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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Beethoven / Symphony No.5 in C minor, Op.67 `Fate`

 

 

 

 


제 1악장: Allegro con brio C단조 2/4박자



 

 

 

 

 

 

 

 

1828년 파리 국립음대 대강당에서는 베토벤의 교향곡'이 연주되고 있었다.

많은 음대 교수들과 유명한 작곡가, 지휘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 위대한 작곡가의 걸작품들이 연주되게 된 것이다.

다음은 이 대학 교수였던 브리엔느'씨가 이 연주회에 참석하였다가 그의 자서전에 남긴 글 한 토막이다.

 

 “......나는 그날 이 유명한 음악가의 작품 연주에 초대를 받고 좌석에 앉았습니다.

드디어 장쾌한 음악의 연주가 시작되자 청중들은 숨을 죽이고 빠져들었습니다.

드디어 음악회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박수를 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박수 칠 생각을 그만 잊어버린 것입니다. 한참 후에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드디어 청중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여 나도 박수를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모자를 집어 들고 머리를 찾으니

머리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곡이 [운명]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까닭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 때문이다.

그의 제자이며 베토벤의 傳記로서 유명한 신틀러가, 하루는 이 곡의 제1악장 서두에 나오는 주제의 뜻을 물었더니

 베토벤은,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 하면서 힘찬 몸짓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 뒤에 이 교향곡은 [운명]이라

는 참으로 극적인 제목으로 불리게 되었고, 또 그것이 인기를 높이는 큰 원인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것은 베토벤의 비통한 생애와 너무나도 잘 통하는 말인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이 ‘다다다다-’ 하고

 두드리는 動機는, 베토벤이 비인의 공원을 산책하다가 들은 새소리를 소재로 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가 새삼스럽게

발명해 낸 것은 아니다.

 

하이든이나 모차르트도 이미 썼던 것이다.

게다가 이 4개 음부의 움직임이라는 것이 실은 아무 변화도 가락도 없는,

말하자면 아무 데나 뒹굴고 있는 돌무더기같은 것이어서 그것만으로는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훌륭한 계산에 의해 전곡을 통하여 완벽한 구성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극적인 장대한 음의

확산이 되어서 만인을 한결같이 감격케 한다.

 

정히 경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음악학자 리틀러는 이렇게 말했다. “이 교향곡은 끝악장을 목표로 진행되며, 전체가

그렇게 계획된 것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분석은 옳다.

왜냐하면, 제 1악장 서두의 ‘다다다다-’라는 모티프가 이 악장만으로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제 3악장에서도,

 제 4악장의 재현부 직전에서도 변형되어 나타나서 전 악장을 튼튼히 결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1882년 파리에서 이 곡이 연주되었을 때, 한 노병은(老兵)은, [이것은 황제(皇帝)다.]하고 외쳤다고 한다.

그런 뒤에 한때는[황제교향곡]으로 불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베토벤이 이 곡을 작곡한 것은 1808 년(38세)이다.

작곡에 착수한 시기는 분명치 않지만, 대개[제 3번-영웅]을 완성한 직후인 1804 년 무렵부터 손을 댄 것 같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1795 년(25 세) 무렵의 노트에 이 곡의 선율이라고 생각되는 대목의 스케치가 있다고

 하니, 통산하면 약 12년이나 걸린 셈이 된다.

이런 점을 보면 베토벤은 정말로 신중파(愼重派)다.

 

[암흑에서 광명으로!]---이것은 평생을 통한 베토벤의 신조였는데, 그것이 작품성에서 보다 힘차고 감동적으로

 표현된 것이 이 [제 5 번]이다.

베토벤의 교향곡으로서 보다 장대(壯大)하고, 보다 울림이 좋고, 보다 정돈된 곡은 이 곡 말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의 의지의 응결(凝結)이라는 면으로 볼 때는 이 [제5번]이 단연 대표적이다.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는 베토벤=[운명], [운명]=베토벤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데 요즘 외국에서는 [운명]이라는 별칭을 쓰지 않고 그냥 [제5번]만으로 표시한다. 레코드를 보아도 역시

그렇다.

[제3번] [제6번] 등은 뚜렷이 [Eroica], [Pastoral] 등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유독 [제5번]의 레코드 자켓에는

 아무 표지가 없다.

 

 그 이유는 [영웅]이나 [전원]은 베토벤 자신이 붙인 명칭인데 반해서, 이 [제5번]에 대해서는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고 말했다는 데서 후세에 [운명]이라는 별칭이 생겼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별칭이 너무나도 사랑을 받고 있어서, [운명]이라 해야 곧 알지, [제5번]이라면 빨리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되어 있다. 언젠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줄 안다.

 

굳이[운명] [운명]하고 강조하지 않더라도 마음을 가라 앉혀서 조용히 듣고 있노라면, 높고 두꺼운 운명의 벽을

하나하나 넘어서 가시밭길을 돌진하는 베토벤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제 1악장: Allegro con brio C단조 2/4박자

 

소나타 형식으로 서두는 '이처럼 운명이 문들 두드린다'라고 베토벤이 말했다고 후에 베토벤의 제자가 전하는

유명한 '따따따 딴' 4개의 음으로 시작된다.

 

그 단순한 주제가 어떻게 변화하여 갖가지 형태로 변화하는 가를 들어보시라.

흔히들 베토벤 교향곡 5번은 1악장만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오해를 초심자들은 가지고 있다.

 2악장부터 4악장까지 1악장에서 보여준 그 운명과도 같은 고뇌가 어떻게 승리와 환희로 이어지는지가 실은 이 곡의

 핵심이다.

 

 

제 2악장: Andante con moto 3/4박자  

 

두개의 주제를 가진 자유롭고 아름다운 변주곡이다.

 

 

제 3악장: Allegro C단조 3/4박자 

 

스케르쪼 악장으로 1악장의 주제가 다시 나타나 구조의 견고함과 통일감을 준다. 3악장은 끊이지 않고 바로

 4악장으로 이어지면서 곡의 큰 클라이막스를 만든다.

 

 

제 4악장: Allegro C장조 4/4박자

 

소나타형식으로 전악장들의 주제를 여기에 한번 더 회상시키면서 곡 전체를 유기적으로 확고히 연결시킨다.

프레스토로 끝나는 마지막 코다까지 운명을 이겨낸 환희를 표현함에 부족함이 없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은 그가 남긴 9개의 교향곡은 물론이고 현재까지 존재했던 모든 교향곡 중에서 최고의

사랑을 받는 걸작이라고 평가 받는다. 이 곡의 제1악장을 쓰게 된 동기가 "운명이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 라고

 베토벤 자신이 행동으로 직접 설명했다고 전해진 이래로 이 곡의 이름이 ‘운명’으로 정해졌다 한다.

 

 '운명'이란 이름이 정해진 그 이후에 이 이름은 이 곡이 인간의 개인적인 또는 보편적인 운명을 묘사한 것으로

알려지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베토벤=[운명], [운명]=베토벤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그 인기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운명' 교향곡은 너무나 유명하고 또한 너무나 많이 알려진 곡이어서 음악을 좀 들었다하는 사람들은 애써 이 곡에

관하여 언급하기를 피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이제 이 '운명 교향곡'은 그만큼 몰라서도 안될 만큼 필수적인 곡이 되었다.

이 '운명' 교향곡은 베토벤이 처음 집필을 시작하여 완성할 때까지 약 6여년 동안에 그의 모든 힘을 기울여 그 자신의 인생관을 투영한 걸작중의 걸작이라 한다.

 

이 '운명' 교향곡은 그가 38세 되던 1808년에 완성되었는데 이 곡 속에는 젊은 베토벤의 도전, 거센 숨결, 갈등, 슬픔, 좌절, 그리고 그 좌절을 딛고 성숙된 자아로 발전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강하게 엮여져 있다고 한다.

이 ‘운명’ 교향곡은 베토벤의 고뇌를 통한 자아확립의 의지와 마침내 그것을 성취한 기쁨을 그대로 음악으로 나타낸

 것이라 한다.

 

 

 

 


The Vienna Symphony Orchestra

 

 

 

 

교향곡 ‘운명’은 곧잘 영웅주의, 투쟁, 승리와 같은 용어들로 설명되곤 한다. 그러나 베토벤이 이 '운명'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투쟁은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즉 이 '운명'은 악화되어가는 귓병과 증대되는 좌절감 같은 물리적이고 외면적인 현실세계와 그가 지닌 하느님에 대한 관념과 결부되어 생겨난 내면적인 음향세계 사이에서 자신이 겪어야 했던 투쟁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암흑에서 광명으로!” 이것은 베토벤이 평생동안 지닌 신조였는데, 이것을 작품성이란 측면에서 볼 때 가장 힘차고

 감동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이 ‘운명’이라 한다.

베토벤의 교향곡 중에는 보다 장대(壯大)하고, 보다 울림이 좋고, 보다 정돈된 다른 곡들도 많이 있지만, 그의 의지가

강하게 응결(凝結)되어 있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운명’이 단연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운명’ 교향곡은 다른 교향곡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 곡의 경우에 악장들 사이의 형식미와 균형미 그리고 4개 악장 전체에 걸쳐 구축된 단단한 건축성은 거의

 완벽 그 자체라고 평가된다.

 

 제1악장은 이 ‘운명’의 동기인 그 유명한 “다다다다~~!!” 의 4개의 음으로 시작된다.

 “다다다다~~!!” 이 단순한 4개의 음! 그전에 그 어느 누구도 교향곡 제1악장의 첫머리에 이처럼 실험적이고

독창적이며 독보적인 전개를 펼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이 '운명'에서 이 단순한 4개 음의 주제가 어떻게 갖가지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가를 들어보라.

그리고 이 곡에서 이 전대미문의 단순한 한 소절에 의하여 그 이후부터 끝없은 변주의 변주가 연속적으로 이어지지만, 전혀 지루하거나 음악적인 긴장감을 잃지 않게 하는 대파노라마를 유의하여 살펴 보라.

 

흔히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제1악장만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것은 오해이다.

 사실은 2악장부터 4악장까지 내내 이 1악장에서 보여준 “다다다다~~!!” 란 소절 속에 내포된 그 운명과도 같은

 고뇌가 마침내 어떻게 승리와 환희로 이어지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이 곡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2악장에서는 관악과 현악이 서로 대화하듯 주제를 주고받지만 비장미가 넘쳐 흐른다.

음악가 로망롤랭은 이 2악장에서 베토벤이 운명과 엎치락 뒤치락 투쟁하는 장면을 심층적으로 그린 것 같다고

 표현하였다.

 

 3악장에서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신음하듯 주제를 서로 번갈아 가며 연주하다가 마침내 엄숙한 고요와 침묵속으로 서서히 빠져 든다고 한다.

4악장에서는 마침내 흐릿한 운무를 걷어내고 섬광과도 같은 번뜩임으로 ‘운명의 문’이란 웅대한 제 1주제를 다시

울려 퍼지게 한다.

 

지난날을 회상하듯이 전악장의 주제들을 꼼꼼히 재현하다가 마침내 프레스토의 용광로 속에서 환희와 승리의 힘찬

 코다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고 한다.

음악가 로망롤랭은 이 4악장에서 베토벤이 드디어 운명과의 처절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환희의 함성을 내어 지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악장을 ‘승리의 악장’이라고도 부른다. 사실 1, 2, 3 악장은 이 4악장을 향하여 힘을 축적시켜 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구성된 ‘운명’ 교향곡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음도 허실이 없는  정밀한 구성을 갖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음악학자 리틀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운명’ 교향곡은 끝악장을 목표로 진행되며, 전체가 그렇게 계획된 것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고.

이 설명은 옳은 것 같다. 왜냐하면 제 1악장의 시작인 “다다다다~~!!”라는 동기가 이 1악장을 끝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제 3악장과 제 4악장에서도 변형되어 나타나 전 악장을 튼튼히 결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1882년 파리에서 이 곡이 연주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이것은 황제(皇帝)다’ 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런 뒤에 한때는 이 곡이 ‘황제교향곡’으로 불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음악가 슈만은 이 '운명'교향곡에 대하여 “아무리 들어도 마치 자연 현상처럼 외경(畏敬)과 경탄이 새로워진다.

이 교향곡은 음악의 세계가 지속되는 한 몇 세기(世紀)고 간에 남아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한다.

 

 그리고 작곡가 베를리오즈는 이 ‘운명’ 교향곡에 대해 “베토벤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내적인 사상이며, 그의

남모를 고뇌이기도 하고, 억압된 분노이자 실의속의 몽상과 환영이며 그의 환희이기도 하다” 라고 말했다 한다.

 한편 제 1악장의 시작인 “다다다다~~!!”라는 동기는 “삐삐삐삐~~” 하는 새소리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일화도 있다.

 

그래서 후세의 음악가 중의 한사람은 이를 두고 "나폴레옹은 대포소리로 세상을 놀라게 했고, 베토벤은 새소리로

인류를 놀라게 했다!" 라고 말했다 한다.

 

흔히 '운명(Fate)'이라는 이름은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들, 예를 들어 3번 '영웅(Eroica)', 6번 '전원(Pastoral)',

 9번 '합창(Choral)'과 같이 정식으로 작곡가 자신이 붙인 이름은 아니다.

 

그래서 이 '운명'교향곡은 C단조로 쓰여 졌기 때문에 서양에선 주로 '베토벤의 제5번 C단조 교향곡'으로 불리어

지며 '운명(Fate)' 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드물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이 ‘운명’이란 이름이 너무나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한다.

 

이 ‘운명’교향곡에 대한 유명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함으로써 이 곡이 당시 음악계에 던진 충격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작곡가 베를리오즈의 '회상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다.

베를리오즈의 스승이면서 프랑스의 저명한 음악교수인 르쥐외르(Lesueur)는 당시에 학생들 사이에서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던 베토벤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그가 베를리오즈의 성화에 못이겨 ‘운명’ 교향곡이 연주되는 음악회에 가게 되었는데, 연주가 끝난 뒤

 베를리오즈는 그의 의견을 듣고 싶어 그에게 달려갔다.

 

"어땠습니까, 선생님?"

"우선 바람을 좀 쏘여야겠어, 굉장하군. 모자를 쓰려고 했을 때 내 머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어. 지금은 아무 말도 할 게 없네. 다음에 얘기하세."

 

다음 날 베를리오즈가 그를 방문했을 때, 그는 그 때의 감동을 얘기하면서도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고 한다.

"그런 음악은 더 이상 작곡되어서는 안될꺼야."

베를리오즈가 대답하기를,

"물론입니다, 선생님. 다른 사람이 그런 음악을 작곡할 염려는 조금도 없습니다."

 

이 일화에 나오는 것처럼 역사적으로 베토벤이 이 ‘운명’ 교향곡을 남기고 죽고 나서 많은 작곡가들이 한동안 가곡과

독주곡을 주로 작곡했으며, 한참 지난 후 브라암스에 와서 다시 오케스트라가 많이 작곡 되었다 한다.

 

마지막으로 이 '운명 교향곡'에 대한 감상문 하나를 소개하기로 한다.

'운명' 교향곡은 꽤나 유명한 곡이기 때문인지, 음악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시피 한 나조차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곡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굳이 CD를 사서 듣는 것처럼 일부러 들으려 하지 않아도 길거리에서, 휴대폰 벨소리에서,

 

특히 전반부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갈등이 발생하게 되는, 다시 말해 긴장을 하게 되는 부분이나 충격을 받는 부분에서 <엘리제를 위하여>와 함께 쌍벽을 이루며 자주 삽입되는 곡이기 때문이다. 그 덕인지 운명 교향곡은 큰 거부감 없이

호감을 가질 수 있었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기상(氣像) 중에서도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풍우와, 작은 빗방울이 여행을 하면서 바다에 이르고,

 그 바다에서 연어들의 산란장면을 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듯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귀에 익은 첫 부분은 천둥번개가 번쩍하고 강하게 내리치는 것을 연상시킨다.

특히 비가 내리는 날의 폭풍우를, 그 한가운데서 번쩍이면서 새카만 먹구름을 가르고 내리치는 천둥 번개를 말이다.

요란하게,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몰아닥치는 천둥번개에 놀란 토끼, 사슴부터 시작해서 인간까지 온갖 생명체들은

불안한 마음을 부여잡고 자신들에게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장소, 다시 말해 보금자리로 작은 발자국을 남기며

혼신의 힘을 다해 허겁지겁 뛰어간다.

 

그들이 보금자리에 안전하게 숨고 난 이후에도 한동안 비바람은 계속해서 몰아닥친다. 그들이 불안한 눈길로 밖을

주시하는 가운데, 매섭기만 하던 바람은 점차 힘을 잃더니만 마침내 그치고 만다.

차디찬 비가 아직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가운데, 먹구름에서 떨어진 작은 물방울은 여행을 하고자 했는지 용기를

내어 먹구름에서 뛰어내린다. 물방울은 떨어지자마자 작은 웅덩이가 된다. 그것은 작은 웅덩이에 얌전히 고여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자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근처에 있던 친구들과 작당을 하고는 작은 물줄기가 되어 대지를 박차고 달려 나간다.

 

물방울은 작은 물줄기에서 도랑이, 도랑은 졸졸 흐르는 소리를 내는 냇가가, 냇가는 조금 더 깊게 그리고 조용히 흐르는 강이 되기도 하고 폭포가 되어 뛰어내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물방울은 그곳에서 멈추고자 하지 않았고 그저 계속해서 달려 나가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물방울은

넓디넓은 바다에 이른다.

 

바다에서는 온갖 물고기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연어는 알을 낳기 위해서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고자 했다.

단지 알을 낳기 위해서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을 곰들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잡아먹고자 한다.

제법 큰 덩치를 지니고 있는 곰에게 겁이 날 법 한데도 연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은 연어들은 각자의 탄생지로 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들은 알을 낳는다.

 

그제야 한숨 돌린 그들에게 잠시나마 짧은 평화가 찾아온다. 알에서 깨어난 연어들은 다시 바다로 되돌아간다.

 성장을 하고 나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부모가 했던 것과 똑같이 알을 낳기 위해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물방울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며 살며시 속삭인다. 수고했노라고.

 

 [감상문 출처] 네이버 [지식 Q& A]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