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낙태죄 위헌 선고
(PG) [정연주 제작] 일러스트
임신초기 낙태 금지는 위헌"..헌재, 66년만에 법개정 결정
임산부 자기결정권 과도한 침해"..
재판관 7대 2 의견 헌법불합치 결정
'전면허용' 방지 위해 헌법불합치 결정..
내년 12월31일까지 법개정 해야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했을 때 처벌하도록 한 현행법 조항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이에 따라 1953년 제정된 낙태죄 규정을 66년 만에 손질하는 작업이 불가피해졌다.
임신 후 일정기간 내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으로 법개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헌법재판소는 11일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자기낙태죄'로 불리는 형법 269조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
하는 내용이다
.270조는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이다.
자기낙태죄에 종속돼 처벌되는 범죄다.
동의낙태죄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씨는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 규정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
이라며 2017년 2월 헌법소원을 냈다.
대심판정 착석한 헌법재판관들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유남석 헌재소장 등
헌법재판관이 11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은애, 이선애, 서기석 헌법재판관, 유남석 헌재소장, 조용호, 이석태, 이종석
헌법재판관.
hihong@yna.co.kr
헌재 심판에서는 태아의 발달단계나 독자적 생존능력과 무관하게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이에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다만 낙태죄 규정을 곧바로 폐지해 낙태를 전면 허용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관련 법조항을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기한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낙태죄 규정은 전면 폐지된다.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이 사건의 직접 당사자인 A씨는 물론 낙태죄로 기소돼 재판 중인 피고인들에게 공소기각에 따른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2012년 헌재의 합헌결정 이후 기소돼 형사처벌된 사람들의 재심청구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법원 일각에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은 단순 위헌결정과 달리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어 낙태죄
형사재판과 관련해 추가 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hyun@yna.co.kr
임신중지가 불법인 나라의 여성들에게 인공유산 유도약 보급 활동을 벌이는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ves) 대표 레베카 곰퍼츠가 2018년 7월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낙태죄 위헌 결정과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전국
총집중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들은 “낙태(임신중지)를 형법으로 처벌하고,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을 범죄자로 낙인찍으면서, 한 사회의 재산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오롯이 전가해 왔던 시대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일제강점기 때 시작된 '낙태죄' 처벌 109년 역사 살펴보니
1910년 조선형사령에 첫 처벌조항
나치 독일 '단종법'과 일본 '우생보호법'에 뿌리
한해 10만건 이상 시술..처벌 수십건 불과 '사문화'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현 처벌조항 내년까지만 유효
법으로 낙태 행위를 처벌하기 시작한 시기는 일제강점기다.
일본 형법을 조선에 적용해 1910년 만들어진 ‘조선형사령’에서는 낙태한 여성에게는 1년 이하의 징역을, 낙태를 시술한 의사·산파·약제사 등에게는 3개월 이상 5년 이하 징역을 선고하도록 했다.
중국 명나라 형법을 따랐던 조선시대에는 상해로 인해 낙태될 경우 상해를 입힌 가해자를 처벌할 뿐, 낙태 여성 등
처벌 규정은 따로 없었다.
해방 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돼 독자적 법체계를 갖추면서 낙태죄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지만, 1953년 법전편찬위원회가 내놓은 형법은 낙태죄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다.
당시 형량은 1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2만원 이하의 벌금형(여성), 2년 이하의 징역형(의료진)이었다.
당시 낙태죄는 인구 조절을 위한 수단 가운데 하나로 인식됐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인구가 줄어들자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인구가 4천만명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사고가 힘을 얻었고, 낙태는 개인적 선택을 넘어 사회적 범죄로 취급되는 게 당시 사회 분위기였다.
다만 낙태죄를 존속시키되 특별법을 만들어 특수한 경우에만 낙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사정을 고려한 특별법은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졌다.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 8조(현재 14조)가 그것이다.
이 조항에서는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나 강간에 의한 임신, 혈족 또는 인척간의 임신, 엄마의 건강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해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당시 모자보건법은 일본의 ‘우생보호법’을 모방해 만들어졌다.
우생보호법의 낙태 허용 조항에서 ‘나병’을 ‘전염성 질환’으로만 바꿨을 뿐, 나머지 내용은 그대로 옮겨왔다.
당시 법률 입안 작업에 관여한 김택일 보건사회부 모자보건반장도 <인구정책 30년>(한국보건사회연구원, 1991년)에서 “일본 ‘우생법’을 참고로 했다”고 고백했다.
일본 우생보호법은 낙태 허용 조건 가운데 하나로 ‘경제적 이유’를 들고 있었지만, 모자보건법에서는 이 조항이 빠졌다.
한국이 베끼다시피 한 일본의 우생보호법은 1949년 독일의 ‘국민우생법’을 참고해 만들어진 법률이다.
또 국민우생법은 우생학적 이유로 강제 불임 시술을 하도록 하는 나치 시대 ‘단종법’을 뿌리로 하고 있다.
결국 낙태죄 처벌조항은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에 바탕해 수백만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독일의 인종주의적 법률과
연결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임신 20주 이후 태아의 낙태를 금지하고 낙태 시설을 엄격히
규제하는 내용의 텍사스주 낙태금지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다른
주에서 추진되는 낙태금지법안도 제동이 걸렸다. 사진은 위헌 결정 후 낙태찬성론
자들이 워싱턴DC의 연방대법원 앞에서 기뻐하는 모습.
워싱턴 AP=연합뉴스
1970년대 이후 산아제한 정책이 추진되면서 낙태는 암묵적으로 비범죄화됐다.
하지만 1985년 대법원은 “의사의 낙태 시술은 사회 상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해 사문화돼가던 낙태죄를 부활
시켰다.
또 남아선호 사상에 따른 여아 낙태 관행이 여전하자, 정부는 1987년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알려주면 의사면허를 취소
하고 3년 이하 징역을 선고하도록 처벌조항을 강화했지만(2010년 징역 2년으로 환원)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2011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가임기 여성 1000명당 낙태 건수(임신중절률)는 15.8건이었다. 1000만명이 조금 넘는 당시 가임기 여성 숫자를 고려하면, 한해 낙태 건수가 17만~18만건에 이른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낙태죄로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기소되더라도 처벌 수위는 매우 낮았다.
법원행정처 사법연감을 보면 2015~17년 사이 낙태죄 1심 판결은 53개에 불과했고, 선고된 형량은 집행유예(23건) 또는 선고유예(21건)가 80% 이상을 차지했다. 징역형은 3건에 불과했다.
낙태죄는 임부 못지않게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오랜 고민거리였다.
2010년에는 낙태를 반대하는 의사들의 모임인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낙태 수술을 한 의사와 병원을 고발하고 나서기도 했다.
2013년부터 이듬해까지 임신중절 시술을 69차례 했다가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정아무개씨는 2017년 2월 헌재에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이 헌법소원이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이어져 낙태죄는 11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최규진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낙태죄의 역사>, <낙태에 대한 개방적 접근의 필요성-한국 낙태 정책에 대한 역사적·보건학적 고찰을 중심으로> 참고
![낙태죄 폐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결정이 11일 내려진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피켓(왼쪽)과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피켓. [연합뉴스·뉴스1]](https://t1.daumcdn.net/news/201904/11/joongang/20190411145357524sklv.jpg)
형법 269조 1항과 270조는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과 수술한 의사를 각각 1년 이하,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모자보건법은 ▶유전적 장애 ▶전염성 질환 ▶강간 또는 준강간 ▶혈족ㆍ인척 간 임신 ▶모체 건강을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여기에 해당하면 임신 6개월(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런 합법 낙태는 2017년 기준 3787건(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불과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추정한 전체 낙태
건수는 연 5만건이다.
손문금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장은 “형법 낙태죄를 어떻게 할지, 별도의 인공임신중절법을 만들지, 모자보건법의
예외적 낙태 허용 규정은 어떻게 할지 먼저 검토해야 한다”며 “특별법을 둔 나라가 있고, 형법으로 규정하는 나라가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형법과 특별법 둘 다 두고 있으며 임신 12주 이전에 대해서만 허용한다. 또 임신갈등상담소에서 상담하고 확인서를 받아야 낙태 시술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절차 없이 낙태를 허용하되 환자가 원하면 상담을 받도록 하는 나라가 있다.
이 중 우리 나라에 맞는 현실을 찾아야 한다. 손 과장은 “다양한 요소들이 있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치권에서 법을
개정해줘야 한다. 일단은 헌재 결정 취지 고려하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덧붙였다.
![태아 초음파 사진 [중앙포토]](https://t1.daumcdn.net/news/201904/11/joongang/20190411145357762rcik.jpg)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산모 안전을 위해 사회ㆍ경제적인 낙태를 허용하되 주수 제한을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산모 안전을 위해 8주로 제한하자는 의견도 있다. 낙태로 인한 신체적인 후유증은 10%정도다. 사망 등 중증 합병증은 2% 수준이다. 미국 연구에 따르면 임신 8주부터 2주가 지날 때마다 낙태로 인한 산모의 사망률이 2배씩 증가한다.
개인적 신념에 따라 낙태 시술을 의사가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진료를 거부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낙태는 일반적 진료와 다르기 때문에 의사의 시술 거부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본은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낙태를 허용한다.
일본은 지역별로 낙태 시술이 가능한 병원을 지정하고 거기서만 시술하도록 한다.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한본 변호사(민변 여성인권위원회 부위원장은 "낙태는 형벌로서 죄가 아니라 행정적인 규제로 다스려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외국 사례를 보면 임신 초기 12주 정도는 낙태를 무조건 허용하고 13~24주는 사회경제적 사유 등을 고려해서 허용
하고, 24주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방식으로 국회가 논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낙태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비급여로 풀어놓으면 지금처럼 무분별한 낙태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낙태 주수 기준, 상담 절차 등을 애써 만들어봐야 사문화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최안나 산부인과 전문의는 “현재도 합법적인 낙태는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앞으로 낙태 허용 범위가 넓어지더라도 지금처럼 건강보험이 적용돼야 한다”라며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 비급여로
풀어놓으면 실태를 파악하기 힘들어진다.
임신 주수나 절차를 만들어봐야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낙태 시술은 국공립 병원이나 지자체에서 허가된 병의원만 하도록 제한해야 실효성 있는 상담이 이뤄지고 숙고 절차와 보고 체계를 갖출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충분한 정보 제공과 지원 없이 낙태를 하면 여성의 권리가 보호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강요 행위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위에서 '이제 낙태가 합법화됐으니 고민하지 말고 낙태해라'고 강요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압박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최 전문의는 “의료인이 낙태 관련 객관적 정보를 자세히 제공하고 낙태하지 않는 경우 어떤 지원을 받는지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이런 걸 듣고 숙고 과정을 거쳐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낙태 시술에 건강보험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국가가 지원하지 않고 ‘나는 허용했으니 가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내버려 두면 저소득층, 취약계층은 계속해서 위험에 내몰린다”라고 말했다.
이한본 변호사(민변 여성인권위원회 부위원장은 “건강보험은 당연히 급여화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가 동일하게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출산할때만 급여가 적용되면서 낙태는 급여화 안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본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6개 국가 중 경제ㆍ사회적 이유로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는 31개국이다.
프랑스ㆍ독일ㆍ덴마크ㆍ오스트리아ㆍ노르웨이에서는 임신 12주까지는 임부의 요청만 있으면 낙태가 합법이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5월 발표한 ‘낙태죄에 대한 외국 입법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의 경우 임신
12주의 기간 안에는 곤궁한 상황에 부닥쳐있는 임부가 의사에게 임신중단을 요청할 수 있다.
다만 임신 여성이 낙태를 행하기 위해서는 1주일의 숙려기간이 필요하다. 의학적 필요에 의한 경우엔 숙려기간이
필요없다.
독일은 임신 여성이 낙태 전 의사와 상담을 해야한다.
시술 3일 이전에 상담사실증명서를 받아야 낙태 시술을 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도 의사의 상담을 거쳐야 낙태를 할 수 있다.
영국은 2명의 의사 의견이 있으면 24주까지 임신 여성 요청으로 낙태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낙태를 제한하는 법안이 대거 채택되고 있다.
올해들어 조지아, 텍사스, 미시시피 등 11개 주에서 의사가 태아의 심장 박동을 확인한 이후 낙태를 금지하도록 한 태아심장박동법을 채택했거나 논의 중이다.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돼 초음파로 심장 박동을 확인할 수 있는 6주경부터는 낙태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6주 이전에는 임신 사실을 인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실상 낙태를 금지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스더ㆍ이승호 기자 etoile@joongang.co.kr
여성 건강권 향상" 의료계가 본 판결
의료적 측면에서 여성 건강권 높일 수 있는 계기
-WHO도 "낙태 합법화하면 모성사망률 낮아질 것"이라고 밝혀
-낙태 절차·장소·시술자 등에 대한 규정부터 전후 모니터링,
건강보험 적용 등 논의과제 산더미
[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 헌법재판소가 11일 낙태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에 헌법불합치를 선고하면서 내년 12월 말까지 관련 법을 개정하라고 결정했다.
66년 만에 사라지게 된 낙태죄를 두고 의료계에서는 태아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분법적 대결을 넘어
여성 건강권 측면에서 합당한 결정이라고 보고 있다.
◆낙태 합법화해야 여성 건강권 향상=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의료적인 측면에서는 여성의 건강권을 더 높일 수 있는 결정"이라면서 "낙태가 합법화되면 시술과정 교육, 낙태 전후의 정부 모니터링 등 안전한 환경에서
의료행위가 이뤄질 수 있어 그동안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석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의사들이 의학적인 관점을 떠나 낙태 찬반을 논할 수는 없다"면서도 "기존
모자보건법은 의학적으로 타당하지도 않았고 여성 건강권을 보호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모자보건법은 '낙태가 불법'이라는 전제 , 임신 24주 이내의 예외적인 5가지 사유에 한해 낙태 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등이 예외로 허용된다.
1973년 이후 46년간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데다 너무 제한적이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낙태는 표준 지침대로 이뤄질 경우 위험한 수술이 아니다. 낙태를 불법으로 막아놓은 국가일수록 '안전하지 못한'
낙태수술로 인한 모성사망률이나 합병증 발생률이 높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한 인공임신중절(낙태)에 관한 가이드라인'에서 "낙태는 숙련된 의료진이 올바른 방법으로 수행한다면 매우 안전하다.
낙태 합법화는 결과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인한 모성사망률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낙태를 엄격히 금지할수록 법적인 보호나 표준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안전하지 못한' 약물적ㆍ수술적 낙태를 실시
하기 때문이다.
루마니아가 낙태 규제와 모성사망률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루마니아는 지난 1966년 낙태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모성사망률이 1983년 7배 높아졌다.
이 기간 10만명의 여성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89년 낙태금지법이 폐지되자 한 해 만에 모성사망률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낙태가 합법화되면 낙태가 더 쉽게, 더 많이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낙태를 합법화한 해외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다.
임신 12주 이내 임부 결정에 따라 낙태가 가능한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의 낙태율은 각각 15.0%(2015년), 7.2%
(2012년), 1.4%(2000년)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사회ㆍ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 및 임부 요청에 의한 낙태를 금지한 뉴질랜드 12.0%
(2015년), 이스라엘 12.5%(2012년)로 낮지 않다. 낙태 합법화와 낙태율간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내년 말까지 법 개정 과제 수두룩=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내년 12월31일까지 낙태죄 관련 법 조항을 고쳐야 한다. 이 기한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낙태죄 규정은 전면 폐지된다.
법 개정은 임신 후 일정기간 내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임신 초기에는 낙태를 전면 허용하되, 일정 기간 이후에는 여러 사정을 감안해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이다.
낙태를 허용하는 '임신 주수'를 명확히 규정할 경우 뒤늦게 태아나 임부의 생명을 위협할 의학적 문제가 발견돼도
수술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국회 입법조사처는 "임신 12주의 범위에서는 임부의 의사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것을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 다만 태아가 독립생존할 수 있는 시기(22~24주) 이후에는 임부의 생명·건강에 현저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없는 한 낙태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의료계에서는 낙태를 허용한 외국 사례를 참고해 임신 초기인 12~16주 이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는 임신 12주를 기준으로 삼고 영국은 2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한다.
김동석 산부인과의사회장은 "12~16주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이 시기 태아가 모체 밖으로 나와도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점과 임부의 건강상 안전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며 "초음파 기술 발달 등으로 이 시기에는 무뇌아 등 의학적으로 생존
불가능한 태아나 기형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생명에 위협이 되는 질환이 늦게 발견될 수도 있는 만큼 일률적으로 허용 시기를 정하기 보다는 의학적 판단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낙태 절차와 장소, 방법, 시술자 등 제반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외국은 낙태의 절차·장소·시술자 등에 대한 상세한 규정을 둬 임부가 안전한 환경에서 시술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혼 숙려제도와 같은 낙태 전 상담제도도 있다. WHO도 안전한 낙태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상담을 제시하고 있다.
이 밖에 의사 개인 신념에 따른 진료거부권, 낙태약 처방 방식, 건강보험 적용 여부와 비용 산정, 낙태 사전 및 사후
조치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박혜정 기자 park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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