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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음악( Newage* )

Jason Becker - Rain

 

 

 

 

 

 


제이슨 베커

 

 

 

 

 

 

 

 

 

 

 

 

 

 



1969년 미국에서 태어난 기타리스트로 

16세때 친구인 Marty Friedman과  기타 듀오 Cacophony를 발표하였다.
1988년에는 솔로로 독립하였고 그후 David Lee Roth와도 한때 같이 활동하였다.

1990년 21세때 ALS(근위축성 측색경화증)라는 불치병에 걸려

3년 시한의 인생을 선고받았으나 

연주활동은 못하며 20년이상 생존하고 있는 불우한  천재 기타리스트이다.

 

 

 

 

 

Jason Becker, 제이슨 베커

원래 "벨기에"에서 활약한 그룹 로스마야스의 히트곡으로

1964년 멤버의 한 사람인 죠반 웨트가 작곡하고

"벨기에"에서 히트된 후 프랑스에서 소개되어 샹송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프랑스의 젊은 기타리스트 클로드 치아리도 연주하여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곡이다.
1965년 우리나라에서는 방송전파를 타고 소개되었고, 그 후 점차 널리 애청되었고,

이 멜로디는 또한 그리이스의 영화 "밤 안개 속의 데이트"의 주제곡으로 삽입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제이슨 베커는 비운의 기타리스트이다.

다른 많은 이들처럼 일찍, 혹은 아깝게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있어서 더욱 비운의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천재

기타리스트였다.

 

그가 마티 프리드먼과 함께 캐코포니를 결성했던 것이 1986년, 당시 그의 나이 만 열여섯 살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4년, 그는 캐코포니에서 2장, 솔로로 1장, 그리고 데이비드 리 로스 밴드(David Lee Roth's Band)에서 1장, 이렇게 딱 4장의 앨범을 남겼다. 불행히도 여기까지였다.

 

제이슨 베커는 1990년 봄 근위축성 측색경화증, 이른바 루게릭 병 진단을 받고 기타리스트로서의 경력을 사실상

 마감했다.

당시 그의 나이 만 스무 살이었다. 처음 루게릭 병 진단 당시 그에게는 3~5년의 시간이 남아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그는 아직 살아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과거의 그로 돌아갈 시간이다.

 

 

 

전신마비 루게릭 병 환자가 된 어린 천재 기타리스트

 

제이슨 베커는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치몬드에서 태어났다. 기타리스트였던 아버지와 삼촌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기타를 잡았다.

그는 열심히 음악을 듣고 그것들을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밥 딜런에서 에릭 클랩튼, 제프 벡과

 에드워드 반 헤일런, 랜디 로즈에 이르기까지 그가 자신의 기타 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해 자기 안에 녹여 넣은 재료는

 풍성했다.

 

케네디 고등학교 졸업 당시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잉베이 말름스틴의 〈Black Star〉를 멋지게 연주해 청중을 놀라게

 한 그는, 1986년 「기타 플레이어」의 유명한 칼럼니스트 마이크 바니에게 자신의 연주를 담은 데모 테이프를 보냈다.

 

마이크 바니는 그의 연주에 매료되어 마티 프리드먼을 소개해 주었고 두 사람은 함께 캐코포니를 결성했다.

사실 캐코포니 음악에 스며있는 동양적인 필은 마티 프리드먼의 영향이 더 크지만 제이슨 베커 역시 미묘하게 동양적인 느낌이 나는 기타를 친다. 그러고 보면 둘을 연결시켜 준 마이크 바니는 참 선구안이 뛰어난 사람이다.

 

1987년 캐코포니의 데뷔 앨범 「Speed Metal Symphony」가 나왔다. 속주의 한계에 도전하는 네오 클래시컬 스피드 메탈 지향성을 명백히 드러낸 이 앨범에서 두 사람은 불협화음과 화음의 적절한 조화 속에 절묘한 호흡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제이슨 베커의 블루스에 기반한 눈부신 속주는 단숨에 록 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열여덟 살 어린 기타 천재가 화려하게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Speed Metal Symphony」는 2009년 「기타 월드」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속주 앨범 10' 가운데 9위에

랭크되었다.

 

 

캐코포니 시절 제이슨 베커와 마티 프리드먼

 

 

 

1989년에는 캐코포니의 2집 「Go Off!」가 나왔고 제이슨 베커는 그 사이 솔로 활동도 병행해 1988년 솔로 1집

「Perpetual Burn」을 발표하기도 했다.

 

캐코포니의 역사는 짧았다. 1989년 캐코포니는 두 장의 정규 앨범만을 남긴 채 전격 해체되었고, 제이슨 베커는 화이트스테이크로 떠난 스티브 바이를 대신해 데이비드 리 로스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약관 스무 살의 기타리스트가 반 헤일런의 보컬리스트였던 데이비드 리 로스가 이끄는 거물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낙점된 것은 당시 큰 화젯거리였다.

 

제이슨 베커는 그때 이미 각종 기타 잡지로부터 가장 촉망받는 신예 기타리스트로 지목되며 메탈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었다.

 

가입 후 곧바로 앨범 「A Little Ain't Enough」의 녹음 작업에 돌입한 그에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불행이

 찾아왔다.

녹음 도중 왼 다리에 처음 이상을 느낀 것이다.

증상은 곧 전신으로 확대되기 시작했고 결국 청천병력과도 같은 루게릭 병 진단이 떨어졌다.

그것도 남아있는 삶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상의 사망선고와 함께.

 

그는 갈수록 약해져가는 손아귀 힘 때문에 훨씬 얇고 장력이 약한 기타 줄을 사용해 겨우 기타를 치며 가까스로 녹음 작업을 마쳤지만, 결국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밴드의 투어 무대에 함께 서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1991년 「A Little Ain't Enough」가 정식 발매되었을 때 제이슨 베커는 이미 더 이상 기타를 잡을 수 없는 상태였다.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되면서 근육이 마비되고 차츰 신체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어 결국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질환인

루게릭 병은 환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던 미소년 기타리스트의 꿈을 한 순간에 앗아가 버렸다.

 

그의 사지는 점점 마비되어 갔지만 그러나 앞으로 길어야 5년 정도의 삶이 남아있다던 진단은 결과적으로 틀렸다.

그는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다.

그것도 그냥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불굴의 의지로 음악 작업을 계속하면서 투혼의 드라마를 쓰고 있는 중이다.

 

 

 

 

 

 

아버지가 고안한 기계로 눈동자만 겨우 움직여 의사소통을 하는

제이슨 베커는 친구들의 도움과컴퓨터 시스템 등을 이용해 음악을

만들어 앨범을 내고 있다.

 

 

제이슨 베커는 현재 몸을 거의 가누지 못하고 말도 할 수 없으며 눈동자만 겨우 움직이는 상태이다. 그는 아버지가 고안한 기계로 겨우 눈동자를 움직여 의사소통을 한다. 하지만 기타는 칠 수 없어도 제이슨 베커는 지금도 여전히 음악을 만든다.

 

1996년에 제이슨 베커는 컴퓨터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앨범 「Perspective」를 냈다. 단 한 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직접 작곡한 연주곡들로 채워진 앨범이었다.

그는 1999년 다시 「Raspberry Jams」를 냈고 2003년에도 「Blackberry Jams」를 냈다. 「Perspective」의

 CD 케이스에 제이슨 베커는 이렇게 썼다.

 

 "나는 근위축성 측색경화증에 걸렸다.

 그것은 나의 몸을 불구로 만들고 말을 빼앗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아니다." 질병은 그에게 기타와의 이별을 강요했지만 그로부터 음악을 완전히 빼앗지는 못했다.

 

메탈계의 파가니니, 그는 여전히 뮤지션으로 살아가고 있다!

 

제이슨 베커는 1980년대 후반 군웅할거 시대의 수많은 기타 비르투오소들 중에서도 돋보였던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초절기교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의 연주를 연구해 자신의 기타 연주에 도입했으며 실제로 파가니니의 5번 광시곡을 기타로 연주하기도 했다.

 

 그의 눈부신 기량의 핵심적 요소는 물론 뛰어난 속주이다.

 스윕 피킹과 얼터네이트 피킹, 스윕 아르페지오와 태핑 등 네오 클래시컬 스피드 메탈을 지지했던 속주 기법들은 모두

 그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초기 캐코포니 시절 제이슨 베커는 허리케인 EX 기타를 썼지만 2집 때는 카빈 기타로 바꾸었다. 데이비드 리 로스 밴드에서 「A Little Ain't Enough」를 녹음할 때는 카빈과 아이바네즈, ESP 등 여러 기타를 번갈아 사용했다.

2008년에 파라다이스 기타는 제이슨 베커 시그너처 모델을 만들었다.

 2012년에는 카빈 기타가 그를 위한 트리뷰트 기타를 만들었다.

 

그의 재능과 불행을 아까워 한 동료들은 제이슨 베커를 위해 「Warmth in the WildernessⅠ」과

「Warmth in the WildernessⅡ」라는 두 장의 트리뷰트 앨범을 냈다.

여기에는 스티브 바이, 폴 길버트, 마티 프리드먼 등 기타의 대가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수익금은 전액 제이슨 베커의

 치료비로 기증되었다.

 

2012년 봄, 제이슨 베커의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Jason Becker : Not Dead Yet]이 공개되었다.

제이슨 베커와 가족, 그리고 그와 작업했던 많은 뮤지션들의 인터뷰가 담겨있는 영화는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열린 시네퀘스트 필름 페스티벌에서 2개 부문의 상을 수상했고, 국내에도 같은 해 '제천 국제음악영화제'를 통해 소개되었다.

제이슨 베커는 영화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