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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Kayak - Irene


 

 

 

 

 

 

네덜란드의 Hilversum Accademy For Music이라는 정규 음악 학교에 다니던 두 학생

 Ton Scherpenzel (키보드)와 Pim Koopman (드럼)을 주축으로 기타리스트인 Johan Slager의 트리오로

 Hide Tide Formation이라는 이름으로 출발 했다.
학교 아마규어 밴드에 지나지 않았 던 이들은 71년도에 베이스에 Gees van Leeuwen과 리드 보컬리스트인

 Max Werner를 가입시킨뒤 팀 이름을 Kayak이라고 고치고 본격적인 프로의 세계로 뛰어든다.

 

 당시 네덜란드의 음악계는 Focus를 비롯 해 Earth 7 Fire. Golden Earing등 최고의 실력을 갖춘 팀들이 활거했던

 때였다. 이러한 주변 상황은 이들 에겐 더없이 좋은 기회로 작용했다.

결국 수완좋은 스폰서를 만나게 되어 악기와 기타 장비를 구입하 게 되었고 또한 이들의 첫 데모 테입이 Bovema라는

 네덜란드의 EMI산하의 레이블로 보내져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첫 싱글인 (Lyrics)가 발표되자 각 매스컴으로부터 네덜란드의 정통 심포 닉 록 그룹이라늘 찬사를 받으며

지명도를 쌓아 나갔다. 그리고 얼마 있지않아 두번재 싱글인 (Mammoth)를 공개하였고 놀랄게도

차트 20위권에 진입하였다.

 

 (이 곡은 73년에 발매된 데뷔작 'see See The Sun'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러나 74년, 호사다 마격으로 그간

최상의 호흡 맞춰왔던 베이시스 트인 Gees Van Leeuwen이 탈퇴하고 대신 Bertveidkamp가 들어왔다.

 

 그는 곧 이들과의 완벽한 하모 니를 이뤄내 2집인 'Kayak'을 그가 들어온 해에 발표하였다. 이어 74년 8월에

발매된 싱글 (Wintertime)은 만족할만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제 Kayak의 팬들은 싱글보다는 앨범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되자 이들은 양질의 앨범 제작에 정력을 쏟았다.

 그래서 등장한 'Royal Bed Bouncer'(75 년)는 팬들의 호평을 받아냈으며, 이 작품중 싱글 커트된

(Chance For A Lifetime)은 대히트를 기록했 다.

 

파죽지세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이들에게 치명적인 일이 생기게 되었는데 다름아닌 이들의 매니저인

 kits Hirschland가 EMI-Bovema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독단적 으로 Phonogram사와 계약을 맺은 일이 발생했다.

 

 그로인해 이들의 네번째 앨범인 'The Last Encore'은 Vertigo 레이블에서 공개되었으며, 그에 반발했던

창단맴버인 Pim Koopman이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에피소드로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그룹 탈퇴후 Bovema의프로듀서로 일하게 된다)

결국 그의 자리인 새로운 멤버인 Charles Louis Shouten으 로 대치되었으며, 77년초 Jan Akkerman의 투어 공연에

 참가할겸 자신들의 앨범 프로모트를 위해 영국 으로 건너 갔지만 이들의 존재를 알아주는 이들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잡혀있던 공연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 와야만 했다.

 

그러나 78년에 발표된 통산 이들의 5집인 'Starlight Dancer'가 빌보드 차트 1OO위권에 진입하므로 이들의

국제적 명성은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입증했다. 그러는 동안에 이들은 또 한번의 멤버 교체를 하게 되는데,

 Max Wemer가 드럼을 맡게 되고, Charles 와 Bert가 탈퇴하고 새 보컬리스 트로 Theo de Jong이 가입했다.

 

 하지만 새 보컬리스트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하고 결국 Edward Reekers 로 교체되어 여섯번째 작품인

'Phantom Of The Night간 발표하였다


 

 

▣ 카약의 역사

카약의 음악은 위에서 얘기한 대로 선율이 참 좋습니다.

 보컬리스트의 음색도 서정적인 곡에 가장 잘맞는 미성입니다. '락 발라드

'(우리 나라에서만 통용되는 용어입니다.)라면 떠오르는 것이 대개 마이너 코드를 바탕으로 한 우중충한 분위기입니다만

 카약은 우리가 알고 있는 '락 발라드'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즉, 잔잔하게 시작해서 후반부에 크게 발산하는 곡이 많으면서도 마이너 코드를 그다지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곡들이 화사하면서 아름답습니다

 

카약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된 밴드이고 네덜란드에서는 아주 고참격인, 우리로 치면 "사랑과 평화"쯤 될까요,

그런 대우를 받는 밴드입니다. 카약의 역사를 간단하게 봅시다.

 

카약은 Ton Scherpenzeel이란 사람이 지켜온 밴드입니다.

이 분은 키보드와 신써싸이져를 담당한 분으로 훗날 캐멀에도 잠시 참가합니다.

캐멀과 카약이 음악적으로 유사한 색깔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혹시 [Stationary Traveller] 앨범을 좋아 하는 분은 앨범을 잘 살펴보세요.

 

이 사람의 이름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Stationary Traveller] 앨범을 들었을 때 아코디언 소리와 비슷한 톤이 들려서

 카약과 참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Ton이 연주한 것이더군요.

 

이 분은 은빛 장발을 늘어뜨린 채 철학자처럼 연주합니다.

 캐멀 라이브를 통해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멋있더군요.

 

 

 

Ton은 그룹 결성 이후 오늘날까지 장장 40여년의 세월을 지켜 온 사람입니다. 카약은 빌보드 챠트 오십몇 위까지

 올려놓은 싱글 히트 기록도 갖고 있고 네덜란드 챠트 수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상업적으로도 상당히 성공했던 밴드입니다.

 

 네덜란드의 대표적 밴드입니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얘기가 있다면 중간에 여자 백 보컬리스트가 두 명 있었습니다.

여자 보컬리스트의 아름다운 음색이 잘 드러난 곡 <Patricia Anglaia>를 들어보면, 카약이 얼마나 '우리 정서'에

잘 맞는 음악을 했는지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곡을 부른 여자 싱어가 Ton의 아내였습니다.

카약의 음반

대표적인 다음의 여섯 곡을 들어보세요.

May
Irene
Sad to say farewell
Phantom of the night
Ruthless queen
First signs of spring
Patricia Anglaia



제일 크게 히트를 한 곡은 <Ruthless queen>이란 곡입니다. 위 곡들을 들어 보면 카약이 왜 캐멀만큼 인기를

모으지 못했는지 정말 의아해집니다. <Irene>이란 곡은 아름다운 기타 연주곡입니다. <Irene>은 톤의 아내

 Irene Linders의 이름입니다.

 

 이 외에도 <Lyrics>나 <Moments of joy> 같은 곡은 카약 음악의 특성을 잘 드러내주는 곡으로 싱어의 아름다운

 음색과 (아름다운 음색을 여러 겹으로 오버더빙해서 더욱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장조의 낙관적 느낌이 좋습니다.

 

 

국내에는 [Phantom of the night]이라는 앨범과 [Starlight dancer]앨범을 합쳐서 하나의 시디로 발매 되었습니다.

그 시디를 비롯해서 카약의 최근 작 몇 장이 국내에 발매되어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두 장이 합쳐진 시디가 부담이 덜할 것 같습니다. 자세한 카약의 디스코그래피는 카약의 디스코그래피를 참고하세요.

 

대개 [Royal Bed Bouncer] 앨범과 [Merlin] 앨범을 최고로 꼽습니다. 저는 카약의 곡 중에 비트가 있는 곡들은

잘 듣지 않기 때문에 항상 듣는 곡만 듣게 되더군요. [Merlin] 앨범도 시완레코드를 통해서 국내에도 발매 되어 있습니다. 앨범 속지를 읽어보니 Ton이 이 앨범을 가장 좋아한다 합니다. 전설을 다룬 컨셉 앨범입니다.

 

 

출처 : http://kr.blog.yahoo.com/hanwooln/1468530

 

 

 

 

 

Kayak의 고향인 네덜란드의 프로그레시브 록은 70년대가 가장 화려한 최절정기였다.

Kayak을 비롯해서Earth & Fire, Focus, Golden Earing, Ekseption, Finch 등이 상업적인 성공과 함께

대중적인 인기도 누렸었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들 그룹이 사라지며 Differences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후 1986년에 Coda의 [Sounds Of Passion]을 선두로 해서 새로운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으로는 Egdon Heath. Differences. Wings Of Steel.

 Timerock 등을 꼽을 수 있 다.

에스키모들이 타던 가죽으로 만든 배에서 유래된 그룹명 카약은 다섯 번째 앨범 [Starlight Dancer]에 수록된

 'Ballad For A Lost Friend', 'Nothingness'. 여섯 번째 앨범 [Phantom Of The Night]의 'Daphne'.

'Ruthless Queen' 'Phantom of The Night'으로 국내에 먼저 알려져 있다.

피아노와 더블베이스를 배운 Ton Scherpenzeel은 68년경에 Pim Koopman과 함께 지미 핸드릭스와 크림의 곡을

연주하면서 로컬 밴드를 조직했는데, 그때 당시 Ton 은 베이스를 담당했다.

2년 후에 Ton과 Pim은 음악원에 진학하여 그곳에서 드럼을 배우고 있던 Max Werner를 만나게 되었으며 자신들의

 곡을 만들고 Max를 리드 싱어로 해서 새로운 밴드를 결성한 후 기타리스트 Johan Slager와 베이스 주자

Gees Van Leeven을 가입시켜 팀을 정비한다.

 

이것이 카약의 모체가 된 것이다.

네덜란드 Phonogram사에 데모 테잎을 보냈으나 거절당하고 EMI와 계약을 맺게 되었는데, 드럼은 Pim이 담당하고

Max가 보컬과 멜로트론, Ton은 베이스에서 키보드로 전향한다.

 

73년 [Lyrics]라는 첫 싱글을 공개하며 'See See The Sun'을 발표하였고 'Mammoth'가 싱글 컷트된 동명 타이틀의

 2집도 공개한다.

 

 그러나 이 앨범을 끝으로 'See See The Sun' 등을 쓴 베이스 주자 Cee가 탈퇴하게 되었으며, 75년 3 집인

 [Royal Bed Bouncer]를 발표한 뒤 EMI와의 계약을 끝내고 Phonogram사와 새롭게 계약을 맺게 된다.

4집인 [The Last Encore]를 발표한 직후에는 싱어 송 라이터로서 Ton과 쌍벽을 이루던 드러머 Pim이 탈퇴하여

 밴드로서는 음악적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빌보드 차트에도 오른 5집 [Starlight Dancer], 보컬리스트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Edward Reekers가 가입한

78년 작 [Phantom Of The Night], 79년 [Periscope Life] 그리고 81년에 발표한 [Merlin] 같은 해 발표한

 유일한 라이브 앨범 [Eyewitness]를 끝으로 이듬해인 82년에 해산을 하게 된다.

글/조규철(전 격월간 [Rock & Havy] 편집장)
자료제공/시완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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