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주음악( Newage* )

Paul Mauriat - 아리랑(Arirang)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나네.


청천 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인 말도 많다.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온다네.


이 강산 삼천리에 풍년이 온다네.

산천초목은 젊어만 가고
인간의 청춘은 늙어만 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Arirang)/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위곡 선정

 

 

 

 

 

 

 

 

 

 

Paul Mauriat

 

 

 

1970년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악단이라면, 역시 폴 모리아 악단을 꼽을 수 있다

폴모리아를 이렇게 부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라이트 뮤직(경음악)의 거장”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무드음악의 지평을 넓힌 사람”이라고.

 

<러브이즈블루> <이사도라> <El Bimbo>, <Toccata>, <Nocturne>

1970, 80년대 당시 젊은이들은

폴모리아(Paul Mauriat`1925~2006)악단의 카세트 테이프나 LP 한 두개쯤은 갖고 있었다.

 

텔레비전의 배경음악에서도 폴 모리아음악은 가장 선호하는 우선 순위였다.

경음악을 요즘은 부담 없이 즐기는 이런 음악을 “easy listening”이라고 하는데,

폴모리아는 이런 음악을 개척했던 인물 중 한사람.

 

팝과 클래식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들면서, 그만의 매력적인 음악을 만들었다.

음악이 섬세하고 색깔이 분명했는데, 이런 음악을 사람들은 프랑스적이라고 했다.

그는 평생 작곡을 하지 않고 ‘편곡’만을 했는데, 그 편곡이 바로 폴모리아적이었고, 또한 외국인들에게는 프랑스적으로 들렸다.

 

낭만적이고 감미로운 것이 폴모리아 음악의 최고의 특징이다.

이런 음악이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고, 또한 대만이나 홍콩, 또 라틴아메리카에서 특히 선호했다.

 2.

1975년의 폴모리아 악단은 첫 번째 방한연주회를 갖게 된다.

이 ‘아리랑’은 ‘동양의 사랑노래’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다듬어지고, 드디어 1976년에 음반에 실린 아리랑-동양의

사랑노래가 프랑스에 소개되면서, 아리랑에 유럽에서 아름다운 예술적인 노래로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폴모리아는 이후에, 한국의 가요, ‘돌아와요 부산항에’(Please return to Pusan port)를 경음악으로 편곡해서

연주했으며 이 음악은 요즘도 방송의 시그날로도 사용되고 있다.

 

사실 많은 뮤지션들이 한국을 방문해서 연주를 할 때, 앵콜 곡으로 ‘아리랑’을 연주하는데, 한국팬을 위한 팬서비스 차원이지만 그들이 연주하는 아리랑에 공을 들였다거나, 예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아리랑은 많지 않다.

그러나 폴모리아의 아리랑은 다르다.

 

이 곡은 편곡에 있어서도 앞서가는 아리랑.

아리랑이 슬픈 음악이 아닌 감미로운 멜로리라는 걸, 폴모리아는 전세계에 알렸다.

[참고]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태어나 1941년에 마르세이유 국립음악원을 졸업했다.

1965년 '폴 모리아 그랜드 오케스트라'를 결성한 후 출시한 'Love Is Blue'는

5주간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고 5백여만장의 앨범이 팔렸다.

지금까지 100여개의 앨범을 내놓았고 4천만장이 팔렸다.

 

1천200여회의 순회공연을 가졌으며 내한 공연때 '아리랑'과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편곡해 연주했다.

2006년,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는 갔지만 그의 이름을 단 악단은 계속 활동 중이다.

 

 

(박병선 글 인용)

 

 

 

 

 

 

 

 

한민족 전통 민요 아리랑

 

 

아리랑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이다.

 2012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지역별로 각각 다른 아리랑이 전해져 온다.

 

어원

 

첫번째로 흥선대원군경복궁 중수 무렵 고향을 떠나는 부역꾼들이 '나는 님과 이별한다'는 뜻으로 아리랑(我離娘)을

불렀다는 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수를 위한 원납전 발행으로 원성이 자자하여 차라리 '내 귀가 멀었다'는 뜻으로

아이농(我耳聾)이라 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 세번째로 밀양 아리랑의 전설의 주인공 '아랑'을 애도한 노래에서

유래했다는 아랑전설(阿娘傳說), 네번째로 신라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이밖에도 여러 설이 있으나 현재로써는 구음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수필가 윤오영은 그의 수필 <민요 아리랑>에서 이들 어원설이 부회(附會)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하며,

아리랑의 '랑'은 령(嶺)의 변음이며 '아리'는 '장(長)'의 뜻을 지니므로 '아리랑'은 곧 '긴 고개'를 뜻한다고 설명한다.

 

 그 근거로 장백산의 옛 이름인 '아이민상견'(阿爾民商堅)의 '아이'는 '장(長)'의 훈(訓)이며, '민'은 백(白)의 훈차이고, '상견'은 산(山)의 반절음이니 '장(長)'의 고어가 '아리'인 것이 분명하다는 설명과 함께, 아리수(阿利水)역시

 곧 장강(長江)을 뜻하는 것으로 그 시대,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강을 부른 이름이므로 '아리랑' 역시 지역 마다 있는

가장 큰 고개를 부르는 이름이었음을 밝힌다.

 

덧붙여 '쓰리랑'은 '시리 시리 시리랑'에서 온 것으로 이는 '사리 사리' 혹은 '서리 서리'의 변음이며, 지방마다 높은재를 '사실고개', '서슬고개'로 부르는 것으로 미루어 '꾸불꾸불 서린 고개길'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여러 가지 아리랑

 

아리랑은 지역별로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은 정선아리랑, 강원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해주아리랑 등이 있다. 경기아리랑 또는 '신아리랑'이라 불리는 아리랑은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이다.

 

수백에 가까운 변종이 있었을 정도로 즐겨 불리던 이 민요는 후렴부와 독창부가 번갈아 가면서 불리도록 이루어져 있다. 아리랑 변형판의 제목은 “아리랑” 앞에 기원한 장소나 가사의 의미를 따와 붙인다.

 

최초의 아리랑은 정선 아리랑으로 600여 년 전에 강원도 정선군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아리랑은

경기도에서 130~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본조(本調) 아리랑(신 아리랑, 경기 아리랑)”이다.

 

 본조라고는 하지만 최초(또는 원조)는 아니다. 흔히 “아리랑”이라 하면 본조 아리랑(이하 경기 아리랑)을 가리킨다. (“본조 아파랑”과 “신 아리랑”은 다른 변종을 가리키기도 한다.) 구한말의 선교사 헐버트는 아리랑을 채보하여

영문 월간지 '한국소식' 1896년 2월호에 실었는데, 이것이 아리랑을 서양음계로 처음 채보한 것이다.

 

이때 헐버트는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쌀과 같은 존재라고 소개를 하였다. 최초로 채보된 아리랑은 문경새재 아리랑이다.

1926년의 한국 최초의 장편 영화 “아리랑”의 주제 음악으로 쓰여 유명해졌다. 2002년 월드컵에서는 '상암아리랑'이

울러퍼졌다.

 

 

 

 

 

 

 

 

'연주음악( Newage* )' 카테고리의 다른 글

Isao Sasaki - Sky Walker  (0) 2015.12.07
Yanni - Nostalgia  (0) 2015.12.07
Ennio Morricone-Chi Mai   (0) 2015.12.06
Paul Mauriat - Minuetto  (0) 2015.12.05
Mike Oldfield - New Times  (0) 2015.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