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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대한민국 요양 보고서 학대와 횡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국화와 침대


        




노인5


정길준·이은혜 기자 alfie@viva100.com 








대한민국 요양 보고서  요양원 비리 ①학대와 횡령



 작년 노인요양에 쓴 돈 6조7천억 지난 4년간 유죄확정 39건 보니
146억 줄줄 샜지만 실형은 3명분..유령직원·유령수급자 속출


50억 착복해도 집유..그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경기도에 있는 ㄱ요양법인 대표와 시설장 등은 2009년 10월부터 6년 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으로부터 장기

요양급여 49억2733만원을 부당하게 가로챘다.

요양보호사로 근무하지 않은 사람을 마치 근무한 것처럼 꾸미고 근무시간을 늘리는 수법을 썼다.


 사실 ㄱ요양법인 대표는 2013년 8월 시청과 건보공단의 조사에서 이미 요양보호사 허위 등록 등이 적발됐다.

 그런데도 이후 2년2개월 동안 건보공단 돈 착복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이렇다.


2013년 8월 요양보호사 허위 등록 적발로 자신의 요양원이 지정취소가 될 것을 우려한 요양법인 대표는 최종 처분이

나오기 전인 2014년 3월17일 자신의 요양원을 ‘단기보호센터’로 이름을 바꿔 시청에 신고했다.

 단기보호센터는 입소자들에게 한달에 15일 이내의 보호만 제공하는 요양기관이다. 물론 시설은 신고와 달리 이전처럼 입소자들이 계속 머물며 지내는 요양원으로 운영됐다.


명칭을 바꾼 뒤인 2014년 4월1일 시청이 앞선 점검 결과에 따라 이 시설에 지정취소 처분을 내렸지만 이미 다른 유형

으로 바꿔 신고한 시설은 아무 문제 없이 운영됐다.

무허가 시설을 운영하고 국민의 쌈짓돈에서 나온 50억원가량을 빼돌린 이 요양법인 대표는 재판에 넘겨졌지만 형량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시설장 등 다른 3명도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노인장기요양원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건보공단)를 기망하여 장기요양급여를 과다하게 지급받아 장기요양수급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장기요양기관 지정취소 처분을 받고도 장기요양기관을 운영한 것으로 죄질이 나쁘다”면서도 “피해액을 상당 부분 변제”했고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위반죄를 범한 것(무허가 운영)에는 어려운 운영 현실에서 입소자와 직원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집행유예 선고 이유를 밝혔다.


건보공단이 준 6조원, 관리되지 않는다

지난해 건보공단이 노인요양에 쓴 돈은 6조6758억원이다. 국민이 매달 내는 건강보험료의 7.38%를 떼어내고 국비 등을 보태 마련한 돈이다.

올해는 건강보험료에서 떼는 비율이 8.51%로 늘어, 건보공단 지출액은 7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 돈은 전국에서 노인을 돌보는 요양기관 2만1672곳(올해 3월 기준)에 지급된다. 요양원과 방문요양센터 등 요양기관들이 돌보는 노인은 56만7365명에 이른다. 노인요양 재원의 80~85%가 이렇게 건강보험료 등에서 충당되고, 나머지는 본인부담금이다.


시설 수급자는 20%, 방문요양 수급자는 15%를 부담하는데 경제형편에 따라 감경된다. 전체로는 약 8조~9조원의 돈이 움직이는 셈인데 비리가 적지 않다.


<한겨레>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기동민 의원실을 통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건보공단이 수사 의뢰하고 고발한 사건 가운데 유죄가 확정된 39건의 판결문과 약식명령 결정문을 입수했다. 분석 결과, 노인들에게

쓰여야 할 돈 145억9929만원이 엉뚱한 이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


게다가 그 ‘엉뚱한 이’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확정판결을 받은 63명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이는 달랑 3명(4.8%)에 그쳤다.

대부분 집행유예(34명)나 벌금형(26명) 등 관대한 처벌을 받았다.

요양기관들이 돈을 빼돌리는 일반적인 방법은 ‘유령 직원’ 등록이다.


 경기도에서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동시에 운영하는 법인 대표 ㄴ씨는 요양보호사·간호사의 배치와 근무시간을 허위로 신고해 14억7731만원을 빼돌렸다.

 ㄴ씨는 2008년 11월부터 매달 20만원을 주는 대가로 요양보호사와 간호조무사 8명한테 자격증을 빌렸다.

간호사 2명으로부터도 매달 30만원을 주고 자격증을 빌렸다.


고의가 명백하고 빼돌린 액수도 적지 않지만 법원은 ㄴ씨에게 역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건보공단의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요양보호 및 의료 서비스의 질을 낮출 우려가 있는 행위로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피해를 변제했고 요양보호 및 의료 서비스 자체는 적법하게 제공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다른 방법은 ‘유령 수급자’를 활용하는 것이다.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이 외박을 나가거나 병원에 입원하면 기관은 장기요양급여의 50%만 건보공단에 청구해야 한다. 요양원에서 실제 해당 노인을 돌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요양원과 주간보호센터(오전·오후 시간대에만 보호를 제공하는 요양기관)를 운영하는 ㄷ씨 등 3명은 2015년 8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외박하거나 병원에 입원한 수급자 12명의 장기요양급여를 그대로 신청해 162만2760원을 부당하게 타냈다.

 또 자신이 운영하는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들이 주간보호센터도 이용했다고 꾸며 361만4110원을 빼돌리기도 했다.


요양기관 비리가 처벌받지 않는 까닭

요양기관 비리 사건 형량이 적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노인장기요양보호법에는 요양기관이 수급자를 모으기 위해 본인부담금을 받지 않거나 수급자를 소개받고 알선료를 줄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유령 직원이나 유령 수급자를 등록해 돈을 빼돌렸을 때 처벌 규정은 없다.

영업정지 등 행정조처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수사기관은 형법의 사기죄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

건보공단을 속여(사기) 돈을 타냈다며 죄를 묻는 것이다.

사기죄 형량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법원의 양형기준을 보면, 사기 금액이 1억원 이상 5억원 미만일 경우 권고 형량은 징역 1~4년이다.


피해금을 갚는 등 감경 사유가 있으면 징역 10개월~2년6개월로 줄어든다.

피해 금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경우에는 권고 형량이 징역 3~6년인데, 감경이 적용되면 1년6개월~4년으로

 줄어든다.


형량 자체가 높지 않다 보니 수억원을 빼돌려도 집행유예 정도를 선고받고 다시 ‘업계’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나마 수사로 이어진 경우는 다행이다.


 실제 직접 요양기관에 나가 조사를 하는 건보공단 관계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장기요양기관에서 비리가 확인되더라도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1년에 5% 안팎의 요양기관에 현지조사를 나간다. 지난해에는 전체 요양기관의 3.8%, 2017년에는 4.6%를 현지조사했다.

현지조사 규모도 작지만, 이마저 한계가 뚜렷하다. 우선 권한이 적고, 제대로 된 수사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현지조사에서 요양기관의 부당 청구 등을 주도적으로 적발해내는 이들은 지원 인력으로 투입된 건보공단 직원들이다. 관련 업무를 오래 해온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보공단 직원들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직원 수, 수급자 수를 속여 건보공단에 급여를 청구했는지 살펴볼 수 있을 뿐, 횡령이나 비리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회계 자료에는 손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부당 청구액이 많거나 상습적인 요양기관을 고발하거나 수사 의뢰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다.


고발과 수사 의뢰를 받은 수사기관이 의지를 보이는 경우도 적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죄질이 나쁠 경우에는 몇천만원 규모의 부당 청구가 나오더라도 고발하거나 수사 의뢰를 합니다. 하지만 수사기관에서는 이 정도 규모의 사기 사건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별다른 실적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물론 수사를 더 하면 횡령 등 더 큰 비리를 적발할 수도 있겠지만, 장기요양

기관의 수익이나 회계 구조가 복잡해 그렇게 수사를 진행해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 보니 건보공단이 부당 청구했다고 고발한 내용 정도만 확인하고 재판에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해 6조원이 훌쩍 넘는 장기요양보험금이 어디서, 얼마나 새는지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처벌망을 빠져나간 비리는 그렇게 은폐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온다.

기동민 의원은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요양기관은 최대한 지원하되 심각한 부정을 저지른 요양기관 관계자들은 퇴출해 비리가 줄어드는 건전한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환봉 이주빈 기자 bonge@hani.co.kr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사진=자료사진)






700개의 알약...산송장으로 돌아온 엄마




요양원의 노인들은 잠들어 있다.

치매로 인해 이상 행동을 보이던 노인조차 요양원에 들어서면 온순한 상태가 된다.

열악한 시설 환경, 부족한 돌봄 인력으로도 20만 명에 이르는 입소 노인을 돌볼 수 있는 한국 요양원의 특별한 비법

 때문이다.


이 비법 뒤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돌봄은 수월하지만 노인의 건강은 악화된다. 상당수 요양원은 노인의 행동장애를 제어하기 위해 진정 효과를 가진 약물을 사용한다.

이른바 '화학적 억제(Chemical Restraint)'라고 불리는 방법이다.


최근 연구결과(정영일 논문, 2016)에 따르면 요양시설 노인의 약 17%가 항정신병 약물을 ‘부적절하게 처방’받고 있다.

결박과 같은 요양원의 물리적 구속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꽤 진척돼 왔다. 보호자 동의 절차와 결박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된 상태다.


하지만 노인의 건강을 해치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화학적 억제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공백 상태다.

 요양원 입소 노인에게 어떤 약물이 얼마나 많이 사용되고 있는지 파악할 기초적인 통계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자료사진)



약을 숨긴 노인, "머리 아프고 다리 쓸 수 없어..."

성미화(가명) 씨는 좀 더 빨리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다.

지난해 7월, 요양원에 있던 어머니 고금자(가명, 70세) 씨의 이상한 행동은 막내딸 성 씨에게 보낸 필사의 신호였다.


 가족과의 외출을 마치고 요양원으로 돌아가는 길, 고 씨는 차를 천천히 몰아달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딸 성 씨의 손에 휴지 한 뭉치를 쥐여 줬다.

 휴지 안에는 흰 알약 예닐곱 개가 들어있었다.







▲고금자(가명, 70세) 씨의 요양원 입소 전 모습.



치매 증세가 있었지만 비교적 건강한 상태였다.

성 씨는 당시 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이유가 약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요양원에 들러 '약을 먹이고 꼭 확인하라'는 당부를 남겼다.

어머니가 숨겼던 그 알약이 신경안정제라는 사실을 안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고 씨는 2017년 6월 경기도 이천시의 A요양원에 입소했다.

 그의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입소 1년 후인 지난해 5월부터다.

가족들은 면회를 갔다가 평소 온돌방에서 좌식 생활을 하던 고 씨가 침대방으로 옮겨진 것을 목격했다.

A요양원에서 침대방은 중증 환자들을 수용하는 공간이었다.


 치매 증상은 있었지만 거동에는 문제가 없던 고 씨였다.

고 씨의 건강은 나날이 나빠졌다.

 지난해 7월, 가족들과 외출을 했을 때는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 바닥에 앉지도,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


의사 표현도 어려웠다.

침을 흘리는 일도 있었다.

 딸 성 씨의 눈에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산송장'처럼 보였다.







▲고금자 씨가 요양원을 퇴소해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의 모습.


병세가 확연하다.

지난해 10월, 경기의료원 이천병원은 고 씨에게 파킨슨증 진단을 내렸다. 딸 성 씨는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간병

하던 중, 의료진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 고 씨가 먹지 않아도 될 '센 약', 즉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왔다는 얘기였다.


성 씨는 병원 검사가 끝나자마자 어머니를 요양원에서 퇴소시켰다.

취재진은 요양원에서 인근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긴 고 씨를 직접 만났다

. '산송장' 같았다는 그의 건강은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


여전히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지만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신경안정제 복용을 끊은 지는 반년 정도 지났다.

고 씨는 ‘요양원에서 주는 어떤 약’을 먹으면 머리가 아프고 몸을 쓸 수 없었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몸이 점점 굳어서 나중에는 아예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예닐곱 차례 약을 먹지 않고 숨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고 씨는 수차례 약을 먹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표현을 했지만

 요양원 측은 신경안정제 투약을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36kg 노인에게 80kg 장정에게도 과한 약을..."

김진아(가명) 씨는 요양원에 대한 배신감을 지우지 못한다.

2년 가까이 어머니가 입소해 있는 요양원을 매주 드나들었다.

직원을 마주칠 때면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딸인 자신조차 감당하기 힘든 어머니를 돌봐주는 요양원에 고마운 마음이 컸다.

악화되는 어머니의 건강에 대해 직원들과 상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어머니가 하루 4번씩 삼키는 신경안정제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보호자인 김 씨는 병원에서 직접 처방을 받아 약을 타왔지만 무슨 약인지는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김 씨는 2017년 4월 치매에 걸린 어머니 이판순(가명, 85세) 씨를 춘천의 B요양원에 맡겼다. 일과 돌봄을 병행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요양원은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택했다.

 주말이면 면회를 가서 어머니를 돌봤다.







▲이판순(가명, 85세) 씨의 요양원 입소 전 모습



입소 이후, 이 씨는 나날이 기력을 잃고 야위어 갔다.

입소 초기에는 차를 이용해 가족과 외출을 하는 일이 잦았지만 입소 4달이 지나고부터는 그마저 어려워졌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차량에 올라탈 수 없었다.

 입소 1년 뒤부터는 휠체어에 기대고도 몸을 가누지 못했다.


 당시 몸무게는 36.4kg에 불과했다. 김 씨는 어머니의 건강 악화가 요양원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라고 받아들였다.  

어머니 이 씨의 건강 악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이 씨는 폐렴 치료를 위해 인근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딸 김 씨가 어머니와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간병을 맡았다.

 김 씨는 어머니의 이상한 증상을 목격했다.

세끼 식사를 위해 잠시 눈을 뜨는 1시간 남짓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에 그칠 줄 알았던 이 과도한 수면 증상은 입원기간인 2주 동안 계속됐다.

김 씨는 대학병원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그동안 어머니에게 '80kg 장정에게도 과도한' 신경안정제가 처방돼 왔다는 것이었다.


 김 씨는 인터넷을 뒤져가며 어머니에게 처방된 약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 씨가 하루에 먹는 약은 19알, 이 가운데는 수면제로 사용되는 신경안정제도 포함돼 있었다.







▲ 이판순 씨가 1년 동안 요양원 생활을 한 뒤의 모습.


건강이 눈에 띄게 악화됐다.

김 씨는 곧바로 어머니 이 씨를 요양원에서 퇴소시켰다.

현재는 인근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긴 상태다.

 요양원에서 먹던 약을 끊은 지 넉 달.


과도한 수면 증상은 사라졌고, 건강도 호전됐다.

신경안정제까지 써가며 억누르려고 했던 행동장애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환자 상태 보지 않고 반복 처방

취재진은 보호자의 협조를 받아 고금자, 이판순 두 요양원 입소자의 처방전을 입수해 분석했다.

 복수의 의료전문가로부터 의학적 자문을 받았다. 이 의사들은 취재진에게 익명 보도를 요청했다.

자신들 역시 요양병원 의사와 요양원 촉탁의로 일하며 화학적 억제제를 사용한 일이 있다는 이유였다.

경기도 이천시 A요양원에 입소한 고금자 씨에게 처방된 약물의 성분명은 '할로페리돌(Haloperidol)'이다.


행동장애 환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항정신병(Antipsychotics) 약물이다.

지난 2014년 발생한 전남 장성군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 화재 사건 당시 이 약물이 노인을 재우기 위한 화학적

억제제로 사용된 흔적이 발견돼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고 씨가 진단받은 파킨슨증은 이 약물의 부작용 중 하나로 알려져있다.


강원도 춘천시 B요양원에 입소했던 이판순 씨에게 처방된 약물의 성분명은 '로라제팜(Lorazepam)'이다. 수면제로

 알려진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 계열 약물로,  할로페리돌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진정 효과를 지니고 있다.

 유명 연예인의 수면제 과다복용 사건에서 자주 언급되는 약물이다.

역시 이 씨에게 나타난 과도한 수면 증상은 이 약물 복용 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다.


고 씨와 이 씨는 요양원 입소 초기인 2017년 11월과 2017년 7월, 각각 문제의 약물을 처방받기 시작했다.

다른 입소 노인과 다툼을 벌이거나, 야간에 잠을 자지 않고 배회한 것이 신경안정제 처방이 시작된 계기였다고 한다.

처방은 1달 주기로 반복해서 이뤄졌다.


 복용량은 일정하게 유지되거나 소량씩 늘었다.

고 씨의 경우, 요양원을 퇴소한 작년 10월까지 1년 가까이 할로페리돌 복용량이 일정하게 유지됐다.

매일 1.5mg 알약이 두 번씩 처방됐다.


 이 씨의 경우, 로라제팜 복용량이 3~4개월 주기로 늘었다.

2017년 7월 하루 0.5mg 알약 2회였던 것이 2017년 11월 하루 3회, 2018년 3월 하루 4회로 복용량이 증가했다.







▲두 노인이 복용한 약. 한번 처방된 신경안정제는 중지되지 않고 계속 유지
되거나 증가했다.


이 처방전들을 검토한 의료전문가들은 약물 사용으로 인한 득 보다 실이 컸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 신경과 전문의는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 요양원에서 이 같은 항정신병 약물이 장기간 반복적으로 처방된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처방 이후에는 반드시 환자의 상태를 수시로 관찰하며 복용량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장애나 과도한 수면 같은 부작용 증상이 나타난 상황에서도 처방이 반복적으로 이뤄졌다면 최소한의 진료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미국 시민단체 '벤조디아제핀의 올바른 사용을 위한 연합(The Alliance for Benzodiazepine Best

Practices)'의 의료자문을 맡고 있는 스티브 라이트 박사에게도 자문을 구했다.

그는 노인에게 이 약물들을 처방할 때는 4주 이내 단기 사용에 국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병원-요양원-감독기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취재진은 해당 처방을 내린 의사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고 씨에게 할로페리돌을 처방한 의사가 소속된 병원 측은 취재진에게 서면 답변을 보내왔다.

 병원 측은 고 씨에 대한 할로페리돌 처방이 요양원 직원의 진술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요양원 촉탁의사의 경우, 월 2회 방문을 통해 입소 노인의 건강 상태를 살핀다.


 병원 측은 이런 여건 탓에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살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항정신병 약물을 투여받은 환자는 촉탁의가 방문했을 때도 수면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운동 장애 등의 부작용을 파악하는 것은 힘들다고 병원 측은 전했다.


할로페리돌 처방이 적정 용량 하에서 유지됐으며, 처방이 고 씨의 파킨슨증 발병과는 무관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덧붙였다.







▲고금자 씨가 입소했던 경기도 이천시 A요양원




반대로 요양원 측은 신경안정제 사용은 어디까지나 처방을 내린 의사와 병원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취재진과 만난이천 A요양원 원장과 이사장은 폭력성을 보이는 입소자 고 씨에 대해 촉탁의사와 상의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의사가 판단해 신경안정제 처방을 내렸고 요양원에서는 의사의 판단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A요양원 측은 그러나 입소자 고 씨가 입소기간 내내 행동장애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고 씨가 파킨슨증에 이를 때까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고 씨의 건강 변화가 주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판순 씨에게 로라제팜 약물을 처방한 의사와 이 약을 이 씨에게 복용시킨 요양원 측은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끝내 거절했다.

취재진은 김진아 씨를 통해 김 씨가 이들 당사자들과  직접 나눴던 대화의 녹취를 입수할 수 있었다.


이 씨에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한 의사는 어머니의 처방을 대신 받은 김 씨가 환자에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같은 처방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현행 요양원 시스템에서는 가족이 직접 노인을 돌보거나 전문 의료인이 상주하는 고급 요양시설에 입소하지 않는

이상 노인에 대한 제대로 된 진료와 처방은 불가능하다고 의사는 덧붙였다.







▲ 이판순 씨가 입소했던 강원도 춘천시 B요양원




춘천 B요양원 측은 입소 시절에는 이 씨에게 과도한 수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신경안정제 사용에 대해서는 의사의 처방약을 그대로 복용시켰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 씨의 퇴소 직후, 딸 김 씨는 어머니의 평소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공개를 요구했지만 요양원 측은 거절했다.

CCTV 영상 보관기간이 2주에 불과해, 이 씨가 행동장애를 보이는 모습은 녹화된 장면이 없다는 이유였다.


요양원의 관리, 감독을 맡고 있는 지자체, 국민건강보험공단 등도 책임을 회피했다. 두 노인의 가족들은 요양원의 화학적 억제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이들 기관에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의료인의 전문적 판단을 요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관할 기관에서는 이 문제를 노인 학대나 방임의 문제로 다루기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보호자가 직접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조사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천시청과 춘천시청, 두 지자체 관계자들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요양원의 화학적 억제를 제재할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민원인의 심증만으로 해당 시설에 행정처분을 내릴 수는 없다고 밝혔다.

요양시설 노인 17% 항정신병 약물 ‘부적절 처방’

국내 요양원의 화학적 억제제 사용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2015년 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보건 2015(Health at glance 2015)'에 따르면, 한국은 노인에 대한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 처방이 OECD 국가 중 가장 많았다.


 1,000명 당 205명 꼴로 처방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평균치인 1000명 당 62명보다 3배 이상 많은 수치다.









국내 91개 노인요양시설에 입소한 노인 1,255명의 실제 처방 내용을 분석한 한 연구결과(정영일 논문, 2016)에서는

 조사대상 노인의 약 17%(1255명 중 215명)가 항정신병 약물을 ‘부적절하게 처방’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는 향정신병 약물의 부적절한 사용을 '허가받지 않은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off-label use)'으로 엄밀하게 규정해 정신병 증상이 나타난 환자에 사용한 적절한 항정신병 약물 사용은 통계에서 제외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 "의료진 불편해도 마련돼야"

노인에 대한 화학적 억제제 사용을 줄일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이미 마련돼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운영 중인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DUR)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할 경우, 의사가 심평원이 지정한 노인주의 의약품을 반복적으로 처방하거나 유사한 효능을 지니는 약물과 중복해서 처방하면 전자 차트를 통해 즉시 경고 메시지를 받게 된다.










하지만 현재 DUR 사용은 선택사항이다. DUR 시스템의 경고에 따르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은 지난 2월 DUR 사용을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이 법안은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쳐 있는 상황이다.


전 의원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이 법안이 요양시설에 입소한 노인들에 대한 약물 오남용 실태를 바로잡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특정 집단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도록 이 법안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재 오대양, 김지윤
촬영 이상찬, 오준식, 정형민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







▲ 강원도 원주시 B 요양원



한국일보 www.hankookilbo.com


전국 1등 요양왕국의 비밀

자녀들에겐 벤츠...생활비도 요양원 돈으로



전국 최대 규모의 요양 시설에서 억대 횡령·배임 사건이 발생했다.

 시설 대표가 사법처리까지 됐지만 감독 당국은 관련 사실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고 행정처분은 없었다.

또 이 시설은 한 해 동안 지급된 장기요양보험 급여 60억 원 중 3분의 1 이상을 금융부채  상환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막대한 장기요양보험 급여가 결국 개인 이익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셈이지만 현행 규정으로는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B 요양원은 법인 매출 기준 전국 최대 규모의 요양 시설이다. 자산 규모 139억 원, 연 매출

 78억 원, 직원 수 200여 명, 입소정원은 300여 명이다.


 원주 도심에 위치한 지상 8층, 지상 6층 규모의 건물도 소유하고 있다.

지난해 이 시설을 운영하는 법인에 지급된 장기요양보험 급여 총액은 60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9월 선고된 춘천지법 원주지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2013년부터 4년 동안 이 시설 이사장 안 모 씨는 시설 운영 법인의 돈 4억 원을 사적으로 사용했다.


법인 명의로 구입한 5,900만 원 상당의 메르세데스 벤츠 C클래스와 1,500만 원대 아반떼를 아들과 딸에 제공했다.

가족이 살 아파트를 법인 자금 2억 6천만 원을 들여 구입했다.

시설에 근무하지 않는 딸에게 급여를 지급한다는 명목으로 총 33차례에 걸쳐 6,000만 원을 빼돌렸다.

 이 돈은 안 씨 본인과 딸의 생활비 등으로 사용했다.






▲ B 요양원 이사장의 횡령·배임 내용들



요양보험 급여 20억 원...법인 부채 상환에 쓰여

B 요양원은 2008년 입소정원 9명 규모의 소형 시설에서 시작해 불과 10년 만에 전국 최대 규모의 시설로 성장했다.

 이 같은 빠른 성장의 이면에는 제도의 허점이 있었다.

이 시설 운영 법인이 공시한 재무회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 시설의 금융 부채는 106억 원이 넘었다.

 건물 신축과 운전 자금 확보를 위한 대출이었다.


상환에 투입되는 재정은 연 20억 원이 넘는다.

지난해 15억 원가량이 원금 상환, 6억 원가량이 이자 상환에 들어갔다.

이 금액을 충당하는 것은 입소자 가족이 내는 본인 부담금과  장기요양보험 급여다.

이 시설이 한해 지급받는 장기요양보험 급여 60억 원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법인의 부채 상환에 쓰이고 있는 셈이다.









▲ 2018년 B 요양원이 원금과 이자 상환에 지출한 돈은 장기요양급여의 3분의 1 이상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상환이 완료되면 법인은 부채가 없는 건물을 온전하게 소유하게 된다.

상당액의 장기요양보험급여가 결국 법인의 이윤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시설 운영 목적의 원금 상환금은 상한 없이 회계 처리할 수 있도록 열어 놓은 현행 재무·회계 규칙을 악용한 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시설 운영을 위한 대출금에 한해 필수적인 지출 이외의 급여에서 원금 상환금을 지출

할 수 있게 해놓고 있다며, 문제가 확인되면 상한 설정 등의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장기요양기관 재무·회계규칙. '원금상환금' 회계 처리를 허용하고 있다.




횡령,배임 판결 받아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

B요양원 법인 이사장 안 씨는 업무상 횡령, 업무상 배임 혐의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 8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선고 이후에도 안 씨는 문제 없이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횡령·배임으로 법인에 막대한 손해를 입혀도 이사장 안 씨에 책임을 물을 사람은 없다.


이 법인의 이사, 주주는 안 씨의 직계가족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감독 당국의 행정처분도 없었다.

원주시청 관계자는 취재진이 B 요양원의 횡령·배임 사건에 처분 결과를 문의하자 해당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답했다.


해당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전달받은 사항이 없다며, 법인 회계 상 발생한 불법 행위는 감독 과정에서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관리공단 관계자 역시 공단은 부당 청구에 대해서만 관여할 뿐 시설의 형사 범죄는 소관이 아니라고 말했다.  

취재진은 B 요양원 측에 취재 내용을 밝히고 수차례 해명을 요청했으나 B 요양원 측은 답변을 거절했다.





취재 오대양, 김새봄
촬영 이상찬, 신영철, 정형민
편집 김은
CG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




지난해 4월부터 9월까지 한민수(가명)씨 어머니가 지냈던 세번째 요양원 노인들이 일부 요양보호사로부터 학대당한 모습. 간호조무사 ㄱ씨가 문제를 제기했지만 요양원 원장은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다. 간호조무사 ㄱ씨 제공


지난해 4월부터 9월까지 한민수(가명)씨 어머니가 지냈던 세번째 요양원 노인들이 일부 요양보호사로부터 학대당한 모습. 간호조무사 ㄱ씨가 문제를 제기했지만

 요양원 원장은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다.


간호조무사 ㄱ씨 제공






엄마의 몸에 없던 멍이 생겼다…2년 뒤 엄마는 하늘로

 대한민국 요양 보고서 2부 요양원 비리 ①학대와 횡령
요양원 보낸 치매 어머니 학대당해도 항의 엄두 못내
‘자신인 내가 죄인’ 자책할 뿐 그렇게 2년 뒤 엄마는 하늘로…



2018년 말 기준 한국의 65살 이상 노인 인구는 739만명이다. 추정 치매 환자는 75만명가량이다.
지난해 건강보험료 등에서 노인 요양에 지출된 재정은 모두 6조6758억원이다.
노인 인구는 2025년 1천만명, 2035년 15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요양 보고서’ 1부는 요양원에서의 한달 근무와 재가방문요양보호사(방문요양보호사) 심층 인터뷰를 통해
 노인 돌봄의 그림자를 다뤘다. 2부는 2회에 걸쳐 요양원 비리에 본격적으로 접근한다.

1회에서는 2017년 3월부터 2년 동안 서울에서 치매 어머니와 요양원 4곳을 전전해야 했던 한 아들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고,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장기요양기관을 고발하고 수사 의뢰한 사건 가운데 확정된 판결
문 39건도 단독 입수해 분석했다.

     
엄마의 몸에 멍이 나 있었다.
 한민수(가명·57)의 머릿속에 언뜻 떠오른 생각이 있었지만 애써 고개를 저었다.
 ‘어딘가에 부딪혔겠지.’ 중증 치매를 앓는 엄마니까 넘어졌거나 어디에 부딪혔을 거라고 믿었다.

그것은 이미 한차례 옮겨온 이 요양원이 나쁜 곳이어서는 안 된다는 한민수의 자기합리화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의지를 꺾는 증거가 자꾸만 생겼다.
 엄마를 보러 올 때마다 멍이 늘어난 것이다. 곰곰이 따져보니 특정 요양보호사가 근무하는 날마다 자주색 멍이 생겼다.

멍이 파란색, 보라색, 녹색으로 바뀌어 사라질 때쯤이 되면 그 요양보호사의 근무가 돌아왔고, 엄마의 몸에 새로운 멍이 생겼다.

요양원에서 엄마에게 위층으로 방을 옮기라고 권유한 적이 있다.

엄마는 위층에 남자 어르신이 많다고 거절했다. 한민수가 되짚어보니 엄마의 몸에 멍이 들기 시작한 시점이 그때
쯤이었다. 화가 났다.
그러나 한민수는 화를 삭여야 했다.

화를 내거나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시시티브이(CCTV)를 보여달라고 하면, 한민수가 방문하는 짧은 순간을 빼고 대부분의 시간을 요양보호사와 함께하는 엄마가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나는 부모를 요양원에 보낸 죄인’이라고 되뇔 뿐이었다.

2017년 초까지만 해도 한민수는 엄마와 함께 살았다.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오전 9시에 엄마를 데려갔다가 오후 4시에 집 근처까지 데려다줬다.
그런데 사고가 터졌다.
 어느 날 오전, 엄마를 데려가는 센터 차를 기다리다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참이었다.

 엄마가 사라졌다.
방에도, 옥상에도, 집 밖에도 엄마는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뚜르르르르.” 신호음이 흐르는 몇초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짧은 안도가 지나간 자리를 치밀어 오른 화가 채웠다.
입술을 꾹꾹 깨물며 입을 뗐다.

“엄마 어디세요?”

“나 센터 가고 있어.”

옆에 있는 사람을 바꿔달라고 한 뒤 상황을 설명했다.

“저희 어머니께서 치매가 있으신데 혼자 무작정 지하철을 타셨네요.
가야 할 방향도 아닌데….”

다행히 전화를 건네받은 이가 엄마를 반대 방향 지하철로 안내해줬다.
그분이 다른 승객에게 사정을 이야기했고, 그 승객은 한민수가 기다리고 있는 지하철역에 엄마를 데려다줬다.
 우여곡절 끝에 엄마를 찾아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한민수는 생각했다.
‘이제 더는 예전과 같을 수 없겠구나.’

그렇게 짧은 실종 상태가 몇차례 더 있었다.
그것은 엄마의 치매가 중증으로 치닫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는 몇년 전 아내와 이혼했다.
아들 둘은 대학을 다니느라 바빴다.

 엄마를 돌볼 사람은 한민수뿐이었다.
 돈을 벌 사람도 한민수뿐이었다.

문제는 엄마가 센터에 머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만 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오가는 시간을 빼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점심을 거르더라도 5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시간에 50살을 훌쩍 넘긴 남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인력업체가 알선하는 다양한 일을 군말 없이 했다.
주로 하는 일은 식당 설거지였다.

 엄마는 매일 아침 센터 차 앞에서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이처럼 몇번을 뒤돌아보며 떼를 썼다.
한민수의 속은 타들어갔다.
 지금 엄마를 센터 차에 태우지 않으면 하루 일당이 날아간다.

어느 날은 엄마가 집 청소를 다 하고 나가겠다며 뭉그적댔다.
 아들의 급한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원망스러워 눈물이 흘렀다.

“도대체 왜 그래!” 한민수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한민수는 세 남매 가운데 막내다.
 철없던 시절, 파출소를 들락거리며 말썽을 피웠다.

 그래도 엄마는 회초리 대신 새 오리털 패딩을 내밀며 웃어주었다.
그래서일까. 말썽쟁이 막내를 품어준 엄마에 대한 한민수의 애착은 유난히 강했다.
항상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결혼하고도 형 대신 엄마를 모셨다.

삶의 끝까지 엄마와 작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그 다짐이 정녕 옳은가 자문했다.

엄마의 치매가 점점 심각해졌고 한민수가 화를 내는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걸레와 수건을 구별하지 못하는 건 그나마 괜찮았다.
샴푸 대신 락스를 집어 들고 머리를 감으려 할 때는 큰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새벽에 자다 깨보니 떡을 하겠다며 온갖 그릇을 꺼내 쌀을 담아놨다.
거실 바닥은 독에서 옮기다 흘린 쌀알로 가득했다.

 한민수는 난장판이 된 거실과 쌀이 담긴 그릇 사진을 찍어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다.
 “엄마가 밤새 안 주무신 거 같다. 떡을 하신다고….
나중에 보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제목은 ‘어머님의 떡시루’. 마음속에서 마지막이 오고 있음을 짐작했던 걸까.

그 글을 올린 지 한달 뒤인 2017년 3월, 한민수는 결국 엄마를 요양원에 모셨다.
 치매 발병 5년 만이었다.

첫번째 요양원은 친한 형님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집 근처라 자주 가기도 좋았다.
요양원에 있는 다른 노인들을 보니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나만 불효자는 아니구나.’ 그래도 마음에 빚은 남아 매일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는 헤어질 때마다 마치 그날이 요양원에 온 첫날인 듯 말했다.

“민수야, 집에 가자. 민수야, 집에 같이 가.” 엄마의 말은 족쇄보다 무겁게 발목을 옥죄었다.
한민수는 매일 쇠사슬을 끊어내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엄마는 요양원에 적응하지 못했다. 조용한 산을 좋아하던 엄마에게 낯선 노인들의 소음과 갖가지 소동 속의 삶은 고통이었다.

 요양원장과의 친분도 되레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런저런 처우를 바꿔달라고 말하고 싶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원장 형님이 “요양보호사가 말도 없이 그만둬버렸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형이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랬겠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한민수씨 어머니가 지냈던 세번째 요양원에서 지난해 제공된 급식 사진. 부족한 급식에 노인들은 늘 배를 곯아야 했다. 간호조무사 ㄱ씨 제공




한민수씨 어머니가 지냈던 세번째 요양원에서 지난해 제공된 급식 사진. 부족한 급식에 노인들은 늘 배를 곯아야 했다.


간호조무사 ㄱ씨 제공

  




요양원 입소 3개월 만에 한민수는 엄마를 집에 모시고 왔다.
그리고 3개월을 버텨봤지만 결국 일을 하며 엄마를 모시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되돌아갔다.
낮에는 어떻게 버텨볼 만했다. 하지만 한민수는 자신이 잠든 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었다.

그 불안감이 일상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다른 곳은 낫지 않을까?’ 한민수는 2017년 9월 두번째 요양원의 문을 두드렸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엄마의 몸에 멍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한민수는 7개월 만인 2018년 4월 엄마를 다시 집에 데려왔다.

“민수야, 너무 좋다. 우리 집이 너무 좋다. 우리 같이 살자.” 옆에 누운 엄마가 쉴 새 없이 뽀뽀했다.
하지만 날이 밝으면 엄마는 세번째 요양원에 입소한다. 이미 10명 미만의 노인이 지내는 작은 요양원(노인공동생활
가정)을 예약해뒀다.

7개월 만에 집에 돌아온 엄마는 이제 계속 집에서 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민수는 어느 때보다 신난 엄마에게 내일 밤은 함께할 수 없다고 이야기할 자신이 없었다.
아무 말 없이 엄마를 끌어안았다. 굽은 등이 평온한 심장박동을 따라 들썩거렸다.

‘다 때려치우고 엄마를 집에 데려올까?’ ‘좀 더 참고 희생하면 되지 않을까?’ 이미 결론지었던 의문을 또 품었다.
그러나 어떤 다짐도 현실 앞에서 무력하다는 사실을 한민수는 잘 알고 있었다.
엄마가 다치기라도 하면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요양원에 엄마를 보내는 건 정말 엄마를 위해서일까,
 나를 위해서일까.’ 그 질문에 끝내 답하지 못한 한민수는 밤을 꼬박 새웠다.

“신랑, 내가 아픈 데도 없는데 이제 집에 가야지.” 세번째 요양원에서 엄마는 한민수를 가끔 ‘신랑’이라고 불렀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는 20년이 넘었다.
엄마의 상태는 더 나빠졌고 그럴수록 집 타령은 늘었다.

 “여기는 답답하고 신랑이랑 살 수가 없다.”
집에 가야 할 이유를 댈 때만은 엄마는 온 힘을 다해 정신을 부여잡고 있는 듯했다.
그때마다 한민수는 설명했다. “엄마, 집에 있는 냄비가 하나도 성한 게 없어. 엄마가 집에 있으면 불낼 수도 있어.
집에는 턱도 많아서 위험한데 여기는 턱도 없잖아. 엄마, 내가 계속 엄마에게 화내면 어떡할래.”

그렇게 몇개월이 지나고 엄마의 간절한 부탁을 이기지 못한 한민수가 엄마를 하루 집에 모셔왔다.
 아이처럼 좋아하던 엄마는 그날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때는 그것이 엄마가 오랜만에 집에 온 게 좋아서라고만 생각했다.
그날 밤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보호자님, 취침약이 빠졌네요….

” 엄마를 돌보던 간호조무사의 전화였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그때 간호조무사가 취침약을 주지 않은 게 실수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요양원장이 그렇게 지시한 것이었다.

 당시 전화를 걸어왔던 간호조무사 ㄱ씨는 요양원을 그만둔 뒤 한민수에게 “원장이 ‘보호자도 고생을 해봐야 우리
고마운 줄 안다’며 부모를 집에 데리고 가는 경우 취침약을 빼고 약을 주라고 지시했다”고 고백했다.
 그날 ㄱ씨가 전화를 걸었던 건 원장의 지시를 이행해놓고 내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민수는 그 하나의
 사건으로 세번째 요양원에 대한 모든 신뢰를 잃었다.

ㄱ씨는 <한겨레>와 만나 세번째 요양원의 문제를 낱낱이 털어놨다.
“어르신 옷을 벗겨놨는데 똥을 쌌다고 ‘귓구멍을 못으로 박아야 귓구멍이 뚫려서 말을 듣겠냐’는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ㄱ씨는 요양보호사들이 어르신들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여러차례 목격했다.
 말을 듣지 않는 노인을 제압하려 요양보호사가 노인 위로 올라가 몸을 누르는 경우도 봤다.

그날 노인의 손에는 멍이 남았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ㄱ씨는 적어도 폭력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참다못해 이 사실을 요양원장에게 말했다.
요양원장은 외면했다.

식사 문제도 심각했다.
 “요양원 직원들이 짜장면을 시켜 먹으면 주방 선생님이 단무지를 남기라고 해요.
왜 그러냐고 물으면 반찬 만들어야 한대요.

남은 단무지 9개를 채 썰어서 노인 한 사람당 다섯 조각씩 줍니다.” 9명의 일주일치 반찬 재료가 시금치 한단, 콩나물
한봉지, 오이 두개인 이 요양원에서 노인들은 늘 배를 곯았다.
간식비를 따로 받으면서도 간식은 요양원장이 따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요구르트 한두개씩을 빼와 보충했다.

 당연히 충분했을 리 없다.

ㄱ씨와 같은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했던 ㄴ씨의 말도 다르지 않았다.
 “보호자가 사 온 두유를 간식으로 줘요. 그것도 하나를 두세번에 나눠서. 배고픈 어르신들은 그 두유 한모금을 못 먹을까 내내 그것만 쳐다봐요.

”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이는 것은 다반사였다. 요양원장이 어디선가 얻어 온 도넛을 냉동했다가 간식으로 내놓기도 했다. 노인들이 그런 음식을 먹고 설사하면 요양원장은 “약 먹여요” 한마디만 하고 말았다.

고발해도 소용이 없었다.

 한번은 구청에 부실급식 신고가 들어갔다.
신고에도 단속이 늦어지자 ㄱ씨는 요양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사용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구청에
 보냈다.

하지만 구청은 점검을 나간다는 사실을 미리 요양원장에게 알렸다.
그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으로 가득 찬 냉장고는 말끔히 치워졌다.
 구청 직원은 “누가 자기를 음해한 것”이라는 요양원장의 말을 너무 쉽게 믿었다. 
 한민수는 식단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았다.

엄마가 비쩍 말라갔기 때문이다.
식단표에 적힌 반찬은 늘 화려했다.
하지만 ‘잡곡밥/강낭콩죽, 호박두부된장국, 돈육두루치기, 어묵볶음, 짠무무침, 포기김치’라는 식단이 적힌 날, 엄마의 식판에는 단무지 한쪽에 건더기 없는 맹탕국이 나왔다.

참다못해 직원에게 한마디 하자,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한민수가 목격한 맹탕국의 실체는 참담했다.
한 보호자가 사 온 갈비탕 1인분에 물을 넣어 18인분을 만든 뒤 노인 9명에게 두끼를 먹였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사실을 알게 된 한민수는 분노의 눈물만 흘렸다.

엄마는 맹물에 만 밥과 먹다 남긴 단무지 반찬도 그저 “맛있다”고 했다.
집에 가자는 이야기는 그렇게나 하면서 밥이 맛없다,
배가 고프다는 그 말을 엄마는 하지 않았다.

아들이 걱정할까 우려해서였다.
식단이 부실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한민수는 식사시간에 맞춰 엄마를 보러 갔다.
매번 식판을 사진으로 찍었다.
며칠 지나 요양원장이 한민수를 불러 그 이유를 물었다.

 “쓸데가 있다”고만 답했다.
요양원장은 자신이 급식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 뒤부터 식사 때마다 꼬박꼬박 사진이 왔다.

조금 나아졌나 했지만, 엄마가 외출해서 한민수의 곁에 있는 날에도 어김없이 ‘엄마가 드시고 있는 음식’이라며 멀쩡해 보이는 음식이 담긴 식판을 찍어 보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한민수는 지난해 9월23일 세번째 요양원에서 엄마를 모시고 나왔다.

네번째 요양원도 마음에 차진 않았다.
어느 날 엄마를 요양원에서 데리고 나와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차 안에서 똥냄새가 진동했다.

 요양원에선 아무리 외출 시간을 미리 알려줘도, 똥을 많이 싸도, 기저귀는 정해진 시간에만 갈았다.
규정이 그렇다고 했다.
 학대하거나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을 급식으로 내놓는 것에 견주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요양원을 세번이나 옮긴 한민수는 이제 포기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엄마가 네번째 요양원에서 지낸 지 다섯달이 되던 지난 2월26일이었다.
그날 한민수는 여느 날처럼 퇴근한 뒤 엄마를 보러 갔다. 한시간 정도 있다가 일어나려는데 엄마가 한민수를 껴안았다. “집에 같이 가자.” 그날따라 엄마는 유독 강하게 한민수를 놔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엄마의 모습이 유난했다는 건 나중에야 깨달았을 뿐이다.
한민수는 억지로 엄마의 팔을 풀었다.
 “엄마가 집에 혼자 있어야 하면 내가 불안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하필 한민수는 냉정하게 굴기까지 했다.

몇시간 뒤 요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가 잠에서 깨질 않으세요. 좀 더 지켜볼까요,
아니면 119를 부를까요?”

한민수는 요양원으로 달려갔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사인은 뇌출혈. 한민수는 그렇게 엄마와 작별했다.

엄마의 장례를 마치고 얼마 뒤 누나가 한민수에게 사진 한장을 보내왔다.
한민수가 엄마에게 챙겨줬던 만화 성경책의 한 페이지였다.

 누나는 한민수에게 “엄마가 거기다 뭐라고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를 자세히 뜯어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착한 아들, 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보호사 2명이 노인 18명 식사 챙기는 현실”





“기자를 떠나 삶의 가치가 바뀔 정도로 인생에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 지난 20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 근처 카페에서 만난 권지담<사진> 한겨레 기자는 요양원 한 달 체험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지난 13일 시작한 한겨레 창간기획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기획 1부 ‘돌봄 orz’를 맡아 썼다.

지난 1월29일부터 한 달간 인천과 부천의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요양원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

 기사였다.


기획의 시작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그 해 상반기 ‘노동 orz’ 문제를 보도한 노현웅 기자는 우리 사회 두 가지 문제 중 하나인 청년 문제를 다뤘으니 하반기엔 노인 문제를 다루자고 24시팀에 제안했다.


 다양한 방식을 고민했지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노인 요양 실태를 직접 보자는 생각이 강했다.

할아버지가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던 경험 때문에 요양원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권 기자는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냈고, 이후 그의 현장 투입이 결정됐다. 그렇게 취재가 시작됐다.


권 기자는 가장 먼저 요양보호사 교육원에 들어갔다.

노인복지법에 따라 전문교육기관에서 이론·실기·실습 240시간을 이수하고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요양보호사로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부터 그는 근무에서 제외돼 하루 종일 학원에서 간호와 식품위생 등을 공부했다.

다행히 두 달 후엔 시험에 합격했고 지난 1월24일 취업에 성공했다.

권 기자는 “자격증이 나오기 전인 12월 말까진 전문가들을 만나 사전 취재를 했다.


 현장에 들어가 어떤 것들을 봐야 하는지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며 “자격증이 나오고선 바로 구직 활동을 했는데

 생각보다 취업이 쉽지 않았다.


원래 방문요양인 재가요양보호사를 하려 했지만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없는 저를 어떤 가족도 쓰려 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자격증을 몇 십 부씩 인쇄해 무작정 요양원에 뿌리고 다녔다.

사실 비리도 있고 더욱 심각한 곳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곳에선 다 취업을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요양원의 실태는 처참했다. ‘오직 죽어야만 퇴소할 수 있는 사실상의 수용소’였다.

근무 첫 날 점심시간, 요양보호사 2명이 노인 18명의 식사를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 권 기자는 ‘돌봄’보다 ‘처리’를,

 ‘요양’보다 ‘효율’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요양원의 생리를 터득했다.


 밖으로 나갈 수도, 목욕을 할 수도,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도 없는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밥을 거부하는 것뿐이었다.

권 기자는 “절대 들어가고 싶지도, 부모님을 들여보내고 싶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들의 근무 환경 역시 열악했다. 철저한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이 없다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80~90kg 노인의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느라 근골격계 질환을 안 달고 있는 요양보호사가 없었다.


권 기자 역시 “앉아 일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생각할 정도로 하루 종일 청소, 빨래, 식사 준비 등을 쉼 없이 했다. 퇴근할 때면 발이 퉁퉁 부어 신발을 구겨 신어야 할 정도였다.

 치매 노인에게 맞고 욕설 듣는 건 기본, 가족에게 의심받고 요양원장에게 감시당하는 등 감정노동도 심각했다.

그렇게 한 달 152시간을 일한 급여는 주휴수당 3일치를 더했음에도 146만9600원(세전)에 불과했다.


권 기자는 그런 실태를 기사에 가감 없이 기록했다.

 그 때문인지 원고지 200매 분량의 긴 기사임에도 독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출판 제의를 하는가 하면 ‘이제까지 읽은 기사 중 최고였다’

 ‘많은 노력과 열정으로 쓰신 좋은 기사 감사하다’ 등 누리꾼들의 호응도 이어졌다.


권 기자에게도 수십 통의 메일이 왔다. 단순히 잘 봤다는 수준이 아니라 각기 A4 3장씩은 될 정도로 궁금한 점과 대안을 묻는 글이었다.


권 기자는 “그런 독자 반응을 볼 때마다 기쁘고 뿌듯한 마음보다는 그만큼 대안을 잘 써야겠다는 책임감과 부담이

 더 커졌다”며 “국가가 알아서 하라고 쓰면 편하겠지만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지 않는다. 기사의 궁극적인 목적이 현실 직시와 인식 개선에 있는 만큼 좋은 사례와 독자 궁금증을 최대한 반영해 팀원들과 후속 기사를 써보려 한다”고 말했다.


이번 보도로 보건복지 분야에 대한 권 기자의 관심도 높아졌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공부를 계속해서 이 이슈를 끌고 가고 싶다”며 “노인들과 지내며 말로 설명하지 못할 많은 감정들을 느꼈는데 실제 일 끝난 후에도 눈물이 왈칵 날 정도로 몰두를 많이 했다.

10년 뒤에 한 번 더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그 때는 어떻게 변했는지 취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