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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Elvis Presley- Yesterday ,Summer Kisses, Winter Tears

 

Elvis Presley- Yesterday

 

 

 

 

 Yesterday

 

 

Yesterday,
All my troubles seemed so far away
Now it looks as though they're here to stay
Oh I believe in yesterday
Suddenly
I'm not half the man
I used to be
There's a shadow hanging over me
Oh, yesterday, came suddenly
Why she had to go
I don't know, she wouldn't say
I said something wrong
Now I long for yesterday

Yesterday
Love was such an easy game to play
Now I need a place to hide away
Oh, I believe in yesterday

 

 

 

 

 

 

 

 

 

Summer Kisses, Winter Tears

 

 

 

 

 

1)

Summer kisses, Winter tears
달콤한 여름날의 키스, 차가운 겨울의 눈물
 That was what she gave to me
그녀가 내게 남겨준 것들이에요

    

Never thought that I'd travel all alone The trail of memories
나 홀로 추억의 여정을 거닐 줄은 전혀 생각조차 못 했는데

Happy hours, lonely years
행복했던 짧은 시간, 길고 긴 외로움의 나날들

  

But I guess I can't complain
하지만, 마냥 힘들지만은 않아요

For I still recall the Summer sun
아직도 그 달콤했던 여름날을 회상할 수 있으니까요

 

Through all the Winter rain
겨우내 눈물은 흘리더라도

The fire of love, the fire of love
불같은 사랑, 불같은 내 사랑이
 
Can burn from afar
저 멀리서 다시 타오를 수 있을 테니까요
And nothing can light the dark of the night Like a falling star
그런데 아무것도 유성처럼 어두운 밤을 밝혀주지 않아요

 

Summer kisses, Winter tears
달콤한 여름날의 키스, 차가운 겨울의 눈물
Like the stars they fade away
사라져 가는 무수한 별들처럼
 
Leaving me to spend my lonely nights With dreams of yesterday
지난날의 꿈들과 함께 외로운 밤을 지새우게 하네요

 

 

2)

The fire of love, the fire of love

불같은 사랑, 불같은 내 사랑이

Can burn from afar
저 멀리서 다시 타오를 수 있을 테니까요
    
   
And nothing can light the dark of the night Like a falling star
그런데 아무것도 유성처럼 어두운 밤을 밝혀주지 않아요

Summer kisses, Winter tears
달콤한 여름날의 키스, 차가운 겨울의 눈물
     
Like the stars they fade away
사라져 가는 무수한 별들처럼
Leaving me to spend my lonely nights With dreams of yesterday
지난날의 꿈들과 함께 외로운 밤을 지새우게 하네요

 

Summer kisses, Winter tears
달콤한 여름날의 키스, 차가운 겨울의 눈물

 

 

 

 

 

 

 

 

 

Walk A Mile In My Shoes

 

 

 

If I could be you and you could be me for just one hour

If we could find a way to get inside each other's mind

If you could see me through your eyes instead of your ego

I believe you'd be surprised to see that you'd been blind.

 

Walk a mile in my shoes, walk a mile in my shoes

And before you abuse, criticize and accuse

Walk a mile in my shoes.

 

Now your whole world you see around you is just a reflection

And the law of common says you reap just what you sow

So unless you've lived a life of total perfection

You'd better be careful of every stone that you throw.

 

Walk a mile in my shoes, walk a mile in my shoes

And before you abuse, criticize and accuse

Walk a mile in my shoes.

 

And yet we spend the day throwing stones at one another

'Cause I don't think or wear my hair the same way you do

Well I may be common people but I'm your brother

And when you strike out and try to hurt me its a-hurtin' you.

 

Walk a mile in my shoes, walk a mile in my shoes

And before you abuse, criticize and accuse

Walk a mile in my shoes.

 

There are people on reservations and out in the ghettos

And brother there but for the grace of God go you and I

If I only had the wings of a little angel

Don't you know I'd fly to the top of the mountain, and then I'd cry.

 

Walk a mile in my shoes, walk a mile in my shoes

And before you abuse, criticize and accuse

Walk a mile in my shoes, shoes.

 

 

 

 

 

 

 

 

 

197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 친 팝송 한 곡...

 

Walk a mile in my shoes. 너도 내 신발을 신고 1마일 걸어 봐봐.

즉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뜻.

의미가 같은 'Put yourself in my position.'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문화 가정 문제가 현재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듯이,세월과 역사가 흘러갔지만 인종차별 문제는 세계적인 문제거리로 여전하다.

 

그래서 관용과 이해로 남의 마음을 헤아려 생각해보라는 의미의 노래가 등장...

엘비스 프레슬리 등 유명 가수들이 너도나도 불러서 한 때 꽤 유행한 노래이다

 

테네시 주 멤피스의 저택 화장실에서 발견된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에 대하여심장마비 사망이라고 결론지었지만 

변비 사망설도 대두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고향 화장실에서 42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갑작스런 사망으로

다양한 음모론이 제기되었지만, 오랜 친구이자 주치의로 알려진 조지 니코폴로스 박사는

‘불규칙한 심장 박동 이전에 만성 변비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밝혔다.(2010.05.08.)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쓰러졌을 당시에 직접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며 부검까지

진행했던 인물이다. "엘비스가 심장박동이 불규칙해 쓰러졌지만 사망한 당시 병원에서도

사망원인에 대해 의견이 다양했다. 

 

이후 난 엘비스의 사망원인에 대해 계속 연구해왔다."

 

니코폴로스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있을 당시에도 심한 변비로 고생을 했으며,

인공항문 수술을 제안했지만, 엘비스 프레슬리가 자존심으로 인해 항문 치료를

거부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믿거나 말거나 한 또 하나의 주장이 펼쳐진 것이다.

 

 

 

 

우리에게 크리스머스 캐롤로 유명한 원로 가수 팻분(Pat Boone / Charles Eugene Patrick

Boone 1934.6.1.-현재)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절친으로 사망 당시 이런 인터뷰를 하기도...

 

 

나는 엘비스를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잘못되고 있었다. 기묘하게도 우리는

내가 동부 지역 쇼에 출연하러 가고 그는 라스베이거스로 오던 도중에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는 '팻, 어디로 가는 거요?'하고 물었다. 나는 목적지를 알려주고 기독교

선교에 참가하기 위해 간다는 말을 하였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베이거스로 가는

길이오. 하지만 팻, 내 생각에 당신은 지금 잘못된 길로 가는 것 같소.' 나는 그에게

말했다. '엘비스, 그것은 당신이 어디에서 왔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겠소?'

 

< 찰스 스윈돌(Charles R. Swindoll), 3보 전진 2보 후퇴 성공비법(Three Steps Forward,

Two Steps Back- Persevering Through Pressure), 1981년 보이스사 발간, p.66인용. >

 

 

Boone last saw Elvis about a month before his death, at an airport in Pittsburgh.

They were going in opposite directions, and Boone said Elvis told him,

'You're always going the wrong way'.

'I told him, 'It depends on where you're coming from'.

 

 

친한 친구이며 동료로서 그리고 엘비스보다 일찍 태어나 지금까지 생존하며 활동하고 있는

팻분... 그의 인터뷰는 스트레스에 쌓여 제대로 쉬지 못한 엘비스를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으로 우리는 우리나라의 한 부분을 잃었습니다."

 

미국의 제39대 대통령 지미 카터(1977–1981 재임, James Earl "Jimmy" Carter, Jr.

1924.10.1.-현재)가 말한 이 한마디는 문화 예술 황제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Elvis Presley's death deprives our country of a part of itself. He was unique and irreplaceable. More than 20 years ago, he burst upon the scene with an impact that was unprecedented

and will probably never be equaled. His music and his personality, fusing the styles of white country and black rhythm and blues, permanently changed the face of American popular

culture. His following was immense, and he was a symbol to people the world over

of the vitality, rebelliousness, and good humor of his country. 

 

 

 

 

 

 

 

 

미국 팝 역사상 가장 거대한 아티스트!


로큰롤의 제왕 (King of Rock & Roll) 엘비스 프레슬리 (Elvis Presley)의 가장 뜨거운 시기를 채집한 격조높은

 베스트 컬렉션[Greatest Hits]

미국, 아니 전세계 록큰롤의 알파요 오메가인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는 1935년 1월 8일에 태어났다.

이 '로큰롤의 제왕'은 기네스북에서 조차 '가장 성공한 솔로 아티스트'로 인정되고 있다. 흑인의 블루스와 백인의

컨트리를 융합시키면서 척 베리(Chuck Berry)와 리틀 리차드(Little Richard)와 함께 록큰롤의 세계를 넓혔다.

미시시피주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고 11살의 나이부터 기타연주를 시작하면서 지하 세탁방에서 연습을 시작한다. 고교 졸업 후에는 트럭 운전기사로 일한다. 힐빌리 캣(Hillbilly Cat)이라는 이름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하고 엉덩이를

 흔드는 가창 스타일로 인해 'Elvs the Pelvis'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시에는 이것이 문제가 되어 텔레비전에서는 시청자들의 항의를 고려해 의도적으로 상반신만을 방송했다고 한다.

1950년대의 미국은 음악에서도 인종을 격리하면서 취급했기 때문에 당시의 로큰롤 히트곡들은 흑인의 곡을 백인이

커버해야 레코드가 백인 전용의 상품으로 선전되어 차트에 게재되고 라디오에 흐르곤 했다.

 

그리하여 일반적인 노래를 흑인이 하면 리듬 앤 블루스, 백인이 하면 컨트리로 분류되곤 했는데 엘비스 프레슬리는

 이런 상황에서 흑인의 노래를 할 수 있는 백인가수로 발굴됐고 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카운터컬쳐로 떠오른다.

1956년도에 RCA와 계약하면서 [Heartbreak Hotel]을 통해 메이저 데뷔를 한다. 이것이 전미 1위를 석권한데 이어 [Hound Dog], [Don't Be Cruel], 그리고 [Jailhouse Rock] 등의 로큰롤 명곡들이 줄줄히 히트하면서 나날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흥겨운 로큰롤 이외에도 [Love Me Tender]와 같은 발라드튠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확장시키기도 하며,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비주얼을 뽐내는 와중에도 쉴새없이 돈을 만들어나간다.

1977년 42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쳐보이면서 전세계 음악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정확한 레코드 세일즈의 통계에 대해서는 확인이 불가능 하지만 1977년도에는 6억장 이상, 그리고 1985년도에는

10억장 이상이라는 추정이 발표됐다.

 미 경제지 포브스에 의하면 2004년 10월부터 1년간 인세 등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무려 4천5백만 달러에 달했고

고인 부호 순위로는 2005년도까지 꾸준히 톱 클래스를 유지했다.

2006년도에는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치고 들어와서 2순위로 밀려났다고 한다. 151곡의 싱글 히트곡을 클래식으로 만들어 놓았다.

본 작은 70년대의 라스베가스 시대보다는 50년대의 로커빌리 시대의 흥겨움으로 가득찬 베스트 컬렉션이다.

 현재의 세대에게 오리지날 로큰롤이 얼마나 흥겹고 뜨거운 것인지를 설파하기 위해 요약 정리해낸 베스트라 하겠다.

 

 과거의 향수를 간직한 올드 팬들과 오리지날의 열정을 느껴보고 싶은 젊은 세대들이 동시에 만족하게 될 것이다.

소위 ‘제왕’이란 무릇 따라잡기조차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이것이 ‘제왕’의 작품들이다.

 

 

 

 


 

Aaron Presley

 

/1935년 1월 8일~1977년 8월 16일)은 미국 록큰롤(Rock and Roll, Rock ’n’ Roll/1950년대 후반에 나타난

미국 대중음악 스타일의 호칭. 어원은 ‘흔들리다(rock)'과 ’구른다(roll)'로, 음악적인 약동감(躍動感)에 유래한다’라고 설명되지만, 본래는 미국 영어의 흑인 속어(Slang) 'SEX‘ 및 ’교합‘을 의미. 공)공식적으로는 DJ였던 알란 프리드

 

(Alan Freed/1921~1965. 50년대 인기를 구가한 미국의 라디오 DJ.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흑인음악의 리듬&블루스를 록큰롤로 불러, 젊은이들 사이에 록큰롤의 유행을 퍼지게 한 장본인)가 정착시킨 단어. ‘Great Balls of Fire’나 ‘

Whole Shakin' Goin' on' 등, 초기 록큰롤 명곡은 성적인 이미지를 숨기는 것이 적지 않음) 뮤지션.

 

Middle Name은 비석에는 에어론(Aaron)이라고 새겨져 있지만, 사인, 공문서에는 Aron으로 표기되어 있다.

록큰롤의 제왕(帝王)이라고 부르고, 기네스 월드 레코즈(Guinness World Records/세계 제일에 관한 기록을 수집한 책. 1951년 아일랜드 맥주회사 기네스 양조공장 대표직 이사였던 휴 비버(Sir Hugh Beaver)가 “가장 빨리 날아가는

 

 엽조(獵鳥/사냥을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된 새를 가리킴)는?”이라는 토론을 계기로,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책을 내면 팔게 된다는 것으로 출판되었지만 ‘기네스 월드 레코드 사’가 발행하는 기네스 월드 레코즈기네스 세계 기록본.

 

매년 9월에 발행되어, 각 분야의 세계 제일을 인정, 게재하고 있다)에서는 ‘가장 성공한 솔로 아티스트’ 로서 인정받다.

1977년 8월 16일, 심장발작에 의해 42세로 사망했다.

 

 

 

출생이름: 엘비스 에어론 프레슬리(Elvis Aaron Presley)

별명: 엘비스(Elvis), 록큰롤의 제왕(The King of Rock'n Roll)

생년월일, 태어난 곳: 1935년 1월 8일 미국 미시시피(Mississippi) 주 투펠로(Tupelo)

사망월일, 사망한 곳: 1977년 8월 16일 테네시(Tennessee) 주 멤피스(Memphis).

음악장르: 록큰롤, 컨트리(Country), 가스펠(Gospel), 블루스(Blues), 컨트리 록(Country Rock).

직업: 가수, 음악가, 배우

담당악기: 보컬(Vocal), 기타, 피아노, 베이스 기타.

활동기간: 1954년~77년.

소속 레이블(Lable): 선(Sun), 알씨에이 빅터(RCA Victor)

소속 기획사: 더 블루문 보이스(The Blue Moon Boys), 더 조르다나이어스(The Jordanaires)


 

프로필

 

흑인의 리듬&블루스(Rhythm&Blues/1940년대 후반에 재즈나 블루스, 가스펠이라고 말한 흑인 음악(Black Music)이 발전하는 형태로 태어난 음악장르. 1947년에 빌보드 지의 제리 웩슬러(Jerry Wexler)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

록큰롤도 이 음악의 영향에 의해 태어났지만, 당초에는 리듬&블루스와 록큰롤의 사이에 명확한 구별은 없었지만

그 후 소울 뮤직(Soul Music) 등으로 발전함)와 백인의 컨트리&웨스턴(Country&Western)을 융합하는 것에 의해, 지금까지 없는 새로운 음악(록)을 탄생시켜, 퍼뜨린 인물로서 알려졌다.

 

 

초기에는 미국, 전세계 젊은이들에게 록큰롤에 의해 인기를 누려, 후기가 되는 라스베가스의 무대에서 컨트리

(Country/미국 남부에서 발상한 음악.

 

유럽의 전통적인 민요나 켈트 음악 등이, 스피리추얼이나 가스펠 등의 영가(靈歌), 찬미가의 영향을 받아 1930년대에 성립된 음악장르.

캐나다, 호주, 일부 유럽에서도 인기가 있지만, 팬이나 아티스트는 백인 계통이 많은 애팔래치아 음악 때문에, 일부에서는 ‘인종차별 관계가 깊은 음악’ 이라고 오해받는 경향이 있음)나 가스펠(Gospel/‘복음’ 의 의미를 뜻함.

 

노예로써 미국에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은 자신들의 독특한 언어, 종교 등을 박탈당한 괴로운 상황 아래서 그리스도교를 접하며, 아프리카 특유의 도약하는 리듬, 블루노트 스케일이나 입으로 전해오는 전통 등의 유럽 찬미가의 음악적,

 시적 감성이 융합하여 흑인 영가(Negro Spiritual)라는 현재 가스펠의 기초가 되어 탄생한 음악장르.

 

 후에 재즈나 록 등 여러 장르와 이어졌다). 발라드(Ballad/느린 템포, 조용한 편곡,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 그리고

사랑을 주제로 한 곡을 중심으로 한 감상적인 가사를 특징으로 하는 음악장르. 전형적인 유형으로서, 피아노 등에 의한 조용한 인트로와 엔딩을 향해 극적인 절정도 들 수 있음) 등을 불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이 되었다.

 

 

엘비스는 최초, ‘The Hillybilly Cat(시골뜨기의 고양이)’라는 이름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하여, 그 후 곧바로 노래하면서 엉덩이를 흔드는 그 가창 방식에서 ‘Elvis the Pelvis(골반의 엘비스)’의 애칭으로 불렸지만, 미국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드 설리번 쇼(The Ed Sullivan Show/에드 설리번(1902~1974/미국의 오락작가 겸 사회자)이 CBS에서

1948년 6월 20일~1971년 6월 6일까지 방송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시작 당시 제목은 ‘마을의 인기자(Toast Of The Town')었음)』의 3번째 출연했을 때는, 보수적 시청자의 항의를

배려한 프로그램 관계자가 의도적으로 엘비스의 상반신만을 방송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그 때 설리번이 ‘이 엘비스 프레슬리는 멋진 청년입니다.’ 라고 소개한 것에서 설리번에게도 욕설이 날라왔다.

하지만 그 계기로 엘비스에게의 비판은 적어지게 되었다.

 

또, 플로리다의 연주에서는 하반신을 움직이는 등의 PTA나 YMCA등에게 전해져, 새끼손가락을 움직이며 불렀다.

이 때에는 경찰관을 촬영하여, 하반신을 움직이면 체포하게 되었다.

 

 

KWK라디오에서는 엘비스의 레코드(‘Hound Dog’(1956년에 발표. 커플링 곡은 ‘냉정하지 말아줘

(Don't be Cruel)’이었다.

 

빌보드 지에는 1956년 8월 18일에, 주간 순위 1위 획득. 56년 동안 연간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를 깨뜨려서, ’록큰롤과 이제 인연을 끊는다‘ 라고 방송. 록큰롤이 청소년 비행(非行)의 원인이라고

 중상(中傷)받아, PTA(Parent-Teacher Association/각 학교에 조직된, 보호자와 교직원에 의한 교육관계 단체.

 

미국에서는 1897년, 피비 아퍼슨 하스트(Phoebe Apperson Hearts)와 앨리스 맥클란 버니

(Alice McLe llan Birney)가 워싱턴 D.C.에서 전미 어머니 의회(National Congress of Mothers)를 개최한 것이

시작.

유치원 설립, 아동 노동법, 공공 보건 서비스, 급식, 소년법, 예방접종 의무화 등에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음)는

TV 방송 금지를 요구하는 등, 여러 중상의 표적이었다.

 

 

 

엘비스의 기록은 많이 존재하고, 예를 들면, 가장 성공한 음악 아티스트, 최다 히트 싱글기록(151회), 하루에 가장

 레코드를 많이 팔은 아티스트(사망 다음 날), 등이 기네스에 의해 인정받고 있다.

 

 

어린 시절, 성장

 

엘비스 프레슬리는 미시시피 주(Mississippi/주도는 잭슨(Jackson). 주 이름은 인디언 족 오지부와(Ojibwe) 족의, 부족어로 ‘커다란 강’을 의미하는 미시시피 강에서 따왔다.

 

아열대성 기후에 목화지대의 중심지에 위치한 곳. 남부의 인종차별 주로서 악명이 가장 높았던 곳. 또 흑인이 제일 많이 살고 있다) 투펠로(Tupelo/미시시피 주에서 7번째로 가장 큰 도시)의 작은 집에서, 아버지 버논 엘비스 프레슬리

(Vernon Elvis Presley/1916~1979)와 어머니 글라디스 러브 스미스(Gladys Love Smith/1912~1958) 부부

사이에서 1935년 1월 8일 출생했다.

그는 쌍둥이 형제 제시 가론 프레슬리(Jesse Garon Presley)가 있었지만, 태어났을 때 사망하였다.

 

 그는 투펠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3세 때 일가는 테네시 주(Tennessee/남부에 위치. 남북전쟁의 전쟁터의

한 곳이었음. 주 경계선에 8개의 주를 접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드문 주. 주도는 내쉬빌(Nashville). 주 이름의 유래는 체로키 족의 인디언 어 ‘타나시 마을’에서 따왔다. 컨트리 뮤직, 록큰롤, 블루스의 발상지.

 

원래 농업을 주로 하였으나 뉴딜 정책 실시로 주산업이 공업으로 바뀜) 멤피스(Memphis/테네시 주 서쪽 끝,

미시시피 강에 접한 도시. 60% 이상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차지.

19세기의 목화의 집산지로서 발전하는 한편 노예의 도시로 열린 역사를 가졌음. 항공화물 수급의 최대기업 페덱스

(FedEx)의 본사가 있는 곳.

 

 음악 산업도 활발히 이루어져 엘비스를 비롯한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이곳 출신이다. 이름 유래는 이집트 고대도시

 멤피스에서 따 왔다)로 이사를 갔다.

일가는 1949년에 로우다텔 코트 공영주택으로 이사간다.

 

엘비스는 11세부터 기타를 시작하여, 로우다텔 코트의 지하 세탁부실에서 연습을 하였다. 그는 그곳에 사는 뮤지션들과 연주를 하였다.

엘비스는 고교 졸업 후에 정밀 금형(金型) 회사에서 일하고, 다음에 크라운 엘렉트릭 사의 트럭 운전수가 된다.

 

스코틀랜드 인 작가 알란 모리슨은 엘비스가 스코틀랜드 계통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엘비스의 선조가 1700년대에 아바딘셔의 롱메이에 살았던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또, 기록에 의하면 앤드류 프레슬리가 1713년에 롱메이에서 엘스퍼스 렉과 결혼했다고 되어 있다.

그들의 아들 앤드류가 1745년에 영국 식민지로 이주한 것이 있다.

 

또, 케빈 코스너는, 자신이 저술한 책에서, 프레슬 리가 아일랜드 인의 혈통을 잇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레슬리는 독일 유다인의 혈통을 잇고 있어[1], 더욱이 4대 전의 할머니는, 순혈 체로키(Cherokee/체로키의

어원은 쵸코토(Choctaw) 족 교역에서 사용한 단어로 ‘산(또는 동굴)’에 사는 사람‘을 의미하는 ’Cha-La-Kee'.

또는 크릭(Creek) 족의 말로 ‘판단하기 어려운 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

 

그들 자신은 ‘이들은 모든 사람이다’를 의미하는 ‘아니 윤 위야(ah-ni-yv-wi-ya)라고 자칭했음. 16세기 유럽인이

들어올 무렵에는 북미대륙의 동부에서 남동부에 걸쳐, 미시시피 강 유역에 거주하였음.

18세기 영국, 미국 사이에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한 전투를 계속 치루었다. 1794년에 미국과의 휴전 조약을 맺은

후인 문명화의 길로 들어섰음.

 1821년에 체로키 문자가 고안되면서 백인과 동화되어 갔지만, 1830년대 조지아 주에서 일어난 골드 러쉬에 의해,

자신들의 땅에 들어오는 백인들이 들어오고, 앤드류 잭슨 대통령 일행은 서부로 강제이주를 요구하였지만, 끝까지

항거하였음) 족 인디언이다.

 

 

 

 

 

 

우리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에 대해 몰랐던 것들

 

 

 

 

 

 

 

 

 

 

Elvis Pres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