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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U2 - With Or Without You

 

 

 

 

Live at Rose Bowl, 2009.

 

 

Slane Castle Live

 

 

Live, 1988

 

 

 

 

 

 

 

 

 

 

 

 

 

출처 :  http://blog.naver.com/popmuze/70093661202

 

 

 

 

 

See the stone set in your eyes
See the thorn twist in your side
I wait for you

 

당신 눈속에 박혀있는 보석이 보여요
당신 옆에 감고 있는 가시가 보여요
그리고 난 당신을 기다리죠



Sleight of hand and twist of fate
On a bed of nails she makes me wait
And I wait without you
With or without you
With or without you

능숙한 손재주와 기구한 운명을 가진 그녀는
무척 곤란한 상황에서도 날 기다리게 하죠
당신이 없다고 해도, 난 기다릴 거에요
당신과 함께 한다 해도
함께 하지 못한다 해도 난 기다려요

Through the storm
we reach the shore
You gave it all
but I want more
And I'm waiting for you
With or without you
With or without you
I can't live with or without you

 

폭풍을 지나
우리는 해변에 도착했어요
당신은 전부 다 주고 있지만
난 더 많은 것을 원해요
그리고 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과 함게 한다 해도
함께 하지 못한다 해도
난 살 수가 없어요

And you give yourself away
And you give yourself away
And you give and you give
And you give yourself away

 

그리고 당신은
모든 걸 드러내는군요
당신의 모든 걸 드러내는군요
당신은 모든 걸 드러내는군요

My hands are tied
my body bruised
She got me with nothing to win
And nothing else to lose

 

내 손은 묶여 있고
내 몸은 멍투성이에요
그녀는 더 이상 얻을 것도
그리고 더 이상 잃을 것도
남겨두지 않았어요

 And you give yourself away
And you give yourself away
And you give and you give
And you give yourself away

 

그리고 당신은
모든 걸 드러내는군요
당신의 모든 걸 드러내는군요
당신은 모든 걸 드러내는군요

With or without you
With or without you
I can't live With or without you

 

 당신과 함께 한다 해도
당신과 함께 하지 못한다 해도
난 살 수가 없어요

 

 

 

 

 

 

 

아일랜드는 참 복도 많은 나라다.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는 주변부에 속해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문화적인 면에서 아일랜드 출신의 아티스트들이

활약하는 것을 보면 중심부의 왠만한 나라는 부럽지 않을 만큼 화려하다.

 

가장 최근으로는 전세계에 인디영화 돌풍을 일으킨 <원스>가 있겠고,

나도 한때 무척이나 좋아했던 뉴에이지를 대표하는 엔야, 그외에도 코어스 패밀리도 있고

최근 주목받고 있는 팀으로는 스크립트가 있다. 그리고 U2가 있다.

 

U2를 그저 아일랜드 밴드라고만 부른다면 그건 이들에 대한 정당한 대접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밴드는 물론 비틀즈라고 생각하지만,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밴드를 들라면 그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밴드가 바로 U2가 아닐까.

현존하는 팀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팀은 물론 오아시스이지만,

독설을 입에 달고 사는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 조차도 U2의 라이브를 보면서

비틀즈를 들을때 느꼈던 경외감을 느낀다고 했다.

 

 

사실 아일랜드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복많은 나라라고 부러워 하기만 할 수는 없다.

그 유명한 '감자 대기근'의 나라로서, 이로 인해 인구의 3분의 1은 죽어 나갔고

3분의 1은 신대륙 등으로 이주를 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어딘가에서 들은 바로는 맥도날드같은 Mc-으로 시작하는 성씨들이

이 시기에 미국으로 건너간 아일랜드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아일랜드 이야기를 하면서 영국을 빼놓을 수는 없다

 

 

아시다시피 감자 대기근이라는 역사의 비극도 영국의 식민지 지배와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영국은 아일랜드를 지배하면서 자국에 소비되는 육류를 공급하기 위해

아일랜드에서 축산업을 육성시켰다.

 

사람들은 자신이 먹지도 않을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바쳐야 했다.

문제가 되는 건 뭐였냐면 이들이 재배하는 대부분의 곡물들이 가축의 사료로 쓰였다는 것이다.

 

질좋은 고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로 연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단 몇년동안의 감자 흉작이 저들 나라의 역사에 비극을 기록하게 만들었다.

 

듣자하니 이런 아일랜드에서 요즘 다시 탈출러쉬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생존 위한 ‘엑소더스’ 아일랜드의 눈물 

 

반짝하던 잠깐의 경제 호황으로 동구의 이민자들을 받아 안던 이 나라에서

다시금 눈물의 엑소더스가 펼쳐진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경기 부양이 일어날 수 있었던 데에는, EU 가입 이후 외국자본의 유입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 건설경기의 성장이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거 정말이지 남일 같지가 않다.

 

아일랜드보다 더 북극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요정들이 정말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아이슬란드에서도

 이런 식으로 금융놀이를 하다가 최근에 나라를 말아 먹었다고 한다.

 

신들의 조각품과 함께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던

심성의 국민을 가진 나라에서, 금융공학 어쩌고 하면서 글로벌라이제이션 어쩌고 했던 것이,

애초부터 불경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히스토리를 간직한 나라의 출신이다 보니,

세계적인 밴드로서 U2의 영향력은 음악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보컬인 보노는 각 나라의 정상들과도 자리를 같이 할 정도로 귀빈 취급을 받는다.

실제로 그는 제3세계의 빈곤문제 등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직접 실천을 위한 재단도 성립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U2가 내한했는데 그 자리에 한국의 대통령이 초대된다면 과연 어떤 대화가 오갈까.

설마 이러지는 않겠지. "관객 몇명이나 들었어? 밥이나 먹으러 가지."

 

이 노래의 숨은 비밀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리듬에 있는 것 같다.

꾸준한 8비트로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되는 베이스가 그 키워드이다.

 

음악에서의 리듬감을 지배하는 베이스 소리가 설레고 가슴벅찬 느낌의 주인공인 것이다. 

지극히 심플한 사운드로 시작하는 With Or Without You는베이스의 간결한 리듬이 사람들의 귀를 사로 잡는다.

 

좋은 음악이라는 것은 좋은 멜로디로 완성이 되는 것이겠지만, 어쩌면 사람들의 귀에 잘 들리는 경쾌한 리듬감이

 가장 기본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U2의 라이브를 감상하다보면, 조금은 신비스런 의문이 들곤 한다.

현란한 연주를 선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가만히 서서 자기들 연주만 묵묵히 할 뿐인데도

왜 저렇게도 멋있어 보이는 걸까.

특히 디 엣지와 아담의 묵묵한 표정은 오히려 절정의 간지를 이끌어낸다.

 

보노에게서는 락 밴드 프런트 맨으로써의 전형적인 마초스러움이 적지 않이 느껴지는 반면에,

기타와 베이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지만, 왜 이리도 번쩍번쩍 풍기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모던락과 팝의 역사 U2

1983년 봄 봇물처럼 밀려오는 현란한 팝뮤직 비디오와 범람하는

섹스와 사랑에 관한 노래의 홍수 속에서, 지나치게 소박한 기타 톤과 정치적인 색깔을 진하게 띈

 "Sunday Bloody Sunday""New Yeard’s Day"가 흘러 나왔을 때,

 

또한 Colorado의 'Red Rocks Amphitheater'에서 깃발을 흔들며 연주하던 이들에 대해,

많은 음악 관계자들은 이들이 향후미국 시장에 끼칠 영향력에 대해서

그다지 커다란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하지만 4년 후 미국의 음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The Joshua Tree"가 이들의 작품이고,

Time지의 표지에 이들의 얼굴이 실리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초기에 이들의 음악을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며, 혹평하던 비평가 들 조차

'U2'라는 이름이 주는 영향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아일랜드출신의 이들이 80년대와 90년대를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밴드로 이름을 얻게 된 

결과는, 보이진 않았지만 그 동안 꾸준하게 사람들의 귀를 자신들의 음악세계로 열도록 노력해온 

이들의 노력으로 인한 결과라는 것은 음악평론가나 대중들이 다 함께 인정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이들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음악을 만들고 취향을 맞추기 위해 노력 했던게 아니라, 

대중들로 하여금 이들의 음악을 좋아하게끔 만드는 마력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 이라는 게 증명 되었던 셈이다.

포스트 펑크와 새로운 음악 형태들의 시도와,

기존의 팝시장과 댄스뮤직이 좌우하던 시대속에서 '정치적이고 지나치게 단조로운'

밋밋한 이들의 음악은, 결국 꾸준한 노력과 끊임없는 창작을 통한 외침은

언젠가는 대중들에게 인정 받는 다는 진리를 우리들에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현재 팝뮤직 아티스트중, 가장 영향력을 가진 밴드의 하나로 평가 받고 있는 이들의 시작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무척이나 혼란기에 있었던 1976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시작된다.

당시 고등학생 이었던 Larry Mullen Jr.(드럼)가 학교의 게시판에

같이 음악을 할 사람들을 모은다고 써 붙인 자그마한 쪽지가,

11년 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될 U2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보컬의 Bono(Paul Hewson)과 기타의 the Edge(David Evans)그리고 베이스의 Adam Clayton,

키보드와 보컬을 맡은 Dick Evans 등, 당시 고등학생 이었던 이들은

당시 인기 밴드였던 롤링스톤즈와 비틀즈의 음악을 흉내내며,

'Feedback'이란 이름으로 출발하게 된다.

일년 후 다시 'Hype'(77년)란 이름으로 클럽과 파티 등을 다니며 연주하던 이들은

그 해 말, 원래 멤버인 Dick Evans 가 밴드들 떠나면서 'U2'로 이름을 바꾸고,

4인조로 활동을 하게 된다.

1978년에 처음으로 이들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던

전국 규모의 '장기자랑'(Talent Contest)에 참가할 때도 이들은 모두 고등학생 들이었다.

 

 이를 계기로 1979년 가을, 데뷰작품인 "U2:3"를 세상에 내놓게 되는데,

발매 되자마자 아일랜드의 음악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후 영국 본토로 진출한 이들은 1980년에 [Boy]란 앨범을 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당시 유명한 Talking Heads의 오프닝 밴드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되면서

1981년에는 미국 차트에 진출하게 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앨범과 1980년 가을에 발표한 [October]란 앨범에서,

각각 싱글 커트 된 "I will follow""Gloria"라는 곡은 MTV를 통해 미국에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영국출신의 포스트 펑크밴드의 하나로 인정 받게 된다.

하지만 1983년 이들의 [War]앨범이 발매되자,

이들이 단순한 포스트 펑크밴드의 하나가 아닌 색다른 락의 이상을 표현하는 선구자로서

인정 받으며 매니어들로부터 관심을 끌게된다.

 

이 앨범은 미국차트에서 12위 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두며,

팝시장에서 본격적인 선두주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1984년 [Unforgettable Fire] 역시 영국에서 1위, 미국에서 12위를 차지하게 되고

 마틴 루터킹주니어목사에게 헌정하는 "(Pride) In the Name of Love"

싱글차트에서 처음으로 Top 40에 오르는 성과를 거둔다.

 

이후 이어진 1985년의 [Live Aid]를 통해 전세계적인 밴드로 발돋움 하게 된다.

 

이들에게 가장 성공적인 앨범으로 평가 받는 [The Joshua Tree]는 미국차트에서 1위에 오르게 되고,

 영국에서는 3번째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게 되는데,

특히 영국에서는, 이 앨범이 발매된지 하룻 만에 백만장 이상이 팔리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또한 이들은 이 앨범으로 인해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이슈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성공 때문인지, 1987년에 발표된 이 앨범의 성공과

계속되어지는 공연으로 이들은 지치게 되고,

1990년 [Achutng Baby]를 발표할 때까지 긴 휴식기간을 갖게 된다.



그 동안의 숨가쁘게 달려 왔던 생활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듯

차분하고 절제된 사운드로 채워져 있는 이 앨범에서, "Mysterious Ways""One"이 Top 10에 

들게 되면서 다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1992년 Zoo TV란 타이틀로 순회공연을 나서게 되는데 이 공연을 통해

약 400만 이상의 관중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특히, 이 공연당시 걸프전으로 혼란했던 사회상을 반영하듯, 반전과 정치성 짙은 메시지를 이들의 음악을 통해

 전달했고, 공연 때 마다 직접 백악관으로 전화를 걸어, 당시에 정치적인 야망 때문에 걸프전을 일으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부시대통령(현재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해프닝을 무대에서 연출하기도 했다.

약 1년간 계속되어진 공연 틈틈이 앨범 작업을 해온 이들은 1993년 여름,

테크노적인 사운드가 가미된 [Zooropa]를 발표한다.

2백만장이 넘게 팔린 이 앨범에서는 불행하게도 히트 싱글이 나오지는 않았으나

 'Batman Forever'에 "Hold me, Thrill me, Kiss me"란 곡을 사운드 트랙으로 발표하면서

꾸준한 인기를 유지한다.

이후 팝과 댄스 성향이 강한 [Pop](1997) 등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온 이들은 2000년 가을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를 발표하면서

 20여년 넘게 미국의 음악시장을 당당한 주류로서 이끌어 가고 있다.

 

지나치게 정치성향이 강하다는 비난과 예전에 비해 대중들의 기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동시에 받고있는 이들의 음악은, 팝과 락을 구분짓지 않고,

음악 장르에 대해 무관심 하리만큼,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들만의 아성을 쌓았다고 평가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얼굴에 피가 맺힌 어린아이의 모습을 자켓에 담아 사람들에게 전쟁이 주는 폐해를 피력 하려했던

 [War]앨범에서나, 쓸쓸한 사막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Joshua Tree]

주제로 삼아,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성공적인 앨범으로 만들었던 이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음악을 원하고 추구하는 음악인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가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U2의 존재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굳이 이들의 정치성이나 음악성을 따지는 것 보다

이들이 원하는건 자신들의 음악을 통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갖길 바라는게

아마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들의 소망이 아닐까 한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과 사소한 말다툼으로 인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

상처를 주고 후회하고 있는 연인들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미안해 하는 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one을 선물하면서

화해를 청해 보는 건 어떨까.

기분전환이 필요하다면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도 괜찮을 듯 하다.

 

 

 

 

 

 

 

 

 

 

  

출처 : http://blog.naver.com/gulio01/100088108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