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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Musical

Renata Tebaldi - The Best Of Opera Piec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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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WRFiYRldAFs&feature=player_detailpage

 

  레나타 테발디(Renata Ersilia Clotilde Tebaldi, 1922년 2월 1일 페사로~2004년 12월 19일,

산 마리노)는 이탈리아의 리리코 스프린토 소프라노이다.

 

 

  페사로에서 태어나 모친의 고향인 파르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파르마의 보이토 음악원을 졸업한 뒤 당시 푸치니 가수로 알려졌던 카르멘 멜리스에게 사사하였다.

1944년 로비고에서 아리고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로 데뷔하였으며 그 뒤 토스카니니의 오디션을 받아

유럽 각지에서 활약하였다.

 

 1955년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초청되어 <오텔로>의 디즈데모나 역을 맡았다. 1965년에 약 1년간 목소리의

조정 때문에 무대를 떠났으나 곧 회복하여 주로 미국에서 활약하였다.

 

 

  대표적인 배역으로 <라 보엠>의 ‘미미’와 <나비부인>의 ‘나비부인(쵸쵸상)’이 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는 테발디와 칼라스의 2대 프리마돈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개성이 강렬한 칼라스에 대하여 테발디의 예술은 어디까지나 정통적(正統的)인 폭의 넓이를 지니며

그 가창이나 발성이 모범이 된다고 평가받는다. (위키백과)

 

  1922년 이탈리아 레마르케 페사로에서 태어난 레나타 테발디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에 비견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소프라노로 인정받았다.

 

  유연함과 호소력 있는 감정표현이 특기였으며 최고의 베르디, 푸치니 전문 소프라노로 평가 받았다.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매일 자세 교정 훈련을 받아야 했던 테발디는 내성적 성격이었다.

 

 

 

 

 

 

 

  사춘기 이후 마을 교회에서 노래하며 타고난 목소리란 칭송을 듣고서야 파르마 음악원 진학을 결심하게 된다.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1946년 테발디의 노래를 처음 듣고는 ‘천사의 목소리’라고 극찬하며

 이탈리아 오페라의 산실인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시즌 오프닝 공연에 그를 초청했다.

 

 

  테발디는 이후 1950년 런던과 샌프란시스코 무대에 데뷔해 베르디와 푸치니 작품을 공연하며 명성을 쌓았다.

195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셀로>의 데스데모나 역으로 데뷔하며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로

 발돋움했다.

 

 

  1959년과 62년에 각각 빈과 베를린 무대에 섰던 테발디는 1973년 무대에서 공식 은퇴한 후에는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해왔다.

 

  테발디가 과연 칼라스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꼈을까? 흔히 ‘그렇다’고들 한다.

스칼라에서 칼라스와 정면충돌했을 당시 그의 행적을 보면 의심스러운 데가 많다.

 당시에는 ‘악마적 카리스마’를 지닌 칼라스에 대해 예쁘장한 ‘천사’의 이미지로 부각되고 있었으나

테발디가 가졌던 위기의식은 평범한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고 전한다.

그에 따라 한 영화의 대사처럼 ‘보이지 않는 물 밑에서 바쁘게 발을 움직여대는 백조’에 비할 만큼 의심이 가는

 행적도 있다.

 

 

 

 

 

 

  1950년 칼라스가 처음 스칼라 무대에 서게 된 것은 테발디의 대역으로서였다.

이때 칼라스는 훌륭한 공연에도 불구하고 청중석과 주최측으로부터 고의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

당시 사건에 대해 무섭게 커가고 있던 칼라스에게 일격을 가하기 위해 테발디가 사전에 준비해 놓고

일부러 자리를 비켜준 것이라는 설이 떠도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듬해 스칼라의 브라질 공연 당시에는 좀 더 노골적인 면을 선보였다. 딱 한 곡만 부르고 앙코르를

절대로 하지 말자고 자기 입으로 제안해놓고는 다른 가수들(물론 칼라스도 포함된다)은 이를 따랐는데,

 혼자만 두 곡의 앙코르를 더 부른 것이다.

 

 

 

  하지만 테발디와 칼라스의 불화는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떠 있는 꼴을 못 보는’ 조잡한 군중 심리에 의해

 조장된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지금의 일반적인 견해다. 테발디 자신은 지난해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칼라스에 대해서는 ‘이제 그만’ 얘기하고 싶다.

그동안 ‘지나치게 많이’ 얘기되었다”고 소견을 밝혔다.

 

  누가 뭐라 해도 테발디는 20세기가 낳은 이탈리아 태생의 여성 가수 중에 최고의 자리에 놓을 수 있는 인물이다.

카르멘 멜리스를 사사하고 1944년 데뷔 무대를 가졌다.

1946년 토스카니니의 스칼라 연주회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세계적인 가수로서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20년 동안 리리코 스핀토와 드라마티코의 배역에서 칼라스의 강렬한 음성과 비교되는 맑고 아름다운 음성의

캐릭터들을 만들어냈다.

 

 

초기 테발디의 음성은 ‘신이 내린 소리’라 할 만큼 청순함과 청량감이 넘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30대가 넘어서면서부터는 조금씩 중심이 아래로 이동해 균형이 잡혔고 가창의 표현도 차츰 성숙해갔다.

 따라서 아이다와 데스데모나 역으로도 훌륭한 음반(데카)을 남기고 있다.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테발디는 푸치니에서 빛을 발한다. <라 보엠><나비부인><토스카>(모두 데카) 등은

한 세대 후의 프레니 외에는 비견할 만한 자를 찾기 쉽지 않다. (네이버 지식) 

 

 

 

 

 

  * 50~60년대 음반을 녹음한 것이어서 음질이 안 좋습니다. 감안해서 들어주시기를.

 

  1 Le Nozze Di Figaro: Act II - Porgi Amor
  2 Faust: Act V - Margherita...Ah, la sua voce sento anco
  3 La Traviata: Act III - Addio del passato
  4 Madama Butterfly: Act I -Viene la sera
  5 Giovanna D'Arco: O ben s'addice questo torbido...Sempre all'alba


  6 Andrea Chénier: Perdonate al dir mio
  7 Andrea Chénier: Guardate là, un'ombra...Eravate possente...Ora soave
  8 Madama Butterfly: Act I - Viene la sera
  9 Madama Butterfly: Act II - Un bel di vedremo
  11 Madama Butterfly: Act II - Tu, tu, tu, piccolo Iddio


  12 Tosca: Act II - Vissi d'arte
  13 Tosca: Act II - Vissi d'arte
  14 Tosca: Act II - Finale
  15 Tosca: Act III - Franchigia a Floria Tosca...O dolci mani


  16 Tosca: Act III - Senti l'ora è vicina
  17 Tosca: Act III - E non giungon...Come è lunga l'attesa
  18 Manon Lescaut: Act II - In quelle trine morbide
  19 La Bohème: Act I - Si, Mi chiamano Mimì
  20 La Bohème: Act III - Donde lieta usc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