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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Tosti /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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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eghiera

     

     

     

     


    Alla mente confusa di dubbio e di dolore soccorri,


    괴로움과 서러움에 가득찬 내 마음의 이 괴로움을 구원해주소서,


    o mio Signore, Col raggio dell fe solleval!!!!!a dal peso


    오 나의 주님, 믿음의 빛으로 짐을 덜어주소서


    che la declina al fango:


    A te sospiro e piango,


    보소서. 그것은 나를 진흙탕속으로 빠져들게 하나이다:


    당신에게 나는 한숨지으며 울부짖습니다
    ,
    mi raccomando a te.
    나를 당신께 맡깁니다.


    Sai che la vita mia si strugge a poco a poco,


    당신은 나의 삶이 조금씩 조금씩 투쟁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come la cera al foco, come la neve al sol.


    불길 위에 밀랍처럼, 양지 위에 눈송이처럼.


    All'anima che anela di ricovrarti in braccio, deh!


    당신의 품안에서 피난처를 구하며 헐떡이고 있는 이 영혼에게, 아!


    rompi, Signore, il laccio che le impedesce il vol.


    주여 끊어주소서, 그 비행을 방해하는 줄들을


    Signor, pieta! Signor, pieta! Signor, pieta!


    주여, 긍흘을! 주여, 자비를! 주여, 은혜를!


     

     

     

     

    토스티 (Tosti, Francesco Paolo, 1846.4.9~1916.12.2)

     

    토스티는 1846년 4월 9일 아브룻치의 오르트나 스루마네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상인인데, 아버지는 돈 주제페, 어머니는 카테리나이다.

     

    처음에는 고향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그러나 11세 때, 왕실 등의 추천을 받아 나폴리의 산 피에트로 마이에라 왕립 음악원에 입학했다.

     

    바이올린을 핀트, 작곡을 콘티와 메르카단테에게 배워 1866년 졸업했다.

     

    곧바로 그 학교의 조교수가 되지만 건강을 이유로 고향에 돌아와 작곡에 전념하였다.

     

    그때 로마의 성악 교사에게서 작품을 인정받아 사보이의 공녀 마르게리타의 성악교사로 초빙되었다.

     

    1875년 런던에서 성공을 거둔 후 1880년 빅토리아 여왕아래에 있는 영국왕실 음악교사로서 정식으로

     

    런던에 부임했고, 또 음악출판사 챠페르와 계약을 맺고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888년 런던에서 베르타 피앙소와 결혼, 1894년부터 왕립 음악원의 성악교수로 근무했다.

     

     1908년 에드워드 7세로부터 남작 칭호를 받고 1913년에 런던을 떠나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1916년 12월 2일 로마에서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토스티는 성악 교사였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가곡이 많고,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어에 의한

     

    아름다운 선율을 남겼다.

     

     당시 이탈리아는 오페라의 전성시대로 작곡이라면 오페라와 동의어였을 정도의 시대였으나

     

     그는 유일하게 이탈리아의 근대 가곡의 창조에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때까지 이탈리아에서는 가곡은 육성되지 않았고 민요만 있었던 당시였기 때문에 아름다운 선율을

     

    예술 가곡의 수준에 까지 이르게 했던 공적은 대단히 크다.

     

    그 유려한 선율에 대응하는 유연하며 펑명(平明)한 하모니, 서정시의 정감을 그대로 불러내는 듯한

     

    적절한 표현은 현대에 있어서도,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토스티의 가곡은 한마디로 감미(甘美)라는 단어로 말해질 수 있으리라. 이탈리아적 선율의 흐름을 가진

     

     부르기 쉬운 깨끗한 곡을 많이 작곡하였으며 대표작에 《그럼, 안녕》 《4월》 《세레나데》

     

    《이상》 《꿈》 등이 있다.

     

     

     

     

    토스티의 가곡들

     

    선율의 아름다움으로 노래하는 사람이나 듣는이를 매료시키는 토스티의 가곡은 그 어느 작곡가의 작품보다도

     통속성이 높기로도 유명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토스티의 가곡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큰 매력이다.

    태어나기는 <올토나> 이지만 오랜 세월 나폴리에서 지냈던 것이 그의 작품의 성격을 이처럼

     친화력 강한 개성으로 만들었으리라.

     

    토스티의 시어(詩語)와 선율은 너무나 이상적인 조화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가곡이

     가창적(歌唱的)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특히 그가 구사하는 이탈리아 시어의 쓰임새는 아름답기로 정평이 내려져 있다.

     스테파노가 노래하는 토스티의 가곡은 원작이 갖고 있는 이러한 매력에 그의 힘있는 미성과

     절묘한 칸틸레나가 어우러지는 기막힌 벨 칸토의 세계를 연출한다.

    출처: 웹사이트 / 음원출처: http://jnjmuse.cnei.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