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제공)
뭉치는 한국, 역풍 맞는 일본, 싸움 반기는 중국…‘3국 3색’
日 보복에도 지리멸렬 정치권 / 여론 들끓자 초당적 협력 나서
아베 내각 지지율 7%P 하락
선거용 ‘한국 때리기’ 안 통해
中 “한·일 갈등 우리에게 기회”
한국에 수출 확대 기대감 높아
아베 강경 기조에 다양한 관측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에 한·중·일 3국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에도 분열된 양상을 보였던 한국 정치권은 모처럼 보복조치에 대한 대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조만간 만나 일본의 보복조치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와 국민, 정치권, 언론이 단합해 경제 보복의 정당성을 설파하며 총공세를 펴는데도 오히려 한국 정치권은
보복조치에 대한 입장을 달리하며 내부 갈등을 드러냈다.
특히 일부 정치인은 일본과 똑같은 시각으로 경제 보복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 돌리는 행태를 보여 눈총을 받기도 했다. 적전 분열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들끓자 여야 정치권이 초당적 협력에 나서고 있다.
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일(현지시간) 도쿄 인근 후나바시 거리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의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보복조치를 강행했음에도 내각 지지율은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선거용으로 활용한 ‘한국 때리기’가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2~14일 18세 이상 유권자 2만6826명을 대상으로 실시, 1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49%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달 28~30일 실시한 조사 때의 56%보다 7%포인트나 하락한 것이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 하락세는 이날 발표된 다른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아사히신문 조사(13~14일)에서 내각 지지율은 42%로, 지난달 22~23일(45%)보다 3%포인트 하락했다.
요미우리신문 조사(12~14일)에서는 내각 지지율이 45%로, 지난 4~5일(51%)보다 6%포인트 떨어졌다.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에 참석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오른쪽부터)·한철희 동북아 통상과장이 12일 도쿄 지요다구 경제산업성 별관 1031호실에서 일본 측 대표인 이와마쓰 준 (岩松潤) 무역관리과장(왼쪽부터)·이가리 가쓰로(猪狩克郞)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과 마주 앉아 있다. 연합뉴스
일본 국민의 절반가량은 아베 정권이 한국에 대해 단행한 ‘수출 규제 강화’에 대해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찬성은 56%인 반면 반대는 21%에 그쳤다.
하지만 일본 입장 지지율은 다른 한·일 갈등 이슈 때보다 높지 않다.
작년 초 문재인 대통령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비판 당시 NHK 여론조사에서는 82%가 ‘납득할 수 없다’고 답했다. 또 올해 초 한·일 간 ‘초계기 저공비행-레이더 조사’ 갈등 때에는 64%가 일본 정부의 대응을 지지했다.
한·일 갈등 확산에 중국은 자국 기업들이 산업 사슬에서 위로 올라갈 기회라고 전망한다. 이날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업계 전문가인 푸리강은 “한·일 양국의 갈등 확산이라는 기회를 잡아 중국 기업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업체들이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한·일 갈등으로 생긴 빈틈을 파고들 준비가 돼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
포스트가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칼럼에서 “한·일 간의 ‘미니 무역전쟁’에서 승자는 중국이 될 것”이라면서 “양국의 사이가 벌어지면 중국만 득을 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통신은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국의 제조업체들이 중국에서 더 많은 재료를 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보복조치가 글로벌 산업의 공급망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타임스는 업계 전문가 샹리강의 말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재료의 수출을 규제한 것은 중국
업체를 포함해 글로벌 산업망에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일본과 한국, 중국은 긴밀한 기술 공급망을 구축해 왔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재료를 제공하고, 한국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제조하며 중국은 최종적으로 기기를 조립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보복조치가 이런 공급체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日, 한국의 국력 부상 부담돼 강공책”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에 이어 안보상 우호 국가인 화이트 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삭제하려는 아베 신조
(安倍晋三) 일본 정부의 강경 기조를 놓고 다양한 관측이 제기된다.
아베 정부의 강경 기조엔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최근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이 가능한 전략물자의 수출입 관리 부실 등을 근거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아베 정권의 강공엔 또 다른 배경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여러 분석 중에는 외교·경제적 부문에서 영향력을 제고한 한국의 부상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무엇보다 최근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개최된 북·미 정상회담 혹은 양국 정상의 만남에 한국 정부가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했지만 일본은 사실상 소외됐다.
일본은 동북아 외교의 변화에 조력자는 고사하고 북한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는 신세다.
일본은 또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산업 등 핵심분야에서 한국에 추월을 허용한 상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촉발된 일본의 강경 기조와 관련,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일본 내에서는 노령화로 인한 국력
약화를 걱정하는 목소리와 더불어 한국이 몇 년 후에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추월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며 “남북이 평화 공존을 이루면 일본을 능가할 만한 국력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전에 한국의 국력을 약화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 있지 않다’고 인식한 아베 정권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시킨 미·중 무역전쟁을 본떠 한국 수출의 3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을 겨냥한 수출 규제를 통해 한국을 견제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과 관련한 우리 대법원 판결에 대한 아베 정권의 불만과 위기의식도 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외교통상부 2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일본 수출 규제의) 근본 원인은 대법원 판결에 있다.
한국 정부에 대해 계속 입장을 달라고 했음에도 (정부가) 연기를 했다”며 “위안부 합의 파기 등 현안들이 쌓이면서
문제가 커졌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15일 “아베 정권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 판결 직후 대책 마련에 나섰다”며
“이 문제(징용 배상 판결)를 방치하면 옛 연합국과의 강화(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나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배상 협정을 뛰어넘는 (손해배상) 청구를 저지할 수 없고 북한과 수교할 때 터무니없는 배상 청구의 구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베 정권이 오랜 기간 치밀하게 준비해온 정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박수찬·이정우 기자 wsle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처 관련한 양국 과장급 실무회의가 열린 12일 오후 취재진이 한국대표단이 들어서는 모습을 취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화이트 리스트’ 무기로 동북아 안보틀 흔든다
화이트국가 제외’ 강행 왜?
경제보복 넘은 안보 압박 강화
한반도 구상 일본 뜻 반영 속셈
“동참하거나 화이트국가 빠져라”
아베 ‘전쟁할 수 있는 나라’ 숙원
동북아 한미일 협력구도 흔들어
한국을 안보 우호국 성격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는 일본의 방침에는 경제보복 차원을 넘어 동아시아 지역의 안보 틀을 재조정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2010년 중국이 일본을 밀어내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지난해부터 한반도에서 남·북·미를 중심으로 안보 지형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동북아 안보를 둘러싼 한·일의 전략 목표는 점점 멀어져왔다.
이런 구도에서 아베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둘러싼 갈등을 계기로, 일본의 전략 목표를 한국이
수용하라는 압박성 공세를 취하고 나선 셈이다.
우선 일본이 뚜렷한 근거도 없이 한국의 대북 제재 위반 의혹, 사린가스 전용 등을 무리하게 거론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정조준하면서,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의 역할과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계산된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남기정 서울대 교수는 “한국이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되지 않으려면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일본의 요구를 반영하라는 요구를 담고 있는 주장”이라며 “대북 제재 유지를 근간으로 한 일본의 한반도 구상에 한국이 동참하든지 아니면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며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신정화 동서대 교수는 “한국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미국과의 협조를 강화하면 일본도
따라올 것으로 봤지만, 일본 아베 정부는 미-일 동맹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의 자체
군사력을 강화해 자율성을 확보하려 하면서 한·일의 전략적 목표가 계속 멀어져왔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2015년 ‘천안문 망루 외교’와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보면서 일본 아베 정부는
중국, 북한과 관련해 한국이 일본과 연대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
강제징용 갈등이 핵심적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전례 없는 경제보복 조처를 통해 한국에 안보 측면의 압박을 강화하려는 맥락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다.
일본은 2018년 국방정책보고서와 방위대강에서 한국과 관련해 ‘미국의 동맹으로, 기본 가치와 안보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라는 표현을 뺐고, 안보협력 순위도 기존 2번째에서 5번째로 낮췄다.
특히 지난해 아베 총리의 방중 등으로 중-일 관계가 급속도로 개선돼 자신감을 얻은 일본이 한국을 향해 ‘한국 없이도 갈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측면도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아베 총리는 필생의 목표인 평화헌법 개정과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가는 길에서 한국이 ‘걸림돌’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보통국가’ 만들기를 위해서는 일본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고취하면서
‘아름다웠던 메이지 시기로 돌아가자’는 메시지가 중요한데, 한국이 계속 과거사 문제를 제기해 이를 흔드는 상황에
대한 초강경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일본의 이런 행보는 1965년 이후 구축된 한·미·일 안보 협력 구도를 흔드는 것이어서, 동북아 전반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 우선 미국 설득에 나섰지만 미국이 적극적 역할을 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다.
지난주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국무부 관계자 등과 협의를 하고 돌아온 외교부 당국자는 15일 기자들에게 미국은 “인게이지(관여)해서 현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그는 “미국이 양측을, 특히 일본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하는 선에서 논의가 됐다”면서도, “미국이 어떤 식으로 인게이지 할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일각에서 한·일 양국 정부가 북핵과 미사일 관련 정보 공유 등을 위해 체결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선 “미국 측에서 군사정보보호협정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언급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당분간 미국은 한-일 갈등이 더 이상 고조되지 않도록 물밑에서 움직이면서,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서 한·일이 이탈하지 않게 하는 정도로 관리할 것이란 메시지로 읽힌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와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에도 SNS를 통해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가 상호 의존과 상호 공생으로 반세기 간 축적해 온 한·일 경제협력의 틀을 깨는 것’이라며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7/16/b4dba90e-52e5-4a26-bcfc-a8b213874d31.jpg)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와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에도 SNS를 통해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가 상호 의존과 상호 공생으로 반세기 간 축적해 온 한·일 경제협력의 틀을 깨는 것’이라며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수출 제한, 한·일 경제협력 틀 깨
외교적 해결의 장으로 돌아오길”
“중대 도전”“성장 막아” 강경 발언
강제징용 판결 해법엔 유연해져
“한국 제안이 유일한 방안 아니다”
바른미래 “대일 선전포고” 비판
문 대통령은 일본의 이번 조치를 “반세기간 축적해온 한·일 경제협력의 틀을 깨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문 대통령 “일본, 경제·과거사 연계는 현명하지 못한 처사”
문 대통령은 다만 외교적 논의 과정에서 한국의 입장을 유연하게 가져가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날 오전 “실질적 논의가 가능하다면 대승적 차원에서 어떤 회담이라도 수용하겠다”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문 대통령의 이런 대응에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사실 일본 조치의 실제 효과는 수출 지연 정도일 텐데, 우리가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다”며 “대통령이 직접 말하기보단 국무총리나 외교 장관이 나서야 했다”고 비판했다. 야당에선 “대통령이 나서 해결하라고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참모들이 로키(low-key, 낮은 수위)로 관리하자고 제안하는데, ‘국제법상 우리가 잘못한 게 없다’는 문 대통령의 인식이 워낙에 강하다. 결
문 대통령의 이날 강경 메시지에 대해 야권은 비판했다.
[출처: 중앙일보]
한국, 日 통상전쟁서 '공격 카드' 있다..JDI 제소 부상
정부가 일본과의 통상 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유력한 ‘공격 카드’로 일본 디스플레이 업체 재팬디스플레이(JDI)와
JDI 출범을 주도하면서 자금까지 댄 일본 정부를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는 방안을 올해 초부터 검토해왔던 것
으로 알려졌다.
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산업 정책을 직접 공격하겠다는 것이어서, 실제로 한국 정부가 이를 대응 수단으로 선택할 경우 한·일간의 통상 분쟁이 크게 확전될 것으로 관측된다.
15일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초 일본 정부가 JDI를 불공정 지원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 회사를
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는 일본 측 통상 공세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서 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직접적인 계기는 당시 일본 후쿠시마현 인근 지역산(産) 수산물 수입을 놓고 WTO에서 벌어지고 있던 법적 공방이었다. 해당 사건은 4월 한국의 승소로 끝났다.
일본이 지난해 11월 한국 정부의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등에 대해 WTO 보조금 협정 위반이라고 제소한 것도 또 다른 배경이었다.
일본은 무역보험공사의 선수금 환급보증(RG) 발급까지 문제삼았었다.
정부 측은 당시 JDI 카드를 검토하면서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로 맞대응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이달 초 "일본의 경제 보복과 관련된 100여개 품목의 ‘롱 리스트(후보목록)’가 있고, 1~3번째에 해당하는 품목이 이번에 일본이 규제한 것"이라 말하면서 알려진 ‘롱 리스트’는 이때 작성됐다.
한 관계자는 "당시 반도체·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공정 핵심 업체들을 모아서 청와대에서 회의를 열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LCD(액정표시장치)를 주력으로 하는 JDI가 중국 공세에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보고 있다.
미래 디스플레이로 꼽히는 OLED는 생산 공장조차 없는 상황이어서 공격 카드로서 실익이 있느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한국 정부가 그럼에도 JDI를 타깃으로 삼은 것은 일본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만든 산업혁신기구(ICNJ)를 정조준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산업혁신기구는 일본 정부가 2009년 만든 관민(官民)공동펀드다. 현재 정부가 2860억엔, 민간이 135억엔을 출자했다. 최대주주는 95.49%의 지분을 갖고 있는 일본 재무성(주주명부에는 재무대신)이다.
JDI는 2012년 산업혁신기구 주도로 소니·히타치·도시바 등 3개 회사의 디스플레이 사업을 통합한 회사다. 3개 회사의
디스플레이 사업을 합치고, 산업혁신기구가 2000억엔을 출자해 대주주가 됐다.
산업혁신기구는 파나소닉·소니의 OLED 사업부를 통합해 만든 JOLED(현 JDI 자회사)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샤프에 자금 지원을 하는 등 사실상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을 움직이는 존재다.
결국 JDI를 문제삼으면 아베 정부의 산업정책 핵심 수단인 산업혁신투자기구의 활동에 태클을 걸 수 있는 셈이다.
산업혁신투자기구는 디스플레이 산업 뿐만 아니라 2017년 도시바 인수를 주도한 것처럼 반도체 산업에서도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 제조업 구조조정에서 핵심 자금원이기도 하다.
결국 2013~2014년 이후 일본 디스플레이 업계는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생존하면서 제품을 판매해왔던 셈이다.
산업혁신기구는 모태가 된 1999년 산업혁신법 제정 당시부터 WTO 보조금 협정 위반 소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특정 기업이 입은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서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데다, 지원을 받은 기업들이 정부 재정을 바탕으로 싼 값에 제품을 판매하는 격이라 통상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혼마 미쓰루(本間充) JDI 사장은 JDI의 유동성 문제를 우려하는 주주들에게 "산업혁신기구의 지원은 문제가 없다"며 사실상 정부 지원에 한도가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난 2018년 산업혁신기구 임원들이 경제산업성과 마찰 끝에 교체되는 등 산업혁신기구가 경제산업성의 직접 통제를 받는다는 점도 일본의 ‘약점’이다.
권성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2017년 애플이 OLED를 아이폰에 탑재하기 시작하면서 LG디스플레이는 OLED로 LCD
라인을 전환하기 시작했지만, JDI는 자금도 없고 실적도 안 좋아 구조조정에 집중한 탓에 OLED 시장에서는 이미 3~5년 정도 뒤쳐졌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이 없이는 LCD 패널뿐 아니라 OLED에서도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출규제' 일본 꾸짖은 美언론…"일본이 물 흐린다
NYT "아베, 트럼프 수법 따라 한국에 수출규제"…
"한국이 안 물러서면 어쩔거냐"
NYT는 15일(현지시간) '자유무역 탄압의 명분으로 국가안보를 내건 일본, 익숙하게 들리지 않나?'란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의 전략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중 무역전쟁 방식을 답습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말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지 불과 이틀 뒤 '국가안보'라는 모호한 이유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나섰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NYT는 "만약 이런 수법이 자주 쓰인다면 국제무역 시스템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브라이언 머큐리오 홍콩 중국대 국제통상법 교수의 우려를 소개했다.
머큐리오 교수는 "만약 1∼3개국이 아니라 10∼15개국이 잘못 규정된 국가안보적 예외를 근거로 이런 조치를 취한다면 국제무역의 규칙이 훼손될 것"이라고도 했다.
신문에 따르면 진 박 로욜라 매리마운트대 국제정책학 교수는 "정말로 골치아픈 문제는 일본의 이번 조치가 다른 나라를 위협하기 위해 무역 등 경제적 이해를 무기화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NYT는 "일본이 수출규제를 마치 안보적 조치인 것처럼 규정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물을 제대로 흐리고 있다"는 다니엘
"많은 동참" 옹호론와 "감정적 대처 말자" 신중론도
(서울=뉴스1) 황덕현 기자 = 일본산 담배와 맥주의 판매를 중단했던 중소상인과 자영업자들이 일본산 음료·스낵·소스류의 판매까지 전면 중단하는 등 '노 재팬'(No Japan) 운동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데 대해 시민들은 "언론을 통해 일본산 반대가 더 알려져서 많은 동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옹호론과 "국제 문제를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말자"는 신중론의 상반된 의견을 내놨다.
16일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 등에 따르면 일본산 제품 판매 중단을 시작한 전국 도·소매점과 마트는 지난 5일 노 재팬 운동 시작 열흘 만인 15일까지 1만여 곳으로 늘었다. 여기에 전통시장과 편의점, 슈퍼마켓까지 대열에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은평구 신사동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박모씨도 매대에서 일본산을 지운 상인 중 한명이다.
박씨는 "할 수 있는 선에서 마음을 더하는 것"이라면서 "보복 무역이 해제되지 않는 한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고 강조
했다.
그는 "초기에는 일본산 맥주 수요가 있었으나 최근에는 주변에서 좋은 취지라며 응원해 뿌듯하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양천구 목동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김모씨도 매대에서 일본산 담배, 맥주와 더불어 일본산 된장, 와사비까지 비웠다.
김씨는 "대형 마트 등에서는 여전히 그런 것(일본산 제품)을 팔기 때문에 그쪽으로 단골을 뺏길까 걱정이다"면서도
"매출 하락도 불사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인들의 강경한 입장에 시민들은 응원하는 한편 동참의 뜻을 보내고 있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에서 만난 장모씨(31·서울 서대문구)는 "실제 일본 경제에 타격은 미미하겠지만 이번 일이 내수의 경쟁력을 올리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별미로 먹던 일본산 음료나 음식도 당분간은 자제하면서 상황을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학생 박모씨(23·여)도 "굳이 일본산을 찾아 쓰지 않았지만 (중소형 마트들이) 생계를 걸고 행동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로 보였다"면서 "일본산 반대가 많이 알려져서 다양한 선택지가 있을 때 '굳이 일본 것을?'이라는 인식이 박히면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노 재팬' 운동에 불참한 마트와 편의점 등도 다수 있다.
실제 서울 성동구의 한 전통시장에 있는 마트 3곳은 모두 일본산 담배와 맥주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노 재팬 운동에 대해 들어봤느냐'는 질문에 한 마트 직원은 "앞서 매대에 놔뒀던 게 아직 팔리지 않은 것"이라면서
"비치 정도는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실제 이 마트는 냉장고에 넣어둔 국산 맥주와 상반되게 일본산 맥주는 상온에 배치해 둔 상태였다.
일부 시민들은 마트들의 단체행동이 일본을 자극하는 촉발점이 될 수 있다는 신중한 태도를 가지자는 반응을 내놨다.
이 마트 앞에서 만난 한 50대는 "사고 말고는 소비자가 알아서 판단하면 되는데 마트가 선택지를 쥐고 흔든다는 인상을 받아서 썩 유쾌하지 않다"면서 "상식 있는 시민이라면 알아서 판단할 테니 굳이 마트가 감정적으로 앞서서 대처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한상총련은 "이미 전북, 대구, 경북, 부산, 충남, 제주 등의
상점 판매대에서 일본 제품을 내리고 있다"며 "외세 힘에 지레 겁먹고 대항조차 하지 말자는 것은 과거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에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일본대사관 앞에 쓰레기통을 설치하고 일본산 담배·주류·음료·스낵·소스류를 폐기하는 '불매 퍼포먼스'를 펼
쳤다.
부품소재 수출규제를 주도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초상화도 함께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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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택의 고전시평] 일본의 '적반하장', 위기의 본질을 깨닫자
소재·부품 산업의 허약성 노출...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더팩트 | 임영택 고전시사 평론가] 일본은 7월 4일부터 TV,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제조 필수 부품인 리지스트 및 반도체 제조 필수 소재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있다.
6월 30일 북미 판문점 정상회담 다음 날인 7월 1일 규제를 발표한 시기도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기막히다.
일본의 초조함이 묻어나며 한반도 평화 흐름에 찬물 끼얹기 성격이 짙다.
작금의 사태는 일제 강점기 당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1인당 1억 원씩을 배상하라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도화선이 되었지만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 아베 정권은 끊임없이 극우보수화의 길을 걸으며 전쟁, 무력행사 및 군사력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정치·군사대국으로 나아가려고 수시로
한국과 대결구도를 조장하여 국내 지지기반 결집 및 확충을 획책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심지어 한국이 대북 제재 물품을 북한에 제공한 혐의가 있다는 근거 없는 이유를 대면서 수출 규제를 정당화시키려 안간힘을 쓰며 남한과 북한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일본이 북한에 미사일 관련 장비 등 대북 제재 물품을 수출하여 유엔으로부터 여러 차례 지적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또한 2018년 봄부터 급속히 진전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의 길에서 일본이 철저하게 배제된 ‘재팬 패싱’에 대한 불안
심리도 한국을 향한 정치·경제 공세에 한몫하고 있다.
한국에 일본은 가깝지만 너무나도 먼 이웃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에서 기원전 1만 700년부터 400년까지 일본을 주도했던 조몬인을 한반도에서 일본에 대거 진출했거나 초기에는 비록 소수였다 하더라도 정착한 뒤 인구가
급증한 세력이 조몬인을 대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파했다. 신빙성이 높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에 따르면 고대 한반도 거주민은 단지 일본에 문명을 전수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종적으로도 현대 일본인의 조상인 셈이다.
그 이후 친연관계가 멀어지긴 했지만 일본은 왜구활동, 임진란, 갑오농민혁명 및 일제 강점기 등에서 한반도 역사에
씻지 못할 악행을 저질렀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이 주변국들에게 진정어린 사죄를 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은 사죄는커녕 지금까지도 그들의 악행의 역사를 왜곡하고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일본은 가깝지만 너무나도 먼 나라이다.
오랜 역사에서 한반도는 일본에 많은 이익과 혜택을 주는 대신 엄청난 피해를 당했는데 현대에도 한국은 일본의 배를 불려주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와 관세청의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1965년부터 2018년까지 54년 간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 누적액은
총 6046억 달러(약 708조 원)이며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은 일본과의 소재·부품 교역에서 151억 달러(약 17조 700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2018년 한국의 무역흑자가 82조 원이었고 대일 적자만 28조 원이었는데 대일적자의 약 63%가 소재·부품 분야였다.
일본은 지금까지 한국과의 교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보고 있으며 한국은 특히 소재·부품 분야에서 일본 의존도가 매우 높은데 이번 경제 보복도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 있어서 한국 경제에 타격이 크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는 경제적 목적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계산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일본은 경제 보복으로 일본 내 정국을 주도하여 군국주의로 나아가며 위안부 및 강제 징용 배상 사안을 이미 완료된
일로 치부하고 문재인 정부를 흔들거나 길들여서 한반도 평화의 길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
현 정부는 이전 보수정권처럼 일본에 굴종치 않고 자주적인 모습으로 일관해야 되며 소재·부품 분야에서 수입 다변화 및 자립화의 길을 실천해야 된다.
경제 자립을 도모하면서 단지 국가 재정만 투입하지 말고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당사자인 기업 투자도 함께 끌어내야 된다. 당사자인 재벌의 투자는 제쳐놓고 세금을 일방적으로 기업에 투입하는 것은 공정성과 형평성에 맞지 않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위기危機 = 위험危險 + 기회機會’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한참 잘못된 해석이다. 위기는 사전적으로 ‘위태로운 시기나 고비’를 의미하지 위험과 기회를 합한 말이 결코 아니며 위기가 자연스레 기회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위기가 기회가 되려면 일차적으로 위기가 위기임을 간파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혹자는 위기를 누가 모르겠냐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무사태평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여 시의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
요컨대 위기가 기회가 되는 관건은 위기임을 알아채서 긴장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대부분 이 단계에서 실패하여 위기를 기회로 연결시키지 못하게 된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는 분명 한국 경제에 위기 요인이다.
하지만 이 계기에서 한국의 소재·부품 산업의 허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점은 불행 중 다행이다.
드러난 문제를 문제로써 인식하고 대응책만 잘 마련하면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외교적 측면에서는 지금처럼 일본의 과거 악행에 대한 분명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보다 굳건한 자주적 태도를 견지해야 일본이 한국을 가볍게 여기기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맹자는 "내우외환이 있으면 살고, 편안함과 즐거움만 만끽하면 죽는다"고 했다.
thefact@tf.co.kr

[박완규칼럼] 일본을 연구할 때다
징용 배상 판결 후 한·일관계 악화
정치적 요인 맞물리면 심각해질 것
국내 일본전문가 손으로 꼽을 정도
日 어디로 가는지부터 파악해야
19세기 말 세계가 격동기에 접어들었을 때 조선은 주변 정세에 무지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깜깜했다.
고종은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직후 김기수를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했다.
약 한 달 만에 귀국한 수신사 일행을 접견한 자리에서 일본의 서양기술 도입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지만 속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김기수가 “저들의 강청(强請)에 따라 부득이 사행하게 됐다는 뜻을 보이기 위해 여러 기술에 대해서는 하나도 물어보지 않았다”고 하자, 고종은 “만약 그 기술에 대해 듣고 그것을 얻을 수 있다면 이로운 것이겠지만, 그러지 못하게 되면
체모만 잃게 되니 잘했다”고 했다.
‘승정원일기’의 기록이다. 새로운 기술보다 체면이 더 중요했다.
이렇게 허송세월하다 나라가 통째 넘어갔다.
2016년 일본 도쿄에서 한·일 언론인 포럼이 열렸다.
한·일 위안부 합의 이듬해였고 일본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에 적극적이어서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있을 때였다.
일본 측은 뜻밖에 냉담했다.
과거사 문제가 거론되자 일본 언론인은 “얼마나 더 사죄해야 하느냐”고 했다.
포럼 전에 만난 일본 정치학자는 한·일 관계가 2012년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고 단언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요구가 일본에 준 충격이 컸던 것이다.
현지 교민은 일본 내 반한 정서에 대해 “이런 적이 없었다”고 우려했다.
일본은 겉에서 본 것과 전혀 달랐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 결과가 한·일 관계의 현주소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불을 붙였지만 정부는 서둘러 진화하지 않았다.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의 일본산 소재 수출을 규제한 데 이어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고 했다.
18일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제3국 중재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일본 정부 요구에 우리 정부가 답변을 내는
시한이다.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아베 신조 총리 정부가 추가 보복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 전야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국내은행 도쿄지점에서 일한 금융계 인사는 “그해 한보그룹 부도 사태 이후 돈줄이 마르자 돈을 빼가던 일본의
은행 관계자들이 알은체도 하지 않아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일각에선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사태가 진정되리라는 낙관론을 펴지만 일본의 태도로 보아 이번엔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 같다.
한·일의 국내 정치적 요인이 맞물리면 양국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일본이 갑작스러운 수출규제로 국제분업 체제를 교란한 처사는 분명한 잘못이지만, 우리 정부의 대처도 미숙했다.
두 나라가 양국 관계를 다루는 솜씨는 무척 서툴다.
국민 감정이 결부되는 데다 양국의 상호의존 구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때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이 754만명에 달하지만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들었는가.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 후 정부가 일본 지역·산업 전문가들을 모으려 했는데 마땅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 전문가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고, 이들을 조직적으로 활용할 만한 싱크탱크도 없다. 이러니 정부의 사전
대비나 사후 대처 모두 실망스러운 것이다.
작가 김원우는 산문집 ‘일본 탐독’에서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일본인의 극성스러운 관심과 세대를 가리지
않는 일본인의 한국어 학습열을 주목한다.
“우리는 이제 겨우 일본을 알려고 하는데, 일본은 우리를 ‘연구’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이대로 가다간 백전백패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일본을 연구해야 한다. 한·일 갈등의 근본 해법을 찾아내 양국 관계의 새로운 길을 열어나갈 큰 그림을 그리자는 말이다.
먼저 일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두 나라가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박완규 논설실장
[ⓒ 세계일보 & Segye.com,
한국산 반도체 제품.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래픽_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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