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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음악( Newage* )

Yngwie Malmsteen - Cr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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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닉 지상주의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80년대, 록 프레이즈의 빠르기와 난이도는 한꺼번에 높아졌다.

그 불씨를 만든 것이 에드워드 밴 헤일런이라면 그것에 기름을 부어넣은 남자가 북구에서 씬으로 날아든

 잉배이 J.말름스틴이다.

 

1963년 6월 30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5세의 생일 때 어머니로부터 기타를 선물받았고 2년 후에 지미 헨드릭스를 체험하고 9세때 리치 블랙모어의 신자가

 된 그는 구 소련의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이머가 연주하는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를 듣게 된 12세를

전후하여 지미+리치를 루트로 하면서 클래시컬한 세계를 연출하는 독자의 스타일을 확립했다.

 

그후 83년 미국으로 건너가 스틸러에서 데뷔하고 같은 해에 알카트라즈에 참가하여 퍼스트 앨범 알카트라즈로 일약

그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이후 알려지지 않았던 하모닉 마이너, 디미니쉬의 울림, 바이올린 같은 코드 아르페지오 주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래의 틀을 초월한 속주로 여타 기타리스트를 압도했다.

 

클래식이라는 록에 있어서는 컨템포러리한 수법을 도입하고 반대로 지미나 리치의 플레이, 그리고 그들에게서 계승받은 스트래트캐스터와 마샬 앰프라는 매우 고전적인 세트의 음색을 고집하는 보수적인 면, 이 서로 상반되는 패러독스가

그의 매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알카트라즈 시절만 해도 아리아 기타를 애용했던 잉베이는 이후 자신의 솔로 앨범을 통해 모든 수록곡을 펜더

스트래토캐스터로 연주하고 있다.

 

 

 

 

 

 

 

 

 

 

기타 테크닉을 극한으로 이끈 80년대 중 후반의 스피드 제왕들인 잉위와 임펠리테리입니다.

둘은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굉장히 다르죠. 첫 번째 공통점은 둘 다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는 밴드를 한다는 점입니다.

 

 

 

 

 

어려서 클래식 수업을 받고 바이올린등을 연습한 잉위는 지미 헨드릭스의 미친기타에 넔을 잃고 이후 리치 블랙모어와 울리 로스의 클래시컬한 어프로치에 반하고 결국 스윕 아르페지오를 들여와 세상에 그의 기타세계를 알립니다.

 

그의 재능은 당시 천재 프로듀서 마이크 바니에의해 미국에 알려집니다.

그리곤 [Steeler]의 저 앨범에 잠깐 몸 담았다가 83년 당대 최고의 보컬로 이름을 날리던 그래험 보넷과

[Alcatrazz]를 만들어 활동을 합니다.  

 

 

 

          

 

 

그것도 잠시 자신만의 밴드 [Yngwie Malmsteen Rising Force]를 조직해 본격적인 세계정복에 나섭니다.

 또한 첫 앨범부터 그의 든든한 메이트이자 20세기형 키보디스트 옌스 요한슨과 함께 초절정 솔로 배틀을 선보입니다. 1집 수록곡 [Black Star], [Far Beyond The Sun]으로 전 세계의 모든 기타리스트들을 긴장시키기에 이릅니다.  

 

 

 

  

 

 

한창 기타를 연습하던 크리스 임펠리테리는 잉위의 등장에 엄청난 충격을 먹게되고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기위해 부던히 노력을 합니다. 임펠리테리는 결국 극한의 스피드로까지 기타연주를 몰아붙이며 전 세계 속주 전쟁에 선봉에 섭니다. EP를 발매하고 88년 그래험 보넷과 함께 1집 [Stand In Line]을 발표합니다. 특히나 [Over The Rainbow]의 연주로 단번에 기타영웅으로 등극합니다. 둘의 두번째 공통분모 그래험 보넷이 있었군요.  

 

 

 

   

 

 

 

다작을 하는 잉위는 창작의욕을 불태우며 그의 명반들을 쏟아냅니다. [Odyssey]에서 정점을 찍은 잉위는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라이브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후 퇴색되어가는 기타속주 테크닉 전쟁과 함께 메틀이 서서히 사그라 듭니다.  

 

 

 

 

 

 

잉위가 제왕으로 군림하며 승승장구 했지만 임펠리테리는 2집이 나올무렵 큰 방황을 하게 됩니다. 절친이자

 동반자 롭 락이 돌아와 함께한 [Grin And Bear It]은 파워풀한 곡들로 구성은 되어있지만 임펠리테리의 특징을

 살리지 못한체 외면을 당합니다.

 

이후 다시 돌아온 밴드는 미니앨범 [Victim Of The System]을 발매합니다. 예전 임펠리테리의 모습을 다시금

보여준 준비작이죠. EP나 미니 싱글이 안팔리는 한국에는 저 미니 앨범과 2집을 섞어서 발매합니다.  

 

 

 

 

 

 

90년대 미국에서 바로크 메틀은 뭐 그냥 사장됩니다.

하지만 유럽과 특히 일본에서는 지속적인 지지를 받으며 제왕의 대접을 받습니다. [The Seventh Sign]에서는

 라우드니스에서 활약한 유일한 서양보컬 마이크 베세라를 맞이해 일본 오리콘 1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 앨범이 나오기 전 잉위의 처가가 약혼을 반대하면서 경찰에 체포를 의뢰해 밤중에 잡혀갑니다. [I Don't Know]란 곡에서 뭔일인지 자신도 모르겠다면서 심경을 토로하죠.

 

90년대가 끝나갈 무렵 발표한 [Facing The Animal]에서는 전설의 드러머 코지 파웰이 함께 했는데 앨범을 발표하고 얼마 안가 코지는 차 사고로 사망하고 저 앨범이 유작이 된 잉위에게는 특별한 앨범입니다.  

 

 

 

 

 

 

 

 

 

임펠리테리는 이후 억셉트, 채스테인, 앨리스 쿠퍼등에서 활약한 명 드러머 켄 메리와 함께 90년대를 함께하는데요

 특히 4집인 [Screaming Symphony]는 유럽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왼쪽[Answer To The Master]

부터 기독교적 색채가 가득한 제목과 곡들이 즐비합니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을 존중하며 자신들이 크리스천 밴드는 아니라고 하죠. 

 

 

 

 

 

지속적인 행보를 하던 잉위는 메틀리카가 [S&M Live]로 위세를 떨칠때 그만의 클래식 크로스 오버앨범을 발매하고

 일본에서는 거대 라이브도 선 보입니다. 이후 G3와 함께 멋진 공연을 펼쳐보이기도 했죠.

 

 

 

 

 

 

한때 다시 그래험 보넷이 돌아왔었지만 결국 또 영원한 동반자 롭락이 들어와 애범을 발표했죠. 이후 임펠리테리는

일본에서 드림팀을 형성해 애니메틀USA라는 이름으로 2장의 앨범을 발매합니다.

 

키스처럼 분장했지만 일단 보컬은 잉위와 함께했던 마이크 베세라, 베이스에 루디 사조, 드럼에 주다스의

 스캇 트래비스가 함께 엄청난 곡들을 연주합니다.

에반게리온, 마징가 메들리, 세이야, 갓챠맨 등등.. 

 

 

 

 

 

 

 

 

 

잉위는 명성만큼이나 멋진 보컬들과 함께 했죠.

잘 안알려진 보컬들은 그들의 이름을 알릴 기회를 얻었고 훌륭한 보컬들이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임펠리테리와 다른 점은 보컬교체에 있네요. 대부분을 자신의 동반자 롭 락과 한 그와 달리 잉위는 자신의 음악을

다른 색들로 칠하고 싶어했던 욕심쟁이 였습니다. 보컬들은 누구일까요? 함 맞춰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