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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Bee Gees - You Win Again , Massachusetts

 

 


 

You Win Again

 

I couldn't figure why you couldn't give me what everybody needs
누구나 원하는 것을 왜 당신은 내게 줄 수 없는지 알 수가 없군요

I shouldn't let you kick me when I'm down my baby
내가 우울해 있을때 당신이 내 곁을 떠나게 하지말걸 그랬어요

 


I find out everybody knows that you've been using me
당신이 날 이용하고 있다는 걸 누구나 안다는걸 깨달았어요

I'm surprised you let me stay around you
그런데도 내가 당신곁에 머무를 수 있게 해주는게 놀라워요

 

One day I'm going to lift the cover and look inside your heart
언젠가 난 당신 마음속 뚜껑을 열고 당신의 진심이 무엇인지 볼거에요

We gotta level before we go and tear this love apart
이 사랑이 끝나기전에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해 봐요

 


There's no fight you can't fight
싸울 필요없고 당신은 싸울 수도 없잖아요

This battle of love with me you win again
저와의 이 사랑 싸움에서 당신은 항상 이기잖아요

 

So little time we do nothing but compete
그렇게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다투기만 했어요

There's no life on earth
이 세상에 인생이란 없는 것 같아요

 


No other could see me through you win again
아무도 나를 꽤뚫어보지 못했지만 당신이 또 이겼어요

Some never try but if anybody can we can
어떤이는 시도하지도 않지만 누군가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어요

 

And I'll be, I'll be following you
그래서 난 당신을 따르겠어요


Oh baby I shake you from now on
이제부터 당신을 뒤흔들어 버릴 거에요

I'm going to break down your defenses one by one
당신의 굳건한 마음의 벽을 하나씩 무너뜨릴 거에요

 

I'm gonna to hit you from all sides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당신을 사로잡을 거에요

Lay your fortress open wide
굳게 닫힌 당신 마음의 문도 활짝 열거에요

Nobody stops this body from taking you
당신의 사로잡는 것에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을 거에요


You better beware I swear
맹세하건데 이것만은 알아두세요

I'm going to be there one day when you fall
당신이 지쳐 쓰러질때 난 당신곁에 있을 거에요

 

I could never let you cast aside the greatest love of all
가장 위대한 사랑으로 당신이 뿌리치지 못하게 할 거에요

There's no fight you can't fight
싸울 필요없고 당신은 싸울 수도 없잖아요

 

This battle of love with me you win again
저와의 이 사랑 싸움에서 당신은 항상 이기잖아요

So little time we do nothing but compete
그렇게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다투기만 했어요

 

There's no life on earth
이 세상에 인생이란 없는 것 같아요

No other could see me through you win again
아무도 나를 꽤뚫어보지 못했지만 당신이 또 이겼어요

 

Some never try but if anybody can we can
어떤이는 시도하지도 않지만 누군가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어요

And I'll be, I'll be following you
그래서 난 당신을 따르겠어요



You win again so little time we do nothing but compete
당신이 또 이겼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다투기만 했어요

There's no life on earth
이 세상에 인생이란 없는 것 같아요

 

No other could see me through you win again
아무도 나를 꽤뚫어보지 못했지만 당신이 또 이겼어요

Some never try but if anybody can we can
어떤이는 시도하지도 않지만 누군가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어요

 


And I'll be, I'll be following you
그래서 난 당신을 따르겠어요

You win again so little time we do nothing but compete
당신이 또 이겼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다투기만 했어요


 

There's no life on earth
이 세상에 인생이란 없는 것 같아요

No other could see me through you win again
아무도 나를 꽤뚫어보지 못했지만 당신이 또 이겼어요

 

Some never try but if anybody can we can
어떤이는 시도하지도 않지만 누군가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어요

And I'll be, I'll be following you
그래서 난 당신을 따르겠어요

 

 



 

 



 

 

 

 

 

 

 

 

 

Massachusetts

 

 

 

Fell I'm going back to Massachusetts
Something's telling me I must go home
And the light all went out in Massachusetts
The day I left her standing on her own

 


나는 매사추세츠로 돌아가네
무엇인지 나를 집으로 이끄네
내가 그녀를 버린 그날,
매사추세츠는 암흑이었네



Tried to hitch a ride to sanfrancisco
Gotta do the thing I wanna do
And the lights all went out in Massachusetts
They brought me back to see my way with you

 


샌프란시스코로 히치하이크 하려 했네
내 원하는 일을 해야 하겠어
매사추세츠는 암흑이었는데
난 당신에게 돌아가고 있네



Talk about the life in Massachusetts
Speak about the people I have seen
And the lights all went out in Massachusetts
And Massachusetts is one place I have seen
I will remember Massachusetts


 

매사추세츠에서의 인생을 이야기하려네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말해 보려네
매사추세츠는 암흑이었어
내가 아는 곳은 매사추세츠 그곳인데
매사추세스를 기억하리...

 

 

 

 

 

 

 

이곡 [Massachusetts(매사추세스)]는 1963년 11월 22일
46세의 젊은 나이로 암살당한 [John F. Kennedy(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곡이다.

 

그래서 [Bee Gees]가 웃지 않고 노래를불었었고 마지막에 관람객들이

 하얀 꽃을 증정하는 것이다.

 

[John F. Kennedy]전 미국 대통령은 평화주의 이면서도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당시 미국인들에게 인기가대단했었고 이 곡의 인기도 매우 좋았다.

 

 그리고 [Massachusetts] 주에는 [M.I.T] 즉,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매사추세스 공과대학)]이 있고

370년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Harvard(하버드)] 대학교가 있는데 [Kennedy]가

[Massachusetts] 주 브루클린 출신으로 대학도 그곳 [Harvard]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노래가 그를 기리기
위해 작곡된 것이라는 얘기가 사실일수도 있겠다 싶다.

 

 

 

 

 


 


팝 역사를 통틀어 [The Bee Gees(비지스)] 만큼오랫동안 정상의 인기를 구가하며

 다양한 음악성을 섭렵해온아티스트도 없었다.

 

60년대에 서정적인 팝송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던이들은 70년대에는 디스코 열풍의 최전선에

 서서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할막대한 성공을 수확한바 있다.

 

맨체스터 출신의 [Gibb(깁)]가 3형제로 구성된 이 밴드는그렇게 전대미문의 전설로 남았다.

 1946년생인 [Barry Gibb(배리 깁)]과 1949년생 쌍둥이
형제인 [Robin Gibb(로빈 깁)]과 [Maurice Gibb(모리스 깁)]으로 조직된

 

이 3인조는 어린시절부모를 따라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한 뒤 1958년부터

 [Brothers Gibb]의 머릿 글자를 따[B.G.'s]란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1962년부터 레코드를 발표하며 오스트레일리아음악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던 이들은 [The Beatles(비틀즈)]의 전세계적성공에 큰 자극을 받아

 1966년 영국으로 거점을 옮겨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게 된다.

 

 




 

영국에서 매니저 [Robert Stigwood(로저 스틱우드)]를 만난
이 삼형제는 곧바로 그와 계약을 맺고 [Vince Melouney(빈스 멜루니)],


[Colin Petersen(콜린 피터슨)]등 2명의 멤버를 더 가담시켜 완전한 밴드 포맷을짰다.

 1967년 새 [Bee Gees]가 발표한 첫 싱글 [New York Mining Disaster 1941]이
영국에서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하자 [Massachusetts], [To Love Somebody],
[Holiday]등의 후속곡들이 줄줄이 히트 대열에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특히
[Massachusetts]는 [Bee Gees] 최초의 영국차트 1위 곡이었다. 게다가 데뷔 앨범
[The Bee Gees 1st]는 미국에서도 차트 7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며 그들의

명성을 미국에서도 널리 떨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로도 [Bee Gees]의
성공가도는 [World], [I've Gotta Get A Message To You]등의
잇단 대히트로 거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69년 발표된 더블 앨범 [Odessa]는결과적으로 밴드의 균열을

야기하게 되는데 팀의 리더였던[Barry Gibb]이 이 앨범을 통해 다소 실험적인 비전을 표출하자
평소부터 [Bee Gees]의 음악성이 못마땅 했던 [Vince Melouney]와
[Colin Petersen]이 탈퇴를 선언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이전부터 솔로 활동에뜻을 두고 있던 [Robin Gibb] 마저 팀을 떠나는 상황에 처하자

 [Bee Gees]는 사실상와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남겨진 [Barry Gibb]과 [Maurice Gibb]은 2인조 진용으로어찌어찌 [Cucumber Castle]이란 앨범을

 발표하긴 했지만 결국 1970년 [Robin Gibb]이다시 팀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하고서야

 [Bee Gees]의 온전한 컴백이 성립될 수 있었다.

[Barry Gibb], [Maurice Gibb], [Robin Gibb]의 3인조 라인업으로 다시 돌아온
[Bee Gees]는 일단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를 미국 차트넘버원에 올려 놓으며

 

 화끈한 복귀 신고식을 치른 뒤 한동안 성공적인활동을 영위하다가 7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거처를 옮기며 변화를모색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현명한 것이었다.

 

 

 


 

그들은 한창 폭발 직전에 있던 디스코의 열기를 지근거리에서체득할 수 있었고

1975년 앨범 [Main Course]에서부터 그러한 성향을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 앨범에서는 [Jive Talkin']이 차트 정상에오르는 대히트를 기록하였다.

물론 [Bee Gees]의 야심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1976년[You Should Be Dancing]이란 곡을 또 한차례 넘버원에 올려 놓으며

디스코의 선두 주자로부각되기도한 [Bee Gees]는 1977년 전세계 극장가를 석권한 대흥행작

[Saturday Night Fever(토요일 밤의 열기)]의 영화음악을 맡으며 필생의 대박을 터뜨리고야 만다.

 

 OST [Stayin' Alive],[How Deep Is Your Love], [Night Fever]등이

모두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랐다.

 

1988년그토록 아꼈던 동생 [Andy Gibb(앤디 깁)]이 약물중독으로 30세의 나이에 사망하는

 비극을겪게 된다.

 

 1997년에 앨범 [Still Waters]로 플래티넘을 획득하며 위신을 회복한 그들은
같은해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감격을 누렸다.

 

 [This Is Where I Came In]을2001년 차트 16위에 올려놓는 저력을 과시하며

21세기에도 [Bee Gees]의 신화가여전할거라 강변하였지만 2003년 1월 21일

 

 [Maurice Gibb]이 심장마비로세상을 떠나자 더 이상 [Bee Gees]라는 이름을

 지속시킬 여력이 없게되고 말았다.

 결국 [Bee Gees]는 [Maurice Gibb]의 죽음과함께 45년간에 달하는 긴 역사를 마감하게 된다.

 

 


 



 

 

Bee Gees(비지스)는 영국 맨채스터 출신으로 맏형인Barry Gibb(배리 깁, 1946년 9월 1일생)

그리고 쌍둥이 형제인Robin Gibb & Maurice Gibb(로빈 깁,

모리스 깁 1949년 12월 22일생)으로결성되었다.

 

이들은 밴드의 리더이기도 했던 아버지 Hugh Gibb(휴 깁)과 가수 출신어머니

Babara Gibb(바바라 깁)의 영향으로 어린 나이에 음악 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1958년 호주의 Brisbane(브리스베인)에서 Rallesnake(래를스내이크)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처음 출발한 이들은 지역 경마장과 나이트 클럽 등지에서
Three Kisses Of Love라는 첫 싱글을 내고 정상으로의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이 Bee Gees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하게 된것은1966년의 히트 싱글인

Spicks & Specks가 호주에서 최초로No.1 을 차지하면서 부터였다.

 

 당시 이들이 발매하였던 첫 앨범의 이름은

Baryy Gibb And The Bee Gees Sing And Play 14 Barry Gibb Songs라는
아주 긴 이름이였다 

 

Bee Gees라는 이름은 For Brothers Gibb 이라는 의미에서
처음지어진 것이다. 이후 이들은 영국으로 주무대를 옮겨 해가 지지않는 Bee Gees
왕국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들이 영국으로 돌아가 처음 발매한 1967년 중반에발표된 앨범은

 New York Mining Disaster 1941 이다. 이 앨범은 미국과
영국 차트에서 20위권에 오르는 성적을 기록하였다.

 




 

 

이 무렵 Bee Gees의 히트곡에는 우리나라 영화'인정 사정 볼것 없다'의

 삽입곡인 To Love Somebody와Holiday 같은 곡들이 있었다.

 

그 당시 Bee Gees는 소속사였던Polydor 레이블을 통한 유럽시장 공략에 만족하지 않고

 Beatles(비틀스)같은 또다른 British Invasion을 꿈꾸며 미국의 Atlantic 레이블을 통한

미국시장공략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들은 Masachusetts의 영국 시장내에서의 엄청난 성공을바탕으로

1967년 미국시장과 영국시장에서 동시에 발매된 첫 앨범 Bee Gees First를
선보이게 되었다.

 

 그후 1969년에 발매된 Idea 앨범의 수록곡 I Started A Joke와
Gotta Get A Message To You가 미국과 영국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
Bee Gees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급 부상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마도Bee Gees란 이름을 전 세계적으로 알린 계기가 되었던 작품은
1977년 만들어진 영화 Saturday Night Fever 일것이다.





 

이 앨범들 속에는 Stayin' Alive, How Deepis Your Love,
Night Fever와 같은 곡들이 각각 차트 No. 1을 차지하였다.

 

 그리고이 불멸의 사운드 트랙은 무려 24주간이나 차트 상위권을 기록했다.

이 외에도1974년에 발표된 Stardust, 1976년에 발표된 All this and world war II,

1978년Peter Frampton(피터 프램턴)과 함께 작업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과
1999년에 발표된 Mystery Men과 같은 사운드트랙 작업에도 참여한바 있다.

 

 Bee Gees의성공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1979년 발표된 Spirits Have Flown은 다시한번 이들에게앨범 차트 정상의 영광을

 안겨다 주었고 동시에 Tragedy와 Too Much Heaven과
같은 싱글 차트 No.1 넘버들까지 기록하였고 역사는 이 앨범을 빌보드 싱글 차트
Top 10에 동시에 다섯 곡의 싱글을 올려놓은 유일한 아티스트로 기록하고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Bee Gees는 최초로 여섯 곡의 연속적인
No.1 히트 싱글을 보유한 유일한 아티스트로 떠 올랐다.




Bee Gees가 단순히 자신들의 곡으로만 슈퍼스타의 반열에
올라선 것은 아니다.

 

 Celine Dion(셀린 디온)이 부른 Immortality라는곡을 작곡해 그녀의 앨범

Let’s Talk About Love에서 함께 노래를 불러 주기도하였다.

 

Barbra Streisand(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게는 Woman In Love, Guilty,
What Kind Of Fool과 같은 세곡의 Top 10 히트곡을 선사했다.

 

그 외에도 Diana Ross(다이아나 로스)의 Chain Reaction을 Dolly Parton(돌리 파튼)과

 Kenny Rogers(케니 로저스)의 Islands In The Stream을 Dionne Warwick(디온 워윅)의
Heartbreaker 같은 히트곡들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Bee Gees는 35년
음악 인생동안 전세계적으로 무려 1억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이는 Beatles(비틀스), Elvis Presley(엘비스 프레슬리),Michael Jackson(마이클 잭슨),

 Paul McCartney(폴 매카트니)와함께 다섯 손가락안에 꼽히는 앨범 판매고이다.

 

Bee Gees는 무려 열여섯번이나그래미 후보에 지명되어 일곱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1997년 Bee Gees의첫 앨범인 Bee Gees 1st가 발매된지 30년이 되던해에 이들은

 

 월드 뮤직 어워즈, 아메리칸뮤직 어워즈, 브릿 어워즈 같은 시상식을 통해 평생 공로상 트로피를 받았고

 로큰롤 명예의전당에 이름이 헌사되기도 하였다.

 

한편 이들은 이미 1994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도이름이 오른바 있기 때문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과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모두 이름이 오르는 흔치 않는 경우를

 맞이하게 되었다.


 

 

 

1959년에 영국에서 호주, 브리즈번으로 이민

 

'비지스'는 3형제 그룹입니다.

1946년에 맏형 베리 깁이 태어났고 3년 후 쌍둥이 로빈과 모리스가 태어났습니다.

모두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비지스(Bee Gees)'라는 그룹이름은 깁 형제들(Brothers Gibb)이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실패한 음악인들이었습니다.

'비지스'가족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1959년 호주 브리즈번으로 이민왔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비지스'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초기 식민지 시대처럼 호주로 유배당한 셈입니다.

영국에서 가난했던 부모는 돈 벌러 다니느라 우리 3형제가 말썽을 피우는 걸 몰랐습니다.

결국 경찰이 우리를 끌고 집으로 가서 딱 세마디 했다. 20 파운드 플랜!"

 

 

20파운드 플랜'은 인구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호주정부가

영국의 극빈자들을 상대로 20파운드만 내면

호주에 정착시켜 주겠다고 약속한 이민정책이었습니다.

그 당시 20파운드는 호주로 오는 배에 탈 수 있는 1인 편도요금에 불과했습니다.

 

200년전에 영국은 빈민들을 죄수로 둔갑시켜서 식민지 호주로 유배시켰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십중팔구 범죄자가 될 것으로 보이는

'비지스'3형제를 호주로 유배시켜버린 것입니다.

'20파운드 플랜'등의 노래는 그런 사연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비지스'3형제의 공통점은 학교 다니는 걸 싫어하고

밤낮없이 노래 부르고 연주하기를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11-14살의 나이에 그룹을 만들어서 클럽과 바에서 공연했습니다.

지금도 있는 서퍼스파라다이스의 파라다이스의 '팜 라운지(Palm Lounge)'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시드니에서 혹사당한 '비지스'

 

3형제는 음악을 좋아하기도 햇지만, 그들의 수입이 가족 전체의 생계 밑천이어서

어쩔수 없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62년 큰 꿈을 안고 시드니로 활동무대를 옮겼습니다.

그러나 13-16세에 불과한 3형제는 시드니에서 혹독한 시련을 껶게 됩니다.

 

그나마 나중에 주목에 받은것은 그들의 뛰어난 가창력과

큰형 베리의 천재적인 작곡솜씨 덕분이었습니다.

베리의 아버지조차 아들의 작사, 작곡 솜씨에 놀라곤했습니다.

 

 

 

15-17살의 어린 나이에 어른들이나 느낄수 있는 사람의 상처를

서정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베리는 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시드니가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호주는 비틀즈를 능가하는 우리 3형제의 실력을 도무지 인정해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아픔을 남녀 간의 사랑으로 비유해서 노래를 만들었다.

'나를 잊지 마세요(Don't forget to remember)도 그런 식으로 만들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To love somebody)

'비지스'의 베리 깁이 16살에 시드니에서 작곡한 노래입니다.

'시드니에서의 활동은 비극 그 자체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동생들(쌍둥이 로빈과 모리스 당시 13살)에

좀처럼 웃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거의 매일 고물자동차를 타고

5-6시간씩 달려가 와가와가, 카우라, 리즈모어, 비가 등에서 공연을 했다.

 

그런데도 동생들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러면 동생들을 때려주었다.

그렇게 활동하면서 우리 3형제는 실력을 연마했다.

아니 당장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매일 공연했다.

 

'나는 남자다 용감한 남자다. 그런데 당신은 모른다. 당신은 정말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방식을...누군가를 사랑할때 어떤 식으로 사랑하는 지를"

이라는 내용의 가사를 부를 때마다 나는 지금도 목이 멘다.

언뜻 연인에게 하는 얘기 같지만 사실은 동생들에게 전하는 형의 절규였다"

-Berry Gibb-

 

"내가 조크를 시작했을 때 세상은 울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울기 시작했을 때 세상은 웃기 시작했습니다"라는

가사에도 시드니와 얽힌 절철한 사연이 있더군요

 

 

 

 

비틀즈 극복하러 다시 영국으로

 

시드니 '로열호주역사확회'건물 뒤쪽에 3형제가 소속됐던 페스티벌레코드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혹사당하고 착취당했습니다.

지금도 한국에서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다는

'노예계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그러나 3형제의 뛰어난 가창력과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는

하모니에 대한 소문이 영국으로 전해졌습니다.

그 결과 RCA,EMI등에서 프로포즈를 받았지만

페스티벌레코드사에서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호주에서 사라졌습니다.

 

1967년1월3일 무작정 영국으로 가는 배에 올라탄 것입니다.

그들은 인도양과 수에즈 운하를 거쳐서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주머니에 몇 백 파운드밖에 없었으니. 그야말로 빈털터리의 귀향이었습니다.

그러나 영국 음악계는 '혈연으로 연결된 하모니'가 성공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들은 불과 며칠 안에 폴리돌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비지스(Bee Gees)"라는 그룹 이름도 그때 만들었습니다.

Gibb 형제들의 이름을 합성한 것이었지만

비틀즈와 비슷한 발음으로 만든 것은 지극히 상업적인 이유였습니다

 

 

 

'비지스'의 첫 빌보드 1위곡인 매사추세스'

이곡에 얽힌 스토리는 더욱 기가 막힙니다.

 

실제 이 음악의 배경은 호주 내력의 와가와가(Wagga Wagga)였습니다.

하루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가운데 7시간을 운전해서 와가와가에 갔습니다.

 

중간에 비에 미끄러져서 죽을 고비도 엄겼고요. 그런데

막상 그곳에 도착해보니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됐습니다.

 

그냥 돌아오면서 그들은 많이 울었답니다.

그 가사를 메사추세스로 바꾼겁니다.

 

'그녀를 혼자 남겨두고 캘리포니아로 돈 벌러 가는 날.

메사추세스 도시 전체가 깜깜해졌고...'라는 가사가 나오지요.

 

그러면서 내 놓은 음반이 '1941년 뉴욕 광산의 참사(New York Mining Disaster 1941)'였습니다.

중간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오는 애절한 노래입니다.

 

'미스터 존스, 내 아내를 만나본 적 있나요?(Have you seen my wife, Mr. Jones?)

그렇다고 큰소리로 말하지는 마세요 (Don't go talking too loud)

갱도가 무너져 내릴지도 몰라요 미스터 존스(You'll cause landslide, Mr. Jones)"

전형적인 팝 발라드이지만 '비지스'특유의 서정과 비애가 듬뿍 묻어나는 명곡입니다.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은 광부가 동료광부와 함께 무너져 내린 막장에 갇혀서

나는 대화를 가사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구조되지 못햇다고 합니다.

 

베리 깁은 시드니에 거주할때

뉴스를 접한 뉴캐슬 지역에서 사망한 광부들을 떠올렸습니다.

그가 10대를 보낸 호주는 아름답고 제법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와 서민의 삶은 부박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결국 '비지스'는 '1941년 뉴욕 광산의 참사'라는 특이한 제목의 노래를 통해서

호주의 비극을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비지스'의 히트곡은 주고 영국에서 작곡됐지만

노래의 배경들은 대부분 호주와 노동게층입니다.(70-80년대의 디스코 곡 제외)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절에 겪었던

고단한 삶과 사랑의 경험이 노랫말과 곡으로 승화된 것입니다.

 

비록 상업적인 이유로 노래 제목에다 뉴욕이나 메사츄세스등을 넣었지만

사실은 그들의 슬펐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시드니나 브리즈번, 뉴캐슬 등의

추억을 노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슈퍼그룹 ‘비지스’가 역사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70~80년대 전설적인 팝그룹 ‘비지스’의 둘째 로빈 깁이 암 관련 합병증으로 투병해오다

62세로 사망했습니다.

로빈 깁은 1949년 영국 인근의 맨 제도에서 태어나 호주로 이민 간후 1963년 형 배리 깁, 쌍둥이

동생 모리스 깁 과 함께 비지스로 데뷔했습니다.

 

 

 

데뷔 초기 청아한 화음으로 ‘홀리데이’ ‘퍼스트 오브 메이’ ‘매사추세츠’ 등의 히트곡으로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비지스는 1970년대 후반 디스코 열풍을 주도한 ‘토요일 밤의 열기’의 빅 히트로 전세계에서 2억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습니다.

 

199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비지스는 2003년 쌍둥이 동생 모리스 깁의 사망으로 사실상 해체했으며 로빈 깁은 2010년 이후 결장암과 간암으로 투병해 오면서도 얼마전 신곡을 내는 등 활동 재개를 원해 팬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