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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Beethoven Symphony No. 3 Eroica OP.55

 

 

 

 

 

1. Allegro con brio

 

 

 



 

 

베토벤 / 교향곡 제3번 마장조 영웅

Ludwig van Beethoven (1770 - 1827)

 

교향곡의 새 기원을 이룩한 베토벤 교향곡 3번 에로이카

 

베토벤이 고향을 떠나 빈의 음악계에서 어느 정도 확고하게 기반을 닦은 시기가 26세 때였다.

이 무렵 그 보다 불과 한 살 위인 코르시카의 영웅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미 군 사령관으로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불란서 대혁명 이후 홀연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나폴레옹의 과감한 행동을 베토벤은 놀라움과 존경의 눈으로

지켜 보았다.

그는 나폴레옹이 인류에게 자유와 평화를 가져다 줄 인물이라고 믿었다.

당시 빈에 주재하고 있던 불란서 대사 베르나도트 장군에게서 나폴레옹의 사람됨과 용기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

는 더욱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1803년 여름에 베토벤은 5년 전부터 준비해 온 교향곡을 코르시카의 영웅에게 바치려고 본격적으로 작곡하기

시작하여 이듬해 봄에 완성했다.

그의 나이 34세 때이다.

그는 완성된 악보 표지에 "보나파르트 교향곡"이라고 써 넣고 헌정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5월 18일,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했다는 소식을 들은 베토벤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당장 헌사를

쓴 표지를 찢어 버리며 "그 역시 속인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 폭군이 되려는가!"하고 외쳤다.

그 후 그는 이 곡에 "신포니아 에로이카-한 위대한 인물을 추념하기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고쳐 출판했다.

 

17년 뒤에 나폴레옹이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었을 때 "나는 17년 전부터 오늘을 예상해 왔다."고 하며 제2악장

"장송 행진곡(Marcia Funebre)"을 가리켰다고 한다.

어쨌든 당시 청중은 괴물 같은 교향곡과 마주쳤다. "이전에 작곡된 어떤 교향곡보다도 길고 작법이 복잡했다.

 

 미묘하게 얽힌 화성, 거인 같은 힘, 흉포한 불협화음, 사람의 마음을 마비시키는 듯한 긴장감 넘치는 장송 행진곡을

지닌 교향곡"이었기 때문이다.

교향곡 제1번과 제2번에는 아직 선배 작곡가 하이든과 모짜르트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으나 제3번부터는 놀라운

큰 비약을 이루고 있다.

 

 규모가 엄청나게 커지고 도처에 독창적인 수법이 번뜩이면서 베토벤의 개성이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다.

가령 제1악장의 크기는 18세기 중기의 고전 교향곡 한 곡 전부가 그대로 쏙 들어가 버릴 정도의 규모이며 또

제2악장에는 전혀 상식 밖의 장송 행진곡을 담았는가 하면 마지막 악장은 크고 웅장한 변주곡으로 채운 점 등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또 전체의 구성도 강철처럼 단단하고 악기 편성 역시 확대되었다. 호른을 세개나 쓰고 있는 점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여러가지 면에서 이 교향곡은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이 곡은 1804년 봄에 완성 되었다. 신들러의 「베토벤 전」에 의하면 베토벤은 프랑스 초대 집정관이었던 나폴레옹

에게 바치는 이 곡의 부본을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파리로 보내려고 하던 차에 나폴레옹이 5월 18일 황제에

즉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분개해서 그 악보의 표지를 찢어버린 후 악보를 마루바닥에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그 표지에는,

 

Bonaparte Ludwing van Beethoven


이라는 글이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1789년에 일어났다.

코르시카 섬 태생의 일개 포병 사관이었던 나폴레옹은 1795년 10월에 의회군을 지휘, 이 대혁명에 참가하여

반란군을 평정함으로써 일약 최고사령관 자리에 오르고, 마침내는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이 되어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신출귀몰의 위력을 떨친 나폴레옹이야말로 베토벤의 눈에는 자유정신과 인간 해방의 기수로서 새 시대를 고하는

세기적 영웅으로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1798년 2월부터 4월까지 빈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베르나도트 장군이 베토벤과 개인적 친분을 가지게

 되면서 그는 베토벤의 예술을 높이 평가하게 되고, 베토벤은 그를 통해 영웅 나폴레옹에 대해 더욱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혁명의 풍운아, 영웅에게 바치는 교향곡이 탄생된 것이다.


 

베토벤의 제자였던 리스(Ferdinand Ries,1784-1838)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즉위했다는

 말을 듣고, 『그 녀석도 결국 속물이었군. 그 녀석도 역시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의 권리를 짓밟고 그

 누구보다도 더 지독한 폭군이 되겠지!』하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2년이 지나서 출판된 파트 악보에는 「신포니아 에로이카」라고 이탈리아어로 쓰여져 있었으며 역시

이탈리아어로 된, 「한 사람의 영웅에 대한 추억을 기리기 위해서」란 부제가 붙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이 곡을 나폴레옹 일대기의 표제악으로 생각하고 들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교향곡 「제2번」까지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던 소위 희유성은 이 「제3번」에서는 그 자취를 감추고,

한층 더 진실한 도덕성이나 윤리성 같은 그 어떤 상한 힘을 이 「제3번」은 지니고 있다. 베토벤 자신도 「제9번」

이 완성되기까지는 이 곡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제3번」은 확실히 장대한 곡이다. 시간적으로도 종래의 상식을 벗어나 50분이나 소요되는 긴 곡이다.

그러나 이점에 대해서는 작곡자 자신도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으며 1806년에 출판된 악보 중의 제 1 바이올린 파트에

는, 『이 교향곡은 일반 다른 곡들보다 길므로 연주회에서 후반부 보다는 가능한 전반부에서 연주하는 것이 좋겠다.

즉 서곡 1곡에다 아리아 1곡, 또는 협주곡 1곡 다음에 연주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청중들은 앞 부분에서 이미 지쳐버리게 되므로 이 곡의 효과는 그만큼 상실하게 된다』라고 기술했을

정도다.

심지어 전술한 클레멘트 주최의 초연에서는 제2부의 첫 곡목으로 되어 있었다.

작곡 : 1803~4년
초연 : 비공개 초연은 1804년 12월 로프코비츠 후작의 사택에서,

공개 초연은 1805년 4월 7일 비엔나의 안 데어 빈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짐.

 

 

 

 

 

인간의 해방을 부르짖던 베토벤의 일면을 찾아볼 수 있는 곡이다.

1789년 일어난 프랑스의 혁명에서는 코르시카 섬 출신의 일개 포병 사관이었던 나폴레옹이 반란을 평정하고

국내 최고 사령관 이 되었다. 민중의 권리를 옹호하고 자유의 정신에 불타 있던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을 흥미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당시 빈에 주재하고 있던 프랑스 대사와 대사관의 비서이자 바이 올리니스트였던 루돌프

 크로이쩌로부터 프랑스에 자유와 질서를 가져온 나폴레옹의 업적에 대해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다.

플라톤의 '공화국'을 숙독한 바 있었던 베토벤은 이 시대의 영웅의 자태를 보여준 나폴레옹을 자신의 작품으로

찬미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33세 때인 1803년 여름 이 교향곡의 작곡에 착수하여 1804년 봄에 완성시켰다. 스코어의 표지에는

 '보나파르트'라고 썼으며 밑에 자신의 이름 '루비트비히 반 베토벤'이라 적어 이를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파리로

보 내려고 할 무렵,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이 빈에 퍼졌다.

이 소식에 분개한 베토벤은 그 사본의 표지를 찢어 버렸다고 한다.

 

"저 사나이도 역시 속된 사람이었어. 그 역시 자기의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민중의 권리를 짓 밟고 누구보다도

심한 폭군이 될 것이야."

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이후 다시는 나폴레옹에 대해 언급도 안 했다는 그는 2년 뒤 이 곡을 출 판하면서 '한 사람의 영웅을 회상하기 위해

작곡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17년 후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었다는 보도를 듣고 비로소 '나는 그의 결말에 어울리는 적절한 곡을

써 두었다' 라고 했다는 베토벤. 이는 이 작품의 제2악장에 있는 '장송 행진곡'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작품해설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의 영향이 엿보이는 「제1번」이나「제2번」과는 달리 이 「제3번」부터는 음악적으로 일대

비약을 보여준다.

즉 규모가 엄청나게 방대해졌고 독창적인 수법이 대담하게 구사되어 베토벤의 개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1악장의 길이만 하더라도 종전 교향곡의 전곡과 거의 맞먹는다.

또 제2악장에 장송행진곡을 사용했다던가 종악장에 장대하고도 호화장려한 변주곡을 넣은 것 따위는 당시로서는

커다란 모험이었다

 

 

 

1악장 - Allegro con brio

 

 

 

 

소나타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두 개의 주제에 의해 풍부한 악상을 지닌다.

1주제는 저음역의 현악기에 의해, 2주제는 온화한 클라리넷 선율로 시작되어 바이올린으로 이어진다.

마르크스 같은 음악학자는 1주제의 선율을 ‘영웅 주제’로 명명했으며 음악학자 쾨르너는 이 ‘영웅 주제’를 군대적

심상을 지닌 동기로 간주하였다.

또한 1악장에서는 반음계적인 기법이 자주 사용되는데 이것이 전쟁의 긴장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2악장 - Adagio assai

 

 

 

 

유명한 ‘장송 행진곡’ 악장이다.

현악기에 의한 주제는 영웅의 장중한 걸음걸이를 나타내는것 처럼 느껴진다.

 

중간부에서 나타나는 C장조의 밝은 분위기는 생전의 영웅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나 다시 어두운 분위기의

 ‘장송 행진곡’으로 마무리 된다.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용된 쉼표는 절뚝거리는 영웅의 걸음걸이를 그려내고 있다.

 

 

 

3악장 - Allegro Vivace  4악장 - Allegro  Molto

 

 

 

 

3악장

 

3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빠른 스티카토의 움직임을 보인다.

가벼운 악상은 점차적으로 힘을 키워가며 무거운 움직임을 보인다

트리오에서 사용되는 코랄풍의 호른 선율은 위풍당당하며 마치 일사불란한 군대의 행진을 보는것 처럼 느껴진다

 

 

4악장

 

이 악장의 주된 주제는 베토벤의 작품 영국풍 시골 무곡 선율이다.

1주제인 피치카토 주제에 이어 등장하는 2주제는 평온하고 정적인 느낌을 주며 이푸 대위법적 기교들이 얽히면서

장대한 정점,  압도적인 스케일을 향해 치닫게 된다.

마지막에는 거대한 코다가 등장하며 작품을 힘차게 마무리 한다,

 

 

 

<전 악 장>

 

 

 

 

 

 


Beethoven's Sonata for Cello and Piano No.4 In C major op.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