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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Mendelssohn: Piano Trio 1 (d), op. 49 (Evgeny Kissin, Joshua Bell, Misha Maisky; 30.07.2009)


 

 

 

 

 

 

 

 

 

 

 

 

 

 

 




Felix Mendelssohn: Trio No. 1 in d minor Op. 49 /

 David Oistrakh Trio ( complete )

David Oistrakh, Violin
Sviatoslav Knushevitsky, Cello
Lev Oborin, Piano
Moscow, 1948


F. Mendelssohn-Bartholdy Piano Trio No.1 Op.49 in D minor,

Mutter, Previn, Harrell



Heifetz with Rubistein in piano and Piatigorsky in cello play

Mendelssohm


Mendelssohn Trio in D minor, second movement
Heifetz, Rubinstein, Piatigorsky


Heifetz-Rubinstein-Piatigorsky Mendelssohn Trio No. 1- 3rd mvt.


Cortot, Casals, Thibaud Trio - Mendelssohn: Piano Trio in d mvt 1


Cortot, Casals, Thibaud Trio - Mendelssohn: Piano Trio in d mvt 2


Cortot, Casals, Thibaud Trio - Mendelssohn: Piano Trio in d mvt 3

 

 

 


 

 

 

 

 

 

비록 멘델스존의 천재성은 그가 16살의 나이로 실내악곡인 현악3중주곡을 작곡하는 것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실내악은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멘델스존에게 있어서 그의 20대는 대부분 관현악곡과

성악곡을 작곡하는데 쏠려있었다.

 

멘델스존의 실내악에 대한 관심은 1837년에서  38년에 작품번호 44의 현악4중주곡을 작곡하면서야 비로소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 특히 이러한 현악4중주곡들은 베토벤을 염두에 두고 작곡된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피아노 3중주곡 역시도 그의 선배 작곡가들과의 밀접한 연관속에서 쓰여진 실내악들이었다.

멘델스존이 작곡한 피아노 3중주곡은 모두 두곡이다.

제1번 d 단조와 제2번 c단조가 그들인데 이중 1번이 더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제 1번은 1839년 1월에서 9월까지 라이프치히에서 작곡되어 다음해 초 멘델스존의 피아노와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다비트가 바이올린파트를 맡아 초연되었다. 슈만은 이 곡에 대해 ''베토벤이래 가장 뛰어난 피아노 3중주곡''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베토벤의 ''대공'',

''유령''트리오, 슈베르트의 트리오 Eb장조에 버금가는 작품이라고 칭송햇다.

또한 슈만은 이 곡의 우수성을 들어 멘델스존을 19세기의 모짜르트라고까지 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 다른

작곡가들에게 작곡의 테크닉을 깨우쳐 주었다고 주장했었다.

 

 

 

슈만의 이같은 찬사가 아니더라도 이 곡은 고금의 피아노 3중주곡 가운데서 아주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곡인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점은 이 곡이 지닌 넘치는 생기와 유려함 때문일 것이다.

친근감있는 선율도 인상적이고 곡상의 흐름이 유쾌하다. 뿐만 아니라 3대의 악기간에 균형도 잘 잡혀있고 멘델스존다운

재치가 넘친다.

 

5년 전 멘델스존은 4만 5천 명이 모여 사는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카펠마이스터(Kapellmeister, 지휘자)

자리를 맡았다.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그는 시민들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으며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일종의 도시의 상징으로서 깊은 존경을 받았다. 아우구스트 포흐렌츠(August Pohlenz, 1835-1843)의 뒤를 이어

활동한 멘델스존은 리하르트 바그너로부터 “풍윤하고 모자람이 없는 음악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음악적인

탁월함뿐만 아니라 고매하고 에너지 넘치는 인격체로 인정받았다.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첫 데뷔 연주회를 가졌을 때 악보를 놓고 지휘대에 서서 지휘봉을 들고 지휘를 했는데,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콘서트마스터가 바이올린 악장 자리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만큼

그의 지휘 스타일은 대단히 혁신적이었다.

 

심지어 슈만조차 “오케스트라는 공화국처럼 평등하게 존재해야 한다”며 이러한 새로운 시도에 반대했을 정도였지만,

일반적인 여론은 급속도로 호의적으로 바뀌어 나아갔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에 당대 작곡가들의 최신 음악을 소개하는 한편 바흐의 음악을

재발견하는 작업을 지속해 나아갔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연주회 역사는 그로 인해 찬란한 빛을 발하는 새로운 장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카펠마이스터는 작곡가로서도 자신의 입지를 굳건하게 다져나갔다.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서곡]과 [루이 블라스 서곡]을 비롯하여 [피아노 협주곡 G단조]와 [D단조],

[현악 4중주 D장조] Op.44, 오라토리오 [사도 바울] 등등이 그의 ‘찬양의 노래’ 이전에 라이프치히 청중들에게 선을

보였다.

 

그의 [교향곡 2번] ‘찬양의 노래’는 교향곡에 합창을 사용한 선구자인 베토벤의 [교향곡 9번]에 비견할 만한데,

베토벤은 교향곡의 틀 안에 쉴러의 가사를 노래하는 합창을 끌어들였다면 멘델스존은 성경 텍스트를 노래하는

칸타타의 형식 안에 교향곡을 접목했다는 점에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찬양의 노래’는 세 개의 순수 기악 파트인신포니아 1부와 여러 개의 부분으로 구성된 종교 칸타타 2부로 구성되어 다.

이 점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순수 기악 악장 3개와 합창이 가세한 마지막 악장으로 구성된 것과 닮아 보이지만 이 또한

전적으로 다르다.

 

오히려 뒤의 성악 파트가 사실상 앞선 순수 기악 악장들을 생성해내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서, 이는 기악

악장들을 가능한 한작품 전체로 통합하기 위해 성악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많은 부분들을 연관성 있게 엮어내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 결과 작품의 짧은 시작부(Maestoso con moto)에서 트롬본이 제시하는 주제는 합창 파트 첫 부분에 등장하는

구절인 “Alles, was Odem hat, lobe den Herrn”(숨을 쉬는 만물은 주를 찬양하라)에서 기인한 것으로서 일종의

라이트모티브 역할을 한다

 

 

 

구텐베르그. 1398년 <출처: Wikiedia>

나는 모든 예술을 이해하기를 열망하며, 특히 예술을 창조하고 생명을 부여한 음악에 헌신하고자 한다”라는

마르틴 루터의 말을 작품에 직접 써넣으며 런던에 살고 있던 친구인 칼 클링거만의 제안을 받아들여 ‘교향적 칸타타

’(Symphony-Cantata)라는 명칭을 선택했다.

 

또한 그는 텍스트를 전적으로 성경의 시편에 등장하는 구절을 선택하여 요하네스 겐스플라이쉬(본명, 구텐베르크는

통칭)가 어둠과 유혹으로부터 광명의 승리를 이끌어낸 역사적인 업적을 암시적으로 칭송하고자 했다.

 

라이프치히의 구텐베르크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한 멘델스존의 두 개의 작품은 모든 면을 종합해서

바라보았을 때 단순히 어렴풋한 신앙심 혹은 과시하기 위한 공명심에 의거하여 작곡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1836년에 베터가 쓴 “인쇄 기술 발명의 비평적 역사”를 읽은 뒤에 “찬양의 노래”를 작곡해야 하겠다는 내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만큼, 멘델스존은 구텐베르크의 역사적인 의미와 인쇄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 등장하는 짧은 도입부에서 트럼본에 의해 성악 파트의 주제가 등장한 뒤 세 개의 순수 기악 악장들이 이어지고,

주제는 마지막 Adagio religioso에서 반주부로 다시 등장한 뒤 인상적인 크레센도를 거쳐 합창이 처음 등장하는

Alles, was Odem hat, lobe den Herrn”로 이어진다.

 

신을 찬양하는 합창 뒤에 솔로 소프라노가 등장하고, 테너 레치타티보 “Saget es”(외쳐라)와 아리아

Er zählet unsre Tränen in der Zeit der Not”(주는 필요로 할때 우리의 슬픔을 헤아리신다)가 차례로 이어진다.

 

그리고 현악의 교묘한 울림과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는 합창 Saget es, die ihr erlöst seid”(외쳐라, 속죄되었음을)

가 다시 한 번 등장하고 소프라노 듀엣과 합창이 등장하는 아름답기 그지 없는 “Ich harrete des Herrn

”(나는 주를 기다렸다)이 연주된다. 로베르트 슈만은 이 작품의 초연을 듣고 난 뒤 이 여성 듀엣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 날 교회에서 오롯이 떠오른 속삭임으로서, 콘서트 홀에서의 큰 박수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라파엘로의 마돈나에 견줄 만한 신성한 섬광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