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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 한일 무역분쟁 1년 평가와 향후 전망 및 과제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한.일 무역분쟁, 한국은 생채기 없이 쌩쌩.. 일본만 제 복 걷어찼네

 

 

 

작년 수출규제 강화했지만..우리나라 대일 수출 비중 '안정적'
분노한 한국 소비자에 일본 역풍 맞아..식품·자동차·관광 집중 타격


 

 

(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로 한일 관계가 점점 더 깊은 갈등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 법원이 2018년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일본은 지난해 7월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핵심소재 3개 품목을 중심으로 대(對)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며 사실상의 보복 조치에 나섰다.
최근 들어선 일본기업 자산에 대한 압류 효력이 발생하며 양국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현재, 산업의 측면에서 한국이 잃은 것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우리나라 산업이 피해를 입을 거란 당초 예상을 깨고 우리나라의 대(對)일본 교역이 "안정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무역보복을 시작한 일본은 한국을 대상으로 한 일부 품목 수출에서 죽을 쑤고 있다.
◇일본 수출 마이너스 행진…알고보니 일본 수출 비중 '안정적'
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년 동기 대비 대일 수출실적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를 통틀어 대일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6.9% 감소했다. 올해 들어선 9.9%를 기록한 3월을 제외하곤 1월(-7.0%), 2월(-1.3%), 4월(-12.8%), 5월(-30.1%), 6월(-17.7%), 7월(-21.5%) 모두 마이너스(-) 실적을 냈다.
수입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12.9%를 기록한 뒤, 올해 들어 3월(1.7%)를 빼면 1월(-21.9%), 2월(-0.9%), 4월(-13.9%), 5월(-16.5%), 6월(-8.0%), 7월(-9.2%)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마치 일본의 수출규제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대일 수출이 큰 타격을 입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오랜 기간 동안의 무역 긴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수입·수출에서 일본의 점유율은 각각 10%와 5%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됐다"고 분석했다.
대일 교역만 놓고 보면 상당히 위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의 전체 수출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놓고 보면 지난 1년 간 큰 변화가 없었단 얘기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또한 한국의 수출입 추이를 일본과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로 나눠 분석했다.
그 결과 일본을 뺀 국가에 대한 한국의 수출입 실적은 대일 실적과 연계해 감소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2019년 하반기부터 양국 간 교역이 더욱 위축된 이유는 분쟁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외부의 악화된 환경이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 되레 호황…일본 식품·자동차·관광 와르르
당초 일본의 의도와는 다르게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되레 호황을 누리고 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던 한국의 반도체 부문은 현재까지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다"며 "한국의 반도체 생산은 올해 상반기 증가했는데 이는 전세계적으로 재택 근무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불화수소가 수출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한국 기업들은 주로 중국과 대만에서 대체 공급품을 모색했다"며 "한국의 불화수소 수입에서 일본의 점유율은 하락한 반면 중국 점유율은 급격히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일본의 일부 산업은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보이콧 역풍을 맞았다.
2019년 상반기 의약품을 제외한 화학제품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0.1% 증가했으나, 같은해 하반기에는 15% 감소했다.
한국 소비자들이 일본 제품을 지속적으로 보이콧하면서 지난해 하반기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품, 자동차 등 수출도 큰 타격을 입었다. 올해 들어선 코로나19 사태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지난 2017~2018년 한국인은 일본 전체 관광객의 약 4분의 1을 차지했지만, 2019년 하반기에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앞으로 몇 개월 동안 양국의 관계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에 있는 일본의 소비재 기업에 있어선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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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 소재·부품·장비 개발 가속화…"일본은 더 큰 경쟁 직면"
최근 일본 기업 자산을 청산 절차가 시작되면서 한일 갈등은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보복을 예고하면서 양국의 경제적 부담 역시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의 경제적 손해가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는 대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향후 7년간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R&D)에 매년 1조원 이상씩 총 7조8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을 세웠으며, 소재·부품·장비 필수관리품목도 기존 100개에서 338개로 늘렸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중장기적으로는 수출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계획이 실현되기까지는 매우 오랜 기간이 걸릴 수 있다"며 "한국이 소재·부품·장비 부문의 개발을 가속화하면서 일본은 더욱 큰 경쟁에 직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 의류기업 유니클로 매장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2020.7.28/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sekim@news1.kr





지난 16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을
접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출처 : 시사저널e - 온라인 저널리즘의 미래(http://www.sisajournal-e.com)






  전경련 "일본 수출 규제에 한국 '소부장' 강해졌어도…양국 협력은 필수





[뉴스웍스=장대청 기자]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한국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등 대체가 많이 이뤄졌으나 여전히 한일 간 수출규제를 완화하고 협력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양국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경련이 29일 전경련회관 콘퍼런스센터에서 개최한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와 과제 세미나'에서 이같은 의견이 나왔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개회사에서 "1년 전 일본이 수출규제를 발표한 이후 우리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100대 전략품목 경쟁력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민관 합동으로 관련 품목 조기 국산화와 대체수입선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며 "그 결과 소재·부품 분야의 일본 의존도를 낮췄고,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도 별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글로벌 분업체제에서 한 국가가 모든 것을 다 잘하기 쉽지 않다"며 "대부분 업종에서 한일 기업은 글로벌 밸류체인으로 긴밀히 연계됐음을 고려할 때 진정한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일본과 협력이 긴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세미나 첫 발제자로 나서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국산화 및 수입대체가 진행된 품목도 있으나 오히려 작년 동기 대비 일본으로부터 수입액이 늘어나는 등 품목에 따라 대응결과가 달랐다"고 전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 비중은 올해 1~5월 기준 지난해 동기 44%에서 12%로 줄어들었지만,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폴리이미드 등의 수입 비용은 지난해보다 각각 33.8%, 7.4%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일본과 한국의 대표 반도체 소재기업의 평균연구개발비는 일본이 1534억원인데 비해 한국은 130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양국 간 규모차이가 크다"며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중소업체 간 인수·합병(M&A)를 독려하거나 잠재력 있는 업체 지원을 강화하는 등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를 위한 정부의 역할로 소부장 국산화 및 벤더 다변화를 위한 관련기업 국산화 지원 강화, 사업화 연계기술 개발(R&BD) 사업 추진, 글로벌 기업 연구·개발(R&D) 센터 및 생산기지 유치 적극 추진을 제안했다. 아울러 글로벌 반도체·디스플레이 소부장 사업단 설립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홍배 동의대 무역학과 교수는 두 번째 발제를 통해 "국내 소부장 산업이 글로벌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일본과의 긴밀한 협력이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가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일 소부장 산업은 강력한 분업체제를 통해 18년 기준 약 811억달러(한화 약 97조원) 규모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양국 국제공급망 붕괴는 이만큼의 이익 손실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한국 기업의 관점에서 안정적 비용 절감, 국산화,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해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양국 소부장 특화지역을 마련해 기업 간 R&D 프로젝트 활성화, 공동 기술 개발·생산, 고숙련 기술자·경영자 교류 확대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우리 기업이 대일 비즈니스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전경련은 일본경제계와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한일 간 상호수출규제의 조속한 타결, 한국 기업의 일본 입국금지 조치 해제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장대청 기자 marune3@newsworks.co.kr

출처 : 뉴스웍스(http://www.newsworks.co.kr)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작년 12월 하산 로하니(왼쪽) 이란 대통령을 초청, 이란 핵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이란 간의 중재 역할을 시도했다.

사진=AP/뉴시스






    韓日외교전쟁 1년, 다시 생각하는 韓日관계

 

 

일본에서 보는 韓日관계
쇄국 외교의 한국, 글로벌 플레이어 일본

한국이 일본과의 무역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선전하는 사이에 아베의 일본은 외교 영역을 전 세계로 확장

⊙ 볼턴 회고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은 김정은이지만, 아베는 트럼프의 친구이자 어드바이저
⊙ 美-이란 간 중재 나섰던 아베, 北核 문제 중재자로 나설 수도



반도체 소재 독립, 자기 발등 찍은 사무라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 제소 진행,
삼성전자에 납품하려 일본 탈출한 일본 기업….

지난 7월 초 한국 신문・방송을 뒤덮은 일본 관련 기사의 제목들이다.
‘일본산 대신 새로 개발된 국산제품만으로 문제없고, 손해 보는 쪽은 결국 일본이다’라는 것이 핵심이다.


갑자기 왜 이렇게 많은 일본 관련 경제기사가 등장했을까?
한일(韓日) 무역분쟁이 그 배경이다.
일본 정부가 시행한 공업 소재 수출 규제 방침이 지난 7월 1일을 기해 1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한국 뉴스의 대세는 ‘일본 없이도 우리끼리 잘하고 있다’로 모인다.
좋게 보면 자립(自立)이지만, 어쩐지 이웃(?)의 ‘주체경제론’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다.
이런 보도대로라면 삼성으로 대표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은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는 반면, 수출 규제를 행한 일본 내 업자들의 피해는 심각한 셈이고, 일본은 이미 꼬리를 내리고 잘못했다고 빌었어야 한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의 반응은 어떨까? 일단 수출 규제 1년째에 즈음한 뉴스가 별로 없다.
가끔씩 흘러나온 뉴스를 종합해보면, 한일 모두 패자(敗者)라는 식의 분석이 대부분이다.
한국의 ‘승리론’과 달리, 한국・일본 ‘모두 손해’가 중론(衆論)이다.


수출 규제 여부를 떠나 좀 더 근본적 차원의 한일 협력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이런 기사들의 결론이다.
여기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위안부 및 징용공 문제다. 두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수출 규제보다 더 큰 문제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본 내 전망이다.


수출 규제 1년째를 맞은 한일 간 보도 흐름을 보면, 미래에 대한 입장이 정반대로 치닫는 느낌이다.
한국은 ‘일본 없이도 잘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낙관적 자세다.
시점상 현재에 주목한다.
일본발(發) 뉴스에서는 ‘한국 없이도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얘기가 없다.

누가 이기고 지고가 아니라, 둘 다 손해이고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란 비관적인 분위기다.
대체로 미래를 염두에 둔 전망이다.



“외교의 과제는 自尊自重”

“앞으로 외교의 과제는 자존자중(自尊自重)에 있다.
그 누구도 모독하지 않고,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문명대국에 들어가는 것이 핵심이다.”


1893년 12월 무쓰 무네미쓰(陸奧宗光) 일본 외무대신이 일본 국회에서 행한 연설 중 일부다.
제2차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내각의 외상(外相)이었던 그는 취임 즉시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직전에 맺어진 외국과의 불평등 조약 개정에 매진했다.

관세・치외법권(治外法權)에 관한 불평등 조약을 개정, 서양 열강(列强)과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서겠다는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숙원(宿願)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국회에서 발언하면서 무쓰 무네미쓰는 “청(淸)의 경우에서 보듯, 외국에 대해 겁을 내면서도 거꾸로 과장과 허세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무쓰가 지적한 청의 문제는 나중에 청일(淸日)전쟁(1894~1895)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청나라의 실력자였던 북양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은 전력(戰力) 면에서 청이 일본보다 월등히 강하고, 서양 열강도 중국을 지지할 것이라 믿었다.
‘섬나라 일본쯤’란 생각 때문이었을까?

이홍장은 청나라가 조금만 힘을 보여줘도 일본은 겁을 먹고 굴복할 것으로 판단했다.
결과는 100전 100패였다.
전쟁 당시 동원된 병력은 청이 63만명, 일본이 24만명이었다.
9개월간 전쟁을 통해 청은 3만5000명의 사상자를 낸 반면, 일본은 3700명 정도에 그쳤다.


군사력만이 아니라 외교력 면에서도 청은 일본의 상대가 못 됐다.
이홍장은 연전연패 끝에 서양 열강에 일본을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열강은 청에서의 이권(利權) 확보를 위해 일본과 뒷거래를 하는 쪽을 택했다.

이홍장은 상대의 파워와 자신의 능력을 냉철히 판단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과장과 허세’를 통해 상황을 오판(誤判)한 인물이었다. 결국 이홍장은 일본과 굴욕적인 시모노세키(下關)조약을 맺고 일본에 엄청난 배상을 해야 했다.

자기를 과장하기 위해 누구를 얕잡아보지도 않고, 반대로 무조건 상대를 무서워하면서 굴복하는 것도 아닌, 자존자중이야말로 문명대국으로 가는 첫발이란 것이 127년 전 무쓰 연설의 핵심이다.



‘韓日 2.0 외교’

7월 1일 ‘한일 무역분쟁 1주년’에 즈음한 한국 측 반응을 보면 21세기에 이홍장이 한국에서 부활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지피지기(知彼知己)에 근거한 상황판단과 거기에 맞춘 대안(代案)이 아니다.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겠지만, 이미 승리감에 도취해 있다.

일본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애국이고 대세로 통한다.
약점을 보강하고, 강점을 키워나가는 식의 전략적 판단과는 전혀 무관하다.
윈-윈(win-win)이란 개념은 애초부터 없다.

당연하지만, 몰릴수록 목소리가 커진다.
이홍장이 그러했듯이, 행동도 과장과 허세로 치닫는다.
곳곳에 오판이 넘칠 수밖에 없다.


무역분쟁 1년째에 접어든 2020년 여름, 한국 정부와 미디어의 화살은 ‘여전히’ 일본을 겨누고 있다.
한쪽에서는 ‘자립론·승리론’으로 축포(祝砲)를 터뜨리면서도, 다른 쪽에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통해 수입 규제를 풀라고 말한다.
승리한 나라가 왜 규제를 풀라고 요구하는지 의아스러울 뿐이다.


일본은 어떨까?
1년 전 수출 규제에 이어, 어떤 식으로 한국 문제를 대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을 겨눈 직접적인 대응은 거의 없다. 대신 한국을 넘어선 좀 더 큰 그림 속에서 한반도 전체에 대한 대응이 눈에 띈다.
수출 규제 문제 정도가 타깃이 아니다.
태평양·남중국해·인도양 나아가 대서양을 목표로 화살을 쏜다고나 할까?


20세기에 보던 ‘한국 vs 일본’ 구도하의 양국 관계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부터 본격화됐지만, 21세기 일본의 한국에 대한 자세는 ‘한국 vs 일본을 포함한 전(全) 세계’와의 구도로 나아가고 있다.
20세기 구도를 ‘한일 1.0 외교’라 할 때, 2020년 구도는 ‘한일 2.0 외교’라 부를 수 있다.



특정기밀보호법 개정의 의미

한국에서 ‘일본 없이 잘할 수 있다’는 식의 뉴스가 대세이던 7월 초 나온 도쿄발 뉴스 하나를 보자.
일본 정부가 개정한 특정기밀보호법에 관한 소식이다.
종래 일본에서 다뤄지던 군사기밀의 핵심은 미국 관련된 것에 국한됐다.
7월 초 개정된 법에 따르면, 미국만이 아닌 외국의 군사기밀 모두에 적용되는 것으로 확정됐다.

외국과의 군사훈련이나 인적 교류, 무기 공동개발에 관련된 정보가 대상이다.
구체적으로는 영국·프랑스·인도·호주에 관련된 군사기밀이 특정기밀보호법에 의해 제약된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하는 순간, ‘이것은 한국·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동안 한국은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를 통해 미국만이 아니라 일본과 미국 외의 외국군에 관한 정보도 얻어낼 수 있었다.
미국을 통한 동맹관계라는 이유로 문의할 경우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소미아를 통해 미국과 일본에 관한 군사정보는 알 수 있지만, 미국과 관련이 없는 일본과 외국에 관련된 군사 문제에는 접근할 수 없게 된다.
지소미아에 따라 한·미·일 정보는 공유하지만, 일본과 영국·프랑스·인도·호주 사이의 군사정보에 대해서는 비밀로 처리된다.

‘일본과 미국 외 외국군이 벌이는 군사 문제에 대해 한국이 알 필요가 있느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일본 정부가 군사기밀로 묶은 구체적인 예들을 보면 그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차세대 기뢰탐지기술 공동개발 관련 정보
호주: 일본·호주 간 전투기 공동훈련, 일본·호주·미국 3국 간 육상훈련 정보
영국: 공대공(AAM)미사일 공동개발 정보
인도: 2019년부터 정례화된 2+2(양국 간 외무 방위장관 회담) 관련 정보

기뢰탐지는 한반도 유사시 벌어질, 일본의 최우선 군사대응 방안이다.
여기에는 기뢰탐지만이 아니라 공격적 의미의 기뢰 설치를 통한 해안봉쇄도 포함된다.
북한 주변 해상봉쇄를 위해 프랑스가 일본과 함께 참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양국 간 이뤄지는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

강 건너 불이 될 수가 없다. 인도와의 군사협력체제를 서두르고 있는 일본의 21세기판 안보전선이 한반도의 군사이익과 상관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정기밀보호법은 2020년 일본이 벌이고 있는 동북아(東北亞) 질서 변화에 관한 작은 본보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파장은 앞으로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한국과 중국을 의식한 법이란 부분도 있지만, 4개 나라와 벌이는 군사협력 내용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와 중국의 영역 밖에서 이뤄지는 글로벌 차원의 협력이기 때문이다.



나쁜 볼턴, 추한 아베, 괜찮은 트럼프?

한국이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에 올인(all in)하는 동안, 일본은 한반도를 넘어선 글로벌 차원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 같은 변화를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곳이 한국이다. 7
월 초 들려온 ‘나쁜 볼턴, 추한 아베, 괜찮은 트럼프’란 말은 그 같은 증거 중 하나다.

언제부턴가 북쪽 이웃의 대변인처럼 활동하고 있는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발원지다.
존 볼턴 회고록 《그 일이 벌어진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을 읽고 난 뒤의 소감이라고 한다.
1966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서부영화 〈착한 놈, 나쁜 놈, 추한 놈(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에서 가져온 패러디인 듯하다.


그러나 통일외교안보특보의 소감은 책 속 한반도 문제 핵심 주인공이 누구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음치(音癡) 소감으로 비친다.
굳이 영화에서처럼 3개의 영역으로 나눈다면, ‘트럼프, 김정은, 문재인’이 주인공이다.
‘나쁘고, 추하고, 착한’ 평가의 영역에 들어갈 세 사람이다.
그러나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정작 김정은·문재인은 쏙 빼고, 무대 밖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비판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 타이틀처럼 만든다고 할 때, 김정은·문재인에 어울리는 수식어는 무엇일까?
평범한 한국인이라면, ‘나쁘고, 추하고, 착한’이라는 형용사만이 아니라 또 다른 ‘험악한’ 수식어들도 수없이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애국 만병통치약’인 반일(反日) 정서에 기대려는 꼼수로 보이지만, 장외(場外) 조연(助演)급인 아베에 붙인 ‘추한’이란 형용사가 눈에 들어온다. 접하는 순간, 과장과 허세, 나아가 오만이 느껴진다.
1590년 벌어진 ‘역사의 재판(再版)’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당시 일본의 최고 실력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대한 통신사(通信使) 김성일(金誠一)의 평이 떠오른다. 무려 1년 동안 일본 전역을 돌아본 뒤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도요토미는 생김새는 쥐 같고 원숭이처럼 작고 못생겨서 우리나라를 침략할 위인이 되지 못한다.”

정확히 15개월 뒤, ‘원숭이 도요토미’는 조선을 침략한다.
임진왜란의 참화가 삼천리 방방곡곡 백성들에게 미친 것은 물론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흥분하게 되는 것이 검투사의 피다. ‘원숭이 도요토미’ ‘추한 아베’라 외칠수록 박수 소리도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재앙이 닥칠 경우 그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먼저 국민에게 떨어진다.


아베는 글로벌 플레이어

볼턴의 회고록을 읽으면, 일본이 이미 한반도를 넘어서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세계 전략에 나섰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한일 2.0 외교’의 실상도 파악할 수 있다.
추한 아베, 나쁜 아베, 착한 아베도 아닌, ‘세계를 향한 국제정치 플레이어(player)로 진화(進化)하는 아베’라는 것이 책을 읽은 뒤 내린 필자의 평가다.


볼턴의 회고록은 전부 578쪽에 15개 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서문인 1장과 후기(後記)인 15장을 빼면, 13개 장 전부가 본문에 해당된다.
비교적 두꺼운 책으로, 정독(精讀)할 경우 대략 꼬박 하루가 걸리는 분량이다.

한반도 관련 얘기는 전체 15개 장 가운데 2개 장에 걸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책 전체를 통틀어 ‘Kim(김정은)’이란 단어는 무려 332번이나 등장한다.

문재인 대통령(Moon)은 164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Xi)는 92번, 아베 신조 일본 총리(Abe)는 125번 언급된다. 트럼프를 제외한, 책 속의 고유명사 출현 빈도 순위를 보면, 1위 김정은, 2위 문재인, 3위 아베, 4위 시진핑이다.
북핵(北核) 문제가 이 책의 중심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볼턴의 책에는 북핵 문제만이 아니라 전 세계 외교의 실상이 총망라돼 있다.
북핵 문제를 제외할 경우, 다른 지역에 관한 문제도 책의 7할 정도를 점한다. 백악관 내 얘기는 물론 아프가니스탄·유럽·남미·중국·대만에 관한 얘기들이다.


책을 보면 아베는 트럼프와 더불어 글로벌 이슈 곳곳에 등장하는 국제정치의 플레이어로 행동하고 있다.
한반도에서부터 이란을 비롯한 중동, G7을 통해 유럽의 경제 문제까지 관여하고 있다.
본문 13개 장 가운데 6개 장에 걸쳐 아베가 등장한다. 문 대통령은 물론 시진핑의 경우 자국과 주변만이 활동영역이다.



트럼프의 친구이자 어드바이저
볼턴의 책을 보면, 아베는 국제무대에서 뭔가 하려는 ‘의지와 결의’가 남다른 지도자다.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단발 이벤트 쇼’가 아니다. 감정을 뺀 제3자의 눈으로 보면, 일본의 국익(國益)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주 바쁘게 움직이는 인물이다.
여기서 모든 전제는 ‘미국을 통한 국제무대로의 진출’이다. 구체적으로는 트럼프의 친구이자 정책 어드바이저로서의 아베다.


한반도는 아베의 역할을 입증시켜준 최적의 본보기다.
2017년 9월 17일 아베는 일본 총리로서의 의견(Opinion)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북한 위협에 맞선 연대(Solidarity Against the North Korean Threat)’라는 타이틀의 기고문이었다.

‘북핵 대응 출사표(出師表)’에 해당하는 이 기고문에서 아베는 “대륙간탄도탄(ICBM) 개발에 나서는 북한에 맞서야 한다”면서 “미국 측이 내릴 모든 선택을 지지한다(I fully support the United States position that all options are on the table.)”고 공언했다.


당시 한국 신문·방송에서는 기고문에 등장한 ‘막다른 길(dead end)’이라는 표현에만 주목했다.
이는 ‘북한과의 대화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기고문의 진짜 핵심은 ‘(미국이 북한에 행할) 모든 선택에 대한 (일본의) 전폭적인 지지’라는 표현에 있었다.
외교적으로 에둘러 말했을 뿐,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동맹국인 일본도 함께 싸울 준비가 돼 있다’는 의미가 실린 말이었다.


이 기고문은 2017년 8월 9일 트럼프가 공언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발언 직후에 등장했다. 한반도 전체가 비상상황에 들어갔던 시기에 아베는 ‘일본은 미국과 함께 북한과 싸우겠다’는 ‘의지와 결의’를 밝힌 것이다.
아베는 이후 트럼프와 만날 때마다 미국에 대한 일본의 전폭적인 지지를 거듭 강조했다.



美日동맹을 ‘피의 동맹’으로 발전시킨 아베

21세기 국제무대에서 통하는 친구의 개념은 ‘행동을 함께하는 나라’로 압축될 수 있다.
20세기처럼 이념이나 19세기처럼 군주들 간의 친교나 외교 때문에 친구가 되지는 않는다.
‘비상시 함께 싸울 나라’가 진짜 친구다. 결국 ‘피(血)’라는 말이다.


아베는 그 같은 자세로 트럼프에게 접근한다.
원래 일본은 ‘피’가 아닌 ‘돈’으로 미일(美日)동맹을 지켜왔다.

그러나 아베를 기점(起點)으로 ‘돈’만이 아닌 ‘피’가 미일동맹의 상수(常數)로 등장한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간과하기 쉽지만 아베 이후 정립된 미일동맹의 출발점이 바로 ‘피’다.
북핵은 미국만이 아닌 일본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미 방위비 분담 문제에 이어 미일 방위비 분담 관련 회담이 곧 시작될 것이다.
볼턴의 책에서는 일본의 방위비 분담금이 80억 달러로 잡혀 있다고 하지만, 아베가 ‘피’를 제공할 뜻을 비친 이상 한국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발전될 것이다.


반면에 이미 ‘피’를 제공할 동맹국에서 멀어지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아베가 북핵 문제 어드바이저로서, 국제무대에서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것은 ‘피’를 매개로 한・미・일 동맹이
배경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뭔가 말할 자격이 생긴다. 아베는 북핵에 대해서는 입이 아니라 무력(武力)이나 경제적 제재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수차례’ 트럼프에게 강조했다.
‘영변 핵 하나로 북핵 문제 전부가 해결될 순 없다’는 조언도 연발했다.

이것이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아베를 ‘추한 아베’로 규정한 이유일 것이다.
아베는 트럼프에게 “김정은을 대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낙관적 전망을 믿지 말라”는 뜻도 전했다.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도 입이 아니라 실력으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는 어드바이저에 그치지 않았다. 트럼프의 요청을 받고 이란 문제 중재에도 나선 것이다. 볼턴에 따르면 아베의 이란 중재는 실패로 끝났다.

볼턴은 핵 문제에 관해서는 북한과 이란을 일란성(一卵性) 쌍둥이로 본다.
그러나 아베는 북한과 달리 이란에 대해서는 유화책을 구사한다. 볼턴은 북한과 이란을 다르게 대하는 아베의 이중적 가치관을 지적하면서, 그의 중재는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아베의 ‘중재 시도’는 실패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미국-이란의 합의를 이끌어낼 만한 성공이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핵에 대한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의 경험이었다는 점에서 완전 실패라고 볼 수는 없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아시아 정치가로 세계 무대의 플레이어가 된 인물은 아베가 유일무이(唯一無二)하다는 점이다.
중국은 자국(自國) 문제에 관해 움직일 뿐, 제3자의 입장에서 단독으로 국제무대에 나선 적이 없다.
아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정치의 단독 중재자로 나선 인물이 아베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둘째, 북핵 문제에 대한 일본의 중재 가능성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겠지만, 언젠가 일본이 북핵 문제 중재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 무시하고 일본이 전권을 갖고 북핵 문제에 대응하라고 미국이 위임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아베가 미국을 대신해 이란 핵 문제 중재에도 나서는 판에, 미국을 대신해 북핵 중재에 나서지 말라는 법은 없다.
미국이 중국은 물론 한국도 불신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인으로 일본만 한 나라도 없다. 이란에서의 경험과 교훈은 실패로 끝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닐 수도 있다.


어드바이저는 귀에 달콤한 말만이 아니라 쓴소리도 할 수 있다.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의미다.
지난 6월 1일 《요미우리(讀賣)신문》의 기사는 그 증거다. ‘한국·호주가 포함되는 G7 확대에 반대하는 것이 일본의 입장’이라는 보도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G7 확대 반대와 더불어 미국이 추진하려는 반중(反中)전선 구축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G7 확대 반대를 위해 반중 문제를 협상도구로 활용한다는 의미다.
미국이 구상하는 세계 구도에 대해 ‘노(NO)라고 말하기 시작한 일본’이 되는 셈이다.



韓·美·日 모두 선거 일정

꽉 막힌 한일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한국은 ‘일본 없이도 잘살 수 있다’는 주체론·자립론으로 나아갈 듯하다.
추측건대, 75주년을 맞는 2020년 광복절도 반일 성토로 도배를 할 듯하다.
한국 법원의 일제 강제징용공 배상 판결과 관련해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재산 매각도 강행될 전망이다.

일본은 한국이 강제 매각을 강행할 경우에 대비한 보복안(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두 나라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고, 앞으로 개선될 조짐도 없다.

이 같은 척박한 현실은 결국 양국 국민 개개인에게 확산되는 형세다. 한일 간 무(無)비자 입국 문제도 그중 하나다. 전염병 때문에 막혔다고는 하지만 한일 간 무비자 입국도 당분간 시행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양국의 정치일정도 국민들의 이동을 막는 요인이다. 일본은 7월 들어 10월 총선 분위기로 나아가고 있다.
아베 내각의 잇따른 스캔들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국민적 불안과 불만을 잠재울 ‘새로운 판’에 대한 구상이 일본 정가(政街)에 퍼져나가고 있다. 여기에는 일단 아베가 선두에 서겠지만 아베의 뒤를 이을 후계자도 총선을 통해 데뷔할 전망이다.


선거가 치러진다면, 11월 미국 대선(大選) 당선자에 상응하는 지도체제 개편도 이뤄질 것이다.
자민당이 승리한다는 가정하에 아베가 재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만에 하나 아베가 아니라 해도 아베의 정책을 잇는 ‘아베 아바타’가 뒤를 이을 것은 분명하다.



세대교체

한국에서는 아베가 끝나면 한일 간 문제도 해결될 것으로 전망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한층 더 구체적이고 각론적 차원의 한일갈등이 벌어질 것이다.
항상 강조하지만, 세대가 변했다.
과거사에 대해 용서를 구하던 단카이(團塊)세대는 이제 70대를 넘겨 80대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에서 한글세대인 586세대가 주류(主流)이듯이 식민지배 및 태평양전쟁과 무관한 전후(戰後) 세대가 일본의 허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엇박자 한일관계는 이런 세대교체의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일 대타협이 없는 한 한일 간 최대 현안인 무비자 입국 문제 해결도 10월 총선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수출 규제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과거처럼 미국이 한일 간 중재에 나서는 식의 외교도 끝났다.
볼턴 책에도 나오는 얘기지만 트럼프는 한일 간의 역사와 무역분쟁에 대해 관심이 없다.
트럼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도 머지않았다.
빠르면 올해 말부터 대통령 선거에 관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반일을 통한 세(勢)몰이는 대통령 선거의 ‘핫 이벤트(hot event)’로 활용될 것이다.

일본은 이 같은 한국의 행보에 정면대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11월에 당선될 미국 대통령을 통해 갈등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일본의 대안 중 하나다. 앞서 말했듯이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를 목표로 화살을 쏘는 ‘한일 2.0 외교’ 구도다.



쇄국’이라는 DNA

일본 외교관의 필독서이자 동아시아 외교사의 기본이 되는 《건건록(蹇蹇錄)》이라는 책이 있다.
앞서 언급한 일본 외상 무쓰 무네미쓰의 회고록으로서 청일전쟁 당시 일본·조선·중국, 나아가 서양 열강과의 외교 전반에 관한 기록이다.

동학(東學) 봉기에서 시작된 조선의 불안과 이후 청과 일본의 출병(出兵), 전쟁 돌입과 진행, 종전(終戰)을 위한 협상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전직 고관의 자화자찬(自畵自讚)용 책이 아니다. 일본의 운명을 건 전쟁을 치르던 시기의 외상이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게 교훈으로 전하려는 목적으로 기술한 책이다. 외교 비사(秘史)가 많기 때문에 당초에는 기밀문서로 분류되었다가 1929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이 책은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일방적으로 당하면서도 존재 자체가 무시당하는 부끄럽고도 비참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감정을 빼고 제3자의 눈으로 접근해보면 일본과 중국이 어떤 식으로 서로를 대하고 서양 열강은 어떤 눈으로 한반도를 평가하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다.

이 책은 19세기 말 꽉 막혔던 조선의 세계관이 21세기인 지금까지도 DNA처럼 면면히 유전(遺傳)되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준다.


한국인 입장에서 볼 때 《건건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단 하나를 택하라면 주저하지 않고 떠올릴 수 있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
바로 ‘쇄국(鎖國)’이다.

20세기 이후 ‘주체론·자립론·민족론’으로 한층 더 고상하게 진화된 ‘쇄국’이란 단어가 《건건록》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여기서 ‘쇄국’이란 세상의 중심을 한국이라고 보고, 밖을 볼 생각도 없고, 보지도 않으려는 세계관이다.


조선은 동학으로 어수선해지자 청에 원병(援兵)을 청했다. 일본이 청을 몰아내자 다음은 러시아로 달려가 매달렸다.
곧이어 미국에도 호소하고, 네덜란드 헤이그까지 밀사(密使)를 보내지만 조선을 지지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그 결과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건건록》이 주는 교훈

조선과 달리 세계와 교류하면서 큰 판 속에서의 정세를 판단한 나라가 일본이다.
호시탐탐(虎視耽耽) 조선을 노리던 일본이, 조선이 동학 봉기 진압을 위한 출병을 청에 요청하자 이를 빌미로 군대를 파견해 청일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이 한국 역사가들의 해석이다.


여기에 중요한 핵심이 하나 빠져 있다.
일본이 조선에 출병한 날은 정확히 1894년 7월 25일이다.

출병 9일 전인 7월 16일 일본은 꿈에 그리던 개국(開國) 이래의 소원 하나를 달성한다. 영일(英日)통상항해조약이다.
앞서 언급한 무쓰 무네미쓰 외상의 업적이다.

일본 육군은 원래 조선 출병에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국제사회가 일본의 출병을 용납할지에 대한 불안이었다. 아직 서양 열강에 맞설 만한 군사력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잘못하면 열강이 일본을 공격하는 사태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둘째, 일본군의 승산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일통상조약이 맺어지는 순간 분위기는 급변했다.
영국이 일본과 평등한 통상조약을 맺은 이상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일본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란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일본 수뇌부는 서양 열강은 결국 조선이나 중국이 아니라 돈이 될 일본을 지지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여기서 영일통상조약이 조금이라도 늦게 체결됐거나 아예 없었다면 청일전쟁도 없었을 것이고 이후의 역사도 달라졌을지 모른다는 가설(假說)이 가능하다.


《건건록》은 청일전쟁에 대한 책이지만 전쟁에 관한 얘기는 별로 없다.
전쟁을 둘러싼 서양 열강에 대한 일본의 외교와 중국의 허세와 과장이 적나라하게 기록돼 있을 뿐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국제정세를 냉철히 지켜보면서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건건록》이 주는 교훈이다.
《건건록》은 19세기 말에 나온 책이지만, 아베와 아베 후계자가 시행할 ‘한일 2.0 외교’의 원형(原型)을 보여주고 있다.



눈을 들어 세계를 보라

글을 마치려는 순간, ‘북이 원망하는 문 대통령의 조언’이란 기사가 눈에 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을 폐기할 경우 미국이 대북(對北)경제제재를 풀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그 같은 생각을 전하며 트럼프와 만나도록 추진했지만, ‘영변+α’가 미국의 의도였다는 것이다.


이 기사의 핵심은 일본은 영변만으로는 트럼프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부분이다.
‘추한 아베’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베가 고자질해서 트럼프의 마음을 변하게 했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필자는 그와는 정반대로 생각한다. 일본은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수뇌부가 그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미리 파악한 상태에서 미국을 측면 지원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미국의 목을 겨눌 수 있는 핵 문제에 대해 아무리 아베라고 해도 달리 생각할 트럼프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측의 철저한 오판이 미북회담 실패의 발단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권이 북한에 대한 짝사랑을 아무리 넘치게 표현한다고 해도 앞으로 과연 김정은이 한국 측 판단을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본의 ‘한일 2.0 외교’는 앞으로 점점 더 면밀하게 발전할 것이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한국은 앞으로도 그에 대해 과장과 허세, 오판으로 대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당연히 반일 슬로건을 앞세우는 이벤트도 폭증할 것이다.
이기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지지 않으려면 눈을 들어 세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쇄국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이미 20세기 전반에 피와 눈물로 겪을 만큼 겪었고, 당할 만큼 당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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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히로시마시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위령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일 무역분쟁 1년 평가와 향후 전망 및 과제

 

 

 

2019년 7월 1일,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의 운용을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한 달 후인 8월 2일에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수출무역관리령의 일부를 개정하는 정령’을 각의결정하고, 8월 7일에는 동 정령을 공포했다.
일본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서 한국은 다각도의 대응조치를 취했다.

정부레벨에서는 WTO에의 제소를 추진하고 일본으로부터의 수입품을 대체할 수 있는 국산화를 위한 예산 투입 등이 추진됐다. 시민레벨에서도 일본제품의 구입을 반대하는 ‘No Japan’ 캠페인이 추진됐다.
따라서 올해 2020년 8월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이러한 수출규제가 취해진 지 1년이 되는데, 이 글에서는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와 관련해 지난 1년간 한‧일 간에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지,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지, 한국의 대응조치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성공 또는 실패의 유무가 한일관계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 간략히 검토한다.
한일무역분쟁 1년의 경위
일본의 경제산업성이 2019년 7월 1일에 발표한 수출규제는 구체적으로 첫째, 한국을 화이트국가의 리스트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으로 정령(政令)을 개정하는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7월 4일부터 ‘폴루오린 폴리이미드’, ‘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 ‘액체 불화수소(불산액)’의 대한국 수출을 포괄수출허가제도의 대상에서 제외하여 개별적으로 수출허가를 심사하는 방식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한다는 8월 4일의 공포는 7월 1일의 발표에 따른 후속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조치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했다. 예를 들어, 세코(世耕弘成) 경제산업성 대신은 이틀 후인 7월 3일에 트위터를 통해서 수출규제 경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를 언급했다.
첫째는 이전부터 한국의 수출관리에 불충분한 점이 있었고 그에 따라 부적절한 사안들이 다수 발생했는데, 이에 대한 일본측의 문의에 대해 한국이 충분한 의견교환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번의 수출규제 대상품목으로 지정된 분야에서 한국의 수출관리에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올해(2019년)에 들어서 이제까지 양국 간에 축적된 우호협력 관계에 반하는 부정적인 움직임이 한국에서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징용노동자문제를 둘러싼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G20 회의의 개최 전까지 제시되지 않았고 이를 신뢰관계의 손상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넷째는 수출관리제도는 국제적인 신뢰관계를 토대로 해서 구축되는 것인데 상기한 세 가지 점들을 감안할 때 한국과의 신뢰관계를 기반으로 한 수출관리의 유지는 곤란하다는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한국으로서는 G20회의가 개최된 직후에 발표된 ‘갑작스러운’ 것이었고, ‘이중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정부가 취한 대응조치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방안으로 추진되었다.
첫 번째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부당하다는 점을 국제사회에서 알리고 철회를 요구하는 방안이었다.
예를 들어, 7월 9일에 개최된 세계무역기구(WTO) 이사회에 출석한 한국대사는 일본의 초지가 부당함을 설명하고 철회를 요구했으며, 7월 17일에 개최된 동아시아정상회의의 고위급실무자회의에 출석한 한국측 대표자인 윤상흠 통상협력국장도 일본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설명을 제시했다.
이러한 한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앞서 언급한대로 8월 2일에 ‘수출무역관리령의 일부를 개정하는 정령’을 각의에서 통과시키고 8월 4일에는 이를 공포했다.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에 즈음해 한국 정부는 맞대응조치를 취하는 두 번째의 방안을 추진했다. 즉, 8월 12일에는 일본을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발표했고, 8월 22일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상임위원회를 개최하여 한일비밀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파기를 결정했던 것이다.
한국정부가 취한 세 번째 방안은 국산화 조치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발표된 이틀 후인 7월 3일에 한국정부는 반도체 재료와 장치의 국산화를 지원하기 위해 매년 1조원의 예산을 구비한다는 구상을 발표했고, 올해 2020년 5월 11일에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된 ‘제2차 포스트 코로나 산업전략 대화’에서는 일본의 규제대상으로 지목된 ‘액체불화수소(불산액)’,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3개 품목에 대해서 미국 및 유럽산 제품으로 대체 투입하거나 외국인투자기업의 투자 유치 등이 동원되어서 실질적인 공급안정화가 달성되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네 번째 방안은 WTO에 제소하는 것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정부는 WTO 이사회를 포함한 국제회의의 장에서 일본의 규제조치가 부당한 것임을 적극 알렸는데, 9월 22일에는 WTO협정에 기초한 2국간협의도 요청했던 것이다.
WTO협정에 기초한 2국간 협의는 10월 11일에 첫 번째 회의가 실시되어 11월 19일에는 두 번째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이 협의는 한국정부가 11월 22일에 한일비밀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종료한다는 통고의 효력을 정지시킴과 함께 중단되었고, 대신에 무역관리에 대한 한일 간의 국장급 정책대화를 재개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일본 측은 그러나 한국 측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를 곧바로 철회하지 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한국정부가 철회의 입장 변화유무를 밝힐 것을 요구한 시한인 2020년 5월말까지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이 6월18일에 다시금 WTO에서의 패널설치를 요구한, 즉 WTO에의 제소를 재개한 배경에는 이처럼 일본과의 협의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던 측면이 작용했다고 하겠고, 이러한 대립상황은 7월 중순 현재까지도 한일 간에 계속되고 있다.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1년에 대한 평가
한국정부의 입장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가 수출규제조치를 7월 중순까지 변경시키지 않고 한일관계를 불편하게 방치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동 수출규제조치가 징용자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위에서 언급한 세코 대신의 네 가지 이유 설명이 단지 표피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는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국정부가 일본정부가 수출규제의 이유로 제시한 세 가지 문제들, 즉 한일정책 대화의 중단, 재래식 무기에 대한 캐치올 통제의 미흡, 그리고 수출관리의 조직 및 인력의 불충분에 대해서 개선했음을 밝히면서 일본의 입장을 보여 달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에 미친 경제적 곤란함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이 존재한다. 첫째는 한국에 경제적 곤란함을 안기려는 일본의 수출규제는 실패했거나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실패론 또는 역효과론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한국이 일본의 수출규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와도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는데, 이에 대해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이 제시된다.
첫째는 한국의 기업들, 특히 삼성이나 SK가 잘 대응해서 한국의 무역규모나 수출규모에 커다란 지장을 초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산업통상자원부의 6월1일자 발표에 따르면, 2020년 5월의 수출은 전년 대비 23.7%로 감소했지만, 반도체 분야는 수출을 주도해서 코로나19사태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7.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는 한국의 국산화 및 다변화 대응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는 지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5월 11일의 ‘제2차 포스트코로나 산업전략 대화’에서는 ‘불산액’의 경우 기존 보다 2배 이상 생산할 수 있게 공장이 신설 및 증설되어 공급능력이 확보됐고, ‘포토레지스트’의 경우는 유럽산 제품으로 수입선이 다변화되고 글로벌 기업인 듀퐁의 생산시설투자가 유치되었으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경우에는 코오롱인더스트리 등에서 자체기술을 확보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보고되었다.

한국무역협회의 국제무역통상연구원도 보고서를 통해 수출규제 3개 품목에 포함되는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의 대일수입의존도가 감소하고 벨기에나 대만으로 수입처가 다변화됐다며 일본이 노렸던 한국내의 수급차질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셋째는 한국 보다는 일본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고순도 불화수소와 같은 반도체 소재 등의 대한국 수출규모가 5월에는 전년 대비 27.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세계 수출액의 7.0% 감소에 비해 크게 떨어진 수치였다.
이에 따라 일본 내에서는 일본제품의 한국 내에서의 시장점유율 하락 및 한국의 탈(脫)일본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타났다.

이 외에도 한국에서 진행된 ‘노 재팬’ 캠페인에 의해 일본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들이 나타났는데, 보이콧의 영향은 식음료, 의류,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났지만 대표적으로 제시되는 예가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관광인객수의 급감이다.
2019년 1월에 77.9만 명을 기록했던 한국인관광객수는 8월에 30.8만, 10월 19.7만 명으로 급감한 수치를 보였다.
또한 2019년 10월의 일본맥주 한국수출량이 ‘제로’를 기록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직 평가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평가는 존재하는데 이는 크게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제기된다.
첫째는 일본의 규제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않았고, 추가적인 조치에 대한 우려가 아직은 매우 크다는 지적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일본이 수출규제의 대상으로 지목한 3개 품목은 극히 일부라는 점에 기인한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관리가 포괄적 허가에서 개별적 허가로 변경될 경우 그 대상품목을 최대 1천여 개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의 노화욱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규제대상인 3개 품목은 극히 일부이며 반도체의 소재, 부품, 장비(소부장) 분야에서는 급소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특히 장비부분은 반도체의 투자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80%로 높고 국산화에 긴 시간을 필요로 해서 시급히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경련은 6월의 조사에서 일본과의 수입을 진행하는 국내기업들은 한국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을 일본의 90% 정도로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향후 전망과 과제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의 수출규제 1년에 대한 평가는 비록 그것이 일본의 세코 경제산업성 대신이 주장하듯이 ‘금수조치’가 아니며 유연한 규제에 해당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한국으로 하여금 경제적 위기감을 부추겨 경제적 곤란함 보다는 국산화 및 다변화의 의지를 높여서 대일 경쟁력을 상승시키는 반면, 일본 자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가 징용자문제에 대한 한국정부의 입장 변경을 목표로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현재로서는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시키려는 목적을 추구했던 한국의 대응조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한국이 국산화 등을 통해서 일본의 수출규제가 미칠 영향을 최대한 회피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징용자문제의 해결을 목표로 하는 일본으로 하여금 수출규제의 철회라는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에 있어서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일본의 수출규제를 철회시키기가 용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하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정부는 한국정부가 징용자문제와 관련해서 종전의 입장을 변경하기를 바라지만, 삼권분립의 원칙 하에서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고 피해자중심주의를 지킨다는 한국정부의 입장 역시 다양한 정치적 측면을 고려해서 나온 것이기에 변경하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앞으로도 징용자문제와 관련된 한일 양국의 입장이 팽팽히 맞선 채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계속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높아 보여서 일본의 수출규제도 철회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인 것이다.
특히 징용자 문제와 관련해서는 현재 8월 중순이 최대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압류된 한국 내의 일본기업 자산이 법원(포항지법)의 명령에 의해 현금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현금화가 실시될 경우, 징용자문제는 1965년의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사안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정부의 입장에서는 자국민 보호의 차원에서 한국의 일본기업자산 압류와 현금화에 대응하는 조치를 추가적으로, 그리고 좀 더 엄격히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고 새로운 악순환 또는 파국의 시작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는 지난 1년간에 대한 어설픈 평가는 커다란 의미를 가지지 못하거나 역효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지나친 비관론이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처럼 사태를 심각하게 보는 이유는 한국에서 일본이 제기하는 신뢰성의 문제나 국제법 위반이라는 문제가 지니는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한 예로, 징용자문제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국회의장이었던 문희상 안을 비롯해 다양한 안들이 제시되었지만 대개가 일본기업의 참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는 개인청구권은 살아있다는 관점에서는 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을 포함해 징용자문제는 지난 1965년의 기본조약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하며 한국정부가 ‘적어도 우선적으로는’ 국내적 해결을 모색하기 바라는 일본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일 뿐만이 아니라, 기본조약이라는 한일관계의 근간을 흔들려는 것이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안이 될 수 있다.
미국이 흔들리는 가운데 새롭게 형성될 국제질서 속에서 신뢰성의 여부를 묻는 이러한 일본의 문제제기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배려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고, 그러한 일본의 불신이 국제적으로 파급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하겠다.

혹자는 현금화가 실현되면 오히려 한국정부도 행동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정치적 리더십의 발휘가 타이밍이나 모양새를 고려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일본은 물론 세계를 향해서도 한국외교의 신뢰성을 실추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긴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원활한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미‧중 갈등이나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도전요인들이 중첩되는 21세기의 외교환경 속에서 한국의 국익을 살리는 방향은 국제규범국가로서의 한국 위상을 높이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도 현재의 갈등적 한일관계를 실리적으로 관리하는 것의 중요성은 불문가지(不問可知)라 할 수 있다.









이면우 세종연구소 부소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8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