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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Pink Floyd -Wish You Were Here , Another Brick in the Wall


Pink Floyd-Wish You Were Here

 

 

 

 

 

 

 

 

 

 

Wish You Were Here

 

So, so you think you can tell Heaven from Hell,
blue skies from pain.
Can you tell a green field from a cold steel rail?
A smile from a veil?
Do you think you can tell?

그래, 너는 천국과 지옥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푸른 하늘과 고통을 구분할 수 있니?
녹색의 초원과 거기를 가로지르는
차가운 쇳덩이 철로를 구분할 수 있니?
베일과 미소는?  그걸 다 구분할 수 있어?

And did they get you trade your heroes for ghosts?
Hot ashes for trees? Hot air for a cool breeze?
Cold comfort for change? And did you exchange
a walk on part in the war for a lead role in a cage?

그들이 너로 하여금 너의 영웅을 유령과 바꿔치도록 하였니?
뜨거운 재를 나무로? 
더운 공기를 시원한 미풍과 바꾸도록 했어?
차가운 안락함을 내놓으라 했니?  그래서 넌 교환했니?
전쟁터에서 전투를 치르는 걸 우리 속에 갇혀
우두머리 역할하는 걸로 바꾼 거야? 

How I wish, how I wish you were here.
We're just two lost souls swimming in a fish bowl,
year after year,
running over the same old ground. What have we found?
The same old fears,
Wish you were here.


나 얼마나 네가 여기 있기를 바라는지,
우리는 어항 속을 헤엄치는 잊혀진 두 영혼이잖아,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우린 같은 곳을 뛰어다니고 있어, 
그런데 우리가 찾은 건 뭘까?
그저 변함없는 공포뿐,
네가 여기에 나와 함께 있기를 바래..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I)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II)

 

 

 

part 1

 

Daddy's flown across the ocean
Leaving just a memory
A snapshot in the family album
가족 앨범 속 사진에 담긴
추억만 남겨 두고
아버지는 바다를 건너 떠났어

 

Daddy what else did you leave for me
Daddy what d'ya leave behind for me
아버지는 날 위해 또 뭘 남겨 주셨나요
내게 남겨 주신 게 뭔가요

 

All in all it was just a brick in the wall
All in all it was just bricks in the wall
모두 다 똑같은 벽돌이야
모두 다 똑같은 벽돌일 뿐이야

 

part 2

 

We don't need no education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우리는 교육이 필요없어
우리는 생각을 통제받고 싶지 않아

 

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
Teachers, leave the kids alone
Hey, teacher, leaves of kids alone
교실에서 알 수 없는 빈정거림은 그만
선생, 아이들을 좀 내버려 둬
이봐 선생, 애들 좀 내버려 두란 말야

 

All in all it's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All in all you're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어디를 둘러봐도 모두 벽속의 벽돌이야
우린 모두 하나같이 다 똑같은 벽돌에 불과해

 

We don't need no education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우리는 교육이 필요없어
우리는 생각을 통제받고 싶지 않아

 

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
Teachers, leave the kids alone
Hey, teacher, leaves of kids alone
교실에서 알 수 없는 빈정거림은 그만
선생, 아이들을 좀 내버려 둬
이봐 선생, 애들 좀 내버려 두란 말야

 

 

All in all it's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All in all you're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어디를 둘러봐도 모두 벽속의 벽돌이야
우린 모두 하나같이 다 똑같은 벽돌에 불과해

 

 

part 3

 

I don't need no arms around me
I don't need no drugs to calm me
나를 감싼 벽은 필요하지 않아
나를 진정시킬 약도 원하지 않아

 

I have seen the waiting on the wall
Don't think I need anything at all
No, don't think I'll need anything at all
벽에 쓰여진 계시를 봤어
뭔가를 필요로 할거란 생각은 하지마
내게 필요한 건 아무 것도 없어

 

All in all it was all just brick in the wall
All in all you were all just bricks in the wall
모두다 똑같은 벽돌일 뿐이야
우린 모두, 하나같이 다 똑같은 벽돌에 불과해


 

 

 

 

 

 

Label: Hypnotic
Catalog#: CLP 1603-2
Format: CD, Maxi-Single

Country: US
Released: 07 Mar 2006
Genre: Electronic
Style: House
Credits: Artwork By [Art Design] - Giovanni Rodriguez
Backing Vocals - Alex Ugertwood* , David Glen Eisley
Bass - Mike Porcaro
Choir [Choir Vocals] - Millikan Musical Theatre Children's Choir
Conductor - Leo Krubsack
Drums - Greg Bissonette
Guitar [Lead Guitar] - Ronnie Montrose
Keyboards - Billy Sherwood
Lead Vocals - Fee Waybill
Producer - Billy Sherwood
Remix, Producer [Additional] - DJ Rad
Written-By - Roger Waters
Notes: Published by Warner Tamerlane Publishing Co.

Source recording taken from Back Against The Wall (CLP 1535)

 

 

 

 

 

 

 

 

 

데이비드 길모어 : 기타, 보컬, 신시사이저, 클라비넷(Clavinet), 음향 효과
로저 워터스 : 보컬, 기타, 신시사이저, 음향 효과
리처드 라이트 : 오르간, 피아노, 전기 피아노, 신시사이저, 베이스 페달(Bass Pedals)
닉 메이슨 : 퍼커션
브루스 존스턴 (Bruce Johnston) : 백 보컬

토니 테닐 (Toni Tennille) : 백 보컬
조 체메이 (Joe Chemay) : 백 보컬
존 조이스 (Jon Joyce) : 백 보컬
이슬링턴 그린 스쿨 (Islington Green School) : 어린이 합창단

마이클 카멘 (Michael Kamen) : 오케스트라 편곡
밥 에즈린 (Bob Ezrin) : 오케스트라 편곡
표지 도안 (Sleeve Design) : 로저 워터스, 제럴드 스카프(Gerald Scarfe)
제작 (Producer) : 데이비드 길모어, 로저 워터스, 밥 에즈린, 제임스 거스리(James Guthrie)

 

 

 

 

 

)

Pink Floyd는 환각적이고 실험성이 강한 음악을 구사하는 영국 출신의 대표적인 4인조 Progressive Rock 밴드이다.

Yes, King Crimson 등 동시대의 대표적 Progressive Rock 밴드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강한 개성을 갖고 있었는데,

 이들의 음악적 특징이라면 먼저 표면적으로는 각 악기 파트의 뛰어난 연주 실력에 비해 결코 튀지 않으면서 다양한 악기, 각종 효과들과 함께 전체 사운드를 조화시키는데 주력하였으며, 음악 장르에 있어서는 다른 장르의 도입과 확대보다는

 기존 British Rock의 뿌리 위에서 자신들의 색이 강한 음악을 계속 발전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런 배경 위에서 이들은 인간 내면의 광기를 환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에 가사, 음악, 연주 등의 모든 요소들을 적절히 사용하였다.

특히 가사 면을 살펴보면 초기에는 이러한 이미지를 마약에 의한 환각, 우주 등의 소재에서 찾다가 점차 일상의 소재로

 전환하면서 무의식의 세계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으며, 후기에는 사회적인 주제를 다룬 문제작을 내놓기도 하였다.

 

이들의 음악과 함축적인 가사, 주제는 한 앨범 내에서 일관된 흐름을 갖는 컨셉트 앨범의 형식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다른 작품을 통해서 어떤 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등 모든 앨범들이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고 있다.

 

 

 

 

 

 

 

1. Pink Floyd의 결성과 광인 Syd Barrett (65~68)

 

 

1965년 런던 Regent Street Art School의 건축학도들이었던 로저 워터스(Roger Waters, b), 릭 라이트

(Rick Wright, k), 닉 메이슨 (Nick Mason, d) 등은 Sigma 6란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처음에는 Rhythm & Blues등의 음악을 연주하였으며, 세 사람 이외의 나머지 멤버들과 밴드 이름

(Meggadeath, Abdabs, T-Set, 등..)은 계속 바뀌다가 역시 같은 학교 출신인 천재 광인 시드 배리트

(Syd Barrett, g)가 가입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전환되어 버렸다.

 

그는 그룹의 리더로 부상하여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그룹 이름도 Blues 연주자인 Pink Anderson과

Floyd Council의 이름을 합쳐 Pink Floyd로 확정시켰다.

 

그리고 66년부터는 그가 집착하는 마약, Sex 등에 의한 환상을 음악으로 표현한 Psychedelic Rock을 본격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음악은 기괴했을 뿐 아니라 당시로선 획기적인 시도로서 슬라이드 필름을 이용해 시각적인

 효과를 내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나중에 그들의 매니저가 된 피터 제너(Peter Jenner)의 눈에 들어 UFO 클럽으로 연주 장소를 옮겨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마침내 1967년 첫 싱글 'Arnold Layne'을 발표하였다.

 특히 Pink Floyd의 초기 사운드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이 싱글은 지금도 전설처럼 알려져 있으며, Syd Barrett의

기이한 성격이 그대로 나타난 작품이다.

 

 하지만 인기에 비해서 변태적이고 퇴폐스런 가사로 좋은 인상은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그 해 5월에 발표된 싱글 'See Emily Play'와 8월에 발매된 데뷔 앨범 [Piper at the Gates of Dawn]의 성공으로

차트에도 진입하는 등 큰 인기를 얻었지만 Syd Barrett은 마약 과용으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피폐해 졌으며,

TV show나 공연 등에 등장해서는 더욱 괴상한 행동만을 일삼아 1968년에는 결국 더 이상 밴드 활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Syd의 작품은 데뷔 앨범 한 장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멤버들의 그에 대한 동경과 추구는 이후 Pink Floyd의

 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2. 새로운 멤버 David Gilmoue (68~69) 

 

Roger Waters의 원래 의도는 Syd가 작곡을 하고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ur, g)는 단지 연주만을 담당해 주는

 5인조 체제였으나 Syd의 상태가 안 좋아져 결국 다시 4인조가 되었다.

 Syd의 탈퇴는 분명 아쉬운 일이었으나 David의 능력도 상당했으며, 이후 Pink Floyd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는 아직 Syd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시기로, 실험성이 강하고 극도로 환각적인 난해한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David이 참여한 첫 작품으로 그 해 4월 싱글 'It Would Be So Nice / Julia Dream'이 발표되었으며, 2개월 뒤 2집

[A Saucerful of Secrets]가 발매되어 Roger Waters가 주도하는 새로운 Pink Floyd의 음악을 선보였다.

이 시기에 영화 감독 Barbet Schroeder의 제의로 영화 [More]의 전곡 사운드트랙을 제작하였다.

 

1969년에는 실황과 멤버 각자가 주도한 곡들은 모은 스튜디오 앨범으로 구성된 더블 LP [Ummagumma]가

발표되었으며, 이 앨범은 가장 실험성이 강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후 Michelangelo Antonioni로부터 영화 [Zabriskie Point]의 사운드트랙을 제안 받았으나 감독은 이 중

세 트랙만을 사용하였다.

 

 

 

 

 

3. 음악의 진보적 발전 (70~72)

 

1970년 4집 [Atom Heart Mother]를 발표하면서부터 그룹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전작들에서 보여주던

 다양한 음악적 실험의 결과가 점차 결실을 맺기 시작하였으며 그 첫 작품인 대곡 'Atom Heart Mother'를 시작으로

이듬해 5집 [Meddle]의 'Echoes' 등 거대한 명곡들을 잇달아 발표한다.

 

이전까지 난해하게만 느껴지던 이상한 음향효과들은 이제 4사람의 연주와 완전히 융화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사운드,

 구성 등에서 놀랍게 발전해 나갔다. 가사의 소재를 점차 가까운 일상에서 찾게된 것도 이때부터라고 한다.

이 시기의 공연에서는 360도 Surround Sound System과 같은 진보된 음향효과를 선보임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였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Relics]라는 초기의 히트곡들을 담은 베스트 음반을 발표했으며, 1972년에는 6집

 [Obscured by Clouds]의 발표와 함께 뮤직비디오 [Pompeii Live]가 촬영되었다.

 

 

 

 

4. 상업적으로도 성공 (73~76)

 

1973년 발표된 [Dark Side of the Moon]은 그 동안 진행되어온 음악적 진보가 맺은 또 하나의 결실이다.

전작들에서 들려주던 대곡들은 점차 발전하여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컨셉트 앨범을 만들게 되었으며, 초기에 우주,

초자연 등에서 찾던 소재를 일상으로 전환하였던 것도 여기선 심오한 함축성을 띤 광기와 무의식의 세계 '달'로 수렴된

 것이다.

 

음반 판매에 있어서도 처음으로 미국 차트에서 1위를 하는 등 이들을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게 해준 성공작이 되었다.

 이 앨범은 빌보드 차트에 741주나 올라 이 부분에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들의 상업적인 성공은 음악이 지나치게 대중화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소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호소력이

 생긴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1975년, 이들의 무의식 속에서 강한 음악적 영향력을 미쳐온 Syd Barrett을 그리워하는 [Wish You Were Here]를

발표하여 연속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시기의 공연에서는 시각적인 효과를 더욱 앞세워 관중들로 하여금 청각과 시각을 종합적으로 감동시키는 무대를

 펼쳤다고 한다.

 

 

 

 

 

5. 사회적인 주제로 발전 (77~83

70년대 후반, 디스코 음악의 물결로 Rock음악은 전반적으로 쇠퇴하는 시기였다. 특히 Progressive Rock 계열 거물 그룹들의 활동이 부진해져 가고 있던 시기였지만 Pink Floyd는 오히려 그 동안의 노력이 집약된 대작 [The Wall]을 발표하는 등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이 시기로 갈수록 그룹에서 Roger Waters의 역할은 너무나 강해지고 있었다. 특히 가사에서도 이전에는 상징과 함축성이 강하던 가사들이 사회적인 주제로 변하거나 자신의 얘기를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1977년 발표된 9집 [Animals]에서는 인간사회를 동물로 비유하여 신랄한 풍자를 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방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1979년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느끼는 소외감, 공포 등을 하나의 줄거리로 표현한 대작 [The Wall]을 발매하게 되었으며

수록곡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등에 나타난 반사회성 때문에 많은 논란을 낳기도 하였다. 이때의 공연에서는 무대에 높이 9m, 폭 50m의 대형 벽을 축조하였다가 무너뜨리는 쇼를 펼치기도 하였다(이 실황은 2000년 초에 발매된다).

 

82년 Alan Parker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어 (Gerald Scarfe의 애니메이션, Bob Geldorf 주연)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83년 영국의 포클랜드 전쟁을 비난하면서 2차 대전에서 전사한 Roger Waters의 아버지에게 바친다는 [Final Cut]이

발표되었다.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이미 그룹 내에서 너무 강해진 Roger Waters의 독선을 견디지 못해 Rick Wright는 81년

완전히 탈퇴한 상태였을 정도였다.

 앨범 발표 후 곧 그룹은 해체되었으며 각자 솔로 활동에 몰두하였다

 

 

 

 

 

6. Roger Walters 와 나머지 멤버들의 대립 (86~  )

 

86년 David Glimour와 Nick Mason은 Roger Waters를 제외하고 Pink Floyd를 재결성하였다.

 Rick Wright는 여전히 비공식 멤버로 참여하긴 했지만 어쨌든 Roger를 제외한 나머지 셋만 뭉치게 된 것이다.

87년 [A Momentary Leapse of Reason]이 발표되면서 Roger 없는 Pink Floyd 당사자들의 경우는 그룹 이름의

사용문제로 법정까지 가게 되었으며, 음악적인 면에서도 팬들간에 의견이 엇갈리게 되었다.

 

Roger Waters의 주장은 Pink Floyd의 음악에는 Syd Barrett의 정신과 2차 대전 때 전사한 자신의 아버지의 영혼이

 흘러야만 한다는 것이었으며, 나머지 멤버들의 주장은 그가 지나친 독선으로 그룹 활동 및 재결성에

 비협조적이었다는 것이었다.

재판은 결국 점차 Roger에게 불리하게 흘렀으나 법정 밖에서의 대립은 서로 자신이 원조임을 과시하는 화려한 쇼를

펼치게 되었다.

 

88년 Roger 없는 Pink Floyd는 화려한 조명과 대규모 연주인을 거느린 공연 실황을 담은

 [Delicate Sound of Thunder]를 발표해 앨범과 비디오 모두에서 큰 인기를 누렸으며, Roger Waters는 90년

여러 유명 가수들과 함께 한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 공연에서 [The Wall]을 재현하였다(물론 이때도 무대에 대형 벽을

설치했다가 무너뜨렸다).

 

이 후 잠잠하던 Pink Floyd 측에서는 94년 [Division Bell]과 더욱 화려한 실황 [Pulse]를 크게 히트시켜 표면적인

인기에서는 Roger Waters를 앞지르게 되었지만, Roger의 팬들은 어딘가 알맹이가 빠졌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여전히

갖고 있게 되었다.

 

 

 

 

 

 

먼저 수용자 집단을 지성인들, 그 가운데도 젊은 지성인이라 얘기되는 대학생들로 한정하자. 시대는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그리고 나서 이때에 이들에게 유독 주목을 받았던 록 그룹 혹은 가수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아마 그 주인공은 틀림없이 핑크 플로이드가 될 것이다. 대중스타들은 대부분 독점적 팬층을 소유하게 마련이지만 핑크 플로이드는 특기할 만하게도 지성인들에게 인기를 누렸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당시 팝 뮤직을 애청한 대학생들에게 그들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 이른바 배운 사람들로부터 핑크 플로이드 음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엘튼 존이나 비지스처럼 명성이 범(汎)대중적이질 않아서 '덜 알려진' 쪽에 끌리는 지성인의 기호에 부합했던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앞서간 사운드'가 크게 어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그룹이 초창기에 선보였던 사이키델릭 사운드나 이후에 구사했던 공상 과학적 음악은 진보를 특성으로 하는 대학생의 성향과 딱 맞아떨어졌다. 사실 그들의 음악은 록 역사에서 진보적 음악, 즉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분류된다.

그 당시로는 획기적인 4채널 방식으로 녹음해 효과를 낸 웅장하고 오묘한 일렉트로닉(전자) 사운드는 마치 '록큰롤의 스타 트렉'과 같았으며, 새벽에 우는 새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등을 음반에 담을 만큼 효과음처리 또한 아방가르드적이었다. 게다가 선율 중심의 전통을 벗어나(그래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멜로디는 부족했다) 바그너식 사운드를 취했던 것도 매력 포인트였다.

그러나 플로이드가 우대받았던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 밴드가 '귀 아닌 뇌에 전달해준' 무거운 메시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히피와 록 혁명의 전환기 였던 1967년 여름 - 록계에서는 이때를 '사랑의 여름'이라 이름붙여 기념한다 -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이들은 처음부터 독특한 메시지를 팬들에게 제공했다. 주요 테마는 현대사회의 소외와 신경증, 소외라면 몰라도 스트레스나 조울증 등 파라노이아를 노래 소재로 취급한 록 뮤지션은 일찍이 없었다.

'겁없이 우둔한 자는 웃으며 군중을 향해 마주했다. 시장(市長)이 얼굴을 돌려 찌푸렸을 때 소요가 인다. 왕관을 쓴 바보는 누구인가. 너의 길을 따라 가라. 모든 날이 바로 그날이다. 그리고 그의 눈섭에 그려진 공포선을 넘어 위로 올라가면서 내려다본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 소리를 듣는다.' '겁없는(Fearless)'

노랫말이 이런 식이다. 스트레이트한 의미 전달이 아니라 비정상적이고 병적인 심리의 흐름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핑크 플로이드 눈에 현대인의 심리는 병적이고 신경질적이다.

'태양광선 아래 누워 있는 것이 지겨워 집에 눌러앉아 비 내리는 것을 지켜본다. 당신은 젊고 인생은 길다. 오늘 죽을 시간이 있고 그러다 어느날 1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는 걸 알게 되지. 아무도 당신에게 언제 뛰라는 걸 얘기하지 않았지. 당신은 출발 신호탄을 놓친 거야. ... 세월은 점점 짧아지고 쉴 시간을 찾기도 어려운 것 같아. 계획은 무(無)가 돼버리거나 반 페이지에 휘갈겨 쓴 정도지. 조용한 절망에 몸을 붙잡히고 있는 게 영국적인 길이야. 시간은 가버리고 노래는 끝나지. 난 할말이 더 있다고 생각했지.' '시간(Time)'

이 곡은 그룹의 73년도 음반 <달의 어두운 저편(Dark Side of the Moon)>에 수록되어 있다. 이 음반은 80년대 말까지 15년 이상을 빌보드 앨범 차트에 붙박이 하는 금자탑을 세웠고 흔히들 플로이드 음악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한다. 나중에 '프로젝트'라는 그룹을 이끌고 대중적 인기를 획득한 슈퍼엔지니어 알란 파슨즈의 도움을 받은 웅장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전 트랙을 휘감아 청취자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또한 '어두운 저편'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그들의 시각은 사뭇 '비판적 조롱조'다. 플로이드가 내린 돈의 해석을 들어보자.

'돈! 그것은 죄악이야. 그것을 공평하게 나눠가지라구. 그러나 내 몫은 빼앗지 말구. 돈! 오늘날 모든 악의 뿌리라고들 하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그들이 아무것도 내주지 않는 다는 건 놀랄 일이 아니지.' '돈(Money)'

이렇게 핑크 플로이드는 소리와 노랫말 모두를 팬들에게 만족시켜 나갔다. <달의 어두운 저편>이 플로이드 사운드의 결정체라면 의식의 완결편은 1980년도의 걸작 <벽(The Wall)>이라고 할 수 있다. 달의 밝은 쪽보다는 어두운 저편을 바라보는데 익숙한 그들은 여기서 비로소 어두움의 근원을 발견해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벽이었다. 플로이드는 이 음반에서 벽이라는 상징을 통해 획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사고, 폭력의 가장 극악한 형태인 전쟁, 인간과 인간 사이의 자유 의사를 차단하는 현대사회의 삭막함 등 현대사회에 내재하고 있는 모든 '억압적 요소에 대한 거부'를 한 편의 사회 드라마로 엮어낸다.

이 음반에 실려 80년 말 팝계를 강타한 명곡 '벽 속의 또 다른 벽돌(Another Brick in the Wall)'의 감흥을 잊어버린 자 누구인가. 후반부에 마치 절규하듯 뿜어내는 어린이들의 코러스는 아직도 귓전에 쟁쟁하게 울려퍼질 것이다.

'우린 교육이 필요치 않아요! 우린 사고 통제가 필요치 않아요! 교실에서의 어두운 풍자는 필요없어요! 선생님, 우릴 제발 내버려둬요! 그대는 따지면 벽 속의 또 다른 벽돌이라구요.'

 

 

 

 

 

 

대중 가요사상, 교육을 소재로 다룬 노래는 아마 이 곡이 처음이리라. 키딩 교사가 깨우침용으로 알려준 '죽은 시인의 사회'를 찾는 듯한 이 곡의 외침은 교육의 민주화를 부르짖는 전교조의 소리와 너무나 닮았다. 이 노래 바로 전에 있는 '우리 생의 가장 행복한 시절(The Happiest Days of our Lives)'에 따르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는 학교에 가서 선생님의 괴롭힘을 받기 전인 것이다.

이 음반에서 핑크 플로이드가 그려낸 현대의 상황은 '안녕 푸른 하늘(Goodbye Blue Sky)'이란 곡에 스케치되어 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을 보았는가. 폭탄이 투하되는 소릴 들었는가. 화염은 사라져도 고통은 남아 스멀거리지. 푸른 하늘이여 안녕!'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그림이 푸른 하늘과 안녕이라면 핑크 플로이드가 보여주는 그림은 '잔인한 세상과의 안녕(Goodbye Cruel World)'이다.

'안녕 잔인한 세상이여! 난 오늘 너로부터 떠날 테야. 모든 이들이여 안녕! 내 마음을 바꾸도록 그대들이 건넬 말은 아무것도 없어.'

이 음반은 핑크 플로이드의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그룹의 리더이자 베이스 주자인 로저 워터스의 독집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로저는 독재적 퍼스낼리티(이것이 문제가 된다)의 소유자로 이 음반 제작시에 다른 멤버의 의견은 거의 고려치 않고 독단적으로 모든 일을 처리했으며 곡은 대부분, 특히 가사는 전부 그가 썼다. 결론하면 <벽>음반은 로저의 자서전이다.

따라서 핑크 플로이드가 표방하는 이념은 그의 사고에서 출발한다. 로저의 사고는 폭력과 전쟁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이 큰 줄기를 이룬다. 또 이것을 표출하는 그의 노랫말 감각은 다분히 어린 시절의 쓰라린 상처가 가져다준 소산이다. 로저의 아버지는 2차대전 당시 영국군으로 참전하여 44년 안지오 전투에서 사망했다. 그는 아버지의 기억을 간직하지 못한 채 '결손 가정'의 유년기를 보냈다. 가정의 결손은 한편으로 퍼스낼리티의 결손을 가져왔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에게 '개혁주의'의 사고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의 이러한 잠재된 상처가 <벽>에 각인되고 있는 것이며 83년에 발표된 앨범 <마지막 커트(The Final Cut)> - 제목처럼 그들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 에 다시 한번 선명하게 반영된다. 이 음반으 '전후의 꿈을 위한 진혼곡'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그 배경은 82년에 벌어진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포클랜드 전쟁이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로저의 전쟁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전편에 아로새겨져 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들의 소년들이 자살하고, 우리가 무엇을 했습니까. 대처 수상! 도대체 우리가 영국에 무엇을 했습니까. 전후(戰後)의 꿈이 어떻게 된 거냐고 우리가 외쳐야 합니까, 우리가 부르짖어야 합니까.' '전후(戰後)의 꿈(The Postwar Dream)'

로저는 이 세상의 악을 제조하는, 치유 못할 독재자와 왕을 박재해 가둘 수 있는 플레쳐 기념관을 그들에게 지어주자고 제창한다. 물론 거기에 들어가야 할 인물의 리스트도 준비되어 있다.

'신사 숙녀 여러분! 환영합니다. 레이건과 헤이그 국무장관을, 이스라엘 베긴 수상과 그의 친구인 대처 여사와 페이슬리르르,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그의 당을, 메카시의 악령을, 닉슨의 기억들을.' '플레처 기념관(The Fletcher Memorial Home)'

로저 워터스의 상처는 결과적으로 로저 워터스의 영광을 만들어주었다. 음반 <벽>은 82년 명감독 알란 파커(<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앤젤 하트>, <버디> 등이 그의 작품)의 탁월한 영상 감각과 결합,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져서 은막의 충격을 불렀다. 로저의 이상과 철학이 알란 파커에게 멋진 영감을 제공한 것이다.

로저는 90년 7월 21일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던 시점 - 다시 말해 베를린 벽이 허물어졌을 때 - 음반 <벽>과 영화 <벽>의 기술과 정신을 재생하여 이번에는 공연으로 현장화하는 데 성공한다.

음반이 출반되고 난 직후인 81년 현란한 조명과 영상을 도입한 <벽>공연으로 화제의 주인공이 된 로저는 주변으로부터 그 공연을 다시 한번 해달라는 요청을 받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한 번 더 한다. 그런데 장소는 베를린 벽이라야 한다”고 말해왔다는 것이다. 89년 11월 9일 진짜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자 그는 즉각 중천금인 남아일언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공연은 85년 라이브 에이드 이후 최대 규모의 뮤지컬 이벤트로 연출돼 필 콜린즈, 시네드 오코너, 신디 로퍼 등 슈퍼스타들이 참여하고 실제의 소련 군악대가 가세한 가운데 20만 명의 청중이 운집했으며 전세계의 약 10억 인구가 텔레비전으로 그 광경을 시청했다. 건축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이 공연에서 보여준 로저의 무대장치 및 진행은 가히 경탄할 만한 것이었다. 그는 단박에 뉴스의 초점 인물로 떠올랐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즈>지는 “이 공연의 기획자가 반(反)제도권의 이미지를 보여온 로저 워터스라는 사실은 곧 이 무대가 록 뮤직의 점증되고 있는 사회적 양심의 발현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그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공연의 귀재' 로저 워터스는 처음부터 핑크 플로이드의 실세는 아니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이 아니라 市)에서 66년 결성될 당시에 그룹의 지휘자는 시드 바렛이라는 이름의 좀 엉뚱한 기질의 친구였다. 시드는 미국의 컨츄리 블루스 듀오인 핑크 앤더슨과 플로이드 카운실의 이름을 따 밴드명을 지었고 그룹의 초창기 음악 색깔을 사이키델릭 사운드로 결정지은 창업공신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마약성이 강한 사이키델릭 음악의 본질을 맛보기 위해 실제로 LSD(마약의 일종)를 실험했고, 거기에 노예가 돼버리는 바람에 치유 불능 상태에 빠져 앨범 두 장을 내고 난 뒤 68년 그룹을 떠나고 만다(이와 관련된 얘기는 아직도 록계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후 그의 자리에 데이비드 길모어가 가입하고 로저 워터스, 릭 라이트, 닉 메이슨과 함께 4인조의 라인 업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들은 그룹의 뿌리인 시드의 천재성을 못잊어 75년 <네가 여기 있다면(Wish you were here)>이란 작품을 내어 시드에게 바치기도 한다. 여기 수록된 9부작의 대곡 '그대 광기의 다이아몬드를 빛나게 하라(Shine on you Crazy Diamond)'에서 시드는 거의 숭배자로까지 승화되고 있다('오 그대는 이방인, 그대는 전설, 그대는 순교자, 영원히 빛나리').

그러나 이후 로저의 그룹내 파워가 갈수록 증대되고 균형을 잃으면서 핑크 플로이드는 멤버간의 집중력이 크게 떨어져버린다. 절대 명령권과 최후 결정권을 장악한 로저는 한때 개혁주의의 사상을 같이 한 동지 닉 메이슨과 릭 라이트를 세션맨의 위치로 전략시켜 팬들을 의아하게 했고 70년대 말 데이비드 길모어는 당적(?)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솔로 앨범을 발표, 그룹은 콩가루 집안이 되고 말았다. <벽>이 나왔을 무렵 이미 그룹은 해산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때부터 로저와 데이비드 간의 음악을 보는 시각 차이가 표면화되었다. 로저는 철저한 혁신주의자였고 데이비드는 '안정 속의 개혁'을 강조하는, 다소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데이비드는 핑크 플로이드 음악이 로저에 의해 참여성으로 조율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마지막 커트>를 마지막으로 그룹이 깨진 것은 이처럼 둘간의 이념 갈등이 크게 작용했다.

결국 로저가 먼저 그룹에서 뛰쳐나왔고, 나머지 멤버들은 그룹을 사수, 87년에는 <이성의 순간적 실수(A Momentary Lapse of Reason)> - 꼭 로저를 얘기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를 발표하여 건재를 과시했지만, 역시 로저 없는 핑크 플로이드는 맥빠진 것이었다. 이때 쌍방은 그룹 이름에 대한 소유권을 놓고 법정 싸움을 벌이기도 할 만큼 험악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데이비드가 이끄는 새 핑크 플로이드는 로저가 빠진 가운데에서도 음반 및 장외 활동의 성과가 좋아 포브스지 집계 '89년 가장 돈많이 번 연예인 40인'에 끼어 이름의 위력을 맛보았다. 그 해 그들은 역사적인 소련 공연을 갖기도 했다.

1년의 시각 차는 있지만 데이비드의 핑크 플로이드는 소련에서 공연하고, 로저는 베를린 월 공연을 하고... 그 안좋은 모양새란! 그러나 어떠한 실망적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핑크 프로이드는 음반 <벽> 하나만으로도 록 역사에 그 존재 가치를 분명히 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도 사운드와 노랫말 모두를 충족시켜 줄 한편의 '음반 드라마'를 접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993/04 임진모 (
jjinmoo@izm.co.kr) /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