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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Savage Rose - Bella Ciao

 

 


 

 

 

 

Savage Rose - Bella Ciao

 

 

 

 

 

 

 

Bella Ciao

 

 

 

 

Stamattina mi sono alzato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Stamattina mi sono alzato e ba trovato l"invasor

 

 

Early one mornig I was awakenend
oh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and early one mornig I was awakenend
and found the enemy was here.

 

그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오 내 사랑 안녕, 안녕 내 사랑 안녕, 안녕, 안녕
그날 아침에 깨어났을 때 침략자들을 발견했다오

 

O partigiano portami via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O partigiano portami via che mi sento di morir

 

Oh Partisan, take me from this place
oh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oh Partisan, take me from this place
because I feel I´m dying here.

 

애국투사여, 나를 데려가 주오.
오 내 사랑 안녕, 안녕 내 사랑 안녕, 안녕, 안녕
애국투사여 나를 데려가 주오 조국 위해 투쟁할 수 있도록

 

E se muoio da partigiano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E se muoio da partigiano tu mi devi seppellir

 

And if I die, up on that mountain
oh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and if I die, up on that mountain,
then you must bury me up there.

 

내가 애국투사로 죽거들랑
오 내 사랑 안녕, 안녕 내 사랑 안녕, 안녕, 안녕
내가 애국투사로 죽거들랑 나를 묻어주어야 하오

 

E seppellire lassu in montagna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E seppellire lassu in montagna sotto l"ombra di un bel fior

 

Bury me high up, up on that mountain
oh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bury me high up, up on that mountain
and let the flower walk my way.

 

나를 산 밑에 묻어주오
오 내 사랑 안녕, 안녕 내 사랑 안녕, 안녕, 안녕
나를 산 밑에 묻어주오 아름다운 꽃 그늘 아래

 

E le genti che passeranno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E le genti che passeranno e diranno o che bel fior

 

Oh Partisan, take me from this place
oh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oh Partisan, take me from this place
because I feel I´m dying here.

 

그 곳을 지나는 모든 이들이
오 내 사랑 안녕, 안녕 내 사랑 안녕, 안녕, 안녕
그 곳을 지나는 모든 이들이 아름다운 꽃이라 말할 것이오!

 

E" questo il fiore del partigiano morto per la liberta
Ciao Ciao Ciao

애국투사의 꽃이라오 조국 위해 죽어간 꽃

 

 

 

 

 

 

 

 

벨라 챠오(Bella, Ciao)

 

 

제 2차 세계대전에 대해 흔히 알고 있는 사실 중 한 가지는 유럽에서 이탈리아와 독일은 한 편에서 서서 싸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2차 대전 내내 상황이 그러했던 것은 아닙니다.

 1940년 6월에 독일 편에 서서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이탈리아는 1943년  9월이 오면 연합군과 휴전 협정을 맺습니다.

 

그런데 휴전을 맺은 사실이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에게는 매우 갑작스러운 것이었고 또 휴전으로 인해 일어난 일들은

많은 이탈리아인들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연합군은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 섬을 점령하고 이제 막 이탈리아 본토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상황이었습니다. 아직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유럽 각 지의 전장에서 독일군들과 나란히 서서 싸우고 있던 이탈리아 군대에게는 전혀 알리지 않은 채 이탈리아 정부는 휴전을 선언하였습니다.

아울러 국왕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은 휴전을 선언함과 동시에 로마를 몰래 빠져나가 연합군이 있는 남부 이탈리아로

 탈출합니다.

정부는 휴전을 선언했지만 당시 이탈리아 반도에는 많은 독일군들이 주둔하고 있었고 특히 연합군이 아직 진주하지 않은 이탈리아의 지역들은 졸지에 독일군의 점령지가 되고 맙니다.

종전까지 동맹군이었던 독일군들이 하루 아침에 점령군이 된 것이지요. 또한 독일군들과 같이 유럽의 다른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이탈리아군은 영문도 모른채 독일군의 포로가 되고 무장을 해제 당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그 중에는 무장 해제를 거부하고 독일군들과 전투를 벌이고 포로가 되었다가 학살된 군인들도 있었지요. 이 이야기를

다룬 것이 루이 디 베르니이르(Louis DeBernieres)의 소설 "코렐리의 만돌린(Corelli's Mandolin)"이었고 그 작품은 다시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리이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아래에 잠시 그 영화 중에서 바로 이러한 비극의 장면을 옮겨보지요.

 

 

 

 

 

 

 

 

이렇게 하루 아침에 독일군들과 적이 된 상황에서 이탈리아 중,북부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레지스탕스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1945년 4월까지 30 만명 이상의 이탈리아인들이 독일군과 파시스트들에 대항해 치열한 전투를 벌입니다.

독일군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좌,우익이 모두 모여 저항 활동을 하다보니 내부적으로 충돌이 있기도 했습니다만

결국 독일군이 물러나고 이탈리아는 해방이 됩니다.

 그래서 1948년에 제정된 헌법 속에서 이러한 저항 활동의 결과를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이탈리아의 레지스탕스 활동을 통해 나중에 전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는 노래가 한 곡 탄생합니다.

사실 오늘 이탈리아 현대사를 길게 이야기한 이유는 바로 이 노래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를 만든 사람은 저항 활동에 참여했던 의사라고도 전해지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노래의 멜로디 역시 그 이전 19세기부터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지역에 전해 내려오던 여러 민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합니다.

우리 말로 번역을 하자면 '안녕, 이쁜이' 정도가 될까요.

 "Bella, Ciao(벨라, 오.=>" Bella"  라는 단어는 여기에서 아름다운 여성을 지칭하는 말로 쓰입니다)" 라는 이 노래는 당시 저항 운동에 참여했던 파르티잔(Partisan, 빨치산)들이 부른 노래인데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간단한 멜로디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후렴구가 이 노래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노래는 60년대 유럽 전체를 휩쓸었던 젊은이들의 저항 운동을 통해 유럽에 알려집니다. 그리고 공산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열렸던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이탈리아 공산당의 젊은 당원들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어는 물론이고 러시아어 중국어로도 불리워졌고 그런 와중에 가사가 지역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초기에 이 노래를 녹음하여 각 종 매체를 통해 알린 사람 중에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가수 겸 배우 

 이브 몽탕(Yves Montand, => mp3파일로 링크되어 있습니다.)  도 있습니다.

슬프고 비장한 곡조이지만 천천히 불릴 때와 빠르게 불릴 때 그 느낌이 모두 다릅니다. 아래에는 최근에 이 노래를

다시 녹음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탈리아 포크 락 그룹인 "모데나 시티 램블러즈

(Modena City Ramblers)"가 부르는 벨라 오와 6.70년대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탈리아의 가수 밀바

(Milva)가 부른 벨라 챠오, 두 가지 버전의 노래를 옮겨 봅니다.

특히 밀바의 노래는 빨치산의 이야기가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래로 가사를 바꾼 것입니다.

 전통적인 민요의 요소를 더 살리고자 피리와 바이올린 등으로 편곡하여서 듣는 사람이 노래에 맞춰 흥겨운 춤이라도

출 수 있을 것 같은 모데나 시티 램블러즈의 노래와 비장한 목소리의 밀바가 부르는 노래는 같은 노래인데도 참 다르게

 들립니다.  한 번 감상해 보시지요. 먼저 모데나 시티 램블러즈의 벨라 오 입니다.

 

 

 

 

 

 

1980년대 후반 현실사회주의 세력의 몰락은 한동안 놀라움이었으나 미국의 네오콘들에게 이는 확실하고도 불변의

절대적 승리로 비춰졌지요.

그것은 그네들이 주장하는 자본주의 질서가 사회주의 혹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을 꿈꾸는 모든 세력에 대해

도덕적인 승리까지 거머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네오콘들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론자들은 도처에서 공격당하는 현실입니다. 

1990년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격화되면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는 세계 민중들에게 커다란 희생과 모순된

 질서를 강요했습니다.

그 결과 이전의 그 어떤 좌파 정치조직도 이루어내지 못한 세계 민중의 조직적인 저항을 불러들였습니다.

 

그것은 세기말 1999년 시애틀에서 폭발했고, 이후 신자유주의자들이 모이는 곳 어디에서나 이들이 추구하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반세계화 운동이 벌어지는 곳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바로 '벨라 차우bella ciao'입니다.

세계 민중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며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 나가기 위해 어깨를 걸고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압 경찰에 끌려가는 유럽의 이름 모를 젊은이에게서, 남미의 늙은 농부의 입에서 이 노래 벨라 차우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투쟁가' 중에서  '인터내셔널'가와 더불어 이만큼 대중적인 노래도 없다고 하니

말입니다. 

이 노래는 이브 몽땅과 밀바도 불렀지만 그 외에도 세계적으로 수많은 가수들이 불러 여러 가지 버전이 있으며 국내에는 <애국투사의 꽃>이란 이름으로 번안되어 있습니다

여기 소개하는 동영상은 덴마크 출신으로 구성된 재즈그룹 savage rose의 음반입니다.

그룹의 보칼리스트 annisette의 독특한 음성이 퍽이나 인상적이어서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합니다.

 

 

 


 

 

 

 

Savage Rose의 리더이자 그룹의 창시자인 Thomas Koppel은 1944년 덴마크의 유명한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인

 Herman D. Koppel의 4남매중 3째로 태어났다.

 Koppel은 이미 그의 나이 4세때부터 작곡을 시작한다.

 

 또한 Koppel 형제들은 모두 덴마크 음악계의 중요한 뮤지션들로 성장하게 된다. Thomas Koppel의 파트너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Annisette은 웨이터였던 아버지 Finn Hansen과 무용수 출신의 어머니 Rita사이에서 태어난다.

Annisette은 인기 아역배우였던 그의 언니와 함께 7세때부터 노래를 시작하면서 음악의 길로 접어든다.

Annisette은 1965년 댄스 밴드인 Dandy Swingers에 참여하면서 점차 싱어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67년 이들 Dandy Swingers는 Tina Turner의 (River Deep Mountain High)의 커버곡으로 덴마크

 차트에 등장한다.

 

한편 Thomas는 대형 오케스트라와 솔로 연주자의 클래식 공연에 10대 작곡자로 참여하며 경력을 쌓기 시작하는데

그가 17세때 작곡한 오페라 Tale Of A Mother는 Royal Opera에 의해 연주되기도 했다.

이 오페라엔 후에 Sydney Opera에서 프리마돈나가 되는 그의 누이 Lone이 주연을 맡기도 했다.

 

Thomas는 최연소로 Carl Nielsen상을 수상하는등 여러 상을 휩쓸며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새비지 로즈를 이끌어 나간 원동력은 작곡과 피아노,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토마스 코펠(Thomas Koppel)에서 나온다. 토마스 코펠은 유명한 덴마크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허먼 코펠의 아들로, 44년에 태어났다.

 처음에는 클래식을 전공해 이미 4살 때에 곡을 작곡했다고 하니 일단은 천재성(또는 천부성)에 방점을 찍어야겠다.

물론 이 천재성은 가장 어린 나이로 덴마크의 유명한 음악상인 "칼 닐센 상(Carl Nielsen Prize)"을 수상하기도

 했음으로도 알 수 있다.

 

 이 정도로 코펠의 음악적인 감각을 말해두자.

그리고 또 하나의 축은 곡을 만들고 보컬을 담당하는 파워 보컬리스트 안니셋이다.

안니셋은 48년에 웨이터인 핀 한센과 무용수인 리타 사이에 태어난 딸로, 7세 때부터 노래를 불렀고 한때

 댄디 스윙어스(Dandy Swingers)라는 댄스그룹에 가담하기도 했는데 나름대로 음악성을 인정받아 덴마크 차트에

오르기도 한다.

 

이렇게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새비지 로즈는 시작된다. 토마스 코펠은 동생인 안데르스(Anders), 그리고 67년 당시 "올해의 재즈드러머"로 뽑히기도 했던 알렉스 리엘(Alex Riel)과 함께 새비지 로즈를 만들기로 하고, 안니셋이 있던

 댄디 스윙어스와 프로젝트를 구상하던 중에 안니셋을 만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새비지 로즈는 시작된다.

 

68년에 데뷔작 [The Savage Rose]를 폴리돌에서 발표하자마자, 이 앨범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완전히 뒤흔들었고, 앨범은 차트 상위권에 일년 내내 머물러 있을 정도였다.

 곧이어 같은 해 말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In The Plain]으로 확고한 위치에 올라서게 된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유럽투어를 가지게 되고, 강력한 사운드와 안니셋 특유의 힘찬 보컬은 새비지 로즈라는 그룹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된다.

 

이후 미국에도 이름이 알려진 새비지 로즈는 뉴포트 페스티벌에서 당시 소울계의 대부였던 제임스 브라운과 공연을

 갖기도 했고, 그밖에도 영국에서 활동하다 미국으로 건너간 블루스 뮤지션 존 메이올(John Mayall), 타지마할

(Taj Mahal), 쓰리 독 나잇(Three Dog Night) 등과도 공연을 가져 RCA와 연결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덴마크 출신 그룹으로는 엄청난 성공이었다.

 

이들이 데뷔했던 68년을 제외하고 매년 한 장의 앨범을 꼬박꼬박 발표하던 새비지 로즈는 73년에 이르러 역시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는데, [Babylon]은 상업적으로 상당한 참패를 겪었지만 곧이어 발표한 [Wild Child]는 이들의

초기걸작으로 인정받는 앨범이 된다.

하지만 [Wild Child] 이후 무려 5년 동안 새비지 로즈는 앨범 작업을 하지 않는데, 이유는 이들의 소속사인 폴리돌과의 마찰이었고, 여기에 창단멤버였던 토마스 코펠의 동생 안데르스 코펠이 학업을 이유로 그룹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샌가 결혼을 했고 아기까지 갖게된) 토마스와 코펠은 새로운 음악을 찾아 언더그라운드 생활을 하게되는데, 초기처럼 강렬한 음악 대신 민속음악을 많이 사용한 서정적인 포크 분위기를 선호하게 된다.

이들은 합창단과 포크 밴드를 결성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옹호하는 사회 정치적인 공연을 가지며 여러 지방으로 투어를 시작한다. 78년이 되어서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앨범 [Solen Var Ogsa Din]을 발표하며 70년대를 마감한다.

 

80년대 들어 새비지 로즈의 음악 방향은 데뷔시절부터 줄곧 표현했던 격렬한 사운드와 안니셋의 격정적인 보컬 대신

언더그라운드 생활을 통해 민속적인 요소를 차용한 서정적인 음악으로 변한다.

말하자면 아트록적인 하드록을 연주하던 새비지 로즈가 포크록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영어를 사용하던 가사도 덴마크의 언어로 바뀌게 된다.

 

이때부터 새비지 로즈의 음악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되는데, 토마스 코펠의 아코디언이 빛을 발하며 민속적인 색채를

더한다. 2년에 한 장 꼴로 음반을 발표하던 새비지 로즈는 93년에 공식적인 데뷔 25주년을 맞아 2장 짜리 기념음반을

 발표하고 음반 이외에도 활동의 폭을 넓힌다.

 

물론 새비지 로즈의 음악이 갖는 장점, 이를테면 격정적인 안니셋의 보컬이나 힘있는 연주 등이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음악세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 그룹을 보자면 음악에 대한 열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거기에 새비지 로즈가 활동했던 30년을 인정한다면 결코 무시하지 못할 연륜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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