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록 역사상 프랭크 자파(Frank Zappa)와 더불어 가장 기괴하고 전위적인 록을 시도한 인물이
캡틴 비프하트(Captain Beefheart)일 것이다.
그와 백업 밴드였던 매직 밴드는 전원 가명을 쓰면서 무질서의 극을 달린 일련의 실험작품을 내놓아 대중적으로는
차가운 심판을 받았으나 비평과 록 역사로부터는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그룹은 실제로 프랭크 자파와 깊은 인연을 맺어 세상에 대해 뒤틀린 감정을 지닌 돈 반 블리에트(Don Van Vliet)더러
‘마음에 고기가 있다’는 뜻으로 비프하트라는 별명을 붙여준 인물이 프랭크 자파였으며, 그는 실제로 캡틴 비프하트 앨범을 프로듀스해주기도 했다.
화음을 거부한 불규칙한 리듬, 초현실적이고 난해한 가사가 생명인 캡틴 비프하트와 매직 밴드의 음악은 하울링 울프
(Howlin’ Wolf)의 울부짖는 보컬이 연상되는 블루스, 아방가르드 재즈 그리고 현대 클래식이 버무려진 전형적인
‘해체 록’의 양상을 띠었다.
그리하여 대중성을 잃는 대신 후대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 일련의 실험과 파격주의자들인 데보(Devo),
페레 우부
(Pere Ubu),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트(Public Image Ltd), 토킹 헤즈(Talking Heads)가 그 영향을 받은
밴드로거론되곤 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돈 반 블리에트는 4살 때 포르투칼 출신 조각가 아우거스티뇨 로드리게즈에게 발탁되어
8년 간 TV 쇼프로에서 활동하면서 두각을 나타낸 신동 조각가였다.
하지만 부모는 그가 예술을 전공하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 캘리포니아의 사막지역인 랑카스타로 이주했고
그곳 모자브 사막에서 음악에 흥미를 붙인 그는 스스로하모니카와 색스폰 연주를 터득했고 곧 프랭크 자파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자파가 로스앤젤레스로 떠나 거기서 밴드인 마더스 오브 인벤션(Mother Of Invention)을 결성해 함께
음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자 돈 반 블리에트는 1964년 랑카스타에서 매직 밴드를 조직했다.
드러머 존 프렌치(John French)와 힘을 합친 그는 곧 기타리스트 제프 코튼(Jeff Cotton), 베이스 마크 보스톤
(Mark Boston)을 충원했으며 마지막으로 기타리스트 빌 하클로드(Bill Harkleroad)가 들어와 고전적인
매직 밴드의 라인업이 완성된다.
이들은 당시로 볼 때는 엉뚱하게도 캡틴 비프하트(돈 반 블리에트), 주트 혼 롤로(Zoot Horn Rollo, 빌 하클로드),
안테네 지미 세멘스(Antennae Jimmy Semens, 제프 코튼), 로케트 모튼(Rockette Morton, 마크 보스톤),
드럼보(Drumbo, 존 프렌치) 등 모두 가명을 내걸어 결성 때부터 ‘비정상적인 음악’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메이저 레이블 A&M과 계약을 체결, 1964년 지역에서 나름대로 어필한 싱글 ‘Diddy wah diddy’를 발표했지만
사장 제리 모스(Jerry Moss)가 데모 테입에 대해 ‘너무 부정적’이란 평가를 내렸고 그러자 캡틴 비트하트는
인디 부다(Buddah)에서 앨범 <Safe As Milk>를 내놓았다.
이 무렵 멤버로는 나중 블루스 컨트리 기타의 거장이 된 라이 쿠더(Ry Cooder)가 있었지만
그는 1967년 몬터리 팝 페스티벌을 앞두고 갑작스레 그룹을 탈퇴해버렸다.
역시 인디인 불루 툼(Blue Thumb) 레이블로 옮긴 뒤 앨범 <Strictly Personal>이 나왔지만 사장이자 프로듀서인
밥 크래스나우(Bob Krasnow)가 밴드가 유럽을 공연하던 틈을 타 발표한 것이라서 캡틴 비프하트의 분노를 샀다.
상당한 피해의식을 안고 그는 로스앤젤레스 근처의 동떨어진 집으로 옮겼고, 여기서 다시 만난 스트레이트(Straight)
레이블의 사장 프랭크 자파로부터 앨범제작의 전권을 캡틴 비프하트에게 약속 받고 앨범을 만들게 된다.
프랭크 자파의 프로듀스 아래 제작된 1969년 <Trout Mask Replica>와 이듬해 <Lick My Decals Off>는
비평적 찬사를 획득하며 그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1972년 잇따라 발표한 약간은 상업적 분위기를 띤 두 장의 앨범 <The Spotlight Kid>와 <Clear Spot> 역시 평단의
찬사는 계속되었으며 매니아확보에도 성공해 앨범은 빌보드 차트에 각각 131위, 191위에 오르기도 했다.
록 평론가들은 대부분 이 시기까지 캡틴 비프하트가 낸 앨범들을 실험성과 예술성 측면에서 수작으로 꼽는다.
2년 뒤 다시 소속사를 메이저 머큐리(Mercury)로 옮겨 한층 재래식 블루스에 가까워진 앨범
<Unconditionally Guaranteed>와 <Bluejeans And Moonbeams>를 연속 발표해 공연까지 나섰으나
그룹은 와해되었다.
이 시기에 캡틴 비프하트는 임시로 그룹 프랭크 자파 앤 더 마더스 오브 인벤션의 보컬로 활동했고 그 공작(共作)인
앨범 <Bongo Fury>는 차트 66위에 오르는 호조를 보였다.
1978년에는 워너브라더스와 계약을 맺어 <Trout Mask Replica>의 충격을 다시 불러내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은 앨범
<Shiny Beast(Bat Chain Puller)>를 선보였다.
앨범은 차트에 오르지 못할 만큼 참패했지만 세월이 흘러 1995년 <스핀>지가 선정한 ‘최우수 얼터너티브 록 앨범
100선’에 당당히 포함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이후 공연에서 당시 유행하던 뉴 웨이브 사운드를 도입하여
미국과
유럽 순회공연에서 호응을 얻었으며 심지어 1980년 11월에는 유명 TV 프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출연,
충만한 기분을 만끽했다.
이 무렵의 앨범인 <Doc At The Radar Station>과 1982년 <Ice Cream For Crow>은 버진 산하의 레이블에서
발표되었다.
하지만 캡틴 비프하트는 <Ice Cream For Crow>을 끝으로 음악계와 완전 작별을 고하고 음악적 고향이라 할
모자브 사막으로 돌아가 화가로 전업했다. 이후 어떤 음반사의 섭외에도 응하지 않은 채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고
1985년에는 뉴욕 포스트모던 화가이자 캡틴 비프하트의 열성 팬이었던 줄리안 슈나벨(Julian Schnabel)의
도움을 얻어 미국과 유럽에서 성공적인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것도 음악인가?..가장 빼어난 미친 음악
캡틴 비프하트 앤 히스 매직 밴드 <Trout Mask Replica>(1969년)
이런저런 설명을 해대지만 따지고 보면 음반은 백이면 백 시장을 겨냥한, 다수 대중의 귀에 맞춘 이를테면 정돈된 소리로 꾸며진다.
마구 만들기는 힘들다.
아티스트는 대중의 청각적 상식과 소화력을 공약수로 하고 그 범위 안에서 자신의 개성을 구현해야 한다.
그 울타리를 넘어설 때 기다리는 것은 대중의 참담한 외면일 뿐이다.
아티스트는 하지만 위대한 자유의 초상이라고 했던가. 모든 앨범이 그렇게 대중을 의식하고, 대중친화적이고, 그래서
일정한 패턴을 보일 때 때로 어떤 아티스트는 거꾸로 가는 반역을 도모한다.
대중에게 접근하는데 있어서 사실상의 획일화와 절연하고 그들이 받아들이건 말건, 지르고싶은 대로 맘껏 자유롭게
'소리의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수위조절이란 없다. 정돈된 소리방식을 난도질하면 그뿐이다.
'난 이런 놈이야. 이런 소리가 난 더 좋아.'
설령 그게 대안이 되지 못하더라도 '난 나니까' 이렇게 '음악 같지도 않은 음악'을 하는 게 좋다는 일종의 뒤틀린 심사요, 배짱이다.
캡틴 비프하트(Captain Beefheart)와 그가 이끄는 히스 매직 밴드(His Magic Band)가 질러댄 앨범 <트라우트
마스크 레플리카>(Trout Mask Replica)가 그런 앨범이다.
록과 팝의 정형을 거부하고, 맘대로 딴죽걸 듯 만든, 근사하게 수사하면 아방가르드 전위요 나쁘게 말하면 장난을 친
앨범, 아니 '꼴 난' 앨범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그나마 무한대 사고가 가능한 공간인 인디가 발호한 1990년대 아니면 빨라도 1980년대 후반에
나온 앨범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두 장 짜리 LP는 1970년 실제로는 1969년, 아직 비틀스와 사이먼 앤 가펑클이 날고, 도어스와
지미 헨드릭스에 의해 사이키델릭 음악이 팝과 록의 전형을 그려가고 있던 시절에 만들어진 음반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고리짝 시절에 '인디보다 더 인디적인' 해체와 과도함을 담은 앨범이 나온
것이다.
팝과 록의 패턴에 길들여진 사람은 캡틴 비프하트라는 인간을 '지독한 비정상'으로 여길 것이다(거칠게 말하면 골통?
변태?).
자신은 물론 밴드 전원이 가명을 썼고 그 가명의 의미부터가 상서롭지 않다. 돈 반 블리에트(Don Van Vliet)가
본명인 캡틴 비프하트만 해도 마음에 고기나 완력을 뜻하는 비프(beef)가 들어갔으니 심성이 '독한' 인간이다.
그는 밴드에도 독한 사운드를 주문했다.
'My human gets me blues'가 증명하듯 일렉트릭 기타는 때 이른 날카로운 펑크 배킹을 쏘아대면서 차가 충돌하듯
와장창 깨뜨리는 톤을 강조하고있고, 색스폰과 클라리넷 또한 웅얼거리고 불길한 음색에다 진행은 제멋 대로다.
블루스 같기도 하고 재즈 요소도 있고 무슨 괴상한 현대음악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멜로디와 발라드는 애초에 기대를
접는 것이 좋다.
숨가쁘게 노래하는 캡틴 비프하트는 얼핏 블루스의 초기 거장 하울링 울프(Howlin' Wolf)의 보컬을 닮았지만 울프처럼 울부짖는 게 아니라 돼지처럼 꽥꽥거린다.
연주와 전혀 어울림이 없다. 일설에 따르면 아예 그는 녹음 당시 딴 부스에서 반주를 듣지 않은 채 불렀다고 한다.
수록곡 'Pachuco cadaver'를 비롯해 앨범 몇 곡만 들어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앨범이 '의도되고 계산된' 일탈이라는 단서가 도처에 산재한다. 무려 28곡이나 되는 수록곡의
메시지는 어떠한가.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헷갈리고 난해하다.
앨범의 제목이면서 재킷에 그대로 반영된 '연어 마스크의 복제품'도 과연 무얼 의미하는지 잘 모른다.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차단해버렸다.
사람 걸음으로 비유하자면 술에 만취해 비틀거리고 걷는 것 아니면 갈짓자 행보인 앨범이다.
캡틴 비프하트는 8시간 반만에 피아노를 가지고 28곡을 작곡했으며 밴드 멤버들에게 일일이 마치 심문하듯 꼼꼼히
연주패턴을 교육시켰다고 한다.
이쯤 되면 같이 연주해준 동료들이 가상하다.
드러머 존 프렌치(그의 가명은 드럼보)는 “우린 캡틴 비프하트가 한 것을 존경하지만 그는 항상 누군가 음악을
훼방놓지 않을까 정신병자처럼 불안해했다.
취조하듯 우릴 다뤘다. 마치 무슨 사교집단에 들어온 것 같았다.
젊었을 때 너무 당한 탓인지 그의 피해의식은 엄청났다.”고 술회한다.
누가 그런 사람의 음반을 내주었을까. 전에 내놓은 3장의 앨범은 모조리 망했다. 기인(奇人)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프랭크 자파(Frank Zappa)가 그 무렵 때마침 자신의 독자 레이블 스트레이트(Straight)를 설립했고 운 좋게 그의
프로듀스 아래 <Trout Mask Replica>가 비닐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분명한 것은 캡틴 비프하트야말로 그때까지 대중음악 역사상 도무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 완성했다는 사실이고 또한 그것이 우연의 산물이 아닌 의도와 계산에 따른 결과물이었다는 점이다.
그가 노린 것은 정형화된 틀에 대한 린치이며 난도질이었다.
일반인들은 비웃을지언정 나름의 '숭고한 반항'이었다. 그래서 캡틴 비프하트가 나중 음악생활을 접고 그림에 전념했을 때 일각에서는 록의 일대 손실이라고 아쉬워했다.
앨범은 20년이 지나도록 8만장의 판매고에 허덕였다.
하긴 그런 정신착란을 유발하는 듯한 반(反)음악을 대중들이 돈 내고 살 리 없다.
하지만 캡틴 비프하트 앤 히스 매직밴드는 대중과 인기를 포기한 대신 록 역사로부터는 두둑한 보상을 받았다
. 앨범은 명반을 거론할 때마다 높은 순위에 오르기를 반복했고 '록 사상 가장 비현실적인 걸작 앨범'이란 찬사도 빠짐없이 동반되었다.
1997년 <롤링스톤>은 역사상 최고의 앨범 200선에 이 앨범을 포함시키면서 “데보(Devo),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트
(Public Image Ltd) 그리고 존 스펜서(John Spencer)가 이 미친 실험작에서 영감을 받았을지 모른다”며 후대
계승자까지 거론하는 영예를 그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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