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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Joanne Glasscock- The Centaur

 

 

 

 Joanne Glasscock- The Centaur

 

 

 

 

 

 

 

The Centaur (半人半馬 )

 

 

 

On that hill a centaur stands, half stallion, half man,


and his hoofs are the hoofs of a stallion,,


and his strength, it's the strength of a stallion,

and his pride, the pride of a stallion.


But his tears are the tears of a man.

저 언덕위에 한 마리 쎈토가 서 있네.


半은 種馬, 半은 사람.


종마 발굽에,종마의 힘에


종마의 자부심을 가졌지만


눈물만은 사람의 것이라네.


Over the hill the centaur goes,


round the mountain and back again,


a little too far from the world of dreams,


and just beyond the world of a man.



저 언덕위에 한 마리 쎈토가 가고 있네.


산을 돌아 다시 제 자리로.


꿈의 세상으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진 곳,


사람들이 사는 세상 바로 건너 저편이라네.



Once the centaur loved a mare


who rode beside him everywhere,

(They were) racing, chasing cross the fields,


(the) centaur and the wild mare.



한 때 쎈토는 암말을 사랑했다네.


날마다 그녀 곁에서 달리곤 했지.


종마와 암말은


들판을 가로질러 경주하고 따라잡고 그랬다네.



But with the racing and chasing done,

they stood silent and silent there.


But the centaur, he had words to say.


(But) the mare had only the soul of a mare.


하지만, 경주와 따라잡기가 끝나고 나면


그들은 조용히 서 있었지.


쎈토는 하고싶은 말이 많았지만,


암말은 단지 암말의 영혼만을 가지고 있었기에.


 

 

Over the hill he rode on,
round the mountain and back again,
a little too far from the world of dreams,
and just beyond the world of a man.

언덕 위로 그는 달리네.
산을 돌아 다시 제 자리로.
꿈의 세상으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진 곳,
사람들이 사는 세상 바로 건너 저편이라네
.

Once the centaur loved a girl
who saw his golden aspiration.
(They were) walking, whispering through the woods,
the centaur and the lovely girl.

한 때 쎈토는 그의 황금빛 포부를 알아주는
한 소녀를 사랑했다네.
쎈토와 그 사랑스런 소녀는
숲속을 걸으며 속삭였지.

But with the walking and whispering done,
they stood silent, and then they cried.
For the centaur felt the stirring breeze,
He needed someone who could ride by his side.

하지만 산책과 속삭임을 다 했을 때,
그들은 조용히 서서 울었다네.
왜냐하면 쎈토는 산들바람을 느끼자
곁에 함께 달릴 누군가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지.

Over the hill, climbing the mountain and back again,
not a quite reaching his world of dreams,
and still beyond the world of a man.

언덕 너머로, 산 위로 다시 제자리로 달리고 있네.
꿈의 세상으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진 곳,
사람들이 사는 세상 바로 건너 저편이라네.

 

그 언덕에 한 마리 쎈토가 서 있다네.

 

 

 

 

 


 

※ 팔레스와 켄타우르스 - 1480년. 캔버스, 템페라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도끼 모양의 기다란 창을 손에 가진 지혜와 전쟁의 여신 팔라스가 화살집을 둘러 메고오른손에 활을 쥐고 있는 폭력과 무지를 상징하는


반인반마 켄타우로스의 머리털을 부드럽게 거머쥐고 있는 광경이다.

팔라스는 우아한 표정을 짓고 있고, 그녀의 옷에는 메디치가문이 사용한 다이아몬드 문양이 들어 있으며

 

감람나무 가지가 얽혀 있다.


 

반면, 켄타우르스는 슬픈 표정에다 겁을 집어 먹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그림은 메디치 가문의 정치적 승리의 상징성 외에 이성(팔라스)이 본능(켄타우로스)를 제어한다는

 

도덕적 내면이 상징되어 있다는 해석도 있다

 

 

 

 

 

 

Centaur는 반인반마를 뜻을 가진 신화 속의 인물을 비극적 정서로 재해석해 한국인의 심금을 울린. 비극적 주제로 매우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주제로한 포크음악이다.  그녀는 자신이 레코딩한 대부분의 작품을 직접 작곡하고,  염세주의를 바탕에 깐 아름다운 가사 또한 직접 쓰는 순수 창작가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말의 형상인 괴물 족속  켄타우르스에 얽힌 전설은 몇 가지 버전이 있는데 아폴론과 스틸베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하고, 익시온과 헤라의 형상을 지닌 구름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제우스의 아내이자 여신인 헤라를 보고 사랑에 빠져 이를 눈치 챈 제우스가 구름으로 여신의 형상을 만들어 익시온과 사랑을 나누도록 하는데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켄타우로스라는 것이다.

 

아폴로의 아들인 반인반신 센토러스가 마그네시안 말과 정을 통해서 태어난 센토가 갈구하는 꿈의 세계는 센토의 반인반수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바로 센토가 흘리는 인간의 눈물이 아닐까? 

 

켄타우로스는 하늘의 별자리 "궁수자리" 혹은 "사수자리"가 바로 그 별자리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던가 

 

사랑....

어긋나니까 사랑이다.


대저 인간으로 태어나서, 삐딱하게 맛이간 종자 이외엔 사랑을 갈구하지 않은 이 없을 터
자기 삶의 끝까지 밤낮찰떡(?)같은 짝과 해로하고싶지 않은 이 또한 없을게다.

 

어쨋거나, 사랑은 어긋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 또한 보편적이다.

마치 계시라도 받듯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사랑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시선이 바뀌고, 관념의 필터가 변질되면서 맹세는 사라진다.

사랑을 시작한다는 이들이 나누는 맹세와 언약의 본질은 요구와 확인에 다름 아니다.

 

진정 사랑하고 싶다면, 그 또는 그녀를 그냥 가만히 바라봄이 옳지 않을까?

 

(마음이야 아프겠지만,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어리석은 광기는

사전에 억누를 수 있을 테니까.)

 

故 이윤기선생의 저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그가 영웅으로 묘사되어있다.
신들의 '나와바리'에서 인간의 지혜와 종마의 육체를 가진 영웅 '켄타우로스'.

그러나, 그 영웅을 인간의 세상으로 불러들여 수컷인간의 감정을 이입하자
영웅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이기적이고 나약한 '사랑의 비렁벵이'가 되고 만다.


육체적으로 만족스러우니 영혼의 빈곤이 걸림돌이 되고,
혜안을 가진 소녀와의 금싸라기 같은 대화가 끝나고 나니 육체의 본능이 갈증으로 허덕인다.

 
플라톤이 태어나기 전이라 '플라토닉키스' 따위는 애시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일까?
'센토'가 갈구한 꿈의 세계는 대체 어떤 세계일까?


그는 왜 꿈의 세계를 벗어나, 이기와 욕망이 지배하는 인간의 세계를 기웃거릴까?
이런 애매모호한 가사를 쓰고, 직접 노래한 Joanne Glasscock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이 답은 개인이 허락받은 인간 세상에서의 수명을 거진 다 소진해야...알게 되는..ㅠㅠ)
  

지독한 회의.

어느 순간부턴가 뼈를 깎는 고통으로 자리했던 애꿎은 목메임이
겨우 저런 이기적인 욕망(신이 동물의 DNA에 새겨놓은 기본 어플-종족 보전의 지상명령) 탓임이

서럽도록 허망해서일 거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그 얄궂은 어긋남때문에 값지고 아름다운 것이다.
시작도 다르고, 속도도 다르고, 깊이도 다른 것이 사랑이다.


그리하여...
슬퍼서 아름다운 것이 인간의 사랑이고, 아파서 값진 것이 인간의 사랑이다.


사랑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백년쯤 비가 내리지 않은 사막에 내리는 단비같은 것이고,

사랑에 눈 멀어버리는 것은 그 자체로 열반의 경지다.


때로는 구질구질하고, 청승맞게만 느껴지는 저 사랑때문에 인간은 예술을 행한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창조의 원천이 된다.


사랑때문에 가슴 아프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버리자.
눈물을 넘어서야 진정한 희열이 찾아오는 법이니까.

이 노래 는 영국의 내노라하는 여성 포크 가수들을 다 제치고
제법 오래도록 장수하며 사랑받는 Joanne Glasscock1969년 작품이다.


'브리티쉬 포크'의 한 軸인 신비주의를 대표했던 가수 Joanne Glasscock의 유일무이한

국내 히트곡으로 본국의 인지도와는 상관없이 신화 속의 인물을 비극적 정서로 재해석.
70년대 한 세대동안 오래토록 한국인의 심금을 울린 작품이기도 하다.



신화를 바탕으로 센토를 설명하자면, 켄타우루스라 불리는 이 인물 또는, 종족은 신과 인간과

야생의 말이 다중으로 교배하여 탄생한 반인반수의 괴물로, 그 원류의 父係에는 인간과 신의

交接에 의해 탄생한 반인반신의 종족이자 더불어 친족살해의 혐의를 가진 익시온의 피가 흐르고,


모계는 그리스 북방 펠리시온 산의 순수한 암말의 혈통이었다 한다.

부계의 혈통 중 신의 영역은 구름의 여신인 '네펠레'로 이것은 인간의 탐욕이
헛된 망상과 결합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사에 등장하는 꿈의 세계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망상의 세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신비주의자인 Joanne Glasscock
자신이 레코딩한 대부분의 작품을 직접 작곡하고,
염세주의를 바탕에 깐 아름다운 가사 또한 직접 쓰는 순수 창작가다.



하프 연주를 연상케 하는 Chet Atkins의 기타 연주만으로도
충분히 소장가치를 갖는 이 작품은 유독 한국시장에서만 오래 애청되는 작품이다.

 

신비주의가 근간을 이루기는 하지만,
그것을 인간 세상으로 끌어 내리면서 비극적 정서를 더해,
한국인이 죽고 못 사는 슬픈 사랑에 대한 민족적 페이소스와 결합해
이런 상승효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전반부의 차분한 낭송조의 멜로디가 점점 가속화되어 폭발하는 클라이막스는
목이 메어 눈물도 흘릴 수 없는 심경을 노래하는 듯 하다.



이것이 바로 센토가 흘리는 인간의 눈물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비극적인 사랑의 노래다

 

 

 

 

 

 

 

 

Joanne Glasscock

 

 

이 노래 는 영국의 내노라하는 여성 포크 가수들을 다 제치고 제법 오래도록 장수하며 사랑받는 조안 글래스콕

Joanne Glasscock의 1969년 작품이다.

 

브리티쉬 포크 음악의 한 축인 신비주의를 대표하는 가수 조안 글래스콕 (Joanne Glasscock)의 유일무이한 국내

히트곡으로 본국의 인지도와는 상관없이 신화 속의 인물을 비극적 정서로 재해석해 한국인의 심금을 울린 작품이기도 하다.

 

신화를 바탕으로 센토를 설명하자면, 켄타우루스라 불리는 이 인물 또는, 종족은 신과 인간과 야생의 말이 다중으로

교배하여 탄생한 반인반수의 괴물로, 그 원류의 부계에는 인간과 신의 교배에 의해 탄생한 반인반신의 종족이자 더불어 친족살해의 혐의를 가진 익시온의 피가 흐르고, 모계는 그리스 북방 펠리시온 산의 순수한 암말의 혈통이었다 한다.

 

부계의 혈통 중 신의 영역은 구름의 여신인 네펠레로 이것은 인간의 탐욕이 헛된 망상과 결합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사에 등장하는 꿈의 세계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망상의 세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미국으로 치자면 버피 세인트 마리Buffie Saint Marie에 필적할 만한 싱어 송 라이터이자 신비주의자인 조안 글래스콕Joanne Glasscock은 자신이 레코딩한 대부분의 작품을 직접 작곡하고, 염세주의를 바탕에 깐 아름다운 가사 또한

직접 쓰는 순수 창작가다. 

하프 연주를 연상케 하는 쳇 앳킨스Chet Atkins의 기타 연주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갖는 이 작품은 유독 한국시장에서만 애청되는 작품이다.

 

신비주의가 근간을 이루기는 하지만, 그것을 인간 세상으로 끌어 내리면서 비극적 정서를 더해, 한국인이 죽고 못 사는 슬픈 사랑에 대한 민족적 페이소스와 결합해 이런 상승효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전반부의 차분한 낭송조의 멜로디가 점점 가속화되어 폭발하는 클라이막스는 목이 메어 눈물도 흘릴 수 없는 심경을

 노래하는 듯 하다.

 

이것이 바로 센토가 흘리는 인간의 눈물이 아닐까?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팝송은 따로 있다는 소리가 있는데 이 노래도 그중 하나이다.

우리 나라에서만 유독 인기가 있는데 비극적인 정서때문이라라....

 

켄타우르스 (Centauros / Kentauros) .토 (The Centaur )

 

켄타우르스에 얽힌 전설은 몇 가지 버전이 있는데 아폴론과 스틸베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하고, 익시온과 헤라의

형상을 지닌 구름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그중 후자의 전설이 좀더 극적인데 왜냐하면 거기엔 친족살해와 헤라 여신과의 사랑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친족을 살해한 익시온은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신들의 나라인 올림포스를 찾았다가 제우스의 아내이자 여신인

헤라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이를 눈치 챈 제우스가 구름으로 여신의 형상을 만들어 익시온과 사랑을 나누도록 하는데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켄타우로스라는 것이다

 

대체로 켄타우로스에 대한 평은 성격이 급하고, 난폭하다는 것이지만 개중에는 케이론처럼 현자로 소문난 존재도

있어서 그는 그리스의 여러 영웅들의 스승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의학을 가르친 것도 케이론이었다.

어쨌든 이들은 고기를 날로 먹고, 술을 즐기는 종족인데다가 사랑에도 쉽게 빠지는 편인지라 이들에 얽힌 이야기 속에는 늘 신부 약탈의 전설이 있다.

하긴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정력의 상징으로 비추었던 말이었으니 그럴듯한 성질머리일 것이다.

하여간에 이런 신부 약탈이 전쟁으로 번져 테세우스가 이끄는 인간들과의 전쟁에서 패해 먼 곳으로 유배된 존재가된다.

켄타우로스는 하늘의 별자리 "궁수자리" 혹은 "사수자리"가 바로 그 별자리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사랑은 어긋나니까 사랑이다. 대처에 사람이라고 태어나서, 사랑받고자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자기 삶의 끝까지 그 사람과 함께 하고싶지 않은 사람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사랑은 어긋나는 것이다. 마치 계시라도 받듯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사랑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시선이 바뀌고, 관념의 필터가 변질되면서 맹세는 사라진다.

 

사랑을 시작한다는 이들이 나누는 맹세와 언약의 본질은 요구와 확답에 다름아니다. 진정 사랑하고 싶다면, 그 또는

 그녀를 그냥 가만히 바라봄이 옳지 않을까?

마음이야 아프겠지만,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어리석음은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신화는 그를 영웅이라 불렀다. 신들의 영토에서 그는 인간의 지혜와 종마의 육체를 가진 진정한 영웅 켄타우루스였다. 그러나, 그 영웅을 인간의 세상으로 불러들여 인간의 감정을 이입하니, 영웅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이기적이고 나약한 사랑의 걸인이 되고 만다. 육체적으로 만족스러우니 영혼의 빈곤이 걸림돌이 되고, 혜안을 가진 소녀와의 금싸라기 같은 대화가 끝나고 나니 육체의 본능이 갈증으로 허덕인단다. 영혼의 입맞춤은 애초에 없었던 것일까?


센토가 갈구하는 꿈의 세계는 대체 어떤 세계일까? 그는 왜 꿈의 세계를 벗어나, 이기와 욕망이 지배하는 인간의 세계를 기웃거릴까?

 이런 애매모호한 가사를 쓰고, 직접 노래한 조안 글래스콕Joanne Glasscock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세상에서

이처럼 슬픈 사랑은 없을거라며, 공감의 찬사를 보냈던 산지기는 왜 이제와서 이런 의문사들을 남발하는 걸까?

지독한 회의.

 

어느 순간부턴가 뼈를 깎는 고통으로 자리했던 애꿎은 목메임이 겨우 저런 이기적인 욕망 탓임이

서럽도록 허망해서일 거다.

그러나 다시, 인간의 사랑은 그 얄궂은 어긋남때문에 값지고 아름다운 것이다. 시작도 다르고, 속도도 다르고, 깊이도

다른 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슬퍼서 아름다운 것이 인간의 사랑이고, 아파서 값진 것이 인간의 사랑이다.

사랑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백년쯤 비가 내리지 않은 사막에 내리는 단비같은 것이고, 사랑에 눈 멀어버리는 것은

그 자체로 열반의 경지다.

 

때로는 구질구질하고, 청승맞게만 느껴지는 저 사랑때문에 인간은 예술을 행한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창조의 원천이 된다. 사랑때문에 가슴 아프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버리자.

눈물을 넘어서야 진정한 희열이 찾아오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