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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Anne Murray Collection-Rain 외

 

 



 

Anne Murray(Full-name: Morna Anne Murray)는 1945년 캐나다 Nova Scotia의 Springhill에 있는 조그만

 광산 마을에서 태어났다.

 

60년대 말엽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달콤한 팝 음악으로 전세계를 무대로 사랑을 받았던 그녀는 Celine Dion,

 Shania Twain, K.D. Lang, Alanis Morissette, Sarah Mclachlan과 같은 캐나다 출신 디바들에게 있어서 대선배

격인 뮤지션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 생활은 다른 후배 가수들 만큼 전문적이고 조직적이지는 않았다. 가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접한 음악적 역량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50년대 미국 Rock&Roll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며 가수라는 직업을 동경하게 된다. 더군다나

 마을의 의사와 간호사였던 부모님은 언제나 입에 노래를 달고 살았으며 5명이나 되는 그녀의 형제들 또한 언제나 노래를 부르며 생활했다고 한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 노래는 생활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라디오를 통해 들을 수 있었던Buddy Holly, Bobby Darin의 노래 따라 하기를 즐겼으며 Rock&Roll은 물론,

클래식, 컨츄리, 가스펠, 포크와 같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그녀는 또한 읊조리듯 노래하는 Patti Page, Bing Crosby, Rosemary Clooney의 음악을 특히 좋아했었다고

 회상하기도 한다. 그녀는 또 6년 동안 피아노 교육을 받았으며, 15살 때부터 클래식 성악 레슨을 꾸준히 받기도 하였다.

 

이처럼 음악적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어린 시절을 지낸 그이지만 그녀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학교 공부를 해

나갔고New Brunswick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게 된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그녀는 친구의 권유로 CBC TV 프로그램인 ‘Singalong Jubilee’의 오디션을 보게 된다. 기회가 닿지 않아 프로그램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2년이 지난 후 그녀는 이 팀에 참가하게 되었고,

여름 기간동안 노래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다시 안정적인 직장인 학교 선생님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1년이 지나지 않아 다시 프로그램으로 돌아왔고, 역시 10대 TV 프로그램인 ‘Let’s Go’라는 프로그램까지 출연하며 노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다.

 이 때부터 그녀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대접도 좋지 않았던 노래하는

 일을 자신의 직업으로 이어 나가게 된다.

 

 

 

 

 

 

 

 

 

그녀의 이런 음악에 대한 열정이 통한 것일까? ‘Singalong Jubilee’의 방송 내용이 앨범으로 발매되면서 그녀의 노래

실력이 알려지게 되었고, 결국 그녀는 68년 캐나다의 Arc 레이블을 통해 데뷔 앨범인 [What about Me]를 발매하게

 된다.

 

평범한 학교 선생님으로 일생을 지낼 뻔 했던 그녀의 삶은 이 순간부터 화려하게 바뀌어 나간다. 첫 앨범에 관심을 보인

 Capitol Records가 그녀와 계약을 맺었고, 그녀는 69년 두 번째 앨범인 [This Way Is My Way]를 인터내셔널

 레이블을 통해 발매하는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된다.

 

 그리고 처음으로 잡은 기회에서 그녀는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싱글로도 발매된 ‘Snowbird’가 라디오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70년 미국 팝차트와 컨츄리차트에서 동시에 선전하였고, 빌보드 Top 10에 진입하며 골드 앨범을

 거머쥔 것이었다.

 

당시 캐나다 여성 가수가 미국 시장에서 골드를 따낼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생각하기 힘든 대 성공이었다. 그녀의 이 첫 국제적 히트 넘버는 이후 그녀가 세계를 무대로 수많은 히트 곡과 수많은 상을 따내도록 하는 발판을 마련해주게 된다.

 

데뷔 앨범의 성공 이후 그녀는 그녀의 친구였던Leonard Rambeau를 그녀의 매니저로 맞아들인다.

71년 그녀의 로드 매니저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77년 Rambeau가 정식 매니저가 된 이후 13년 동안 꾸준히

 지속되었으며 93년 Canadian Music Hall of Fame에 그녀의 이름을 올리는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의 활동에 늘

 함께 해 왔던 Rambeau의 존재와 가치를 거론하기도 하였다.

 

그는 95년 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가정이 항상 음악과 함께 해 왔던 그녀의 삶은 그녀의 음악에 그대로 묻어났다.

그녀의 음악 또한 항상 따뜻함이 묻어나는 것들이었고 그녀의 편안한 알토 톤의 보컬은 그런 따뜻함을 만들어 내기에

최적의 목소리였다.

물론 그녀의 삶은 이후에도 항상 가정의 사랑과 함께 하였고, 그녀의 부모님, 형제들 뿐 아니라 남편, 자식들 까지도

노래와 삶을 하나의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게 된다.

 

그녀는73년 [Talk It over in the Morning]을 발표하며 성공 행진을 이어가게 된다. 앨범에서는 Kenny Loggins가

 작곡해 준 ‘Danny’s Song’이 크게 히트하였고, 이어진 74년 앨범 [Love Song]에서는 동명 타이틀 곡인

 ‘Love Song’과 비틀즈의 [Rubber Soul] 수록 곡을 리메이크한 ‘You Won’t See Me’가 연이어 히트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74년 이 곡으로 그래미를 거머쥐게 되며 이후 그녀는 이후 그래미는 물론 어메리컨 뮤직 어워드, 주노 뮤직 어워드 등 보통 뮤지션이 한 번 수상하는 것도 영광인 상들을 거의 매 년 수상하는 특별한 가수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그녀는75년 Bill Langstroth와 결혼하고 76년 첫 아들인 William을 낳는 등 가정적인 활동에 시간을 보내면서 음악

활동에는 다소 소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이 기간이 지나고 그녀는 곧 활동을 다시 시작했고, 각종 TV 쇼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게스트로 사랑 받으며 거의 대부분의 음악 프로그램에서 꾸준한 활동을 보여주게 된다.

 

70년에서 88년까지 무려 24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내놓았을 정도로 꾸준하면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온 그녀는

아이들을 위한 앨범이나 캐롤 앨범을 특히나 많이 내놓으면서 가정과 음악을 항상 함께 다루어 온 그녀의 사고를 잘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녀는78년 Bobby Darin의 곡을 리메이크 한 ‘Things’, ‘Broken Hearted Me’, The Monkees의 곡을 리메이크

한 ‘Daydream Believer’와 같은 곡들을 히트 시킨 후 ‘You Need Me’를 내놓으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그녀의 대표 곡으로 여겨지는 이 곡은 우리에게도 무척이나 낯이 익은 곡인데 모 CF에 고향을 찾아가는 진돗개와 함께

 사용되면서 국내에서도 오랫동안 사랑 받았다.

 

물론 이 CF가 나오기 이전부터 꾸준히 사랑 받아 왔던 곡이다. 그녀는 78년 이 곡의 국제적 히트에 힘입어 그래미에서

 최우수 여성 보컬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그녀는 이후 ‘He Thinks I Still Care’, ‘Just Another Woman in Love’, ‘Could I Have This Dance’,

‘A Little Good News’를 연이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누린다.

 

80년대 중반 이후 그녀의 음반 활동은 뜸해졌지만 그녀는 다방면에서 꾸준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가정의 소중함을 항상 이야기했던 그녀는 아이들을 위한 앨범으로 얻은 수익들을 전부 아이들을 위해 내놓았으며,

‘Canada’s Save The Children Fund’를 만드는 등 사회와 가정을 더 밝게 만드는데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또한 ‘The Anne Murray Centre’를 만들어 자신의 음악 활동과 관련한 자료를 보여주고 있으며, 음악계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캐나다 뮤지션들의 자료들 또한 대중에게 선사하고 있다.

 

여전히 크리스마스 앨범이나 모음집 등을 내놓고 여러 유수의 시상식에서 골고루 상을 수상하고 있는 그녀는97년

 라이브 앨범인 [What a Wonderful World]를 내놓으며 오랜만에 대중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 앨범에는 자신의 딸인 ‘Dawn’과 함께 부른 ‘Let There Be Love’이 수록되어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또한 그녀는 2000년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해 주는 대중들을 위해

‘Anne Murray What a Wonderful World’라는 책을 앨범과 함께 내놓기도 하였다.

 

 

 

2001/10 이용지 (rodydwl@asiamusic.net) 아시아뮤직넷

(www.comusmusic.com)코머스뮤직 

 

 

 

 

 

 

 

 

 

... Rain
...Bridge Over Troubled Water
...You've got a friend
... Danny's Song
...Daydream Believer
...I Can See Clearly Now
...Nobody Loves Me Like You Do
...You Needed Me

 



 

 

 

앤 머레이(Anne Murray)는 캐나다 노바스코시아 (Nova Scotia) 태생이며, 1990년대 중반에 캐나다 국영방송국에서 연말특집 - 캐나다를 소개하여, 세계의 각 방송국에 배포한 TV 프로그램제목이 노바스코시아와 앤 머레이 이었던 것으

기억되는데, 캐나다 동쪽 끝의 아름다운 고장 노바스코시아의 경치를 배경으로 한시간 내내 들려주던 앤머레이의 여러가지 아름다운 노래가 생생히 기억됩니다

.

앤 머레이의 목소리는 다른사람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풍부함과 깊이를 갖고 있는 앨토입니다.

음악에 있어서 훌륭한 실력을 갖고 있음은 물론이고, 1968년에 데뷔한 이래 21세기인 현재에 까지도,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받는 감동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그녀가 처음에 히트곡으로 내놓은 Snowbird를 처음으로 들었을 때에, 이렇게 아름다운 목소리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감동을 주었는데, 그 이후 여러 가지 스타일의 새로운 히트곡이 이어질 때 마다, 앤 머레이의 능력과 매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며, 20세기의 가장 훌륭한 가수중의 하나라는 점에 대하여는 모든 사람이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DanceUniverse의 댄스음악 측면에서 볼 때에, 앤 머레이의 노래 중에는 아주 훌륭한 Slow Waltz 곡이 많이 있습니다.

Could I Have This Dance : Slow Waltz 29 bpm - Anne Murray 의 1980 년 최고 힛트곡.

Tennessee Waltz : slow waltz 29 bpm - 이 곡은 원래 Patti Page 가 부른 곡인데, Patti Page 역시 훌륭한 곡을 많이 남긴 위대한 가수 이지만, Anne Murray 가 부른 Tennessee Waltz는 새로운 느낌을 줍니다.

 

Snowbird : quickstep 50 bpm - 이 곡은 Anne Murray 의 데뷰 힛트곡으로 밀리언셀러 이면서, 앤 머레이의 훌륭한 목소리와 음악실력을 세상에 알려 준 곡입니다.

 

이노래는 댄스음반에 quickstep 으로 분류해 놓았는데, 빠른템포 50 bpm 퀵스텝 템포와 일치 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음악은 매우 서정적이고, 빠른 타악기 리듬이 강조되지 않기 때문에, 매우 아름다운 노래이나, quickstep 의

리드미컬하게 뛰는 분위기와는 좀다른 음악의 분위기인 관계로, 댄스음악으로서는 과히 적합하지 않은 편입니다.

 

Nova Scotia : New Scotland 라는 단어 뜻을 갖는 것으로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와 북부프랑스로 부터 이주해온

이민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고, 지금까지도 켈트문화 또는 Celtic Culture 가 전통적으로 이어저 내려오고 있는 곳.

그리고, Lobster 로 유명한 곳.

아래는 All Music Guide에 실린 Anne Murray 에 관한 자료의 번역입니다.

 

앤 머레이는 어렸을 적에, 자신의 부모가 즐겨 듣던 Rosemary Clooney 와 Perry Como 등의 팝사운드와, 캐나다까지 청취가 가능했던, 미국 뉴욕 AM 방송의 Top 40 에서 자신이 즐겨들어 왔던, Buddy Holly, Elvis Presley,

 Brenda Lee 등으로 부터 음악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Anne Murray 1946년 6월 20일 캐나다 노바스코티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눈에 띄게 큰 활약을 보인 대표적인

 여성 싱어.

앤 머레이.. 언제나 포근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정감있게 이지리스닝을 노래하는 그녀는 어린시절 유난히 음악을

사랑하던 다섯 오빠들 사이에서 클래식부터 가스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노래와 음악을 익히며 자랐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지방학교의 체육교사로 재직하던 그녀는 남편 윌리엄의 주선으로 지방 TV프로그램인 '싱어롱

주빌리'에 출현하게 되었는데, 기대 이상의 반응으로 캐피롤 레코드사에 발탁되는 행운과 함께 70년 첫 앨범인

「Snowbird」를 발표하여 같은 제목의 싱글 " SNOWBIRD"가 인기차트에 등장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린다 론스타트" 등 여러 가수들과 함께 70년대 가장 가능성있는 신인으로 손꼽히게 된 앤 머레이는 71년

그 여세를 몰아 앨범 「Anne Murray」와「Take It Over In The Morning」 그리고 글렌 켐벨과의 듀엣으로

「Anne Murray & Glen Campbell」등 세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또한 그녀는 지속적으로 의욕적인 활동을 전개해서 74년에는 「Love Song」,「Anne Murray Country」,

「Highly Prized Possession」, 「Together」를 잇달아 발표했다.

1974년에는 (anne murray country)라는 이름으로 발표. 이앨범으로 히트곡(love song)이 나오고 제 17회

 그래미어워즈 에서 최우수 컨트리 여성 가수상을 수상하게 된다.)

 

76년에 (things)란 노래를 히트시키고 그녀는 "한 가정을 지키는 주부로 돌아가겠다"란 말을 남기고 팝 휠드를 떠났다. "언제 떠나야 하는가를 알고있는 이는 얼마나0행복한가"란 말이있듯이 적절한시기에 음악을 그만둔 그녀이지만 팬들은 무척 아쉬웠 했죠,)

그녀가 팝계에 떠난지 2년이 된 79년에 지금나오는 곡 (you need me)로 멋지게 컴백하면서 생애첨 빌보드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곡은 우리나라 cf에서도 엄청많이 나오던곡이다.

가정주부로서의 위치를 중요시 하던 그녀였기에 그다지 많은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줄곧 히트곡을 내면서 81년에는

 (could i have this dance) 제 23회 그래미시상식에서) 최우수 컨트리 여성 가수상을 수상하고 이 부분만 통산 3번째 받는 영광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