니고 늘 종교적으로 엄숙하고 인생의 심연과 수수께끼를 생각하며 지냈다. 그리고 깊은 양심의 가책과 죄의식을 지니고 있었는바, 아들 쇠렌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된다. 그는 [우울한 아버지가 나의 우수(憂愁)를 역시 우울한 눈으로 보았을 때 아버지의 염원은 예수를 올바르게 사랑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우울을 물려받은 쇠렌은 [나는 어린아이의 환희를 갖지 않았다. 나는 인간이 아니었으며 광기와 접할 수 있을 정도의 우수였다]고 한다. 그는 자기를 [문장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감탄사], [줄 사이에 거꾸로 인쇄된 활자]에 비유하였다. [나는 외로운 노송나무, 산비둘기만이 나의 가지에다 그들의 둥지를 짓는다]고 한다. 키에르케고르가 대학생이었을 때는 헤겔철학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헤겔철학은 영혼의 깊은 역설, 고치기 힘든 주체의 고뇌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그는 [나에게 진리인 것,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 가령 소위 객관적 진리를 찾아냈다고 해도 또 철학체계를 파악했다 해도, 또 국가이론을 전개하고 세계를 구성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안에서 내가 살고 있지 않다면 소용이 있겠는가? … 나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실존의 가장 깊은 뿌리로 엉켜있는 것, 말하자면 그것을 통해서 내가 신적(神的)인 것에 달라붙을 수 있는 것… 나는 그것을 추구하련다.]

 

그가 찾고자 한 것은 현실적 인간존재, 불안과 죄에 번민하는 개별자가 그 안에서 살 수 있고, 그의 생의 고뇌를 해결해주는 구체적 진리다. 그것은 타인과 단절된 고독자의 깊은 내면성이다. 그것은 바로 [주체성(主體性)]이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주체성은 진리다]. 그러면 이러한 진리는 어떠한 것인가?

 

실존의 3단계: 1단계‐미적 실존(美的 實存): 이것은 관능적인 미적 향락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가장 직접적인 존재방식. 이것은 항상 가능성 속에 머물고 있는 부동(浮動)의 입장이며 인생의 모든 맛을 항상 새로운 것에서 찾는 존재방식. 가령, 연애가 결혼의 현실로 떨어지면 거기에는 신선한 맛이 떨어지고 한 여인을 지키는 것은 지루하기 그지없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그의 권태(倦怠, Langweile)와 자의(恣意, WillkÜr)의 개념이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인간은 이러한 권태를 쫓기 위해서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자의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실과의 불균형 때문에 그는 자기자신에 대해 부정적(否定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자기부정성(自己否定性)을 그는 Ironie(소크라테스의 반어법)라고 하거니와 더 나은 상태를 지향하게 된다. 이것이 윤리적 실존이다.

 

2단계‐윤리적 실존‐미적 실존이 재치로서 사는 존재방식이라면, 이 윤리적 실존은 양심(良心)으로서 사는 방식이다. 현실 속에서 엄숙하게 자기의 의무를 자각하는 태도이다. 한 여인(남자)에 대한 사랑을 심화시켜 결혼함으로써 선량한 사람으로서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일상은 관습적이고 만성적이기 쉽다. 그래서 여기에는 항상 결의(決意)의 반복(Wiederholung)이 따르게 된다.

 

인간은 그가 진지하게 되려고 할수록 엄격한 도덕률 앞에서 자기의 미흡함을 회한하며 또 한편에서는 따를 수 없는 도덕률을 무시하는 방만(放漫)을 부린다. 결국 종교적인 실존을 추구할 수 있다.

 

3단계‐종교적 실존: 이것은 신앙을 가지는 존재방식이다. 신앙를 가진 다는 것은 역설(逆說)을 시인하는 것이다. 신앙이란 오성적(悟性的) 사유(思惟)에 대해서는 부조리이며 역설이다. 이것을 넘어서는 것이 다름아닌 신앙인 것이다. 가령,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 역설이다. 어느 논리로도 귀한 아들을 하나님의 제물로 바치게 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들였을 때 번뇌는 즐거움이 된다.

 

이러한 단계적 실존에의 이행은 결코 연속적인 양적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비연속적인 질적 운동이며 결단에 의한 양자택일이다. 비약의 운동이다. 여기서 헤겔적인 양적 변증법과는 다른 질적 변증법의 면모를 찾을 수 있다. 그리하여 진리는 이 때 결단에 의한 비약에 있어서 즉 주체성에 있어서 노정(露呈)되므로 [주체성은 진리]인 것이다.

 

10.2. 니이체 (157쪽)

니이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를 우리는 보통 무신론적 실존철학의 선구자라고 한다. 그는 키에르케고르와는 반대로 죄나 원죄를 인간의 쇠망본능(衰亡本能)의 산물로 단정한다. (원전을 보아야 할텐데…내 생각) 그의 사상 전체를 꿰뚫고 잇는 근본적인 사상의 동기는 인류의 운명, 인류의 역사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서, 2000년 동안 서구문명의 병폐의 근원을 그는 기독교 속에서 보았다.

 

그리하여 건강한 그리이스 정신을 바탕으로 한 [반기독교]로서 서구문명의 현상에 대결코자 하였다. 그리하여 서구 정신사를 지배해 온 기독교에 근거한 제반 가치체계에 대한 [가치전환(價値轉換)]이다.

 

그는 자기의 대변자인 짜라투스트라를 통해 이렇게 외친다. [모든 것은 점점 작아져 갔다.] 이것은 바로 그 시대에 대한 니이체 자신의 한탄이다. 그러면 무엇이 인간을 왜소하게 만들었는가?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근대의 기계화와 대중화였다. 우선, 기계는 인간으로부터 창조의 즐거움을 박탈해간다. 기계는 같은 것을 대량생산한다. 기계는 인간을 노동으로 강제하고 인간은 기계의 일부분으로 전락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인간의 평균화, 평범화, 기계화가 이뤄진다.

 

다음으로 대중화가 인간을 왜소하게 만들었다. 대중 자체는 원래 우매, 저속, 비천의 대명사이다. 대중은 고귀한 것을 몰라보며 모든 것을 평균화한다. 대중은 고귀한 것에 대하여 오히려 원한(怨恨)을 품기까지 한다. 그러면 이 원한은 어떤 것이며 어디서 유래하는가?

 

이 원한의 개념은 니이체 철학에서 중요하다. 니이체는, 기독교를 위시하여 구라파의 철학에 있어서 모든 이상주의(理想主義)와 사회의 동정윤리(同情倫理)를 강자 또는 귀족에 대하여 약자 또는 노예가 지니고 있는 원한 내지는 복수로 해석한다.

 

즉 이러한 사상들은 권력의지(權力意志)가 없는 빈혈증적 약자가 귀족적 실존을 반대로 지배하겠다는 복수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2000년동안 구라파를 사상적으로 지배하여 왔으므로 구라파의 문화는 바야흐로 퇴폐(頹廢)와 허무(虛無)를 향하고 있다. 약자는 강자와 대등하게 싸울 수는 없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은 강자를 정신적으로 약화시키는 도리 밖에는 없다.

 

그리하여 육체적 정신적 특권을 지닌 귀족에 대한 증오, 권력의지를 구현한 예외자에 대한 반감, 영적(靈的) 계급제도에 대한 대중의 적의(敵意) 등, 이러한 원한의 감정에서 소위 평등사상이 만들어졌고, 동정을 역설하는 윤리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모순에 충만되어 있으므로 모순없는 세계가 있어야 하고, 이 세계는 가상(假象)이므로 절대적인 본체(本體)의 세계가 있어야 하며, 이 세계는 악과 죄가 충만되어 있으므로 완전무결한 천상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철학과 종교는 약자의 소원에 호응하여 형이상학적 세계를 구상하게 되었고 이 허구의 별세계를 인생의 목적이라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구라파를 지배해온 사상은 인간의 쇠망본능의 산물이요 퇴폐의 징후로서 드디어 생명의 부정을 자초하는 사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구는 피부를 가지고 있고 그 피부는 여러 병을 가지고 있는데, 이 중대한 피부병의 하나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병든 인간, 왜소한 근대인, 교양의 속물들, 이것에 대하여 니이체는 권태를 느끼며 구토를 금할 수 없었다.

 

이제 우리는 기계화와 대중화로 인한 왜소한 인간, 기독교를 위시한 이상주의와 동정윤리에 의하여 약화되어 원한까지 품고 있는 인간, 현실적 세계를 부정하고 허구적인 피안의 세계를 참된 세계로 믿고 있는 허약한 속물(俗物)의 지점에까지 왔거니와 이러한 허무주의(虛無主義)를 니이체는 어떻게 극복하고자 했을까? 여기에 그의 영겁회귀(永劫回歸)의 사상과 초인(超人)의 사상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 니이체 사상을 설명한 것 중 해당되지 않는 것은?50)

권력에의 의지

대중화, 기계화, 인간소외로 작아진 인간을 극복하자!

현실부정과 허무주의 그 자체

영겁회귀 사상

초인사상

 

영겁회귀: (159쪽) [신(God)은 죽었다. 인간의 동정병으로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超人)의 출현을 갈망한다.] 니이체는 허무주의를 극복하며 근대의 기계화와 대중화로 왜소해진 인간, 권태와 구토의 대상인 병든 인간, 기독교를 위시한 사회동정윤리가 허구적으로 구상한 이상계를 가치있는 진정한 세계로 믿고 있는 노예, 군중, 시장, 쇠파리, 배우, 천민 등을 초극하는 권력의지를 가진 실존적 귀족을 탄생시켜야 한다. 그래서 니이체는 신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는 결코 단순한 허무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바야흐로 서구문화를 침식해 가고 있는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허무주의자, 즉 하나의 큰 긍정(肯定)을 내포한 허무주의자이다. 극도의 회의(懷疑) 속에서 솟아오르는 생의 긍정에서 창조적인 진정한 생을 찾으려는 것이다. 실존은 대중 사이에 있으면서도 고독하다. 실존은 고독 그 자체다. [우리 형제여! 그대의 고독으로 가라. 고독한 자여 그대는 그대의 길을 걷고 있다. 오오 고독. 너는 나의 고향인 고독, 너의 음성은 어쩌면 그렇게도 반갑고 즐거운 음성이냐?]

 

[고독이 걸음을 멈추는 곳, 거기에 시장이 시작되고, 시장이 시작되는 곳, 거기에 큰 배우와 쇠파리의 외침이 시작된다. 시장이나 명성(名聲)을 떠나서 모든 위대한 것은 생기한다. 고래로 새로운 가치의 발명자는 시장이나 명성을 떠나서 살았다. 피하라 나의 벗이여! 그대의 고독으로. 나는 쇠파리에 쏘인 그대를 본다. 거센 바람을 저쪽으로 피하라. 그대는 소인(小人)과 범인(凡人)과 너무도 가까이 살았느니라. 그들의 보이지 않는 복수로부터 피하라, 그대에게 대하여 그들은 복수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 밤에 나는 두 사람의 인간을 보았다. 최대의 인간과 최소의 인간을. 그러나 그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서로 닮았는지, … 최대의 인간에서도 너무나 인간적인 것을 보았다. 최대의 것도 너무도 왜소하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나의 권태다. 그리고 최소의 것도 영구히 회귀한다는 것, 이것의 모든 생존에 대한 나의 권태다.] 이와 같이 영겁회귀(永劫回歸) 사상의 근저에는 절망과 허무가 존재한다. 무의미하고 가장 혐오하는 모든 것도 불가피하게 되돌아 온다.

 

한편, [영겁회귀의 사상은 여지껏 도달된 긍정의 최고형식이다]고 니이체는 말한다. [모든 것이 회귀한다는 것은 생성의 세계가 존재의 세계로 접근한다는 것이며, 생성에다 존재의 성격을 부여하는 것, 이것이 권력의 최고의지다.]  이러한 말은 영겁회귀가 큰 긍정에로 전환하는 계기임을 말해준다.

 

초인(超人): 그러면 이러한 극단의 허무주의를 큰 긍정에로 전환시키는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권력의 의지를 가진 초인(Übermensch)이다. 초인은 현세 밖에서 초연하게 현세를 재판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현세 밖에서 구제와 자유를 찾아서도 안된다. 초인은 현세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야 하고, 이대로의 생존을 정화시킴으로써 자기의 자유와 타인의 구제를 완수해야 한다.

 

[그대가 인생이라는 강을 건너기 위한 다리는 아무도 만들어줄 수는 없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그대 뿐이다. 사람은 한 오리의 밧줄이다. 이쪽에는 동물이 있고 저쪽에는 초인이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심연(深淵)이 있다. 아아 나의 발 밑에 있는 이 검고 슬픈 바다, 아아 운명의 바다, 그 속으로 나는 지금 내려가고 있다…]

 

벌써 인간에게는 퇴로(退路)가 차단되어 있다. 인간은 자기의 생 속으로 매진하여 그곳에서 활로를 개척하는 길 밖에 없다. 권력의지(Wille zur Macht)로써 [이것이 인생이었느냐? 좋다. 그러면 또 한번!]이라는 절대긍정의 투지로써 자기의 생을 열애(熱愛)할 때 인간에게는 자기의 운명애(amor fati)가 드러나며, 동시에 실존 즉 초인이 탄생하게 된다.

 

초인은 현세의 생의 일체에 대해 [좋다]라는 용기를 가진 자이다. 이를 초달하는 길은 과거의 구토(嘔吐)를 열렬한 사랑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성실(誠實)이 없는 곳에 운명애는 없는 것이다.

 

문제: 니이체의 영겁회귀 사상은 어떤 것일까?51)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되풀이된다.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주변의 힘있는 자들이 하는대로 따라가면 된다.

초인은 곧 신을 뜻한다. 기독교의 신을 따르고 회개하자!

인간에게는 퇴로가 없다. 오로지 관습과 옛것의 되풀이 속에 나를 맡기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하다.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다. 그러한 사실을 긍정하고 무의미와 혐오의 대상을 초극해 나가자!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니이체도 죽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방향감각을 잃었다. 맹목적인 생의 의지만이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문제: 니이체가 말하는 권력의지란 무엇일까?52)

우리가 일상으로 말하는 자기실현의 하나로서 여기는 권력

신(God)의 권력

사후세계를 지배하는 그리이스‐로마의 신, 하데스가 가진 권력

초인이 되어 현실의 것을 일체 잊고 살아가는 상태

낙타처럼 현실의 상식, 관습을 비판없이 따르는 것

 

문제: 니이체는 어떤 삶을 가장 원했을까?53)

낙타의 삶

사자의 삶

어린이의 삶

영원히 사는 기독교적인 삶

동물과 같은 삶

 

야스퍼스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의 사상의 발전은 3기로 구분되는 바, 제1기는 정신병리학, 제2기는 심리학, 제3기는 철학의 입장이다. 하이데거가 인간의 현존재를 [세계내존재]로 파악한 데 비해 야스퍼스는 인간을 [상황내존재]로 이해한다. 여기서 상황은 기계화, 대중화, 집단화에 의한 인간의 자기상실의 시대를 말한다. 따라서 실존철학은 실존상실이라는 시대적 질환에 대한 처방과 치료의 성격을 갖는다. 그이 철학체계는 [세계]에서 [실존]으로, [실존]에서 [신(神)]에로 이중 초월을 통해 자각된다고 본다.

 

하이데거 (165쪽)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5)가 주저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을 세상에 내놓은 지 얼마 안되어 사람들은 그를 실존철학자로 불렀다. 그의 [세계내존재]는 1. 세계내, 2.존재자, 3. 내존재의 3계기를 주장한다. 현존재가 세계내에 존재한다는 것은 [옷장 안에 옷이 있다]는 것과는 다르다.

 

현존재는 주로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 던져진 존재(피투(被投)된 존재)를 의미한다. 그리고 상황성은 [이해성]을 담고 있다. [무엇을 이해하고 있다]는 말은 [어떤 일을 좌우할 수 있다], [어떤 것을 할 수 있다], [가능하다]의 뜻이다. 현존재는 실존론적으로 존재가능으로서 이해성 속에 있다.

 

일상의 현존재는 세인(世人)으로서 사물에 사로잡혀 공공성(公共性) 속으로 몰입한다. 현존재는 그 모습을 바꾸어 잡담과 호기심과 애매성으로 전락한다. [잡담의 지반은, 그 잡담이 공공성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조장하고 있다.] 이렇게 사람은 대개 세인(世人, das man)으로서 퇴락을 면하기 어려운 바, 현존재는 본래적 자기 존재가능으로서 자기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배려된 존재자 옆에 발을 멈추고 잡담과 호기심과 애매성을 유일한 무기처럼 휘두른다.

 

하이데거는 비본래적 세인의 퇴락으로부터 본래적 실존에로 초월하는 계기를 현존재의 근본상황으로서의 불안(不安)에서 찾는다. 공포는 일정한 대상이 있으나 불안은 일정한 대상이 없다. 불안은 현존재의 일상성에 있어서 세계에의 퇴락적 몰입으로부터 현존재를 도로 데려온다. 그는 바로 현존재의 존재전체성으로 심우(心憂, Sorge)를 제시한다.

 

실용주의(實用主義) 173쪽

11.1. 일반적 특징

실천적 성격: 20세기의 2차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노출된 인류의 위기와 관련된 실존철학은 우수(憂愁)의 철인(哲人)키에르케고르에서 시작하여 현대인, 나아가 인간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부조리를 파헤쳐 無나 죽음을 강조하는 등 긴박하고도 엄숙한 기풍을 자아내는데 대해서 우리가 다룰 미국의 실용주의(Pragmatism)는 아주 대조적이다. 그것은 밝고 진취적이고 희망에 찬 미래를 향해서 힘차게 전진하는 인간의 발랄한 보습을 보여준다.

 

구라파의 이민자들이 미국 본토인과 싸우면서 황무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이론이 있다면 그것은 개척사업에 효과적인 것이라야 했다.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니라 행동을 위한 이론, 이것이 그들이 요구하는 바였다. 따라서 그들의 철학은 관상(觀想)을 주로하는 이론철학이기 보다는 생활의 개척에 도움이 되는 실천적 철학이다. 따라서 이론과 실천을 가능한 한 분리시키지 않고 하나로 통일해서 생각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도 경험과 유리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연장이요 말하자면 일종의 경험이라고 보았다.

 

이성적 명상의 철학이 고정적인 영원불변한 진리를 추구한다면, 이와같이 행동과 실천을 위주로 하는 실용주의 철학은 당연히 유동적인 진리관을 지니게 마련이다. 앞의 것이 고정적 반성적이라면 후자의 것은 새로이 획득된 미래상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실용주의는 미래지향적이다. 따라서 진리는 완성되고 고정된 것이를 아니라 그때 그때의 행위와 시도를 통해서 이뤄지는 특수적인 성격을 띤다. 특수적 진리관에서 우리는 진리의 상대주의를 읽을 수 있다.

 

p. 173

미래철학과의 결별

실용주의 창시자 C.S. Peirc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3년 이상에 걸쳐 매일 2시간씩 칸트의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을 연구하는데 소비하여 그 전부를 거의 암기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나는 그 각 부분을 하나하나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이런 연구의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나는 독일 고전철학은 그 논증적 측면에 관해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상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철학적 시사(示唆)의 풍부한 광맥(鑛脈)으로 존중하고 아마도 거기에 대해서 너무 호의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에 반하여 영국철학은 그 착상에 있어서 사실 빈약하고 조잡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보다 확실한 방법과 보다 정밀한 논리에 따르고 있다.”

 

하지만 칸트의 영향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가 제창한 pragmatism이라는 말도 실은 칸트의 praktish(실천적)와 pragmatish(실용적)의 구별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물론 칸트는 실천적이라는 데에 비중을 두었지만 퍼어스는 이를 부정하고 오히려 실용적이라는 것에 비중을 두었다.

 

J. Dewey는 그의 자전적인 단편에서 헤에겔, 제임즈, 꽁트 세 철학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들은 저 고전철학과의 진지한 대결을 통해서 그들의 철학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과학과의 밀접한 관계

미국철학의 특색도 과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프랑스 철학은 과학, 문학, 예술과 관련을 맺으며 사회속의 실천적 측면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특성이 있는데 비해 미국철학은 과학 그 자체의 연관하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퍼어스는 10년동안 화학실험실에서 연구하였다. 저명한 물리학자들과 교제하였고, 수학, 역학, 광학, 화학, 천문학 등의 탐구를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하버드의 수학교수였다. 그는 형이상학자라기 보다 과학의 철학자였으며 이는 신칸트학파와 상통한다.

 

제임즈는 처음에 화가를 꿈꾸다가 대학에서 의학과 생리학을 배웠다. 그의 생리학 교수(L. Agassiz)는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거북의 등껍질, 조개껍질, 게 딱지 등이 산적한 방에 학생들을 수주일 동안 가두어 놓고 직접 탐구하게 하였다. 그리고 1865년 제임즈는 아마존 강의 생물탐험대에 가담했다가 자기의 할 일이 외계의 관찰이 아니라 내계(內界)의 반성(反省)임을 깨닫고 심리학과 철학탐구로 그 방향을 돌렸다.

 

11.2. 퍼어스

실용주의의 준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발표한 논문 [How to make our idea clear, 1878]에서 실용주의의 사상을 밝힌다. 사고란 의심이라는 자극에서 시작하여 신념(확신)이 얻어짐으로써 종결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신념의 본질은 관습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 관습이란 행동의 관습이다. 사고는 바로 이 신념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사고의 전기능은 행동의 관습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는 실험과학에서부터 시작했는 바, Consider what effects, that might conceivably have practical bearings, we conceive the object of our conception to have. Then, our conception of these effects is the whole of our conception of the object.

 

즉 효과, 우리의 지적탐구와 생활에 유익한 효과를 추구하고 그것을 낳은 관념을 신념으로 채택하라는 의미. 제임즈는 [직접적으로 경험되지 않는 어떠한 요소도 그 구조 속에 허용되어서는 안되며 직접적으로 경험되는 어떠한 요소도 배제되어서는 안된다. 경험을 결합하는 제관계는 그 자신 경험된 관계이며 경험된 어떤 종류의 관계도 그 체계 속의 다른 어떤 것과도 같이 실재적(實在的)이라고 인정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명석한 개념]이란 그 개념이 가리키는 대상이 어떤 실제적 결과 내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가 분명한 개념이 된다.

 

이러한 진리관에서 진리란 영원불변한 것이 될 수 없다. 대신 인식자 즉 행위자에 의해서 창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일반적,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행동에 따른 특수적인 것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실용주의 진리관이 상대주의임을 알 수 있다.

 

11.4 듀이

듀이의 공헌은 [생명을 활동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인간을 경험 및 환경과의 유기적 관련을 맺는 생명체로 간주한 것이다. 듀이에 의하면 지성은 바람직한 미래를 창조하는 창조적 지성으로서 도구적 성격을 갖는다. 즉 창조적이며 도구적이며 또한 자유롭다.

 

이성(reason)은 보편적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지만 그것은 경험과 동떨어지게 만든다. 듀이의 지성은 경험과 평등이며 일체요, 경험 그 자체 속에 있다. 그에게서 기존의 결론은 가설(假說)로서 새로운 연구에 대해 도구(道具)역할을 한다. 듀이의 도구주의(intrumentalism)는 지성이 미래를 향한 행동을 위한 도구이며 동시에 지식이 미래를 향한 새로운 연구를 위한 도구임을 강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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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교회 즉 신앙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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