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JTBC·한국정치학회가 25일 공동 주최한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보수 후보들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지난 세 차례 TV토론이 인물대결 구도였다면 이날 토론은 이념구도가 부각됐다.
대선후보 초청 토론 사상 가장 긴 3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원탁 토론회에서 홍 후보는 문 후보를 겨냥해 “지난 토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640만 달러를 받은 게 아니라고 말했는데 가족들이 받은 것은 뇌물이 안 되느냐”고
공격했다.
이에 문 후보는 “제가 노 전 대통령 조사 당시 입회를 했는데 그때 언론 브리핑에서 ‘노 전 대통령이 그 사건과 관련됐다는 아무런 증거를 검찰이 갖고 있지 않았다’고 발표했다”며 “돌아가신 분을 왜 그렇게 욕을 보이느냐”고 반박했다.
홍 후보는 또 문 후보에게 “문 후보의 책(『운명』) 132페이지를 보면 ‘미국의 월남전 패배와 월남의 패망은 진실의
승리고 (결과에) 희열을 느꼈다’고 썼다”며 “월남전은 우리 장병 5000명이 죽은 전쟁인데 희열을 느꼈다고 쓴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문 후보는 “(월남전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나오는) 리영희 선생이 쓴 책 (『전환시대의 논리』)1, 2, 3부의 내용을
제가 높이 평가한 것”이라고 답했다.
유 후보도 “문 후보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전배치 가능성이 크다고 인정하면서 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엔 반대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문 후보는 “사드를 배치하면 다음 정부에서 중국으로 하여금 북핵 폐기에 공조할 수 있도록 하는 카드를 쓸 수
없기 때문에 다음 정부로 배치 결정을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유 후보가 “사드는 한·미 동맹의 상징인데 사드를 배치하지 않고 어떻게 한·미 동맹을 지키느냐”고 재차 묻자
문 후보는 “미국에 무시당하는 나라를 누가 만들었나.
미국 주장에 추종만 하니까 미국은 이제 우리하고 협의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또 유 후보는 문 후보의 ‘공공일자리 81만 개’공약의 현실성에 대해 공격을 퍼부어 두 사람 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이에 맞서 문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유 후보와 홍 후보가 동시에 주장하고 있는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협공하기도 했다.
또한 문 후보는 대선 레이스의 막판 변수로 등장한 ‘3자 후보 단일화’ 설을 공격했다.
문 후보는 안철수·홍준표·유승민 후보에게 동시에 “3자 후보 단일화에 대한 입장이 뭐냐”고 물었다.
이에 세 후보 모두 “그럴 일 없다”(안 ), "저는 단일화하지 않는다”(유 ), "저는 생각도 없는데 왜 묻느냐”(홍 )며
단일화에 반대 입장을 표시했다. 이
에 심 후보가 단일화에 응하지 말라는 취지에서 “유승민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문 후보는 “세 후보의 단일화가 실제로 추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렇게 될 경우 적폐연대라고 규정하고 싶다”고 했다.
3차례의 대선 후보 TV토론에서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가장 잘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가장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심 후보의 지지율 상승과 안 후보의 지지율 하락에 TV토론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일보와 한국리서치가 24, 25일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교결과, TV토론을 가장 잘한
후보로 심 후보가 27.2%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22.1%로 뒤를 이었다.
TV토론 이후 전문가 집단이나 유권자들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았던 두 후보에 대한 평가가 여론조사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된 셈이다.
반면 지지율 1, 2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2.6%로 3위를 차지했고, 안 후보는 5.1%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TV토론 태도에 비판을 받았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5.9%로 박한 평가를 받았다.
특별히 잘한 후보가 없다는 응답도 17.2%에 달해 TV토론에 대한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 지지율에서 마의 5% 벽을 넘지 못하던 심 후보가 8%까지 치솟은 데는 TV토론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정관철 한국리서치 부장은 “조사 수치만 놓고 보면 유권자들이 TV토론에 있어서는 지지 후보와 상관 없이 객관적
평가가 이뤄진 것 같다”며 “눈에 띄는 변수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TV토론이 심 후보 지지율 상승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심 후보는 광범위한 지지층에서 TV토론과 관련해 호평을 받았다.
문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자의 35.7%가 TV토론 평가에서는 심 후보에게 손을 들어줬으며, 정작 문 후보는 26.9%의
호평밖에 받지 못했다.
안 후보 지지층에서는 유 후보가 잘했다는 평가가 26.7%로 가장 많았고, 이어 심 후보(23.2%)와 안 후보(15.4%)
순이었다.
이념별로도 심 후보는 진보층(39.8%)은 물론 중도층(28.4%)에서도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안 후보는 TV토론에서 상당한 점수를 까먹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당 지지자 가운데서도 TV토론에 대한 호평은 유 후보(24.7%), 심 후보(23.2%), 안 후보(17.4%) 순이었다.
이념별로도 안 후보는 중도층(5.1%)과 보수층(4.1%)으로부터 낮은 평가를 받았다.
보수층에서는 유 후보(30.4%)가 가장 후한 점수를 받았고, 이어 홍 후보(15.6%)와 심 후보(15.5%) 순이었다.
중도는 물론 보수층 지지까지 끌어와야 하는 안 후보 입장에서는 TV토론에서 이들로부터 확실한 눈도장을 받지 못한 것이 지지율 하락과 직결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정 부장은 “안 후보가 TV토론에서 유 후보에게 밀린 것이 지지기반이 겹치는 중도보수층 이탈로 이어져 지지율 하락에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TV토론을 보지 않았거나 관심이 없다’는 답변은 7.3%였을 정도로 이번 조사에서도 TV토론에 대한 높은 관심이
확인됐다.
지난 세 번의 토론에서는 '송민순 문건' 논란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은 반면, 이번에는 상대 후보들의 공격에 말려들면서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후보는 이날 다른 후보들의 공세에 평소보다 다소 격양된 반응을 보이는 등 너그럽지 못한 토론 태도를 보였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에게 던진 '정책본부장'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날 유 후보가 일자리 공약의 재원 소요 방안을 두고 집중 추궁하자 "더 자세한 내용은 우리 정책본부장과
토론하는 게 낫겠다"라며 대화를 매듭지으려 했다.
이외에도 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 수수 의혹을 계속 주장하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향해 "이보세요,
제가 그 (사건) 조사 때 입회했던 변호사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홍 후보는 "말씀을 왜 그렇게 버릇없이 하는가"라며 문 후보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동성애 반대' 발언 논란, "후보가 공식 사과해야"
'동성애 반대'를 직접 언급했다가 인권 감수성 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문 후보는 "군대에서 동성애가 심하다, 동성애는 국방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홍 후보의 질문에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이어 홍 후보가 "동성애에 반대하나"라고 거듭 묻자 "반대한다",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 "(군대 내 동성애) 합법화에 찬성하지 않는다"라는 답변을 내놨다.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지지하지 않지만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밝혀온 평소 기조와는 기류가 확연히 다르다.
이를 두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동성애는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니다,
저는 이성애자지만 성소수자의 성 정체성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라고 꼬집었다.
이후 홍 후보가 토론 말미에 사형제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서 동성애 문제를 다시 제기하자 문 후보는 "동성혼을
합법화할 생각은 없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라며 "성적인 지향 때문에 차별해서는 안 된다,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동성혼을 구분 못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SNS에서는 '인권변호사 출신답지 못한 답변'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표현을 일부 수정하긴 했지만, '동성혼 합법화 반대' 역시 사실상 성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발언이다.
일각에서는 보수 진영과 개신교계의 표심을 지나치게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동성애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동성혼은 안 된다는 발언은 매우 모순적"이라며 "후보가 공식적인 사과와 해명을 내놓는 게 합당하다"라고 말했다.
반면, 문 후보를 지지하는 조국 서울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의 '동성애 반대' 발언은 군대 내부의 동성애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라며 "합헌으로 결정이 난 군형법을 인정한다는 취지로 보인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어 조 교수는 "(동성애 반대 발언과) '동성애 차별에 반대한다'는 발언 사이에서는 충돌이 발생한다"라며 "'동성애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정답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측 "큰 실점 없었지만 역정낸 게 조금 걸려"
문 후보 측은 일부 발언이 매끄럽지 못했지만 판세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정도의 실책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선대위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문 후보에게 큰 실점은 없었다"라며 "유 후보가 몰아친
(일자리 공약) 예산 문제에 문 후보가 속 시원하게 답변하지 못한 게 아쉽고, (홍 후보의) 노무현 640만 달러 주장에
역정을 좀 낸 게 조금 걸렸다"라고 말했다.
동성애 발언 논란을 두고는 "동성애와 사형제 폐지에 대한 질문이 나올 것은 예상했었다.
다만, 처음 답변은 애매하게 들렸지만 홍준표 후보가 재차 질문할 때는 비교적 명확하게 답변했다"라고 평가했다.
문 후보는 이날 토론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정말 힘들고 피곤하지만 한편으로는 (토론이) 미진해서 더 토론하고
싶다"라며 "토론을 하면 할수록 국민들께서 어느 후보가 다음 대통령으로 바람직한지 잘 구별해 줄 것이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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