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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Bach-Sonata for Flute and Continuo in e minor BWV-1034


 

 

 




Bach's Flute Sonatas and Viola da gamba Sonatas


 

 

 


제1악장 Adagio ma non tanto



제2악장 Allegro



제3악장 Andante

 

제4악장 Allegro

 

 

 

 

 

 


 

Sonata for Flute and Continuo in e minor BWV-1034
Bach, Johann Sebastian (1685-1750 G.)
Maxence Larrieu (1935- F.) : Flute
Kuijken, Wieland (1938-Belgium):Viola da gamba

 

 

Bach, Johann Sebastian (1685-1750 G.)
의 플루트와 통주저음을 위한 소나타 e 단조 작품 1034
Sonata for Flute and Continuo in e minor BWV-1034


 

 

서양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바하의 가문에서는 약 200년 동안에 걸쳐 저명한 음악가가 많이 나왔습니다.
아이제나하 태생인 바하는 지금까지 그의 가문의 풍습에 따라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0세에 부모를 잃은 그는 오르가니스트인 그의 형의 집에서 지냈는데, 그곳에서 피아노의 전신인 클라비어라는 악기를 배웠습니다.


그는 마침내 명 오르가니스트가 되었으며 18세기까지의 음악의 모든 경향을 한데 모아 비약적인 성과를 올렸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베토벤.바그너 등에게 독일 음악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고 하겠습니다.
그가 활약한 시기는 바이마르 궁정의 약 10년 간이며 쾨텐 궁정 악장으로서 실내악과 오케스트라곡,독주곡 등을 많이

 썼습니다.

다음은 1729년부터 27년간의 라이프치히 시대입니다.
창작에 있어서 활발한 시대였습니다.
칸타다, 오라토리오, 파시온 등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그는 프로테스탄트의 독실한 신자였는데, 음악으로서 신에게 봉사하는 데에 그 생애를 바쳤습니다.
그의 대위법의 작법에 기반을 두면서도 여기에 화성적인 수법을 가미시켰습니다.

말하자면 화성적인 복음악(福音樂)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토벤은 그를 가르켜 화성의 아버지라고 까지 말한 바 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서는 대 미사곡, 마태 수난곡, 토카타 d단조 오르간곡, 기악 독죽곡, 중주곡, 합주곡 등 여러 방면에 많은 작품을 작곡 하였습니다.

 

 

 

 

 

 

바로크 음악과 바흐

 

바로크 음악에 있어서 바흐는 대위법 기술의 정수(精粹)를 다한 사람이나, 그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당시에 이미

궁정문화에 침투했던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양식을 스스로 받아들여 칸타타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도 했다.

 

 거기에는 그가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배운 여러 나라의 온갖 요소가 모두 투입되어 그만이 지닐 수 있는 최고로

천재적인 용광로 속에서 융화되어 일치미를 이루고 있다.

 

콘티누오(통주저음)만으로 반주되거나 또는 여러 개의 악기로 반주되는 독창이나 중창에 의한 이탈리아식 다 카포

아리아, 오페라적인 아리오소와 레치타티보, 가장 초기의 가브리엘 형태에서 바흐 시대의 프랑스식 서곡에 이르기까지의 관현악 신포니아, 협주곡, 트럼펫의 팡파르, 풍요한 장식성을 지니고 성악성부에 얽혀드는 기악의 오블리가토 성부, 복합창형식, 때로는 성악에까지 적용되는 프랑스의 리드미컬한 춤곡, 이러한 것이 독일의 오랜 전통인 코랄과 결부되고 있다.

 

대체로 바흐만큼 코랄을 훌륭하게 활용하고 또 코랄을 창작의 중심으로 삼기에 정당함을 느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 나라 양식의 혼합은 기악 분야에서도 볼 수 있다.

 

프로베르거의 전통, 쿠프랭의 프랑스 모음곡형식, 쿠나우에 의하여 전해진 이탈리아의 소나타 다 카메라양식,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건반 텍스처(鍵盤書法), 푸가에 있어서도 클라비어 푸가는 이탈리아 협주양식의 영향을

 나타내나 오르간 푸가는 북독일 오르간 악파의 전통을 따르고있다.

 

 협주곡 분야에서는 끊임없이 비발디가 모범으로 숭앙되며, 가장 이탈리아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바흐의 작품은 매우 많은 여러 가지 양식을 포함하고, 또한 작곡한 분야도 넓으며 바흐 개인으로서도 시대에 따라 기술적, 내용적으로

 현저하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개인양식을 간단히 종합하기란 곤란하다고 하겠다.

 

 

 

 

바흐의 유산

 

바흐는 생전에도 동시대의 음악가였던 비발디나 텔레만과 같이 국제적 지명도를 가진 음악가는 아니었다.

사후에는 당시 음악가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작곡가로서는 완전히 잊혀진다.

바흐 생애 후반부에 이미 고전파 음악의 전조가 시작되었고 바흐 음악은 낡은 것으로 취급되었다.

 

바흐는 비발디나 헨델과 같이 음악가의 프리랜서화를 선도하는 인물도 아니었고 끝까지 교회 음악가로 남았다.

고전파 시대에 바흐는 고전파의 문을 연 아들들의 아버지로서 오히려 유명하였다.

 유명인 중에는 모차르트가 바흐의 악보를 찾아서 탐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모차르트 음악에 가끔 훌륭한 푸가가 보이는 것이 바흐의 영향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베토벤 또한 바흐를 연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영향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바흐를 극찬하는 말을 남겼다고하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아닌 아들 바흐에 대한

찬사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독일의 음악사학자 요한 포르켈의 저서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Über Johann Sebastian Bachs Leben,

 Kunst und Kunstwerke"(1802). 이 작품은 사후 완전히 잊혔던 바흐를 최초로 발굴한 연구서로 바흐 사후 재평가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1802년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이 사후 완전히 잊혔던 바흐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Über Johann Sebastian Bachs Leben, Kunst und Kunstwerke"(1802)를 발표함으로써 바흐에 대한 인식의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근대 인문학으로서의 음악사학의 발전은 낭만주의 시대에 이전 시대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이들의 작품을

 출판,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바흐는 그 핵심 레파토리로 떠오른다.

바흐 생존 시기나 고전파 시대의 지명도와는 달리낭만주의 시대에 바흐는 이전 시기 어떠한 음악가보다 높이 평가되기

시작하여 멘델스존 이후 음악가들 중 바흐를연구하지 않은 작곡가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바흐에 대한 관심은 바흐가 많이 참고하고 편곡을 했던 다른 음악가들, 특히 비발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켜서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바로크 음악의 부활을 이끌기도 하였다.

오늘 날에도 바흐는-그의 음악이 바로크 음악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바로크 시대 가장 유명한 음악가도

 아니었지만-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다.

 

 

 

 

Maxence Larrieu (1935- F.) : Flute



1934이 년 10 월 27 일 프랑스 마르세 이유에서 태어난 막상스 라뤼는 마르세 이유 음악 원에서 죠셉 랑팔을 사사했다. 16 마르세 이유 국립 음악 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파리 국립 음악 원에 입학, 장 피에르 랑팔을 사사하고 18 세 때인

 1953 년에는 입학 2 년 만에 파리 국립 음악 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세에. 같은 해에 뮌헨 국제 콩쿨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54 년 제네바 국제 콩쿨에서 2 위에 입상하면서 국제 무대에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액상 프로방스, 몬트리올, 오사카 국제 음악 페스티벌 등 세계 유명 음악제에 솔리 스트로

초청 받아 참가한 바 있으며 사를르 크로스 아카데미에서 13 번째 대상을 수상했다.

 

막상스 라뤼는 프랑스 국립 방송 관현악단과 파리 오페라 코이크 오케스트라의 수석 플루트 주자로 활동하면서는,

장 - 피에르 랑팔에 이어 일급 악단인 '을 바로크 드 파리'(앙상블 바로크 드 파리) 단원으로도 활동했다를 앙상블.

62 년에는 사중주 단을 결성하는 등 실내악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했다.

 

페터 루카스 그라프, 오레 니콜레, 볼프강 슐츠, 등과 함께 현존하는 플루트의 대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막상스 라뤼는 이들 가운데 가장 맑고 부드러운 소리를내는 것으로 평가 받고있다.

 

 아르투르 그뤼미오,이 무지치, 장 피에르 랑팔 등이 라뤼와 함께 음반 녹음을했으며, 뮌헨, 콜로뉴, 콘테 카를로,

프라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음반을 녹음 발매했다. 뿐만 아니라 에라토, 필립스, 데카, EMI를, 데논, 카시

오페 등 다양한 레이블에서 녹음한 음반의 종류 만도 70 여장에 이른다.

 

그 덕택에 프랑스는 수많은 거장들을 배출해 낼 수 있었으며 또 그들 중 대다수는 대내외적으로 활동을하고있다.

 그래서 프랑스는 훌륭한 예술가들을 배출해낸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이러한 그의 명성은 아트 & Letteres와

아울러 국가 공로 훈장의 수훈자라는 칭호와 함께 더욱 빛을 발하게된다.

 

흠잡을 데없이 완벽한 테크닉, 상상력으로 가득 찬 작품 해석 스타일로 특징 지워지는 라뤼의 연주는 나긋나긋하게

울려 퍼지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플루트 소리에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부드러운 음색을 지닌 목가 풍의 연주로 독일 및 프랑스 계통 레퍼토리에 모두 능통하다.

 

독주자로서의 그의 활동은 매우 괄목 할만큼 성장하였으며 제네바, 로마, 파리, 고베 및 쾰른 국제 콩쿨의 심사 위원을

역임했고, 그는 교수직을위해 오케스트라를 떠나 라, 스트라 스 부르그, 제네바에서 지금까지 학생들을 가르쳐 왔고

 리옹 에서도 제자들을배출해 냈으며 현재는 제네바 음악원 명예 교 수다. * (플루티스트 배재 영은 연세대 재학 중

스위스 제네바 국립음악 원으로 유학하여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플루티스트 막상스 라뤼의 제자가되었던 대표적인

국내 플루티스트이다.)

 

70 세가 넘는 고령에도 연간 10 회가 넘는 독주회와 협연, 마스터 클래스를 갖고 있으며 코라 코우 국제 콩쿠르와

닐슨 국제 콩쿠르,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 쿨라우 국제 콩쿠르 등 수많은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 위원 및 심사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연주회로 지금까지의 막상스 라뤼만의 음악 세계와 바른 지도자로서의 음악 인생의 길을 걸어온 그의 삶을, 음악회에서

만날 수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였다.

 

그의 연주회에서는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한국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하고있는 배재영, 송영지, 장재혁, 최은정,

강민 수와 피아노의 문정 재가 함께 F. 도플러의 C는 Debussy, 더블유 모짜르트 , 지에서 F는 헨델의 등을 연주를

했다

 

 

Kuijken, Wieland (1938-Belgium):Viola da gamba

고악계의 수재 쿠이켄 3형제의 맏형입니다.
음악대학에서는 첼로와 피아노를 재웠으나 고악에 관심을 갖고 비올라 다 감바를 독학했고, 그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주자로 널리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동생들과 마찬가지로 전위음악 그룹인 '뮤직 누벨'및 고악 앙상블인 '아라리우스 Ens'을 거쳐 1972년부터는 3형제 외에 챔발리스트 코낸을 가입시킨 '쿠이켄 고악 그룹'에서 연주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의 고악 페스티벌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독주자로서는 감바의 최초기의 독주곡에서 최성기의 프랑스 음악까지를 깊은 악보읽기에 바탕을 둔 감동적인 연주로

 들려주어, 통주저음 주자로서도 제1급의 음악성을 발휘합니다.
헤이그 왕립 음악원 등에서 지휘도 맡고 있으며, 감바와 고악실내악의 쌍방에 동양의 무하생도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