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d Stewart -Sailing
Sailing
I am sailing I am sailing
Home again across the sea
I am sailing stormy waters
To be near you to be free
나는 바다를 저어갑니다.바다를 저어갑니다.
저 바다건너 평안의 고향으로
거친 바다를 가르며 항해합니다
그대 곁을 향하여 자유를 향하여
I am flying I am flying
Like a bird 'cross the sky
I am flying passing high clouds
To be with you to be free
나는 날아갑니다 하늘 높이 날아갑니다
창공을 가르는 새와 같이
높은 구름을 스치며 날아 오릅니다.
그대와 함께 하러, 자유와 함께 하러
Can you hear me can you hear me
Through the dark night far away
I am dying forever crying
To be with you who can say
내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들리시나요
저 멀리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질러 오는
마음이 너무나 애절하여 이렇게 통곡합니다
이 목소리를 그대와 함께하고 싶어서요
We are sailing we are sailing
Home again 'cross the sea
We are sailing stormy waters
To be near you to be free
Oh Lord to be near you to be free
Oh Lord to be near you to be free
우리는 바다를 저어갑니다 바다를 가로지릅니다.
저 바다 건너 평안의 고향으로
거친 바다를 가르며 항해합니다
그대 곁을 향하여 자유를 향하여
오 주여 그대 곁을 향하여 자유를 향하여
오 주여 그대 곁을 향하여 자유를 향하여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는 탁월한 보컬 실력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40년 가까이 팝 음악계를 휘저어온 록의
슈퍼스타다.
한편으론 화려한 여성 편력과 시류에 영합한 잦은 노선 변경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안타까운 팝 가수이기도 하다. '브리티시 록의 대명사'란 기분 좋은 찬사 외에도 '금발 사냥꾼', '변신의 귀재', '리메이크의 달인'과 같은 준엄한
평가가 늘 동행한다.
수십 년 세월을 이겨온 거장의 풍모와 부끄러운 록 엘리트의 단면을 함께 보여준 역전의 베테랑 뮤지션이 바로
로드 스튜어트다.
1945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로드 스튜어트의 처음은 참담했다. 어려웠던 집안 형편 탓에 각종 잡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축구 클럽에서 고참 선수의 구두도 닦았으며, 유럽을 떠돌다 스페인에서 '부랑죄'로 쫓겨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로커의 자질을 연마해 갔던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 1963년 지미 파웰 앤 더 파이브 디멘션스(Jimmy Powell
& The Five Dimensions)의 보컬리스트로 공식적인 음악 활동을 스타트했다.
그는 곧 롱 존 보드리(Long John Baldry)가 이끄는 후치 쿠키 멘(Hootchie Coochie Men), 블루스 록 그룹 샷건
익스프레스(Shotgun Express), 당대의 기타리스트가 결성한 제프 벡 그룹(Jeff Beck Group)을 차례로 거치며
최고 보컬리스트로서의 지명도를 계속 쌓아나갔다.
1969년에는 해체된 제프 벡 그룹을 뒤로하고 팀 동지였던론 우드(Ron Wood)와 함께 스몰 페이시스(Small Faces)에 가입했다.
그는 이름을 짧게 고친 페이시스(Faces)의 간판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첫 솔로 앨범인 〈An Old Raincoat Won't
Let You Down〉(미국에서는 〈Rod Stewart Album〉(139위)이란 제목으로 발표됐다)을 발표하며 블루스와
포크, 그리고 로큰롤이 결합된 뛰어난 음악성을 선보였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로드 스튜어트는 본격적인 성공의 문을 열어 젖혔다.
1970년 발표한 두 번째 음반 〈Gasoline Alley〉(27위)로 평단의 지지와 팬들의 호응을 동시에 끌어낸 그는 이듬해
명작으로 손꼽히는 3집 〈Every Picture Tells A Story〉와 자작곡 'Maggie May'를 동시에 차트 정상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다.
1973년 발표한 〈Never A Dull Moment〉(2위)와 1975년 내놓은 〈Smiler〉(13위)로도 전작들
에 뒤지지 않는 흡족한 양수겸장의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바로 이 때부터 '바람 바람 바람'과 '노골적인 스타덤 뒤쫓기'가 시작됐다.
1975년 금발의 여배우 브릿 에클런드(Britt Ekland)를 필두로 '황금빛 로맨스'를 잇달아 터뜨렸고, 무거운 세금을
피할 목적으로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안착했다.
이와 함께 발표한 〈Atlantic Crossing〉(9위)은 오늘날 그의 대표곡으로 각인된 서덜랜드 브라더스
(Sutherland Brothers)의 'Sailing'(58위)을 담고 있었지만, 초기의 참신함을 버리고 팝 적으로만 나아간다는
따가운 지적을 당했다. 결국 로드 스튜어트는 그 해 말 페이시스를 떠나 완전한 솔로 팝 스타로서의 본색을 드러냈다.
음악적 색깔도 변화시킨 그는 1976년 8주간 차트 1위를 차지한 빅 히트 싱글 'Tonight's the night'을 담은
〈A Night on The Town〉(2위)로 본격적인 인기 사냥에 나섰다.
뒤이은 1977년의 〈Foot Loose & Fancy Free〉(2위)로 여세를 몰아간 후, 마침내 의미심장한(?) 제목의
〈Blonde Have More Fun〉(1979)으로 다시금 차트 1위를 정복했다.
당시의 대세였던 디스코를 수용한 싱글 'Da ya think I'm sexy?' 역시 4주간 정상의 황홀경을 체험했다.
이에 성난 펑크 그룹들은 그를 '썩은 록 스타'로 규정하고, 사치스런 여성 행각과 실망스러운 인기 영합주의에 맹공을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마치 시위라도 하듯 최신 조류인 뉴 웨이브/신스 팝을 버무린
〈Foolish Behaviour〉(12위)와 〈Tonight I'm Yours〉(11위)를 1980년과 1981년 잇달아 내놓았다.
그는 'Passion'(5위)과 'Young turks'(5위)를 각각 히트시키며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빙글빙글 돌리는 요지부동의
여유까지 부렸다.
그러나 타락(?)에 대한 응분의 대가였던지 1983년의 〈Body Wishes〉(30위)와 〈Camouflage〉(18위)는
플래티넘조차 따내지 못하는 쓰라림을 맛봤다.
뼈아픈 슬럼프를 경험한 그는 듀란 듀란(Duran Duran)의 존 테일러(Andy Taylor), 쉭(Chic)의 버나드 에드워즈
(Bernard Edwards)와 함께 한 1988년의 〈Out Of Order〉(20위)로 재기의 의지를 다졌다.
1989년에는 톰 웨이츠(Tom Waits)의 'Downtown train'(3위)을 타고 다시 한번 전진했다. 1991년에도
〈Vegabond Heart〉(10위)를 톱 텐에 올리며 조금씩 스타 회생의 기미를 엿보이게 했다.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던 그에게 근사한 기회를 제공한 것은 1990년대 초반 불어닥친 언플러그드 열풍이었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극적인 재기에 고무된 그는 1993년 론 우드와 함께 감동의 MTV 언플러그드 무대를
연출하는데 성공했다.
곧바로 라이브 앨범 〈Unplugged... and Seated〉(2위)를 발표하고는 밴 모리슨(Van Morrison)의 명곡
'Have I told you lately'(5위)로 예전의 기력을 거뜬히 회복했다.
같은 해 그는 비슷한 허스키 보이스 후배들인 스팅(Sting), 브라이언 아담스(Brian Adams)와 함께 영화
〈Three Musketeers〉의 주제가 'All for love'(1위)를 부르며 건재를 과시했다. 로드 스튜어트는 이듬해인
1994년, 마침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후 1995년 톰 페티(Tom Petty)의 'Leave Virginia alone'(52위)을 담은 〈Spanner In The Works〉
(35위)를 내놓은 그는 이듬해에도 신곡을 포함한 발라드 베스트 앨범 〈If We Fall In Love Tonight〉(19위)로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1998년에는 오아시스(Oasis)나 스컹크 애넌지(Skunk Anansie)같은 새카만 후배들의 곡을 대거 리메이크한
의외의 앨범 〈When We Were The New Boys〉(44위)로 변치 않는 젊음을 자랑하기도 했다.
2001년 그는 R&B 색채로 무장한 신보 〈Human〉(50위)으로 새로운 세기에도 녹슬지 않은 예리한 시대감각을
과시했다. 2003년에는 1930, 40년대의 스탠더드 재즈 송만을 모아 놓은 〈It Had To Be You...
The Great American Song Book〉(4위)을 발표하며 숙성된 거장의 깊은 맛을 전달했다.
2003년 현재, 그는 새로운 싱글 'They can't take that away from me'로 세월을 잊은 슈퍼스타의 위용을 또 한번
떨치려 하고 있다.
Rod Stewart
한때 로큰롤계의 최고 가수로서, 포크, 록, 블루스, 컨트리를 두루 섭렵한 창조적인 작곡가로서 명성을 떨쳤던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는 사자 갈기 같은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거칠지만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영국 출신의 아티스트이다.
60년대 초기에 영국 포크 가수 위즈 존스(Wizz Jones)와 유럽 순회공연을 하며 전문 음악인으로서의 경력을 키워갔던 로드는 믹 플리트우드(Mick Fleetwood),훗날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베이시스트로 이름을 떨치는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등과 함께 여러 R&B 밴드를 전전하며 보컬리스트이자 하모니카 주자로, 때로는 블루스 하프 연주자로 활동했다.
65년 롱 존 발드리(Long John Baldry)가 결성한 스팀패킷(Steampacket)의 일원으로 레코딩 작업과 연주를 했던
로드는 66년 밴드가 해체되자 제프 백 그룹(Jeff Beck Group)에 조인하게 된다.
이 그룹에서 그는 섹시하면서도 역동적인 리드 보컬리스트로 명실공히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고, 헤비메틀로의 전향을
도모하게 된다.
68년 그룹의 데뷔 앨범인 [Truth]가 영국과 미국에서 히트를 기록하자 이들은 순회 공연을 갖고 69년 두 번째 앨범
[Beck-Ola]를 발표해 또 한번의 히트를 구가했지만 그해 가을 해체하게 된다.
이후 그룹 페이시즈(Faces)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솔로 앨범 작업에도 들어간 로드는 69년 [The Rod Stewart
Album]을 발표하고 어쿠스틱 록의 정수를 보여준다.
70년 [Gasoline Alley]를 발표한 그는 전미 순회공연을 통해 솔로로서의 명성을 쌓아갔지만, 영국에서는 여전히
페이시즈의 간판 스타로 더 알려져 있었다.
71년 [Every Picture Tells a Story]로 US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그는 'Maggie May'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72년 밴드의 [A Nod is as Good as a Wink to a Blind Horse]도 그의 명성에 힘입어 US 톱 텐의 자리에 올랐지만,
밴드 내에 남아있기엔 너무나 인기가 많았던 그는 공식적으로 75년 밴드를 탈퇴하고 본격적인 솔로의 길에 들어선다.
그해 [Smiler], [Atlantic Crossing]을 발매하며 미국 시장에 다시금 자리를 잡고,76년 [A Night on the Town]의
넘버원 싱글 'Tonight's the Night'로 플래티넘을 기록한다.
77년 [Foot Loose and Fancy Free]로 트리플 플래터넘을 기록하며 최고의 팝스타가 된 그는 사치스런 라이프 스타일과 여러 배우, 모델과의 염문설로 유명세를 치뤘지만 인기에는 별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했다.
80년대 들어 디스코 열풍이 신스 팝(synth-pop)으로 옮겨가자, 로드는 81년 뉴 웨이브와 신디사이저를 사용한 팝이
가미된 [Tonight I'm Yours]로 현명히 대처했고, 그의 레코딩 역사에 플래티넘 기록을 다시금 추가하게 된다.
80년대 들어 다소 부진을 면치 못했던 그는 89년 톰 웨이츠(Tom Waits)의 곡인 'Downtown Train'을 리메이크 하여 처음으로 그래미에 노미네이트 된다.
90년대 들어 완숙한 성인 취향의 보컬리스트로 변모한 로드는 93년 [MTV Unplugged] 로 성공을 거둔 후, 95년
[A Spanner in the Works]로 보다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98년 로드 스튜어트는 컨템포러리 브리티쉬 밴드인 오아시스(Oasis)의 'Cigarettes and Alcohol', 프라이멀 스크림
(Primal Scream)의 'Rocks', 스컹크 아난지(Skunk Anansie)의 'Weak'를 비롯한 일련의 리메이크 곡들을
수록한 앨범 [When We Were the New Boys]를 발표해 그의 음악적 다양성과 유연함을 드러냈다.
사실 자신의 음악적 토대와 방향을 고수하기보다는 주류 팝에 영향을 받고 있는 그이지만,여전히 최고의 가수로서
팝계에 크게 자리잡고 있다.
1945년 영국 런던 출생 1965년 롱 존 발드리가 결성한스팀패킷의 일원으로 레코딩 작업과 연주를 했던 로드는
1966년밴드가 해체되자 제프 벡 그룹에 조인하게 된다.
이 그룹에서 그는 섹시하면서도역동적인 리드 보컬 리스트로 명실공히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고, 헤비 메틀로의 전향을
도모하게 된다
1968년 그룹의 데뷔 앨범인 'Truth'가 영국과 미국에서 히트를 기록하자 이들은순회공연을 갖고 1969년 두 번째 앨범 'Beck-Ola'를 발표해 또 한번의 히트를 구사했지만 그해 가을에해체하게 된다.
이후 그룹 페이시즈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솔로 앨범 작업에도 들어간 로드는 1969년'The Rod Stewart Album'을
발표하고 어쿠스틱 록의 정수를 보여준다 1970년 'Gasoline Alley'를 발표했으며, 1971년
'Every Picture Tells a Story'로 US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그는"Maggie May"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1972년 밴드의 'A Nod is as Goodas a Wink to a Blind Horse'도 그의 명성에 힙입어 US Top 10자리에
올랐지만, 밴드 내에 남아있기엔 너무나 인기가 많았던 그는 공식적으로 1975년 밴드를 탈퇴하고 본격적인 솔로의
길에 들어선다.
90년대 들어 완숙한 성인 취향의 보컬리스트로 변모한 로드는1993년 'MTV Unplugged'로 성공을 거둔 후, 1995년
'A Spanner inthe Works'로 보다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1998년 로드 스튜어트는 컨템포러리 브리티쉬 밴드인 오아시스의 "Cigarettes and Alcohol", 프라이멀 스크림의
"Rocks", 스컹크 아난지의 "Weak"를 비롯한 일련의 리메이크 곡들을 수록한 앨범 'When We Were the New
Boys'를 발표해 그의 음악적 다양성과 유연함을 드러냈다.
사실자신의 음악적 토대와 방향을 고수하기보다는 주류 팝에영향을 받고 있는그이지만, 여전히 최고의 가수로서
팝계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POP SONG & ROCK' 카테고리의 다른 글
Linda Ronstadt - Long long time (0) | 2016.06.10 |
---|---|
Eagles - Desperado (0) | 2016.06.10 |
Rialto - Monday Morning 5:19 (0) | 2016.06.09 |
Wham - Careless Whisper (0) | 2016.06.08 |
Morten Harket - Can't Take My Eyes Off You (0) | 2016.06.07 |