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언론과 시사

화성살인 동일범 유력 ‘연쇄강간’ 7건 묻혔다



경기 수원시 경기남부경찰청에 마련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의 모습.


 연합뉴스






(이미지=연합뉴스)









'그것이 알고싶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 이모씨 얼굴 공개

[SBS]





화성살인 동일범 유력 ‘연쇄강간’ 7건 묻혔다



오윤성 순천향대 교수 ‘연쇄살인’과 비교분석

살인사건 같은 해 1986년 강간사건 7건 발생 
범행 수법 매우 유사…‘서방’이라는 용어 사용 
살인사건 당시엔 비교 분석 이뤄지지 않아







화성 연쇄살인사건 이전에 이미 범행방식이 거의 동일한 7건의 ‘연쇄강간사건’이 있었지만 경찰 수사에서 제대로 분석이 이뤄지지 않고 묻혔던 것으로 밝혀졌다.

살인사건 직전에 벌어진 강간사건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이후 사건들이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범죄심리학 권위자인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2011년 한국경찰학회보에 발표한 ‘연쇄살인사건에 있어서 범인상 추정에 관한 연구’ 논문을 통해 화성 연쇄살인사건 직전 발생한 7건의 연쇄강간사건을 분석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모두 10차례 벌어졌으며 실제 범행은 모방범죄 1건을 제외한 9건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 교수는 “실제로는 7건의 강간사건이 앞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내용은 2011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처음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오 교수는 7건의 강간사건과 연쇄살인사건의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논문으로 작성했다. 



●“키 165㎝에 마른 체격, 나이는 20대” 지목 

24일 오 교수 논문에 따르면 1986년 9월 15일 첫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화성군 태안읍(현 화성시)에서는 7건의

강간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사건은 1986년 2월부터 7월 중순까지 불과 6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벌어졌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화성 연쇄살인사건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범인에 대해 165㎝ 정도의 키에 마른 체격의 인물이라고 지목했다.

 강간범 나이는 20~25세로 모두 20대 초중반이라고 밝혔다.

또 피해자를 결박하는데 사용한 도구는 주로 스타킹, 하의, 치마 등으로 화성 살인사건과 매우 유사했다. 실제로 화성 살인사건에서 살해 도구는 스타킹이 5건으로 가장 많았고 브래지어, 검은 천 등도 사용됐다. 

강간사건 6건은 안개가 짙게 낀 날 발생했다. 1건은 장마 시기였다.

범인은 흉기로 피해자를 위협하거나 갑자기 피해자 몸을 여러차례 찌르기도 했다.

모든 피해자가 ‘심한 욕설’을 들었다고 밝혔다.


특이한 점은 2건의 강간 사건에서 범인이 피해자에게 “네 서방 뭐해”

라는 동일한 말을 했다는 점이다. 

연쇄강간사건 뒤인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는 살인사건 9건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1986년 11월 단 1건의 살인 미수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피해자는 범인이 ‘서방’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이 피해자는 범인이 가방을 찾으러 간 틈을 이용해 양손이 묶인 채로 전력질주해 탈출했다.

●살인미수 피해자도 “‘서방’이라는 말 써” 

오 교수는 “범인은 성장과정에서 자기 주위의 성인 여성, 즉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남편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하는

 ‘서방’이라는 용어에 자주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강간사건과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동일인이라는 가능성을 매우 높게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강간사건 범인은 2차례 속옷을 피해자 얼굴에 씌우는 행위를 했는데, 이는 살인사건과 미수사건에서도 발견된 특이한 행동이다.

오 교수는 이에 대해 “자신의 성적 욕구나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강간사건은 1번 국도를 중심으로 왼쪽에서 3번, 오른쪽에서 4번 발생했고 모두 연쇄살인사건 발생지점 인근이었다. 

강간사건은 짧게는 6일, 길게는 2개월 간격으로 6개월 동안 연속적으로 벌어졌지만, 당시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살인사건과 연계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오 교수는 논문에서 “범인은 사건 초기에 경찰에 의해 용의선상에 올라갔을 가능성 매우 높지만 결정적인 단서나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1차적으로 용의선상에서 배제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용의선상에서 배제되고 결정적 증거가

나타나지 않아 범인 입장에서는 차후 범행이 더 용이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 이모(56)씨가 1994년 처제 성폭행·살인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 KBS 자료화면 캡처


화성 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 이모(56)씨가 1994년 처제 성폭행·살인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


KBS 자료화면 캡처


      

        


실제로 현재 부산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화성 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 이모(56)씨는 1987년부터 1991년까지 3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용의선상에서는 제외됐다.

이씨는 7건의 강간사건이 발생한 태안읍에서 30세까지 살았다.

 구체적인 혐의가 없는데다 족적, 혈액형 등에서 혼선이 생겼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수사기관, 자료 확보하고도 비교분석 안해” 

오 교수는 사건 수사 문제점에 대해 “이미 수사기관이 확보하고 있었던 강간사건 자료와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비교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과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라는 행정적 경계 관점에 집착해 화성 이외의 지역에 범인이

거주할 가능성을 배제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앞으로도 연쇄살인사건은 계속될 것”이라며 “수사과정상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간과하지 않고

새로운 수사기법을 접목시켜 반드시 범인을 체포해 피해자의 한을 푸는데 소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영화 살인의 추억 켑쳐


[출처] - 국민일보






9차례 화성 연쇄살인 사건, 모두 이씨 짓?…DNA 분석이 절대적




1980년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모두 10차례 발생했다.
이 중 1988년 9월 발생한 8차 사건만 진범인 윤모(당시 22세)가 붙잡히면서 '모방범죄'로 결론났다.
나머지 9건은 미제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33년 만에 유력한 용의자가 특정됐다. 
1994년 처제 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부산교도소에 수감된 이모(56)씨다.  

 
그렇다면 이씨는 9차례 범행을 모두 저질렀을까?.  
 

           착용한 의류 등으로 범행…동일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분석 결과 이씨의 DNA가 검출된 것은 5차, 7차, 9차 관련 증거물이다. 세 사건은 범행 수법과 발생 장소 등이 유사하다. 
1987년 1월 논둑에서 발견된 5차 사건의 피해자는 입엔 양말로 재갈을 물렸고 양손은 블라우스로 결박한 상태였다. 
 
1988년 9월 농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된 7차 사건 피해자와 1990년 11월 발생한 9차 사건 피해자도 입에는 재갈을
물렸고 블라우스와 스타킹으로 결박됐다.
세 사람 모두 털목도리와 블라우스 등 당시 착용하고 있던 의류 등으로 목이 졸렸다.
 5차와 7차 사건의 경우 옷을 벗겼다 다시 입힌 흔적이 발견됐고 9차는 옷으로 시신을 덮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화성 연쇄살인 사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런 수법은 다른 범행에서도 보인다.
3차, 4차 사건도 피해자가 착용하고 있던 옷 등으로 재갈을 물렸고 결박했다.
 이들 사건을 비롯해 6차, 10차 사건 사건은 피해자가 입거나 가지고 있던 물품으로 목이 졸렸다.  
 
공정식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과)는 "연쇄살인범은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면 심리적으로 위축돼 냉각기를 갖지만,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성범죄는 강도와 달리 감정적·심리적 요인이 크기 때문에 참기가 어려운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1986년 발생한 화성 연쇄 강간 사건 7건과 미수 사건 1건도 피해자가 착용하고 있던 의류 등으로 결박했다는 점에서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씨의 화성집에서 7~10㎞ 떨어진 수원시 화서역에서 1987년 12월 발생한 첫 번째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도 피해자의 속옷과 스타킹이 범행도구가 됐다. 
 
오윤성 순천향대 교수(경찰행정학과)는 "범행 수법이나 피해자의 물품을 사용하는 인증(signature·범인 특유의 요소나 개인적 충동) 행위 등으로 봤을 때 동일범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가 군대에서 전역한 1986년부터 처제를 살해한 1994년 1월까지 수원·화성·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성폭력·
살인 미제 사건과 이씨의 연관성을 분석하고 있다.  
 

다른 범행 수범, 공범·다른 용의자 가능성도

하지만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모든 범행 수법이 동일한 것만은 아니다.
1986년 9월 발생한 1차 사건은 피해자의 하의가 벗겨져 다리를 X자로 꺾인 채 발견됐다.
2차 사건은 흉기로 살해됐다. 두 사건은 재갈이나 결박도 없었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6차 사건과 10차 사건은 피해자의 물건으로 살해됐지만, 재갈이나 결박은 없었다. 1차, 2차, 4차, 10차 범행에선 피해자들의 현금 등 금품이 없어지기도 했다.   
히 사건이 주로 발생한 화성군 태안읍은 당시 공장 등이 속속 들어서면서 근로자 등 외지인들의 방문도 많았다. 

이 사건을 오래 취재한 박두호 전 연합뉴스 경기취재본부장은 "당시 화성에서 여성이 살해되면 연쇄 살인 리스트에
추가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범행 수법이 다른 범행도 있어서 이씨가 모든 범행을 저질렀다고 생각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 [연합뉴스]


화성 연쇄살인사건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


[연합뉴스]

          



경찰이 당시 만든 수배 전단에서도 이 씨와 다른 부분이 있다.
이 수배 전단은 진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공격을받았다가 가까스로 위기를 면한 여성과 그를 태운 버스 운전기사 등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됐다. 

여기에 적힌 용의자의 특성엔 '나이가 24∼27세가량이고 머리 스타일은 스포츠형이며 보통 체격에 코가 우뚝하고
눈매가 날카롭고 갸름한 얼굴'이라고 적혀있다.
키는 165∼170㎝가량인데 평소 구부정한 모습이라는 정보도 담겼다.
 
또 왼손에 검은색 전자 손목시계를 차고 있고 시계 아래 팔목 부분에 문신이 있으며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봉숭아 물이 들었고 같은 손 둘째 손가락에는 물린 듯한 흉터가 있다는 목격자 진술도 실렸다.
그러나 이씨의 왼쪽 팔목엔 문신이 없다고 한다.
수감 중 문신을 지운 기록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DNA 분석 틀릴 확률, 10의 23제곱분의 1

경찰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5차, 7차, 9차 관련 증거물에서 이씨의 DNA가 나오자 추가 조사에 나섰다.
 이씨가 나머지 사건도 모두 저질렀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건의 증거물도 국과수로 보내 DNA 분석 검사를
하고 있다.
현재 4차 사건에 대한 증거물 분석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한 용의자가 경찰조사를 받는 모습[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한 용의자가 경찰조사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




경찰은 5차·7차·9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사실상 이씨가 한 범행으로 보고 있다.
DNA가 일치하는데 동일인이 아닐 확률은 10에 23 제곱분의 1의 확률에 불과하다.

경찰은 프로파일러 9명을 투입해 부산교도소에 있는 이씨의 자백을 끌어내고 있다. 
또 당시 이씨를 목격한 목격자들도 다시 불러 조사하고 있다.
일부 목격자는 사망했지만 7차 사건 목격자였던 버스안내양과 9차 사건 목격자인 남성은 생존해 있다. 
 
경찰은 법 최면 전문가 2명을 투입해 당시 용의자를 목격한 버스안내양을 조사했다.
 이 버스안내양은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옷이 젖은 남성이 현장 근처에서 버스를 탔다.
 키 170㎝ 정도의 갸름한 얼굴의 20대"라고 과거와 유사한 진술을 했다고 한다.

경찰은 다른 목격자도 차례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물론 유사 범죄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모란·최종권·진창일·심석용 기자 mora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 DNA 포렌식 연구실.


 photo 뉴시스




                                                                                         



[끝나지 않은 화성]③ 수사대상 5만…처절했던 ‘수사의 추억’


 

'왜 못 잡았을까,'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 모 씨가 본적지가 화성이고, 범행 내내 화성에 살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때 잡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과 궁금증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실체적 진실 규명을 강조하며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의 한 관계자는 지금의 잣대로 30여 년 전을 평가하는 건 곤란
하다고 말했다.
 각종 기술과 수사 노하우가 발전한 지금의 관점에서 30여 년 전 수사를 평가하면 당연히 미흡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당시 경찰은 용의자를 잡아서 자백했다고 발표했다가 나중에 용의자가 부인해 강압 수사 논란에 휩싸이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수사를 벌였던 기록은 국정감사 자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수사비 5억 원…91년에 집중
KBS가 입수한 1993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당시 경기도지방경찰청은 수사상황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수사비도
 함께 기록했다.
 수사비 지출을 보면 경찰이 얼마나 수사력을 집중했는지 알 수 있다.

수사비는 1987년 당시 돈으로 3946만 원을 썼다.
1986년부터 87년까지 2년 동안 10차례 사건 중 6건이 일어났는데, 수사 역량을 많이 투입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경찰은 4차 사건까지는 연쇄살인으로 분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10건 중 2건이 일어난 1988년에는 전년보다 2000만 원정도 늘어난 6962만 원이 수사비로 사용됐다.
연쇄살인으로 분류한 이후 사건이 이어지자 수사력을 더 투입한 것이다.
사건이 한 건도 없었던 1989년에는 수사비 지출이 1641만 원으로 전년의 6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1990년에는 다시 7821만 원으로 뛰어올랐다. 90년 11월 2년 2개월 만에 9차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10차 사건이 있었던 1991년에는 수사비로 1억 4910만 원을 썼다.
가장 많은 수사비를 쓴 해이다.
 1992년에는 1억 567만 원, 1993년 8월까지는 5730만 원을 사용했다.

1987년부터 93년 8월까지 7년 가까운 시간 동안 쓴 수사비는 모두 5억 원이 넘는다.
 이를 한국은행의 화폐가치 환산법으로 계산해보면 적게는 12억 원(소비자물가지수 기준)에서 많게는 30억 원
(금 시세 기준) 안팎으로 추정된다.









"여자에 굶주린 자, 증오심 가진 자…"
경찰이 범행을 분석해 국감에 보고한 자료를 보면 10차례 범행 중 8건이 9월부터 1월 사이 '추동기'에 집중됐고, 오후
 7~11시에 사이에 일어난 것도 8건이었다.
 눈 또는 비가 오거나 흐린 날 또는 안개 낀 날 발생한 게 7건이다. 여성의 중요 부위를 훼손한 것도 5건이나 됐다.

이 같은 범행 특징을 바탕으로 경찰은 범인을 '여자에 굶주린 자, 증오심을 가진 자, 정신이상자, 변태성욕자', 혹은
 '환각 상태의 무동기 범죄자'로 추정했다.

경찰 수사는 이런 추정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1994년 국감 자료에 경찰이 직접 조사한 수사 대상자는 1만4458건으로
돼 있다.
이 가운데 기타가 7325명으로 가장 많고, 방위병이 2274명으로 뒤를 이었다.
 범인이 20대 초중반으로 추정되다 보니 출퇴근을 하는 방위병이 첫 손에 꼽힌 걸로 보인다.

전출자도 1087명이나 조사했다. 범인이 범행 후 화성 지역을 떠났을 가능성도 염두에 둔 수사로 볼 수 있다.
경찰이 용의자로 분류해 조사한 사람은 936명이다.
유력 용의자 이 모 씨는 여기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 밖에도 우범 불량배 846명, 정기 통행자 792명, 동일수법 전과자 579명, 독신자 323명, 피해자 주변인 136명,
 변태 성욕자 88명, 종교인 30명을 조사했다. 동네 불량배부터 성직자까지 사회 각계각층을 조사한 셈이다.
이러한 조사에 경찰 인력은 연인원 137만 명이 투입됐다.
 수사 형사가 28만1746명, 일반 경찰이 21만5414명, 기동대와 방범순찰대가 78만9466명 등이다.







여경 투입 '공작 수사'도 150회


사건이 미궁에 빠지면서 여경들도 적극적으로 투입됐다.
이는 화성연쇄살인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에도 나온다.
 범인이 빨간 옷을 입은 사람만을 노린다는 점을 고려해 여경에게 빨간 옷을 입혀 범인이 나타날 만한 곳을 지나가게
하는 장면이다.

범인이 빨간 옷 여성만을 노렸다는 건 사실이 아니지만, 여경을 이러한 함정 수사에 쓴 건 사실이다.
국감 자료에는 '공작 수사'로 표현돼 있는데, 당시 경찰은 여경 1134명을 동원해 151회에 걸쳐 공작 수사를 벌였다.
남자 형사가 여장을 하고 잠복 수사를 하기도 했다.

이런 다방면에 걸친 수사는 연쇄살인에서는 성과가 없었지만, 다른 곳에서 성과가 나타났다.
경찰은 연쇄살인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폭력 244명, 성폭행 231명, 절도 201명, 살인 44명, 강도 39명 등을 검거했다.
연쇄살인과 별개 범죄들이다. 이때 잡은 사람이 1994년 9월 말 기준으로 1164명이다. 이 가운데 481명을 구속했다.

국감 자료에서 화성연쇄살인의 흔적은 1994년까지 발견됐다. 이후에는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국회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연쇄살인을 잊어갈 무렵인 1994년 1월 유력 용의자 이 씨는 처제를 살해하고 붙잡혔다.




오현태·김지숙·이정은 기자






                       

 
[끝나지 않은 화성]② 강도였나, 연쇄살인 실패였나…‘화성 용의자’ 범행 미스터리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56살 이 모 씨의 DNA는 현재까지 5·7·9차 사건의 증거물에서 나온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DNA가 감정 결과가 틀릴 확률은 10의 23제곱분의 1이다. 언뜻 숫자를 떠올릴 수도 없는 희박한 확률이기 때문에 적어도 5·7·9차 사건의 범인은 이 씨로 봐도 무방하다.

3개 사건 가운데 이 씨는 7차와 9차 사건은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모방범죄로 드러나 범인이 잡힌 8차 사건을 빼면
 7차와 9차 사건 사이에는 2년 2개월이라는 공백이 있는데, 이는 연쇄살인 사건 사이의 시간 간격 중에 가장 긴 것이다.
이 시간 동안 이 씨는 강도 행각을 벌이려다 붙잡혀 6개월 넘게 구치소에 있었다. 당시 판결문을 살펴보면 이 씨가 강도 범행을 시도한 게 맞는지, 아니면 연쇄살인을 추가로 시도하다 실패한 건지 의심스러운 대목이 있다.









수원서 강도 범행 시도하다 덜미
이 씨의 강도 예비 등 혐의 사건 1·2심 판결문을 보면 이 씨는 1989년 9월 26일 0시 55분 수원시 권선구에 사는 A 씨
집에 들어갔다.
이 씨는 미리 준비한 흉기 1개와 면장갑 1개를 챙겨갔다.

집 안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 이 씨는 방문 앞에서 방 안의 동정을 살피다 A 씨에게 발각됐다.
뭘 해보기도 전에 덜미를 잡힌 것이다.
이 씨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는 명확히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 씨는 현장에서 잡혀 구속돼 재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심 판결문에는 '선고 전의 구금 일수 중 130일을 형에 삽입한다'는 말이 있다.

재판을 받을 때부터 구치소에 있었으니, 그 기간을 형을 산 걸로 쳐준다는 의미다. 법조계에 따르면 당시에는 구금 일수 중 형에 삽입하는 기간을 판사가 정했다.
 이 씨가 1심 판결 전까지 구속된 기간이 130일을 넘을 수도 있는 얘긴데, 최소 130일이라고 해도 4달이 넘는 기간이다.











"구타한 청년 쫓다 피해자 집 들어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이 씨는 구속된 상태로 항소해 2심 재판을 받았다.
이 씨는 항소심에서 "낯모르는 청년으로부터 구타당한 후 그를 쫓다가 피해자 집에 들어가게 된 것일 뿐 금품을 빼앗기 위해 침입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흉기와 면장갑까지 챙겨간 상황에서 우연히 남의 집에 들어갔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은데, 이 씨는 이러한 이유를 들어
 1심 형량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증거들을 살펴보면 유죄로 판단한 1심 판결은 적절하다면서도 형량은 이 사건에 나타난 모든 양형 조건들에 비춰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씨는 항소 이유로 피해자가 입은 피해가 가볍고, 자신의 가정형편이 딱한 점 등을 들어 형이 무겁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주장을 2심 재판부가 받아들인 걸로 보인다.











구속 당시 '화성 수사팀' 조사받아
이 씨는 1988년 9월 7일 7차 사건을 저질렀다. 7차 사건은 52살 안 모 씨가 수원에서 일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와서
자신이 사는 마을 입구에서 내려 귀가하다 피살된 사건이다.
강도 범행 시도는 7차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정도 지난 시점에 있었다.

이때 구속된 걸로 추정되는 이 씨는 1990년 2월 7일 1심 판결을 받았고, 1990년 4월 19일에 2심 판결을 받았다.
이때 집행유예가 선고돼 곧바로 석방된 걸로 보인다.
석방 이후 7개월 만인 1990년 11월 15일 이 씨는 9차 사건을 저질렀다. 9차 사건은 13살 김 모 양이 친구와 헤어져
 귀가하다 피살된 사건이다.

구속 기간을 계산해보면 1989년 9월부터 1990년 4월까지 6~7개월가량인데, 이 사이 이 씨는 화성 사건 수사팀의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1990년 초 화성 수사팀이 이 씨를 조사했다고 밝혔다. 6차 사건 이후인 1987년, 8차 사건 이후인 1988년 말~
1989년 4월에 이은 세 번째 조사였다.
이 씨가 구속된 걸 알고 조사했는지, 조사하려고 하다 구속된 걸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수사팀은 이 씨가 최초 조사를 받은 6차 사건과 관련해 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발자국과 이 씨 발자국이 다르다는 이유로 용의 선상에서 배제했다.
당시 수사에 참여한 형사도 범행을 입증할 증거나 목격자가 없어서 이 씨를 배제했다고 진술했다.











강도였나, 연쇄살인 시도였나
이 씨는 여성을 성폭행한 뒤 살해하는 연쇄살인을 잇달아 저질렀는데, 중간에 강도 범행을 시도했다는 건 일반적인
 범죄자의 특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 씨가 강도가 아닌 연쇄살인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집에 누가 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연쇄살인을 마음먹고 집 안에 들어갔는데, 남성이 있어서 범행에 실패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 씨는 범행을 시도하기도 전에 피해자에게 발각됐다.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흉기를 들고 들어간 상황 때문에 강도예비 등 혐의가 적용됐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이 부분은 현재 수사 중인 경찰이 밝혀야 할 부분이다.

임 교수는 또 "강도와 이 씨의 연쇄살인은 범행 대상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자신보다 힘이 약한 여성만을 상대로 범행한 이 씨가 누가 상대가 될지 모르는 강도 범행을 할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다.
이 씨는 구속까지 됐다가 풀려났음에도 연쇄살인을 이어갔다.
 임 교수는 "이 씨의 범죄 충동이 구속 이후에도 참을 수 없을 정도 강력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지난 19일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이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용의자를 특정하게
된 경위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송유근 기자 6silver2@munhwa.com                        









 
                          




경기남부청에 마련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


이달 25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마련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