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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Cliff Richard -Evergreen Tree

 

  

 

 

 

 

 

 

 

 




 

 

 

 

 

 

 

 

 

 

Evergreen Tree

 

Oh, darling, will our love be
like an evergreen tree?
Stay evergreen and young
as the seasons go



그대여, 우리의 사랑 늘 푸른
나무처럼 영원할까요?
계절이 지나도 언제나 젊고
푸르게 남아 줘요


 

Your kisses could make love
grow like an evergreen tree
Blue moon, the summer sun
and the winter snow

 



당신의 입맞춤은 늘 푸른 나무처럼
사랑을 키울 수 있어요
푸른 달, 한 여름 햇볕,
겨울의 흰 눈처럼 말이에요
  

 

On every branch will blossom
dreams for me and you
Our tree of love will stay evergreen
Our hearts stay ever true

가지마다 당신과 저를 위한
꿈들이 피어날 거에요
우리들 사랑의 나무는 늘 푸를 거에요
우리의 마음도 영원히 진실할거고요
 

 

Darling, I love you so
Don't you know that
I'll be true 'til the leaves turn blue 
on the evergreen tree?

님이여, 당신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늘푸른 나무의 잎새들이 시들
그날까지 제 당신께
진실하리란 것을 모르시나요?

 



 
On every branch will blossom
dreams for me and you
Our tree of love will stay evergreen
Our hearts stay ever true

 


가지마다 당신과 저를 위한
꿈들이 피어날 거에요
우리들 사랑의 나무는 언제나 푸를 거에요
우리의 마음도 영원히 진실할 거고요

 



 Darling, I love you so
Don't you know that
I'll be true 'til the leaves turn blue 
on the evergreen tree?

 



님이여, 당신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늘푸른 나무의 잎새들이 시들
그날까지 제 당신께
진실하리란 것을 모르시나요

 

 

 

 

 

 

 

 

Cliff Richard

 

 

 

옛날, 음악다방에 가면 꼭 누가 신청을 했던음악이다.

'Cliff Richard'의 Evergreen Tree..

미국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있었다면 영국에는 클리프 리차드가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69년도 이화여대 공연도중 한 여성팬이 속옷을 벗어 던졌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흥분의 도가니'가 된 클리프의 내한 공연


Cliff Richard의 내한 세 번째이자 마지막 공연이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렸다.

전날 공연을 TV가 중계해서인지 이대 앞에는 수천의 관중이 몰렸다.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다투다 강당 유리창이 깨져 사람들이 베이고 넘어져 다치는 소동이 일어났다.

 

 경찰은 서둘러 출입문을 막았다.

표를 가지고도 미처 못 들어간 사람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여학생들은 그런 중에도 "클리프 오빠, 사랑해!" 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공연장 안은 더 심했다. 뜨거운 흥분과 광기에 가까운 소란이 무대와 객석을 후끈후끈 달구었다.

Cliff Richard가 최고의 히트곡 'The young ones'를 부르자 무대 위로 꽃다발 손수건 선물상자들이

던져졌다. 관객 전체가 기성을 지르거나 노래를 따라 불러 정작 가수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흐느끼다 못해 통곡하는 여학생이 넘쳐났고 기절해 실려 나가는 사람도 생겼다.

몇몇 남성은 "시끄러워 노래를 들을 수 없다"며 의자를 쾅쾅 치고 여학생들에게 욕을 퍼부었다.

거의 주먹다짐 수준이었다.

 

 

레퍼토리가 'Summer holiday' 'Devil woman'을 거쳐 당시 젊은이들이 거의 가사를 외다시피 한

'Visions(of you)' 'Evergreen tree'로 넘어가도 가수의 목소리는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공연 초반 Cliff Richard는 청중들에게 "제발, 제발, 노래를 할 수 있게 조용히 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는 흥분과 함성 탓에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고 판단했는지 나중엔 그런 호소마저

포기했다. 아예 마이크를 객석으로 돌려놓고 자신이 오히려 청중의 노래를 듣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무대에는 여전히 손수건과 사진 수첩 머리핀 등 온갖 잡동사니 선물들이 쉼 없이 던져졌다.

 

이들 물건 가운데는 여학생들이 입고와 벗어던진 팬티도 있었다고 일부 언론이 보도했다.

그러나 주최 측은 나중에 선물을 모두 수거, 점검한 결과 팬티 등 속옷은 한 점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한마디로 그날 이대 강당은 안과 밖 할 것 없이 완전히 집단 흥분의 도가니였다.
 

이 모든 소동은 공항에서부터 예견되었는데…


이런 소동은 사실 CR이 입국한 김포공항에서부터 예견됐다.

1969년 10월16일자 매일경제는 입국장 소동을 이렇게 전했다.

 

"클리프 리처드군(29세)일행이 내한한 15일 낮 김포공항은 2백여 명의 단발머리 소녀 팬들이 모여들어

수라장....리처드 군이 트랩을 내려서자 그의 초상화를 든 앳된 소녀 팬들은 발을 구르며 일제 기성을

질러 이채....리처드 군이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소녀들은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흐느끼는 등

 

광태(狂態)를 보여 기동경찰관들이 등장, 겨우 진압.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공항 손님들,

왜 무엇 때문에 저렇게 미치느냐고 고개를 갸우뚱."

 

 

그런데 당시의 팬클럽은 Cliff Richard의 내한에 맞춰 즉석 결성된 게 아니었다.

내한공연이 있기 5년 전인 64년 12월 스카라 극장에서는 CR주연 영화 'The young ones'를 상영했었다.

 

이때 그에 감명 받은 여학생들이 CFC(Cliff Fan Club) 혹은 CRFC(Cliff Richard Fan Club)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한 것. CR의 내한공연은 사실 이들의 노력으로 성사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한국 팬클럽은 외국의 팬클럽 및 영국 CR측과 연락해 최신 음반을 들여왔고 그걸 최동욱 이종환 피세영 등

라디오방송 디제이들에게 보내 한국에 CR노래가 더 많이 퍼지도록 애를 썼다.

물론 CR(Cliff Richard)에게 끈질기게 내한공연도 요청했다.

소리만 지르는 오빠부대가 아니라 진짜 열광적인 팬이었던 셈이다.

 

당시 공연 입장료는 특A석 2,000원, A석 1,700원부터 D석 800원까지 5종류였다.

버스 값이 10원, 연탄 1장에 15원, 해장국과 자장면이 50원, 설렁탕이 90원 하던 때니 꽤 비싼 편이었다.

 

그런데도 표는 거의 매진되다시피 했다. 구입자는 대부분 여고, 여대생. 이렇게 CR의 광(狂)팬이 많다는

걸 여고에선 이미 알고 있었다. 서울시내 많은 여학교가 그의 방한일자에 맞춰 중간고사를 실시했다.

일부 학교는 아예 학생들의 조기 하교를 막았다. 생활지도 교사를 공항과 공연장에 보내 학생 동태를 파악한

학교도 많았다.

소녀 오빠부대에 충격받은 어른들은…

이른바 오빠부대의 기성(奇聲)과 소란을 서구 젊은이들의 철없는 짓거리로만 보아왔던 기성세대는

'CR 사태'에 넋을 잃었다.

 

당시 '어른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는 한 달 뒤 Y시민논단이 이 현상을 분석하는 토론회를 연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10대와 클리프 리처드' 제목의 토론회에서 서울 의대 정신과 한동세 교수는 "우리사회 대로의

특성을 지닌 서울에서 그처럼 광란하는 10대의 반응은 오히려 부자연스럽다."면서 서양의 것이면

무엇이든 따라하겠다는 사고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작가 송정숙 씨는 "CR의 팝송이 불건전하지 않은 만큼 울부짖는 우리 10대의 사고나 행동이

불건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소 10대들만이 지니고 있는 감정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가수에게 분출구를 찾아 폭발한 것"이라고 해석하며

기성세대가 10대의 '그 무엇'을 이해하여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어야지, 우범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찬반논쟁은 급기야 새로운 '청년문화'의 태동을 예고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시민사회와 문화계가 어떤 반응을 보이건 정부는 달랐다.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고 자기들의 우상을 좇아

'날뛰는' 10대들에게 더 이상 자극의 원천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72년 CR이 다시 한국을 찾아 공연하려 했으나 정부는 일거에 이를 거부했다.

 싱가포르가 그의 비틀즈 스타일 장발을문제 삼았듯 한국도 그의 장발이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이유를 들었다.

 마침 그때는 대통령의 엄격한 지시로 장발과 미니스커트, 고고 춤 등 '무분별한 외래 퇴폐풍조'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나설 때였다. 


 

Cliff Richard, 50대가 된 소녀들을 다시 만나다


결국 69년 이후 근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년 우상 팝스타의 내한공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샹송가수 살바토레 아다모의 공연이 70년대 후반에 두 차례 있었으나 오빠부대가 동원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사이 한국가요무대에도 차츰 오빠부대가 결성되기 시작했다. 조용필 전영록 최성수 구창모 윤수일

김범용 등의 공연장이나 녹화무대에는 10대 소녀 팬들이 진을 치고 앉아 오빠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들은

좋아하는 가수의 집은 물론, 동선을 따라다니며 팬덤을 과시했다.

 

그러던 80년 6월. 미국의 19살 '꽃미남'가수 레이프 가렛(Leif Garrett)의 내한공연이 남산 숭의 음악당에서

열렸다.

이때의 분위기는 CR공연의 그것을 훨씬 넘어섰다.

 

음악당 유리창이 깨졌고 화단의 꽃도 무수히 뽑혔다.

공연 때 그에게 바치기 위해 뽑은 것이었다.

 객석에선 기절해 병원에 실려 가는 여학생이 속출했다. 


무대 위에는 온갖 물건이 다 던져졌다.

 모든 걸 다 줘도 좋다는 뜻으로 던진 열쇠도 수북이 쌓였다.

청소년들의 아이돌 스타를 향한 도 넘은 열정에 어른들은 다시 진저리를 쳤고 정부는 해외 아티스트 공연을

 불허했다. 그리고 92년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공연 때는 사상자가 발생하는

불상사까지 빚어졌다.

 

 

오빠부대의 원조 클리프 리처드는 2003년 다시 한국을 찾았다.

공연장인 잠실체육관에는 이미 반백이 된 여성 팬들이 몰려와 옛날처럼 환호하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34년 만에

재공연을 하게 된 리처드도 "시간은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과 지난 시절로 돌아가고 싶네요.

저와 여러분의 추억여행을 시작해 봅시다."며 정성을 다해 애창곡들을 불러냈다.

 잠실벌에는 그와 50대 여성 팬들이 함께 부른 'Evergreen tree'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