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LASSIC

Tchaikovsky-Piano Concerto No.1 in Bb minor, Op.23

 

 

 

 

 

 

 


Tchaikovsky - Concerto for Piano and Orchestra
No. 1 in B flat minor, Op. 23 ; I~III

차이콥스키는 일생동안 3곡의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했다.
1875년에 op23의 1번,1880년에 op44의 2번(G장조), 그리고 op75의E플랫장조의 세 번째 피아노협주곡은

1893년에 작곡되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이라고 하면가장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1번이며 다른

두 곡의 협주곡은 녹음이나 연주되는 경우가 무척 드물다.

 

슈만이나 쇼팽, 브람스의 협주곡들은 비록 그 수는 적지만 그 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서 연주되는 기회도 매우

많지만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은 대중적인 인지도에 있어서앞의 협주곡들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4대의 호른으로 시작하는 포르티시모의 충격적인 느낌,그리고 러시아의 토속적인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서주 주제의친근함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 사실 이 서주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매우 개성적이고

완성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것도 사실이다.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도입부가 충격적인 것이 많은데- 리스트, 슈만, 차이콥스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생각해 보라 – 그 중에서도 가장 대규모적이고 화려한 시작을 보이는 것이바로 차이콥스키의 협주곡이다. 아마 이전에 베토벤의 5번 협주곡이 화려한 피아노의 카덴짜로 시작된 것 만큼이나 충격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I-1. 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 - Allegro con spirito(08:40)

 

 

I-2. 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 - Allegro con spirito(10:06) II. Andantino semplice-Prestissimo-Tempo I(07:01) III. Allegro con fuoco(06:25) Boris Berezovsky piano Dmitry Liss cond Yekaterinburg Ural Philharmonic Orchestra

 

 

 

 

악장 구성
 
I. 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3/4박자, B플랫 단조 →
D플랫 장조) - Allegro con spirito(4/4박자, B플랫 단조). 자유로운 소나타형식

II. Andantino semplice. 6/8박자, D플랫 장조. 세도막형식 
III. Allegro con fuoco. 3/4박자, B플랫 단조. 론도형식 

 
 
해설 

1악장 - 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 
(너무 빠르지 않게 그리고 매우 웅장하게)
3/4박자, 서주를 가지는 자유로운 소나타형식 
A. 도입부 4대의 호른에 의해 제시되는 첫 하행의 세 음은 여린내기이다.
 
 
처음의 제시부 6마디는 b플랫단조이며 피아노는 서주의 제시가 끝나는 6째 마디에서부터 등장한다.
여기서부터는 D플랫장조로 전환하여 아름답고 서정적인 서주 주제가 바이얼린과 첼로에 의해 나타난다.
피아노독주는 두텁게 겹친 화음을 계속해서 옥타브로 연주하는데,세개씩 연주되는 8분음표의 마지막
 하나는 두 옥타브를 점프하게 되어 있어연주하는데에 있어 상당히 곤란한 점으로 작용한다.
 
26번째마디부터는 현악기군의 피치카토 위에 피아노 독주가 제 1주제를 부점으표로 변주하여 나타나고
 36마디부터는 독주 카덴짜로 변화하여몇 가지 화려한 피규레이션을 연주하고 현악기의 피치카토가
 도입부의테마를 흘리다가 다시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의 튜티로서주의 테마를 연주한 후 조용히 끝마친다.
이 서주의 주제는 곡 전체를 통해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B. 주부 - Allegro con spirito, 4/4박자 110마디부터는 b플랫단조로 전개되며,피아노가 쓸쓸한
 느낌의 주제를 튕기듯이 연주한다.
 
이 주제는 차이콥스키가 카멘카에 갔을 때 거리의 눈먼 거지들이 부르던 노래를스케치 해 둔 것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 테마는 피아노와 플루트, 클라리넷을 중심으로 한목관악기군에 의해 전개되고 피아노의 화려한 기교가 등장한다.
제 2주제는 193마디에서부터 클라리넷과 바순에 의해 poco meno mosso로 나타난다.
 
조성은 A플랫장조., 196마디째부터는 현약기가 약음기를 붙이고 주 선율을 연주한다.
피아노는 2주제를 하강음형으로 변주하여 복잡하게 발전해 나가고,237번째마디에서부터 곡상은 크게 
크레센도되면서 기교적이고 극적인 토카타풍의경과부를 통해 새로운 악상으로 돌입하게 된다.
1악장의 의례적인 카덴짜는 540마디에서 시작된다. 
 
상당히 규모가 큰 것이기는 하지만악장 전체에서 요구되는 기교와 피아니스틱한 효과가 매우 큰 탓인지
인상적인 카덴짜라고는 할 수 없다.

카덴짜 이후의 종결부에 이르러서는 제 1주제와 제 2 주제가 혼합되어 계속 발전하게 되고
660마디째 부터 피아노의 웅장한 옥타브와 합께 힘차게 1악장을 마치게 된다. 
소나타형식의 전개가 결코 허술한 것은 아니지만 악장의 규모가 워낙에 크고 서주의 강렬한 주제가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는 까닭에전체적으로 약간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기 쉬운데,
연주자가 악장 중간 중간에 놓여있는 유기적인 연결 고리를 잘 찾아서균형잡힌 느낌을 잘 표현해야만
지루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악장이기도 하다. 

2악장 - Andate semplice 

(느리고 간결하게), 6/8박자, 세도막형식 처음에는 1악장의 긴박감과 열기를 식히듯이, 현악기군이
 조심스럽게 D플랫장조의 피치카토를 연주한다.
뒤이어 플루트의 독주로 매우 소박하고 아름다운 2악장의 주제가 등장하며역시 차갑고 단순한 선율로서 
화려하고 장대한 1악장과 대조를 이룬다.
 
피아노는 13번째마디에서 풀루트의 악상을 이어받으면서 시작된다. 
독주부의 화음은 종종 한 옥타브 하고도 두 음 반 이상까지 벌어지므로
듣기만큼 연주하기는 편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변주된 주제는 4도의 스타카토로 계속되다가 첼로에 의해 주제가 다시 연주된다.
이 부분의 피아노기교는 쇼팽의 op10-7번 연습곡을 쏙 빼닮았다.
주제의 연주는 다시 오보에가 떠맡게 되고 종지형과는 거리가 먼 화음에서 갑자기Prestissimo의 
중간부로 돌입한다. 
 
피아노는 장식음을 동반한 짤막한 터치로연신 익살스럽고 경쾌하게 연주되고 프랑스 민요인 "즐겁게 춤추고 웃어라"를
모티브로 한 소박한 노래가 비올라와 첼로에 의해서 연주된다. 
사실 이 부분은 곡 해설을 읽으면서 프랑스민요라는 것을 알았지만그 전에는 계속 러시아 민요를 이용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2악장은 듣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즐거운 악장이기는 하지만 연주에 사용되는 기교는 참신하고 고도의
 것으로서 악장의 분위기에어울리도록 연주하는 것은 매우 힘든일이라고 한다.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는 악상은 136마디째에서 양손이 교차하는 
카덴짜로 돌입하고 pesante, Risoluto molto로서 다시 느린 주제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피아노가 트릴을 동반하여주제를 연주하고 바이얼린과 비올라가 뒤를 받친다. 
마무리는 처음에 등장했던 플루트가 맡는다. 
3악장 -Allegro con fuoco 

(빠르고 격렬하게), 3/4박자 론도형식 
작곡자 자신의 바이얼린협주곡과 마찬가지로 종악장은 러시아 농민의춤곡을 소재로 한 거칠고 흥겨운 곡이다.
주제는 피아노에 의해 b플랫단조로 제시되며 유쾌하고 리드미컬한 러시아의 향토성이 아주 짙게 드러나 있다. 
오케스트라의 튜티는 여기에 대응되는 주제를 포르티시모, G장조로
아주 '신나게'연주한다(33마디부터). 3악장의 생명은 바로 이 부주제를 얼마나 
거칠고 생기있게 표현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후 피아노는 마치 러시아의 들을 휩쓰는 겨울바람을 묘사하는 듯 양손의 교차에 의한 스케일을 연주하고 곧바로 D플랫장조의
제 2주제가 바이얼린과 피아노에 의해 등장한다
 
(57마디, 61마디째부터). 이 악장은 론도형식이지만 하나의 주제만이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개의 
주제가 계속해서 반복되고그 사이사이에 짤막한 경과부를 가지는 것으로서약간 변칙적인 론도형식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피아노는 한 옥타브간격을 두고 빠른 경과부를 연주하며갑자기 1주제를 플루트가 트란퀼로로 연주하며 
점차 긴장을 고조시키다가 현이 급격히 크레센도되면서 트레몰로를 연주하던 팀파니가 꽝! 하고 
두들기면서,poco piu mosso, fff의 코다로 돌입한다.
 
 
피아노는 양손의 강렬하고 빠른 옥타브로 경과부 악상을 쳐올리며,제 2주제를 오케스트라의 튜티와 피아노의 독주로 
매우 웅장하게 연주하며 이 악장의 클라이막스를 형성한다.종결부는 제 1주제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토카타풍의 화려한 독주기교를 과시하며 곡의 마무리로 치닫는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1 Op.23

 

 

차이코프스키는 피아노 협주곡을 3곡 썼는데, 제1번이 가장 유명하고 나머지는 거의 잊혀져 있는 상태이다.
이 작품을 그는 35세때인 1874년 말에 완성했다.
모스크바 음악원 작곡과 교수가 된 지 9년째 되던 해였다.


음악원의 원장은 니콜라이 루빈슈타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원장이며 피아노의 대가인 안톤 루빈슈타인의 동생이었다.

유태계 러시아 인이었던 그들은, 유명한 러시아 5인조로부터는서구식 음악가들이라고 따돌림받았지만, 역으로 형제들은 5인조를

형편 없는 촌뜨기 정도로 우습게 보았다.

 

차이코프스키 역시 외가에 프랑스인의 피가 섞여서인지는 몰라도 꽤 서쪽으로 기울어진 작곡가라는 평판도 있거니와, 자기를 음악원의 교수로 알선해 준 선배이기도 한 니콜라이에게는 항상 경의를 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피아노 협주곡의 첫 야심작인 제1번을 니콜라이에게 헌정하면서, 역시 피아노의 명수인

그가 초연의 피아노를 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1874년 12월 24일 차이코프스키는 완성된 스코어를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에게

보였다.

그러나 반응은 전연 뜻밖이었다.

 

악보를 상세히 검토하고 난 루빈슈타인은"이건 피아노 협주곡의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 야하고 독창성도 없는, 말하자면 졸작에 속하는 곡이다"라고 혹평했다.

너무나도 상심하고 격분한 차이코프스키가 얼른 옆방으로 가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뒤쫓아 온 루빈슈타인은 상당한 부분을 개작한다면 초연을 맡아주마고 위로했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곡에 자신을 갖고 있었던 그는 니콜라이의 제의를 거절하고, 벌써부터 자기 작품에 호의를 포시해 왔던 독일의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인 한스 폰 뷜로(바그너에게 마누라를 빼앗긴 사람)에게 스코어를 우송하고 초연을 담당해
주도록 부탁했다.

 

 

뷜로한테 곧 답신이 왔는데 아주 독창적이고 경탄할 만한 명곡이라는, 니콜라이와는 정반대의 평이었다.
그 때 마침 미국 보스턴으로부터 초청을 받고 있던 뷜로는, 그 악보를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가 자기가 피아노를 담당하고

보스턴의 교향악단과 협연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당시까지 러시아 안에서 작곡된 모든 작품들은 국내에서 초연되던 관례를 깨뜨린 최초의 케이스가 되기도 했다. 헌정하는 상대가 한스 폰 뷜로로 바뀐 것은 물론이었다.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은 그 곡의 초연이 있은 지 3년 후 차이코프스키에게 사죄하고,
그 후로는 자기의 레퍼토리에도 자주 넣었기에 두사람의 우정은 회복되었다.

 

루빈슈타인이 처음에 차이코프스키를 매도한 것은 그와 같은 피아노 대곡을 작곡하면서 선배이자 피아노

대가인 자기에게 한마디의 가르침도 요청 안한 것이 쾌씸했기 때문이며, 후에 그 곡이 워낙 유명해지고 다투어 각국에서 연주되자 하는 수 없이 백기를 들었으리라는 후문이었다 

 

 

차이코프스키도 성깔은 어지간히 있어서 처음에 루빈슈타인이 더러 수정을 요구했을 때는
완고하게 한군데도 손을 안 댔다가, 니콜라이가 죽은 지 8년 후가 되어서야 아무한테도 신경 쓰는 일 없이
스스로도 미진하다고 여겨 왔던 부분을 수정해 현행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이 처음에 면박을 받은 건 그 곡만이 아니었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바이올린 협주곡 역시 초고를 당시 러시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페테르부르크

음악원 교수였던 레오폴드 아우어에게 보이고 초연을 부탁한즉,

'연주 불가능!', 한마디로 퇴짜를 맞았다.

 

하는 수없이 당시 라이프치히 음악학교 교수였던 러시아인 바이올리니스트 아돌프 브로드스키가 바이올린 독주,
그리고 협연은 빈 필이 맡아 빈에서 초연했는데 지휘자 리히터나 청중이나 비평가나 다 외면했다.

 

 

 특히나 당시 평론계를 주름잡던 대평론가한스리크는 거의 치명적인 혹평을 내렸다. 그래도 브로드스키는 굴치 않고 연주 여행을 갈 때마다 각처에서 그 곡을 연주해 겨우 인정받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베토벤, 쇼팽, 그리이그스의 것들과 더불어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하나가 되었다.

 

 

이야기는 다시 피아노 협주곡으로 돌아가 제1번 뒤에 작곡된 제2번, 제3번은 처음부터 니콜라이 루빈슈타인 등이 달라붙어 기꺼이 초연을 맡아 주었다.
그때 작곡가 차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곡들은 아무래도 별로일 거야. 내 협주곡은 퇴짜를 맞아야 명곡이 되는데---"
과연 그의 예측대로 현재 그 두 곡은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는 작품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