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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Old Black Joe (올드 블랙 조) / Foster

 

http://cafe.daum.net/niegroup

 

 

Roger Wagner Chor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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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Black Joe (올드 블랙 조) / Foster

 

 

 

 

 

 

 

 

 

When my heart was young and gay.
Gone are my friends
From the cotton fields away.
Gone from this place,
To a better land I know.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I'm coming, I'm coming
For my head is bending low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Why do I weep
When my heart should feel no pain
Why do I sigh
That my friends come not again
Grieving for forms
Now departed long ago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I'm coming, I'm coming
For my head is bending low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I'm coming, I'm coming...

 

 


그리운 날 옛날은 지나가고

들에 놀던 동무 간 곳 없으니

이 세상에 낙원은 어디뇨

블랙 조 널 부르는 소리 슬퍼서

나 홀로 머리를 숙이고서 가노니

블랙 조 널 부르는 소리 그립다.

 

Foster, Stephen Collins

 

/1826.7.4~1864.1.13

 

 

 

 

 

 

 

 

 

 펜실베이니아주 로렌스빌에서 출생.

 

 소년시절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이다 14세 때 처녀작 《티오가 왈츠》를 작곡하였다.

 

 1841년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1주일 만에 중퇴하고 음악교사 H.쿠퍼의 지도 아래 베토벤음악을 연구,

 

 그때부터 가곡을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1844년 《창문을 열어다오, 사랑하는 이여 Open the Lattice, Love》를 출판하였으며, 그 무렵에는 친구들과

 

함께 합창단을 조직하여 많은 가곡을 제공하였다.

 

 1848년 《오, 수재너 Oh! Susanna》가 100달러로 팔린 것에 자신을 얻어 가곡작가의 길을 택하게 되었으며

 

 그 후 《시골 경마(競馬)》《고향 사람들 Old Folks at Home》《벤조를 뜯어라》(1851)

 

《주인은 차디찬 흙속에 Massa’s in the Cold, Cold Ground》(1852)

 

《켄터키 옛집 My old Kentucky Home》《금발의 제니》《올드 블랙 조 Old Black Joe》 등의 작품이

 

 E.P.크리스티악단 및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 등에서 불리어 유행함으로써 그의 이름은 미국 전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남북전쟁(1861∼1865)의 영향으로 그의 작품에 대한 인기가 떨어지고 가정생활의 파탄도 있어 혼자서

 

 뉴욕으로 떠나 거기서 37세라는 젊은 나이로, 빈곤과 괴로움 속에 죽었다.

 

 그의 사후 2개월 만에 유작 《꿈꾸는 가인(佳人)》이 출판되었다.

 

 출판된 그의 작품은 모두 188곡으로 이에는 풍부한 시정(詩情)과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선율 속에 깊은 애정과

 

 인간성이 표출되어 있으며, 유럽적인 감각과 함께 남부 흑인의 생활이나 민요의 영향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미국민요의 아버지로 불리며 그의 작품은 현재 전세계에서 애창되고 있다.

 

 1939년에 그의 전기적 영화 《그리운 스와니》가 제작되었다.

 

 

 

 

 

 

Old Black Joe

 

 

 

 

 

 

 

 

 

 

 

 

 

 

 

 

 

 

 

 

 

드보르작의 현악4중주 중에는 일명 ‘니그로’라고 불리우는 유명한 곡이 있다.

 

‘아메리카’라고도 불리우는 ‘니그로 현악4중주’는 ‘신세계 교향곡’과 더불어 드보르작이 미국

 뉴욕음악원 재직시절 흑인 영가의 영향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누군가가 어느곡을 제일 좋아하십니까?’하고 물어 온다면 선뜻 대답하기가 곤란하겠지만 한때

드보르작과 무소르그스키의 음악들을 무척 좋아했었다.

 

‘꿈속의 고향’이 들어있는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아련히 젖어오는 ‘첼로협주곡’, 서글픈 선률의 ‘니그로 현악4중주’ 그리고 괴이하게 들리면서도 어딘가 영혼을 쥐어짜게 만드는무소르그스키의

음악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드보르작과 무소르그스키는 지구 상에서 가장 많은 박해를 받았던

 유대인들과 아메리카 흑인들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특히 드로르작은 흑인영가의 영향이 없었다면 그저 평범한 작곡가로 남을 뻔 했을 만큼 그의

 대표작들은 모두 미국에서 작곡된 곡들이다.

 

 노예로 팔려온 흑인들 만큼 상당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종도 미국내에 또 없을 것이다.

다만 흑인으로 태어났다는 죄 때문에 노예로 팔려와서 평생 천대받으며 살아갔던 이들의 고통은

 운명의 불공평까지 느끼게 한다.

 

근저에 몇몇 흑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일련의 파괴적인 행동들이 이들 가슴 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피해의식 때문인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약간의 피해의식은 인간 누구에게 볼 수 있는 현상이겠지만 나에게도 한때 이러한 피해의식이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나를 낳자마자 곧 젖앓이를 하셨다고 한다.

그때의 고생이 얼마나 심하셨는지 지금도 종종 그때의 일을 들려주시곤 한다. 그래서인지 자라면서 가끔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는다 든지 조금 부당한 횟초리라도 맞게되면

 혹시 어머니가 그때일 때문에 나만 유난히 미워하시는 것은 아니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더욱더 서럽곤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피해의식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없어지기는 커녕 어려움을 당할 때 마다 다시금 고개를 쳐들곤 한다.

아마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을성 싶다.

 

흑인영가로 알려진 찬송가 ‘그 누가 나의 괴롬알며’는 단짝이었던 친구의 18번이었다.

 한국에서 다니던 교회의 학생회장이기도 하였던 친구는 착 가라앉은 베이스음성으로 이 찬송가를

 

구성지게 부르곤 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왜 친구가 그 곡을 그처럼 좋아하게 됐는지에 대해 한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긴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지금은 소식이 끊긴지도 오래지만-  비로서 흑인영가를 구성지게 부르던 친구의 모습과 함께 상이군인이셨던 친구의  아버지…, 

 

TV 한 대도 없는 싸늘한 방에서 김치와 밥을 먹던 친구, 4남매를 교육시키기 위해 새벽마다 장사를 나가시던 친구의 어머니 

이런 것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퍼지곤한다.

 

 

 

그누가 나의 괴롬알며,

 

또 누가 슬픔알까.

 

주밖에 나의 괴롬몰라…

 

 

 

 

포스터의 유명한 ‘올드 브랙 조’도 흑인영가 못지 않게 심금을 울리는 곡이다.

 

‘흑인영가’나 재즈등이 미국음악계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포스터가 큰 영향을 받았다.

흑인들의 애조 띤 선율을 적당히 배합하여 명작으로 승화시킨 포스터의 음악들은 간결하고

 따라부르기도 쉬워 하마모니카를 배우던 시절 처음으로 완주할 수 있었던 곡도 ‘올드 블랙 조’였다.

 

흑인들의 애환을 표현한 포스터의 곡 중에는 ‘올드 블랙 조’, ‘스와니 강’, ‘켄터키의 옛집’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올드 블랙 조’는 포스터가 자신의 하인이었던 의 죽음을 슬퍼하여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그리운 날,  옛날은 다 지나고/어제놀던 동무 간 곳 없으니 /블랙조 널부르는 소리 그립다

 

 

 

곡보다는 가사가 더 슬픈 이노래는 노예신분으로 태어나 천대받으며 살다가 병까지 얻어 죽어간

하인을 보며 포스터가 느꼈던 연민의 정이 가득 담겨져 있다.

 

“조,  이 검둥아  죽어서는 부디 백조가 되거라

 

포스터의 또하나의 대표작 ‘스와니 강(백조의 강)’은 이러한 포스터의 애수가 다시 한번 전달되어

오는 것 같다.

 

 

 

 

 

 

 

 

 

 관현악 연주곡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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