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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Bad Finger-Carry On Till Tomorrow

 

 

 

Bad Finger-Carry on Till Tomorrow

 

 

Carry on Till Tomorrow

 

 

 

In younger days I told myself
my life would be my own
And I leave the place


where the sunshine never shone
for my life's too short for waiting

when I see the rising sun
when I know again that I must carry on
carry on to till tomorrow

there's no reason to get back
carry on, carry on, carry on


Long shadows of the cloud's
annoying to the sky
Carry on till I find the rainbow's then
for my life's too short for waiting

when I see the rising sun
when I know again that I must carry on
carry on till tomorrow
there's no reason to get back
carry on, carry on, carry on


Drifting gone with the winds of freedom
live this stormy days

And we ride to tomorrow's golden wheels
for my life's too short for waiting
when I see the rising sun
when I know again that I must carry on

carry on till tomorrow
there's no reason to get back
carry on, carry on, carry on


And when the heavy journey's done
I rest my weary head
for the world in this colors will be mine
for my life's too short for waiting

when I see the setting sun
when I know again that I must carry on
carry on till tomorrow
there's no reason to get back
carry on, carry on, carry on

 

 

 

 

 

 

Badfinger


 

멤버는 조이 몰란드(보컬, 기타), 피트 햄(보컬, 기타, 키보드), 톰 에반스(보컬, 베이스), 마이크 기븐스(드럼)

Harry Nilsson의 커버로 전세계적으로 히트한 명곡 Without You의 원작곡자로 유명하며 파워 팝 장르를 창시한

 밴드라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보통 이들을 설명할 때는 그러한 설명보다 팝 역사상 가장 불운한 그룹 이라는 표현이 훨씬 많이 쓰인다.

1967년 웨일스에서 The Iveys라는 이름으로 피트 햄(기타,보컬), 톰 에반스(기타,보컬), 론 그리피스(베이스,보컬), 마이크 기븐스(드럼)으로 결성되었다.

 

결성 직후인 1968년 이들은 그 유명한 비틀즈가 설립한 애플 레코드와 계약하고 데뷔를 준비한다. 애플과의 계약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었지만 그들을 평생 따라다닌 '제2의 비틀즈' 라는 꼬리표가 대중들에게 붙는 순간이기도

 했다. 

 

1968년 말, 애플과의 계약 후 데뷔 EP인 <Maybe Tomorrow>를 발매했지만 평단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고 마침

 첫 아이가 태어나 돈이 궁해진 상태였던 베이시스트 론 그리피스가 밴드 활동에 회의감을 느끼고 밴드를 탈퇴한다.

 

 론 그리피스가 탈퇴한 이후, 밴드는 톰 에반스가 베이스로 포지션을 바꾸고 오디션을 통해 리버풀 출신의 기타리스트

 조이 몰란드를 영입하여 멤버를 재정비한다.

 

또한 새롭게 출발하는 의미에서 존 레논의 제안으로 밴드 이름을 배드핑거(Badfinger)로 바꾼다. 직후 배드핑거는

 1969년 폴 매카트니가 작곡한 <Come and Get it>으로 데뷔하게 된다.

폴 매카트니는 1집 Magic Christian Music의 전체 프로듀싱도 맡았다.


1969년 애플 레코드의 협력으로 배드핑거는 링고 스타 주연의 영화 Magic Christian에 출연하고 영화 OST앨범

Masic Christian Music의 전곡을 담당하여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미국 진출을 위한 투어를 위해 미국인

매니저 Stan Polley와 계약을 맺는다. 

 

다음 해인 1970년에 발매된 No Dice 앨범은 조이 몰란드가 처음으로 참여한 앨범이자 Straight Up과 함께 밴드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되는 명반으로 앨범에서 싱글 커트된 <No Matter What>이 차트 8위에 오르면서

밴드는 본격적으로 락스타의 반열에 합류한다.

그 유명한 <Without You>또한 이 앨범에 실려있는 곡이다.

 

1971년 그들의 최고 명반으로 꼽히는 Straight Up이 발매된다. 이 앨범의 제작과정은 엄청나게 험난했는데 본래

프로듀서로 낙점된 이는 조지 해리슨 이었고 앨범이 완성직전까지 가나 갑작스럽게 성사된 방글라데시 투어로 인해

앨범의 완성은 조지 해리슨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이에 애플 레코드사는 앨범을 마무리하기 위해 기타리스트 출신의

 프로듀서 토드 런그렌Todd Rundgren을 고용한다.

 

Todd는 앨범의 사운드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서 밴드는 거의 처음부터 다시 앨범을 녹음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토드와 배드핑거 멤버들 사이에 불화가 발생하여 다음 앨범은 꼭 밴드 스스로 프로듀싱 하게 해달라고 애플 레코드에게 요구하게 된다.  

Straight Up앨범에서는 <Day After Day>, <Baby Blue>가 싱글커트되어 각각 빌보드 차트 4위와 14위에

 랭크되었다.


비록 앨범은 성공했지만 애플 레코드의 재정상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고  이에 밴드의 매니저였던 Stan Polley는

 워너브라더스와 비밀리에 계약을 채결하기에 이른다.

 

이 소식을 들은 애플 레코드는 격노했고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이미 밴드 스스로 프로듀싱까지 하여 녹음이 완료되어

있었던 앨범 Ass의 발매를 취소하고  애플 레코드사가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던 피트 햄과 톰 에반스 곡들의 발행을

중단하고 저작권료 지급을 거부하게 된다.


이러한 애플의 보복조치로 인해 밴드의 주작곡자들인 피트 햄과 톰 에반스는 돈이 궁해졌고 그들이 작곡한 곡들 중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Without You>의 리메이크 판권을 당시 슬럼프에 빠져있었던 미국 가수

 Harry Nilsson(해리 닐슨)에게 헐값으로 팔아 버린다.

 

현악기 세션이 더해진 해리 닐슨의 리메이크 곡은 발매 후 빌보드 차트1위를 기록하는 등 엄청난 히트를 불러 일으키고 해리 닐슨은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한다.

하지만 닐슨과 그의 매니저는 곡의 편곡을 다르게 했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원작자라고 주장하며 피트 햄과 톰 에반스에게 돈을 지급하기 거부했으며 그들은 해리 닐슨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라는 소송을 제기한다.


한편 피트 햄과 톰 에반스가 워너와 애플사이의 계약 문제로 곡을 발표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밴드의 기타리스트 였던

 조이 몰란드는 자신의 곡을 각각 다른 판권업자들과 계약하고 있었고 자금사정이 절박했던 애플 레코드의 관계자들은 '원하는 음악을 자유롭게 하게 해주고 단독으로 밴드에서 주목받게 해주겠다'며 조이를 설득했고 조이는 피트 햄의

 <Apple of My Eyes>를 앨범 첫 트랙에 싣고 앨범의 커버를 원래 계획[7]대로 발매한다는 조건하에 승낙을 하여

 1973년 앨범의 대부분을 조이 몰란드의 곡으로 채운 버전의 Ass를 발매시키기에 이른다.


워너 레코드로 새 둥지를 튼 밴드는 애플 시절보다 빨라지고 복잡해진 사운드, 훗날 섹스 피스톨즈와 펄프 등의 앨범을

프로듀스하게 되는, 하지만 당시에는 신참 프로듀서였던 크리스 토마스를 영입하는 등 당시 이들에게 붙여진 '비틀즈에 의해 키워진 제2의 비틀즈'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워너와의 첫 앨범 <Badfinger>는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았고 다음 앨범인 Wish You Were Here제작도중

 조이 몰란드와 피트 햄의 관계가 악화되어 밴드는 해체직전까지 가게된다.

 

결국 둘의 갈등은 피트 햄이 밴드를 탈퇴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는데 피트 햄의 빈자리는 기타리스트이자 키보디스트인

 밥 잭슨이 가입함으로써 체워지게 된다.

 하지만 워너 측에서 피트 햄이 밴드에 돌아오지 않으면 밴드와의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피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솔로1집 녹음 도중 다시 밴드로 돌아와 투어에 참여한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계속 좋지 않았고피트 햄이 밴드로 돌아온 직후 이번에는 조이 몰란드가 밴드에서 탈퇴하게 된다.


그러던 중 설상가상으로 밴드의 미국 매니저였던 Stan Polley가 워너의 계약금을 들고 먹튀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에 분노한 워너 측은 <Wish You Were Here>앨범이 발매된지 불과 한달만에 앨범을 절판시킨다.

 

 이러한 워너의 조치에 절망한 밴드의 리더이자 메인 송라이터 중 한 사람이었던 피트 햄은 결국 자신의 28번째 생일

 3일전인 1975년 4월 24일 만 27세의 나이로 녹음실에서 목을 메고 자살하게 된다. 유서에는 당시 만삭이었던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아내에 대한 미안함, 아무리 곡을 써도 돈을 벌기는 커녕

 

 발표조차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절망, 자신의 음악은 제2의 비틀즈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평생을

 바친 음악에 대한 회의감, 밴드를 배신하고 밴드의 돈을 가로 챈 매니저 Stan Polley에 대한 분노 등 음악 비즈니스에

대한 억하심정이 담겨 있었다.  

 

참고로 <Without You>의 메인 맬로디를 포함하여 <No Matter What>, <Day After Day>, <Baby Blue>등

밴드의 히트곡 중 대다수는 다 그가 작곡한 곡이었다.


피트 햄의 자살 후 남은 배드핑거의 멤버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마이크 기븐스는 웨일스에서 세션 드러머로 일했으며

 톰 에반스와 조이 몰란드는 음악계를 떠나 톰 에반스는 파이프 수리공으로, 조이 몰란드는 그의 미국인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카페트를 파는 사업을 하게된다.

 

1978년 조이 몰란드는 톰 에반스에게 연락해서 배드핑거를 제결성하자고 말했고 톰은 그의 의견에 동의하여 그와 함께 2장의 앨범을 내게되고 그럭저럭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조이 몰란드와 톰 애반스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되면서 그룹은 다시 와해되는데 이 당시 조이는 배드핑거의 이름만 빌리고 그의 미국 동료들과 같이 만든 새 밴드를 생각하고 있었고 톰은 배드핑거의 원년 멤버들로 밴드를 꾸리는

실질적인 재결성을 원했었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은 '조이 몰란드의 배드핑거'와 '톰 에반스의 배드핑거'라는 2개의그룹으로 나뉘어서 활동하게 된다.

조이 몰란드의 그룹에는 조이 몰란드와 그의 미국인 동료 뮤지션들이 톰 애반스의 그룹에는 배드핑거의 원년 드러머

마이크 기븐스와 워너 레코드 제적시절에 같이 활동한 키보디스트 밥 잭슨이 가입하였다.

 

그러나 두 그룹 모두 별다른 성공을 하지는 못했고 그들은 서서히 알콜과 마약에 빠지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톰 에반스는 조이 몰란드와 전화로 <Without You>의 수익 분배와 저작권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게 되고  에반스는 분노하여 전화를 끊고 아내에게 음악 비즈니스에 대한 환멸과 피트가 있는 곳은 분명히 이 곳보다 좋은 곳일

거라며 하소연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다음날인 1983년 11월 19일 아침 톰 에반스는 그의 가족들에 의해 뒷마당의 나무에서 목을 메어 죽은 채로

발견된다. 향년 36세였다.


톰 에반스의 사후 마이크 기븐스는 조이 몰란드의 배드핑거에 가입하여 투어를 돌다가 1989년 탈퇴 후 몇 장의 솔로 앨범을 발매하였으며 2005년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조이 몰란드는 조이 몰란드의 배드핑거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계속 활동을 하고 있다.

 

 

Bad Finger - Day After Day

 

 

피트 햄(Pete Ham,), 조이 몰란드(Joey Molland,), 탐 에반스(Tom Evans,), 미키 기빈스(Mike Gibbins)
4인조 그룹인 배드 핑거(Bad Finger)는비틀즈와 아주 유사한 사운드를 지닌 그룹으로 ...실제로 폴 메카트니와

조지 헤리슨등 비틀즈의 도움을 받으며 그들의 영향 속에서 탄생되었다.


그들의 이런 비틀즈적 요소로 인해 그럭저럭 성공을 거두었지만 또한 비틀즈의 아류라는 비난에 내내 시달리며 1975년에는 팀의 리더인 피터 햄이 자살함으로서 bad finger는 슬픈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고 79년과 81년 그들은 새로이

 앨범을 발표했지만 그 역시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83년엔 에반스 역시 자살하여 bad finger의 불행한 역사는

종결되어 버렸다.


흐르는 곡 carry on till tomorrow는 그들의 곡중 국내에 가장 많이 알려진 곡으로 어쩐지 슬픈 그들의 종말을 예견하는듯 아름다운 기타 반주로 시작되는 슬픈 멜로디가 은근히 청각을 자극하고 있다.

 

 

Carry on Till Tomorrow - Bad Fin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