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페라, Musical

오펜바흐 오페라타 ‘지옥의 오르페’ Offenbach, Orphée aux Enfers

Offenbach, Orphée aux Enfers

오펜바흐 오페라타 ‘지옥의 오르페’

Jacques Offenbach

1819-1880

Eurydice: Natalie Dessay

Orphée: Yann Beuron

Jupiter: Laurent Naouri

Pluton/Aristée: Jean-Paul Fouchécourt

L'Opinion Publique: Ewa Podles

John Styx: Steven Cole

Chœurs de l’Opéra National de Lyon

Ballet du Grand Théâtre de Genève

Orchestre de Chambre de Grenoble

Orchestre de l’Opéra National de Lyon

Conductor: Marc Minkowski

Opéra de Lyon 1997

 

Marc Minkowski/Opéra de Lyon 1997 - Offenbach, Orphée aux Enfers

 

‘여론’(퍼블릭 오피니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페라, 상상해 보셨나요? 17세기 오페라 초창기에는 희망, 음악, 미덕, 행운 등의 추상적인 개념을 의인화한 인물들이 오페라에 등장했답니다. 그런 과거의 전통을 19세기에 되살려 프랑스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는 자신의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에서 ‘여론’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주인공이 어떤 행동을 하려 할 때 ‘그런 짓을 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며 그에 대해 뭐라고 말할 것인가’ 하는 점을 주인공에게 일깨워 주는 인물이죠. 그렇다면 이 ‘여론’은 대체 어떤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할지 궁금하시죠? 미스 유니버스나 여신의 모습 또는 오페라 극장을 청소하는 미화원 아주머니의 모습으로 등장해 사람들을 웃겨 줍니다. 연출 콘셉트에 따라 이 등장인물에게 얼마든지 다른 옷을 입힐 수는 있지만 메조소프라노 배역이니 여성 가수가 맡아야 한다는 것만은 정해져 있죠. 신화 속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오펜바흐의 <지옥의 오르페>에서는 권태를 느끼는 부부로 그려진다.

<지옥의 오르페>의 원작은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입니다. 결혼식 날 뱀에 물려 죽은 아내를 구하러 저승(여기서는 ‘지옥’)으로 간 음악가이자 시인 오르페우스의 이야기 말입니다. 이 소재는 시대를 뛰어넘어 오페라에서 꾸준히 쓰인 단골 소재였습니다. 페리의 <에우리디체>(1600),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1607),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1762), 하이든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또는 애지자(愛智者)의 영혼>(1791) 등이 그 대표작인데요, 엑토르 크레미외와 뤼도비크 알레비가 대본을 쓴 오펜바흐의 오페레타는 신화를 비틀어 놓은 유쾌한 패러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총출동하는 이 즐거운 희극은 가사가 프랑스어라서, 노래할 때는 오르페우스는 오르페, 에우리디케는 외리디스, 제우스는 쥐피테르, 하데스는 플뤼통 등으로 불립니다.

바이올린 교습을 하는 오르페우스, 바람난 아내 에우리디케

1막 1장

1막 1장은 그리스 테베 근교의 시골에서 시작됩니다. 먼저 ‘여론’이 무대에 등장해 ‘미풍양속과 도덕의 수호자’라며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죠. 바이올린 교습으로 살아가는 음악교사 오르페우스와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는 이미 서로를 지긋지긋해하는 젊은 부부입니다. 양치기와 바람이 난 에우리디케는 설레는 마음을 ‘가슴속에 꿈을 지닌 여자는’이라는 노래로 표현합니다. 아리스테라는 이름을 가진 이 양치기는 사실 변장한 지옥의 신 하데스랍니다. 남편의 음악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에우리디케는 새로운 곡을 연주하는 오르페우스와 ‘아, 그런 거였군’ 하는 이중창으로 대판 싸우고 나서 양치기를 만나러 갔다가, 남편이 옥수수 밭에 설치한 덫에 걸려(혹은 원래 신화대로 뱀에 물려) 죽게 됩니다.

남편을 벗어나 양치기 연인과 차원 이동을 하게 된 에우리디케는 기뻐하며 죽음을 맞이하고, 하데스는 에우리디케에게 최면을 걸어 그녀 스스로 ‘하데스와 함께 지옥으로 간다’는 사실을 오르페우스에게 글로 남기게 한 뒤 그녀를 지옥으로 데려갑니다. 아내가 남긴 편지를 보고 오르페우스는 “자유다, 해방이다!”를 외치며 신이 나서 날뛰지만, 그때 ‘여론’이 나타나 올림포스에 가서 제우스 신에게 탄원해 아내를 구해 오라고 명령합니다. 사랑보다는 명예와 세상의 평판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여론은 마지못해 따라가는 오르페우스를 이끌고 올림포스로 향합니다.

1막 2장

1막의 2장은 올림포스 산 꼭대기입니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할 일이 없어 주로 잠을 자고 있고, 잠에서 막 깨어난 베누스와 아르테미스 여신 등 여러 신들이 차례로 노래를 부릅니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지상에 다녀와 하데스가 에우리디케를 납치했다는 소식을 알려줍니다. 제우스는 동생인 하데스를 꾸짖지만 신들은 오히려 독재자이며 바람둥이인 제우스를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무기를 들어라, 신들이여’라는 반란의 합창이 울려 퍼지고, 특히 여신들은 제우스의 엽색 행각을 조목조목 폭로하지요. 이때 ‘여론’과 함께 오르페우스가 올림포스에 도착해 아내를 돌려 달라고 노래합니다. 실추된 권위를 되찾아야겠다고 생각한 제우스는 에우리디케를 납치한 하데스에게 적절한 벌을 내리겠다며 지옥으로 내려가려 합니다. 그러자 올림포스가 지겨워진 신들은 너도나도 다 지옥에 가고 싶어 하고, 결국 제우스는 모두를 데리고 내려갑니다.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지옥으로 내려가는 오르페우스.

2막 1장

2막 1장은 저승을 지배하는 하데스 성, 에우리디케가 갇혀 있는 방입니다. 에우리디케는 하데스에게 반해 따라오긴 했지만 지옥 생활이 벌써 지루해졌습니다. 그녀를 감시하는 문지기 존 스틱스는 에우리디케를 유혹하지만 거절당하지요. 하데스가 제우스와 함께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자 스틱스는 에우리디케를 가둬 놓고 사라집니다. 제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유혹하려고 파리로 변신합니다. 열쇠구멍을 통해 날아 들어온 제우스를 보고 너무나 예쁜 파리라며 반해버린 에우리디케에게 제우스는 즈...즈...거리며 파리다운 노래를 부르다가, 결국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둘은 올림포스로 올라가 함께 살기로 약속하지요.

2막 2장

마지막 2막 2장은 지옥의 넓은 홀이 배경인데요, 이제 지옥에 내려온 모든 신들이 모여 떠들썩한 파티를 펼칩니다. 에우리디케는 포도주의 신 바쿠스의 여사제로 분장하고 제우스의 파트너로 파티에 등장합니다. 하데스가 자신의 변장을 눈치 채지 못한 줄 알고 좋아하지만, 사실 하데스는 변장한 에우리디케를 첫눈에 알아보고도 모른 체하지요. 신들이 ‘지옥의 캉캉’에 맞춰 법석을 떨며 춤을 추는 동안 제우스는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도망가려 하지만 하데스가 이를 저지합니다. 오르페우스에게 아내를 돌려주기로 약속하지 않았느냐는 하데스의 추궁에 어쩔 수 없이 제우스는 에우리디케를 포기합니다. 지옥의 오르페에 등장하는 파티를 표현한 작품. 프랑스의 귀족 사회에 대한 풍자가 담겨 있다.

'Galop scene' from Offenbach's operetta "Orphée aux Enfers"

Eurydice: Elizabeth Vidal

Orpheus: Alexandru Badea

Théâtre de la Monnaie Chorus

Théâtre de la Monnaie Symphony Orchestra

Conductor: Patrick Davin

Theatre de la Monnaie, Brussels 1997

2막 2장에서 등장인물들이 모두 나와 ‘지옥의 캉캉’(춤곡명은 본래 ‘캉캉’이 아니라 ‘갈로프 galop’입니다)을 추는 장면입니다. 엘리자베트 비달(에우리디케), 알렉산드루 바데아(오르페우스), 파트리크 다뱅 지휘, 브뤼셀 왕립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공연.

오르페우스에게 에우리디케를 돌려보내면서 제우스는 단서를 붙입니다. 오르페우스가 한 번이라도 뒤를 돌아보면 에우리디케는 지상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오르페우스는 아내와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지만 그래도 서슬이 퍼런 ‘여론’ 때문에 할 수 없이 앞만 보며 아내를 데리고 갑니다. 그러자 에우리디케를 잃어버린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난 제우스는 인내심을 잃고 벼락을 내리칩니다. 그 소리에 놀란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자 제우스는 크게 기뻐하지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역시 영영 헤어지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뻐합니다. 신들의 눈총 때문에 에우리디케를 자기 여자로 삼을 수 없게 된 제우스는 그녀를 디오니소스 신의 여사제로 만들어 올림포스로 데려갑니다. 모두 즐겁게 캉캉을 추는 가운데 막이 내립니다.

공무원의 무위도식, 상류사회 결혼생활에 대한 비웃음

독일에서 태어나 성가대 지휘자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과 첼로를 배운 오펜바흐는 14세 때 온 가족이 파리로 이주하면서 파리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했습니다.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며 가끔 왈츠 등의 살롱음악을 작곡했던 그는 파리 국제박람회가 열린 1855년 샹젤리제 거리에 파리 희가극장(Les Bouffes-Parisiens)이라는 자기 소유의 극장을 개관했습니다. 여기서 <지옥의 오르페>(1858), <아름다운 엘렌>(1864), <푸른 수염>(1866) 등 사회적 풍자가 가득 담긴 희극 오페레타들을 무대에 올려 인기를 끌었고,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1881)는 완성하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오펜바흐는 평생 거의 100편에 달하는 오페레타를 작곡해 19세기 파리를 오페레타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지옥의 오르페> 공연 포스터.

오페라가 고상한 예술이라는 인식을 없애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려고 오페레타를 발전시켰던 오펜바흐는 이미 누구에게나 익숙한 소재인 오르페우스 이야기의 패러디를 시도했습니다. ‘죽음을 뛰어넘는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낭만주의적 이상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으면서도 그것이 결혼생활에만은 전혀 적용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려 했던 것이죠. 이와 더불어, 일은 안 하고 시간만 흘려보내면서도 자신들을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고 있던 당시의 고위 관료들을 비웃기 위해 그리스 신화의 ‘게으른’ 신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재산 증식과 사회적 평판에만 신경을 쓰면서 애정 없는 결혼을 유지하고 있는 상류사회의 부부들을 풍자하는 한편, 나폴레옹 3세 치하 제2제정 시대의 엄격한 사회규범에 가려진 이중윤리와 궁정관리들의 무위도식을 비꼬고 있는 것이 이 오페레타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오페라 극장을 찾은 귀족들과 관리들은 자기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신나게 웃으며 갈채를 보냈다고 합니다.

‘오페레타’(operetta)란 오페라의 축소형입니다. 비극으로 끝나는 일이 드물고 거의 해피엔딩이죠. ‘오페라 코미크’나 ‘오페라 부파’와 비슷하게, 노래 외에 연극처럼 발로 하는 대사가 나옵니다. 오페라에 비해 대체로 소재가 일상적이고 가벼운 것이 특징이죠. 음악 역시 경쾌하며 이해하기 쉬운 편이고, 대개는 화려한 춤 장면도 등장합니다. 오펜바흐는 평생 거의 1백 편에 달하는 오페레타를 작곡해 19세기 파리를 오페레타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파리의 뒤를 잇는 오페레타의 중심지는 빈으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프란츠 레하르가 그 대표적 작곡가들이랍니다. 이 오페레타라는 장르는 프랑스의 보드빌 등 다양한 장르와 더불어 뮤지컬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추천 음반 및 DVD

[음반] 나탈리 드세, 얀 뵈롱, 로랑 나우리 등. 마크 민코프스키 지휘, 리옹 국립 오페라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그르노블 실내악단, 1998년 녹음

[DVD] 엘리자베트 슈타이너, 쿠르트 마르쉬너, 토니 블랑켄하임 등. 마렉 야노프스키 지휘, 함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부르크 국립오페라 합창단 및 발레단, 요아힘 헤스 연출, 1971년

[DVD] 엘리자베트 비달, 알렉산드루 바데아, 데일 듀싱 등. 파트리크 다뱅 지휘, 브뤼셀 왕립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헤르베르트 베르니케 연출, 1997년(한글 자막)

[DVD] 나탈리 드세, 얀 뵈롱, 로랑 나우리 등. 마크 민코프스키 지휘, 리옹 국립 오페라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그르노블 실내악단, 1997년 실황

 

이용숙(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2.10.24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14770

 

 

요즘 트위터 페이스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