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ido Domingo & John Denver - Perhaps Love
Perhaps Love
Perhaps, love is like a resting place, A shelter from the storm.
It exists to give you comfort, It is there to keep you warm.
And in those times of trouble, When you are most alone,
The memory of love will bring you home
아마도 사랑은 안식처 같아요.폭풍속의 은신처.
그것은 당신에게 평온을 주며 당신을 따뜻이 지켜 주겠죠
그리고 고난의 시간, 당신이 너무 외로울 때에
사랑의 추억은 당신을 위로할 거에요
Perhaps, love is like a window, Perhaps, an open door.
It invites you to come closer. It wants to show you more.
And even if you lose yourself, And don't know what to do,
The memory of love will see you through.
아마도 사랑은 유리창인가 봐요. 아마도 열려진 문,
그것은 당신을 더 가까이 오라 하고 당신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 주네요
그리고 당신이 길을 잃거나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를 때에
사랑의 추억은 당신을 인도해 줍니다
Oh, love to some is like a cloud, Some, as strong as steel.
For some, a way of living, For some, a way to feel.
And some say love is holding on, And some say letting go.
And some say love is everything, Some say they don't know.
오, 사랑이여, 어떤 이에게는 구름처럼
어떤이에게는 강철처럼 강하게 어떤 이에게는 인생의 방법으로,
어떤이에게는 느낌으로..그리고 어떤 이는 사랑을 지키는 거라 하고
어떤이는 떠나 보내는 거라 하고 어떤이는 사랑을 모든거라 하고
어떤이는 무엇인지 모른다 하네요.
Perhaps, love is like the ocean, Full of conflict, full of pain.
Like a fire, when it's cold outside, Thunder when it rains.
If I should live forever, And all my dreams come true,
My memories of love will be of you...
아마도 사랑은 바다같아요 갈등과 아픔이 가득한..,
싸늘한 날씨속의 불꽃처럼 빗속의 천둥처럼 말이에요.
내가 영원히 살게 되고 내꿈이 모두 이루어진다면
내사랑의 추억은 당신일 거에요 ...
And some say love is holding on, And some say letting go.
And some say love is everything, Some say they don't know.
그리고 어떤 이는 사랑을 지키는 거라 하고 어떤이는 떠나 보내는 거라 하고
어떤이는 사랑을 모든거라 하고 어떤이는 무엇인지 모른다 하네요.
Perhaps, love is like the ocean, Full of conflict, full of pain.
Like a fire, when it's cold outside, Thunder when it rains.
If I should live forever, And all my dreams come true,
My memories of love will be of you...
아마도 사랑은 바다같아요 갈등과 아픔이 가득한..,
싸늘한 날씨속의 불꽃처럼 빗속의 천둥처럼 말이에요.
내가 영원히 살게 되고 내꿈이 모두 이루어진다면
내사랑의 추억은 당신일 거에요 ...
John Denver
존 덴버의 본명은 존 헨리(John Henry)로,1943년 12월 31일에뉴 멕시코주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피터 폴 앤 매리 에게<Leaving on AJet Plane>을 작곡해 주었고, (Rhythms And Reasons)로
가수의 자리에 섰다.
그리고 존 덴버의 이 곡은 두 장의 앨범에 발표되었는데 제일 먼저(An Evening With JohnDenver) 앨범과 또 하나는 그의 컨츄리 클래식 앨범에 발표되었다.
'32세의 그는 미국의 가장 대중적인 가수'라고 <뉴스 위크>지가 1976년 공언한 대로 존 덴버는 전성기 시절 내내
'미국의 목소리'(The voice of America)로 통했다.
그의 청량제 같은 노래들과 수더분한 '촌놈' 외모는 곧 1970년대 중반의 '미국 그 자체'였다.
그는 산을 사랑한 컨트리 보이 였다. 공군 조종사의 아들로존 헨리듀센도르프가 본명인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산이 많은 도시 덴버의 이름을 따 개명했다.
존 덴버의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1974년 여름 전미 차트 정상에 오른 '애니의 노래
(Annie's song)' 이 곡은그가 캠퍼스 커플로 1967년 결혼한 아내 앤 마텔(Ann Martell)을위해 쓴 곡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1980년대 들어서 존 덴버는 이 축복의 찬가를 부를 수 없게되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아내 앤 마텔과 1983년 갈라서고 말았다. 그후 음주운전,두 번째 아내인델라니와의 이혼등.
환경 운동에 나서고 기아 문제와 복지부문, 그리고 반전 활동에 아낌없이자신을 바쳤던, 모든 찬란한 순간이 빛을
잃어가는 순간이었다.
1982년 플라시도 도밍고와 '아마도 사랑은(Perhaps love)'을함께 부르며 건재를 과시했지만 주류에서는 이미
떨어져 있었다.
매우소박하고 순진한 가사로1970년대 컨트리 송을 전세계적인 음악 장르로 승화시킨장본인John Denver..
그러나 그는1997년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Placido Domingo
를 말한다.
Luciano Pavarotti 는 이태리출신이고, Placido Domingo와 Jose Carreras는 스페인 출신인데
Placido Domingo와 Jose Carreras 의 사이 있었던 아주 유명한 아래와 같은 일화가 있다.
스페인에 가지 않아도 ‘카타로니아’지역 사람들이스페인을 다스렸던 마드리드’지역으로부터의 자치권을
쟁취하려는 것 때문에 두 지역이 적대관계 있었던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마드리드지역 출신인 플라시도 도밍고와카타로니아 지역 사람인 호세 카레라스도 그렇게 되어,
이러한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카레라스와 도밍고는1984년에 앙숙이 되었다.
그들이 대단히 유명해지고 세계 여러 곳을 다니게 되면서,그들은 필요에 따라 서로가 오직 상대방이 초빙되지 않았을
때에만 나가기로 약정(約定)하였다.
1987년, 카레라스는 그의 라이벌 플라시도 도밍고 보다도더 받아드릴 수 없는 적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백혈병에 걸렸다는 무시무시한 진단을 받고 놀랐던 것이다.
그의 백혈병과의 투쟁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골수이식과 수혈 만이 아니라여러 가지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매달 미국으로 가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일을 할 수 없었고, 그는 다소 부유하였지만이러한 빈번한 여행과 치료에 드는 막대한 비용은
그의 재산을 고갈(枯渴)시키고 말았다.
그의 경제적 능력이 다 했을 때, 그는 마드리드에오직 백혈병 환자만을 위한 재단(財團)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레라스는 그 ‘Hermosa’재단의 후원에 감사하며 투병하고,다시 노래 부를 수 있게 되였다.
그는 다시 재기하였고, 그럴만한 형편이 되자 그 재단에가입하려고 하였다.
그는 재단의 정관(定款)을 읽고 나서, 플라시도 도밍고가 그 재단의 설립자이며 기여자의 리더이고,
또한 이사장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후에, 이 재단이 애당초 그의 치료를 돕고자 설립되었으며, 앙숙인 자기로부터의 도움을 창피하게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익명(匿名)으로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정점은마드리드에서의 만남으로, 도밍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카레라스는 도밍고의 연주회를 찾아가 그의 연주회를 중단시키고, 겸손하게 도밍고의 발 아래에 무릎 꿇고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도밍고는 그를 잡아 일으키고 꼭 껴안아, 그들의 위대한 우정의 시발(始發)을 확고히 하였다.
플리시도 도밍고는 한 인터뷰에서, 그의 앙숙에게 이익을 주는 것뿐인 ‘Hermosa재단’을그때에 설립하게 된 이유를
물었더니,그는 대답하기를"다만 자기의 경쟁자인 다른 예술가를 도우려 한 것" 이라고 하였다.
그의 대답은 짤막하고 명확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인간애에 대한 실화(實話)이며, 하나의 본보기로서 또한 감화(感化)로서 다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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