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화승은 지난달 31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법원은 화승의 채권추심과 자산 처분을 막는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사진=연합뉴스) ![]() |
1986년 발표된 르까프. /사진=화승 |
'르까프' 화승 법정관리 신청..토종 패션 브랜드 몰락 이유는
토종 스포츠패션 업체 화승은 지난달 31일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원이 회생절차를 거부하면
화승은 파산 절차를 밟게 된다.
화승이 운영하는 신발·스포츠 브랜드 ‘르까프’도 시장에서 사라진다.
◇ 화승, 기업회생절차 신청…‘르까프’ 사라질 위기
르까프는 한 때 ‘국민 운동화’라고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현재는 50대 아저씨, 아줌마조차 사지 않는 브랜드로 전락했다.
전문가들은 화승이 시대 변화에 안일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고 분석한다.
우선 르까프가 가진 ‘오래된 국내 브랜드’ 이미지를 떨쳐 내지 못했다.
신발·스포츠 브랜드로서 주 고객인 10~30대 젊은 고객을 사로잡지 못했다.
이는 최근 복고를 주제로 브랜드를 리뉴얼 해 젊은층을 고객으로 끌어들인 휠라와 비교된다.
판매 채널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으로 전환하지 못한 것도 화승 몰락 이유로 꼽힌다.
이유리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나이키·아디다스 등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와 경쟁해 이길 수 있는 토종 브랜드는
별로 없다"며 "브랜드 대(對) 브랜드로 싸우기 보다는 온라인 등을 적극 활용해 소비자 접점을 늘려야 했다"고 말했다.
토종 브랜드의 몰락 이유는 지난 2010년 부도 처리 된 ‘쌈지’ 사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쌈지는 1990년대 중후반 핸드백 시장에 아이디어 번뜩이는 캐주얼풍의 백을 선보이며 국내 대표 잡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테마파크·영화 등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며 결국 파산했다.
패션업계에는 ‘패션 산업의 핵심은 옷을 만드는 게 아니라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쌈지의 사업 확장은 방향성에선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본업이 아닌 다른 분야에 에너지를 너무 쏟았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2000년 들어 매출 1000억원을 찍은 중소·중견기업 쌈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사업 확장이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쌈지의 브랜드 가치와 경쟁력은 점점 떨어졌다.
현재 벨트·지갑 등 쌈지 잡화 브랜드는 2010년 쌈지 부도 전 제품을 납품했던 국내
업체가 생산, 판매하고 있다.
현재 벨트·지갑 등 쌈지 잡화 브랜드는 과거 쌈지에 제품을 납품했던 국내 업체가 제조, 판매하고 있다.
◇ 패션기업 경영인, 브랜드 가치 바라볼 수 있어야
경영인의 가치관도 중요하다.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려 회사의 지속성장을 이끌려는 게 아니라 눈앞의 이익만을 바라본다면 그 회사는 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태는 보통 회사를 매각한 후 경영인(오너)이 바뀌었을 때 일어난다.
2010년 부도를 맞았던 ‘톰보이’가 그랬다. 톰보이는 1970년대 중후반 국내 패션 브랜드 최초로 여성용 청바지와 티셔츠를 선보이며 자유로운 영 캐주얼 브랜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2006년 창업주 최형로 회장이 타계했고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이후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브랜드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박정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한양대 럭셔리연구소장)는 "브랜드는 패션 기업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며
"경영인이 브랜드에 이해 없이 단기 이익 등 재무적인 측면만을 바라본다면 절대 회사가 성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톰보이는 2011년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인수했다. 이후 사명을 신세계톰보이로 바꿨고 현재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
© 뉴스1
매니저들 “월급으로 받은 어음, 빚더미 됐다” 분통
[일요서울|김은경 기자] 국내 1호 신발기업으로 알려진 토종 아웃도어 대표 브랜드 ‘르까프’의 모회사인 화승이
르까프와 케이스위스, 머렐 등 3개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를 유통하는 화승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이들 브랜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화승은 지난달 31일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원이 다음날인 지난 1일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할 때까지 채권 추심 등을 막는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리면서 화승의 계좌가 묶인 상태다.
채권단이 밝힌 화승의 부채는 총 2300억 원 규모로 이 가운데 납품업체에 밀린 물품대금은 1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법정관리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백화점과 대리점의 관리자인 매니저들에게 돌아갔다. 화승은 이들에게 판매수수료를 어음으로 지급해 왔다.
당장 르까프와 머렐, 케이스위스 매장 관리자 250여 명이 총 250억 원을 갚아야 하는 처지다.
매니저들은 판매대금 대신 매달 20일 6개월짜리 어음을 받았다.
어음은 사실상 부도 처리가 됐고, 금융기관은 어음을 배서한 매니저들에게 이달 중순까지 추심하라고 통보한 것으로
직원 급여 걱정에 한숨
고등학생, 중학생 자녀를 둔 화승 직영점 매니저 A씨는 당장 자녀들의 학비도 마련하기 어려운 데다가 직원들 월급까지 사비로 간신히 지급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A씨는 “DH저축은행에서 상환을 안 하면 법적 조치에 들어간다고 한다. 당장 이번 달에도 아르바이트생이나 직원들
A씨를 비롯한 매니저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듯 황당한 심정이다.
이어 “협의를 하려면 채권단이 구성돼야 한다.
산업은행 책임론 대두
운동화를 납품하고 대금을 받지 못한 협력업체들은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이어 “화승과 거래계약을 하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화승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지분을 갖고 경영에 참여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라며 “조건이 좋지 않은 수개월에 이르는 어음발행도 산은을 믿고 지금껏 버텨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화승의 지분은 산업은행과 사모투자합자회사가 100%를 보유한 상태다.
그는 산업은행 책임론을 언급하며 “어떻게 산은이 중소기업 및 영세업체들의 줄도산을 뻔히 바라보고만 있는지 정말
일요서울은 화승 측에 조기 지급 신청 및 채권단 구성 등에 대해 묻고자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닿지 않았다.
한편 1953년 ‘기차표 고무신’을 생산한 동양고무공업을 모태로 하는 화승은 1970년대 나이키 신발을 주문자생산방식
이어 1998년 IMF 외환위기 충격으로 부도가 나면서 어려움을 겪다가 2005년 화의에서 졸업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
(주)화승의 대표 브랜드들. 왼쪽부터 르카프, 케이스위스, 머렐.
사진=화승 홈페이지
르까프’ 화승 부도 일파만파…DH저축은행과 수상한 관계 추적
DH저축, 화승 매니저들 어음할인 수수료 챙겨…
(주)화승 전 임원이 실소유주로 밝혀져
[일요신문] 르까프와 케이스위스, 머렐 등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를 유통하는 ㈜화승이 지난 1월 31일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서울회생법원은 신청 하루 만인 지난 1일 채권추심과 자산처분을 막는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화승이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납품대금을 받지 못한 협력업체들은 연쇄부도 위기에 내몰렸다. 250여 명 매장 매니저(중간 관리자)들도 화승에서 받은 어음이 동결되면서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
매니저들은 그간 본사에서 임금 성격의 판매대금을 6개월짜리 전자어음으로 받고, 부산에 위치한 DH저축은행에서
어음을 할인해 현금으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느닷없이 날아든 화승의 부도 문자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머렐 매장을 운영하는 한 매니저는“설 직전 날아온 문자 한 통으로 빚쟁이가 됐다“며 ”본사도, 은행도 문을 닫은
연휴 동안 한순간도 쉬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고 토로했다.
임금 성격의 판매대금을 어음으로 받은 쪽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의 매니저는 “면접장에서 본사가 판매대금을 어음으로 지급하겠다고 밝히면서 싫으면 관두라는 식으로
말했다”며 “본사에서 ‘우리는 어음깡을 하는데, 업계 관례’라고 말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어음 발행인인 ㈜화승의 부도로 DH저축은행은 매니저들에게 지난해 8~11월 4개월치 할인어음 상환을 요구했다.
은행은 지난 7일 문자를 통해 “할인어음 금액이 상환되지 않을 경우 카드사의 신용카드 정지, 재산 압류조치 등의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으며, 상환시까지 원금에 11.5% 연체이자가 적용되므로 조속한 시일 내에 변제해 주시길
바란다”고 통보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화승은 매니저들에게 은행과 협의해 부도어음을 개인대출로 전환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먼저 어음할인 잔액 기준 5~10%를 매니저들이 우선 자력변제하면 대출금리를 기존 어음할인과 같은 8.5%로 해 12개월간 분할상환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매니저들은 신용불량자 신세를 면할 수 있고 DH저축은행 입장에서도 부도어음을 개인대출로 전환하면
대금을 회수할 수 있어 나쁠 게 없다.
DH저축은행은 부산 연제구 연산동 본사 외 다른 영업지점이 없다.
법인등기부를 확인한 결과 ㈜화승과 DH저축은행의 등기상 주소가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 회사는 사람뿐 아니라 기업 연혁에서도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 화승과 ㈜대호, DH저축은행의 관계는 2004년
㈜화승이 발행한 어음이 부도나면서 DH저축은행이 큰 타격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서는 간단한 검색만 해도 “화승의 어음을 더 낮은 수수료로 어음할인해주겠다”는 다수 업체를 확인할 수 있다. 앞의 시장전문가는 “어음할인을 하는 업체들은 발행 기업의 재무상황에 따라 어음할인 수수료를 책정한다”며 “비교적 높은 금리를 받아 온 DH저축은행은 ㈜화승의 어음할인을 통해 이익을 챙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정황에 비춰보면 비록 ㈜화승은 부도가 났지만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DH저축은행에는 오히려 이득을 챙겨준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낀 매니저들만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DH저축은행과 연관성에 대해 ㈜화승 관계자는 수차례 “해당 사안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말로 일관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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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르까프의 복고풍 광고 영상 캡처 |
르까프의 추억
나이키 맞선 국산 브랜드…한때 국내 시장 2위 아성
세계인 감성 잡긴 역부족, 신발역사 100년 재도약을
1990년대 초반 교환학생으로 호주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옷은 격식을 갖춰 입었는데 신발은 운동화인 부조화패션의 사람들을 처음 보곤 ‘이게 호주 스타일인가’ 싶었다.
정장에 웬 운동화!
운동화는 웬만한 구두보다 비싼 최고급 나이키였고 정장과 나이키의 조합은 튀는 패션 센스와 경제력 과시의 수단
이었다는 사실을 조금 지나 알았다.
눈길을 끈 건 바로 그 나이키 운동화였다.
가게에 진열된 나이키 중에 최상품은 어김없이 ‘Made in Korea’였다.
우리 돈으로 10만 원이 훌쩍 넘는 신발을 신은 백인들을 보면서 왠지 뿌듯했다.
그 ‘메이드 인 코리아’가 엄격하게는 ‘메이드 인 부산’이었다는 사실은 더 한참 뒤에야 알았다.
한국산 나이키가 부산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74년부터다. 삼화고무가 나이키와 5년 독점계약을 맺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만들었다.
최초 물량 3000켤레는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가 범천동에 와서 직접 계약했다.
이후 전 세계적인 조깅 붐으로 물량을 감당 못한 삼화가 독점생산권을 포기하자 국제상사 동양고무 대양고무 태화고무 세원 등이 앞다퉈 나이키 OEM 사업에 뛰어들었다.
“전 세계 나이키의 70%는 한국에서 만든 것입니다.”
동양고무의 후신인 화승이 낸 광고가 이맘때 신문에 심심찮게 실렸다.
1990년대 초까지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등 글로벌 브랜드 70~80%가 당감동 전포동 등지에서 생산됐다.
부산은 세계 신발의 메카였다.
“1980년대가 부산 신발의 황금기라곤 하지만 겉으로만 그렇게 보였을 뿐 OEM에 길들여져 기술 혁신이나 브랜드 개발 노력은 게을리했다”는 게 부산대 경제통상연구원 장지용 전임연구원의 냉정한 진단이다.
그런 중에 국제상사의 ‘프로스펙스’에 이어 ‘르까프(LECAF)’가 탄생했다.
나이키의 무리한 단가 인하 요구 등으로화승은 1986년 나이키와 결별하고 자체 브랜드를 내놓았다.
글로벌 브랜드의 갑질에 떠밀린 것이지만 그들의 생산공장 역할에 불과한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성도 있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의 라틴어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브랜드명이나 나이키 생산라인에서 나온 운동화라는 홍보 전략도 소비자에게 먹혔다.
가볍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청소년 사이에 인기였다.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국산 운동화 인지도가 급상승해 1994년 국내시장 점유율은 프로스펙스 1위, 르까프 2위,
나이키가 3위였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국산 브랜드의 최고 전성기였다.
한때 국산 운동화 브랜드의 자존심이었던 르까프가 사라질 위기라고 한다.
㈜화승이 경영난으로 지난달 기업회생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세계 시장을 파고들기는 역부족이고 내수시장마저 소비 패턴이 완전히 바뀐 결과이다.
‘월드컵’ ‘타이거’ ‘슈퍼카미트’ 등 부산발 브랜드는 이미 오래전에 없어지고 프로스펙스와 르까프 2개만 겨우 살아남은 상황에서 르까프의 위기가 부산 신발업계에 던진 파장은 크다.
때마침 경영난에 빠진 이탈리아 휠라를 휠라코리아가 인수해 최근 다시 각광받는 브랜드로 키워냈다는 소식과
대비돼 더 씁쓸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고급 의류와 마찬가지로 고급 신발 역시 소비자는 품질이 아닌 브랜드를 소비한다.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같은 스포츠 스타에 몇 억 달러씩 홍보비를 쏟아붓는 글로벌 브랜드의 아성을 깨기는 고사하고 일각을 비집고 들어가는 일조차 이렇게 버겁다.
“LA에 르까프 대리점이 있었는데 하루 4, 5켤레 판매되는 게 고작이었다.
” 경남정보대 신발패션학과 남상달 겸임교수의 화승 근무 시절 회고이다.
경성대 국제무역통상학과 서영순 교수는 “한국 브랜드로 세계인의 감성을 붙잡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나이키, 리복은 브랜드만 있을 뿐 자체 생산공장이 없다.
아디다스도 독일에 일부가 있을 뿐이다.
모두 대만과 한국 회사가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에서 만들어 납품한다.
현재의 태광실업 창신아이엔씨 파크랜드가 모두 그런 회사이다.
나이키 생산량 세계 3위와 4위가 태광과 창신이다.
화승그룹조차 르까프를 만드는 ㈜화승은 3년 전 매각하고 아디다스의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사업에 힘을 쏟아
전 세계 아디다스 생산량 2위에 올라 있다는 사실은 부산 신발산업의 현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OEM과 달리 ODM은 제품 개발에 참여하기 때문에 기술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불가능한 사업이다.
신발 만드는 기술만큼은 누가 뭐래도 부산이 세계 최고인 것이다.
이 때문에 33년 전 나이키라는 스포츠용품 제국의 부당함에 맞서 당당하게 자신의 깃발을 올렸던 르카프의 시련이 더욱 안타깝다.
한국 신발산업 역사 100년은 부산 신발의 역사이다. 100년의 저력에 걸맞은 도전정신을 보였던 르카프의 재기를
기대한다.
국제칼럼]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르까프가 국내 스포츠 브랜드 중 처음으로 선보였던 신발 큐레이팅 서비스 '슈닥'.
연합뉴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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