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Bel Di Vedremo (어떤 개인날)
Giacomo Puccini
Madama Butterfly, act II
Un bel dì, vedremo
levarsi un fil di fumo
sull'estremo confin del mare.
E poi la nave appare.
Poi la nave bianca
entra nel porto,
romba il suo saluto.
Vedi? È venuto!
Io non gli scendo incontro. Io no.
Mi metto là sul ciglio del colle e aspetto,
e aspetto gran tempo
e non mi pesa,
la lunga attesa.
E uscito dalla folla cittadina,
un uomo, un picciol punto
s'avvia per la collina.
Chi sarà? chi sarà?
E come sarà giunto
che dirà? che dirà?
Chiamerà Butterfly dalla lontana.
Io senza dar risposta
me ne starò nascosta
un po' per celia
e un po' per non morire
al primo incontro;
ed egli alquanto in pena
chiamerà, chiamerà:
"Piccina mogliettina,
olezzo di verbena"
i nomi che mi dava al suo venire.
(a Suzuki)
Tutto questo avverrà,
te lo prometto.
Tienti la tua paura,
io con sicura fede l'aspetto
어떤 개인 날
바다 저 멀리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고 배가 나타납니다.
희고 큰 배는 항구로 와서 예포를 쏘아 올리고
보이지요 그가 왔어요.
나는 만나러 갈 겁니다 언덕에서 기다리는 것을 ....
얼마든지 오래도록 기다릴 수 있어요.
그런 기다리님은 괴로움이 아닙니다.
군중을 헤치고 어느 한 사람이 달려서
언덕으로 올라오면서
누구일까요 ? 누구일까요?
언덕에 올라오며 뭐라고 부를까요?
먼곳에서 "나비야" 라고 부를 겁니다
장난으로 나는 대답 하지 않고 숨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반가워서 죽을 것만 같아요
그러면 나는 나를 부를 거예요
"귀여운 내 오랜지 꽃처럼 아름다운 아가씨"라고
그 분이 나에게 불러준 이름입니다.
그는 꼭 이렇게 돌아 올 거예요
걱정하지 않아요 나는 믿고 기다릴 테니까
Puccini : Madame Butterfly
Un Bel Di Vedremo (어떤 개인날)
존 루터 롱의 소설을 루이지 일리카, 주세페 지코사가 각색
1904년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초연.
2차대전 때 히로시마와 더불어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으로 유명한 항구도시 나가사키. 이곳에는 일본으로 귀화한 스코틀랜드인 토머스 글로버의 저택과 글로버 공원이 있고, 공원에는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 오페라 [나비부인]의 주역 소프라노 미우라 다마키가 극중 차림새로 아이를 데리고 서 있는 동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제국주의 열강에 문을 열었던 일본에서 개항과 함께 서양 문물을 제일 먼저 받아들인 곳도 바로 이 나가사키였습니다. 서양인들이 들어오자 일본 게이샤들은 이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게 되었고, 매춘과 국제결혼으로 인해 새로운 사회문제들이 생겨났지요. 이들과 결혼까지 했다가 남자가 혼자 본국으로 돌아가 버려 버림받는 게이샤도 더러 있었습니다.
미국 작가 존 루터 롱은 선교사의 아내로 나가사키에 살았던 누이를 통해 이런 게이샤의 실화를 알게 되었고, 1898년 미국 잡지 <센추리 일러스트레이티드>에 이 실화를 소설로 각색해 연재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사실 이와 비슷한 소재를 다룬 피에르 로티의 소설 [국화부인]이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었고, 롱 역시 로티의 작품을 상당부분 참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극작가가 이 흥미로운 소재를 연극으로 만들고 싶어했지만, 숱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이 작품을 연극으로 옮길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낸 사람은 데이비드 벨라스코였습니다. 연극으로도 크게 성공을 거둔 이 작품은 런던으로까지 진출했고, 푸치니는 런던에서 [나비부인]을 연극으로 보자마자 이 소재로 오페라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흥행감각이 탁월했던 푸치니는 이미 연극으로 성공을 거둔 작품을 오페라화하는 것이 인기를 보장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본은 루이지 일리카와 주세페 자코사에게 맡겼습니다
결혼에 모든 것을 건 게이샤의 비극
1막은 나가사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일본식 집에서 시작됩니다. 미국 해군 장교 핑커튼은 아버지가
할복자살하고 집안이 몰락해 게이샤가 된 열다섯 살의 ‘초초’상('나비'라는 뜻의 게이샤 예명.
‘버터플라이’는 서양인 고객을 위한 이름)과 일본식 전통 혼례를 치릅니다.
핑커튼 쪽에서는 장난에 불과했지만, 핑커튼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버터플라이는 이 결혼에 모든 것을 걸고 기독교로 개종까지 하죠.
나가사키에 주재하는 미국 영사 샤플레스는 그녀의 진심을 느끼고 걱정하며 핑커튼에게 신중하라고 충고하지만,
핑커튼은 그 충고를 가볍게 넘깁니다.
“온 세상을 누비는 우리 양키는 온갖 위험도 아랑곳 않고 이윤과 쾌락을 쟁취하죠. 어디든지 맘 내키는 대로 닻을
내리고...” 물론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면 당연히 미국 여성과 새로 결혼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죠
혼례식 중에 버터플라이의 숙부가 나타나 개종을 꾸짖으며 난동을 부리자 친척들은 다 식장을 떠나버리고, 괴로워하는 버터플라이를 달래며 핑커튼은 첫날밤을 맞이하는 사랑의 이중창을 부릅니다.
이 오페라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면서, 뚜렷이 엇갈리는 남자 주인공과 여주인공의 내면을 드러내
뒤에 올 비극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1막과 2막 사이에는 3년이 넘는 세월이 놓여 있습니다. 미국으로 떠난 지 3년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는 핑커튼을
버터플라이는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하녀 스즈키가 ‘본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남편이 돌아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단념을 권하지만, 버터플라이는 요란하게 화를 내며, 남편이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담은 아리아 ‘어떤 갠 날’을 부르지요.
그러나 핑커튼은 미국에서 이미 케이트라는 미국여성과 결혼해 살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려주려고 샤플레스 영사는 핑커튼의 편지를 들고 나비부인을 찾아오지만, 차마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한편 일본인 뚜쟁이 고로는 부자인 야마도리를 버터플라이의 집에 데려오지만, 버터플라이는 기혼여성에게 감히 청혼을 하다니 무례하다며 그의 구애를 거절합니다.
그리고 아장아장 걷는 핑커튼의 아들을 영사에게 보여주며 꼭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하지요.
영사가 돌아간 뒤 예포 소리가 들리고 핑커튼이 탄 군함이 항구에 닻을 내립니다. 버터플라이는 감격에 겨워 온 집안을 꽃으로 꾸며놓고 밤새 남편을 기다립니다.
스즈키와 아이는 지쳐 잠이 들고 버터플라이 혼자 꼿꼿이 앉아 있는 가운데 유명한 ‘허밍 코러스’가 들려옵니다.
허밍 코러스는 이탈리아어로는 ‘입 다물고 부르는 합창(Coro a bocca chiusa)’입니다.
새벽이 밝아온 뒤에야 버터플라이는 잠시 방안으로 들어가 눈을 붙입니다.
그 사이 핑커튼과 케이트, 영사가 나타나스즈키에게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핑커튼은 온 집안에 가득한 꽃들을 보고는 괴로워서 숨어버리고, 케이트는 버터플라이 앞에 나타나 아들을 친자식처럼 잘 키우겠다고 약속하죠.
버터플라이는 30분 후에 핑커튼이 직접 아이를 데리러 와야 한다고 말하고, 다들 떠난 사이에 아이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한 뒤 병풍 뒤로 가서 ‘명예롭게 살 수 없다면 명예롭게 죽으리라’라고 쓰여 있는 아버지의 칼로 자결합니다.
핑커튼이 돌아와 ‘버터플라이’를 외쳐 부르는 가운데 막이 내립니다.
Giacomo Puccini (1858~1924)
이탈리아 작곡가. 루카 출생. 조상 대대로 음악가 집안이었고, 어릴 때에 특수한 음악가적 재능을 발휘한 것도 아니며
학업성적도 우수하지 못했으나 푸치니는 어머니의 노력과 격려, 그리고 죽은 아버지의 제자 안젤로니의 훌륭한 지도로
재질을 키워갔는데, 그 결과 16세 때 오르간 경연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그 뒤부터 작곡을 시작하는 등 음악에 대해 열정을 쏟았다.
1880년 밀라노 음악원에 입학,그의 졸업작품 《교향적 카프리치오》는 매력있는 역작이라는 호평을 받았으며
,루카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푸치니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한 폰키엘리는,《마농 레스코》를 작곡,
93년 트리노레지오 극장에서 초연되어 대본 자체의 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개성이 강하게
나타나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이 작품으로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지위가 확고해졌다.
제 4 작은 96년의 《라보엠》이었는데, 인기작이었다.
오늘날에는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이 푸치니의 3대 명작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 1920년 여름에는 《투란도트》의 오페라화를 결심, 극작가와 함께 완성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인후암으로 병상에 눕게 되었고, 24년 11월 브뤼셀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그의 미완성 부분은 F. 알파노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의 작품의 제재는 대중과 밀착되어 있었다.
즉 《투란도트》 이외의 주인공은 대개 서민적 인물이며 거기에는 대개 비운·박복한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여
일반 청중들의 동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G. 베르디 이후 이탈리아 최대의 오페라 작곡가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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