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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OST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

[영화 속 클래식]

트란 안 홍 감독

그린 파파야 향기

   L‘Odeur de la Papaye verte 1994                               

트란 누 옌케(무이, 20살), 만 상 루(무이, 10살), 홍 호이 뷰옹(쿠엔)

초록의 향연이 펼쳐지는 식물성 영화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입니다. HD 화질이라 화면 아래 맨 오른쪽 풀 스크린 상자를 눌러 크게 보셔도 좋습니다. 베트남어 더빙이지만 대사가 최대한 배제되어 있는 영화라 화면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1951년 베트남의 사이공, 열 살의 어린 소녀 무이는 어느 부잣집의 종으로 들어간다. 그 집의 여주인은 비록 부잣집 마나님이지만 가슴에 깊은 슬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다. 몇 년 전에 무이와 같은 또래의 딸을 잃은데다가 남편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할 그녀의 남편은 현실에는 통 관심이 없다. 매일 풍류를 즐기며 놀다가 가끔씩 방랑벽이 도지면 집안에 있는 돈을 몽땅 가지고 나가 탕진하곤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남편을 전혀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갈 뿐이다.

비현실적인 남편을 대신해 마님은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한다. 장사를 하면서 남편의 잦은 가출로 점점 기울어져 가는 가세를 어떻게든 일으켜 세우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하는 와중에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 공허함은 어쩔 수 없는 법. 그녀는 어린 종 무이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며, 남편의 부재와 딸의 죽음에서 오는 공허감을 메꾸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세월이 흘러 어느새 무이가 스무 살이 된다. 마님은 그동안 무이로부터 마음의 위안을 얻으며 살아 왔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다. 가세가 기울어 더 이상 무이를 거둘 수 없게 된 것이다. 마님은 무이를 큰아들 트렁의 친구인 쿠엔의 집으로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 마치 딸을 시집보내듯 딸에게 주려고 했던 옷과 패물을 무이에게 챙겨준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영화

무이의 새 주인 쿠엔은 작곡가이다. 넓은 집에 혼자 살며 피아노를 치고 곡을 쓰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이 집에서 무이는 쿠엔의 충실한 몸종 역할을 한다. 사실 무이는 처음 마님 집에 들어갔을 때부터 집에 놀러 온 트렁의 친구 쿠엔을 남몰래 사모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사모하던 남자의 집에서 살게 된 것이다. 무이는 행복한 마음으로 쿠엔의 시중을 든다. 초록의 식물이 가득한 쿠엔의 집에서 말없이 그림자처럼 움직인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쿠엔의 피아노 소리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뿐. 카메라는 천천히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는 것처럼 평화로운 집안 풍경을 담는다.

어린 시절의 무이

그런데 가끔 가다 이 집의 정적을 깨뜨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쿠엔의 약혼녀이다. 그녀는 쿠엔의 집에 수시로 찾아와 연인에게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펼치곤 한다. 이런 그녀를 무이는 순진무구한 호기심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녀가 벗어 놓은 금빛 샌들을 발가락으로 살짝 건드려보기도 하고, 그녀의 립스틱을 살짝 발라보기도 한다.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지는 어느 날, 피아노를 치는 쿠엔의 머리를 만지며 약혼녀가 말한다.

“베트남 여자 중에서 약혼자의 머리를 만져본 여자가 몇 명이나 될까?”

하지만 쿠엔은 전혀 대꾸를 하지 않고 피아노만 친다. 이때 그가 치는 곡은 쇼팽의 ‘전주곡’ 23번이다. 쿠엔이 대답을 하지 않자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조금은 투정 섞인 애교로 요즘 왜 자기 집에 자주 놀러 오지 않느냐고 한다. 하지만 바로 그때 쿠엔의 피아노가 쇼팽의 ‘전주곡’ 24번으로 바뀐다. 격렬한 피아노 소리로 대답을 대신하는 쿠엔을 보고 그녀는 그의 심경에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그녀는 흐느끼면서 밖으로 뛰쳐나온다. 그리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안을 들여다본다. 쿠엔은 여전히 피아노를 치고 있고, 무이는 그 주변을 그림자처럼 돌아다니며 집안일을 하고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파파야 열매 속 씨를 쳐다보는 무이

그것을 보면서 약혼녀는 쿠엔과 무이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은 애정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적극적인 성격의 그녀가 여기서 그냥 물러날 리 만무하다. 어느 날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린다. 그렇게 무이는 남몰래 키운 사랑을 오롯이 차지하기 위해 혹독한 통과의례를 치른다. 그녀가 돌아간 다음, 예전의 평화가 찾아온다. 이제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없다. 영화에는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쿠엔은 무이에게 글을 가르친다. 쿠엔이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을 배경으로 무이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천천히 책을 읽는다.

“우리 집 정원에는 열매가 많이 달려 있는 파파야 나무가 있다.

잘 익은 파파야는 옅은 노란색이고,

또 잘 익은 파파야는 달콤한 설탕 맛이다.”

책을 읽는 무이의 배가 남산만 하게 불러 있는 것이 보인다. 이렇게 어린 시절 종으로 팔려가 주인집 도련님의 친구를 남몰래 사모하던 무이의 순진무구한 사랑은 행복한 결실을 맺는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행복한 결말이다.

무이와 쿠엔

영화의 제목이 된 그린 파파야는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키우는 식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당에 호박을 기르는 것처럼 베트남 사람들은 그린 파파야를 기른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무이가 잘 익은 그린 파파야 열매를 따서 독특한 방식으로 채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린 파파야 향기’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영화는 식물성 영화이다. 무이가 쿠엔을 위해 차리는 정갈한 초록의 밥상처럼 산뜻한 느낌을 준다. 열대성 기후를 머금고 풍성하게 잘 자란 식물들이 펼치는 초록의 향연. 이 풍성한 초록빛이 영화의 시각적 배경이라면 끊임없이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개구리 소리, 새소리는 이 영화의 청각적 배경이라 할 수 있다.

대사는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이 자연의 소리는 영화가 시작해서 끝나는 순간까지 끊이지 않고 들린다. 사람은 침묵하고, 대신 풀벌레와 개구리, 새, 세차게 떨어지는 빗줄기만 말을 하는 것이다. 양분을 충분히 빨아들여 잘 자란 초록색 잎사귀와 그것을 안식처 삼아 살아가는 작은 벌레들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무이와 쿠엔이 나누는 무언의 사랑과 묘하게 어우러지며 신비롭고 감각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밥을 먹다 개미를 발견하고 웃음짓는 무이

드뷔시의 ‘달빛’이 비춰주는 호기심과 동경의 세계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의 ‘달빛’도 감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무이가 쿠엔을 위해 정갈한 밥상을 차리는 장면과, 쿠엔의 약혼녀가 벗어 놓은 금빛 샌들을 살짝 건드려보는 장면에서 드뷔시의 ‘달빛’이 나온다. 무이가 발끝으로 살짝 건드린 금빛 샌들은, 그리고 그 순간에 흘러나오는 ‘달빛’은, 금빛 샌들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무이의 순진무구한 호기심과 동경을 보여준다. 무이가 쿠엔의 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약혼녀의 립스틱 역시 금빛 샌들과 같이 새롭고 예쁜 것에 대한 여성적인 호기심을 반영하고 있다. 이때 연주되는 드뷔시의 ‘달빛’은 무이가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우아하고 감미로운 감각의 세계, 신비의 세계로 통하는 마법의 문과도 같은 것이다.

드뷔시는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로 알려진 작곡가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지난 세기의 먹구름을 몰아내고 캔버스 위에 빛이 지배하는 화려한 색의 향연을 펼쳤던 것처럼, 상징주의 시인들이 단어의 의미는 물론 그것의 울림과 형체까지도 시의 재료로 활용해 포착할 수 없는 시적 이미지를 구현했던 것처럼, 드뷔시는 그동안 음악을 지배해 오던 모든 형식과 규율과 법칙을 벗어던지고 오로지 빛과 유연성이 전부인 세계, 그것이 주는 느낌과 분위기만이 유일한 형식이자 법칙인 세계를 창조해냈다.

나뭇잎 위에 떨어진 파파야 열매즙을 통해 향기를 표현한다.

애매모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 포착하기 힘든 세계의 신비로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미묘한 흐름, 기본적인 강세의 법칙은 무시되고, 마디의 분절점은 베일에 싸이고, 멜로디는 한 마디에서 다음 마디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덧없는 화성과 미묘한 음색, 베일에 싸인 색조의 혼합과 감지할 수 없는 어렴풋한 빛. 바로 이런 것이 드뷔시 음악의 특징이다. 드뷔시 음악의 이런 특징적인 면모는 자연을 표현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달빛’을 비롯해서 ‘물위에 비친 그림자’, ‘구름’,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 ‘금빛 고기’, ‘봄의 론도’, ‘테라스에 비치는 달빛’과 같이 드뷔시 음악 중에 자연으로부터 받은 느낌을 묘사한 것이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달빛’을 들으면 알겠지만 드뷔시는 음악을 통해서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느끼게 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달빛’은 ‘분위기의 음악’이다. 특유의 몽환적인 색채로 무이의 꿈과 동경을 깨우고, 여름밤을 신비롭게 물들인다. 어디선가 그린 파파야 향기가 나는 듯하다.

 

진회숙(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오늘의 클래식>영화 속 클래식 2014.03.10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76&contents_id=50740

 

Angela Hewitt - Debussy, 'Clair de Lune' (달빛)

Angela Hewitt, piano

Koerner Hall, Toronto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