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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읽는 명상록

행복한 삶의 방식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행복한 삶의 방식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아테네를 중심에 놓고 보면 변방에 불과했던 마케도니아의 젊은 군주 알렉산드로스는 유럽, 지중해, 북아프리카 및

소아시아 지방을 정복하고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긴 정복전쟁에 심신이 지친 그는 기원전 323년 바빌론에서 급사하고, 다음 해 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도

사망하였으나, 그리스 문화는 넓은 영역에 걸쳐 확산되었다. 제국의 영화는 짧았지만 문화는 지속적이었다.

 

이때부터 기원전 146년 로마가 코린트에서 그리스를 멸망시키고 정치적으로 지배하기 까지를 우리는 ‘헬레니즘’이라고 부른다. 한 마디로 그리스 문화의 절정기에서 쇠퇴기로 이어지는 시대였다.

 

헬레니즘기의 그리스에는 여러 문화적 중심지가 생겼고, 여러 철학 유파들이 마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백가쟁명

(百家爭鳴)을 연상시키듯 등장하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계승한 학파, 쾌락으로부터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키레네학파, 죽음의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상태인 아타락시아(ataraxia/not disturbed)를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에피쿠로스 학파, 욕망의 절제를 통해 정신적 평온을 추구하는 씨닉 학파와 스토아 학파가 등장하였으며 후자는 이런 경지의 마음의 상태를 ‘아파타이아(apatheia/without passion)’라고 불렀다.

 

다른 한편 감각기관을 통해 얻어진 인상들에 대해서는 그것이 진리임을 보장 할 수 없으며, 일종의 판단 중지를 통해

 아타락시아를 획득할 수 있다는 회의주의 학파가 출현하였다.

헬레니즘의 말기에는 플로티누스에 의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의 철학을 융합하여 현상계의 근원으로서

하나의 통일체를 상정하는 신플라톤주의가 등장하였다.

 

비록 헬레니즘기의 상이한 철학의 유파들이 모두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갖고 있었지만, 이 시기에

철학함에서 특히 강조된 것은 ‘행복한 삶의 방식’의 중요성이었다. 특히 행복을 획득한 마음의 상태에 대한 기술이

 강조되었다. 이런 점에서 헬레니즘기의 대표적 학파로 스토아를 지목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스토아학파가 서구사회에서 남긴 지속적인 영향력은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이란 뜻의

‘stoical’ 혹은 이에 상응하는 유럽어의 쓰임 에서도 알 수 있다.

 

스토아학파는 기원전 300년경 씨티움(사이프러스)의 제논이 아테네 아고라 북쪽의 ‘기둥이 늘어선 회랑’에서 강의를

 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때 이 늘어선 기둥(柱廊)을 ‘Stoa’라고 불렀고 여기에서 스토아학파의 명칭이 유래하였다.

제논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안티스테네스가 제창한 씨닉학파의 윤리학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였고, 제논의 제자

크리시푸스가 스토아 철학의 주요 골간을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들이 쓴 문헌은 대부분 상실되어 후대의 철학자들의 인용으로서 남아있는 반면, 스토아

철학이 로마 시대로 넘어가면서 세네카, 에픽테투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저작이나 기록들은 온전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스스로에게 보내는 글, 생각’이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Meditations]은 서양에서 가장 많이 읽힌 고전으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제국 16대 황제(재위 161~180)로 5현제 중 마지막 황제이다.

 

 

 

 

 

 

 

 

 

행복한 삶이란 절제를 통한 명석한 판단을 통해 가능하다.

 

서기 121년에 태어나 180년에 사망한 아우렐리우스는 이른바 로마 5현제의 마지막 황제이기도 하다.

5현제가 다스리던 로마는 강성해졌지만, 아우렐리우스는 북방 민족의 정벌과 이들의 계속된 침입으로 재위기간의

 대부분을 전쟁터의 막사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의 삶은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배경이기도 하지만, 그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는 매우 다르다.

아우렐리우스는 국가의 안위와 장병의 생명이 걸려 있는 전쟁터에서 내면의 기록 [명상록] 12권을 그리스어로 썼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나는 조부 베루스로부터 온화함과 함께 분노와 열정의 절제를 배웠다.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의 명성과 당신에 대한 회상에서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과 남성적 기질을 배웠다.

어머니에게서는 경건함과 관대함 그리고 나쁜 행위뿐만 아니라 나쁜 생각도 삼가야 함을 배웠으며, 부자들에게 있기 쉬운 무절제를 멀리 떠나 소박한 음식에 만족하는 것을 배웠다.

 

앞의 인용문에는 스토아 학파가 제창한 행복한 삶의 방식의 중요 내용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우선 열정으로부터

벗어난 상태, 즉 아파타이아를 통해서 우리는 객관적으로 명석한 판단을 할 수 있고, 이것은 잘못된 행동이 야기할 수

 있는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준다.

 

여기서 우리는 스토아 학파는 회의주의와는 달리 사물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명석하게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가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명상록의 곳곳에 자주 등장하는 ‘지배기관(commanding faculty)’은 바로 이런 판단 능력을 갖추고 있는 정신을

 의미한다.

 

아우렐리우스가 어머니로부터 배웠다는 경건함은 인격신이자 유일신 숭배의 기독교와는 무관하다.

 아직 기독교는 로마의 지배적 전통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경건함이란 자연의 순리에 대한 믿음이며, 스토아의 신은 자연 자체, 혹은 자연의 순행 원리, 즉 이성(logos)과

 동격으로서 ‘자연=신=이성’이 성립한다.

 

신은 우주 밖의 창조자가 아니라 우주에 내재한 범신론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자연에 속하는 모든 것은

내재적 신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동등하며, 바로 이점은 스토아 학파의 정치 철학적 업적으로 부를 수 있는 사해

동포주의(코스모폴리타니즘)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우주는 단지 하나의 생명체이며, 단지 하나의 영혼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만물이어떻게 이 예민한 힘 속으로 사라져가는 지를, 만물이 어떻게 하나의 움직임에 따라 행동하는 지를...

 

따라서 스토아 학파가 최고의 삶의 방식으로 간주하는 ‘덕의 실현’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임을 자각하고 ‘자연의 섭리

(하나의 영혼)와 일치하는 생활’을 의미하며, 이런 생활이 바로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운행은 우연이 아니라 로고스적, 즉 신적 질서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결정된 것을 무모하게

바꾸려는 것, 그것은 고통을 가져올 뿐이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당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불만을 품고 있는가? 그렇다면 과연 세상엔 신의 섭리가 있는가, 아니면

 원자만 있어서 모든 사물이 우연히 결합되는 것인가라는 명제를 상기해 보라. 만약 현명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단지 원자들의 무질서한 결합에 불과할 뿐이다.

 

만약 현명한 신의 지배하에 이 세상이 움직인다면 불만을 품어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가 어디 있는가? 이 세계가 조화를

이룬 가운데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수많은 이론을 생각하라. 그러면 마침내 평안한 마음을 지니게

될 것이다."

 

스토아학파는 자연의 운행을 결정론적으로 해석했다. 자연의 결정론적 질서와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성찰은

인간 삶의 덧없음, 즉 명예나 부귀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에 대한 성찰과 함께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아우렐리우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불행하다’는 판단은 본질적으로 사고의 오류라고 보고 있다.

"불행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불행은 영혼의 외투 혹은 오막살이에 불과한 육체의 조절되지 않은 기질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불행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불행이 존재할 수 있다는 당신의 확신으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그러한 확신을 거부하라.

 

 그러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될 것이다.

설사 가장 가까운 이웃, 즉 보잘것없는 육체가 절단되고 불에 타고 고름이 흐르고 썩더라도 그것을 불행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이성만은 냉정해야 한다."

 

한 마디로 불행의 원인은 불행하다는 생각 그 자체일 뿐이며 불행이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논의가 되고 있는 철학의 한 주제를 만난다.

 즉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불행이란 마음먹기 나름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유의지란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자유의지의 존재를 노예 출신의 스토아학파 철학자이자 그의 스승이었던 에픽테투스의 가르침을 인용하면서 확인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자유의지를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에픽테투스 역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그가 ‘어떤 행위에’ 동의를 표할 때 필요한 기술 혹은 규칙을 발견해야 한다.

그는 주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사회에 도움이 될 때에 한하여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며, 사물의 가치를 존중해야

 하며, 감각적 욕망을 멀리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권능 안에 있지 않는 어떤 일도 회피하거나 반감을 보여서는 안 된다."

 

 

 

 

 

 

 

 

 

스토아 학파는 신적 질서에 의해 자연이 운행된다고 보았고 그것에 순응하는

삶을 이상적이라고 보았다.

 

 

 

아우렐리우스는 자유의지가 어떤 행위에 대한 동의와 반대로 드러난다고 보고 있으며, 여기에 발견되어야 할 규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자유의지의 한계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하여 자유의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동의도 반대도 무의미하다. 연구가들은 이처럼 스토아 학파가 제안하고 있는 우주적

 결정론과 자유의지간의 관계설정을 ‘인간을 통한 결정론’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권능 내에서는 자유의지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동어반복으로서 자유의지의 존재여부는 인간의 권능이

가능한지와 일치한다. 위의 아우렐리우스와 에픽테투스의 주장은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선언이지 증명은 아니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어떤 독자를 의식해서 쓰지는 않았다.

 그것은 원제목이 말하듯이 순전히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글로서 그만큼 진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스토아 학파만이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은 위에서 인용한 명상록의 앞부분에 스토아 학파의 주장이 압축되어 있지만, 아우렐리우스는 그것을 그의

 조부와 부모로부터 배웠다고 밝힌 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욕망을 절제하고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으며,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동서양과 고대, 현대를 막론하고 세계 종교와 철학자들이, 아니 일반인들 대부분이 스스로의 경험에 의해 항상 가치 있게 받아들이는 보편적 주장이다.

이런 점에서 아우렐리우스의 개인적인 의도는 전혀 아니었지만, 그의 시대에 탄압을 받았던 기독교가 스토아 학파를

자신과 융합시키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런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는 사람은 이 책의 저변에 깔린 아우렐리우스의 불안과 피로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전쟁터에서 막사에 돌아와 마음에서 자신의 휴식처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글을 쓰고 있는

 황제 철학자를 상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또 혹자는 이런 불안을 장기적 원정으로 지친 당시 로마사회의 분위기와 일치한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조금 더 근본적이라고 보인다.

열정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추구하여 얻으려는 상태가 ‘아파타이아’ 임은 앞에서 말했다.

한 마디로 정신의 자유로움을 획득 내지는 회복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자유로움이란 마음의 ‘특정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어떤 특정한 마음의 상태가 편하고 좋다면 인간은 반복적으로 그 상태를 추구할 것이고, 우리는 이런 마음의 움직임을 욕망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욕망으로부터 해방을 통해 행복에 이른다는 원래의 목적으로부터 벗어나 우리는 다시 욕망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글 홍성기 / 아주대 기초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