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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음악( Newage* )

Stevie Ray Vaughan - Pride and Joy , Little Wing

 

 

 

 

 

 


Stevie Ray Vaughan - Pride and Joy

 

 

 

 

 

 


Pride And Joy / Stevie Ray Vaughan


 


Pride And Joy / Stevie Ray Vaughan

 

 

 

 

 

 

Pride And Joy

 

 

Well you've heard about love givin' sight to the blind
My baby's lovin' cause the sun to shine
She's my sweet little thang....She's my pride and joy
She's my sweet little baby....I'm her little lover boy

Yeah I love my baby....Heart and soul
Love like ours won't never grow old
She's my sweet little thang....She's my pride and joy
She's my sweet little baby....I'm her little lover boy

Yeah I love my lady....She's long and lean
You mess with her....You'll see a man get mean
She's my sweet little thang....She's my pride and joy
She's my sweet little baby....I'm her little lover boy

Well I love my baby....Like the finest wine
Stick with her until the end of time
She's my sweet little thang....She's my pride and joy
She's my sweet little baby....I'm her little lover boy

Yeah I love my baby....Heart and soul
Love like ours won't never grow old
She's my sweet little thang....She's my pride and joy
She's my sweet little baby....I'm her little lover boy

 

 

 

 

 

 

 

 

 

 

 

 

 

 

 

 

 

 

 

 

 

 

 

 

 

 

 

 

             출처 : http://djnara.egloos.com/635372

 

 

 

 

스티비 레이 본은 지미 헨드릭스의 팔로우적인 존재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도 역시 짐과 마찬가지로 블루스의

 전통을 록의 시대에 재현하는 것을 이어온 위대한 기타리스트의 한 명이다.

 

1954년 10월에 텍사스의 달라스에서 태어난 그는 형인 지미 레이 본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기타와 블루스에 흥미를

 느껴 그 형을 따라 10대 때 오스틴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티스 러쉬의 곡에서 이름을 붙인 더블 트러블이라는 그룹을 조직한 그는 열심히 라이브를 계속하던 중

데이빗 보위에 인정을 받아 그 만남을 계기로 일렉트로 팝 전성시대에 새로운 타입의 블루스맨으로서 데뷔하여

음악계에 충격을 주었다

 

1990년 여름에 막을 내린 그의 짧은 생애 최후의 스테이지는 에릭 클랩튼의 게스트로서였다고한다.

 '입을 딱 벌리고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고 클랩튼은 그 스테이지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얼마전 지미 헨드릭스의 누이가 한국의 모 음악지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지미 헨드릭스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 중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인물로 바로 스티브 레이본을 지적한 바 있다.

 

백인으로서 흑인의 음악인 블루스를 자신의 기타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레이본은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지미 헨드릭스처럼 너무 빨리 세상을 뜨고 말았다.

 

 요즘 스티비 레이 본의 후계자로는 케니 웨인 쉐퍼드 같은 인물이 지목되고 있다.

스포츠 팬이 아니더라고 텍사스 하면 연상되어지는 것? 메이저 리그의 박찬호 선수. 블루스 팬이 아니더라도

 텍사스 블루스 하면 연상되어지는 기타리스트?

 Stevie Ray Vaughan(스티브 레이 본). 그를 텍사스 블루스를 대표하는 거장이라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1990년 8월 26일 Eric Clapton, Buddy Guy등 쟁쟁한 블루스 기타 리스트들과 위스콘신에서 합동 공연을 마치고

시카고로 가던 중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인해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시카고 블루스, 델타 블루스 와

 더불어 블루스 음악계의 커다란 축으로 부각되는 텍사스 특유의 깔끔한 스타일의 블루스를 연주하는 기술과 천재성을

 겸비한 대표적인 블루스 기타 리스트라 할 수 있다.

 

1954년 텍사스의 달라스 태생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의 형인 Jimmie Vaughan(역시 이름난 블루스 기타리스트 이다)의 영향으로 중학교 때부터 그의 형과 더불어 동네의 블루스 클럽에서 연주 기회를 가질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의 나이 17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전문적인 음악인의 길로 들어서면서 70년대 중반 텍사스의 오스틴 등지에서

 'Cobras' 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시작하였고, 여러 음악인들과 함께 해체와 재결성을

거듭하여 클럽활동을 하던 중 1982년 Double Trouble 이란 이름으로 몬트레이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된다.

 

이때 그는 이미 오스틴 지역의 최고 기타 플레이어로 인정 받고 있던 유능한 음악인이 되어있었다.
이 공연에서 당시의 인기 가수이던 David Bowie의 눈에 띄게 되고 이러한 인연으로 David Bowie가 82년 발표한

[Let's Dance] 앨범에 객원 기타리스트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음악시장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이듬해인 1983년 Stevie는 그의 밴드인 Double Trouble과 함께 데뷰 앨범인 [Texas Flood] 를 발표하게 되고

이 앨범은 큰 히트를 하게 되며 블루스 앨범으로는 드물게 그 해 앨범차트 38위에 오르는 업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는 원래 David Bowie의 [Let's Dance] 앨범 프로모션을 위한 순회공연에 객원 기타리스트로 참여하기로

되어있었으나 이 앨범의 예상치(?) 못했던 성공으로 자신의 밴드들 위한 단독 전국 순회공연을 나서게 된다.

 

이 후 성공적인 순회공연을 마치고 1984년 5월 두 번째 앨범인 [Couldn't Stand the Weather] 를 발표하게 되고

이 앨범은 차트의 31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두며 그는 이제 메이져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굳히게 된다.

 

 1985년에 발표된 그의 세 번째 앨범인 [Soul to Soul] 역시 전과는 달리 정식으로 키보디스트를 영입하여 보다

안정적인 사운드 뿐만 아니라 폭 넓은 음색의 구성을 통해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끌게 된다.

끊임없는 공연과 열정적인 앨범작업의 결과로 1989년 발표된 네 번째 앨범 [In Setp] 은 그의 앨범 중에서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 받으며 그 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고의 블루스 앨범상' 을 획득하게 된다.

 

 

숨돌릴 틈 없이 10여년 가까이 왕성한 음악활동(계속되는 공연으로 1989년도 한해에는 기타의 플렛을 4번이나 새 걸로

 바꾸었다는 애기도 전해진다)을 해온 이 천재적인 기타리스트를 하늘이 아까워 해서일까?

그의 음악 생활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공연 중 하나로 평가 받은 거장들과의 합동공연을 마치고 시카고로 가던 중

그의 연주 곡인 "Little Wing" 처럼 보이지 않는 날개를 달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 천재 기타리스트를 애도하는 차원에서 그의 형인 Jimmie Vaughan이 생전에 동생이 해왔던 작업들을 모아서

콜렉션 앨범으로 1991년 10월에 발표한 "The Sky is Crying"은 그의 천재성과 뛰어난 음악성을 기억하려는 팬들에 의해서 3개월 만에 백만장이 넘게 팔리는 기록을 세우면서 사람들에게 그의 천재성을 다시 한번 알리게 된다.

우리들에게 음악이 줄 수 있는 감동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준 Stevie Ray Vaughan - Jimi Hendrix와는 또 다른 해석을

통해 맑고 힘있는 여운을 주는 "Little Wing"을 들으며 더운 여름 저 하늘 어딘가에서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Jimi 와 함께 우리를 보고 있을 그를 떠올려 본다.

 

 

 

 

출처 : http://kr.blog.yahoo.com/shinjk00/653087

 

 

 

지미 헨드릭스 (Jimi Hendrix) 이후 기타 톤의 입자 굵기를 따진다면 단연 스티비 레이 본 (Stevie Ray Vaughan) 이다. 그의 블루스 톤의 입자, 정말 굵다. 실제 기타줄도 굵어서 1번 스트링이 0.13 게이지이고, 표준 튜닝에서 반음 내린 Eb 튜닝을 하고는 Em Pentatonic Scale 을 즐겨 연주한다. 그러니까 들을 때는 Eb key 의 블루스로 들리게 된다.

미국 남부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텍사스 블루스의 전설이고 1990년 헬기 사고로 불귀객이 되기까지 그가 남긴 연주를 듣고 있으면 그 사운드의 두께에 감탄하고 또 감탄한다. 스티비 레이 본은 그 톤으로 지미 헨드릭스의 <Little Wing> 을 명품의 연주곡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했다.

그가 남긴 그야말로 선 굵은 톤의 마력 때문인지, SRV 이 사용한다는 Ibanez 의 Tube Screamer (TS9, TS808) 라는 이펙트 페달을 사서 이리저리 조합을 만들어 봐도 도대체가 나오지 않는 그의 톤에 좌절도 좀 하고...

 

스티비 레이 본의 연주로 즐겨 듣는 음악 중 하나가 "She's my Pride and Joy..." 여자 친구를 위한 사랑의 블루스로 연주했다는 <Pride and Joy> 라는 곡이 있다. E E E E | A7 A7 E E | B7 A7 E E 가 계속 반복되면서 그 위에 Em 펜타토닉 스케일의 백킹과 솔로가 펼쳐지는 전형적인 교과서적인 12 마디 블루스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반음을 내린 튜닝으로 실제로는 Eb 키로 들린다.

스티비 레이 본의 데뷔 음반인 1983년 <Texas Blood> 에 실려 있는 곡이기도 하다. 이 음반은 즉석해서 의기투합하여 3일 만에 만들어진 일화로도 유명하고 스티비 레이 본을 일약 스타로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해인 1983년에 그가 앨버트 킹과 함께 연주한 <In Session> 이라는 음반 또한 즐겨 듣는데 이거 예술이다.

흥겨운 셔플 리듬과 셋잇단음의 짧은 크로마틱 진행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리듬의 다이나믹함도 느낄 수 있고 블루스를 배울 때 첫날 배운다는 Em 펜타토닉 스케일과 E 키의 12마디 블루스 패턴의 조화가 그 두터운 입자의 톤과 어우러져 비교적 심플하면서도 굉장히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를 연출한다.

이거 하나만 제대로 충분히 연습해도 어느 순간에 나만의 Em 펜타토닉 솔로를 시도해 보고 있는 스스로를 만나게 될 것이고 마치 내가 SRV 라도 된듯 그때부터 블루스라는 음악의 매력과 마력에 아주 흠뻑 빠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