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26]
꽃가지 꺾어 든 그녀, 쪽빛 치마 살포시 들어올렸네
'미인도' - 작자 미상, 종이에 담채, 114.2×56.5㎝, 1825년 무렵, 도쿄
국립박물관 소장.
미인의 옛적 패션을 구경해보자.
우선 헤어스타일이 피어나는 뭉게구름 같다. 몽실하게 부푼 얹은머리는 윤기 자르르한 칠흑빛이다. 한쪽 끝에 매단 댕기에 멋 부린 티가 난다. 표정은 매우 고혹적이다. 웃음기 머금고 살짝 올라간 입 꼬리가 애교스럽다. 말 그대로 앵두 입술에 초승달 눈썹이다.
치마를 끌어올리고 은근히 몸을 꼬아 교태(嬌態)를 드러내는데, 고개는 갸웃하고 눈길은 나긋해서 사뭇 색정(色情)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조선시대 그림을 다 뒤져봐도 이런 '팜므 파탈'은 찾기 어렵다.
삼회장 노랑 저고리는 볼수록 아찔하다. 깃과 고름, 겨드랑이와 소맷부리에 댄 자줏빛 천이야 당연히 세련됐다. 하지만 품이 얼마나 작고 꽉 조이는지, 어깨에서 팔에 이르는 몸매가 훤히 비친다. 길이는 고작 한 뼘이 될까 말까다. 옷고름이 팽팽해질 정도로 솟아오른 젖가슴이 도련 아래로 보인다. 여인의 신분은 물으나 마나 기생이다.
그녀는 어인 일로 꽃을 손에 들었을까. 그림에 조선 중기 시인 어무적(魚無迹)의 시가 씌어 있다. 시 제목도 마침 '미인도(美人圖)'다.
'하릴없이 봄이 늦게 올까 걱정이라/ 꽃가지 꺾어 들고 혼자서만 본다네.'
봄 소식이 늑장을 부리자 여인은 냉큼 꽃부터 꺾어 봄을 누리겠다는 속셈이다.
그녀가 입은 쪽빛 치마는 길고도 낙낙하다. 항아리 같은 저 치마를 펼치면 굽이굽이 열 폭이겠다. 여인은 치마 한 자락을 겨드랑이에 끼웠다. 그 바람에 꽁꽁 동여맨 치마허리는 가려졌지만 희디흰 안감이 살며시 드러났다. 봄마저 유혹하려 드는 기생이니 남정네 눈길이야 능준히 호릴 테다. 그림은 그 유명한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미인도에 버금가는 솜씨다.
화가는 다 그리고 나서 제 이름은 숨겼다. 그린 때와 곳만 적어놓았다.
'을유년 3월 16일, 얹혀살던 곳에서 그리다.'
그는 어디서 더부살이했을까. 기생을 그렸으니 기방(妓房)일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림 속에 지분(脂粉) 냄새가 여태 난다.
/ 조선
...
美人圖 / 魚無迹
睡起重門??寒(수기중문심심한) : 차가운 날씨에 잠 깬 미인이
?雲繞繞練袍單(빈운요요연포단) : 잠옷 차림에 검은 머리 치렁치렁
閑情只恐春將晩(한정지공춘장만) : 권태로워 다만 봄이 다 지날까봐
折得梅花獨自看(절득매화독자간) : 매화가지 꺾어서 혼자서 바라보네.
?? :산란하고 바르지 않은 모양. 심난한 모양
散?不定貌。 唐 杜甫 《放船》?:“江市戎戎暗,山云??寒。” 仇兆? 注引 董斯? 曰:“??者,?云物散而不定。”
【相??】?(魚)?、?(驚)?、??
江市戎戎暗,山云??寒
戎戎. 茂盛貌;?密貌 . 무성한 모양
?雲 / 霧?雲?
【釋義】:頭髮象飄浮?繞的雲霧。形容女子發美。
【出處】:宋·蘇軾《題毛女貞》詩:“霧?風?木葉衣,山川良是昔人非。”宋·范成大《新作景亭程詠之提刑賦詩次其韻》:“花邊霧?風?滿,酒畔雲衣月扇香。”
繞繞 ??貌.(糾?)뒤얽히다. 뒤엉키다. 本義:纏束 감아 묶다.
練 : 練衣.
《禮記·檀弓上》:“練,練衣?襄,?緣。”鄭玄注:“小祥練冠,練中衣,以??內,
孔穎連疏:「練衣者,練?中衣。黃?者,黃?中衣?也。
閑情
1.?散的心情
2. 指男女之情。 唐昭宗 《巫山一段云》?之二:
“??不?愁絶,忍看????。春?一等少年心,閒情恨不禁。”
睡起重門??寒
??寒은 두보의 시에서 빌려왔다. ??(심심)은 일정치 않게 흩어지다는 뜻이다.
잠이 깨어 나가보니 중문에 한기가 흩날린다.
?雲繞繞練袍單
?雲은 소식(宋·蘇軾)의 霧?雲?(무빈운환)에서 따온듯하다. 繞繞(요요)는 두 엉키다라는 뜻이다.
練袍는 명주 속옷이다. 練袍單이니 홑 명주 속옷이다.
구름모양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고 홑치마만 입었다.
閑情只恐春將晩
閑 , 閒은 間의 뜻이다 사이,틈이 있다는 뜻이다. 閒情은 한가로운 마음이란 뜻도 있으나 여기서는 남녀의 情을 말한다. 情에 틈이 있다니 멀어진 것이다.
사랑은 멀어졌는데 홀로 봄이되는 것이 두렵다는 뜻이다.
折得梅花獨自看
"看"은 반드시 보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동작의 완료를 나타내는 자동사로 많이 쓰인다.
홀로 매화가지를 꺽어들었다
"閑"과 "折"은 사랑이 멀어졌음을 나타낸다.
“?鳥不?愁絶,忍看鴛鴦雙?。春風一等少年心,閒情恨不禁。”
파랑새는 시름겨운데도 오지않고
원앙은 짝지으니 차마 못 봐주겠다.
봄바람은 소년의 마음에 먼저 오는데
멀어진 情 한스러움을 떨칠 수가 없구나.
배를 띄우고 / 두보(杜甫)
收帆下急水(수범하급수) : 돛을 내리고 급류를 내려가며
卷?逐回灘(권만축회탄) : 휘장 걷어올리고 여울물 쫓는다.
江市戎戎暗(강시융융암) : 강마을은 어둠이 짙어오고
山雲??寒(산운심심한) : 산구름은 차가움이 밀려온다.
荒林無徑入(황림무경입) : 황량한 숲에는 들어갈 길 없고
獨鳥怪人看(독조괴인간) : 새는 사람이 낮설어 보기만 한다.
已泊城樓底(이박성누저) : 배는 이미 성루 아래에 닿았는데
何曾夜色?(하증야색란) : 어찌 밤기운 가로 막지 않았을까.
/ 오세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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