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6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처] - 국민일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영부인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국민뉴스
지지율 20%대로 추락…尹의 위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2030·중도·무당층 지지율은 모두 10%대로…TK에서도 부정평가 과반
한일문제 서두르고 미국 도청에 서툴게 대응…친정체제 구축했지만 ‘뺄셈정치’로 인해 선거연합 깨져
(시사저널=김종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20%대를 기록했다.
한국갤럽 4월 둘째 주(11~13일) 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27%, 부정평가는 65%였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건 지난해 11월 3주 차 조사 이후 처음이다.
여론조사의 모든 지표는 지금 윤 대통령이 위기에 빠져 있다고 알리고 있다.
선거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2030세대·중도층·무당층에서 지지율은 모두 10%대로 추락했다.
보수의 텃밭으로 통하는 대구·경북(TK)에서조차 부정평가(53%)가 긍정평가(44%)를 앞섰다.
보수 성향이 강한 60대에서도 부정평가(48%)와 긍정평가(47%)가 비등한 상황이다.
추세를 보면 최근 민심이 얼마나 빠르게 악화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 한국갤럽 1월 첫째 주(3~5일)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37%, 부정평가는 54%였다
. 5개월여 만에 긍정평가는 10%포인트 빠지고, 부정평가는 11%포인트 늘어난 셈이다.
이 기간 20대(18~29세)와 30대 지지율은 22%→14%, 28%→13%로 각각 추락했다.
중도층 지지율도 26%에서 18%로 하락했다.
반면 TK와 부산·울산·경남(PK)의 부정평가는 31%→53%, 45%→55%로 치솟았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석열 대통령이 4월1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열린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에서 대구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로이터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3.4.19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zjin@yna.co.kr
"세대·지역·이념 뛰어넘어 총체적 불신"
전문가들의 평가도 냉정하다. "윤 정부가 세대·지역·이념을 뛰어넘어 '총체적 불신'을 받는 형국"(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모든 지표가 위기를 알리는데 여권은 위기를 위기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장관 몇 명 바뀐다고 해결될 위기가 아니다. '구조적 위기'다"(이준한 인천대 교수),
"정책 난맥상이 반복되면서 국민 마음이 뒤집어졌다"(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 등의 지적이 이어졌다.
이런 여론은 실제 표심으로도 이어졌다.
총선을 1년 앞두고 치러진 4·5 재보선에서 여권은 쓰디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지 기반을 넓히면 이기고 좁히면 진다. 정치에서 불변의 진리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에 따르면 지지율에서 긍정평가가 35%를 밑돌고 부정평가가 55%를 넘으면 '정권 심판 구도'가 선거를 지배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를 넘어 '콘크리트 비토층' 55%와 '중도 비토층' 65%라는 두 가지 악재가 굳어지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지지율도 지난 한 달 내내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내년 총선까지 아직 1년 정도 남았지만, 여권 입장에선 비상등이 켜진 것은 분명하다.
무엇이 민심이라는 바다를 성나게 한 것일까. 여의도 정치권에 분석과 진단은 넘친다.
독선과 불통,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 등 윤석열 대통령의 '마이웨이' 스타일과 태도가 문제라는 지적과 주 69시간 근무 논란이나 외교안보 라인의 인사 교체 등 정책·인사 난맥상이 반복되는 것이 민심 이탈을 불러왔다는 분석 등이 주로 제기된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무리한 당 장악 시도나 인사 논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김건희 여사의 광폭 행보 등도 많이 거론된다. 시사저널은 용산(대통령실)과 여의도(국민의힘) 내부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같은 문제가 계속 지적되는데 유사한 양상이 반복된다는 것은 무언가 구조적 이유가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반등의 고비 때마다 악재가 반복되며 번번이 지지율이 주저앉는 그 이유, 수면 아래 잠복한 진짜 원인을 찾아봤다.
[서울=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에 앞서 진행한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가
24일 보도됐다. 사진은 윤 대통령이 인터뷰를 하는 모습.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3.04.24.
출처 : 천지일보(https://www.newscj.com)
집권세력 안에서 사라진 견제와 자정 기능
"최근 여권의 위기는 역설적이다.
윤 대통령이 원하던 '일사불란한 친정체제' 구축이란 목표를 드디어 지난 전당대회를 끝으로 다 이뤘는데, 그 순간부터 위기가 본격 시작됐다.
그래서 지금의 위기는 한시적·일시적이 아니라 구조적이다.
" 국민의힘에서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핵심 관계자의 진단이다.
이 핵심 관계자는 지금의 위기를 '역설'이라는 열쇳말로 풀어냈다.
당·정·대(대통령실) 전체의 친윤 일색이라는 일사불란함이 획일적인 국정운영체제 구축으로, 획일적 체제가 내부의 견제·자정 기능 상실로, 사라진 견제·자정 기능이 다양성 상실로 이어져 내부의 쓴소리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굳어졌다는 지적이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이런 관점으로 보면, 여권의 잇따른 설화나 연이은 정책 혼선 등이 왜 계속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당·정·대에서는 그야말로 사고가 줄을 이었다.
"전광훈 목사 우파 천하통일" "5·18 정신 헌법 수록 반대" "4·3은 격 낮은 기념일"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김재원 최고위원을 시작으로, 쌀 소비 감소를 '밥 한 공기 비우기 운동'으로 해결하자는 조수진 최고위원, "제주 4·3은 김일성의 지시였다"는 태영호 최고위원까지 그야말로 집권여당에서는 설화가 쏟아졌다.
사실 이상한 일이다. 설화가 나서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되면 설화의 주인공은 물론 그 주변은 일정 기간만큼은 언행을 조심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계속 사고가 터졌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김기현 당대표가 정말 영(令)이 서지 않기 때문일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결이 다른 진단이 나왔다.
앞서 언급한 국민의힘 관계자의 설명이다. "획일적이고, 내부 견제·자정 기능이 사라지고, 다양성이 사라지면 결국 '같은 색'만 남는다. 같은 색끼리는 생각도 같고, 언어도 같다.
지금 당과 대통령실의 공기가 같다.
서로 전혀 이질적인 게 없다.
그러니 국민 눈높이에 전혀 안 맞는 발언과 정책이 걸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논의 과정은 더 빨라지고 자연스러워졌다.
이것도 문제인데, 주요 의사결정자들이 더 이상 듣지 않으니 참모들은 직언하지 않는 분위기가 생겼다.
그러니 국민 보기엔 뜨악한 메시지와 정책들이 그대로 나가고, 그 문제들을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국민 눈높이와 전혀 다른 처방전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미국이 악의를 가지고 (도청을)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발언이나 '69시간제 논란이 홍보 부족 때문'이라는 인식이 그대로 외부에 노출되는 것은 여권 핵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사고'가 아닐 수 있다.
내부에서 회의하거나 논의할 때는 전혀 문제가 없었던 발언이나 정책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기현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 내내 연합과 포용, 탕평의 당직 인선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인선 결과는 친윤 일색으로 연·포·탕은 없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오히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문제와 관련해 자신을 공개 비판한 홍준표 대구시장을 상임고문에서 해촉하면서 불통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이에 여권에서는 김 대표와 당 지도부가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박성민 컨설턴트는 비슷한 맥락의 지적을 제기했다.
그는 "지금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여권 지도부는 모두 위기의식이 없다. 위기를 위기라고 인식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
오류는 고칠 수 있어도 한계는 못 고친다.
한계는 세계관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4월1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당·정·대 대대적 인적 개편 필요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역설이 윤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성공방정식을 허물어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10가지 중 9가지가 달라도 정권교체라는 한 가지 생각만 같으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당의 혁신으로 중도와 합리적 진보로 지지 기반을 확장해서 이들을 대선 승리의 핵심 주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여권 내부에서는 윤 대통령이 10가지 중 9가지가 같아도 하나만 다르면 적으로 몰아붙인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실제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무 개입' 논란과 '수직적 당·대(대통령실) 관계' 등 숱한 비판을 감수하고 경쟁자들을 중앙정치에서 사실상 몰아내는 모습을 보였다.
각각 2030세대와 합리적 보수, 중도층에 소구력이 있는 이준석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안철수 의원이 차례로 찍혀 나갔다.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일찍이 홍준표 전 의원은 대구시장으로 스스로 피신했다.
선거 전략에 밝은 국민의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일련의 이런 흐름에 대해 "윤 대통령이 '보수·중도 연합'을 스스로 해체하면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의 검찰 출신 무더기 공천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여권 내부의 원심력을 키우는 한 원인이기도 하다.
최근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현재 여권의 위기 원인을 좀 더 근본적인 데서 찾는 이도 늘고 있다. 바로 국정운영 능력 자체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연이어 발생하는 정책 난맥상과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의 메시지 혼선 등을 보면 국면 전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은 4년의 임기를 제대로 끌고 가기 위해서라도 당·정·대 전체에 대대적인 인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일본 강제징용 해법 제시와 노동시간 유연화 개편 작업 등은 최소한 보수 지지층에는 먹혀 들어갈 수 있는 의제들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급하게 의제만 던지고 여론 조성과 소통 등에는 소홀한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자신들의 선의만 앞세우고 국민에게 윽박지르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국정운영이라는 것은 기획, 여론조사와 같은 사전 조사 등 정지 작업은 물론 입안, 시행, 여론 조성, 보완 조정 등이 포함된 종합예술이다.
치밀한 사전 준비 작업에서 계속 구멍이 난다는 것은 국정운영의 가장 기초인 ABC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2023.04.25. photo1006@newsis.com
왜 해외 순방 때마다 지지율 추락할까
정무와 홍보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여권에서 정책통으로 통하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통상 내치에서 어려움을 겪으면 외치로 국정을 이끈다. 실제 보통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가면 지지율이 오른다.
국가대표로 나가는 만큼 국민도 응원하고, 언론의 주목도도 확 올라가는 만큼 지지율이 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1년여간 대통령이 순방만 가면 지지율이 추락했다.
대통령실은 계속 지엽적인 문제들을 키우며 대통령에 대한 주목도를 떨어뜨렸다.
영부인 이슈도 순방 때마다 반복된다.
대통령실이 해외 순방 성과 등 자신들이 원하는 이슈로 상황을 끌고 가지 못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이것은 실력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도청 의혹에 대한 대응도 아마추어적이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교과서적으로 모범답안이 있는데 "미국은 악의가 없고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메시지가 덜컥 나간 탓에 정부의 입지를 스스로 좁혔다는 지적이다.
그 후 국민 머릿속에 각인된 것은 고위 당국자의 고압적인 태도와 짜증뿐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실의 위기 관리 기능에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모습이 반복되는 것은 국정운영에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닐 뿐만 아니라 그 의제 자체에 대한 대국민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이준한 교수도 비슷한 맥락의 지적을 내놨다.
이 교수는 "미국 순방을 앞두고 기대감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사고가 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여론이 상당한 게 냉정한 바닥 민심"이라면서 "이런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윤 대통령과 여권이 현재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했다.
특히 "지금 여권의 위기는 단순한 위기가 아니다"면서 "정치 신인이라 굳건한 콘크리트 지지층을 갖지 못하고 있는 윤 대통령이 '뺄셈정치'와 '마이웨이'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중도층과 2030세대가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리더십을 바로 세워야 하는데 윤 대통령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큰 상황이다.
그래서 장관 몇 명 바꾸고 인적 개편을 한다고 해서 지금의 위기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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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호의적 상대만 고르는 '윤석열 스타일' 진단
유튜브 내 대통령실 공식 채널 '윤석열'에 가보면, 정말 다양한 콘텐츠들이 게시돼 있다.
개별 국정 운영 현장과 대통령의 동정을 녹화한 비디오들도 많고, 취임 후 지난해 11월까지 진행됐던 출근길문답(도어스테핑) 영상도 61회까지 쌓여 있다.
요즘 MZ세대뿐 아니라 전 연령대에 걸쳐 사랑받는 숏폼도 수십 개를 훌쩍 넘는다.
이같은 대대적 홍보활동은 온라인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 이란 메시지로 제작된 '10대 성과' 광고는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초대형 스크린을 포함해서 전국 146곳 전광판에서 상영 중이다.
결국 온라인·오프라인을 망라한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홍보 및 소통은 최소한 양적으론 적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런 활동이 대통령 국정지지율에 대한 전체 변수가 될 순 없겠지만, 많은 에너지와 비용을 쏟아붓고 있음에도, 왜 지지율은 20~30%대 박스권에 갇혀 있을까. 소통 전반에 대한 솔직한 진단이 필요해 보인다.
국민들은 국정 지지 관련 부정평가의 이유로 '소통'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일곱 번이나 언급했다는 '미래세대'들은 가장 원하는 리더의 유형으로 '소통 잘하는' 리더를 단연 꼽고 있으니 말이다. 현재 진행 중인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소통과 관련해 소통의 기본원칙에 근거해 몇 가지 이슈를 지적한다.
첫째, 내게 호의적일 누군가를 '고른다'
첫 번째, 최근 대통령·대통령실이 수행하는 소통은 전형적으로 '상대를 고르는' 소통이란 점이다
. '서로 통하고 이해함'이란 궁극적 목적을 위해 소통이 운명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불확실성' 변수를 처음부터 무시해 버리는 행동이다.
소통하는 자의 책무인 '서로 이해하고 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을 온전히 무시한 채 단순한 '만남'만 할 뿐이다.
상대방을 고른다는 것은, 어차피 소통을 통해 당사자들이 쌓아야 하는 라포(Rapport, 상호신뢰관계)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어차피 내가 선택한 상대, 내게 호의적일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데엔 아무런 돌발 변수가 없다. 의견이나 시각의 다름도 기대하기 어렵다.
어차피 다른 의견을 말하긴 어려운 상황인데, '서로 통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소통의 과정은 약속에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대통령이라는 압도적인 위계가 존재하는 만남에서 사전적 의미의 '소통'이 일어나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로 보인다.
대통령·대통령실이 상대를 고르는 습관은 꽤 오래 전부터 관례화되고 있다.
결정적인 시기는 출근길문답이 멈춘 직후가 아니었나 싶다.
당시 G20 참석 차 발리로 향하던 전용기에서, 대통령은 전체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회견 대신 2개 언론사의 기자만 '골라 불러' 만남을 가졌다.
당시 일부 비판 분위기가 있었지만, 언론을 향한 그 이상한 소통법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적하는 언론은 없었다.
그 이후 상대를 고르는 기조는 더욱 노골화됐다.
▲ 지난 3월 15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오이카와 쇼이치(老川祥一) 요미우리신문그룹 대표이사·회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한 단독 인터뷰를 조간신문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연합뉴스
2023년 새해를 맞는 대통령의 정국 구상과 주요 메시지는 언론 중 유일하게 <조선일보>로만 들을 수 있었다. 상대로 선택받은 <조선일보>는 시리즈 기사로 화답했다.
올해 3월 진행된 한일정상회담 시기엔, 심지어 우리 언론이 싹 무시되고 일본 매체인 <요미우리>가 우리 대통령의 속내를 속속 전해줬다.
지난해 이후로 정식이든 약식이든 질의응답을 제대로 못했던 한국 언론에게 <요미우리>는 어엿한 '취재원'이 돼버렸다.
한국인 대부분에게 심리적 역린인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항과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하는 강제동원 배상안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계획을 듣고 놀라긴 했지만, 이런 중요한 사항을 일본 언론 그것도 대표적 우익성향의 신문을 통해 들었다는 자괴감도 없지 않았다.
대통령실이 언급한 것처럼 그렇게 '고뇌에 찬 결정'이었다면, 차라리 직접 당사자들인 우리(국민)에게 혹은 우리 언론을 모아놓고 소통하는 쪽이 훨씬 적절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우리 가족에 대한 중대 결정을 남의 가족이 들려주는 상황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4월 26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둔 최근에도 유사한 방식은 또다시 반복됐다. <로이터>와 우리 대통령이 단독 인터뷰를 진행한 것.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전쟁 상황 속에서 추후 상황에 따라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할 수도 있다는 '우리' 대통령의 결단을 외국 통신사를 통해 듣게 됐다. 중국-대만의 양안 문제에 대한 우리 대통령의 원칙을 들려준 것도 한국 언론이 아니었다.
러시아와 중국이 우리에게 표시한 적대감과 위협은 잠깐 논외로 하더라도, 일단 이같은 대통령의 소통 방식은 매우 이상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우리'가 뽑은 '우리' 대통령이 생각하고 결정하는 사항들을, '해외' 언론사들이 먼저 듣고 걸러서 '우리' 언론에게 제공하는 이상한 형국이기 때문이다.
둘째, '전달하는 지도자' 이미지만... 일방통행 스타일
ⓒ 연합뉴스
두 번째, 현재 대통령실이 하는 소통의 상당 부분은 '일방향'이다.
분명 소통이라고 이름 붙이긴 했는데, 대부분 청중과의 상호작용이 발견되지는 않는 사례가 많다는 뜻이다.
사실 지난해 출근길문답에서도 이같은 경향은 이미 발견되고 있었다.
초기 몇 차례 출근길문답이 진행된 뒤 어느 시점부터 대통령의 모두 발언 즉 일방적 멘트는 지속적으로 늘어만 갔다.
연이은 설화에 대한 참모들의 제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지어 기자들의 질문이 한두 개에 그치는 날도 적지 않았다. 쌍방은 줄고 일방적 전달만으로 시간이 채워졌다는 의미다.
출근길문답이 완전히 멈춘 다음, 대중이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대통령의 소통은 대부분 잘 갖춰진 일방통행 스타일이었다.
각종 기념식 축사에서는 당연히 그랬으며, 생중계로 전달되는 국무회의 발언에서도 소통의 본질인 '서로 통하고 이해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현장의 참석자들도 대통령의 발언과 함께 고개를 숙인 채 뭔가 적는 모습만 보이는데, 하물며 영상으로 접하는 대중들이 그 모습을 보며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순 없다.
대중이 미디어를 통해 대통령을 천천히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위 상황을 빼고 거의 없음을 감안한다면, 일반 국민에겐 소통보다는 '전달이 익숙한 지도자'의 이미지만 강해진다.
최근 국정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부정평가의 이유로 지적된 사항 중 하나가 바로 '일방적, 독단적'이었다.
결과로만 판단해 보자면, 대통령과 참모들이 소통이라고 믿는 그 행위들이 대중에겐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무조건 많이 만들어 알리는 게 만사형통?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
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세 번째 이슈는 제작된 콘텐츠에 대한 '밀어내기', 즉 푸시(Push) 전략만 과도할 뿐 대중을 끌어당기는 풀(Pull) 전략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는 유튜브 속 대통령 채널엔 홍보 콘텐츠들이 빼곡하다. 주제도, 길이도 다양한 콘텐츠들이 대중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업로드된 상당수 콘텐츠엔 대중을 실질적·심리적으로 머물게 하는 유인 요소가 많지 않다는 평가다. 재미있는 사진, 인상적인 스토리, 합리적인 메시지 등은 전형적으로 콘텐츠 중심의 푸시 전략에 주로 사용되던 요소들이다.
디지털 초기에는 푸시전략을 받쳐주는 요소들을 적절히 배합해 근사한 그림과 그럴듯한 메시지만 만들어 올려놓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넓게 알린다'는 홍보(弘報)의 뜻 그대로 무조건 만들어 되도록 많이 알리면 만사형통이란 믿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엔 풀 전략, 즉 대중을 당기는 기술이 심각하게 요구된다. 반복적 노출보다, 정보 소비자들의 행동을 필사적으로 끄집어내 관여도를 높여 어떤 방법으로든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감정적이든 실제적이든 작지만 쏠쏠한 편익을 누릴 수 있는 이벤트를 기획할 수도 있고, 댓글을 다는 사용자와 관계의 형성을 도모할 수도 있겠다.
안보 등 갖가지 이유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 어렵다면 대통령실이 나설 수 있다.
참모진에게 필요한 건 홍보의 영어표현인 '퍼블릭 릴레이션(Public Relations)'에서 뒷부분 '관계'에 방점을 찍은 소통이어야 한다.
소통이 국정 지지의 모든 측면을 결정짓는 요소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림잡아 지지율 수치의 반 이상은 결국 대통령과 대통령실 그리고 함께 떠오르는 여당이 대중과 어떤 소통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특히나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등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우리 문화에선 더욱 그러해 보인다. 현재 대통령실 채널에서 사용 중인 대통령의 슬로건은 "국민이 불러낸 대통령"이다.
대중이 소통으로 불러냈다고 믿는다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소통으로 화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지금 용산은 어떤가.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유현재씨는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윤석열 정부 1년…정책전문가들 “소통·통합 리더십 필요”
진보적 정책전문가들은 ‘바람직한 대통령 리더십’의 열쇳말로 ‘소통’과 ‘통합’을 첫째로 꼽았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오는 28일 창립하는 싱크탱크인 대전환포럼(상임운영위원장 서왕진)은 ‘윤석열 정부 1주년 국정수행 평가 및 대전환에 대한 전문가 조사’ 결과를 23일 발표했다.
인터넷으로 이뤄진 이번 조사에는 산업·정치·행정·보건·노동·에너지·군사 등 각 분야에 걸쳐 교수·연구원 등 학계와 시민사회의 진보적 인사들을 주축으로 모두 262명의 정책전문가들이 참여했다.
표본오차는 신뢰수준 95%에 ±6.0%포인트다.응답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업무수행 평가’ 질문에 82.8%가 “못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잘하고 있다”는 3.4%에 그쳤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비전과 철학이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답변도 78.9%에 이르렀다.
또 76.3%는 “민주주의 위기가 심각하다”고 답했고, 77.8%는 민주주의 위기에 “대통령의 책임이 있다”고 대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건 3대 개혁에 대해서도 부정적 평가가 많았는데, ‘타당하지 않다’는 응답은 노동개혁(74.4%), 교육개혁(64.9%), 연금개혁(43.5%) 순서로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하나의 열쇳말로 정리해달라는 개방형 질문에는 ‘무개념’(19%), ‘무능력’(15.2%), ‘무데뽀’(11.8%), ‘무책임’(7.6%)이라는 대답이 나왔다.대통령 리더십의 열쇳말을 2개씩 꼽아달라는 질문에는 ‘소통’(59.5%)이 가장 많이 나왔고, ‘통합’(40.8%), ‘비전’(36.3%), ‘상식’(31.7%)이 뒤를 이었다.
국가체제 대전환의 열쇳말(2개씩 응답)로는 ‘지속가능성’(45%), ‘상생’(34%), ‘공동체’(25.6%), ‘공정’(22.5%)이 꼽혔다.대전환포럼은 오는 28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창립식을 연다.
서울연구원장을 지낸 서왕진 대전환포럼 상임운영위원장은 “새로운 국가비전과 정책개발을 주도할 지식공동체를 표방하는 대전환포럼은 비전과 정책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이의 확산을 위한 공론장을 적극적으로 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환포럼에는 박순성 동국대 교수(북한학),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 이창현 국민대 미디어·광고학부 교수 등 주로 진보 성향인 전문가들 100여명이 참여한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이 3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5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윤석열 정부 민생 분야 점수는 D학점
[봉달호 편의점 칼럼]
먼저 개인 신상과 관련된 서술을 해야겠다.
필자는 4월 3일 국민의힘 ‘민생119’ 위원으로 임명됐다.
민생119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체제가 출범하고 이른바 ‘1호 특위’로 구성한 조직으로 주목받았다.
야당이 대(對)여 공세를 강화하는 가운데 앞으로 여당은 ‘민생’을 키워드로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민생119는 총 15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조수진 위원장을 비롯해 8명은 국민의힘 당내 인사, 7명은 각계의 목소리를 전달할 외부 전문위원이다.
필자는 그 가운데 자영업자 몫으로 참여하게 됐다.
임명된 계기는 단순하다. 조 위원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신동아’를 비롯해 각종 매체에 연재 중인 칼럼을 잘 보고 있는데, 민생특위에 참여해 조언을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입당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언론에 글을 써온 것이 단순히 외부에서 미주알고주알 떠들려고만 했던 것은 아니니, 정치권 현장 상황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경험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판단했다.
그것이 더구나 ‘민생’과 관련된 분야이니.
앞으로 필자의 칼럼이 민생119의 입장과는 전혀 상관없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오롯이 필자 개인의 견해일 따름이다.
특정한 정당에 조언하고 있다고 비판의 강도가 눅어지거나 논조가 흔들릴 가능성 또한 전혀 없다.
민생 분야, 낙제 면한 수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곧 1년을 맞는다.
지난 1년간 민생 분야에 있어 윤 정부가 한 일에 점수를 준다면 D학점을 주고 싶다.
간신히 낙제를 면한 정도다.
그나마 다른 분야에 비해서는 후한 점수다. 외교와 관련해서는 F학점을 주고 싶고, 국내 정치 분야는 F보다 더한 낙제점이 있다면 그것을 주고 싶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보수 진영은 몇 가지 거대한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첫 번째 착각은 “내년 총선에 이기면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착각이다.
미래는 감히 예측할 수 없다지만 내년 총선에 여당이 승리할 가능성은 20% 미만이라고 본다. ‘이긴다’는 것에 대한 기준은 제각각일 테지만 보수 진영이 생각하는 대로 ‘만사형통’할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내년 총선에 여당이 승리한다고 치자.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아무리 다수당이라도 압도적 의석(180석 초과)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을 마음대로 통과시킬 수 없다.
설령 180석 이상을 갖고 있다 해도 당내 이탈표, 국민 여론, 상임위 통과 절차 등이 있기 때문에 마음껏 ‘다수결의 속 시원함’을 구가하지는 못한다.
180석을 갖고 있던 민주당이 꼼수 탈당, 안건조정위 무력화 등 온갖 몸부림을 쳐왔던 것을 떠올려보시라.
민주당이 지난 총선에 180석을 확보한 것은 코로나19라는, 100년에 한 번 생길까 말까 한 역사적 사건 때문에 얻은 특수한 결과다.
국민의힘은 내년 이맘때 그런 특수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을까
. 대통령 임기 3년차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압도적 과반을 확보할 가능성은 코끼리가 양쪽 귀를 펼쳐 하늘로 날아가길 기대하는 확률과 비슷할 것이다.
국민의힘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다면 물론 정치적 ‘상징’으로서의 의미는 있을 수 있다. ‘발목 잡는 야당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상징 이상의 실질적 의미는 없다.
여론의 탄력을 받아 국정 운영이 다소 수월해지기는 하겠지.
하지만 만사형통은 있을 수 없으며, 어떤 경우라도 의회의 협조는 필수다.
그것이 3권 분립 국가에서 지켜져야 할 당연한 원칙이다.
지난 1년간 윤석열 정부는 말 그대로 ‘국회 패싱’이라고 할 정도로 의회의 협조를 구하려는 노력은 일절 하지 않았다. 비록 야당이 협조하지 않더라도 협조를 구하려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마저 하지 않았다.
구차하게 무릎 꿇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통령 후보 시절에 “통합 정부를 만들겠다”거나 “야당과 협치를 하겠다”는 약속은 왜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국민 상당수는 대통령에게 속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윤 대통령을 선택한 중도층은 배신감과 좌절감을 느끼는 중이고, 윤 대통령을 선택하지 않은 47.8%의 국민은 과연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씁쓸한 자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대통령의 내치(內治)에 F학점보다 더한 낙제점을 주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각설하고, 내년 총선에 국민의힘이 과반을 확보할 가능성도 결코 높지 않아 보인다. 한국갤럽이 4월 4~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년 총선에 ‘정부 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50%, ‘정부 지원을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36%에 불과했다.
출범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정부에 대해 이토록 ‘견제론’이 높게 나오는 경우도 흔치 않다.
60대 이상을 제외하고 전체 연령층에서 견제론이 높았고, 게다가 20~30대 연령층에서는 견제론이 지원론을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눌렀다. 윤 정부 스스로 만든 결과다.
‘정의의 수호자’라는 거대한 착각
윤석열 정부와 집권 여당이 갖고 있는 두 번째 거대한 착각은 자신들을 ‘정의의 수호자’처럼 여긴다는 사실이다. 마치 구악(舊惡)을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정부를 이끌고 있는 것 같다.
부패한 노조를 척결하고, 종북 주사파 세력을 몰아내고, 친중 세력을 솎아내고, 좌파가 망가뜨린 한미일 삼각동맹을 복원하며, 거짓 진보 세력이 무너뜨린 세상을 자신들이 바로잡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국민이 문재인 정부나 과거 노무현 정부에 등을 돌렸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러한 편향된 나르시시즘이었다. 지난 1년은 다른 버전의 ‘신종’ 운동권 정부를 목격하는 느낌이다.
“기득권 카르텔을 깨뜨리겠다”라느니, “종북 주사파는 협치의 대상이 아니다”라느니, “거짓과 부패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없도록 하겠다”라느니 하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과거 운동권 총학생회장의 연설을 테이를 거꾸로 돌려 듣는 느낌이다.
화염병 좌파 운동권 세상이 가니 아스팔트 우파 운동권이 몰려왔다.
극성 지지층에는 감동적인 정부이겠으나 이에 호응하는 국민의 비율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른바 구악, 적폐, 부패 세력과 싸우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민생에 산적한 과제가 숱하게 많다.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공안기관은 따로 있는데 대통령이 민생은 살피지 않고 이런 발언만 도드라지게 보도되니 굉장히 엉뚱하다는 말이다.
아직도 자신을 검찰총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니 이번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국민의 시선으로는 대통령으로서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혹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가상의 적을 만들어 섀도복싱만 하는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물론 윤 정부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이다. 민생을 철저히 챙기고 있다고 말이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국민이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과거 문재인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문재인 정부는 뭔가 부지런히 하는 시늉이라도 했다.
이번 정부는 그마저 없는 것 같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잘 알려지지 않는 것뿐인지, 정말 일을 ‘안 하는’ 것인지,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것은 국민이 판단할 몫이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마음을 드러낸다. 내년 총선은 국민이 비로소 마음을 드러내 보여주는 현장이 될 것이다.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잘못을 돌아봐야 앞으로 1년간 만회할 기회나마 생길 텐데, 지금 윤 정부에는 그런 성찰의 자세마저 없는 것 같다. 세상만사를 민생이 아니라 대야(對野) 투쟁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운동권적 세계관이다.
호위무사 자처하는 사람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오른쪽)가 3월 31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의회에서 열린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국민의힘·부산시 연석회의’에 참석해 장제원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세 번째 거대한 착각은 ‘일심단결’에 대한 착각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지난 1년간 한 일을 되돌아보면 내부의 ‘불순분자’를 솎아내는 일에만 골몰했다. 국민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1년 내내 이준석 때리기에만 집중했고, 그걸로 뉴스를 온통 도배했다.
윤 대통령 처지에서는 “그럴 만하니까 그랬다”라고 자찬하더라도, 국민 입장에서는 “그래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을 것이다.
친윤(親尹) 일색 지도부가 탄생했다. 당대표는 물론 원내대표, 사무총장, 심지어 정당 산하 정책연구소 원장 자리 하나까지 ‘윤석열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사람들로 획일화됐다.
지금 국민의힘 내부에는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스피커가 완전히 박멸되다시피 했다.
현실 정치에 익숙하지 않고 갑자기 훅 떠오른 지도자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이런 부분이다.
단결하면 뭔가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자신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내부의 적’ 때문이고, 내부부터 단결해야 외부의 적과 맞서 싸울 수 있을 것 아니냐는 절차적 단계론을 운운한다.
이론적으로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건 좌파 전위 정당이나 파시스트 정당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중 정당의 작동 원리는 그렇지 않다.
국민은 일치단결하는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조금 복잡해 보이더라도 내부에서 지지고 볶는 정당을 오히려 지지한다. 그런 측면에서 국민은 역시 현명하다.
국민은 ‘야당’에 대해서는 단결을 주문한다. 야당은 권력과 맞서 싸워야 하는 존재니까 야당이 지리멸렬하고 적전 분열 상태이면 국민은 지지할 기운을 잃는다. ‘여당’에 대해서는 완전히 다르다.
국민은 여당을 일단 ‘권력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이 집중된 집단이 내부 성찰 없이 똘똘 뭉쳐 있으면 국민은 야당에서 대안을 찾는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1년간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다.
작금 여론조사 결과를 보라. 당내가 시끌벅적할 때보다 친윤으로 똘똘 뭉친 지도부가 탄생한 이후로 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더욱 떨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심각한 자충수를 둬버린 셈이다. 여당이 조금 시끄럽더라도 대통령은 그러려니 하면서 국정 운영에 몰두하면 됐는데, 그러면 국민은 여당에서 계속 희망을 찾았을 텐데, 여당이 대통령 사당(私黨)이 됐으니 이젠 야당이 제 역할을 해주기만 바라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를 정치적으로 소생시킨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이상하게도 내부 군기를 다잡는 데 모든 열정을 불태웠다.
추측건대 세 가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첫째, 검사로서 평생 ‘동일체’ 원칙이 통하는 조직에만 몸담다 보니 내부 이견이나 상급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듯한 행태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 현실 정치에는 자타 공인 초보이다 보니 정당 내부에서 치받아 올라오는 것을 ‘내가 초보라고 우습게 보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갖고 있던 콤플렉스와 비슷해 보인다
셋째, 국정 운영에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그런 것으로라도 대리만족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착각 3가지
앞에서 윤석열 정부의 거대한 착각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총선에서 이기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이라는 착각 △자신들을 정의의 수호자라고 생각하는 착각
△집권 여당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착각 등이다.
이제 윤석열 정부는 변명할 거리가 없어졌다.
정치적 허니문 기간이 끝났다.
처음 1년은 ‘익숙지 않아 그러는 거겠지’ 하고 국민들도 양해했지만 앞으로는 그런 프리미엄이 통하지 않는다.
내부에 시끄러운 사람들도 몰아냈겠다, “모든 것은 저 사람들 때문”이라고 분풀이할 대상마저 사라져 버렸다.
윤 대통령과 보수 진영이 외부적으로 의지할 대상은 두 가지뿐이다. 문재인과 이재명. ‘지난 정부 때문’ 혹은 ‘지금 야당 때문’밖에 남지 않았다. 일부 언론이 열심히 그것을 돕고 있다.
전혀 의미 없는 시도는 아니지만 “세상 만물의 잘못은 전 정권과 민주당 때문”이라는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총선까지 1년 동안 먹혀들 수 있을까.
극성 보수층은 유쾌할지 모르겠으나 적잖은 사람들은 벌써 권태로워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윤석열 정부, 혹은 보수 진영을 진정으로 돕는 길이 과연 무엇인지 겸허하게 돌아봐야 한다.
정치 초보가 어설픈 멘토들의 도움을 받으며 꼼수를 부릴 생각을 말고 정공법으로 나아갈 때다.
국민의 삶이 달라지는 ‘성과’로서 모든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집권 2년차에 접어들었고, 내부 비판도 평정됐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럼 민생을 보자. 흔히 경제는 ‘운칠기삼’이라고 한다. 세계경제가 하나로 연결된 시대에 세계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한 국가만 결과가 좋게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현재 경기가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아직 코로나19의 덫에 갇혀 경기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벗어나 오히려 성과를 드러내는 데 적기라고 말하는 사람 또한 있다.
둘 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어쨌든 적잖은 사람들이 ‘지난 3년보다는 지금이 외부적 제약 요건이 없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시기에는 뭘 하고 싶어도 내외부 상황이 그러하니 할 수 없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상황 탓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야말로 운칠기삼이 아니라 ‘기칠운삼’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와 일부 언론은 많은 것을 지난 정부 탓을 한다.
지난 정부에서 방만하게 재정을 늘려놓았다, 지난 정부에서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을 지나치게 억제했다,
지난 정부에서 무분별한 탈원전과 탄소중립으로 전력산업 생태계를 망가뜨렸다,
지난 정부에서 검수완박으로 치안 공백 상태를 초래했다,
지난 정부에서 국민 여론을 갈라놓으면서 정치적 극단주의가 심화됐다, 지난 정부에서….
물론 그중에는 수긍되는 지점이 있다. 필자 또한 문재인 정부 시절 ‘신동아’ 지면을 통해 숱하게 이야기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제 와 ‘지난 정부’를 주야장천 떠드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금은 주어진 권력에 무한 책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국민은 당신들이 억울함을 하소연하라고 뽑아준 것이 아니니까.
‘종북 주사파’ 운운할 시간에 민생부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4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생119 임명장 수여식 및 제1차 회의
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조수진 위원장. [뉴시스]
각종 지표를 보자. 통계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 구성 품목 458개 가운데 전년 동월 대비 가격이 오른 품목이 395개로 86.2%에 달한다. 이것을 ‘물가 폭등’이 아니면 뭐라고 표현할까.
통계를 거론할 필요조차 없이 실생활의 체감지수 자체가 그렇다.
직장인의 점심 메뉴 가운데 오르지 않은 메뉴가 없고, 채소와 각종 식재료, 과일값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고 있으며, 지난겨울에는 난방비가 폭등해 여기저기 곡소리가 들렸다.
편의점에도 상품 가격이 계속 올라 가격표를 갈아 끼우기 바쁠 정도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게 다 ‘경기 탓’ ‘문재인 정부 탓’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국민 처지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 대해 앞으로는 “국민이 어리석다”고 탓할 것인가. 국민 의식 계몽 운동을 대안으로 내세울 텐가.
물가뿐인가. 경상수지 적자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1월에는 사상 최대 적자 폭을 보였고, 2~3월에도 연속 적자다. 반도체 수출이 급감하고 대(對)중국 수출이 부진해 상품수지 적자가 5개월째 이어지고 있는가 하면,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됐다고 생각하니 해외여행에 봇물이 터져 서비스수지 적자도 껑충 뛰었다.
12월 결산 법인의 배당이 보통 4월에 이루어지니 조만간 본원소득수지마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간 금리 역전 폭이 사상 최대인 가운데 외국인 배당금 지급까지 시작되면 환율은 또 어떻게 될까. 물가가 폭등하니 실질임금이 줄어 임금인상에 대한 요구 또한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을 텐데 그건 또 어떡할 것인가. ‘첩첩산중’이란 말이 자연 떠오른다
윤석열 정부의 사람들은 “지지리도 복도 없다”고 억울하게 생각할 테지만, 국민은 이것을 모두 현 정부의 잘못으로 받아들인다.
그중에는 윤석열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 또한 분명히 있다.
국민의힘 민생119 위원으로서 이 무슨 악담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윤석열 정부가 과연 민생 살리기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대통령이 집권당 원외 당협위원장 간담회 같은 자리에 참석해 현실 정치에 특별한 의미도 없는 ‘종북 주사파’ 운운할 시간에 민생 회복을 위한 거국내각이나 민관 협의체 구성이라도 제안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필자가 이른바 종북 세력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비판해 왔다는 사실은 독자들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칼럼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 국민의힘 민생119 회의는 딱 한 번 열렸다.
회의에서 느낀 점은 이렇다.
민생 회복을 위한 여러 아이디어가 쏟아졌지만 대체로 캠페인성 ‘국민운동’ 같은 것을 제안하는 수준이다
. 조수진 위원장 스스로 “예산과 법령 개정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정치’라는 것의 본질이 예산과 법률을 다루는 일 아니던가. 그런 것 없이 변화를 모색하겠다니, 정치인 본연의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집권당의 ‘1호 특위’ 위원장으로서 대단히 유약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니 국민이 여당을 믿고 지지할 수 있겠나. 결국 조 위원장은 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는)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운동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흔히 경제의 3주체를 가계, 기업, 정부라고 한다. 민생을 살리기 위해 각자의 역할과 고통 분담이 필요할 텐데, 민생119 회의에서 느낀 점은 ‘기업’ 쪽의 분담을 고민하는 흔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보수 진영의 특성이 대체로 그렇다.
기업은 논외로 치는 분위기가 있다.
경제 분야에 있어 정치의 역할은 3주체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인데 그 역할에 무지한 것이다.
시장에 맡겨놓으면 된다는 이른바 시장만능주의적 시각으로 접근한다.
미국 국빈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영빈관 접견장에서
열린 글로벌기업 최고 경영진 접견에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와 함께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 투자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워싱턴DC ‘블레어 하우스’에서 한 외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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